“부모님은 어디 계시냐.” “곧 오실 거예요.” 2층에 올라갔다. 잠시 후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너무도 그리웠던 발소리, 너무나 잘 알고 있던 두 분의 발소리…. 자다가도 부모님 발소리가 들리면 깨어 달려 나가지 않았던가. 세월이 지났어도 그 발소리는 변함이 없었다.
기다릴 수 없었다. 나도 뛰어나갔고 부모님도 뛰어 들어오셨다. 그때의 부모님 얼굴은 내 가슴에 찍힌 영원한 사진이 됐다. 몇 초의 정적 속에 부모님은 나를 읽었고 나도 부모님의 마음과 기도를 읽어낼 수 있었다. 얼마나 나를 위해 기도하시고 눈물 흘리시며 간구하셨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날 저녁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4남 3녀, 이렇게 아홉 식구가 모여 가정예배를 드렸다. 눈물과 감동의 물결이었다. 어머니가 기도하셨다. “하나님, 우리 아홉 식구를 한 명도 버리지 않으시고 다 살려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 가족 모두 하나님께 생명과 모든 것을 바치며 살겠습니다.”
험한 세월을 거쳐서인지 부모님 머리엔 희끗희끗한 흰서리가 내렸다. 아버지는 반공청년단 대장이어서 테러의 대상이 됐다. 어머니는 삯바느질로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의 생계를 잇고 계셨다. 월남하실 때 장티푸스에 걸려 4주간 고열을 앓은 후 기력이 쇠한 상태였다.
‘내가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 부모님은 이제 연로하셨어. 목사 되기를 서원했지만 그 문이 열릴 때까지는 주어진 생존의 무게를 감당해야 해.’
혼자 상경했다. 일단 취직부터 하고 가족을 부를 계획이었다. 서울역에 도착하니 지게꾼들과 고아들이 넘쳐났다. 나는 곧장 의무사령부로 향했다. “김선도라고 합니다. 해주의학전문학교 출신인데 월남해 국군 군의관을 지냈습니다.” “오호, 그래요?”
의료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던 시절이었다. 면접 후 곧바로 채용됐다. 그 길로 의정부 유엔 종군 경찰병원에서 군의관으로 일하게 됐다. 의정부에 있는 캐나다야전병원으로 파견됐다. 이곳에서 주로 외국인을 치료했지만 한국인 진료도 병행했다.
의정부 경찰병원에 근무하면서부터 의정부역 근처에 있는 천막 교회를 다녔다. 의정부 감리교회였는데 감리교와의 운명적인 첫 만남이었다.
새벽기도부터 나갔다. 20대 후반쯤 되는 최요한 목사님이 뜨겁게 설교했다. 장로교회에서 느낄 수 없는 뭔가 다른 분위기였다. 새벽기도를 열심히 참여하던 중에 최 목사님이 나를 불러 세웠다.
“김 선생님, 우리 교회에 일꾼이 없습니다. 도와주십시오.” 거절할 만한 이유가 없었다. “예, 순종하겠습니다.” 주일학교 교사부터 시작해 성가대를 하다가 성가대장을 했다. 그다음엔 재정부장을 하고 권사 직분도 받았다. 총각이 권사라는 직분을 맡게 된 게 쑥스러웠다. 하지만 6·25전쟁 중 생명을 살려주신 하나님 은혜를 생각하면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됐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었다.
“목사님 제가 더 도울 일은 없습니까. 교회를 건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 그렇지 않아도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회 재정이 부족합니다.”
그때 내 마음속에 이상한 확신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근거 없는 낙관이었다. 하지만 매우 강한 내면의 확신이 있었기에 아주 근거가 없다고는 볼 수 없었다. “목사님, 해 보죠. 건축을 해봅시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역경의 열매] 김선도 <11> 아홉 식구 모두 모여 눈물의 가정예배
가족의 생계 문제 책임져야 할 입장… 의정부 유엔 종군경찰병원에 취직
의정부 캐나다야전병원 근무시절 캐나다 군의관과 함께한 김선도 서울 광림교회 원로목사(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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