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절 속죄일 (A Day of Atonement)
그림 : 비둘기는 성서에서 나타난 모든 새들 가운데서 가장 유명하고 중요한 새이 다. 양들이나 염소를 속죄물로 바칠 수 없는 가난한 자들은 두마리 비둘기 를 여호와께 바쳤다. 또한 비둘기의 부드러운 소리와 온화한 모습은 아가서 에서 사랑스러움의 대명사로 등장한다.
속죄일에 대하여 주의할것이 있다. 그것은 이 속죄일과 전에 생각한 속죄제와의 관계이다. 이 속죄일과 속죄제가 같은 것으로 생각하거나,아니면 하나로 보아서는 안된다.그 이유는 속죄일은 속죄의 날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즉 죄를 속함을 받고 하나님 앞에 의인이 되는 시간이요,하나님께서 죄인을 의인으로 여기시는 때를 의미한다. 그러나 속죄제를 죄를 속하는 방법과 그 죄를 속하는 요소를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세상에 의인은 없나니,하나도 없는데 그들이 어떻게 속죄함을 받으며,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얻은 성도가 되어 하나님과 함께 교제할 수 있는가? 그것은 속죄제사이다. 구약의 속죄제하는 오실 그리스도를 예표하며 그를 믿는 가운데 양을 드렸고, 신약시대는 그가 오시어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 속죄하신 그리스도를 믿고 그 공로를 힘입어 속함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 앞에 의인이 되고,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서는 날이다. 그러므로 위의 양자는 "속죄"라는 말은 같으나,그다음 어미에 나오는 "일"이라는 말과 "제사"라는 말에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하나는 시간 문제이고, 하나는 방법과 내용이 문제이다. 그러므로 위의 양자는 엄연히 구별이 되어야 한다
1.속죄일의 어의
속죄일은 히브리어로 (욤 하ㅋ페림)으로 되어 있다(레23:2725:9),(욤)은 "날"이라는 뜻도 있으나, "시간"(Time),"시기"(Period)로도 사용이 되었다. 120) 그러나 여기서는 그 의미들 중에 "날"이라는 의미로 이는 (욤)을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의미이다.
다음에 (하 ㅋ페림)은 몇 가지의 합성어 인데 (하)와 (카팔)과 (임)이다. 여기의 는 정관사이다. "그"(the)라는 뜻이다. 정관사 "그"는 앞에 나온 것을 지적하거나 주지시키는 의미가 있다(카팔)은 "덮는다"(to cover)는 의미로 "죄를 덮는다"또는 "용서한다"는 의미가 있다. 어떤 때는 "보상한다"(to expiate)라는 의미로써 "속죄한다"는 "의미와 정결하게 한다"는 의미도 있다. 끝으로 "달랜다"(to appease), "평화한다"라는 의미도 있다. 이 "평화한다"(Pecify)는 의미는 화해와 화목을 의미하는 것이다.121) 우리는 (카팔)이 위의 세가지 의미와 다 관계됨을 인정한다. 그 이유는 어떤 인격적 대상에게 죄를 범했을 때 그 죄를 덮고 용서하는 것이 속죄일 뿐 아니라 그 용서와 속죄에는 방법이 있는데 그 죄의 값을 보상하여야 한다. 구약에서는 양,염소, 소로 죄인을 대신히셔 죽여 제사를 드림으로 행했고 그 죄인은 불완전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정결함을 얻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하나님은 죄인들을 사랑하시어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죄인들을 위하여 단번에 속죄케하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십자가의 제단 위에 죽이심으로 완전하고 영원한 속죄와 구원을 주셨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막힌 담을 허시고 화목케하셨다.그러므로 속죄는 죄값을 치루어 보상하고 기억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정결케하여 하나님과 화목케 함이다. 하나로 만드는 것이다.
끝으로 히브리어 (임)은 복수를 의미한다."....들"이라는 뜻이다. 여기서는 "속죄들"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창세기 1장에 하나님의 이름에 (엘로힘)이라고 하여 "하나님들"이 아니고, 반면에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미하며 "절대적인 신을 나타낸다. (임),"절대"를 의미할 때가 있다. 그러므로 여기의 (임)을 복수로 볼 것이 아니라 '절대'로 보아서 "절대적인 속죄','완전한 구원'으로 보는 것이 옳다.
즉 최종적이고,완전한 속죄와 구원을 의미한다.레위기 16장 29-34절에 보면 대 속죄일이 나온다.1년에 한번씩 대제사장이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 전국민의 죄를 속하는 날이다.122) 그러므로 위의 속죄일은 최대 최종의 속죄와 구원을 주는 날로 장차 세상 끝에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되는 그 날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2. 속죄일의 유래
"너희는 영원히 이 규례를 지킬찌니라"(레16:29-34)고 했다.이것은 속죄일의 시작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이다. 또 여기의 "영원히 이 규례를 지킬지어다"는 말씀은 속죄일 외에 다른 절기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말씀이다. 그 이유는 이 제사절일은 가장 중요하고 귀할 뿐 아니라 영원히 지켜 행할 아름답고 보배로운 날 중요하고 귀할 뿐 아니라 영원히 지켜 행할 아름답고 보배로운 날이기 때문이다. 이 제사일은 지상에서만 아니라 천상에서도 기념하고 지킬 날인 것 같다. 레위기 23장 26절과 민수기 29장 7절 이하에 보면 다시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다.이것은 레위기 16장에 나타난 근거를 기준하고 실천하여 진행하는 과정 같다. 그 속죄일의 진행이 언제까지인가? 성경에 분명히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나 성경 몇 곳을 찾아 보면 역대기하 7장 7-9절에 솔로몬의 성전에 회중을 모았다. 그것은 속죄일의 행사인 것같으며, 에스겔 45장 18절에도 같은 사건인 것 같다. 또 이스라엘 백성은 포로에서 귀환했을 때에 이 날을 지킨 것 같다(에스라3:1-6,느8:1). 그 증거는 느헤미야 8장 2절에서 9장 1절에 절기를 보면 7월 1일부터 7월 22일까지 지켰다. 그들은 회막에서 지켰다. 이것은 7월 10일에 거행 하던 속죄일을 겸해서 다른 절기들을 지킨 것 같이 생각된다. 더욱 우리에게 주의를 끌게 하는 것은 군중들을 7월 10일인 신년절기를 신성한 특성을 가진 절기로 생각하여 많이 모았다(레23:23,민29:1).그것은 신.구약 중간사 시대에 대제사장이었던 예수 시ㄹ(Jesus Sirach)에게 와서 기록이 되었고, 권장이 되었다.123) 그러나 다시 이 절기는 침묵이 되어 오다가 신약시대에 와서 히브리서에 기록이 되었다. (히6:199:71310:111:2).특별히 사도행전 27장 9절에 나타난 기사는 속죄일을 의미하는 것 같다. 124) 더우기 주의하여야 할 것은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오경을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이 명령한 가장 귀한 법으로 알고 지켰고, 그대로 준행하였기 때문에 그대로 실천한 것으로 생각이 된다.
성경의 기록에 나타나지 않은 것은 그 명령대로 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요,상례이기 때문이다. 또 기록된 부분은 특별한 사건을 기록하고, 그 사건에 따라서 부수적으로 언급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것을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지시하여 영원히 지키라고 한 그대로 지킨 것으로 생각이 된다.
3.속죄일을 지키는 방법
레위기 16장 27절 이하에 보면 '너희는 영원히 이 규례를 지킬 지니라"고 하면서 속죄일에 방법을 지시하고 있다. 그 방법에 의하면 (1) 시일은 7월 10일에 지키게 되어 있다. 이 날은 안식일인데 이날은 성회로 모이고, 스스로 괴롭게 하며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했다(레16:31).(2) 속죄일의 대상자는 몇 종류가 있다.
첫째는, 이스라엘 백성이다. 이들은 본토인으로 너희 동족이라고 했다(레18:2619:34,출12:39).이스라엘은 선민이요,아브라함의 자손인 고로 그들은 의무적으로 지키게 되었다(레16:29). 둘째는 너희중에 우거하는 객이라고 했다. 이 객은 본국인이 아니고 타국인이다(레17:15).레위기 18장 26절에는 더 분명히 기록하기를 "너희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이라"고 했다. 19장 34절에는 "너희와 함께 있는 타국인을"의미했다.이 ㅗ든 말씀을 종합하면 여기에 나타난 객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약속하고 마침내 이스라엘에게 준그 땅에 정주하여 사는 이방인을 의미한다. 우리는 잘못 알아서 여기의 객을 타국에 정주하는 타국인으로 이스라엘에 방문한 손님이 아닌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이 절일에는 이스라엘 백성과 제한된 이방인이 참석했다.
이들을 위한 속죄의 목적은 이들을 속죄하여 정결케하는 것이다. 즉 여호와 앞에서 모든 죄에서 정결함을 받는 것이다(레16:30).
이 속지일의 집행자는 아론이다. 아론은 대제사장으로(레16:34).1년에 1차씩,즉 신년 정초에 지성소에 들어갔다. 그 때에 그는 피를 가지고, 들어갔다.(출3:10). 그 피는 수송아지와 수양의 피인 것이다(민29:7-8).
아론은 몸을 깨끗이 씻고, 거룩한 세마포 옷을 입고, 세마포 겉옷과 에봇을 입고,띠를 띠고, 흉패를 붙이고, 관을 쓰고, 지성소에 들어가게 된다. 그가 성막에 들어가서 행하는 것은 전"성막"의 "대제사장"편을 참고 하기를 바란다.
4. 속죄일의 영적 의의
속죄일은 모든 죄를 청산하고 주 앞에 서는 그 날이다. 우리는 전에 성막에서 거행된 제사들을 논할 때에 속죄지에서 대하여 생각했다. 그 속죄 사역이 이 속죄일에 중복이 될 수 없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는 단번 속죄이기 때문이다. 그 속죄는 지상에서의 속죄이다. 그러나 그 속죄가 완전하게 완성되는 날이 있는데 성도들이 영화롭게 되는 날이다. 그날은 소위 성도가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국에 들어가는 날이다. 즉 성도들이 부활해서 천국에 입성하는 날이다.
그러나 이 속죄일에 관한 영적 해석이 적지 않다. 어떤이는 "속죄일은 그리스도의 하늘에 있어서 속죄함을 나타낸다"125) 고 했다. 그것은 속죄제사와 여기의 속죄일을 혼동하여 양자를 동일시 한 오류인 것 같다. 그리스도의 속죄는 구약에서 속죄제에 예언되었고, 성도의 속죄도 거기에 함축되어 있따. 그러나 여기의 속죄일은 그것과 구별된 특별한 속죄일이다. 그러므로 이 날은 속죄을 완전케 하고, 성취시키는 날인 것이다. 그리스도와 속죄와 구원이 성도에게 완전하게 완성되는 날이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이 날에 여러제사들(번제,소제,그리고 속죄제)이 거행된 것은 완성과 성취를 의미하며, 모든 것을 끝내는 의미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속죄와 구원이 완성되고 그치는 날이 있는 줄을 아는데 그 날은 세상이 끝나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에 들어가는 날이다. 그러므로 이 의견에 동조하는 이들이 있다126) 그 이유는 여기의 속죄일은 대 속죄일이기 때문이다.127) 또 1년에 1차 있는 속죄일이기 때문이다. 영적으로는 세상 끝날에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인하여 택함을 받은 모든 성도가 영화를 얻는 날이다.
어떤이는 이 날을 만민 속죄로서의 부흥회와 같은 큰 집회로 인한 속죄를 의미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이들도 있다.128) 그러나 그것은 전에 논한 속죄제사에 다 포함되어 있다. 또 하나님께서 섭리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성취된 구속사업은 성령을 통하여 성도들에게 적용되었음을 전에 논한 "오순절"에서 기록했다. 그런데 그런 사역이 다시 이 속죄일에 적용이 될 것인가?그것은 너무 지나친 억측과 주관인 것 같다.
한편 속죄일에 대하여 잘 말하여 주는 학자들이 있다. 먼저 International Standard Bible Encyclopedia 제1권에서 Wil Helm Molleh씨는 이 절기는 "장래일의 좋은 그림자로서(히10:1)그리스도께서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않은 성소, 곧 하늘에 올라가 속죄 제물로 속죄 구원자로 하나님 앞에 나타나실 뿐 아니라(히9:22) 그는 닻과 같은 우리의 소망으로 하늘에 올라가 누릴 가장 높은 광경 가운데 있는 휘장 안을 보여 준다"고 했다. 129) 그뿐 아니라 J.D.Douglas가 편집한 "The New Bible dictionary에서도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갈보리에서 이루신 구속 사역을 구약의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 가심과 같이 그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내기 위하여 하늘에 들어가서(히9:1112)그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심이다(히9:12).그뿐 아니라 그의 백성으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나타나 영광을 누리게 하심도 의미한다(히9:713:1112)130)고 했다. 마치 구약 성도들이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히11:16)하심과 같다(마25:34,요14:2).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앞에 가셨다가 다시 재림하시여 그 나라로 이끌 것을 기록한 것이다(히9:23-28,딛2:13,행1:11).또 마태복음 24장에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성도가 그를 맞아 그의 나라에 들어 갈것을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이 속죄일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변화되어 영화로운 몸으로 그의 나라에 들어갈 것을 의미한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