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성서는 넓게는 히브리 성서, 곧 고대 이스라엘의 경전이라고 부릅니다. ‘구약’과 ‘신약’이라고 나누게 된 것은 예레미야서 31:31에서 유래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초기의 성서들은 오늘날의 성서와 같이 한권의 책(묶음)으로 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양피지나 파피루스에 기록된 여러 개의 두루마리 형태로 되어있었습니다. 초기의 책(코덱스)형태는 2세기부터이니 첫 기록하고 난 뒤 무려 1천년이 훨씬 지나서야 된 것입니다. 고대의 구약 성서가 오늘날의 책(코덱스)과는 전혀 다른 각각의 두루마리 모습으로 기록•보존되었다는 것이 구약성서를 이해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가장 오래된 유명한 히브리어 성경 사본은 기원후 895년 모세 벤 아세르가 쓰고 모음 부호를 붙인 카이로 예언서 사본으로서, 신명기계 역사서와 예언서들(다니엘서 제외)을 담고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셀로모 벤 부야가 쓰고 925년 아아론 벤 아세르가 모음 부호를 붙인 알레포 사본인데, 마이모니데스1가 그 권위를 인정했으나 훼손되어 3/4만 남아있습니다(창세기 1:1-신명기 28:16, 아가(3:12부터), 코헬렛(전도서), 애가, 에스더, 다니엘, 에스라 없음). 1009년 피르코비치(Firkivich)의 집록에서 유래하는 페트로폴리스 사본(예전의 레닌그라드 사본)은 벤 아세르 사본에 의거하여 교정됩니다.
1998년부터 쉥커(A. Schenker)등에 의해 「비블리카 헤브라이카 퀸타」(BHQ)가 출판되고 있는데 다시금 원칙적으로 페트로폴리스 사본을 바탕으로 하며, 티베리아 본문2 전통에 따른 교정들을 하단의 비평 자료집에서 제공하며 마소라 대주가 본문 위쪽에 배치되어 있으며, 덧붙여진 주해로 설명됩니다. 히브리 대학교 성경 HUB는 벤 아세르 전통에 따른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본문증거인 알레포 사본을 바탕으로 하는데, 이 사본에 없는 부분들은 소실되기 전에 복사되었습니다. 1995년부터 예루살렘에서 출간되고 있습니다.3
히브리어 또는 유대교 경전
히브리어로 된 유대교인들의 경전은 ‘율법서, 예언서, 성문서’라는 이름으로 ‘Torah Nebhim Ketubhim’입니다. 율법서라고 부르는 ‘토라’는 ‘오경(Pentateuch)’으로 우리에게는 ‘모세오경’이라는 말이 더 익숙합니다. ‘느비임’은 전기예언서와 후기예언서로 나뉘며, 전기예언서에는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서’ ‘열왕기서’가 들어 있고, 후기예언서에는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에스겔서’ ‘ 소예언서 12권’이 들어 있습니다.
셋째 묶음인 ‘케투빔’에는 ‘시편’ ‘잠언’ ‘욥기’와 같은 시와 지혜서인, ‘아가’ ‘룻기’ ‘애가’ ‘전도서’ ‘에스더기’라고 하는 다섯 두루마리, 이 밖에 ‘다니엘서’와 ‘에스라-느헤미야기’가 있고 맨 마지막에 ‘역대기서’가 있습니다.
‘토라’가 5권, ‘느비임’이 8권, ‘케투빔’이 11권으로 모두 합하면 24권입니다. 율법서는 기원전 5세기, 곧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풀려나 돌아온 뒤 학사 에스라의 주도 아래 경전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예언서는 시몬(기원전 219-199년)이 예루살렘 성전의 대제사장직에 있을 때 경전이 되었으며, 성문서에 속하는 책들이 마지막으로 경전이 됩니다. 예루살렘이 로마에 의해 멸망된 20년 뒤인 기원후 90년에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지역인 얌니아(Jamnia)에서 회의가 열려 히브리어 성서의 정경(canon) 범위가 확정됩니다.
사마리아 경전(사마리아 오경)
그리스 시대 초기, 유대 땅 예루살렘이 팔레스타인 유대교의 중심지였을 때, 옛 북왕국 이스라엘의 중심지 사마리아에 살던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루살렘의 유대사회로부터 이탈하여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합니다. 요한복음에서 사마리아 여인이 언급했듯이(요 4:20) 그들은 세겜 근처의 그리심 산을 사마리아인들 제사의 중심지로 정하고 오경만을 경전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들의 외경으로는 ‘세페르 하야밈’(Seper Hayyamim, 역사서)과 ‘메마르 마르카’(Memar Marqa, 마르카의 교훈 속에 담긴 모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칠십인역(LXX, 알렉산드리아 경전)
헬레니즘 세계 속에서 살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토라(율법)를 확실히 배우기 위해서 히브리어 성서를 헬라어(희랍어, 그리스어)로 번역합니다. 왜냐하면 많은 유대인들이 히브리어나 아람어에 대한 지식을 잃어버렸기에 율법을 그리스어로 설명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기원전 3세기경부터 번역되기 시작한 그리스어 구약이 그들의 경전이 됩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들 역시 사두개파나 사마리아 사람들과 같이 오경만을 경전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나중에 나머지 책들도 그 교육적 가치를 인정받아 번역되었으며, 히브리어 구약성서가 경전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다른 책들(외경; ‘토비트서’, ‘마카베오서 1-4’, 다니엘서 13-14장인 ‘수산나 이야기’와 ‘벨과 용’ 등)을 성서에 포함시킵니다. ‘칠십인역’ 명칭은 유대교가 아니라 교회의 사본과 인쇄물에 나타나는 기독교적 명칭으로서, 기원후 2세기 전에는 그리스어 성서 본문을 가리켜 칠십인역이라고 부른 적이 없습니다. 토라와 예언서에 대한 전체 번역을 가리켜 칠십인 역이라고 부른 최초의 사람은 초기 기독교 작가인 저스틴(Justin, 165년 사망)입니다. 칠십인역 성경 또한 하나의 묶음으로 되어 있는 성서가 아니라 여러 개의 꾸러미로 되어있습니다.
쿰란 경전(사본)
1947년, 20세기 신학계와 종교계 최고의 발견인 쿰란사본(사해사본)의 발견은 구약성서 본문연구에 커다란 획을 그었습니다. 발견된 1000여개의 사본들 가운데 200여개는 구약성서 필사본이었으며 에스더서를 뺀 모든 성서가 들어있습니다. 에스더가 빠진 이유는 에스더 본문에는 ‘하나님’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추측합니다. 이제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사본은 기원후 895년에 예언서를 필사한 카이로 사본과 925년에 마무리된 알레포 사본이 전부였습니다. 또한 20 세기 이후 모든 구약 성경은(우리가 읽는 한글 성경을 포함해서) 레닌그라드 사본(L)에 그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레닌그라드 사본은 구약성서 전체를 모두 담고 있기 때문이며 이 사본은 기원후 1008년경에 쓰였는데, 현존하는 가장 온전하고 오래된(the most complete and oldest) 사본으로 간주됩니다. 그런데 쿰란 경전은 이것보다 무려 1000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서, 오랜 시간에 걸쳐 기록되고 전달된 구약 성서가 전달 과정에서 변질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성서의 역사성에 의구심을 품고 있던 많은 논란을 잠재울 수 있었습니다. 쿰란 사본이 다른 구약 사본들과 내용과 형식면에서 거의 차이가 없이 일치하였기 때문입니다.
소 그리스어 역본
기독교 교회가 70인역을 널리 사용하자 유대인들은 그것을 부정확하다고 비판하고 자신들만을 위해 새롭게 그리스어로 번역합니다. ‘삼형제’로 부르는 테오도티온(Theodotion), 아퀼라(Aquila), 심마쿠스(Symmachus)의 그리스어 번역본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기원후 2세기에 살았던 테오도티온의 번역이라고 알려졌었던 번역본이 사실은 기원전 1세기의 카이게 개정본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아퀼라는 기원후 125년에 아주 엄격하게 문자적으로 번역하였고 심마쿠스는 자유롭게 의역을 하였습니다. 두 번역본 모두 카이게 개정본(Kaige-recension)4에 기초한 것으로 보입니다.
페쉬타(Peshita)
페쉬타는 ‘공공’ 또는 ‘단순’이라는 뜻인데, 기원후 2세기경 시리아의 기독교인들이 히브리어 성경을 아람어의 한 지류인 시리아어로 번역함으로써 만들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은 기원후 6세기에 번역이 완료되었고 7-8세기에 두 번째 단계를 거쳐 9세기 세 번째 단계까지 이어졌습니다. 페쉬타역은 시리아어 수정 과정을 거치면서 아주 가까웠던 마소라 보문과는 더 멀어져갔습니다. 가장 초기 형태의 페쉬타는 실질적으로 마소라 본문에 대한 증거가 됩니다.5
타르굼(Targums)
시리아어 번역본인데, 종종 번역보다는 바꿔쓰기(paraphrases)에 가깝지만 어떤 본문은 아주 문자적인 번역을 했기에 어떤 히브리어 선조 본문 유형을 사용했는지 확실히 판단할 수 있습니다. 쿰란에서 나온 욥기 타르굼을 제외한 모든 타르굼에 반영된 히브리어 본문은 원-마소라 전승과 아주 가깝습니다. 타르굼 사본의 연대는 기원후 1세기부터 4-5세기로 다양합니다.
가톨릭 경전
구약성서는 일찍부터 두 언어로 전승되어 왔습니다. 하나는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성서이고, 다른 하나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기원전 3세기에 히브리어에서 그리스어로 번역된 그리스어역 구약, 일명 70인역(LXX)입니다. 복음서와 바울 서신에서 구약 성경을 많이 인용하고 있는데, 인용하는 구절들은 대부분 히브리어 성서가 아닌 그리스어 성서(LXX)의 본문입니다. 히브리어 본문에서 번역한 다양한 언어의 성경들(한글성경 또한) 끼리 차이가 있는 것은 70인역 성경(LXX)의 간접적인 영향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히브리어 성서에는 없는 소위 외경(外經)이라고 하는 책들이 더 들어와서 나중에 가톨릭의 성서가 됩니다. 개신교에서 외경이라고 부르는 것을 가톨릭에서는 ‘제2경전(deuterocanonical)’이라고 부릅니다. 히브리어 구약성서와 그리스어 신약성서를 합친 성경을 ‘제1경전’ 혹은 ‘원경전(protocanonical)’이라고 불러서 이 둘을 구분하기는 하지만 가톨릭에서는 모두 성서로 받아들입니다.
제2경전에 들어가는 책은 일정치 않게 역사적으로 변천됩니다. 우리나라의 개신교와 가톨릭이 함께 번역한 '공동번역성서'(1977년)에 보면, ‘토비트’ ‘유딧’ ‘에스델(제1경전 에스더기의 추가부분)’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다니엘서(제1경전 다니엘의 추가부분)’ ‘마카베오상’ ‘마카베오하’ 등 7권입니다(에스델과 다니엘의 추가된 부분을 기존 것으로 본다). ‘바룩서’ 안에는 ‘예레미야의 편지’가 마지막 장으로 들어 있고, 다니엘서의 추가 부분인 13-14장에는 ‘세 젊은이의 노래’ ‘수산나’ ‘벨과 뱀’이 들어 있습니다. 영어개역표준성서(RSV, 1957년)에 실린 제2경전에는 ‘제1에스드라’ ‘제2에스드라’ ‘므낫세의 기도’가 더 들어 있습니다. 개신교가 ‘외경’이라고 부르는 가톨릭의 제2경전은 매우 중요하고 연구할만한 가치가 많은, 말라기와 마태복음 사이 약 4세기의 역사를 채워주는 소중한 기록입니다.
개신교 경전
개신교의 성서는 39권의 구약과 27권의 신약으로 되어있습니다. 개신교의 성서는 유대교와 달리 구약 성서와 신약 성서를 모두 경전으로 갖고 있으며, 구약의 경우에 내용은 같지만 책의 분책과 배열은 다릅니다. 이를테면 개신교에서는 '사무엘 상' 과 '사무엘 하'로 나누지만 유대교는 사무엘서 한 권으로 묶여있습니다. 구약 성서는 기독교와 유대교가 모두 성서로 인정하기에 구약 성서를 ‘히브리 성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성서의 순서도 조금 달라 개신교는 욥기, 시편, 잠언 등으로 되어있는데 유대교는 시편, 욥기, 잠언 등의 순서로 되어 있습니다. 또한 개신교 구약성서의 맨 마지막은 말라기인데 히브리어 성서는 맨 마지막이 역대기상하입니다.
개신교 구약성서는 본문은 히브리 성서를 따르고, 배열순서는 그리스어 역(LXX)을 따릅니다.6
구약성서 분류
구약성서는 거의 히브리어로 일부는 아람어로 쓰였으며(창 31:47; 렘 10:11; 스 4:8-6:18; 단 2:4b-7:28), 신약성서는 헬라어(그리스어, 희랍어)로 쓰여 있습니다.
| 유대성경(타나크) | 칠십인역(LXX) | 개신교 | 가톨릭 | 그리스정교 |
| 토라(오경) | 오경 | 오경 | 오경 | 오경 |
| 태초에(창) | 창세기 | 창세기 | 창세기 | 창세기 |
| 이름은 이러하니(출) | 출애굽기 | 출애굽기 | 탈출기(출애굽기) | 출애굽기 |
| 그리고 그가 부르셨다(레) | 레위기 | 레위기 | 레위기 | 레위기 |
| 광야에서(민) | 민수기 | 민수기 | 민수기 | 민수기 |
| 말씀들(신) | 신명기 | 신명기 | 신명기 | 신명기 |
| 느비임(예언서) | 역사서 | 역사서 | 역사서 | 역사서 |
| 여호수아 | 여호수아 | 여호수아 | 여호수아 | 여호수아 |
| 사사기 | 사사기 | 사사기 | 판관기(사사기) | 사사기 |
| 사무엘 | 룻기 | 룻기 | 룻기 | 룻기 |
| 열왕기 | 열왕대 1-4 | 사무엘 상하 | 사무엘 상하 | 열왕대 1-4 |
| 이사야 | 역대기(파랄리포메논) | 열왕기 | 열왕기 | 역대기 |
| 예레미야 | 에스드라1 | 역대기 | 역대기 | 에스드라 1 |
| 에스겔 | 에스드라2(에스라+느) | 에스라 | 에즈라(에스라) | 에스라 |
| 호세아 | 느헤미야 | 느헤미야 | 느헤미야 | |
| 요엘 | 토비트 | 토비트 | 토비트 | |
| 아모스 | 유딧 | 유딧 | 유딧 | |
| 오바댜 | 에스더+α | 에스더 | 에스델(더)+α | 에스델(더)+α |
| 요나 | 마카비 1-2(3-4) | 마카베오 1-2 | 마카베오 1-3 (4) | |
| 미가 | ||||
| 나훔 | 시와 지혜서 | 시와 지혜서 | 시와 지혜서 | 시와 지혜서 |
| 하박국 | 욥기 | 욥기 | 욥기 | 욥기 |
| 스바냐 | 시편 | 시편 | 시편 | 시편(151장) |
| 학개 | 잠언 | 잠언 | 잠언 | 잠언 |
| 스가랴 | 므낫세 기도 | |||
| 말라기 | 전도서 | 전도서 | 전도서 | 전도서 |
| 아가 | 아가 | 아가 | 아가 | |
| 솔로몬 지혜서 | 솔로몬 지혜서 | 솔로몬 지혜서 | ||
| 집회서(시락서) | 집회서(시락서) | 집회서(시락서) | ||
| 케투빔(성문서) | 예언서 | 예언서 | 예언서 | 예언서 |
| 시편 | 호세아 | 이사야 | 이사야 | 이사야 |
| 욥기 | 아모스 | 예레미야 | 예레미야 | 예레미야 |
| 잠언 | 미가 | 예레미야 애가 | 예레미야 애가 | 예레미야 애가 |
| 룻기 | 요엘 | 바룩 | 바룩 | |
| 아가 | 예레미야 편지 | 예레미야 편지 | ||
| 전도서 | 오바댜 | 에스겔 | 에제키엘(에스겔) | 에스겔 |
| 예레미야 애가 | 요나 | 다니엘 | 다니엘+α | 다니엘+α |
| 에스더 | 나훔 | |||
| 다니엘 | 하박국 | 호세아 | 호세아 | 호세아 |
| 에스라 | 스바냐 | 요엘 | 요엘 | 요엘 |
| 느헤미야 | 학개 | 아모스 | 아모스 | 아모스 |
| 역대기 | 스가랴 | 오바댜 | 오바댜 | 오바댜 |
| 말라기 | 요나 | 요나 | 요나 | |
| 이사야 | 미가 | 미가 | 미가 | |
| 예레미야+바룩 | 나훔 | 나훔 | 나훔 | |
| 예레미야 애가 | 하박국 | 하박국 | 하박국 | |
| 예레미야 편지 | 스바냐 | 스바냐 | 스바냐 | |
| 에스겔 | 학개 | 학개 | 학개 | |
| 다니엘+α | 스가랴 | 즈가리야(스가랴) | 스가랴 | |
| 말라기 | 말라기 | 말라기 | ||
| *열왕대 1-4 1-2=사무엘상하 3-4=열왕기상하 |
*에스더+α= 에스더+ 6개 첨가문 | *다니엘+α= 다니엘+ 아자랴의 기도, 세 아이의 노래, 수산나, 벨과 용 | ||
성서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기독교는 성서의 바탕 위에 서있으며 교회는 성서의 열매이고 그리스도인은 성서를 읽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저마다의 다양한 환경과 문화 안에서 성서를 읽기에, 성서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는 결과를 달리합니다. 때때로 성서의 어떤 부분은 비그리스도인들이 보기에 역사적인 근거가 희박해 보이기도 하고, 그리스도인들 스스로도 과학적 실증주의의 물결 속에서 비논리적으로 보이는 성서 본문을 발견하는 상황에서 성서를 읽고 해석하기는 쉽지 않은 작업입니다. 그럼에도 이미 수천 년 전에 확정된 성서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나침반이 되어 삶의 방향과 의미를 제시하는 놀라움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성서를 읽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보통 큐티(QT, Quiet Time)라고 하는 방법으로 개인적으로 성서를 읽는 것입니다. 다른 누구의 도움이나 주석서 없이 홀로 성서를 읽고 해석합니다. 위로와 평안을 주는 메시지, 고민을 해결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아 자기의 삶에 적용하기 위한 성서 읽기입니다.
둘째, 성서와 여러 도움이 되는 책들을 함께 읽으며 성서의 역사와 배경을 배웁니다. 큐티가 주관적인 성서 읽기라면, 이것은 비교적 객관적인 성서 읽기입니다. 성서 본문뿐만 아니라 성서의 배경, 저자, 이스라엘과 연관된 역사적 사건 등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자연 과학, 역사학 등 여러 학문들과 성서를 비교 분석합니다. 더 깊은 성경 공부를 위해, 성서가 역사성과 사실성이 없는 비과학적인 책에 불과하다고 공격받을 때, 또는 선교와 전도를 위해 성서의 신학적 논증을 보증할 필요가 있을 때 쓰는 방법입니다.
셋째, 교회와 사회 속에서 성서 읽기입니다. 개인적인 경건과 영성은 홀로 존재할 수 없으며 그리스도인들은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성서를 읽고 해석해야 합니다. 주관적 성경읽기와 객관적 성경 읽기가 끝나고 난 뒤, 때로는 읽는 도중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찾아 나에게 적용해야 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위의 세 가지 성서 읽기의 방법에 비추어 문학, 역사 그리고 신학으로서의 성서를 살펴보겠습니다.
문학으로서의 성서
성서가 문학일까?
성서는 문학적 기법과 방법을 포함하고 있습니다.1 왜냐하면 문학적 기법이 들어감으로써 독자들이 흥미와 감동을 느껴 성서를 계속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학적 기교와 기술이 없는 기록은 역사적 사건들만 나열한 기록 책에 불과하기에 거기에서는 어떠한 감흥이나 영적 감동을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는 교차대구, 반복, 대칭의 구조로 구성되어 구조적으로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드러냅니다.2 사사기의 기드온과 삼손 이야기, 룻기, 에스더, 요나서 등은 여러 문학적 기교를 사용해서 읽는 이로 하여금 당시의 시간 속으로 되돌아가서 사건을 직접 눈으로 보고 느끼고 그들의 상황에 동감하게 해 줍니다.. 시편은 비유, 탄식, 찬양, 감사의 문학적 기교를 포함하며, 시편 119편은 히브리어 알파벳의 순서대로 각 절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열왕기서 등은 역사기록으로서의 형식을 갖추고 있으며, 예언서들은 급박한 상황에서 회개를 촉구하는 언어를 사용합니다. 복음서에서 나사렛 예수는 여러 비유를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듣는 이들을 놀라게 합니다. 네 개의 복음서들이 같은 사건을 서로 다르게 묘사하고 있는 이유는 네 명의 기록자들이 저마다의 문학적 기교를 충분히 활용했기 때문입니다.
룻기, 욥기, 에스더, 아가서 등은 일종의 드라마입니다. 이러한 성서들은 실제 있었던 역사를 있는 그대로 사실로서 기록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 배경에서 있음 직한 일들을 문학적 기법을 사용하여 소설 형식으로 기록한 드라마에 가깝습니다. 그렇기에 기-승-전-결 또는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형식이 분명하며 읽는 이로 하여금 흥미와 감동을 극대화시켜줍니다.
성서의 모든 부분이 역사는 아닙니다. 이는 조금 오해할 수 있는 말인데, 실제 일어났던 것을 사실로 기록한 역사가 아니라고 해서 그 가치가 훼손되는 것은 아닙니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실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고 해서 그 가치가 떨어지거나 「심청전」이나 「홍길동전」이 소설이라는 것 때문에 그 내용이 터무니없는 것은 아닌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소설은 역사 기록은 아니지만 당시의 시대상과 문화를 문학 기법을 통해 감동적으로 전달해줍니다.
원래 구약 성서는 세 개의 큰 묶음으로 되어있는데 ‘율법서, 예언서, 성문서’라는 이름으로 ‘Torah Nebhim Ketubhim’(토라, 느비임, 케투빔)입니다. 율법서라고 부르는 ‘토라’는 ‘오경’으로 흔히 모세 오경이라고 합니다. 느비임은 예언서(또는 역사서)로서, 전기예언서에는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서’ ‘열왕기서’가 들어 있고, 후기예언서에는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에스겔서’ ‘소예언서 12권’이 들어 있습니다. ‘케투빔’(성문서)에는 ‘시편’ ‘잠언’ ‘욥기’와 같은 시와 지혜서인, ‘아가’ ‘룻기’ ‘애가’ ‘전도서’ ‘에스더기’라고 하는 다섯 두루마리, 이 밖에 ‘다니엘서’와 ‘에스라-느헤미야기’가 있고 맨 마지막에 ‘역대기서’가 있습니다. 예언서(역사서)들과 달리 오경이나 성문서 등은 처음부터 역사적 사실을 정확하게 기록하는 것에 중점을 둔 성서가 아닙니다. 이 성서들은 교훈과 감동을 주기 위한 문학적 기록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역사적으로 전혀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꾸며 썼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21세기를 살고 있는 오늘날의 기준으로 역사서로서의 잣대를 구약 성서 전체에 적용하는 것을 매우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토라와 케투빔의 기록자들은 역사적 사실이나 있음 직한 사건들을 자신들의 신앙적 관점으로 활용하고 각색하여 신 여호와의 자비와 전능함에 대한 감동과 영적 감흥을 전달하려고 노력하였으며 그것의 결과물이 오늘날까지 놀라운 생명력으로 살아있는 것입니다.
문학적 기교와 기법 등이 풍부하게 들어있는 성서는 수많은 예술 작품들의 원동력이 됩니다. 그림, 조각과 같은 미술뿐만 아니라, 성서의 주제를 직·간접적으로 활용한 영화나 뮤지컬, 각종 음악, 소설이나 시와 같은 문학 등 모든 예술 분야가 도움을 받습니다. 이는 예술로서의 성서를 가능하게 해주는 매우 중요한 요소로서 성서가 시공간을 초월해서 수많은 독자들에게 매력을 주는 이유입니다.
성서를 계속 읽게 하는 힘
또한 성서의 문학적 기교는 매일의 고된 일상에서도 성서 읽기를 계속하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곧 성서를 읽는 것이 흥미와 감동을 주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성서 속에서 자기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감동적인 사건이나 특정한 구절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문학적 기교가 없다면 수천 년 전에 기록된 성서 이야기는 아무런 감동이나 흥미 없이 교훈과 신앙을 억지로 강요하는 듯 한 느낌을 주는 고문서 취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문학 기법을 사용하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에게 성서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계속 읽히고 전해지기를 원하는 동기를 품고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성서를 기록한 이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신에 대한 놀라움과 경외감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기를 원했습니다.
진리와 역사적 사건들을 기록한 성서 속에는 원래 성서의 기록자가 경험한 ‘내적 현실’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성서는 문학적 기교를 사용해서 현실의 관념을 반영하고 굴절하며, 역사를 초월해서 진리를 선포합니다.
그렇기에 아무런 성서의 역사적 배경 지식 없이도 그리스도인들은 개인적으로 성서를 읽고 해석하고 적용할 수 있습니다. 성서 본문 자체의 힘은 성서의 본문을 단순히 ‘글자’로 읽는 것을 넘어서 ‘말씀’으로 받아들이게 합니다. 모세, 다윗, 솔로몬, 베드로, 요한 그리고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게 주어졌던 수 천 년 전의 사건과 글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오늘날에도 성서를 읽는 이들의 마음에 새겨집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듯이 우리는 거룩함에 압도됩니다. 여호수아의 담대함은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는 힘이 되고, 사무엘의 성결함은 내 삶을 지배하며, 솔로몬의 지혜는 내 발의 등불이 됩니다. 에스더와 함께 죽음을 각오한 결심을 할 수도 있으며, 욥의 비탄과 절규가 이유를 알 수 없는 우리 삶의 고난을 받아들일 수 있게 도우며, 다시스로 가는 요나의 배에 함께 타고 있는 나를 봅니다. 성서 속의 여러 사람들이 성서에서 걸어 나와 나에게 말을 걸고 있으며, 신 여호와를 믿도록 이끌며, 자신들의 신앙 여정에 동참하기를 강권합니다. 수천 년에 걸쳐 수많은 사람들이 만났던 여호와가 성서를 통해서 우리와 대화하고, 어깨에 손을 얹어 힘을 더하며, 손을 잡아 진리의 길로 이끌어줍니다.
따라서 이러한 성서 읽기는 모든 구절들이 나에게 직접 들려준 여호와의 말씀이라는 전제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이런 전제 위에 신이 나에게 계시하며 성령을 통해 그 뜻을 해석해줍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성서의 글자를 객관적인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인 시각으로 ‘읽고, 느끼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아울러 단순히 역사적인 자료들을 읽어 내려가는 수단으로 성서 본문을 사용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내가 발견한 좋은 구절들을 가르치려는 시도를 포기하고, 나에게 유리한 구절들만 뽑아서 적용하려는 달콤한 유혹을 뿌리쳐야 합니다..
한 가지 덧붙일 것이 있습니다. 탁월한 문학적 기교를 포함한 성서는 단지 복잡하고, 재미있고, 흥미 있는 언어의 구조를 사용하기 때문에 지속되고 살아남은 것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3 성서가 지닌 심미적인 면들과 수사학적인 전략들은 그것들이 이루어 놓은 영향들과 청중들을 끌어당기는 강렬한 힘 때문에 선택되고 남겨집니다. 성서가 사라지지 않고 지금까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물리적인 생존이 아니라 모든 성서 비평가들(문학 비평가들, 역사가, 신학자)이 인정하는 것처럼, 문학적 감동을 지닌 힘의 본질을 실제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만나는 성서
문학적 기교를 활용해서 성서는 지속적으로 선택되고, 다시 읽히고, 다시 번역되고 해석되어갑니다.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 이야기, 다윗과 솔로몬, 선지자들,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 바울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느끼고 얻게 되는가? 그것은 바로 여호와라고 하는 신이며 메시아 예수이며, 거기에 응답하는 한 무리의 집단이나 민족일 것입니다. 성서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성서 속에서 그리고 때로는 성서 밖에서 문학적 기교와 상상력의 힘을 동원하여 독자들을 흥분시키고 깊은 감동을 주며 새로운 도전에 맞서게 합니다. 따라서 성서를 읽기 위해서는 성서의 본문과 끊임없는 대화를 해 나가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성서는 문학이고 동시에 예술입니다. 예술이 아닌 문학만큼 지루한 것은 없으며 예술로서의 문학만큼 독자에게 감동을 주는 것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문학적 기교를 사용하는 성서가 감동, 설화, 허구를 향한 발걸음은 아닙니다. 성서는 자유롭게 작성한 순수한 허구가 아니라 역사라는 도구를 사용해 사상과 가치를 표현하는 문서입니다. 성서는 문학적 기교를 통해, 흘러가 버린 과거가 아닌 뚜렷이 보이는 역사적 과거에 눈을 돌리게 합니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역사의 위대하고 결정적인 순간들이 성취되었던 때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서는 역사로부터 도망가거나 탈출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스스로 역사 속으로 걸어 들어가도록 그리스도인들을 재촉합니다.
성서 속의 인물들이 자기의 상황과 시간에서 이스라엘의 신 여호와를 만났듯, 성서를 읽는 모든 이들도 ‘지금, 여기’에서 여호와를 만나게 됩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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