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란 무엇인가?
"여호와" 란 무엇인가?
'여호와' 이름의 역사
1) '여호와' 가 성경에서 사라진 배경
구약성경에 가장 많이 기록된 단어는 6,823회나 기록된 '여호와' 이다.
그러나 기독교사 2000년 동안 "여호와에 관한 연구" 는 거의 전무했다.
그 이유는 여호와란 단어가 성경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지난 2000년간 기독교의 성경에서는 불행하게도 '여호와' 란 단어가 삭제되었다.
그러므로 이 단어에 대해 심도 깊게 연구되거나 중요한 의미로 부각되지 못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고, 심지어 이 단어의 사용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지는 경향까지 발생하였다.
그러나 세계 교회의 성경에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여호와' 가 한국의 개역성경에 살아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어떻게 이러한 역사의 굴곡이 발생하게 되었는가?
역사에 대한 증언 몇 곳을 찾아보기로 한다.
① "하나님의 이름 중 하나, 네 개의 자음(YHWH) 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것의 본래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다.
유대인은 제3계명을 엄숙하게 지켜 그 거룩한 이름을 경망되이 부르지 않기 위하여 BC 300년경에 이것을 전혀 발음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들이 이것을 읽어야 하는 때에는 '주님(Lord)' 을 의미하는 '아도나이' 로 읽었는데, 후대에 이에 대한 원래의 발음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70 인역에서는 '아도나이' 라는 이름이 그대로 채택되어 거기에서는 거룩한 이름이 '퀴리오스' 즉 '주님' 으로 번역되었다."
② "기원전 3 세기부터 번역되기 시작한 그리스어 칠십인역이 이 이름을 주(퀴리오스) 라고 번역한 이래, 신약의 사도들이 신약성서를 기록할 때도 그 이름을 '주'(퀴리오스) 라고 적었고, 제롬의 라틴어역 불가타가 이 이름을 '주' (도미누스) 라고 하였다.
또한 루터의 독일어역도 이 이름을 '주'(헤르) 라고 하였고, 대다수의 영어 성서가 이 이름을 '주'(로드) 라고 해 왔으므로, 우리말 '개역' 의 신약성서도 '주' 라고 번역했다."
③ "에스라 시대부터 예수 시대에 이르기까지 히브리어 성경을 복사하던 사람들을 서기관 곧 소페림이라고 불렀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들은 본문의 내용을 마음대로 바꾸기 시작하였다. (중략)
소페림은 여호와란 이름을 발음하는데 대한 미신적인 두려움에 사로잡혀, 134군데를 아도나이(주님)로, 얼마의 경우는 엘로힘(하나님)으로 바꾸어 읽게 하였다."
④ "히브리어에는 모음이 없어서 하나님의 이름을 (요드.헤.와우.헤) 라고만 표기하였다.
이 어휘는 모음을 붙이지 않으면 발음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확하게 어떤 음으로 읽었는지를 우리는 모른다.
그런데 구약이 현재의 형태로 쓰여졌을 때 유대의 종교 교사들은 하나님 개인의 이름은 말하기에도 너무 신성하다고 간주하였다.
그래서 이 이름이 나올 때에는 아도나이 곧 '나의 주(主)' 라는 의미의 히브리 단어로 대체되었다."
이상의 증언을 통해서,
우리는 구약성경이 말라기서로 완성된 후 하나님의 계시가 중단되고 진리가 혼탁할 때, 바리새파들이 등장해서 성경의 모든 "여호와" 란 명칭을 "아도나이" 로 부르게 하였고,
헬라어 70 인역으로 번역될 때는 여호와가 고유명사로 기록된게 아니라 대명사인 아도나이를 헬라어로 번역하여 퀴리오스로 기록되었고,
그것이 영어로 'The LORD' 로 표기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성경을 오해한 일부 바리새파 학자들이 십계명의 제3계에 기록된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는 말씀이 두려워서 함부로 부르지 못하게 하였다.
그래서 여호와의 이름은 일년에 1차 대속죄일에만 대제사장이 10번씩 불러서 겨우 명맥을 유지할 뿐, 다른 사람은 아무도 부르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히브리어 성경에는 6,823회나 기록되었지만 아무도 읽을 수 없었고, 70인역에는 '여호와' 가 '퀴리오스'로 바뀌어서 마침내 라틴어와 영어 성경에도 모두 고유명사인 '여호와' 가 사라진 것이다.
그리하여 2000 년간이나 사람들의 입에서는 여호와가 사라지게 되었고, 아울러 여호와의 의미도 사라지고 말았던 것이다.
2) '여호와'가 성경에 되살아난 배경
그런데 어떻게 사라졌던 이름이 되살아 나서 한국의 '개역성경' 에 실리게 되고 한국의 성도들에게 그대로 불리어지게 되었는가?
'기독교사전' 에 의하면, "미국 표준판(ASV)에서는 그 이름을 '여호와' 라고 번역했다. 마소라학파가 모음부호를 히브리어 자음 부호에 추가할 때, 아도나이에 대한 모음을 그 히브리어 자음 본문에 삽입시켰고, 그래서 여호와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중략) '여호와' 라는 이름은 특별히 자기 백성과 관계하시는 '언약의 하나님' 을 나타내며 성경에 6,823회 사용된 반면......"
워치타워협회의 책에서도
"변경시킨 곳들을 마소라가 밝혀내다. (중략) 이들은 이전 소페림들이 변경시킨 곳들을 찾아내서 히브리어 본문의 난외 혹은 끝에 기록해서 주(註)를 달았다. (중략) 마소라 학자들은 그들이 전달한 본문에는 아무 것도 결코 변경하는 일이 없었고,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곳에는 마소라에 난외주를 기입하였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본래 하나님의 이름을 가리키는 자음 요드.헤.와우.헤(YHWH) 네 글자가 있었지만 문자적으로 율법을 지키는 바리새파의 두려움 때문에 이름을 부르지 못하여 아도나이(주)로 부르다가 그것이 마소라 학자들에 의해서 네 글자에다가 아도나이의 모음인 'o o ' 을 붙어서 '야훼,여호와' 로 부활된 것이다.
그래서 '예루살렘 바이블' 에는 여호와로 기록되었고, 1901년판 '미국표준역본(ASV)' 에도 그대로 음역되어 실렸으며, 미국 선교사들이 한국에 복음을 전파할 때 그대로 음역하여 '구역성경' 에 실리게 되었고, 마침내 오늘날의 성경인 '개역성경' 에도 그대로 실려서 우리에게까지 전수된 것이다.
참고로 번역에는 의역(意譯)과 직역(直譯), 그리고 음역(音譯)이라는 것이 있는데, 문장의 흐름이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의역도 괜찮지만 의미의 변화 때문에 도저히 의역을 해서는 안되는 부분이 종종 있다.
그것이 바로 "아멘, 메시야, 여호와" 등 특수한 고유명사들인데, 유감스럽게도 우리 성경에는 아멘을 '진실로'(요3:5외)로 의역하였으며, 메시야를 "기름부음 받은 자"(단 9:25외)로 의역하였다.
그리고 영어에서는 여호와를 "LORD=나의 주" 로 의역 하였는데, 이러한 것들은 철저히 음역을 해야만 본래의 의미가 살아나는데 의역을 하는 바람에 본래의 의미가 많이 퇴색한 것을 알 수 있다.
'여호와'란 무슨 뜻인가?
1) 일반적 견해- "그는 되게 하신다" 또는 "스스로 있는 자" 이다.
'여호와' 의 뜻을 알려면 "여호와의 증인" 들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지만 사실은 저들도 무슨 뜻인지는 모르고 다만 하나님의 이름이라고 아는 정도이다.
그래서 저들의 책을 찾아 보았더니 "여호와는 '되다' 를 뜻하는 동사 '하와' 에서 유래한 말이며, '그는 되게 하신다' 를 의미한다." 고 말한다.
그리고 '기독교 사전' 에는 "이 거룩한 이름은 '존재한다(to be)' 라는 동사 로부터 유래한다.
그래서 이것은 '하나님은 영원하시다(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I AM))와 그는 절대적인 분, 즉 원인이 없으신 분이라" 는 의미이다. 라고 말한다.
그리고 여호와의 이름에 관한 책에서는 "주(LORD)라는 말은 '스스로 존재하는 자' 라는 뜻인 여호와를 가리킨다.
이 말의 어원은 '되다(to become)' 는 뜻의 하야(hayah)이다.
출3:14에서 하나님이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I AM THAT I AM)' 고 말씀하셨을 때, 이 어원이 두 번 나왔다.
따라서 하나님은 유일하게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 즉 다른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는 존재이시다.
하야라는 말에는 또한 하나님이 끊임없이 자신을 계시하시는 존재라는 사실도 함축되어 있다. (중략)
'스스로 있는 자'라는 이름은 언제나 하나님께 적합한 이름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과거에도 항상 존재하셨고, 미래에도 항상 존재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라고 증언해 주고 있다.
그러나 이상의 증언을 통해서는 진정한 여호와의 의미를 찾는데 한계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2) 성경의 증거-"언약하시고 언약대로 이루시는 자"이다.
가장 강력한 해답은 사전이나 참고서에 있는게 아니라 역시 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성경을 올바로 주해하기 위해서 출3:13-14 까지를 보면,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로 되어 있어서 여기까지만 읽으면 틀림없이 하나님의 이름이 "스스로 있는 자" 처럼 들린다.
하지만 성경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15 18절에서, 스스로 있는자가 곧 여호와이시며, 여호와는 아브라함을 비롯한 열조들의 하나님으로서 그들(열조)에게 언약하신대로 이루셔서 여호와이심을 입증하시겠다 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삭의 하나님,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 너는 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실로 너희를 권고하여 너희가 애굽에서 당한 일을 보았노라 내가 말하였거니와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족속 헷족속 아모리족속 브리스족속 히위족속 여부스족속의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면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너는 그들의 장로들과 함께 애굽 왕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려 하오니 사흘길쯤 광야로 가기를 허락하소서 하라"
위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여호와는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대로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다 올라가게 하셔서 "약속하시고 약속대로 이루시는 여호와" 이심을 확증케 해 주고 있다.
그리고 '여호와' 가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 라고 하신 말씀은 마치 표어 가 짧은 단어로 이루어져 있지만 엄청난 의미를 담고 있듯이, 표호(表號) 는 짧은 이름 속에 하나님의 모든 속성을 대표하는 엄청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여호와' 는 단순한 하나님의 이름이 아니라 전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을 모조리 총괄해서 대표로 부르는 말이다.
그래서 여호와를 알고 믿는다는 것은 단순한 이름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속성 즉 언약하시고 언약대로 이루시는 것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 이고, 여호와의 뜻이 "언약대로 이루시는 자" 라는 명료한 진리는 단순한 문자적 해석이나 성경의 어느 한 부분을 파서 드러난 결실이 아니라 성경 전체를 다 섭렵한 후에 비로소 나올 수 있는 결과적 이론이다.
그리고 '여호와' 에 대해서는 구약성경에만도 6,823회나 기록되어 있어서 그 의미를 발췌해 내기에는 성경의 자료가 너무나 방대하다.
그러나 지면상 에스겔서에 기록된 곳 몇군데를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에스겔 6:7,10,13,14에는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고 하셨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일찌기 약속하신대로 다 이루셔서 여호와이심을 알게 하시겠다는 말씀이며,
17:24에
"나 여호와는 말하고 이루느니라”고 했으며,
24:14에는
"나 여호와가 말하였은즉 그 일이 이룰지라" 고 하였고,
24:24 에는
"이 일이 이루면 너희가 나를 주 여호와인줄 알리라”고 하였으며,
37:14에는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모든 말씀으로 미루어서 "여호와는 언약하시고 언약대로 이루시는 자" 가 틀림없는 것이다.
그리고 선지서에는 언제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또는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라고 기록되어있는데, 이 말씀은 "내가 말하니 너희가 지키라" 는 식의 계약적인 명령이 아니라 "여호와 즉 언약대로 이루시는 자가 말하였으니 반드시 이루어진다" 는 확정의 말씀이다.
그래서 에스겔은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할 때에 ...나를 그 하나님 여호와인줄 알리라" 는 식으로 기록하였고,
예레미야는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여호와의 말이니라" 는 식으로 기록하였으며,
이사야는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홀연히 그 일을 행하여 이루었느니라" 는 식으로 기록한 것이다.
그리고 이사야 48:11에는
"내가 나를 위하며 내가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 하리라" 고 말씀하셔서 하나님께서 언약하시고 언약대로 이루시는 이유가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즉 '여호와' 의 이름을 걸고 이루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언약하시고 언약대로 이루시는 것은 '여호와' 를 계시 하시기 위함이며, 여호와를 계시하시는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 선포" 를 위해서이다.
그리하여야 하나님의 존재가 확인되어 믿고 경외하게 되며,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서 찬양을 받으실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의미의 중요성
성경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서 그 말씀대로 이뤄지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그래서 창세기1:3은
"하나님이 가라사대" 라고 시작하고,
계시록 22:20에는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로 끝을 맺는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그 말씀대로 이루시는 내용을 가르쳐서 하나님이 "언약대로 이루시는 자 = 여호와" 이심을 계시한다.
그래서 여호와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역과 속성을 알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신학의 목표인 하나님의 존재 증명까지 확실히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수많은 신학자들과 성경교사들은 이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지난 2000년간 여호와의 의미를 "스스로 있는자" 라는 좁은 의미로만 해석하여 성경 전체와는 별 상관없는 것으로 이해하고 지나쳤는가?
그것은 성경이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하면서도 성경 66권을 일관된 논리로 연결된 통일성 있는 말씀인 것을 깨닫지 못하고, 파편적으로 나누어 분석하고 구분하여 해석하였기 때문에 성경 중 어느 것은 하나님의 언약이지만, 다른 성경은 언약과는 상관없는 생활의 지혜서로 이해하고, 또 다른 성경은 윤리적 도덕 수준으로 각각 이해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와=언약하시고 언약대로 이루시는 자" 란 의미는 성경의 어느 한 부분에서 발췌한 진리가 아니라 성경 전체를 통하여 내린 총체적 결론이다.
그래서 이 이론체계로 언약과 성취라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으며, 성경 전체를 거시적인 안목으로 한꺼번에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결론
'여호와' 가 "언약대로 이루시는 자" 즉 "언약과 성취의 하나님" 이심을 발견함으로 해서 얻게 된 소득은 참으로 엄청나다.
그것은
첫째,
성경 전체에 대한 윤곽을 한 눈에 잡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사람들은 성경을 전부 토막적으로 이해하여 논리적 통일성이나 일관성을 생각지 않았다.
두 번째는
성경이 정확하게 하나님을 계시해 준다는 점이다.
그동안 교사들은 너무나 많은 것을 어렵게 가르쳤다.
그래서 때로는 억지같은 말씀도 믿음으로 소화하라고 강요하였다.
그러나 성경은 많은 것을 다양하게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존재를 증거하고 계시하려고 계시의 방편으로 언약하시고 성취하셔서 오늘도 살아 역사하심을 증거하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찬양하게 하시는 점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계를 말씀으로 여시고, 또 말씀으로 복을 언약해 주셨다.
그리고 언약대로 복의 실체이신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고, 그를 통하여 생육번성 시키시고, 땅을 정복하며, 통치하도록 섭리하신다.
그리고 미련한 인생들에게 이 사실을 깨우쳐 주시려고 모형적으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시고, 생육 번성시켜서 출애굽하고, 가나안 땅을 정복케 하시고, 약속대로 다윗 왕을 보내서 통치하게 하셨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약속대로 이루시는 여호와이심을 깨닫고 찬양하게 되었으며, 오늘날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까지도 언약성취 섭리를 통하여 하나님을 확실히 깨달아 알고, 믿으며, 영광돌리는 삶을 살게 되었다.
그러므로 인생의 본분과 목적에 부합된 삶을 살게 하시려고 깨닫게 해 주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참으로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망령되이' 란 함부로 부르지 말라는 의미보다는 언약하시고 언약대로 이루시는 여호와를 잊고 의식적으로만 이름 부르는 행위를 금하시는 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을 두려워 피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호와' 로 불러야 한다.
실제로 구약의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고 그 약속대로 이루어 달라고 여호와를 부르며 구하고 찾았다.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것처럼,
지난 2000년간 잊혀지고 사장되었던 '여호와' 가 다시 살아나서 한국교회에 주어진 '개역성경' 에 다시 등장하게 되었고,
또 그 의미까지 밝히 드러나게 되었으니 이것이 한국 교회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더욱이 우리에게 "여호와의 의미" 를 깨닫게 해서 성경을 언약과 성취라는 금맥으로 쉽게 깨달을 수 있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만약에 이것을 깨닫지 못했다면 위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파편적으로 적용하고 윤리적인 삶을 살자고 오늘도 목청 돋구고 있을 것이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아무 것도 자랑할 것 없는 우리에게 어찌하여 이런 감격스런 은혜를 맛보고 뜨거움의 눈물을 흘리게 하시는지......, 다시 한번 하나님의 음성을 떠올린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또는 너희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을 인하여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지혜롭고 힘이 세고 많이 배우고 숫자가 많아서 하나님이 택하신게 아니라 "다만 사랑하심을 인하여, 또는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을 인하여 택하셨다" 는 말씀 앞에 그저 감격의 눈물을 흘릴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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