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관을 이겨내어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요 = 누가복음5;17-26(250518)
PW : 믿음 BIW : 나아가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앞을 가로막고 있는 수많은 난관들을 이겨내어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신앙 화장품
어느 교회에 아주 상냥하고 신실한 권사님이 계셨습니다.
주변에서 권사님은 어떻게 그렇게 곱고 예쁘게 사세요. 비결이 뭐에요 하고 물어봅니다.
그러면 권사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한다고 합니다.
주름이 생긴 이마에는 “상냥함”이라는 크림을 사용해 보세요.
이 크림은 주름을 없애주고 기분까지 좋아지게 합니다.
입술에는 “침묵”이라는 고운 빛의 립스틱을 발라 보세요.
이 립스틱은 험담하고 원망하는 입술을 예쁘게 바로 잡아주는 효과가 왔다입니다.
맑고 예쁜 눈을 가지려면 “정직과 선함”이라는 안약을 사용해 보세요.
최선의 효과를 얻으려면 어디를 가든지 그 안약을 소지해야 한답니다.
피부를 곱게 하고 싶으면 “미소”라는 로션을 바르면 피부가 촉촉하고 부드러워지며 거울을 보고 미소지으며 하루를 시작하면 날마다 행복할 수 있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피부 영양제 화장품은 “묵상”입니다.
아주 효능 좋은 피부 청결용 세안 비누는 “회개”가 최고입니다.
가장 향기로운 향수로는 “기도”가 제일입니다.
신앙인은 상냥함의 크림, 침묵이라는 립스틱, 정직과 선함이라는 안약, 미소라는 로션, 묵상이라는 영양보습제, 회개라는 향기 비누, 기도라는 향수로 신앙인의 삶을 하나님 앞에서 최고로 드리면서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P4
세상에는 좋은 일을 마냥 좋은 일이라고 좋아하고 기뻐하면 좋으려만 그렇지 못할 때가 아주 많다.
무엇이 자기들의 마음에 안 드는 건지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좋은 일을 좋은 일로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소위 최고로 잘났다고 하는 이들, 정치권을 보면 어쩌면 저러냐? 누가 청개구리가 아니라고 할까봐 꼭 뒤통수를 치면서 좋은 것을 좋은 것이라고 좋아해 주지 않는다.
너무나 극심하게 불신사회가 형성되어 있어서 그런가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불신하고 의심하고 뭔가 숨어 있는 꿍꿍이가 있지 않나? 하는 눈초리로 바라본다.
우리 신앙인들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 어떤 심정일까?
오늘 본문에는 중풍병에 걸린 사람이 친구들,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서 예수님 앞으로 나와서 치유받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어떤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이들은 어떻게 예수님 앞으로 나아올 수 있었을까?
예수님은 이들을 향하여 어떻게 하고 계실까?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치유의 이적을 바라보던 이들은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일까?
오늘의 사건을 보면서 신앙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어떻게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인정해 주시는 것일까?
D4.
① 가르치시는 예수님.
17절에서 “하루는 가르치실 때에”라고 그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주로 하셨던 메시야의 사역은 하나님의 나라와 구원의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면서 메시야의 사역을 감당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마귀, 사탄에 의해서 빼앗기고 잃어버린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왕국을 메시야를 통하여 회복하고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고 전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가지신 최고의 관심, 목적은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는 데에 있다.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기 위하여 잃어버린 하나님의 귀한 영혼들을 구원하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어디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고 계시고 계실까?
누가복음에서는 구체적인 지역이나 장소를 설명하지 않는다.
마태와 마가복음에서는 갈릴리 지방의 본 동네, 가버나움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마련하여 거주하고 계시던 집인 것 같다.
무리들은 예수님께서 기거하고 계시는 집으로 찾아온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집으로 찾아온 무리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기 위하여 전심전력으로 복음을 전하는 자리에 17절에 보면 “갈릴리의 각 마을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이 앉았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지금 예수님께서 메시야 사역을 감당하는 지역이 갈릴리 지역이기 때문에 갈릴리 각 마을에서 온 바리새인들과 율법교사들이 앉아 있다는 것은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갈릴리 지역에서 아주 먼 유대 지역과 예루살렘에서 바리새인들과 율법교사들이 와서 함께 앉아 있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유대 지역과 예루살렘에서 바리새인들과 율법 교사들이 갈릴리까지 와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고 전하는 자리에 함께 앉아 있는 것일까?
갈릴리 지역과 예루살렘을 비롯한 유대 지역은 서로 좋아하고 유대관계를 맺는 사이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영호남이 영원한 앙숙인 것처럼, 라이벌인 것처럼 여기듯이 갈릴리와 유대를 비롯한 예루살렘이 영원한 앙숙처럼, 라이벌처럼 서로 으르렁거리는 사이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늘 누가복음의 기록에서는 갈릴리 출신의 바리새인들과 율법교사들, 유대와 예루살렘 출신의 바리새인들과 율법교사들이 함께 모여 있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거주하고 계신다는 하나님의 성전이 예루살렘에 있기 때문에 예루살렘 성의 바리새인들이나 율법 교사들은 예루살렘 우월성을 자랑하면서 갈릴리 지역을 하찮은 지역, 낙후한 지역, 오랑케나 살고 있을 것 같은 지역인 것처럼 멸시하고 조롱하고 비난하면서 예루살렘이 가장 위대한 도시라고 뻐기면서 살아오는 사람들이다.
예수님께서 지금까지는 유대 지방에서나 예루살렘에서는 가르치시지 않았었다.
예수님께서 12살 되었을 때 유월절 기간에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 솔로몬 행각에서 지도자들과 담론을 나누었던 적은 있었다.
그 후에는 예수님께서 30세가 되어서 하늘 아버지께서 보내신 메시야의 사역,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기 위하여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하늘 문이 열리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던 적은 있었다.
그래도 예루살렘에서는 이적을 행하지도 않았었고, 말씀도 제대로 가르치시지 않았었다.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주셨던 이적도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갈릴리에 있는 가나(Cana)라는 지역에 있는 혼인 잔지집에서 행하셨던 이적이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초기 사역은 주로 갈릴리 지방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도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의 사람들이 갈릴리 지방까지 올라와서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듣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어찌하여 유대와 예루살렘 출신의 바리새인들과 율법교사들이 갈릴리 지역까지 올라온 것일까?
어떻게 이들이 갈릴리까지 올라와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고 전하는 그 자리에 앉아서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듣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예수님께서 갈릴리 지방을 중심으로 메시야 사역을 감당하면서 갈릴리 지방에서 있었던 여러 가지 사건들이 유대 지방에도, 예루살렘성에도 전해졌을 것이다.
이들은 갈릴리 지방에서 발생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의 진의를 자신들이 직접 목격하고 바로잡아야 할 부분이 있다면 바로잡기 위한 목적으로 올라오지 않았을까 싶다.
바리새인들과 율법 교사들은 어디서든 자신들의 우월성을 자랑하기 위해서 다른 누군가를 가르치고 훈육하려는 특성을 지닌 사람들이다.
이들은 예수님에게서 하나님 나라의 말씀과 진리를 들으면서 무언가를 깨우치기 위해서 예수님을 찾아온 것이 아니다.
이들은 소문으로만 듣던 예수님에 대하여 흠집을 찾아내기 위해서 예수님을 찾아온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이 가진 매우 뻔한 의도를 너무나 잘 알고 있음에도 이들을 책망하지 않고 끝까지 참으시면서 묵묵하게 메시야의 사역을 감당하고 계시는 것이다.
누군가를 찾아간다면 진정성을 가져야 한다.
그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나누기 위해서 찾아가야 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서 무언가 꼬투리를 찾아내어 흠집을 내기 위한 야비한 목적으로 누군가를 찾아가지 말아야 한다.
특히 신앙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면서 교회에 덕을 세우면서 살아야 하는데, 복음의 길을 가로막고 방햇거리가 되는 일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② 병을 고치는 능력을 가지신 예수님.
17절에서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메시야이신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는 초기 사역은 병을 고치는 사역을 많이 하신다.
그렇지만 예수님 메시야 사역의 목적은 결코 병을 고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으신다.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사역의 최대 목적은 하나님의 나라 회복에 달려 있다.
잃어버린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면서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인간의 몸을 입고 성육신하여 메시야로 지상 세계로 찾아오신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기 위해서 병 고치는 사역이 필요하기 때문에 초기에 사역하실 때, 병 고치는 사역을 많이 하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병 고치는 능력뿐만 아니라, 온 우주 만물을 다스리고 통치할 수 있는 능력, 권세를 지니고 계시는 분이다.
하지만 인간 사회에서 각종 병 고치는 능력, 악하고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는 사역, 각종 불구자들을 온전케 하는 사역을 감당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각종 질병을 고치고, 더럽고 악한 귀신들을 쫓아내고, 각종 불구자들을 온전케 하는 능력을 지니고 계신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신앙인들의 육신에 퍼져 있는 각종 질환들뿐만 아니라 잡다한 문제들까지 고치고 해결해 주실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신앙인들이 어떤 문제들을 가지고 있더라도 엘샤다이의 전능하신 하나님께로 가지고 나와서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고 하나님께서 은혜와 능력으로 역사해 주시기를 소망하며 기도하는 것이다.
③ 중풍병자와 동료들에게 감동을 주시는 하나님.
예수님께서는 어릴 때부터 장성할 때까지 자랐던 나사렛이라는 마을 떠나서 가버나움 동네에 거처를 마련하고 지내셨던 집에 너무나 많은 무리들이 몰려들어서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말씀을 듣고 있다.
그런데 그 마을에 중풍병에 걸린 환자가 있었다고 한다.
중풍병에 걸린 사람과 그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예수님에 대하여 들려오는 여러 가지 소문을 듣고 있었다.
이 환자는 몇 살이나 되었는지, 얼마 동안 중풍병을 앓아왔는지 알 수 없다.
이 환자는 중풍병이 발병되었을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
정말 세상이 노랗고 세상이 끝난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을까?
온 세상이 캄캄하고 아무런 소망도 없는 절벽, 낭떠러지 앞에 서 있는 것 같은 망막한 감정이지 않았을까?
이 병자는 자신이 앓고 있는 중풍병을 고치기 위해서 아무런 노력도 해보지 않고 절망만 하고 있었을까? 어땠을까?
세상에 가만히 앉아서 자신이 처한 처량한 신세타령만 하면서 절망만 하는 사람은 없다.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동원하고, 찾아서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해보았을 것이다.
용하다고 소문이 나 있는 의원이라면 의원은 다 찾아가 보았을 것이다.
큰 대학병원에 가서 MRI, CT 사진도 찍으면서 이 검사 저 검사 온갖 검사 다 해보았다.
용하다는 한의원을 찾아가서 침도 맞고 부항도 뜨고 뜸도 뜨고 중풍병에 좋다는 한약은 다 먹어보았다.
이 방법, 저 방법 다 동원해서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해 보면서 처음에는 차도가 있는 것처럼 보이더니, 그것도 잠시 잠깐에 불과하고 더 심해져 가기만 한다.
그러면서 있는 돈 다 쓰고 이젠 큰 빚까지 진 상황이다.
정말 빨리 죽었으면 좋겠는데, 쉽게 죽어 지지도 않는다.
중풍병은 몸은 아픈데 정신은 멀쩡한 병이다.
가족들을 비롯하여 오고가는 사람들이 이런 말 저런 말을 하는 가운데 자신에 대한 말도 한다.
자신에 대하여 좋은 말도 할 수 있겠지만, 오랫동안 병치례를 앓고 있었기 때문에 좋은 말만 하지는 않는다.
분명히 좋지 않은 말도 할 것이다.
중풍병자는 주변에서 오고 가는 소리를 다 들으면서 정말 견디기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이렇게 절망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지금 갈릴리 지방에 아주 핫한 분이 있다는 소문이 들린다고 하는데, 예수님이라는 분이 온갖 질병을 다 고쳐주신다고 하던데...하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가장 먼저 중풍병을 앓고 있는 환자가 나를 예수님 앞으로 데려다 주었으면...
동료들도 중풍병자를 데리고 예수님 앞으로 나갈 수 있다면...
모두가 ‘이젠 이게 마지막이다.’라는 생각으로 예수님을 찾아가 보기로 한다.
어떤 병이든지 병에 걸린 사람은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예민해진다.
특히 자신과 같은 병에 걸린 사람이 어떤 효과를 보았다고 하더라. 라고 하는 ‘카더라통신’에 더욱더 민감해지게 마련이다.
중풍병에 걸린 환자와 그의 가족들, 동료들, 친구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들려오는 소식이 예사롭지만은 않은 것이다.
혹시 나도, 혹시 우리들도, 그래 우리들도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면 예수님께서 중풍병을 고쳐주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한 가닥의 소망을 가지게 된다.
문제는 어떻게 중풍병자를 데리고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느냐 하는 것이다.
오늘날처럼 119를 부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자가용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엠블런스를 부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떻게 중풍병자를 데리고 예수님께서 계신다는 집까지 갈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가지고 그들은 논의하게 된다.
그들은 아마도 가장 좋은 방법을 찾기 위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오고갔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중풍병자가 누워있는 것을 여러 명이 함께 들고 가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도록 감동을 주신다.
그러면 누가 중풍병자가 누워있는 침상을 들고 갈 것인가를 의논하게 된다.
그들은 누구누구가 짝을 이루어서 어디까지 가서 누구누구랑 교대하면서 예수님께서 계신다는 집까지 이동하기로 합의하게 된다.
중풍병자가 예수님께서 계신다는 집으로 가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는 것도 하늘 아버지께서 감동을 주셔서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의 가족들, 친구들, 동료들도 아픈 환자를 침상채로라도 메고 예수님께서 계신다는 집까지 이동하기로 뜻을 모을 수 있도록 역사하시는 것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시면서 역사해 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은혜를 주시려는 마음을 가지셨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에 찾아오시고 감동을 주시고 역사해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 모두에게 동일한 은혜를 주시지 않았다면, 이들 중에 단 한 사람이라도 부정적인 마음, 반대하는 마음, 거절하는 마음을 가졌다면 이 일은 쉽게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중풍병자의 마음에도, 동료들에게도 중풍병자를 도와주려고 하는 동일한 마음을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셨기 때문에 일이 순조롭게, 쉽게 진행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들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져도 결코 우연히 당연하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당연한 것처럼 여겨질 뿐, 모든 일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따라서 하나님의 거룩한 손길과 감동으로 이루어지는 일들이라는 사실이다.
우리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면 그 일을 이끌어가시는 하나님께서 역사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확신하고, 모든 것들을 전능하신 하나님께 믿음으로 맡기고 신뢰해야 한다.
④ 낙관을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는 하나님.
중풍병자가 누워있는 채로 여러 명의 사람들이 번갈아 가면서 들고 예수님께서 계신다는 집에까지 온다.
예수님께서 계시는 집에는 이미 수많은 무리들이 운집하여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말씀을 듣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좀처럼 무리들을 비집고 들어갈 수가 있는 틈이 없다.
어렵게 어렵게 찾아왔는데,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냥 돌아가기에는 너무 안타깝다.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떤 방법이 없을까? 하면서 방법을 찾으려고 애쓰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지붕 위로 올라가서 기와를 뜯어내고 예수님 앞으로 중풍병자를 내려놓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넣어주신다.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이들은 이기 투합하여 예수님께서 계시는 집 지붕으로 올라가서 기와를 하나씩 하나씩 뜯어내기 시작한다.
그랬더니 예수님이 앉아 계시는 모습이 보인다.
이들은 중풍병자를 조심스럽게 예수님 앞으로 내려놓는다.
이런 모습을 본 무리들은 어땠을까?
가만히 있던 집의 지붕이 뜯기면서 지붕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지붕에서 이상한 것들이 하나둘씩 뚝뚝 떨어지더니 아예 지붕이 없어지고 구멍이 뚫리는 것이다.
그러더니 사람을 묶인 것이 통째로 예수님 앞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이런 광경을 보던 사람들은 놀라지 않았을까?
이런 광경을 처음 본 이들은 지붕이 무너지는 것처럼 보여서 적잖이 놀란다.
하나님은 어려운 난관에 봉착했을 때, 그 어려운 난관으로 인하여 포기하고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으시는 분이다.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그 어려운 난관을 해결하면서 하려던 일을 계속하여 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하시는 분이다.
하나님께서는 난관을 할 수 있는 지혜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과정에는 수없는 변수들, 난관들이 생겨나면서 예기치 않은 어려운 문제들이 생겨나게 마련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어려운 문제가 없던 적이 있었던가?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시도때도 없이 어려운 문제들이 몰려온다.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어려운 문제는 항상 존재한다.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피해버리면, 그래서 포기해 버리면 다른 일을 할 수 없다.
인간이 살아가는 과정에는 쉬지 않고 어려운 문제가 생겨나는데, 그 어려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며 살아야 하느냐? 하는 것이 있을 뿐이다.
해결의 길을 찾다 보면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을 것 같던 문제들도 반드시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사실이다.
어떤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를 풀 수 있는 해답도 있다는 것이다.
동서남북이 꽉꽉 막혀서 진퇴양난의 상황이 되더라도 하늘을 향한 방향은 열려 있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문제든지 문제가 생겨났다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달라고, 깨우쳐 달라고, 그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면서 찾아간다면 반드시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다.
저도 어떤 일을 해야 하는데, 도무지 방법이 없어서 난감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러면 그 문제를 놓고 어떻게 해야 할까? 하면서 며칠씩 몇 주씩 끙끙거리면서 고민하면서 방법을 찾아 나선다.
그러다가 어느 때엔가 갑작스럽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생각난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되기는 할 것 같은데, 시간도 많이 들어가고 돈도 많이 들어가서 이해타산이 맞지 않을 것같은 생각도 든다.
그렇 때마다 저가 생각하는 것은 ‘이런 방법이라도 해봐야 무언가를 할 수 있지, 아무 것도 안 해 보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지 않나. 이해타산이 맞지 않더라도 한번 해보자.’하는 생각으로 그렇게 하면 무언가를 이루어낼 수 있었던 일들이 많다.
⑤ 죄를 먼저 사해 주시는 예수님.
지붕이 뚫리고 동료들의 도움으로 예수님 앞으로 나온 중풍병자에게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을 고쳐주시지 않는다.
지금 이 사람은 중풍병을 고치기 위해서 그 어려운 난관을 헤쳐 가면서 예수님 앞으로 나온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환자가 앓고 있는 중풍병을 고쳐주셔야 하지 않나?
그런데 예수님은 그 환자에게 원하는 말씀을 하지 않고 엉뚱한 말씀을 하신다.
예수님께서는 그 환자에게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 사람은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 어려운 난관을 헤쳐 가면서 예수님을 찾아온 것이 아니다.
이들은 중풍병을 고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중풍병에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으시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죄의 문제를 언급하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죄의 문제를 언급하시자, 주변에서 이상한 반응이 나타난다.
예수님의 집에 함께 있으면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모든 상황들을 지켜보던 바리새인들, 율법교사들이 “이 신성 모독 하는 자가 누구냐?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라고 생각하면서 반응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는 “너희 마음에 무슨 생각을 하느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 율법교사들의 속마음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생각과 마음까지도 다 알고 계신다.
비록 신앙인이라는 체면 때문에 행하지 않고 있는 나의 모든 악한 마음과 생각과 계획과 의지까지도 예수님께서 하나도 빼놓지 않고 알고 계신다.
하나님 앞에서 어느 것 하나도 숨길 수 없다.
그러기에 하나님 앞에서 내 마음과 생각을 다스려 달라고 자아 성찰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도록 살아가야 한다.
오직 하늘의 신령한 은혜들로 가득 채우면서 예수그리스도의 심장과 마음과 생각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이 속으로 ‘오직 죄는 하나님만이 용서할 수 있는데, 어떻게 저 예수라는 사람이 죄를 사할 수 있단 말이냐? 이것은 분명히 신성 모독하는 행위이다.’라고 생각하고 있던 것처럼, 죄를 사할 수 있는 권한은 오직 하나님만이 가진 고유 영역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죄 사함을 받았다고 선포하면서 죄를 사하는 것이 쉬운가? 병을 고치는 행위가 쉬운가를 묻고 계신다.
의사는 병을 고칠 수 있지만, 의사가 죄를 용서하지는 못한다.
죄의 문제는 오직 하늘 아버지만이 할 수 있는 고유의 권한이기 때문에 죄를 사하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범주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고유 권한이다.
그러기 때문에 병을 고치는 것보다 죄를 사해 주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죄를 사해 줄 수 있는 권한은 오직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고유권한인데, 지금 예수님께서 죄를 사해 주시는 것이다.
그러니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선포하는 것이다.
바리새인들, 율법교사들은 한낱 인간에 불과한 예수라는 사람이 자기 스스로 하나님이라고 선포하는 모습을 보면서 신성 모독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야단치는 것이다.
이들의 눈에는 예수님의 행위가 신성 모독하는 죄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들은 계속 예수님을 향하여 시비를 걸면서 방해한다.
예수님은 비록 몸은 인간의 몸을 입고 있지만, 전능하신 하나님, 죄를 사할 수 있는 권한, 권세를 가진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이 비록 인간의 육신을 입고 있지만, 하늘 아버지께서 메시야로 보내주신 하나님이심을 만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중풍병자의 죄를 먼저 사해 주시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중풍병의 원인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로 인하여 발생한 것이라고 예수님께서는 판단하고 계시는 것이다.
환자가 앓고 있는 중풍병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로 말미암아 발명된 병이기 때문에 먼저 환자가 가지고 있는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계신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핵심적인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죄의 문제이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저지른 죄의 문제 때문에 에덴동산에서 쫓겨났고, 죽음이 왔고, 심판받아서 지옥으로 가야만 하는 것이다.
죄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고 더 이상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도록 가로막고 있는 절벽이요 낭떠러지이다.
낭떠러지로 나아가면 곧바로 죽음이듯이 죄는 죽음이다. 죄는 사망이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보좌를 버리고 인간의 몸을 입고 성육신하여 오셔야만 했던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문제는 인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죄는 아무나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죄는 오직 하나님만이 해결할 수 있다.
죄는 오직 하나님만이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성육신, 인카네이션(Incartion)하셔서 인간 세계로 찾아오신 것이다.
예수님은 인간 세계에게 고통을 안겨다 주는 질병을 치료해 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오늘 중풍병자에게는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문제가 죄의 문제이고,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중풍병자가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죄의 문제를 거론하면서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선포하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의 죄뿐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있는 모든 무리들, 더 나아가 모든 인류들이 가지고 있는 죄의 문제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면서 흘리신 보혈의 피로 완전하게, 완벽하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해결해 주시는 분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나의 모든 죄악도 해결해 주셨다.
신앙이란, 믿음이란 예수님께서 나의 모든 죄악을 단 한 번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면서 흘리신 보혈의 피로 완전하게, 완벽하게 해결해 주시고 사해 주셨다고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인간은 죄 사함을 받아야만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물론 질병도 안 걸리고 아무런 질병이 없이 정결한 그 자체였으면 좋겠지만, 인간은 생노병사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질병에 걸리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질병에 걸렸다고 하더라도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히스기야 왕도 죽을병에 걸렸을 때,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서 기도하지 않았나.
하지만 질병은 치료받았는데,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면 결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래서 죄의 문제를 해결 받아야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학수고대하며 애원하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서 “하나님, 저 왔어요. 저를 봐 주세요”라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얼굴을 보여드릴 수 있는 것이다.
⑥ 중풍병을 고쳐주시는 예수님.
중풍병자의 죄를 용서해 주신 예수님은 중풍병자가 예수님 앞으로 나와야만 하는 근본적인 문제, 근원적인 문제였던 중풍병을 말씀으로 고쳐주신다.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라고 말씀하신다.
그랬더니 그 사람은 25절에서 “그 사람이 그들 앞에서 곧 일어나 그 누웠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혼자 걸을 수 없어서 동료들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예수님 앞으로 나왔던 사람인데,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 사람에게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말씀하신다고 곧 바로 일어나서 자신이 지금까지 누웠던 침상을 들고 걸어갈 수가 있는 것일까?
아니 몇 십 년 동안 누워있기만 했던 사람이 예수님께서 한마디 하신다고 그대로 일어나서 걸어가는 사람이 세상천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런데도 그는 누웠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자기가 누웠던 침상을 들고 뚜벅뚜벅 걸어서 나가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하나님께서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리면서 걸어 나가는 것이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몇 년 동안, 아니 몇 십 년 동안 중풍병으로 인하여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들, 지인들까지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살아왔는데, 예수님의 한마디 말씀으로 완전히 새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이 사람이 곧 바로 일어나서 걸어 나갈 수 있었던 것일까?
이 사람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요인은 바로 소문으로만 듣던 예수님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믿음이 없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믿음은 위대한 일을 이루어 내는 것이다.
만약에 이 사람에게 믿음이 없었다면 아무리 예수님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말씀하신다고 하더라도 곧 바로 걸어갈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사람에게 믿음이 없었다면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과연 내가 일어나 걸어갈 수 있을까? 긴가민가 망설이고, 주저주저하지 않았겠는가?
망설이고 주저주저하는 사이에 조금 있는 믿음마저 사라지고 의심하는 사람으로 바뀔 수도 있다.
그랬다면 그 사람에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괜히 다른 사람들을 부츠켜서 고생만 시킨 꼴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에게는 믿음이 있었다.
성령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 굳건한 믿음의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감동을 주시고, 그 믿음으로 일어나서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믿음은 위대한 일을 이루어 내는 원동력이다.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고쳐주실 때 다른 것은 하나도 하지 않으시고 말씀 한마디만 하신다.
예수님께서 무언가를 하신다면 많은 말씀이 필요하지 않다.
예수님께서 무언가를 하신다면 많은 행동이나 작업이 필요하지 않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한마디 말씀이면 모든 것들이 해결되고 만다.
오늘 우리 신앙인들에게도 예수님께서 한 마디 말씀해 주시기를 소망한다.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신앙인들에게도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라는 말씀 한마디만 해 주시면 그것으로 모든 것들이 해결되고 끝나고 만다.
하나님께서 우리 신앙인들에게도 이런 은혜를 베풀어 주시길 소망한다.
치유와 회복의 라파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시길 소망한다.
⑦ 놀라움,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도록 감동을 주시는 하나님.
예수님께서 한마디 말씀으로 몇 십 년 동안 고통 속에 살던 중풍병자가 완벽하게 고침을 받고 뚜벅뚜벅 걸어 나가는 모습을 본 무리들은 심히 놀라워한다.
26절에서 “모든 사람이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오늘 우리가 놀라운 일을 보았다 하니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은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사람들도 있고, 예수님을 둘러앉아 있던 사람들도 있고, 심지어는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의 진상을 알아보기 위해서 찾아온 바리새인들, 율법교사들도 포함된다.
이들은 한결같이 “오늘 우리가 놀라운 일을 보았다.”라고 하면서 놀라움, 경이로움을 표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은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놀라움과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도록 감동을 주신다.
바리새인들, 율법교사들은 어디를 가든 예수님을 향하여 사사건건 시비를 걸면서 방해하는 사람들이다.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을 향하여 신성 모독이라 하면서 비난했던 사람들이다.
그러던 이들은 예수님의 한마디 말씀으로 일어난 놀라운 구원의 역사, 치유의 역사를 자신들의 두 귀로 듣고, 두 눈으로 보면서 더 이상 부인할 수 없는 경이로움, 놀라움을 느끼는 것이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연속적으로 놀라움, 경이로움의 감동을 입으면서 산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난 사람은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놀라운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누리면서 산다.
그러면 중풍병에 걸렸던 사람과 이 사람을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와서 자신들 앞에 가로막힌 담을 허물고 극복해 낸 이들은 어떤 은혜와 축복을 받았을까?
이들은 더 이상 중풍병으로 인하여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
이들은 더 이상 고통이나 슬픔의 삶을 살지 않아도 된다.
이들은 더 이상 누군가를 비난하고 원망하지 않아도 된다.
이들은 이젠 온 가족이 웃음꽃이 피고 행복하고 기쁘고 즐겁게 살아간다.
이제는 다른 사람들 못지않게 서로 우애하며 사람답게 살아간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껏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하나님의 성전으로 올라가서 하나님 앞에 자신들의 얼굴을 보여드릴 수 있다.
이들의 미래에는 항상 좋은 일들만, 꽃길만 걸으면서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과 감사를 올려드리는 신앙인의 삶을 살아간다.
우리 신앙인들도 이런 은혜와 사랑과 축복으로 살아갈 수 있다.
L4 & B4
이들은 중풍병이라는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 앞으로 나아간다.
이들이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는 길에 순탄하지 않았다.
이들이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는 길에는 여러 가지 난관들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순간적인 지혜와 은혜를 따라서 모든 난관들을 이겨내면서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서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는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누리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지금 어떤 문제들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중풍병과 같은 것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중풍병을 비롯하여 뇌출혈, 뇌경색, 여러 가지 암들, 치매, 전립선, 간질환과 같이 오장육부에 질병들이 있을 수 있다.
정신적인 우울증, 조울증, 심한 스트레스, 한, 대인기피증, 공항증과 같은 질병들도 있을 수 있다.
생업의 문제, 경제적인 문제도 있을 수 있다.
진로의 문제, 혼인의 문제들도 있을 수 있다.
사람들마다, 가정들마다, 직장들마다 각각 다른 문제들을 가지고 있다.
인간적으로 여러 가지 방법을 총동원하더라도 도무지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있다면 어떤 일들인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는가?
그러한 문제들을 가지고 엘샤다이의 전능하신 하나님, 전화위복시켜 나가시는 하나님, 지금은 한없이 낭떠러지 같고, -로 향하여 달려가는 것처럼 보여도 궁극적으로 +로 이끌어가시는 역전의 명수이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면 에벤에셀의 하나님, 임마누엘의 하나님, 라파의 하나님, 닛시와 이레의 하나님, 샬롬의 하나님께서 놀라운 은혜와 사랑과 축복으로 역사해 가실 것이다.
우리들도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서 놀라운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넘치게 받아누릴 수 있는 신앙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
하나님 말씀 따라 살아나기 http://cafe.daum.net/GRACEOFJESUS
♥프레임 설교를 하시려는 분들에게 책을 소개합니다.♥
이 책은 출판되어진 책이 아니라 제본된 책입니다.
① 성경의 여인들 이야기 3권(구약1권, 2권, 신약1권)
② 사무엘 & 왕들의 이야기
③ 창세기 이야기 1권, 2권
④ 출애굽기 이야기 1권, 2권
⑤ 레위기 이야기
⑥ 민수기&신명기이야기
⑦ 민수기 이야기
⑧ 신명기 이야기
⑨ 감(感)으로 읽는 성경 이야기
⑩ 프레임 설교의 이론과 실제 1권, 2권
모두 15권입니다.
혹시 관심이 있으신 분은 010-5797-9094(한상원목사)로 연락주시면 고맙고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