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
히브리 전통은
성경 맨 앞에 나오는 다섯 권을
독립된 낱권으로 다루지 않고 한 세트,
즉 모세의 토라(Torah of Moses)로 다룬다.
토라는
히브리어로 ‘교훈’(instruction)을 뜻하고,
이와 관련된 동사는 ‘가르치다’(teach)이고,
같은 어근에서 파생한 명사는 ‘교사(teacher)이다.
핵심은
’토라‘가 본래 법률적 개념이 아니라
형성적(formative), 교훈적 개념이라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이 교훈하고 계신다면,
그분과 언약 관계에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그분의 교훈을 신뢰하고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
서문: 창세기 1-11장
오경의 맨 앞에 나오는 열한 장은
창세기 12장에서 시작되는 내러티브와 뚜렷이 대조된다.
그와 동시에,
창세기 11장은 서문(창 1-10장)과
족장 내러티브(창 12장 이하)를 이어주는 정교한 이음쇠 역할을 한다.
오경의 서문인
창세기 1-11장에는 ‘기사’와 ‘족보’가 나온다.
가장 먼저 창조 기사가 나오며(창2:4),
그 다음으로 아담의 족보(창5:1),
노아의 족보(창6:9),
셈과 함과 야벳의 족보(창110:1),
셈의 족보(창 11:10),
데라의 족보가 차례로 나오며(창 11:27),
데라의 아들 가운데 하나인 아브라함이 소개된다.
창세기 12장에서 소개되고
오경 나머지 부분에서 전개되는 드리마와 신학에 앞서,
중요한 이슈들이 타락한 인류에 만연한 세계관에 도전한다.
이러한 이슈들을
분명히 하지 않는다면
나머지 부분의 메시지가 거의 무의미할 것이다.
창세기 1-11장은
하나님의 인격과 성품과 능력, 생명의 근원과 창조 질서,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인간의 본성을 다루며, 유혹의 본성, 죄의 성격,
죄가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를 비롯해 모든 피조물에 미치는 여향을 다룬다.
창세기는 영적 갈등을 예시하며,
‘여자의 씨’가
사탄의 머리를 부술 때
이루어질 궁극적 승리를 약속한다(창 3:15).
창세기는 또한
사회 질서와 문화의 기원,
우리 가운데 거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도 말한다(창 9:24-27).
이 모든 것이 중요한 이유는,
성경의 핵심 메시지를 전달할 때 큰 난관 가운데 하나가
이교도의 세계관(정령숭배든 인본주의든 간에)과
성경적 세계관의 불일치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준점이 없으면,
하나님의 의로운 기대나 구속의 은혜를 이해하는게 불가능하다.
이러한 은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축언에 예시되어 있다.
첫째,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에게 복을 주셨으며(창 1:22),
그런 후
특별히 인간에게 복을 주셨다(창 1:28; 5:2; 9:1).
그 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인간의 무서운 거역 간의 긴장이 나타난다.
족장들에게 주신 약속: 창세기 12-50장
하나님은 인류에게 복을 주셨으며,
이것이 아브라함이 복을 받고,
아브라함의 씨를 통해 모든 민족이 복을 받는 토대가 된다(창 12:1-3).
하나님은 가장 있을 법하지 않은 선택을 하신다.
그분은 늙었고(고대 근동의 기준으로 보더라도)
아이도 낳을 수 없는 부부를 선택하신다.
하나님은 이들을 뽑으시고 이들에게 목적지도 모른 채
그분이 인도하는 대로 따르라고 요구하심으로써 이들의 믿음을 테스트하신다.
하나님은 땅과 보호를 약속하시고
심지어 이들의 후손에게
왕이 나오리라고 약속하심으로써 이들에게 용기를 주신다.
그러나 이러한 약속은 목적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축복의 핵심은 세상 모든 민족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다.
아브라함에서 이삭을 거쳐 야곱에 이를 때까지,
이들은 모두 극심한 기근으로 위협 당한다.
이 작은 가족에게 보호와 공급은
이들이 “이방의 빛”(사 51:4)이
될 수 있는 한 민족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섭리로, 야곱의 아들 요셉은
애굽(이집트)으로 내려가
아브라함의 후손이 생존할 길을 열어 놓았다.
약속은
야곱이 그의 아들들을 축복할 때 되풀이되고 확대된다.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창 49:10).
세우심과 구출: 출애굽기
오경은
출애굽기에서도
창세기의 ‘축복’ 언어를 사용하면서
하나님이 약속에 얼마나 충실하셨는지 말한다.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출 1:7).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로운 바로가 나타나(8절)
아브라함의 후손을 억압했을 때,
하나님은 씨를 보호하시겠다는
그분의 약속에 따라 일어나셔서 악인을 벌하셨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
그분이 “내 아들 내 장자”라 부르시는 백성을 구원하려고
또다시 의외의 도구(모세)를 선택하셨다(출 4:22,23).
내러티브는
한편으로 하나님의 보수 신학을 전개하며
다른 한편으로 유월절 은혜 신학을 전개한다.
내러티브는
섭리 신학도 들려주는데,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을 토대로,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될”
언약 공동체에게 의로운 교훈을 제시한다(출 19:6).
* narrative: 내러티브 (사실·경험에 입각한) 이야기, 담화
이러한 계명(십계명)에 앞서 중요한 선언이 나온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출 20:2).
첫 세 계명은
신자들이 유일하신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친다.
이를 토대로,
나머지 일곱 계명은
공동체가 자신의 영향력을 어떻게 확대하고,
서로 간에 어떻게 살아야 하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온 인류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가르친다.
예배에 관해, 하나님의 백성은
그들 가운데 거하기를 원하시는
거룩한 분(“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를 드려야 한다.
그분의 분명한 임재는
지정된 거룩한 장소인 성막을 통해 가시적으로 나타난다.
토라에 대한
히브리적 개념은 토라는 하나라는 것이다.
그러나
21세기 독자는 토라의 어떤 부분은
하나님의 도덕적, 윤리적 규범을 가르친다는 데 주목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토라의 어떤 부분은
영적 예배 속의 언약 공동체를 가르치려 하며,
그 가운데 많은 부분,
즉 어떤 사람들이 의식법(ceremonial law)이라 부르는 부분은
신학과 신앙의 생생하고 객관적인 교훈을 제시하고
하나님과 이러한 상징이 가리키는 궁극적 구속이 이루어질 날에 관한
그분의 약속을 믿는 믿음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토라의 또 다른 부분은 이들만의 특별한 것인데,
이들의 가정과 공동체에서
도덕법과 의식법이 갖는 의미를 가르치는 데 목적이 있다.
가르침과 테스트: 레위기, 민수기 레위기는
여호와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에
언약 백성이 어떻게 거룩해야 하는지 가르친다.
레위기의 완전한 대속 신학은
제사 제도를 통한 객관적 교훈을 포함한다.
그 어떤 제사도
하나님의 약속/계획을 나타내기에는 부족하다.
그렇더라도
전체적으로 제사는
죄의 무서움과 죄의 결과, 대속의 값, 용서와 씻음과
함께 찾아오는 평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서 오는 기쁨을 가르친다.
민수기는
믿음이 어떻게 테스트되었고
부족하다고 드러난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보여주며,
정결에 관한 교훈을 통해
하나님의 전적 타자성(wholly otherness)을 가르친다.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딤후 2:13).
사실상 모든 출애굽 세대가
불신앙 때문에 광야에서 죽었다(히3장).
그렇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약속의 땅을 위해 신자들 가운데 남은 자
(여호수아와 갈렙, 그리고 이들의 가족처럼)를 보존하셨다.
언약: 신명기
모세는 다음 세대가
왕이신 여호와를 신뢰하고
그분의 약속을 붙잡도록 준비시키면서
언약을 새롭게 하려고
BC 1,000년대에 ‘대왕’과 봉신 사이에 사용되었던 계약 양식을 사용한다.
이러한 언약 갱신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있으며,
모세는 가장 합당한 추론을 제시한다.
다시 말해,
그는 백성에게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해
유일하신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러한 사랑의 언약 관계를 다음 세대에 전하라고 요구한다(신 6:4-19).
기억해야 할 구약 연대
c. 1280 출애굽
c. 1050 왕정수립(사울왕)
c. 1010 다윗이 왕위에 오름
c. 930 솔로몬 사망. 왕국의 분열 -
이스라엘은 722년, 유다는 586년에 멸망
722 사마리아 함락. 북쪽 이스라엘 왕국 멸망
701 산헤립이 예루살렘 포위
612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 함락
597 예루살렘 함락. 바벨론 포로기 시작
586 예루살렘 파괴
539 고레스 칙령. 1년 후 첫 번째 포로 귀한
515 선전회복
458 에스라 예루살렘 도착
445 느헤미야 예루살렘 도착
323 알렉산더 대왕 사망
167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iphanes)가 선전을 더럽힘. 마카비 혁명 시작
63 폼페이(Pompey)장군 예루살렘 도착. 유다가 로마의 보호령이 됨.
구약 시대의 대제국들
이스라엘에 영향을 미친 연대
845-612 앗수르(앗시리아)
612-605 애굽(이집트)
605-539 바벨론(바빌로니아)
539-331 바사(페르시아)
331-63 헬라(셀루시드 왕가와 프톨레미 왕가 포함)
63- 로마
역사서
성경은 현대 서구의 역사가 아니라 고대 히브리의 역사이다.
그러나 어느 역사도 단순한 사실의 나열일 수는 없다.
히브리 저자들은 보고 들은 것을 자신의 시각으로 증언한다.
역사가는 하나님이 주제를 선택하고 그 주제를 뒷받침할 증거를 제시할 때가 많다.
훨씬 나중의 기록이지만 여기에 관한 예 가운데 하나가 요한이 쓴
유대적인 예수님의 ‘전기’(요한복음)인데,
요한은 자신이 그분에 관한 모든 사건을 다 기록하지는 않았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0,31)
이것을 이해하면,
역대기 저자의 시각과 의도가
사무엘서나 열왕기 저자와는 다르다는 사실이 전혀 놀랍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역사들은
오경에서 전개된 약속의 신학에 기초한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을 실 때 사용하신 언약의 언어가
신명기 31장과
여호수아 1장에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는 장면에 그대로 나타난다.
이러한 언어는
하나님이 사무엘하 7장에서
다윗과 언약을 맺으시는 장면에도 나타나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모세와 맺으신 언약과 연결된다.
백성과 장소: 여호수아, 사사기, 에스더, 에스라-느헤미야.
모세오경이
하나의 세트지만 대강 살피더라도
여호수아서와 부드럽고 분명하게 연결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것은 하나의 분수령이다.
믿지 않는 세대는
결코 광야를 벗어나지 못했으며,
약속의 땅에 들어갈 허락을 받지 못한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바통을 넘겼다.
그러나
오경의 주제들이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 열왕기까지 이어진다.
특히 여호수아와 사사기에서,
초점은 하나님이 그분의 이름을 심기로 선택하신 약속의 땅에,
자신의 백성이 살도록 선택하셨고
그들이 그분의 영광의 증인이 되고
이방의 빛이 되어야 하는 곳에 집중된다.
이 땅은
그분이 주시는 기업이며(수 1:6등),
안식의 장소이며(수 1:13 등),
이스라엘이 한 민족이 될 곳이다.
약속의 씨가 나올 민족의 보존이
에스더와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주요 주제이다.
시가서/지혜서
시는 본래 산문보다 더 화려하고 생생하며 감성적인 표현 수단이다.
시인과 현지는 삶의 변화를,
특히 타락한 세상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언약이 이루어질 날을 소망하며 산다는 게 무슨 뜻인지 깊이 생각한다.
여호와 경외하기: 욥기, 잠언, 전도서, 아가서, 애가. 오경은
적어도 두 군데에서 ‘여호와 경외’를 강조한다.
첫째는
아브라함이 가장 가혹하게 믿음을 테스트 받는 장면이다.
아브라함이
자신의 믿음이 참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자,
하나님의 천사가 말했다.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2)
둘째는
모세가 유능한 지도자들,
즉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출 18:21),
“지혜와 지식이 있는 인정받는 자들”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장면이다.
언약 공동체에게 지혜는 중요했다.
따라서 오경에 뿌리를 둔
‘여호와 경외’라는 개념이 지혜문학에서 전개된다.
지혜문학은
하나님과의 살아 있는 관계와
그분의 진리를 신중하게 적용하는 데 대한 시각에서부터
다양한 삶의 문제를 다룬다.
전도자는 이것을 이렇게 요약한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 12:13,14)
성도의 찬양: 시편. 시편은 이스라엘의 찬송이다.
어떤 찬송은 회개를 표현한다.
어떤 찬송은 여호와 경외를 깊이 생각한다.
어떤 찬송은 오실 메시아에 대한 기대를 표현한다.
어떤 찬송은 불행과 아픔의 테스트를 심하게 불평하지만,
많은 찬송이 위엄과 은혜의 하나님을 믿는 기쁨을 아름답게 표현한다.
각 시편의 역사적 정황에 최대한 주목하라.
선지서/예언서
예언(prophecy)이 선언(prediction)과 동일시되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예언서들은 선언을 담고 있으나
예언서의 훨씬 더 많은 부분이
토라의 신학을 가르치고
하나님의 약속/계획의 의미를 일상에 적용하라고 외친다.
선언이 실제로
하나님의 구속 목적에 관한 계시를 확대하지만
본래 의도는 최초의 청중에게 즉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청중이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을 기다리면서
회개하고 믿으며 신뢰하고 순종하도록 독려하는 것이다.
약속/계획에 관한 계시의 과정에서,
선지자들은 특히 두 주제를 전개했다.
하나는 대신 고난 받는 종이신 메시아이며,
다른 하나는 의롭고 승리하며 다스리는 왕이신 메시아이다.
이스라엘에 예언이 그치자,
하나님은 사라진 게 아니라 예리한 의식이 다시 일어난다.
메시아 도래에 대한 뚜렷한 기대가 있다.
예언서는 이렇게 끝난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말 4:5,6)
말라기는
가정의 화해가 아니라
영적 부흥을, 이름뿐인 제자인 데 만족하던
(입술로는 하나님을 공경하지만 마음은 그분에게서 멀리 떠난) 사람들이
회개하고 소생하며, 살아 있고
활력이 넘치며 친밀한 언약의 교제가 회복되는 때를 말하고 있다.
조상의 신앙에서 멀리 떠났던 사람들이
마음을 돌이켜 집으로 향할 때를 말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도래와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내러티브가 전개될 무대가 완성되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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