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자료

십자가형(十字架刑)

열려라 에바다 2021. 5. 6. 12:23

십자가형(十字架刑)

 

사형수를 십자가나 때로는 나무에 못박거나 결박함으로써 처형하던 행위를 말한다.

신약에서 '십자가형'이라는 명사는 나오지 않으나 이 말에 상응하는 '십자가에 못박다'(stauroo)라는 동사는 빈번히 나온다.

고대 페르시아나 애굽, 앗수르에서 죄수를 고문하고 사형에 처하기 위해 나무로 만든 형틀이 ‘십자가’모양이었다.

1. 십자가형의 유래와 역사

고대 페르시아나 애굽, 앗수르에서 죄수를 고문하고 사형에 처하기 위해 나무로 만든 형틀을 말한다.

후에 그리스에 의하여, 특히 알렉산더대왕에 의하여 받아 들여졌으며, 카르타고로 전래되어 로마에까지 전달되어, 노예나 비로마 시민에 대한 형틀로 사용 되었다.

그 이유는 십자가의 처형 방법이 너무 가혹하고 치욕적이어서 로마 사람들에게는 행하지 않고, 노예들과 외국인들에게만 이 처형법을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자국민들에 대해서도 반역죄에 대해서는 종종 십자가의 형벌이 주어졌다.

따라서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할 수 있었으며 반면에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있던 바울은 십자가형을 당하지 아니하였던 것이다(드물기는 하지만 로마시민들이 십자가형을 당하였을 때-시칠리의 베레스와 스페인의 갈라에 의한 경우에서처럼-로마인들은 대단히 분개하였다).

구약에서는 돌로 쳐 죽인 신성 모독자나 우상 숭배자들의 시체를 나무 위에 달아서 더욱 더 부끄럽게 하고, 백성들로 하여금 경계를 삼도록 하였지만(신 21:23) 십자가의 형벌과는 방법이 달랐다.

실제로 헬레니즘 이전에는 팔레스타인에 십자가의 형벌이 소개되지 않았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강도. 폭동 및 반란을 선동한 자들의 죄를 처벌하는데 십자가형이 사용되었다.

특히 반란선동죄의 경우 십자가형은 유대인들이 외국의 세력에 예속되어 있음을 대중들에게 상기시켜 주는 역할을 하였다.

갈릴리에서 십자가는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으며 따라서 그것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삶에 대한 비유로 사용되었다(마 16:24, 막 10:21, 눅 9:23).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태복음 16:24)”

유대인들도 나무에 매달린 자는 저주를 받은 자라고 생각하였다(신 21:22-23).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대신 저주를 받으셨으며 십자가의 극한 고통과 수치를 참으셨던 것이다(마 27:32-44; 눅 23:26-43; 요 19:17-24).

그래서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대속과 구속을 상징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고전 1:17이하; 갈 6:12; 엡 2:16; 골 1:20; 2:15).

2. 십자가 형틀의 모양

십자가는 원래 단순한 하나의 기둥으로 범죄자를 묶거나 그곳에 고정시켰다.

그 후 로마에 의하여 수평의 기둥이 놓여짐으로써 십자가의 형태를 가지게 되었다.

➀ 성 안토니의 십자가 - 길이가 짧은 수평 기둥을 수직 기둥의 맨 위에 놓아 T자 형태이다.

➁ 전통적인 라틴 십자가 - 길이가 짧은 수평 기둥을 맨 위에서 약간 아래 놓아서, 긴 세로의 막대기가 짧은 가로 나무 막대 위로 튀어 나온 ‘十’자 형태이다. 그 튀어나온 부분에는 죄목이나 죄수의 이름이 기록되었다(마 27:37). 예수님은 이 모양의 십자가 형틀에 매달리셨다.

고통을 수반하는 사형의 형틀로서, 그리스도의 고난과 그의 대속으로 특별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➂ 그릭 십자가 - 수평 기둥과 수직 기둥의 길이가 같은 '+더하기표'의 십자가 형태이다.

➃ 성 안드레의 십자가 - 그릭 십자가를 X자 모양으로 놓은 것인데, 로마시대 후기에 비교적 채택 되었다.

3. 일반적인 십자가형

십자가 형벌은 죄수의 양팔을 사람의 키보다 약간 큰 나무에 못 박아 고정시켜 매달려 있게 하였다.

짧은 수평 기둥에는 팔뚝이 못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몸 전체를 지탱하고, 또한 쓰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하나의 작은 수평 널판지가 엉덩이 부근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고통을 더욱 오래가도록 하였다.

이렇게 형틀에 매달리게 되면 피가 몸의 밑으로 몰리게 되고 혈액 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아 호흡이 빨라지고 심한 고통을 겪게 된다.

이 처형방식은 참여한 대중들로부터 모욕을 당하게 하고, 서서히 육체적인 고통을 당하게 하는 잔인한 것이다.

➀ 대중들의 모욕

사형수는 부분적으로는 다른 우범자들에 대한 일종의 경고로서 자신의 십자가나 그 일부를 메고 공로를 따라 처형 장소(흔히 처형은 공공장소에서 이루어졌다)까지 가야만 했다. 거기서 그를 발가벗긴다. 그는 십자가에 결박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육체적 고통과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었으며 행인들의 조소와 모욕의 대상이 되었다.

➁ 고통

십자가형이란 로마에서의 극형중 하나이다.

그 당시의 법으로 십자가에 몸을 매달아 죽이는 방법은 로마제국자체에 도전하는 아주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을 때나 주는 형벌이었다.

십자가형을 할 때에는 엄격한 규칙을 따라 형을 집행한다.

십자가형의 언도가 내려지면 한국에서 곤장 치듯이 죄인을 가죽채찍으로 때려 살이 갈라지고 피를 많이 흘리게 만든다.

얻어맞고 피를 많이 흘리며 기진맥진해져 축 늘어지면 죄수의 목과 어깨위에 십자가의 가름대가 될 굵은 각목을 횡으로 올려놓고 양팔을 벌려 손목을 끈으로 묶는다.

특별한 경우에는 끈 대신 쇠못을 박았다.

자신이 매달릴 십자가의 가로대를 끌고 처형장으로 갔다.

그런 다음 그곳에 미리 박아 놓은 긴 장대에 십자가 형태로 지면에서 3m 높이에 고정시켰다.

양손이 가름 목에 의해 고정되고 공중에 올라가게 되면 죄수는 자신의 몸무게로 인하여 가슴이 좁혀져 죄수의 호흡이 불가능해지게 되고 몇 분 후 죽게 된다.

하지만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몸을 떠받칠 수 있도록 발을 끈 혹은 못으로 고정시켰다.

이런 상태로 놓아두면 고통은 극대화 되지만 최소 하루나 이틀은 생명을 유지하고 길게는 7일까지 생명을 유지할 수도 있다.

의학적인 사망원인은 대부분 탈진‧탈수가 대부분이며 못을 사용했을 경우는 혈액에 독이 들어가 죽는 경우가 대부분 이었다.

사형집행 하는 동안 형리들은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몇 시간 후 무릎부분을 부러트려 사망하게 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십자가형은 죽을 때까지 고문을 받는다고 할 수 있다.

십자가형 중 기절을 하면 물을 끼얹어 제정신을 차리게 하거나 신포도주 ,신 식초의 냄새를 맡게 하던가 조금 먹여서 정신을 차리게 했다고 한다.

십자가상에서 일단 죽은 다음에는 시체를 그냥 십자가에 매달리게 하여 날짐승들이 와서 쪼아 먹거나 말라 없어지게 했다고 한다.

4. 사복음서를 통해 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형

사복음서에는 모두 예수께서 자신의 죽음을 미리 말씀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 자신이 십자가형을 당하실 것을 아셨다는 것과(마 20:19, 26:2) 몇몇 그를 따르는 자들도 같은 운명을 당할 것이라는 사실을 예견하셨다는 것은(마 23:34) 마태복음에만 나온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형은 마 27장, 막 15장, 눅 23장, 요 19장에 서술되어 있으며 신약의 다른 곳에서도(예. 행 2:36, 4:10, 고전 2:8, 고후 13:4, 갈 3:1, 계11:8) 여러 번 언급되어 있다.

하지만 이런 기록들에는 현대인이 관심을 갖는 육체적인 면에 대해서는 서술되어 있지 않다.

예수께서 나무에 달려 죽으셨다는 진술(행 5:30, 10:39)은 비록 나무란 말이 대체로 십자가의 형태를 시사하는 것으로 볼 수 있기는 하지만 아마도 비유적으로 사용된 것인 듯하다.

처형의 장소도 예루살렘으로 통하는 간선도로들 중의 한 도로 옆이었다는 증거가 있기는 하지만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예수께서는 고통을 없애주기 위해 그에게 제공된 마실 것을 거절하였다.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처형당하였다. 이들은 또는 적어도 이들 중의 하나는 예수를 조롱하는데 가담하였다(마 27:44, 막 15:32, 눅 23:39). 이러한 행위는 아마도 마지막으로 통치자들 편을 들음으로써 어떤 호의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절망적인 기대에서 나온 것 같다.

예수께서 유죄판결을 받은 죄목을 나타내는 하나의 표지가 십자가 위에 놓여졌다(참조. 십자가상의 죄패).

그러나 다른 두 사람의 십자가 위에 이와 같은 어떤 표지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그 다음 날은 유대인의 성일이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서는 로마당국자들이 저녁에 사형수들을 십자가에서 데려가는 것을 허용하기 전에 먼저 그들이 도망갈 수 없음을 확인하기 위해 그들의 다리를 꺾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형집행자들이 확인하러 왔을 때, 그들은 예수께서 이미 죽어있음을 발견하였다.

이것은 예수께서 어떻게 그처럼 빨리 죽었는가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창으로 찔렀다는 것은 예수께서 죽은 후에 행해졌다고 언급되어 있는데 그것도 요한복음에만 기록되어 있다. 흔히 제시되고 있는 예수가 심장파열로 죽었다는 주장은 요 19:34의 '피와 물'의 설명에 근거한 것인데 이것은 의학적으로는 의심스럽다.

게다가 '물'은 생리학적 목적이 아니라 신학적 목적으로 쓰여진 것이다.

아마도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채찍질에 의해 촉진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로마인의 채찍질은 매우 심하여 종종 채찍에 맞아 죽는 죄수들도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선동죄로 피소된 자에 대한 채찍질은 무자비했을 것이다.

공관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죽었을 때 초자연적인 어둠이 뒤덮혔고, 성전휘장이 둘로 찢어졌다고 기술되어 있다. 마태는 지진이 일어나고, 바위가 터졌으며 시체가 일어나 예루살렘 주위를 걸어다녔다는 말을 첨가하고 있다. 요한은 이 어떤 것도 언급하고 있지 않다.

5. 상징으로서의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형을 당함으로써 대중들에게 악평을 듣게 되었다.

십자가형은 예수를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갈 3:13, 참조. 신 21:23)는 고대의 저주 아래 놓이게 하였다.

이것은 그 후 새로운 신앙으로 유대인들을 개종시키려는 노력에 가장 큰 장애물이 되었다.

구약이나 유대의 전승에서는 아무데서도 유대인들에게 메시아가 이같이 다루어질 것이라는 사상을 가르쳐 준비시킨 곳은 없다.

많은 유대인에게는 그리스도인의 주장이 충격적인 신성모독으로 보였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에게 십자가형은 그리스도의 사랑과 능력의 가장 강렬한 표현이며 기독교인 자신과 주님과의 결합의 상징이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낡은 죄의 몸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을 의미했다(롬 6:6, 갈 2:20, 5:24). 다시 말해서 변화된 사람에게는 십자가에 못박힘으로써 불의 그 자체가 죽은 것이기 때문에 이제 그리스도인은 자유롭게 되어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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