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가정의 기원
1. 가정은 하나님의 창조물이다.
하나님께서 선하신 뜻을 따라 만물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그 많은 창조물들을 다스릴 수 있도록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또한 지으셨다. 인간을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는데(창 2:18) 이는 아담 혼자서 독처함이 좋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에덴 동산에서는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가 시작됨과 함께 아담과 하와를 묶는 가정이란 제도가 생겨나게 되었고 이 가정은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로다’라는 아담의 고백을 통해서 더욱 견고해졌다. 가정과 교회와 국가라는 세 개의 신적(神的)인 기원을 가진 기관이 있지만 그 중에 가장 원초적이고 중요시되는 기관이 바로 가정이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가정은 하나님의 창조사역의 소산물이므로 하나님의 창조물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것처럼 그 가정 역시 보시기에 심히 아름다운 모습이었고, 그 아름다움은 곧 거룩에 근거한 것이었다. 가정이 단지 사회학적인 측면에서 사회를 구성하는 기초집단이라는 식의 평면적, 현상적 이해로는 가정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고 혈연중심의 사회 생물학적인 파생물이라고만 단정해서는 안 된다. 가정은 사회의 기초집단이나 혈연구조의 파생물 그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된다. 창조시에 하나님이 세우신 기관으로서 거룩한 언약의 영적 공동체라는 속성을 가지며 천국의 그림자로서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 은혜가 베풀어지는 현장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가정은 사회와 국가를 받쳐주는 토대이기도 하지만 그 전에 벌써 하나님과의 언약을 근거해서 개개인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관계를 맺게 하는 언약집단이며 그 곳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거룩한 형상을 보존, 계승하려는 신성한 의무를 짊어지고 있는 종교집단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담의 가정이 마귀에 의해 파괴되자마자 모든 인류는 죄로 파멸되고 말았다. 가정의 파멸은 인류전체의 파멸을 초래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2. 가정은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펼쳐진 무대이다.
⑴ 구약의 무대
구약에서 하나님의 구원섭리가 구체적으로 적용되었던 장은 바로 가정이다. 이는 에덴동산에 한 가정을 창조하심으로 인류의 역사를 시작케 하셨던 하나님의 계획이 족장시대를 거치면서 계속 유효하게 작용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① 노아의 가정:홍수심판을 통과하여 인류의 제2의 시작을 가능케 했던 것도 바로 노아와 그의 가정이었다. 노아와 그의 아내만이 아닌 그의 아들들과 자부까지도 그 홍수심판을 통과하게 하셨다.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창 6:9)는 하나님의 평가와 은혜가 그의 가족 전체에 유효한 것이었고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창 7:1)에서 현실화 되었다. 홍수심판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은 한 가족을 지목하여 펼쳐진다.
② 아브라함의 가정:창세기 12장에서부터 50장에 이르는 방대한 하나님의 말씀의 주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아브라함 가정의 전승사’였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에게 새로운 언약을 주시고 그 언약을 여러 계 대(이삭야곱요셉)에 걸쳐 계승하는 과정 속에서 어떻게 큰 민족을 이루어 가는가를 보여주려는 것이 바로 구약성경 전체일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이 아브라함의 가정 속에서 구체적으로 펼쳐졌다는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가정을 얼마나 중시하시는가를 깨달아 알아야 할 것이다. 아브라함 가정의 구원사는 인류 전체의 구원사이며 성경 자체이다.
③ 계수와 땅 분배의 단위로서의 가정:민수기에서 이십 세 이상 싸움터에 나아갈 만한 장정들을 계수 하는데 그 기초단위가 가족이었다. 땅 분배의 경우 이외에도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과 저주가 주어질 때 ‘너와 네 자녀’라는 가족집단을 많이 거론하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이상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 가정을 얼마나 중시하셨는가가 여실히 드러난다.
⑵ 신약의 무대
신약에서도 예수님의 출생계보를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서 특징 지우는 것이나 예수님의 관심의 초점이 가정이었다는 것이 가정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① 마태복음 1장 1절과 족보:마태는 예수님의 출생을 구약의 다윗왕과 아브라함의 가정과 맺으셨던 언약의 후계자로서의 탄생임을 말한다. 이는 신약의 첫 구절을 구약과 깊은 관련을 맺게 할 뿐 아니라, 특히 가정중심으로 구원사역을 펼치시고 그 가정으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그리스도의 탄생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이야말로 가정을 통해 이루어 가시는 구원사역의 최고봉이요, 완성이라는 뜻이 담겨있게 되는 것이다.
1장 2절부터 계속되는 족보에서는 적자(適者) 승계의 구체적인 물증을 제시함으로써 그 의미를 견고히 한다. 가정과 맺으신 계약의 완성자로 오신 예수님은 가정의 중요성을 잘 이해하고 가정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신 분이시다.
② 예수님의 사역
․공생애 전의 사역:성경에 명시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눅 2:51)의 말씀대로 공생애 전까지 요셉의 가업을 이어 목수로서 가정의 제반문제를 관장하시었음이 틀림없다. 요셉이 일찍 죽어서 가족의 부양이 예수님께 책임 지워 졌으리라는 추측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공생애의 사역:예수님께서는 많은 이적을 행하셨다. 그 이적의 상당부분이 가정의 문제를 해결해 주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가정이 그 사역의 무대였던 것이다. 10여 회 이상의 기적이 가정의 아픔과 슬픔을 공감하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가정문제 해결을 위해 행하신 것이다. [예․나인성 과부 아들을 살리심(눅 7:11~17), 가나 혼인잔치(요 2:1~11), 죽은 나사로를 살리심(요 11:38~44),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을 고치심(마 15:28), 베드로의 장모를 고치심(마 8:14), 야이로의 딸을 고치심(막 5:23)]
3. 현대인의 가정 경시풍조
이상에서 살펴본 대로 하나님께서는 가정을 지극히 아끼시고 순결한 가정을 지키시고 그 가정에서 순결한 자녀들을 생산하게 하셨다. 또한 구원의 섭리를 아담, 노아, 아브라함의 가정을 통해 그리고 그 계보를 이어받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 나가셨다는 점에서 하나님은 가정의 수호자이셨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여 가정을 파괴 내지 무시하려 한다. 그러므로 가정의 경시풍조는 이제 하나님의 섭리를 정면으로 도전하는 심각한 죄악으로 인식되어져야 한다. 가정 경시의 양상은 다음과 같다.
⑴ 일부다처: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한 몸으로 하여 일부일처를 제정하셨다. 그러나 최초의 일부일처를 깨뜨린 사람은 라멕이다(창 4:19). 이러한 라멕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형벌은 무엇인가? 그는 살인자가 되었고 가인의 벌의 10배에 해당하는 벌을 뒤집어썼던 것이다. 어떤 종교는 일부다처를 법적으로 인정한다. 현대에도 일부다처는 음성적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태어난 십대들이 얼마나 방황하고 있으며 가정을 박차고 뛰어나와 고민하는가? 이러한 자녀들은(십대는) 정욕적인 가정관을 가진 일부다처주의자들의 희생물이다.
⑵ 이혼율:미국의 비기독교 가정의 이혼율은 거의 50%에 육박한다(2가정에 1가정). 그러나 기독교 가정은 5% 이하에 머물러 있다(22가정에 1가정). 이렇게 이혼이 성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가정을 소중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혼에는 지독한 이기주의가 개입되어 있다. 자녀에 대한 사랑도 고려되지 않는다. 이 때 가정이 유용하지 않고, 짐스러우면 주저없이 해체되게 된다. 이혼가정의 자녀는 사랑의 불모지에 핀 꽃처럼 버려지는 것이다.
⑶ 가정파괴범의 난무:가정을 파괴하는 흉악범이 판을 치는 것도 이 세대가 갖는 가정에 대한 황폐해진 심성을 반영한다. 가정은 수호되어야 할 대상에서 약탈의 대상으로 묵시적 동의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현대의 가정이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전락했음을 보여준다. 가정파괴범의 대부분의 피해자는 자녀인 경우가 많다.
⑷ 바빠진 산업사회:산업사회의 구조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장 위주의 생활패턴에 익숙해지게 된다. 자기성취의 구체적인 무대가 그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각의 자기 일들에 몰두하게 되고 보면 가정은 그만큼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다. 가정에 부여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사명은 함께 무시되고 가정은 대화 없고 사랑의 교류가 멈추어진 불꺼진 창과 같이 삭막해진다. 십대들의 눈에도 이러한 가정은 별것 아닌 부속품처럼 여겨지고 이기적으로 가정을 대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산업사회의 영향인 것이다.
⑸ 가정에 대한 교육 부재:크리스천 십대들은 가정의 중요성에 대해 교육받은 경험이 별로 없다. 가정이 중요한 만큼 그 가정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며 자신의 책임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다. 이러한 가정에 대한 이해부족, 교육의 부재는 자연히 가정 경시를 간접적으로 조장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II. 건강한 가정생활을 위해 십대들에게 주는 제언
1. 먼저 이것을 알라.
사탄의 음모 중 하나는 가정생활을 혼란하게 만들어서 가족제도를 파멸시키는 것이다. 사탄은 자녀들을 가정에서 끌어내고, 부모들이 서로 싸우게 만들어 하나님의 계획을 저지하려 한다. 그러므로 우리 가족도 사탄의 포위공격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십대들도 알아야 한다. 이러한 공격을 방어하는데는 공동책임이 있다.
⑴ 우리 가정의 가장인 아버지가 그 첫 번째 공격목표이다.
아버지의 관심을 가정에서 끌어내 정욕적이고 이기적인 곳으로 돌리게 하려고 한다. 아버지가 이런 유혹에 빠지게 되면 가족을 사랑하고 부양하는 일을 버리고 능력과 안정과 지도력을 잃게 되며 하나님의 사역 중의 하나인 가족선도의 책임도 저버리게 된다. 이러한 비극이 없도록 우리들의 아버지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아버지를 끊임없이 격려해 드리고 힘이 되어드려야 한다.
⑵ 어머니의 경우에도 똑같은 공격이 수행되고 있다.
‘주부로서 안주하지 마시오. 그렇게 하기에는 당신은 너무나 훌륭합니다. 박차고 세상으로 나가시지요.’ 만일 그곳으로 나가면 관능적인 일, 세속적인 철학 등의 희생물이 되고 마는 것이다.
⑶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우리를 낳은 자요, 양육자요, 안내자요, 돕는 자요, 변호자요, 상담자임을 알아야 한다.
⑷ 자녀들인 우리들에게도 세대의 유행을 따라 사탄의 공격이 가해지고 있다.
․ 하나님을 반대하는 철학과 교육
․ 부모를 대신하는 TV
․ 무분별한 팝음악과 스포츠
․ 음주, 흡연, 마약에 의한 환각
이와 같은 것들과 나는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스스로 점검해 보자. 나를 지키는 것이 가정을 지키는 것이다. 나를 포함해서 우리 가정은 매우 강력한 적과 싸우고 있음을 알고 신중해야 한다. 적들이 상용하는 각종 매체가 책, 음악, 학교 등에 널려 있으므로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며 깨어 기도해야 한다.
2. 이것을 실천하라
⑴ 가정으로 돌아오라:실제로 가출했기 때문에 돌아오라는 뜻이 아니다. 우리 머리를 지배하는 관심과 정보 중에서 가정에 관해, 가정을 위한 것이 과연 몇 %인가? 우리 십대는 가정 경시풍조에 밀려 이미 정신적으로 가출상태에 있는지도 모른다. 가정을 귀히 여기고 중시하여 아름다운 가정건설을 위해 십대의 자녀로서 참여할 부분이 분명히 있다. 가정으로 돌아와 그것을 구체적으로 찾아야 한다. 가정의 꽃인 십대들이 서커스의 방관자처럼 가정을 대할 수는 없다.
⑵ 모조 어른이 되지 말자:워렌 위어스비는 참된 십대의 특징은 일을 혼자서 할 수 없음을 아는 것이라고 했다. ‘간섭하지 마세요. 내 인생은 내가 살아갈 수 있어요’라는 말은 십대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마귀는 ‘이제 너도 어른이 될 수 있다’라고 충동한다. 그러나 지금 충실한 십대가 아닌 모조어른이 되려 한다면 내일에는 진짜 어른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가정에서 십대가 모조어른이 되어 버린다면 그 가정은 노쇠현상과 갈등만이 나타나게 된다. 부모님들에게 여러분을 도와드릴 기회를 박탈하지 말고 부모님의 도움과 간섭을 요청하라.
⑶ 베풀기에 힘쓰라:십대는 받는 데에 면역이 되어 있어 지극히 이기적일 수 있다. 사랑도 받고, 재정적으로도 받기만 한다. 따라서 베풀기엔 심히 서툴고 어색해 한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 7:12)라는 황금률에는 생소해 한다. 우리 집 거실의 쓰레기통은 누가 버리는가? 나의 아버지가 청소부라면 나는 아버지의 청소차를 기꺼이 밀어드릴 수 있는가? 나는 우리 집 자가용만 탈 줄 알았지 조간신문 한 장 부모님의 방에 반듯이 옮겨 놓은 일은 없었지 않은가? 우리가 베풀 수 있는 일은 가정에 널려 있다. 찾아보자.
⑷ 역할을 바꾸어 보라:내가 일일 부모가 되어 부모님이 하시는 일을 하루 동안이라도 경험함으로 부모를 이해할 수 있다. 어머니의 주방에서의 하루를 관찰해 보라. 아버지의 직장을 하루만이라도 지켜보자. 내 머리로만 생각했던 부모와 현실 속의 부모는 너무나 차이가 있을 것이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고 경험하는 것은 상호이해의 지름길이다.
⑸ 부모님이 받으셔야 할 교육을 도와 드리자:부모님은 십대보다 연세가 많이 드셨고 다른 세대에 속한 분들이다. 그 분들은 십대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를 때도 있다. 십대가 쓰는 용어들조차 그 분들을 당황하게 하기도 한다. 학교 일, 데이트, 교회의 일, 유행 등에 대해 종종 이야기해 드리고 교지라든가 자신이 읽고 있는 문학지 등을 읽어보시도록 해 드리자.
⑹ 부모님들과 깊은 시간을 가지라:가정이란 운동구나 보관해두고 잠이나 자고 책이나 바꿔 가지고 나서는 그런 곳이 아니다. 십대들의 성장과정 자체가 부모들에겐 힘들고 벅찬 일이다. 여러분의 참여를 부모님들은 기대한다. 식사시간에 짜증이나 논쟁은 피하라. 부모님이랑 가끔 데이트도 하고 어디든 함께 가보라. 비록 여러분은 지루할지라도 부모님은 눈물나도록 행복해 하실 것이다.
⑺ 확대경을 던져 버리라:가장 불행한 십대는 가정에서 일어난 갖가지 자질구레한 일들을 커다란 문제로 확대시켜서 보려는 사람들이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 4:8)라고 했다. 용서해주고 그리고 잊어버리는 습관을 들이라. 자신의 잘못은 용서받기를 원하면서 가정에서 용서를 실천하지 않는다면 모순이다. 작은 문제를 확대시키면 여러분 자신만 불행해진다.
⑻ 나약함에 길들지 말라:동아일보 88년 5월 27일자 신문에 ‘수험생, 극성 뒷바라지 말자’라는 글이 실렸었다. 여성 민우회 어머니들의 이색적인 캠페인이었다. 수험생의 뒷바라지를 정성으로 해주다 보면 나약한 사람을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 십대는 과보호에 맡겨진 일을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처리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 훈련은 진한 성취감과 함께 강인한 십대를 만들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⑼ 다른 가정과 우리 가정을 비교하지 말라:현대는 모든 것을 능력에 따라 평가하려 한다. 개인도 학력이나 경제력에 따라 평가하기 일쑤이다. 그래서인지 용돈을 많이 주는 부모를 십대들은 원한다. 그러나 개인에게 개성이 있듯이 가정에도 독특한 개성 즉, 가풍이 있게 마련이다. 경제력이나 학력에 따라 우리 부모, 우리 가정을 평가하려 하지 말자. 오히려 우리 가정의 독특성과 장점을 발견하려고 애써야 한다. 그러면 우리 부모, 우리 가정의 유일성과 그 가치에 대해 놀라게 될 것이다. 평면적인 비교는 금물이다. 항상 남의 떡이 커 보이는 법이다.
⑽ 성경에 귀를 기울이라:결국 한 가정은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신 것이므로 그것을 운영하는 방법 또한 그 분께서 제일 잘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그 분이 주신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한 가정의 머리이시다. 가족의 일원은 제각기 그리스도에 대하여 책임이 있고 그 책임을 다할 때 그 가정은 행복하고 화목한 가정이 그 책임을 다할 때 그 가정은 행복하고 화목한 가정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십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선 성경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해야 한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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