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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한 성읍들

열려라 에바다 2021. 6. 17. 06:39

정복한 성읍들


므깃도에서 고고학자들에 의하여 발견된 가나안의 사람들의 종교 제단으로 현재의 지층보다 훨씬 아래에 있다.

가나안의 성소 : 므겟도에서 고고학자들에 의하여 발견된 가나안 사람들의 종교 제단으로 현재의 지층보다 훨씬 아래에 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사건에 관한 성경의 기사들을 불과 몇몇 성읍들만 실제로 무너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도처에 이스라엘이 이전 주민들을 몰아내고 그들의 재산을 탈취하였다는 사실이 강조되어 있다. 폐허가 된 성읍들이 널려 있는 황량한 땅은 40년간의 반유목민 생활에서 이제 막 벗어난 이스라엘에게 별로 유익이 못되었을 것이다. 그들이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은 가나안 족속들의 이교사당과 그들의 제사도구들이었다.
여리고는 특별한 경우였다. 그 성읍은 정복의 한 "첫 열매"로서 하나님께 바쳐진 제물이었다. 아이와 하솔도 역시 정복되었다. 그러나 이 성읍들 또한, 아마도 정반대의 관점에서 예외적인 경우들이었을 것이다. 성경의 기록이 믿을 만한 것이라면, 우리는 이스라엘 정복의 물리적인 증거를 많이 구하려들지 않을 것이다. 소유권의 이전은 필시 종교적인 영역을 제외하고는 알아볼 만한 표적들을 거의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대부분의 성읍들은 여호수아서와 사사기가 지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성읍들이 당시에 함락되었을 것이나 히브리어 성경의 기사들은 그 세세한 목록을 필요로 하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청동기 말엽의 가나안 성읍들에서 나타나는 모든 파괴의 흔적들을 이스라엘의 정복에 연결시키려는 시도는 그르칠 우려가 있다. 벧엘과 벧세메스와 드빌의 유적지 발굴결과들은 어떠한가?(텔 베이트 미르심).하솔, 그리고 라기스는 B.C. 13세기 어간에 폭력에 의해서 파괴된 흔적들을 보여주고 있으나 그 연대들은 어림으로 잡은 것들이고 또 그 성읍들이 동시에 파괴된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파괴된 후에 그 성읍들은 초토화되었거나 아니면 보다 적은 규모로 다시 사람이 거주하였다.
이스라엘이 비록 궁극적으로는 가나안 족속들의 최대 적수였으나 그 밖에도 적수들이 더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B.C 13세기의 역사에 있어서의 일반적인 쇠망의 경향을 포함하고 있다. 애굽의 바로는 가나안과 레바논과 다메섹의 통치권을 쥐고 있었다. 애굽의 총독과 관료들이 주요 성읍들에 상주하였고(예로,가사와 므깃도 등) 그 밖의 성읍들은 주둔군을 위한 성읍들로 이용되었다. 이 시대에는 간헐적인 반역사건들이 일어났는데 왕실의 동맹군이나 애굽의 군사력에 의해서 진압되었다. 애굽의 쇠퇴기 다음에 쎄티I세(Seti I)는 B.C 1300년경에 가나안과 요단 동편에 원정하였다. 고고학자들은 자주 그의 원정을 하솔에서와 같이 폐허가 된 성읍들의 파괴시기와 일치시킨다. 그 직후에 그의 아들 라암셋 결과로 일어난 반역을 진압시켜야만 했다. 그는 이 때(B.C. 1285년경)에 모압까지 뚫고 들어갔다.
아마도 이 강경조처의 결과로서, 라암셋이 헷왕과 평화조약을 맺은 다음에는 (B.C. 1270년경에) 50년이 넘도록 애굽에서는 침공해 온 일이 없었다. 라암섹의 아들 메르ㄴ타(Merneptah)의 통치시대에는 또 다시 문제가 발생했다. 애굽이 가나안에 개입했다는 사실과 그 곳에 애굽의 통치권이 존속되었다는 간접적인 증거 외에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한 기록은 이스라엘을 여러 패배한 적들의 하나로 언급하고 있는데 이것이 이스라엘에 대한 성경 이외의 언급자료로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메르ㄴ타는 북서편의 "해양민족들"에게서 내려오는 침략자들의 물결을 저지시켰다. 애굽은 수리아와 가나안을 통해서, 그리고 바다를 통해서 밀려오는 또 다른 침략의 물결이 밀려올 때까지는 안전하였다.

이 침략의 물결은 그들이 변경에 도착하기 전에 그 함대를 쳐부수고 전위부대에 제동을 가하여 얼마 동안 가나안 땅의 통치권을 확고히 했던 라메셋 III세에 의해서 저지되었다. 그러나 침략자의 무리는 아직 남아 있어서 어떤 무리들은 몇몇 성읍들을 정복하였다. 예를 들어 블레셋 족속은 아스돗과 아스글론,에그론, 가드,그리고 가사를 수중에 넣었다. 또 다른 무리는 돌의 통치권을 장악하였다. 이 모든 사건들과 우리에게 알려지지 아니한 그 밖의 사건들은 정복시대를 전후하여 가나안 땅의 성읍들에 약탈과 파괴를 가져다주었다. 주변의 왕들도 침입세력으로서 황폐를 초래할 수가 있었을 것이다.
사진설명 : 하솔의 광대한 발굴 현장들 가운데에는 이 가나안 사람의 단 혹은 "산당"이 들어 있다. 여호수아 시대 그 전지역의 주요 도성이었던 하솔은 완전히 진멸된 몇몇 성읍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데 우리는 세 성읍들-여리고,아이,하솔-이스라엘에 의해서 파괴되었다는 말씀을 대한다. 하솔에서는 청동기 말엽의 마지막 성읍이 B.C.13세기의어느 때에 폭력에 의해서 파괴되었다는 증거가 나왔다. 가나안의 마지막 성읍들의 폐허는 잘 보존되어 있지 않다. 이는 일부가 비바람과 경작으로 손상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비록 그 전성기는 지나갔다 해도 그것이 중요한 성읍이었음을 보여줄 잔재들은 충분하다. 동일 언대의 다른 성읍들은 아주 비슷하다. 비록 성벽들이 자주 이전의 성벽과 연합(혹은 개수)되어 있었을지라도 모두가 다 철저히 요새화되어 있었다. 간선도로상의 성읍들(예:므깃도)은 훨씬 더 부요했던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한편 텔 베이트 미르심(드빌?) 같은 비교적 가난한 성읍들의 유적지들은 발굴자들의 관심을 도자기 모양들이 세목에 집중시켰는데 팔레스타인 고고학은 이 도자들의 여러 가지 형태에 그 비교연대를 의존하고 있다.

이스라엘 공격의 가장 분명한 증거가 나올 것으로 기대될 수가 있는 여리고의 유적지에서는 B.C. 13세기 중엽에 도시가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 심히 부식된 흙벽들의 폐허는 그 성읍이 존재하던 이전 시기들의 흔적을 거의 남겨두고 있지 않다. 이러한 이유로 그 세기의 후반에 그곳에 요새화된 성읍이 서 있었을 가능성이 무시될 수는 없다. 그 폐허는 여호수아 때부터 아합의 때까지(약 400년,왕상 16:34을 보라) 오랫동안 버려진 상태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한 때는 여호수아의 공격의 증거로 생각되었던 그 성벽들은 사실상 그보다 훨씬 더 이전 시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그 유적지의 발굴결과는 여호수아 시대 이전에 이미 여러 차례나 파괴되었다가 재건된 적이 있는 한 성읍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이성도 역시 문제를 제기한다. 발굴결과들은 그 성읍이 초기에는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으나 B.C. 2500년경부터 B.C. 1200년 이후까지 버려진 상태로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아이라는 이름은 "폐허"를 뜻하는데 많은 사람들은 여호수아 이야기를 단순히 아주 인상적인 폐허를 설명하기 위한 시도로보고 있다. 고고학적인 증거를 받아들인다 해도 일단의 가나안 족속이 이 전략상 중요한 산성의 옛 요새들을 이용, 이스라엘 자손을 대항해서 싸웠을 가능성은 여전히 배제될 수 없다. 그처럼 일시적으로 점거하였던 경우라면 흔적을 별로 혹은 전혀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특히 가나안의 폐허들에서 이스라엘이 찾아낼 것으로 기대할 필요는 없다. 여하튼 이스라엘의 사명은 전적으로 파괴하는 데에 있었던 것이 결코 아니다. 그리고 그 밖의 파괴요인들이 있었다. 성읍들은 이스라엘이 그 땅에 정착하여 그것을 개척할 수 있었거나 아니면 단지 부분적으로만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 족속과 요단 건녀편의 원수들이 위협을 가해오고 있는 동안에는 그땅을 완전히 정리할 수가 없었다. 가나안 후기 시대(철기 시대 초기)의 여러 유적들에서 그 잔재들을 별로 찾아볼 수 없는 사실은 이 상황을 입증해준다.

많은 학자들은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을 정복한 사건을 유목민 목자들이 점차 침투하여 결과적으로 그들의 소유로 삼았다는 식으로 설명해왔다. 어떤 이들은 이 사건을 일부는 침투해 들어왔고 또 일부는 여러 세대에 걸쳐 아마도 한 번 이상의 기회를 타서 몇몇 지파씩 애굽에서 이주했던 점진적 사건으로 간주한다. 또 어떤 이들은 그 땅 백성이 전체적으로 반역을 일으켰던 사건이었을 것으로 상상하기까지도 한다. 이처럼 다양한 견해들은 모세오경의 문서분석을 포함하는 이론들과 관련되어 있다. 이 견해들은 성경의 이야기들을 여러 다른 자표들에게 돌려서 각각의 기원을 제의하여 그것들이 서로 관계가 없는 여러 지파의 이야기들이라는 견해를 갖게 만든다. 이것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 바로 한 민족으로서의 이스라엘의 개념은 "정복"후 오래 뒤에 형성되었으며 후대의 이스라엘 역사가들이 초창기를 돌이켜 보며 만들어낸 것이라는 설이다.

점진적 과정의 사상은 그 밖의 침입들과 백성들의 이동에서 유추된다. 그 점유지가 제한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강조된다.(예를 들면 사사기 1장은 간선도로상의 정복되지 아니한 혹은 원주민과 섞여 사는 가나안의 주요 성읍들을 열거하고 있다) 여호수아서의 이야기들은 지파 혹은 제사 자료들의 탓으로 돌려지고 있다. 그것들은 실제로는 작은 사건들, 지방의 사건들을 서술하고 있거나 혹은 폐허가 되어 실제적인 역사가 잊혀진 성읍들의 기원으로 엮어진 민간설화들을 들려주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유추를 통한 추장에 대해서는 항상 주의해야 한다. "정복"의 경우에 있어서는 특히 더 주의해야만 한다. 유목민 침투에 관한 유추들은 이스라엘을 이미 알려진 형태에 들어맞게 하기 위해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 관한 성경의 모든 기록들은 경우가 전혀 달랐음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한 사도들은 기껏해야 시험적인 것일뿐 실제적인 것은 못된다. 실제로 성경에 제시된 설명을 그것이 특이한 것이라는 이유로 제외시키는 것은 편견이요 비과학적인 입장이다.


낮은 땅, 갈대, 자주빛 소라의 땅

이 지명의 이름은 한정된 지역을 특정지어 말할 수 없으며 넓은 의미로는 시리아에서 팔레스틴 해안 전체 지역을 의미하고 좁은 의미로는 요단강 서편땅 전부를 가리키며 상징적으로 성도들이 가게될 천국을 의미하기도 한다.


가나안 정탐군의 보고서 : [사람을 보내어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을 탐지하게 하되 그 종족의 각 지파중에서 족장된 자 한 사람씩 보내라] (민13;2).모세는 이 말씀에 따라 12명의 정탐군을 가나안에 파견하였다. 이장식 사본은 12세기 초 이집트에 있던 유대인 화가와 서기관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40일간에 걸친 가나안 정탐군의 사명과 정탐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가나안의 성소 : 므겟도에서 고고학자들에 의하여 발견된 가나안 사람들의 종교 제단으로 현재의 지층보다 훨씬 아래에 있다.



가나안인들의 제단 : 하솔에서 발굴된 가나인들의 제단으로 산당으로 여겨 지기도 한다.

 

주요 명칭들
명 칭 유 래 특 징 관련 성구
가나안

이스라엘 민족이 이땅을 정복하기 전에 이곳에 살던 원주민 기르가스, 아모리, 가나안, 브리스, , 히위, 여부스 등의 원주민 7족속이 노아의 손자 가나안(창 10:15)의 후손들에게서 시작한다.

가나안이라는 명칭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약속의 땅을 지칭하기 위하여 가장 대표적으로 사용된 이름이다. 팔레스타인이 유대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사용될 때 이름이라면 가나안은 유대인이 안에서 자신의 땅을 지칭할 때 사용한 이름이다.

창 12:5; 13:12; 출 6:4

팔레스틴

이 지명은 가사에서 욥바까지 동부 해안 지방을 차지한 블레셋 족속의 땅만을 가리키는 이름이었다(출 15:14;사 14:29).이들은 해안 민족으로서 외지와의 접촉이 잦았는데, 특히 헬라인들이 마치 블레셋이 해안지방 뿐 아니라 그 내지인 약속의당 전체를 블레셋이란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한데서 기인한다.

B.C.5세기 유명한 헬라 역사가 헤로도투스가 처음으로 이 팔레스틴을 약속의 당 전체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사용한 이래, 로마인들도 행정구역 명칭이 아닌 일반 지역 땅으로는 이 용어를 사용하였다. 그리하여 일반 세계사에서는 이 명칭이 자연스럽게 통용되었다. 특히 제 1차 세계대전 이후인 1920년에서 이스라엘과 요르단 국가가 정식출범한 1948년 이전까지는, 비록 위임 통치 지역에 대한 명칭이기는 하였으나 공식 명칭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약속의 땅

이 땅은 아브라함을 시작으로 족장들에게 주기로한 약속에서 유래한다.

아브라함이 이 땅을 약속받았을 당시에는 이미 그 당은 다른 족속이 살고 있었고 아브라함은 이주민에 불과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권으로 이 땅을 약속하시고 또 이스라엘에 주셨던 사실에서, 이 명칭은 훗날 성도들이 얻을 천국을 상징하는 이름으로도 사용된다.

히 11:9


가나안 땅의 다른 고대 명칭들쁄라 : 사 62:4 거룩한 땅 : 슥2:12 임마누엘의 땅 : 사 8:8 히브리인의 땅 : 창 40:15 유대 땅 : 행 10:39 블레셋 땅 : 출 15:14 젖과 꿀이 흐르는 땅 : 레 20:24; 민13:27; 신11:9 기름진 땅 : 출 3:8 죄로 물든 땅 : 레 18:15; 민 35:34; 시 106:38; 미 2:10 그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 : 민 14:23; 신31:4 이스라엘에게 준 땅 : 민20:24; 삼상13:19; 대상21:4 기업의 땅 : 민 34:18; 신 2:12 하나님 여호와의 주시는 땅 : 신 3:20 아름다운 땅 : 신 4:21; 9:6 부족함이 없는 땅 : 신 8:9 좋은 땅 : 왕상 14:15 여호와의 땅 : 호 9:3 평화로운 땅 : 단 8:9 가나안 정복
지난 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 동부에 이르러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려고 준비를 하고 있는 데까지 살펴보았습니다. 모세는 세상을 떠났고 여호수아가 그의 후계자로서 가나안 정복과 그 뒷일들을 주관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에 대한 이야기는 여호수아 책에 기록되어 있 습니다. 여호수아서는(1) 가나안 정복 (수 1장-12장)(2) 이스라엘 각 지파들의 토지 분배 (수 13장-22장)(3) 여호수아의 고별 연설 (수 23장-24장)로 되어 있습니다.
여호수아의 군대가 행군하여 가는 도중 높은 성으로 둘러싸인 여리고에 당도했습니다. 여호 수아는 두 사람의 정탐꾼을 뽑아 여리고성으로 비밀리에 침투시켰습니다. 이들은 그곳에서 라합 이라는 기생을 만나게 되어 은신처를 얻었습니다. 그들이 라합의 집에서 위기를 당했을 때 라합 은 그들을 숨겨주며 도피할 길도 마련해 주었던 것입니다. 라합은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들을 도와주었기 때문에 그후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함락할 때 구원을 받았습니다.
정탐꾼들로부터 유리한 정보를 얻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손에 적을 붙 이셨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홍수로 인하여 물이 불은 요단강을 그들이 건너려고 준비 할 때에 아마 그들은 40년 전에 그들의 조상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홍해를 건너오던 사 실들을 상기했을 것입니다. 이제 역사는 다시 한번 반복되어 하나님께서는 흐르던 강물을 멈추 게 하셨고 그들은 마른땅을 걸어 요단강을 건너 갈 수가 있었습니다(수 3:17). 이렇게 그들이 안전하게 강을 건너간 후 이를 기념하는 비석을 세웠습니다. 하나는 강속에, 하나는 강 서쪽 벌판에 세웠습니다.
그들이 여리고성에 이르기 전, 하나님께서는 그 성 주위를 7일 동안 돌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 주위를 7일 동안 돌았을 때, 마침내 그 성벽은 무너졌고 성을 점령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고고학자들도 이 사실에 대한 뚜렷한 고증을 발견하고 있습니 다. 성서에 기록된 대로 이 성벽은 언덕을 미끄러 내려 성밖으로 무너졌지 성안으로 넘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 발견된 것입니다. 만일 그 성을 외부에서 들보 같은 것으로 쳐서 무너뜨렸다면 성벽이 안쪽으로 무너졌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후 이스라엘 군인들은 행군을 계속하면서 여리고성에 비하면 아주 보잘것없이 작은 아이라 는 성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여호수아와 그의 백성들은 아간이라고 하는 사람이 범한 죄 때문에 큰 패배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에게 속하지 아니한 물건을 노략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패배를 당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입니다(수 7장). 이것 은 하나님께서 자녀들이 죄악을 범하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두시지 않는다는 무서운 교훈입니다. 아간은 죽음으로 그 죄의 형벌을 받았으며 그 후 아이성은 손쉽게 점령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 사실에 크게 놀란 이웃 지방의 기브온 주민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찾아와 친선을 맺자고 제의 하여 서로 가깝게 되었습니다. 한편 주위에 있던 다른 족속들의 다섯 아모리족 왕들은 크게 분 격하여 기브온과 싸움을 걸어 왔습니다. 이 싸움(수 10장)은 다섯 왕이 한편이 되고 이스라엘과 기브온이 다른 한편이 되어 싸웠는데 이 전쟁은 세계 역사상 유명한 큰 전쟁 중의 하나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승리를 거둘 때까지 해와 달을 머물게 하셨던 사실이 있습니다. 적들은 크게 패배를 당하였고, 이에 따라 가나안 정복의 문은 열리게 되었으며, 물결치는 듯 한 이스라엘의 군세 앞에 31명의 왕이 쓰러졌습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각 지파별로 차지할 땅을 제비를 뽑아 결정했 습니다. 갓, 루우벤 및 므낫세의 반(半)지파 등은 요단강 동부에 있는 영토를 분배받았습니다. 레위족속은 48개의 성읍을 받았습니다. 6개의 성읍은 누구든지 부지중 살인을 범한 자를 위해 도피성으로 예비 해 두었습니다. 정탐꾼 12명 중의 한 사람이었던 85세된 갈렙은 특별한 유업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백성들은 마음을 합하여 실로에 성막을 세웠습니다. 이 성막 은 그 후 수백년 동안이나 남아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백성들이 약속한 땅에 정주 하게 되었으 므로 여호수아는 그들을 세겜이라는 곳에 모아 놓고 고별연설을 함으로써 이 책의 이야기가 끝 나게 되는데 그는 이 연설을 통해 하나님을 충실하게 섬겨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5)"는 말로 연설을 끝 맺었습니다. 이와 같이 백성을 권면하고 여호수아는 그의 나이 110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사들
여호수아가 죽은 후 이스라엘은 어떤 조직된 정부를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가나안을 정복할 때에는 그토록 단결하여 긴밀히 행동을 같이 취하던 12지파들은 각기 헤어져 자기들의 길만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300년간 (BC 14001∼1100) 일곱 번이나 변절하여 우상을 섬겼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회개시키기 위해 7번이나 이방인들이 그들을 정복케 하셨습니다. 그들이 회개하였을 때 여호와는 일곱 번이나 사사들을 보내 구원케 하셨습니다. 이 사사들(모두 15명) 에게 주어진 권능은 임금의 그것이기보다는 목자의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적들로부터 그의 백성 을 구원하기도 했고, 백성들 사이에 벌어진 분쟁을 조정하고 재판하기도 했습니다. 그들 중 어 떤 사람은 이스라엘의 몇몇 부분만 다스렸으며 사사들이 전혀 없던 시대도 있었습니다. 이 시대 의 사상은 "사람마다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사사기 17:6)"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그토록 여러 번 하나님을 배반하였을까?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었습니다.(1) 그들의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의 우상숭배를 본 받았기 때문입니다.(2) 가나안 정복 때의 사람들이 전부 죽었으므로 저들 조상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었는 가를 기억치 못하였습니다.(3)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나 여호수아와 같은 강력한 지도자가 없 었으므로 하나님께 대한 신실한 믿음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백성들은 자신의 소견 에 옳은 대로 행하였고 하나님 보다 자신들을 기쁘게 하는데만 힘을 기울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점점 하나님을 저버리고 하나님으로부터 형벌이 내려 질 때에만 구원을 호소했습니다.
사사들의 이야기 가운데 우리들은 회개의 의미를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벌하신 것은 범한 죄를 깨닫게 하려는데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자책을 느끼게 하였 고 그들의 슬픔은 잘못된 길을 돌이키게 했습니다. 슬퍼하는 것만으로는 회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고후 7:10)" 회개는 생활을 바꿈으로써 이룩되는 마음의 변화입니다.
사사기에는 어떤 사사에 관한 일은 조금만 기록되어 있고 어떤 사사의 일은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락과 함께 백성들을 통치했던 드보라는 유일한 여자 사사입니다(삿 4-5장). 기드온 은 300명의 사람으로 미디안의 대군을 무찌른 사사입니다(삿 7:7) 위대한 사사 가운데 하나로 입다를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집에 돌아 올 때 제일 먼저 환영 나오는 사람 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친다는 어리석은 약속을 함으로서 그에게는 큰 슬픔이 가로놓이게 되었 습니다. 그것은 자기의 딸이 제일 먼저 그를 환영 나왔기 때문이었습니다(삿 11:34). 우리 모두 가 잘 알고 있는 삼손은 기운이 세어서 혼자 불레셋 대군을 대전한 사실이 있습니다(삿14:16). 최후의 위대한 사사는 사무엘 입니다. 그는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그의 어머니 한나가 하나님께 서원하여 얻은 아들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옳은 길로 인도하였으며 이스라엘 사람들이 통일하는 길을 준비하였습니다. 사사기 전체를 읽어보고 이 시대에 기록되어 있는 모든 사실을 공부하도록 하십시오.


사사시대의 이야기는 룻기의 내용을 살펴보지 않고는 완전히 이해하지를 못할 것입니다. 룻 기를 어떤 사람은 사사시대에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라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자기 백성 과 땅을 버리고 자기의 시어머니인 나오미를 따라 새로운 집으로 간 한 젊은 모압 여자의 이야 기입니다. 후에 룻은 보아스와 재혼을 합니다. 그리하여 그는 다윗의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그리 스도의 계보 안에 들어 갈 수 있는 여주인공이 된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계보 안에 들게 된 이방인이기도 합니다. 룻기 전부를 읽어보십시오. 읽는데 몇 분 걸리지 않을 것이며, 읽어 볼 가치가 있는 책인 것을 알게 될 것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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