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자료

하나님의 이름-표

열려라 에바다 2022. 7. 27. 11:05

이 름 케이 아더 이동원 / 앤 스팽글러 말 씀
1 엘로힘 전능하신 하나님 강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위대한 창조자이시다
창 1:1
2 엘 엘리온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하나님은 가장 높은 분이시다
창 14:18, 단 4:34
3 엘 로이 지켜보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를 감찰하신다 창 16:13
4 엘 샤다이 모든 것을 예비하시는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창 17:1
5 엘 올람   영원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영원, 영생하시다
창 21:33, 사 40:28,
롬 16:26
6 엘 칸나   질투하시는 하나님 출 34:14
7 엘 벧엘 *벧엘의 하나님   창 28:19
8 엘 차이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왕하 19:15-16
9 엘 엘로헤 이스라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   창 33:20
10 아도나이 주인 주님이신 하나님
/하나님은 주님, 주인이시다
출 23:17
11 여호와 스스로 존재하시는 자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
/여호와는 주이시다
출 3:13-15
12 여호와 이레 여호와께서 준비하신다 미리 보고 준비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공급하신다
창 22:14
13 여호와 라파(로페) 치료하시는 하나님 치료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치유자이시다
출 15:26
14 여호와 닛시 여호와는 나의 깃발 승리의 깃발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나의 깃발이시다
출 17:15
15 여호와 샬롬 평강의 하나님 평강이신 하나님 삿 6:24
16 여호와 메카디쉬켐 성화시키는 하나님   출 31:13
17 여호와 체바오트 만군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 삼상 17:45
18 여호와 라아(로이) 목자되시는 하나님 목자이신 하나님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다
시 23:1
19 여호와 칟케누
(여호와 치드케누)
의의 하나님 의로우신 하나님
/주님은 우리의 의가 되신다
렘 23:6
20 여호와 삼마 하나님은 거기 계신다 거기에 계신 하나님
/여호와가 거기 계신다
겔 48:35
21 여호와 멜렉   왕이신 하나님 사 32:1-2
22 여호와 추리/ 오세누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
/주님은 반석이시다
시 95:1, 6-8
23 여호와 카데쉬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 레 20:7-8
24 캐도시 이스라엘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이시다 레 19:1-2
25 여호와 엘 게몰라 *여호와는 보복의 하나님   렘 51:56
26 여호와 마케 *멸망시키는 하나님   겔 7:9
27 여호와 엘로힘 *여호와, 전능하신 하나님   출 34:6
28 예수-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계시는 구원자 하나님 마 1:23
29 애쉬 오클라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시다 신 4:23-24
30 하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 왕상 8:28-29
31 멜렉   /하나님은 왕이시다 시 72:1-3
32 이쉬   /하나님은 남편이시다 호 2:16-20
33 믹달오즈   /하나님은 견고한 망대이시다 시 91:1-2
34 쇼페트   /하나님은 심판자이시다 시 94:15
35 미크웨 이스라엘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소망이시다 렘 17:7-8
36 압. 아바. 파테르   /하나님은 아버지이시다 눅 15:20

 

하나님의 이름

   

- K J M -

하나님의 이름

 

성경에서 이름은 그것으로 불리는 사람 자체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은 그분의 성품, 속성, 본질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것은 그분을 아는 것이고, 그분의 이름을 자랑한다는 것은 그분을 신뢰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모습을 계시하셨는데, 특히 자신의 이름을 통해 계시하시기를 즐기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앎으로써 그분의 놀라운 능력을 체험해 보십시오.

하나님 이름에 담긴 위대한 메시지를 통해서 하나님을 깊이 아는 지혜와 영적 통찰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현대 세계에 비해 고대 세계에서는 이름이 지니는 의미가 상당히 컸다. 이름이란 다른 사람과 구별하는 역할을 할 뿐 아니라, 그 사람의 본성과 성품의 핵심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고 여겼다.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것은 그분께 나아가는 특권적 통로를 여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바로 앎으로 우리는 그분이 허락하시는 놀라운 약속을 붙들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엘머 타운즈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성경에서, 기적에서, 자연에서 하나님을 본다. 나는 하나님의 많은 이름들 안에서 하나님을 본다. 각각의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에 관한 무엇인가를 밝혀주는 한줄기 번갯불과 같다.”

이러한 엘머 타운즈의 고백은 오늘을 사는 우리의 고백이 될 수 있다. 우리도 성경에 나오는 각각의 하나님의 이름을 통해 그분을 더욱 깊이 알아가며 사랑하게 될 것이다. 성경 속에서 자기 백성들에게 다양한 이름으로 나타나신 하나님, 강하고 신실하신 능력으로 자기 백성들을 지키시고 구원하시며 그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오늘 우리의 삶에서 경험할 수 있다.

하나님은 어떤 한 이름으로 표현되기에는 너무 위대한 분이시다. 그래서 그분의 하나하나의 이름에 담긴 신비와 비밀, 영광을 보여주는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그 이름 앞에 겸손하게 무릎을 꿇게 될 것이다. 우리의 삶을 그분께 온전히 내어맡기겠다는 결단을 하고, 그 이름을 찬양하는 가운데 인생의 풍요를 만끽하게 될 것이다.

 

세 권의 책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 축복의 이름(하나님이 보석 같은 이름을 통해 나에게 주신 특별한 약속) / 앤 스팽글러 / 좋은씨앗

※ 하나님, 그의 이름은 비밀입니다 / 이동원 / 디모데

※ 하나님 이름에 숨겨진 비밀 / 케이 아더 / 프리셉트

 

 

 

첫 번째 책 - 축복의 이름(하나님이 보석 같은 이름을 통해 나에게 주신 특별한 약속) / 앤 스팽글러

이 책은 하나님의 26가지 이름에 중점을 두고서, 26주 동안 각 주마다 하나님의 이름 한 가지를 두고 공부하는 한편, 기도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무작위가 아닌, 대부분의 경우 성경상에 분명하게 드러나는 순서에 따라 하나님의 이름을 배치하고, 그러한 배열을 통해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점진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과정과 그 기본적 개념을 얻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으며, 26주 후에는 하나님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고,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준다.

 

※ 구 성

* 월요일은 읽기와 연구에 할애되었다. 하나님의 이름이 나오는 성경 구절과 배경 정보 그리고 이름을 이해하도록 돕는 간략한 성경 공부 내용이 실려 있다

*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은 하나님의 이름이 나오거나 이와 밀접한 내용의 성경구절을 가지고 기도할 수 있는 묵상 글이 나온다. 묵상 글은 혼자 기도할 수 있게 돕는 도약판 역할을 해준다. 관련 성구를 살펴보면, 성경을 더욱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 금요일은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이름이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살펴본다. 읽고 묵상하고 암기할 수 있는 주요 성경 구절이 마련되어 있다. <약속을 붙잡는 삶>에서는 그 주에 기도하고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관련 성구가 추가로 실려 있다.

 

단순히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이름 속에 담긴 사건과 그 사건의 의미를 묵상하면서 우리 시대에 우리에게 실제적으로 다가오실 주님을 기대하게 한다. 무엇보다 한 장을 읽을 때마다 그 이름 가운데 주신 약속을 바라보게 하고 그것을 기도하게 한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그 약속을 바라보고 기도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는데 기도하는 가운데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축복이기에 제목이 축복의 이름이라고 되어 있는 듯하다. 영어 제목은 Praying the names of God이다. 한마디로 이 책은 주님의 다양한 이름을 붙잡고 기도할 수 있도록 해 준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고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경험하게 되니 이보다 놀라운 축복이 어디 있겠는가!

 

1. 엘로힘하나님은 위대한 창조자이시다

2. 엘로이하나님은 우리를 감찰하신다

3. 엘 샤다이하나님은 전능하시다

4. 엘 올람하나님은 영원. 영생하시다

5. 여호와 이레하나님은 공급하신다

6. 여호와하나님은 주이시다

7. 아도나이하나님은 주님. 주인이시다

8. 여호와 로페하나님은 치유자이시다

9. 여호와 닛시하나님은 나의 깃발이시다

10. 애쉬 오클라. 엘 칸나하나님은 소멸하는 불.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다

11. 케도시 이스라엘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이시다

12. 여호와 샬롬주는 평화이시다

13. 여호와 체바오트하나님은 만군의 주이시다

14. 여호와 추리주님은 반석이시다

15. 여호와 로이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다

16. 하쉠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

17. 멜렉하나님은 왕이시다

18. 이쉬하나님은 남편이시다

19. 엘 차이하나님은 살아 계신다

20. 믹달오즈하나님은 견고한 망대이시다

21. 쇼페트하나님은 심판자이시다

22. 미크웨 이스라엘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소망이시다

23. 여호와 칫케누주님은 우리의 의가 되신다

24. 엘 엘리온하나님은 가장 높은 분이시다

25. 여호와 삼마여호와가 거기 계신다

26. 압. 아바. 파테르하나님은 아버지이시다

 

 

두 번째 책 - 하나님, 그의 이름은 비밀입니다. / 이동원

 

위대하신 엘 하나님

1. 엘로힘 강하신 하나님

2. 엘 샤다이전능하신 하나님

3. 엘 올람영원하신 하나님

4. 엘 엘리온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5. 엘 칸나질투하시는 하나님

신실하신 여호와 하나님

6. 여호와스스로 계시는 하나님

7. 여호와 이레미리 보고 준비하시는 하나님

8. 여호와 로이목자이신 하나님

9. 여호와 라파치료하시는 하나님

10. 여호와 닛시승리의 깃발 되시는 하나님

11. 여호와 삼마거기에 계신 하나님

12. 여호와 치드케누의로우신 하나님

13. 여호와 샬롬평강이신 하나님

14. 여호와 카데쉬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

15. 여호와 체바오트만군의 여호와

16. 여호와 멜렉왕이신 하나님

17. 여호와 추리 / 오세누우리를 지으신 하나님

구원자이신 하나님

18. 아도나이주님이신 하나님

19. 예수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계시는 구원자 하나님

20. 그의 이름은 비밀입니다.

 

 

세 번째 책 - 하나님 이름에 숨겨진 비밀 / 케이 아더

이 책은 하나님의 이름을 주도면밀하게 다루면서, 그분의 이름에 담긴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앎으로써 그분의 놀라운 능력을 체험하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합니다.

 

제 1장 하나님의 이름

제 2장엘로힘전능하신 하나님

제 3장 엘 엘리온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제 4장 엘 로이지켜보시는 하나님

제 5장 엘 샤다이모든 것을 예비하시는 하나님

제 6장 아도나이주인

제 7장 여호와스스로 존재하시는 자

제 8장 여호와 이레여호와께서 준비하신다

제 9장 여호와 라파치료하시는 하나님

제 10장 여호와 닛시여호와는 나의 깃발

제 11장 여호와 메카디쉬켐성화시키시는 하나님

제 12장 여호와 샬롬평강의 하나님

제 13장 여호와 체바오트만군의 하나님

제 14장 여호와 라아목자되시는 하나님

제 15장 여호와 칟케누의의 하나님

제 16장 여호와 삼마하나님은 거기 계신다

 

 

 

■ 성경에서 ‘엘’로 끝나는 이름

벧엘(Bethel)하나님의 집 (창 12:8)

다니엘(Daniel)하나님은 나의 심판관 (단 1:6)

엘리야(Elijah) 나의 하나님은 여호와시다 (왕상 17:1)

임마누엘(Immanuel)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사 7:14)

 

■ 성경에서 “- 야(Jah)”로 끝나는 이름은 “야(Jah)”내지 “여호와(Jehovah)”를 의미한다.

이사야 여호와의 구원

예레미야 여호와께서 임명하심

웃시야 여호와의 힘

스가랴 여호와께서 기억하심

 

 

※ 한국에서 가장 긴 이름 : “황금 독수리 하늘을 날며 세상을 놀라게 하다”

※ 세계에서 가장 긴 이름 : “파불로-딩고-호세-프란시스코-드 파우라-호안-드로스-레메디-오스--크리스피노- 드 라산티스마-트리니나드-루이즈-피카소.”

 

여러분은 위기를 만나면 어디로 도망합니까? 곤경, 근심, 두려움 등의 사냥개가 쫓아올 때, 유혹, 타락, 죄악의 개가 들이닥칠 때, 연약함에 빠질 때, 더 이상 달려갈 기력이 없을 때에 여러분은 어디로 피신합니까? 팔을 넓게 벌리고 여러분이 오기를 기다리며 서 계신 하나님께, 여러분 자신을 완전히 의탁할 수 있는 보호자 되신 하나님께로 피신합니까?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잠 18:10)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하나님에 관해서 아는 바를 말해 보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묘사하겠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을 묵상할 때 떠오르는 생각들을 아래에 기록해 보십시오.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시 20:7)

 

위기나 곤경에 처하게 될 때, 여러분은 도움을 구하러 먼저 어디로 갑니까?

사람에게 갑니까? 아니면 하나님께 갑니까? 구약시대에 있어서 병거와 말은 보호와 피난을 위한 두 가지 수단이었습니다. 이 ‘병거’와 ‘말’은 오늘날 다른 형태로 나타납니다. 즉 도움이나 피난처 혹은 보호에 관한 가시적 수단으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것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안전함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잠 21:31)

 

무엇이 문제입니까? 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것이 충만한 하나님의 팔로 달려가지 않고 인간의 팔에서 위안을 얻고자 하는 것일까요? 생각건대 이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말의 의미는 ‘확신을 둔다’, ‘신뢰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신뢰한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적인 시각에서 볼 때, 이름이란 한 인간의 성격을 대변해 줍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성품, 속성, 본질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것은 곧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지금 어떤 공포, 불안, 문제점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있다면 아래에 써보십시오.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먼저 시편 20편 말씀을 하루 동안 묵상하기를 바랍니다.

 

시편 제 20 편

1.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2. 성소에서 너를 도와 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

3. 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아 주시기를 원하노라(셀라)

4.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계획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5. 우리가 너의 승리로 말미암아 개가를 부르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깃발을 세우리니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6.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는 줄 이제 내가 아노니

그의 오른손의 구원하는 힘으로 그의 거룩한 하늘에서 그에게 응답하시리로다

7.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8. 그들은 비틀거리며 엎드러지고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서도다

9. 여호와여 왕을 구원하소서 우리가 부를 때에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1. 엘로힘(Elohim) / 전능하신 하나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구약 성경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이름 중 하나는 엘로힘(Elohim)입니다. 엘로힘이란 원래 하나님으로서의 하나님을 명칭합니다. 즉 신명기 10:17절의 말씀처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 가운데 신이시며” 곧 “전능하신 하나님” 을 가리킵니다. 엘(El)은 “전능한” 또는 “강한”의 뜻을 가지며 전능하신 하나님을 포함하여 신들을 언급할 때 사용되곤 합니다. 엘로힘은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이라는 말로 가장 많이 표현되는 단어입니다.(가끔 여호와라는 말도 “주” 대신에 “하나님”으로 번역되곤 합니다.) 엘로힘(Elohim)의 끝 부분인 “힘”(him)은 매우 의미심장하고 함축성 있는 표현으로 히브리어에서는 이것이 세 개 혹은 그 이상을 나타내는 “복수어미”로 쓰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 이 이름이 주는 실질적인 중요성은 무엇일까요? 왜 우리가 하나님을 자랑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이름이 어떻게 우리에게 견고한 망대로 제시됩니까?

만약 골로새서 1:6절의 말씀처럼(모든 만물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고 그분을 위하여 창조되었다.) 하나님이 모든 만물의 창조자라면, 누가 여러분에게 생명을 주셨을까요? 물론 전능하신 하나님 엘로힘입니다. 왜 창조되었을까요? 하나님을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은 귀중한 존재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된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창조물입니다.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시 139:13-14a)

 

여러분은 자신이 놀랍고도 경이롭게 만들어진 사실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혹은 하나님이 만드신 자신을 보며 멸시해 본 적이 있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자신과, 자녀와, 혹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면 견고한 망대이신 엘로힘께 달려가십시오.(잠 18:10) 여러분이 하나님께 어떻게 영광을 돌릴지 이해하기 힘들 때도 있겠지만, 주 여호와의 이름을 신뢰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너희 중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종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가 누구냐 흑암 중에 행하여 빛이 없는 자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의뢰하며 자기 하나님께 의지할지어다”(사 50:10)

 

“내가 여호와께 그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지존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시 7:17)

여러분의 창조주를 찬양하는 기도를 쓰십시오. 아버지 하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찬양하십시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롬11:36)

 

여러분은 왜 태어났습니까? 하나님은 왜 여러분을 만드셨습니까? 왜 그분은 모태에서 여러분을 만드시고 여러분의 장부를 만드셨을까요?(시 139:13)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면 여러분의 삶의 목적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사야 43장에 의하면 그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남성과 여성, 창 1:27) 만든 유일한 분이신 엘로힘 하나님께서 그의 영광을 위해 우리를 지으셨습니다.(사 43:1,3,4,7)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영광”이란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이 진리에 대해 깊이 묵상해 본 후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깨닫게 해 주신 것들을 기록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태어난 이유를 말해 주는 다른 성경 말씀을 찾아보겠습니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계 4:11)

 

이 말씀에 의하면, 여러분은 그의 뜻대로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흠정역에는 “기쁨”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그 둘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의 뜻대로 살면 그것이 바로 주의 기쁨이요, 우리가 그를 기쁘게 해 드렸다면, 그것은 그의 뜻을 행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위대한 창조자이시다.

 

엘로힘은 성경의 첫 문장에 나오는 하나님을 지칭하는 히브리어 단어다. 엘로힘 하나님께 기도할 때는 그가 만든 만물을 시작하신 분, 즉 땅과 하늘을 지으시고, 어두움에서 빛을 분리하시며, 육지와 물을 구분하시고, 낮과 밤을 나누신 분임을 기억하게 한다. 하나님에 대한 이 고대의 이름에는 하나님의 창조 능력뿐 아니라, 그분의 권위와 통치가 담겨 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고통의 기도를 하실 때 이 이름을 사용하셨다. 제 9시쯤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부르짖으셨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뜻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2.엘 엘리온(El Elyon) /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창 14:18)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이를 찬양하고 경배하였나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단 4:34)

 

하나님은 우리의 엘로힘이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엘 엘리온(El Elyon), 곧 지극히 높으신 분이시기도 합니다. 엘 엘리온은 하나님이 모든 우주의 주권적 통치자라는 사실을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그 엘 엘리온은 아브라함의 대적을 아브라함의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셨습니다.(창 14:20) 그분은 이스라엘의 구속자이셨고 또 지금도 그러하신 지존하신 하나님이십니다.(시 78:35) 그리고 인간들의 모든 문제를 주관하고 계시는 지극히 높으신 분입니다.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땅의 모든 사람들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대에게든지 땅의 사람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고 할 자가 아무도 없도다”(단 4:34b-35)

그래서 느부갓네살은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이를 찬양하고 경배하였나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단 4:34b)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아래의 성경 구절들은 엘 엘리온(El Elyon)이 주권적으로 우주 만물을 통치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잘 보여 줍니다. 각 성경 구절들을 주의 깊게 읽으십시오. 그리고 성경 구절들이 하나님의 주권을 어떻게 보여 주고 있는지, 혹은 하나님이 무엇에 대하여 그러한 주권을 가지고 계시는지에 대하여 아래에 기록하십시오. 반드시 해당 구절 하나 하나에 대하여 주의 깊게 생각하도록 하십시오.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이를 찬양하고 경배하였나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땅의 모든 사람들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대에게든지 땅의 사람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고 할 자가 아무도 없도다”(단 4:34-35)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내가 경영한 것을 반드시 이루리라”(사 14:24)

“만군의 여호와께서 경영하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폐하며 그의 손을 펴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돌이키랴”(사 14:27)

 

“다니엘이 말하여 이르되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것은 지혜와 능력이 그에게 있음이로다 그는 때와 계절을 바꾸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총명한 자에게 지식을 주시는도다 그는 깊고 은밀한 일을 나타내시고 어두운 데에 있는 것을 아시며 또 빛이 그와 함께 있도다 나의 조상들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이제 내게 지혜와 능력을 주시고 우리가 주께 구한 것을 내게 알게 하셨사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고 주를 찬양하나이다 곧 주께서 왕의 그 일을 내게 보이셨나이다 하니라”(단 2:20-23)

 

 

우리들의 엘 엘리온께서 가지고 계시는 주권의 다양한 국면들을 아래의 성경 구절들을 통해 계속 살펴볼 것입니다. 각각의 성경 구절들이 하나님의 주권에 대하여 어떻게 보여 주고 있는지를 기록하면서 분석해 보십시오. 또한 어떤 것들에 대하여 그분이 통치권을 행사하시는지에 대하여 기록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 줄 알라 나 외에는 신이 없도다 나는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빼앗을 자가 없도다”(신 32:39)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삼상 1:5-6)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것들 위에 세우셨도다 그가 그의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들을 흑암 중에서 잠잠하게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에서 우레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내리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하니라”(삼상 2:6-10)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 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사 45:6-7)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에 온지라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땅을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탄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욥 1:6-12)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눅 22:31)

 

1. 누가복음 22:31절에서 하나님과 사단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2. 이제 여러분이 이 장에서 배운 것들을 몇 개의 문장으로 요약해 보십시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의 주권에 대하여 이해한다면, 삶의 모든 상황 가운데서 기뻐하라고 명령하는 신약 성경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은 쉬울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아버지이신 엘 엘리온 곧 지극히 높으신 분이 모든 것을 다스리신다는 것과, 우주 가운데서 그 어떤 일도 그분의 허락 없이는 일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여러분은 훨씬 쉽게 로마서 8:28절과 데살로니가전서 5:18절을 이해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엘 엘리온은 궁극적으로 모든 것들을 통치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하나님은 가장 높은 분이시다.

 

‘가장 높은 자’, ‘높이 들리신 분’이라는 의미의 엘리온이란 단어를 하나님께 적용한 것은 그분이 인생이 모든 영역에서 가장 높으신 분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신약은 예수님을 가장 높은 분의 아들이라고 했고, 성령님을 가장 높은 이의 능력이라고 했다. 그리스도께 속한 모든 사람은 천국의 아버지를 본받음으로써 가장 높은 자의 아들과 딸이 된다. 가장 높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능력과 자비와 주권이 어느 누구에게도 비길 수 없는 한 분을 경배하는 것이다.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이를 찬양하고 경배하였나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단 4:34)

 

 

3. 엘 로이(El Roi) / 지켜보시는 하나님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창 16:13)

 

“하나님께서는 어디에 계시는가?”라는 질문이 일평생 동안 여러분을 따라 다닐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약속하신 우리의 주권자 하나님께서는 어디에 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계실까요? 과연 보고 계실까요? 예, 그렇습니다. 그는 보고 계시는 하나님, 곧 엘 로이(El Roi)이십니다. 무소부재하신 하나님께서는 바로 거기에 계십니다. 결코 눈을 감고 계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졸음도 잠도 없으시며 모든 사정을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보고 계십니다.

 

창세기 16장을 읽어 봅시다. 그리고 다음 질문에 대답해 보십시오.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엘 로이”로 나타나신 배경을 보여 줍니다.

 

창세기 16:1-16절 말씀입니다.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출산하지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그 여종 애굽 사람 하갈을 데려다가 그 남편 아브람에게 첩으로 준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주한 지 십 년 후였더라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임신하매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그의 여주인을 멸시한지라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내가 받는 모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내가 나의 여종을 당신의 품에 두었거늘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나를 멸시하니 당신과 나 사이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아브람이 사래에게 이르되 당신의 여종은 당신의 수중에 있으니 당신의 눈에 좋을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매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하갈이 사래 앞에서 도망하였더라 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물 곁 곧 술 길 샘 곁에서 그를 만나 이르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이르되 나는 내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 하니라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 이러므로 그 샘을 브엘라해로이라 불렀으며 그것은 가데스와 베렛 사이에 있더라 나를 살피시는 살아 계신 이의 우물이라 하갈이 아브람의 아들을 낳으매 아브람이 하갈이 낳은 그 아들을 이름하여 이스마엘이라 하였더라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육 세였더라”

 

1. 이 장에서 하갈에 대해 배운 것을 모두 나열해 보십시오.

 

 

2. 아브람과 하갈이 동침한 것은 누구의 계획이었으며 왜 그랬습니까?

 

 

3. 그러한 결정에 대해 하갈에게 어느 정도의 선택권이 주어졌다고 생각합니까?

그 이유를 적어 보십시오.

 

4. 사래는 무엇 때문에 화가 났으며 어떻게 행동했습니까?

 

5. 이 모든 것에 대해 하갈은 아무 책임이 없습니까?

 

6. 여러분 자신이 하갈이나, 그녀가 처한 상황에 관련시켜 볼 수 있습니까?

있다면 어떻게 관련시킬 수 있습니까?

 

7. 하갈에 대한 하나님의 지시는 무엇이었습니까?

 

8. 하갈이 하나님에 관해서 알게 된 것은 무엇입니까?

 

9. 여러분이 하나님을 향하여 무엇을 하려고 할 때, 하나님을 “엘 로이”로 아는 것은 어떤 도움을 줍니까? 이에 대한 이유를 기록하십시오. 이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이제 하나님께서 친히 주관하시는 가운데 그 사건을 여러분에게 허락하셨다는 사실도 아울러 알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그 사건이 참으로 끔찍하고 파괴적일지라도 여러분이 하나님을 알고 믿으며 그분의 이름을 신뢰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섭리 가운데 그것을 사용하실 것입니다. 이는 그가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시기 때문입니다.(시 9:10)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시 9:10)

 

 

하나님은 우리를 감찰하신다.

 

이집트 충신의 여종인 하갈은 불모의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그분을 엘 로이(감찰하시는 하나님)로 불렀다. 성경에서 엘 로이는 단 한번만 나온다.

하갈의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카락도 세시고, 우리의 환경도 아시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도 아시는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엘 로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께 기도하는 것이다.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 이러므로 그 샘을 브엘라해로이라 불렀으며 그것은 가데스와 베렛 사이에 있더라”(창 16:13-14)

 

 

 

4.엘-샤다이(El-Shaddai) / 모든 것을 예비하시는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 17:1)

 

하나님께서 최초로 자신을 엘 샤다이(El Shaddai)로 계시 하셨던 때를 살펴봅시다.

 

창세기 17:1-8절 말씀입니다.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엘-샤다이로 알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의 나이는 99세였고 사라는 89세였는데 그 때까지도 자녀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자녀를 약속하셨습니다.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롬 4:19)

아브라함은 이처럼 전혀 희망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그가 하나님을 엘-샤다이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엘(El)은 실제로 ‘힘’ 또는 ‘능력’을 뜻합니다. 그 말은 하나님에 대하여 사용되지 않을 때에도 힘이나 능력을 나타내고 있습니다.(창 31:29; 신 28:32)

 

다음은 엔드류 쥬크스(Andrew Jukes)의 저서에서 인용한 샤다이(Shaddai)에 관한 설명입니다.

‘샤다이’(Shaddai)라는 이름에 표현된 생각은 능력을 묘사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강포를 위한 능력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에 관대하고 풍부한 능력을 뜻합니다. 파크허스트(Psrkhurse)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샤다이는 하나님을 지칭하는 이름 중 하나로서 그 뜻은 ‘부어주는 자’(The Pourer)또는 ‘내어주는 자’(Shadder forth)로 영육의 축복을 뜻합니다”

엘-샤다이는 피조물들에게 자기 자신까지도 쏟아 부어주고 계시는 ‘부어주시는 분’(Pourer-forth)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피조물들에게 자신의 생명보혈을 주십니다. 그 분의 성령을 부어 주십니다. 그리고는 ‘내게로 와서 마시라’. ‘입을 크게 열라 그 입을 채우리라’ 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내주시는 것은 심판을 포합합니다. 만약 우리가 복종하지 않는다면 주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의 엘-샤다이인 것을 알았으니 이제 바울의 말의 진가를 더욱 더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 12:9-10)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수천 년 전에 말씀하셨던 것과 같이 여러분에게도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엘-샤다이)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 17:1b)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자신을 엘 샤다이, 전능한 하나님으로 계시하셨고, 아브라함과 그 자손과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겠다고 말씀하셨다. 모세의 때가 되어 또 다른 하나님의 이름이 계시되기 전까지, 족장들은 엘 샤다이를 하나님의 언약의 이름으로 생각했다. 엘 샤다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아무 불가능한 일이 없으신 분의 이름에 의지해 기도하는 것이다.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창 17:1-2)

 

 

 

 

5. 엘 올람 / 하나님은 영원 / 영생하시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창 21:33)

 

엘 올람은 시작과 끝이 없는 하나님,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하나님을 뜻하는 히브리 이름이다. 엘 올람 하나님의 계획은 중간에 바뀌는 법이 없으며 영원토록 굳건히 서고, 그 계획은 나의 장래에 풍성한 소망을 주기 위한 것이다. 영원하신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것은 알파와 오메가이신 아들의 아버지께 기도하는 것이다. 그분은 영원토록 변함없는 사랑을 소유한 분이시다.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언약을 세우매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은 떠나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돌아갔고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창 21:32-33)

 

 

 

6. 엘 칸나 /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다.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출 34:14)

 

하나님은 그분의 거룩함에 반하는 것은 모조리 제거하시는 소멸하는 불이시다. 그분은 또한 질투의 하나님이시며, 우리를 완전하게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마음을 다해 반응하기를 요구하신다.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면 그분의 자비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되며,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이 높여지기를 열망하는 열정을 갖게 된다. 이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할 때는, 나와 교회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이해하고, 또한 주님 그분의 이름을 높이고 영화롭게 하려는 주님의 열망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간구하라.

 

 

“너희는 스스로 삼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와 세우신 언약을 잊지 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금하신 어떤 형상의 우상도 조각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신 4:23-24)

 

 

 

 

7.엘 벧엘 / 벧엘의 하나님

 

“그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 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의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거기서 그에게 나타나셨음이더라”(창 35:7)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야곱과 그와 함께 한 모든 사람이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이르고 그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 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의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거기서 그에게 나타나셨음이더라”(창 35:1-7)

 

   

 

8. 엘 차이 / 하나님은 살아 계신다.

 

이 호칭은 주변 국가의 거짓 신들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구분시켜 준다.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나무나 돌 우상들과 달리, 살아계신 하나님은 땅과 하늘을 지으신 창조자시다. 그분만이 생명의 근원이시다. 그분이 살아 계시므로 우리가 생존한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금장색마다 자기의 조각한 신상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하나니 이는 그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것이요 그 속에 생기가 없음이라”(렘 10:14)

 

 

“그 앞에서 히스기야가 기도하여 이르되 그룹들 위에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여호와여 눈을 떠서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비방하러 보낸 말을 들으시옵소서”(왕하 19:15-16)

   

9. 엘 엘로헤 이스라엘 /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읍에 이르러 그 성읍 앞에 장막을 치고 그가 장막을 친 밭을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아들들의 손에서 백 크시타에 샀으며 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불렀더라”(창 33:18-20)

 

  

 

10. 아도나이(Adonai) / 주인이신 하나님

 

“네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지니라”(출 23:17)

 

하나님의 주 되심은 하나님께서 나를 전적으로 소유하시는 것과 구주이시고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 내가 전적으로 복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인 아도나이(Adonai)가 성경에서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주의하여 보십시오. 그러면 ‘주여 주여’라고 정직하게 말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 즉 아도나이(Adonai)는 창세기 15:2절에서 최초로 쓰였습니다.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창 15:2)

 

아브라함은 많은 하인을 거느렸기 때문에 주종관계에 대하여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의 한 명이 엘리에셀입니다. 아브라함의 시대에는 종의 운명이 비참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노예나 종은 고용된 하인보다 훨씬 살기에 편했는데 그 이유는 주인이 그를 전적으로 돌보아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종의 필요를 공급해 주고 보호해주며 심지어는 매일의 일과를 지시해 주는 것도 주인이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히브리의 종들은 가족의 한 사람으로 대접을 받았고 따라서 할례를 받은 후에는 유월절 예식에 참여할 권리도 있었습니다.(출 12:43-44) 비록 이방인일지라도 할례를 받으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창 17:10-14)

 

다음에 열거된 성경 구절을 읽으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인이면 우리에게 어떤 유익과 책임이 있습니까? 그것을 각 구절 아래에 써 보십시오.(예를 들어서, 창세기 15:1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그의 주인으로 모셨기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 하면 주인 되시는 하나님이 방패 같은 역할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주인은 또한 종에게 상을 줍니다. 다음의 시편 123:2절을 읽어 보십시오. 우리는 우리 주인에게 눈을 고정시켜야만 합니다.)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 15:1)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시 123:2)

 

“여호와께서는 모든 넘어지는 자들을 붙드시며 비굴한 자들을 일으키시는도다 모든 사람의 눈이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때를 따라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며 손을 펴사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하게 하시나이다”(시 145:14-16)

 

“나는 주의 종이오니 나를 깨닫게 하사 주의 증거들을 알게 하소서”(시 119:125)

 

이제는 다음의 성경 구절을 읽고 하나님이 ‘주’(Adonai)로 표현되어 있는 곳에 표시해 보십시오. 그리고 주이신 하나님께 우리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 것인지를 써 보십시오.

 

“여호와께 간구하여 이르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위엄으로 속량하시고 강한 손으로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 곧 주의 기업을 멸하지 마옵소서”(신 9:26)

 

“땅이여 너는 주 앞 곧 야곱의 하나님 앞에서 떨지어다”(시 114:7)

“내가 알거니와 여호와께서는 위대하시며 우리 주는 모든 신들보다 위대하시도다”(시 135:5)

 

“주들 중에 뛰어난 주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 136:3)

 

진정으로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주인 되셔서 지배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주’라고 부르면서,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명령한 일을 하지 않고도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이름 아도니이(Adonai)를 공부하는 동안 이 질문들을 계속해서 기억하십시오. 그러면 진정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과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과 하나이시며(요 10:30-33), 하나님으로서 아돈(Adon), 주(Lord)이십니다. 신약 성경에서 두 가지의 단어가 주(Lord)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퀴리오스’(kurios)로서 최상의 권위, 지배자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가장 흔히 쓰인 단어입니다. 다른 하나는 ‘테스포테스’(daspotes)로서 이것은 절대 군주를 의미합니다. 마치 전제군주 같은 것입니다. 그것도 또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쓰였습니다. 예수님은 주로서 최고의 권위를 지니셨고 절대적인 통치자라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다름의 성경 구절을 주의 깊게 읽어 보십시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 7:21-27)

 

1. 이 구절에 따르면 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까?

 

 

2. 이것은 아도나이이신 예수님과 어떠한 관계가 있습니까?

 

 

3. 예수님이 자기의 삶을 지배하시는 주가 되심을 부인하는 사람이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

 

 

4.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분의 아도나이입니까?

 

 

5. 여러분은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아니면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하나님은 주님 / 주인이시다.

 

아도나이는 “주님”이란 뜻의 히브리어로, 하나님은 주시요, 우리는 그분의 종이라는 관계적인 의미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300번 이상 나온다. 아도나이 하나님께 기도할 때는 그분 앞에 나의 삶의 모든 면을 내어 놓겠다고 말씀드려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긴급히 실행하는 종이 될 수 있게 은혜를 주시도록 기도하라. 주님이야말로 내 삶에 주신 하나님의 목적을 이룰 수 있도록 힘을 주시는 유일한 분임을 기억하라. 사실상 내 삶에 주어진 진정한 목적을 깨닫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해야 한다. 신약 성경은 예수님을 주인이자 종으로 묘사한다. 종으로 행하신 예수님이 나와 아도나이의 관계를 모범으로 보이셨다.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시 16:2)

 

 

11. 여호와(Jehovah) / 스스로 존재하는 자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출 3:14)

 

하나님에 대한 이름이 무척 많이 있지만, 구약 성경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이름은 “여호와”(Jehovah)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를 위해 준비된 축복의 이름입니다. 총 6,823번 쓰여진 이 이름은 창세기 2:4절에 처음으로 사용되었는데, 여기서 ‘여호와’는 ‘엘로힘’과 함께 복합되어 있습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존재하다’, ‘존재하게 되다’라는 의미를 갖는 아카드어인 ‘하와’(havah)에서 유래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는 하나님의 존재 또는 본질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나단 스톤(Nathan Stone)은 “우리가 성경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거나 ‘주’(영어성경에서 대문자로 쓰여진 ‘Lord’)를 일컬을 때 실재 또는 존재 및 생명이라는 용어를 생각하며, 여호와를 절대적으로 스스로 존재하는 실존자, 그 안에서 스스로 본질적인 생명과 영원한 존재를 갖는 자로 생각해야한다”고 말합니다.

 

출애굽기 3장에 여호와라는 이름의 의미가 가장 잘 나타나 있습니다. 불타는 가시떨기 나무에서 모세가 하나님께 고합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출 3:13)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출 3:15)

 

‘여호와’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 즉 ‘I AM WHO I AM’입니다. 그는 영원히 스스로 존재하는 자입니다. 즉 과거, 현재, 그리고 영원히 존재하는 알파요 오메가입니다. 모든 생명체는 그에게 속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다른 곳을 찾아갑니까? 우리는 왜 그의 변치 않음 속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까? 그는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그는 우리로 말미암아 시작됩니까?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여호와이시며 스스로 존재하여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입니다.

 

여호와는 가나안 땅에 관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이루셨는데, 곧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400년 동안의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 돌아오게 하신 것입니다.(창 15:13-21)

스톤은 계속하여 “여기서 영존하시는 하나님이 언약의 백성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셨는데 곧 대대로 그의 말씀을 충실히 이행하시는 변치 않는 하나님으로 나타나셨다. 하나님의 인격적인 존재, 시람과의 계속적인 교제, 그의 언약에 대한 불변성, 및 그분의 구원에 대한 자비로움을 나타내는 이 모든 것이 여호와라는 이름 안에 들어있다”라고 말합니다.

 

출애굽기 34:5-7절에서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와 관련하여 사용된 형용사들을 아래에 기록하십시오. 기록하기를 마치면 여러분의 여호와를 찬양하고 경배하는 기도문을 적어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에 강림하사 그와 함께 거기 서서 여호와의 이름을 선포하실새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출 34:5-7)

 

 

하나님은 주이시다.

 

구약 성경에서 여호와(야훼)라는 이름은 6,800번 나온다. 에스더, 전도서, 아가서만 제외하고 모든 곳에 나온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이기에, 제사장들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경배할 때에만 큰 소리로 말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서기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이후, 더 이상 그 이름을 말하지 않게 되었다. 성경에 여호와(야훼)가 나올 때마다 아도나이로 대체했다. 그로 인해, 이 이름의 정확한 발음은 잊혀지고 말았다. 여호와(야훼)는 선택된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구속 행위와 가장 밀접하게 연관된 이름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행하신 바를 보며 그분을 안다. 여호와(야훼)께 기도할 때는, 그분이 이집트의 비참한 노예 생활에서 백성들을 구원하셨듯이, 죄의 억압 속에서 나를 구원하신 동일한 하나님이심을 기억하라!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출 3:14-15)

 

 

12. 여호와 이레 / 여호와께서 준비하신다.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창 22:14)

 

우리가 살펴볼 ‘여호와’의 복합 명사들 중의 첫 번째는 ‘여호와 이레’(Jehovah-jireh) 즉 ‘여호와께서 준비하시리라’입니다. 아브라함의 생애 가운데서 이 이름의 용법은 매우 의미가 깊습니다. 아래의 창세기 22:1-19절을 읽으면서 다음을 찾아 보십시오.

 

1. “여호와께서 준비하시리라”에 밑줄을 그으십시오. 이것이 ‘여호와 이레’입니다.

 

2. 사랑, 준행, 경배라는 말에 표시하십시오. 이것이 이 세 가지 말들에 대한 성경에서의 첫 번째 진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21장을 쓰셨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사랑, 준행, 경배라는 말은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원리들이 성경의 다른 부분 전체에 적용됩니다. 이것을 ‘첫 번째 진술의 원리’라고 부릅니다.

 

창세기 22:1-19절 말씀입니다.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의 종들에게로 돌아가서 함께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 거주하였더라”

 

여호와 이레와 사랑, 준행, 경배라는 말에 관하여 살펴본 것 중에서 배운 바를 기록하십시오. 각 단어의 사용에 대한 주변 사건들과 주변 상황들을 기록하십시오. 그리고 그 말의 용법이나 혹은 역사 속에서의 그 순간에 대한 다른 중요한 통찰들을 기록하십시오. 이것에 대한 실례가 아버지와 그의 독자의 사랑에 관한 내용인 창세기 22:1-19절 마지막 부분에서 발견됩니다.

 

사랑(아버지와 그의 독자에 관련하여 사용됨)

 

준행(순종)

 

경배(예배)

 

1. 아브라함은 그의 아들을 바치려고 했습니까?

그는 어느 땅에서 번제를 드려야 했습니까?

그 땅 어디에서 번제가 드려져야 했습니까?

 

2. 왜 아브라함은 그 곳을 ‘여호와 이레’라고 명명했습니까?

 

3. 사랑, 준행, 경배에 대하여 다른 통찰들이 있으면 기록하십시오.

 

창세기 22:1-19절에서 이 세 가지 단어의 순서는 어떻습니까? 이 순서에서 어떠한 타당한 이유를 발견했습니까? 이 외에 이 세 단어 사이에서 어떤 관계를 발견했습니까?

 

4.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말씀하셨습니까?

 

5. 아브라함은 이삭을 바치려던 자리에서 하나님께 무엇을 바쳤습니까?

 

6. 여러분은 여러분의 죄 때문에 죽어 마땅합니까?

 

7.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죽을 자리에 무엇을 준비하셨습니까?

 

8. 예수님은 하나님의 누구였습니까?

 

모리아 산에서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던 장소라는 것 이외에 아주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역대하 3:1절을 살펴보십시오.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 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이 때 이후로 모리아산에서의 모든 성전 제물은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여호와 이레)(창 22:14)를 반향시키고 있습니다. 모든 어린 양, 모든 염소, 모든 제물은 궁극적으로 한 제물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습니다.(히 10:4-5) 그리고는 정해진 때, 곧 유월절에 그의 사랑하는 아들 독생자를 취하여 갈보리산으로 이끄셨습니다. 거기서 그의 아들을 나무 위에 놓으셨습니다. 그 때는 죽음의 손을 멈추게 하는 하늘의 소리가 없었습니다. 덤불 속에는 그를 대신하는 수양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 어린 양이 세상 죄를 위한 여호와 이레의 유일한 준비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누가 여호와 이레께서 준비하신 것을 준비할 수 있겠습니까!

 

영생이 여호와께서 준비하신 전부였습니까? 아닙니다. 여러분은 영생이 단지 죽음 이후의 삶이라고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직 이생의 삶을 살아야만 하고, 또 정복자 이상이 되기 위하여 많은 것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여러분에게 구원이 필요함을 미리 아시고, 그의 아들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준비물을 마련하셨을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매일의 필요를 다 아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마 6:7-8)

 

지금 여러분의 상황이 어떠하든지 간에, 필요들을 채움 받기 위해 어디로 가야 합니까?

 

 

하나님이 공급하신다.

 

히브리 단어인 ‘리아’(이레가 여기서 파생되었다)는 ‘본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공급하다’는 뜻으로 번역된다. 하나님이 과거와 현재뿐 아니라 미래도 보고 계시므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시고 이를 공급해 주실 수 있다. 흥미롭게도, 영어 단어인 ‘provision’(공급)은 ‘미리 본다’는 뜻의 두 라틴어로 만들어졌다. 여호와 이레께 기도하는 것은 상황을 미리 보시고 필요에 따라 공급하시는 능력을 가진 분께 기도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창 22:13-14)

 

 

 

13.여호와 라파(Jehovah-rapha) / 치료하시는 하나님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출 15:26)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그 곳에는 의사가 있지 아니한가 딸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찌 됨인고”(렘 8:22)

 

그렇습니다.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고 의사도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여호와 라파(Jehovah-rapha) 치료하시는 주이십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들은 얼마나 됩니까? 치료하시는 하나님이란 무슨 뜻입니까? 무엇을 고치십니까? 육체적 상처입니까? 이러한 모든 것들이 바로 ‘주께서 어떻게 말씀하시는가’를 알기 위한 질문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애굽(세상의 상징)으로부터 해방되었지만 여전히 애굽의 생활 방식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시험의 바람이 그들의 안일을 향해 불어왔을 때 애굽의 냄새는 여지없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한 시험의 때에 이스라엘 백성은 또 다른 빛 가운데서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사건은 애굽인들의 추격으로부터 홍해가 놀랍게 갈라짐으로 구출된 직후에 일어났습니다.

 

출애굽기 15:22-27절을 읽고 다음 질문에 답하십시오.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1. 마라의 쓴 물에 대한 모세의 치료책은 무엇이었습니까?

 

 

 

2.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해서 마라에 이르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우연입니까? 출애굽기 13:21-22절을 읽으십시오.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출 13:21-22)

 

 

3. 마라의 쓴 물을 우연의 산물입니까? 아니면 열등한 지도력의 결과입니까?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4. 쓴 물이 나무로 인해 달게 된 것 이외에 마라에서는 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5. 사람들을 건강하게 유지시켜 줄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6. 누가 누구에게 질병을 내렸습니까? 그분이 왜 그렇게 했다고 생각합니까?

 

 

7. 누가 치료를 했습니까? 이것이 신명기 32:39, 이사야 45:6-7과 어떻게 비교됩니까?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 줄 알라 나 외에는 신이 없도다 나는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빼앗을 자가 없도다”(신 32:39)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 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사 45:6-7)

 

 

8. “여호와 라파”께서는 어떤 종류의 질병을 치료하십니까?

 

 

하나님은 치유자이시다.

 

히브리 단어인 ‘로페’는 ‘치유하다’, ‘고치다’, ‘회복하다’, ‘온전하게 만들다’라는 뜻이다. 주의 백성들이 약속의 땅으로 걸음을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아, 하나님은 자신을 ‘치유하시는 주’, 여호와 로페로 계시하셨다. 성경은 하나님이 모든 치유의 근원이심을 가리킨다. 여호와 로페 하나님께 기도할 때, 내 안에 담겨져 있는 것을 보여주시도록 시간을 드리라. 어떤 죄를 드러내 주신다면, 용서를 구한 뒤, 치유를 위해 기도하라. 신약 성경에서는 예수님을 위대한 의사이자,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는 기적을 일으키는, 몸과 마음의 치유자로 나타낸다.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출 15:26)

 

 

14. 여호와 닛시 / 여호와는 나의 깃발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출 17:15)

 

출애굽기 17장의 문단을 나누어 보면 다음의 중요한 문장으로 시작 됩니다.

“그 때에 아말렉이 와서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8절)

 

이 전쟁에서는 항복자의 백기(白旗)는 없었습니다. 모세를 통해서 내리시는 하나님의 명령은 분명했습니다. “아말렉과 싸우라”(9절)였습니다. 출애굽기 17:16절에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해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아말렉에 대항하여 싸운 이 전투에서 하나님은 여호와 닛시(Jehovah Nissi), ‘하나님은 나의 깃발’(출 17:15)로서 처음 제사를 받으십니다. 하나님은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십니까? 우리의 대적인 육(肉, the flesh)적인 것에 대하여 승리를 얻게 하기 위하여 구약을 통해 위대한 원리를 보여주고 계십니다.

 

다른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아말렉은 육적인 사람의 한 모형이라고 생각합니다. 모형이라는 말을 쓸 때 그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모형이란 신약에 있는 진리가 구약에 예시된 그림자인 것을 말합니다.

 

아말렉은 어디서 나타납니까?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은 엘 샤다이 (El-Shaddai)로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영원한 언약을 세웠습니다. 이삭에게는 에서와 야곱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에서는 쌍둥이의 맏형이었고 이삭의 본래의 상속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육신의 배고픔 때문에 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 버렸습니다.(창 25:27-34; 히 12:16-17) 바꾸어 말하면 에서는 욕망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일시적인 만족을 얻기 위해 영원한 가치를 지닌 것을 팔아 버렸습니다. 에서에게는 엘리바스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그는 아말렉의 아버지입니다. 그러므로 아말렉은 에서의 손자이고 이삭의 증손자입니다.

 

아말렉은 이스라엘 최대의, 그리고 영원한 적이었습니다. 민수기 24:20절에는 “또 아말렉을 바라보며 노래를 지어 가로되 아말렉은 열국 중 으뜸이나 종말은 멸망에 이르리로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발람이 ‘열국 중 으뜸’이라고 말한 의미는 아말렉이 이스라엘을 가장 먼저 괴롭힐 것이라는 뜻입니다. 육신이 여러분의 첫 번째, 그리고 영원한 적이 아닌가요?

 

신명기 25:17-19절에는 우리가 주목해야할 재미있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두려워 한다는 말은 존경하고 중히 여기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높이는 것을 뜻합니다. 에서가 자기의 장자권을 업신여기고 정당한 가치나 존경을 표하지 않았듯이 아말렉도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습니다. 에서의 장자권은 그로 하여금 아브라함의 약속의 자손이 되게 했을 것인데, 그는 일시적이고 육신적인 굶주림 때문에 그것을 팔아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가장 크고 제일가는 적이 누구인줄 아십니까? 그리스도인이 구원받은 후에 제일 처음 싸워야 할 적이 누구입니까? 여러분이 힘이 없고 지쳤을 때 후방에서 공격하는 적은 누구입니까?(신 25:18) 그것은 바로 여러분의 육신이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이 사망의 몸에서 벗어나기를 그렇게 바라면서 탄식하지 않았습니까?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고후 5:2)라고. 물론 우리 육체 속에서 영원한 전쟁은 진행되고 있습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 5:17) 우리는 계속해서 정신을 차려야 하고,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 5:16)는 약속을 믿어야만 합니다.

육체는 끊임없이 죽어야 합니다. 육체의 소욕을 관대하게 대해주거나, 만족시켜 주거나 어떤 식으로든 봐 주어서는 안 됩니다. 만일 그렇게 하면 여러분이 망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울왕의 이야기 속에서 이것을 확연하게 보여주십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어 왕에게 기름을 부어 그의 백성 이스라엘 위에 왕으로 삼으셨은즉 이제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로 내가 그들을 벌하노니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하니 사울이 백성을 소집하고 그들을 들라임에서 세어 보니 보병이 이십만 명이요 유다 사람이 만 명이라 사울이 아말렉 성에 이르러 골짜기에 복병시키니라 사울이 겐 사람에게 이르되 아말렉 사람 중에서 떠나 가라 그들과 함께 너희를 멸하게 될까 하노라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너희가 그들을 선대하였느니라 이에 겐 사람이 아말렉 사람 중에서 떠나니라 사울이 하윌라에서부터 애굽 앞 술에 이르기까지 아말렉 사람을 치고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사로잡고 칼날로 그의 모든 백성을 진멸하였으되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니라”(삼상 15:1-9)

 

바울은 갈라디아서 5:24절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육체와 영과의 싸움은 르비딤 계곡에서 여호수아와 아말렉의 싸움처럼 격렬합니다. 그러나 위를 바라보십시오. 하늘나라의 거룩한 시온산에는 그의 팔을 높이 펴들고 항상 살아서 여러분을 위하여 간구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히 7:25)

 

하나님의 깃발 아래서 승리는 항상 보장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떠나서는 패배 할 것이 확실합니다. 하나님의 지팡이의 깃발이 높이 올려지지 않을 때에는 아말렉이 우세했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능력으로는 육체에 대항하여 싸울 수 없습니다. 이러한 진리가 민수기 14:40-45절에 명확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산 꼭대기로 올라가며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여기 있나이다 우리가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곳으로 올라가리니 우리가 범죄하였음이니이다 모세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제 여호와의 명령을 범하느냐 이 일이 형통하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 중에 계시지 아니하니 올라가지 말라 너희의 대적 앞에서 패할까 하노라 아말렉인과 가나안인이 너희 앞에 있으니 너희가 그 칼에 망하리라 너희가 여호와를 배반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나 그들이 그래도 산 꼭대기로 올라갔고 여호와의 언약궤와 모세는 진영을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아말렉인과 산간지대에 거주하는 가나안인이 내려와 그들을 무찌르고 호르마까지 이르렀더라”(민 14:40-45)

 

이 예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주께서 그들과 함께 하지 아니하셨으므로 아말렉인에 의해 패배를 당했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명심 하십시오. 주님을 떠나서는 여러분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요 15:5) 그분의 능력 아래서 살 때에만 여호와 닛시의 깃발이 여러분으로 하여금 육체와 세상과 여러분과 하나님의 적인 사단에게서 승리하게 하십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하나님은 나의 깃발이시다.

 

고대의 군인들은 구별을 위한 표시나 사람들의 이념을 새겨 넣은 상징으로 군기나 깃발을 들고 다녔다. 깃발은 멀리서도 볼 수 있었고, 전쟁에 앞서 군사들의 집합 장소의 역할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집트, 바빌로니아. 앗시리아, 페르시아에서 깃발이 처음 사용되었으며, 이스라엘 사람들은 광야를 거쳐 행진하는 중에 깃발을 사용했다. 여호와 닛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어떠한 원수도 격파하는 능력의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출 17:15-16)

 

 

 

15. 여호와 샬롬(Jehovah-shalom) / 평강의 하나님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것을 여호와 살롬이라 하였더라 그것이 오늘까지 아비에셀 사람에게 속한 오브라에 있더라”(삿 6:24)

 

사사기 동안의 이스라엘 역사의 암흑기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께서는 그 분 자신을 여호와 샬롬(Jehovah-shalom), 즉 주는 평강이심을 나타내셨습니다. 당시의 상황은 악화되어 있었습니다.

“ 이스라엘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궁핍함이 심한지라”(삿 6:6a)

 

사람들은 보통 상황이 어두워지거나 시기가 절망적이 되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평강을 갈망하지도 않고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하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인간의 본질은 평강을 갈망합니다. 우리의 정신 건강도 그것에 달려 있습니다, 두려움은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우리는 평강이 주는 확신을 갈망하면서도 두려움에 떨며 어둠 속을 더듬거립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활환경에서부터 오는 두려움은 하나님과 마주할 때 오는 두려움과 비교해 보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

 

기드온은 그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본 것을 알고 두려워하였습니다.

“기드온이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을 알고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것을 여호와 살롬이라 하였더라 그것이 오늘까지 아비에셀 사람에게 속한 오브라에 있더라”(삿 6:22-24)

기드온이 그 단을 여호와는 평강이라고 이름 지은 것이 얼마나 합당합니까! 진정한 평강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아닌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잠시 동안 아래의 성경 구절을 읽고 평강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 배운 것을 기록해 보십시오.

 

레위기 26:2-6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내 안식일을 지키며 내 성소를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너희가 내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내가 너희에게 철따라 비를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나무는 열매를 맺으리라 너희의 타작은 포도 딸 때까지 미치며 너희의 포도 따는 것은 파종할 때까지 미치리니 너희가 음식을 배불리 먹고 너희의 땅에 안전하게 거주하리라 내가 그 땅에 평화를 줄 것인즉 너희가 누울 때 너희를 두렵게 할 자가 없을 것이며 내가 사나운 짐승을 그 땅에서 제할 것이요 칼이 너희의 땅에 두루 행하지 아니할 것이며”

 

예레미야 29:11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이사야 48:18절 말씀입니다.

“네가 나의 명령에 주의하였더라면 네 평강이 강과 같았겠고 네 공의가 바다 물결 같았을 것이며”

 

이사야 26:3절 말씀입니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빌립보서 4:4-7절 말씀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이사야 9:6절에서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놀라운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여기서 그는 예수, 우리의 여호와 샬롬, 평강의 왕,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하게 하셔서 두려움 없이 그분과 마주 대면하여 설 수 있게 해주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롬 5:1)

 

그분은 우리에게 상황에 관계없이 변함없는 평강을 주십니다. 왜냐하면 그 분이 우리에게 주시는 평강은 그것을 주시기로 약속된 사람 안에서 항상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주는 평화이시다.

 

샬롬은 히브리 말로써, 우리의 ‘평화’라는 말에 비해 그 뜻의 범위가 훨씬 넓다. 일반적으로 ‘평화’라는 말은 외부적인 갈등이 없거나 내적으로 고요한 상태를 뜻한다. 샬롬의 개념에도 이런 뜻이 있기는 하지만, 그 이상으로 ‘온전함’, ‘완벽함’, ‘끝마친 말’, ‘완전’, ‘안전’, ‘건강’의 뜻도 있다. 샬롬은 하나님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것에서 유래된 말이다. 조화의 관계로 다른 사람들과 조화롭게 살고, 재산, 건강, 만족, 온전함, 행복을 누리며 살게 된다. 여호와 샬롬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모든 평화의 근원이신 분에게 기도하는 것이다. 그분의 이름이신 예수님이 평강의 왕으로 불리시는 것은 당연하다.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것을 여호와 살롬이라 하였더라 그것이 오늘까지 아비에셀 사람에게 속한 오브라에 있더라”(삿 6:24)

 

 

16. 여호와 메카디쉬켐 / 성화시키는 하나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게 함이라”(출 31:13)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공개된 하나님의 또 다른 이름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화시킨다는 여호와 메카디쉬켐(Jehovah-mekoddishkem)입니다.

 

“그들이 르비딤을 떠나 시내 광야에 이르러 그 광야에 장막을 치되 이스라엘이 거기 산 앞에 장막을 치니라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말씀하시되 너는 이같이 야곱의 집에 말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라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출 19:2-6)

 

출애굽기 31:12-18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게 함이라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거룩한 날이 됨이니라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모두 죽일지며 그 날에 일하는 자는 모두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어지리라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누구든지 반드시 죽일지니라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일곱째 날에 일을 마치고 쉬었음이니라 하라 여호와께서 시내 산 위에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마치신 때에 증거판 둘을 모세에게 주시니 이는 돌판이요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이더라”

 

‘성화하다’, ‘구별하다’, ‘거룩한’, ‘성도’ 등의 단어는 공통 어원을 가진 히브리어 단어 ‘카디쉬’(qadash)와 희랍어 단어 ‘하기오스’(hagios)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안식일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대대의 표징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안식일의 목적은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게 함이라”(출 31:13) 혹은 “내가 여호와 메카디쉬켐인 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안식일을 거룩하게 만드신 것 같이 이스라엘의 자손들도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구별되게 만드셨습니다.

 

구원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우리를 의롭고 거룩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거룩함만이 우리가 가장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머물 수 있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12:14절에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들의 성화에 대한 진지함은 안식일을 범한 사람에게 가하는 벌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다음의 구절들을 읽고 각 말씀이 우리의 성화에 대해 말하는 것을 기록하십시오.

 

히브리서 10:10-14절 말씀입니다.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요한복음 17:15-19절 말씀입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데살로니가전서 4:3-8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대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고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언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라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23절 말씀입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17. 여호와 체바오트(Jehovah-sabaoth) / 만군의 하나님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삼상 17:45)

 

이스라엘 자손들은 도움을 요청하고 의지할 것이 아무 것도 없음을 알았을 때에야 비로소 여호와 체바오트(Jehovah-sabaoth)의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말은 집단, 대중, 대량, 군대 등을 의미합니다. 이 단어는 천사들이나, 천체, 하늘의 군대, 또는 땅위에 있는 모든 것을 언급할 때 사용되어 지곤 했습니다. 여호와 체오바트는 사무엘상에서 처음 언급되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 때까지 이스라엘은 만군의 주이신 그분에게 호소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선지서인 이사야, 예레미야, 아모스, 학개, 스가랴, 말라기를 읽을 때 우리들은 몇 번이고 거듭하여 이 이름을 발견합니다. 이 이름은 스가랴서 전체(1장-14장)에서 52번 사용되고, 예레미야 전체(1장-52장)에서 83번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이 이름이 두 선지서에서 가장 비중있게 사용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질문을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 이사야서와 예레미야서에서는 만군의 하나님이 계속 반복되어 언급되는데 에스겔서에는 사용되고 있지 않습니까? 이 이름은 하나님의 백성이 경험해 나가는 어느 특정 단계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이 이름은 인간이 극한에 처할 때 주어진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하나님께 선택받은 우리는 실패할 때, 시험을 만나 나약해져 있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의 여호와 체바오트께로 달려갈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먼저 여호와 체바오트가 사용된 두 경우는 사무엘상 1:3-11절에서 발견됩니다. 이 사건은 유대의 마지막 시대에 발생했습니다. 마지막 사사인 사무엘 시대 때 즉 신정 국가에서부터 군주시대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역사는 과도기였습니다.

 

사무엘상 1:1-3절 말씀입니다.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엘리후의 손자요 도후의 증손이요 숩의 현손이더라 그에게 두 아내가 있었으니 한 사람의 이름은 한나요 한 사람의 이름은 브닌나라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더라 이 사람이 매년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여호와께 예배하며 제사를 드렸는데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거기에 있었더라”

 

하나님께서 한나에게 자식을 허락하지 아니하셨고 브닌나에게는 자식을 허락하셨기 때문에 한나는 그 고통이 매우 컸습니다.

 

사무엘상 1:6-7, 10-11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 매년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나가 그를 격분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삼상 1:6-7)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삼상 1:10-11)

 

사무엘상에서 등장하는 여호와 체오바트는 다윗이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을 만나는 장면에서도 나타납니다. 사무엘상 17:42-47절을 읽고 얻은 통찰을 기록하십시오.

 

사무엘상 17:42-47절 말씀입니다.

“그 블레셋 사람이 둘러보다가 다윗을 보고 업신여기니 이는 그가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움이라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의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그 블레셋 사람이 또 다윗에게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살을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하는지라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한나와 다윗은 만군의 주께 간청하여 그의 이름을 통해 출구를 찾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어떠한 곤경에 처해 있다 할지라도 여러분에게 구원의 길은 열려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이 만사형통케 하는 마법으로 사용될 수는 없습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의인은 그곳으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습니다.(잠 18:10)

 

사무엘상에서 세 번째로 등장하는 여호와 체바오트는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전투하는 곳에서 나타납니다.

 

“백성이 진영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이에 백성이 실로에 사람을 보내어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거기서 가져왔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거기에 있었더라”(삼상 4:3-4)

 

“블레셋 사람들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륙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만 명이었으며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삼상 4:10-11)

 

그의 이름은 우리들이 부를 수 있는 곳에 있고, 우리의 강한 산성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이름을 오용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우리가 구원받기를 원한다면 의 가운데 계신 그분에게로 가야만 합니다. 그분은 우리의 의사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만군의 주이시다.

 

‘만군의 주’란 물질 세계와 영적 세계 전체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주권 능력을 강조하는 호칭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천군’이란 보통 천체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천사의 존재를 언급할 때도 있다. 또한 ‘군’이란 말이 인간과 자연 전체를 가리킬 수도 있다. 여호와 체바오트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모든 피조물이 주의 목적을 따르고 섬길 수밖에 없는 장엄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삼상 17:45-46)

 

 

 

18. 여호와 라아(Jehovah-Raah) / 목자되시는 하나님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

 

양(羊)은 모든 짐승 중에서 가장 잠잠한 짐승입니다. 그들은 무력하고 겁 많고 연약하여 끊임없는 주의와 세심한 돌봄을 필요로 하는 동물입니다. 양들은 자기를 방어할 만한 수단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목자의 역할을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참고 구절들이 우리가 모두 찾아 볼 시간이 없을 정도로 많이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여호와 라아(Jehovah-Raah), 나의 목자이십니다. 주님이 나의 목자가 되시므로 “내게 부족함이 없을”것입니다. 이 연구를 통해서 여러분의 여호와 라아로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기쁨을 소유하시기를 원합니다.

 

요한복음 10:1-17,26-33절을 읽고, 대조와 비교의 말을 찾고, 아래에 다음 말들에 대한 목록을 작성하십시오.

 

a. 양 b. 목자 c. 도적 d. 예수 e. 아버지

 

요한복음 10:1-17, 26-33절 말씀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예수께서 이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가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요 10:1-17)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로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 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로 말미암아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신성모독으로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요 10:26-33)

 

시편 23편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 즉, 그분을 여러분의 “여호와 라아”로 모시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한 위대한 진리를 함축적인 말로써 나타내기 시작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23편의 나머지 구절은 여호와가 그의 목자가 되는 사람에게는 부족함이 없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래에 있는 시편을 정독하여보고 “여호와 라아”가 그의 양을 위해 하시는 모든 일들을 나열해 보십시오. 읽을 때 “자기 이름을 위하여”라는 어구에 주목하십시오. 여러분의 목자이신 그분의 명성 때문에 그분은 실패할 수 없습니다.

 

시편 23:1-6절 말씀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시편 기자가 “그가 나를 누이시며”라고 말한 것은 양들에게 쉬도록 강요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양들의 필요를 채워 주심으로써 양들이 비로소 누울 수 있게 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양들은 아래의 네 가지가 만족되지 않으면 결코 눕지 않는다고 합니다.

 

첫 번째로 양들은 배고픔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합니다.

 

두 번째로 양들은 공포로부터 자유로워야 합니다.

 

세 번째로 양들은 마찰로부터 자유로워야 합니다.

 

네 번째로 양들은 해충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합니다.

 

 

제 1필요 = 배고픔으로부터의 자유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2)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17)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8:3)

 

제 2필요 = 공포로부터의 자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 4:16)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일 4:18)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딤후 1:7)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시 56:3-4)

 

제 3필요 = 마찰로부터의 자유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3-24)

 

제 4필요 = 해충으로부터의 자유

 

우리의 마음을 공격하는 해충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목자의 기름은 무엇입니까? 다음의 말씀이 그 해답을 제시해 줍니다. 주의 깊게 읽고 우리의 마음을 보호하는 기름의 역할을 하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여러분 자신의 말로 적어 보십시오.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고후 10:3-5)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다.

 

역사적으로 히브리 민족은 한 때, 양, 염소, 송아지의 방목 장소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던 유목민족이었다. 가축들을 잘 키우기 위해, 목자들은 가축이 딴 길로 빠지지 않게 돌보고, 도둑과 들짐승에게서 지키며, 풍성한 초장을 제공해주는 게 중요했다. 그래서 고대의 근동 지역과 이스라엘에서 ‘목자’는 왕을 상징하는 비유가 되었다. 히브리 성경은 하나님을 백성의 목자로 묘사하고 있고, 또한 종교 지도자들에게도 동일한 이미지를 적용한다. 신약 성경은 예수님을 그분의 생명을 버려 양들의 목숨을 지키는 선한 목자로 묘사하고 있다. 밤낮으로 나를 지켜 주고, 나를 먹이며, 안전하게 의의 길로 지나게 하시는 분이 계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시 23:1-2)

 

 

 

19. 여호와 칟케누(Jehovah-tsidkenu) / 의의 하나님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받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살 것이며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렘 23:6)

 

예레미야 시대에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렘 17:9-10)

 

하나님은 마음을 살피셨습니다. 그는 폐부(mind)를 시험하셨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심판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희망은 없는 것입니까? 인간은 항상 이같이 끊임없는 죄악의 악순환 가운데 움직여야만 하는 것입니까? 황소와 염소의 피는 결코 죄를 사할 수 없는 것입니까?(히 10:3-4) 해마다 늘 드리는 바 같은 제사는 그들을 온전케 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그들의 마음입니다.

 

황소와 염소의 피는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희망은 없는 것일까요? 있습니다. 바로 이 어두운 심판의 시기, 어두운 실패의 시기에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여호와 칟케누, 즉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리고 그 계시와 함께 새 언약, 은혜의 약속이 주어집니다. 그것과 더불어 새 마음을 주십니다.(렘 31:31-34; 마 26:28; 히 8:6-13)

 

인간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맥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곧 의롭고, 곧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선량함 이상의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옳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행하는 것이며 그분의 기준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새로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인간은 새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31:33-34)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렘 32:40)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겔 36:26-27)

 

이 모든 것 즉 새 언약과 새 마음은 여호와 칟케누. ‘여호와 우리의 의’라는 이름의 의로운 가지 때문에 올 것입니다. 그것은 모두가 다 그의 이름 여호와 칟케누를 이해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여호와 칟케누가 처음 인용되는 예레미야 23:1-6절을 보면서 시작합시다. 주의 깊게 읽어 보십시오. 목자와 양에 대한 언급들은 지난주에 여호와 라아에 대해 공부했기 때문에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레미야 23:1-6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목장의 양 떼를 멸하며 흩어지게 하는 목자에게 화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 백성을 기르는 목자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내 양 떼를 흩으며 그것을 몰아내고 돌보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내가 너희의 악행 때문에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내 양 떼의 남은 것을 그 몰려 갔던 모든 지방에서 모아 다시 그 우리로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의 생육이 번성할 것이며 내가 그들을 기르는 목자들을 그들 위에 세우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려워하거나 놀라거나 잃어 버리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형통하며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받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살 것이며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1. 금주의 연구는 예레미야 시대에 유다의 상태를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예레미야 23장에서 하나님이 말씀하고 계신 나쁜 목자는 누구였습니까?

 

 

2. ‘내 양무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3. 하나님께서는 자기 양무리를 위해서 무엇을 하시려고 합니까? 예레미야 23:1-6절로부터 얻을 수 있는 통찰을 모두 써 보십시오.

 

 

4. ‘의로운 가지’에 대해 이 본문에서 관찰한 것을 모두 써보십시오.

 

 

5. 이 “의로운 가지”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예레미야 23:5절의 “의로운 가지”는 다윗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입니다. 왕으로 통치를 하시며 그 땅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그 의로운 가지는 다름 아닌 성육신 하신 하나님(육신을 입으신 하나님)이시고, 메시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곧 우리의 의(마 1:23)입니다. 마리아에게서 난 다윗의 후손은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사 53:2)로서 자라셨고,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습니다.(사 53:6) 그는 죄 없으신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였습니다.(마 1:21; 벧전 1:18-19)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사 53:5; 벧전 2:24-25)

 

그러나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사 64:6) 또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0),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의 이르지 못한다”(롬 3:23)면, 인간이 어디서 의를 얻을 수 있으며, 어떻게 의로워질 수 있습니까? 거기에는 오직 한 길이 있는데 그것은 의로운 가지인 여호와 칟케누를 소유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우리의 의’라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갈보리로 오십시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롬 3:22)가 되게 하신 것은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였습니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롬 6:16)

 

여러분,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마음으로부터 순종”하게(롬 6:17) 되었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여러분은 “죄에서 해방(죄의 지배로부터 자유)되었습니다”(롬 6:18) 그리고 여러분은 “의의 종”(롬 6:18)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새로운 마음을, 돌이 아닌 육의 심비를 받았습니다.(고후 3:3; 겔 37:26)

 

여러분에게 새 주인이 생겼습니다. 그의 이름은 주님(아도나이)이신 여러분의 여호와 칟케누입니다.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합시다.

 

 

주님은 우리의 의가 되신다.

 

우리 문화 안에서 의는 그다지 인기 있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의는 우리의 행복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여기에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또는 올바른 위치가 수반되고, 또한 하나님의 성품을 따르며,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무를 완수하는 것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로움은 아무리 갈망한다고 해도 우리 힘으로 얻기는 불가능하다. 그분의 아들에 대한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질 뿐이다. 우리의 의가 되신 주께 기도하는 것은 우리 편에 서서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시키시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게 하시는 분에게 기도하는 것이다.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받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살 것이며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렘 23:6)

 

 20.여호와 삼마(Jehovah-shammah) / 하나님은 거기 계신다.

 

“그 사방의 합계는 만 팔천 척이라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겔 48:35)

 

모든 것이 어둡게 느껴지고 희망이 없어 보일 때, 견딜 수 없이 외롭고 버림받았다고 느껴질 때, 사람들에게 잊혀지고 어쩌면 하나님에게조차 잊혀졌다고 느껴질 때 여러분은 무엇을 합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합니까? 그것에서 어떻게 헤어 나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 삼마”를 앎으로써 가능하게 됩니다. 주님은 거기 계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 있었습니다. 그들은 거기서 70년간 있어야 했습니다.(렘 29:10) 만일 하나님이 거기 계셨더라면 그들은 주님의 집에서 기뻐하는 문지기로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에스겔을 통해서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서 어떻게 떠났는지를 들었습니다.(겔 10:18-19;11:22-24) 그들은 그것을 믿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70년간의 포로생활은 사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의 행음을 인하여 심판하셨습니다. 애굽의 포로 생활로부터 바벨론의 포로생활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은 어렵지만 꼭 필요한 교훈을 가르치셨습니다. 그 교훈 중에서 그분에 대한 또 다른 진리가 있었는데 곧 여호와 삼마, 하나님이 거기 계시다는 것이었습니다.

 

에스겔서의 마지막 절에 나오는 여호와 삼마는 예루살렘에 대해 사용된 것입니다.

“그 사방의 합계는 만 팔천 척이라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겔 48:35)

 

삼마(Shammh)라는 단어는 단순히 ‘There’(거기)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여호와’라는 말과 결합되었고 성령께서 그것을 한 이름으로 부르시기 때문에 독특하게 들리는 것입니다. 성경시대에서 이름은 매우 중요했음을 기억하십시오. 이름은 그 이름을 가진 인격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고 했다면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여호와가 바로 거기 계시다는 것을 확신 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포로로 사로잡힌 사람들에게는 이 얼마나 격려가 되는 말씀일까요? 그들로 하여금 미래에 대해 확신을 갖게 해 주고 희망을 주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어디에 있든지, 여호와는 거기 계십니다. 여러분의 장래와 여러분의 소망이 되시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자신의 포로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하나님께 열중하십시오. 유다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히기 전에, 세상에 포로로 잡혀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벨론의 포로가 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을 택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에스겔서에 대한 약간의 배경과, 하나님이 여호와 삼마, 즉 ‘하나님이 거기 계시다’라는 것으로 계시되는 주위 환경을 잠시 설명하겠습니다. 에스겔은 바벨론 포로 시절에 관한 책입니다. 그것은 바벨론에 포로가 된 유대인들을 향해 쓰여진 책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에스겔서를 살펴보면 예루살렘이 아직 망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예루살렘이 아직 멸망하기 전에 세 번의 침공을 받았습니다. 다니엘은 첫 번째 침공 때 포로가 되었고 에스겔은 두 번째 침공 때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에스겔서를 읽을 때, 그가 예언했던 초기에는 예루살렘이 아직 건재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루살렘이 망하도록 내버려 두실 거라는 사실을 믿기가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또 다른 이름을 잊었습니다. 그것은 누구도 말해본 적이 없는 이름입니다. 그것은 ‘질투하는’의 뜻을 가진 ‘콴나’(Qanna)입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셨을 때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출애굽기 20:1-6절, 34:12-17절을 읽어 보십시오. 하나님은 어떤 때에 질투하십니까?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 20:1-6)

 

“너는 스스로 삼가 네가 들어가는 땅의 주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라 그것이 너희에게 올무가 될까 하노라 너희는 도리어 그들의 제단들을 헐고 그들의 주상을 깨뜨리고 그들의 아세라 상을 찍을지어다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너는 삼가 그 땅의 주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지니 이는 그들이 모든 신을 음란하게 섬기며 그들의 신들에게 제물을 드리고 너를 청하면 네가 그 제물을 먹을까 함이며 또 네가 그들의 딸들을 네 아들들의 아내로 삼음으로 그들의 딸들이 그들의 신들을 음란하게 섬기며 네 아들에게 그들의 신들을 음란하게 섬기게 할까 함이니라 너는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 말지니라”(출 34:12-17)

 

에스겔의 시대 이전에는 이스라엘과 유다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고 부르지 않았지만 그때에도 하나님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의 임재를 나타내시면서 그의 백성들과 늘 함께 계셨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그의 임재를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하나님께서 행하시겠다고 말씀하신 바를 정말로 행하시리라고는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떠나시고 하나님의 시온성인 예루살렘이 믿지 않는 바빌로니아인들에게 포로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예루살렘의 안뜰에 나타나신 여호와 삼마를 보여 주고 있는 구절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구절을 읽을 때, 하나님을 슬프게 만든 것에 밑줄을 긋고 그것이 무엇인지 써 보십시오. ‘질투하시는 하나님’임을 기억하십시오. (겔 8:3-6, 17-18. 겔 10:3-4,18,19, 겔 11:22-23)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떠나셨다 할지라도, 그는 여호와,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시므로 돌아오셔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 11:22-24절에서 예루살렘을 떠날 준비를 하실 때, 에스겔은 엎드리어 부르짖어 가로되 “오호라 주 여호와여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다 멸절하고자 하시나이까”(겔 11:13)라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응답을 들어 보십시오.

 

에스겔 11:16-19절 말씀입니다.

“그런즉 너는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비록 그들을 멀리 이방인 가운데로 쫓아내어 여러 나라에 흩었으나 그들이 도달한 나라들에서 내가 잠깐 그들에게 성소가 되리라 하셨다 하고 너는 또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만민 가운데에서 모으며 너희를 흩은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모아 내고 이스라엘 땅을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다 하라 그들이 그리로 가서 그 가운데의 모든 미운 물건과 모든 가증한 것을 제거하여 버릴지라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이 “그 사면의 도합이 일만 팔천척이라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겔 48:35)고 말씀하실 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것이 얼마만큼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살아야 합니다.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살전 1:9-10)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다시 오실 것과 예루살렘의 이름이 여호와 삼마, 즉 “주님께서 거기 계십니다.”가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가 오시면 에스겔을 통해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하신 그의 말씀이 성취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1과에서 하나님을 묘사해 보라고 요청했던 때를 상기해 보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이과에서 여러분이 해야 할 마지막 과제는 여러분이 아는 하나님에 대한 묘사를 한 번 더 써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1장에서 쓴 것과 비교해 보십시오. 주께서 그분에 대해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까? 여러분이 배운 것들을 유지시키고 그대로 실행하기를 원한다면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이름을 자꾸 자꾸 반복해서 부르십시오.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것은 여러분이 그분께 온전하게 예배드리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제까지 하나님에 대한 이름들을 공부해 왔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아는 것처럼 여러분도 하나님을 압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거절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어떻게 대했습니까? 여러분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누구였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아는 지식 가운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와가 거기 계신다.

 

엄밀하게 말해서 여호와 삼마는 하나님의 칭호라기보다는 성의 이름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모습, 그 능력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으로, 최소한 대중적 용어로 볼 때, 하나님의 이름과 동일하게 여겨진다. 신약 성경에 나온 이 이름은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말과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임마누엘은 예수님께 붙여진 이름이다. 여호와 삼마, ‘여호와가 거기 계신다’는 하나님의 임재를 기뻐하고 드러내는 자로 우리를 지으셨음을 기억하게 해준다.

 

 

“사방의 합계는 만 팔천 척이라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겔 48:35)

 

 

 

 

21.여호와 멜렉 / 왕이신 하나님

 

“보라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정의로 다스릴 것이며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사 32:1-2)

 

 

 

 

22. 여호와 추리 / 주님은 반석이시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시 95:1)

 

‘반석’이란 말처럼 하나님의 불변성과 보호와 영원한 신실함을 잘 드러내는 말이 있을까? 반석이신 주님께 기도하는 것은 언제나 의지할 수 있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그분의 목적과 계획은 쉼없이 흐르는 역사 속에서도 늘 견고하게 서 있다. 신약 성경은 예수님을 오랜 세월 동안 광야에서 떠돌던 이스라엘 사람들과 동행했던 영적 바위로 정의한다. 그분은 건축자들이 거부했지만, 결국 하나님 교회의 모퉁이 돌이 되셨다.

 

 

“나의 반석이신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그가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며 손가락을 가르쳐 전쟁하게 하시는도다”(시 144:1)

 

 

 

 

23. 여호와 카데쉬 /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

 

“너희는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거룩할지어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너희는 내 규례를 지켜 행하라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이니라”(레 20:7-8)

 

청교도 시대가 남긴 에피소드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당시의 시대에는 한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면 대부분의 지역 교회에서 그를 그 교회 회원으로 받아 드리기 위하여 교회 위원회와 입교 문답을 하는 관례가 있었다고 합니다. 한 자매가 교회의 나이 든 장로님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자매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 자신이 죄인이었다는 것을 인정하십니까?”

물론 이 자매는 “예”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장로님은 다시 묻습니다.

“그러면 지금 예수를 믿은 후에는 자신을 어떻게 느끼십니까?”

자매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전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장로님은 다시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예수 믿기 전과 예수 믿은 후에 달라진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그 다음에 자매가 했던 대답이 아주 유명한 말이 되었다고 합니다.

“전에는 제가 ‘죄를 향해 달려가는 죄인’이었지만(a sinner running after sin), 지금은 ‘죄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죄인’(a sinner running from sin)입니다.”

 

 

 

 

24. 캐도시 이스라엘 /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이시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 19:1-2)

 

   

 

25. 여호와 엘 게몰라 / 여호와는 보복의 하나님

 

“ 곧 멸망시키는 자가 바벨론에 이르렀음이라 그 용사들이 사로잡히고 그들의 활이 꺾이도다 여호와는 보복의 하나님이시니 반드시 보응하시리로다”(렘 51:56)

 

“바벨론으로부터 부르짖는 소리가 들리도다 갈대아 사람의 땅에 큰 파멸의 소리가 들리도다 이는 여호와께서 바벨론을 황폐하게 하사 그 큰 소리를 끊으심이로다 원수는 많은 물 같이 그 파도가 사나우며 그 물결은 요란한 소리를 내는도다 곧 멸망시키는 자가 바벨론에 이르렀음이라 그 용사들이 사로잡히고 그들의 활이 꺾이도다 여호와는 보복의 하나님이시니 반드시 보응하시리로다 만군의 여호와라 일컫는 왕이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 고관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도백들과 태수들과 용사들을 취하게 하리니 그들이 영원히 잠들어 깨어나지 못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의 성벽은 훼파되겠고 그 높은 문들은 불에 탈 것이며 백성들의 수고는 헛될 것이요 민족들의 수고는 불탈 것인즉 그들이 쇠잔하리라”(렘 51:54-58)

 

 

 

 

26. 여호와 마케 / 멸망시키는 하나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히 여기지도 아니하고 네 행위대로 너를 벌하여 너의 가증한 일이 너희 중에 나타나게 하리니 나 여호와가 때리는 이임을 네가 알리라”(겔 7:9)

 

“이 땅 주민아 정한 재앙이 네게 임하도다 때가 이르렀고 날이 가까웠으니 요란한 날이요 산에서 즐거이 부르는 날이 아니로다 이제 내가 속히 분을 네게 쏟고 내 진노를 네게 이루어서 네 행위대로 너를 심판하여 네 모든 가증한 일을 네게 보응하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히 여기지도 아니하고 네 행위대로 너를 벌하여 너의 가증한 일이 너희 중에 나타나게 하리니 나 여호와가 때리는 이임을 네가 알리라”(겔 7:7-9)

 

 

 

27. 여호와 엘로힘 / 여호와, 전능한 하나님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에 강림하사 그와 함께 거기 서서 여호와의 이름을 선포하실새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출 34:5-6)

 

 

 

 

28. 예수- 임마누엘 / 우리와 함께 계시는 구원자 하나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 1:23)

 

하나님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줄 구세주를 보내주셨는데, 그분의 이름이 예수님이시다. 그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이시다. 골로새서 2장에서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는 끝없이 파헤쳐도 그 바닥을 알 수 없을 만큼의 깊이를 가진 비밀이라고 말한다.

 

 

 

29. 애쉬 오클라/엘 칸나 / 하나님은 소멸하는 분/질투하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거룩함에 반하는 것은 모조리 제거하시는 소멸하는 불이시다. 그분은 또한 질투의 하나님이시며, 우리를 완전하게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마음을 다해 반응하기를 요구하신다.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면 그분의 자비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되며,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이 높여지기를 열망하는 열정을 갖게 된다. 이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할 때는, 나와 교회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이해하고, 또한 주님 그분의 이름을 높이고 영화롭게 하려는 주님의 열망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간구하라.

 

 

“너희는 스스로 삼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와 세우신 언약을 잊지 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금하신 어떤 형상의 우상도 조각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신 4:23-24)

 

  

30. 하쉠 /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

 

하쉠은 ‘이름’을 뜻하는 히브리어다.(앞의 ‘하’는 정관사다) 성경은 예루살렘에 있는 솔로몬의 성전을 하나님의 이름이 임하시는 장소, 즉 백성들이 기도하고 기도가 상달되는 장소라고 말한다. 예수님은 아들을 통해 아버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해달라고 기도하셨다. 또한 그분의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시행하겠다고 약속하셨다. 빌립보서 2:9-10절은 하나님이 예수님을 높이셨고, 그분에게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고 말한다.

 

 

“그러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이 종이 오늘 주 앞에서 부르짖음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 이 성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시오며 주의 종이 이 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왕상 8:28-29)

 

 

 

31. 멜렉 / 하나님은 왕이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호와께서 멜렉, 즉 왕이라고 믿었다. 단순히 이스라엘의 왕이 아니라 지구상 모든 민족을 다스리는 왕이라고 믿었다.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의 하늘 보좌의 상징이라고 이해했으며, 앞으로 오실 메시야는 그 백성을 원수들에게서 구하시고 온 세계를 다스리는 왕권을 세우시리라고 기대했다.

신약 성경은 예수님을 완전한 순종을 통해 하늘의 왕국을 세우신 왕의 왕으로 나타낸다. 지난 2천 년 동안 하나님의 왕국은 그리스도의 법을 받아들인 모든 나라와 족속과 사람과 언어 가운데 지속적으로 확장되었다. 여호와 멜렉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온 세계를 감찰하시고 영광 중에 다시 오셔서 평화와 의의 영원한 왕국을 세우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공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 그가 주의 백성을 공의로 재판하며 주의 가난한 자를 정의로 재판하리니 의로 말미암아 산들이 백성에게 평강을 주며 작은 산들도 그리하리로다”(시 72:1-3)

 

 

 

 

32. 이쉬 / 하나님은 남편이시다.

 

‘이쉬’는 ‘남편’을 뜻하는 히브리 말로, 호세아 2:16절(전반부)에 나온다. 히브리 성경에서 ‘바알’이라는 말도 때로는 ‘남편’으로 해석되지만(또한 ‘주’, ‘소유자’, ‘주인’으로 해석됨) 보통은 가나안의 풍요의 신인 바알 신을 뜻한다.(호세아 1:16절 후반부에 나오는 ‘바알’은 ‘주인’의 의미) 놀랍게도 이사야서와 예레미야서를 보면, 하나님을 이스라엘 백성의 남편으로 묘사할 때 이 말이 사용되었다. 물론 우리가 바알에게 기도하지는 않지만 우리의 이상적인 남편이신 하나님, 백성을 위해 공급하시고 보호하시며, 우리의 불성실에도 불구하고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기도한다.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님을 신랑으로, 교회를 신부로 나타낸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그의 입에서 제거하여 다시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여 부르는 일이 없게 하리라 그 날에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하고 그들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호 2:16-20)

 

 

 

33. 믹달오즈 / 하나님은 견고한 망대이시다.

 

하나님을 묘사하는 이름 중 마온 / 마츠쎄 / 마겐 / 메추다 / 믹달오즈 같은 이름들은 시편에서 다수 등장할 뿐 아니라 성경 다른 권에서도 여러 번 나온다. 피난처, 방패, 산성, 처소, 견고한 망대이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나를 감찰하시고 안전하게 지켜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께 부르짖는 일이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시 91:1-2)

 

 

34. 쇼페트 / 하나님은 심판자이시다.

 

공의는 궁극적으로 법과 규칙의 집합체가 아닌 하나님의 성품과 본성에 기초한다. 온 땅의 심판자이신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동기를 살필 수 있는 유일한 분이다. 히브리 성경에서 ‘심판자’라는 말은 ‘왕’이라는 말에 비교되기도 했다. 쇼페트이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완전한 공의를 요구하는 의로우신 하나님, 하지만 그 아들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 죄악을 씻을 길을 제공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심판이 의로 돌아가리니 마음이 정직한 자가 다 따르리로다”(시 94:15)

 

 

 

35. 미크웨 이스라엘 /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소망이시다.

 

소망은 우리에게 큰 안정을 준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바뀔 것을 알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은 믿을 만한 분임을 알기 때문에 두려움과 험난한 시간도 견디게 해 준다. 소망은 환경과 상관없이 그 자리를 지킬 수 있게 해준다. 성경적인 소망은 하나님과 그분의 선하심, 인자하심, 능력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온전히 참고 견딜 때에 소망이 역사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에 소망이 자라난다. 이 세상의 축복을 소망하더라도, 우리의 가장 큰 소망은 이후에 올 삶에 초점을 두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실 뿐 아니라 당신의 기쁨을 우리와 영원히 나누고 싶어하신다.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미크웨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그를 신뢰하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는 이에게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렘 17:7-8, 13)

 

 

 

구약 성경에는 하나님에 대한 이름과 칭호가 풍성하지만, 신약 성경에서는 한 분에게 집중한다. 사실상 예수님은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자신이 하나님과 더불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라고 선포함으로써 그들에게 충격을 주고 경악하게 하셨다. 당시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두려운 일이었는데 말이다. 게다가 제자들에게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함으로써, 아버지 되신 하나님에 대해 알려 주셨다. 그래서 오늘 우리도 담대히 예수님이 제자들에게ㅔ 가르치셨던 기도를 할 수 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눅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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