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과 신약성경 중간사

유대교의 배경
구약은 말라기 선지자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그 이후로 선지자는 사라진다. 선지자의 목소리가 사라지면서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과 율법을 중심으로 종교화된 유대교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구약이 끝나고 신약이 시작되기까지의 기간을 ‘중간기’라고 한다. 중간기 4백여 년은 유대주의가 생성된 기간이다. 이 때 유대인들, 유대교의 핵심은 다음 몇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 유일신주의(Monotheism)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오직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만을 믿었다. 그들은 다윗 왕가의 멸망을 우상숭배주의로 결론을 내렸다. 유대인들은 철저히 여호와 신앙으로 돌아섰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고소한 죄목은 ‘여호와 참람죄’이다. 누구든지 여호와를 망령되이 일컫는 자들은 유대 사회에서 남아나지 못했다. 모든 죄들은 용서받을 수 있지만 자칭 신이거나 우상을 조장하는 자들은 유대 사회에서 매장 당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과 동등시하자 그들의 유일신관으로는 도무지 용납할 수 없었다.
㉡ 민족주의(Nationalism)
유대인들은 갈수록 철저히 선민의식에 사로잡혔다. 그들은 유대인들만이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믿었다. 유대인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육신적으로 아브라함의 혈통이거나 반드시 유대인으로 개종해야 한다. 그들은 철저히 메시아 종교를 민족 종교로 만들어 버렸다.
예수님께서 이방인들과 자연스럽게 교제하자 그들의 민족종교가 영향을 받을까봐 예수님을 경계하고 결국은 죽게 만들었다.
㉢ 율법주의
율법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를 잇는 것이다. 율법은 히브리어로 ‘토라’인데 이는 가르침, 계시, 교훈을 의미한다. 율법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음을 영원히 기억시키기 위함이다. 이스라엘의 애급 구원은 율법이 있기 전이다. 아담-아브라함-그들 조상은 율법을 본적이 없다. 그럼에도 구원받았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다.
아울러 율법을 지켜서 거룩한 백성으로 살라고 주신 것이다. 율법은 완벽하게 지킬 수도 없고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받는 것도 아니다. 율법은 하나님을 잘 섬기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러나 바리새파가 득세하면서 율법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렸다.
율법은 결국 사람들을 의인과 죄인으로 나누어 버렸다. 율법의 중심에 서 있는 바리새파나 서기관들은 의인이고 율법대로 살지 못하는 세리나 창기, 이방인들은 죄인이 되어버렸다.
㉣ 성전(聖殿) 지상주의
유대인들은 나라를 잃었다. 성전은 국가도 주권도 잃어버린 그들의 마지막 자존심이자 자긍심이었다. 자연히 이스라엘의 삶은 성전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성전의 기득권을 쥐고 있는 바리새파나 사두개파 사람들이 온갖 특권과 이익을 챙겼다. 성전은 비리의 온상이 되어버렸다. 여기에서 예수님과 정면충돌하게 되었다.
㉤ 메시아 대망사상
유대인들은 외적의 침략에서 날마다 메시아를 대망했다. 메시아는 지상낙원을 이루실 분이다. 그런 세상이 지상에 이루어지면 유대인들은 왕족이 되고 이방인들은 노예로 전락한다. 그것은 생각만으로도 행복한 꿈이었다. 예수님 당시에 이런 메시아 대망사상이 팽배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내 나라는 하늘에 있다”고 하시자 그들의 천국관과는 너무도 상이했다. 그래서 거짓된 메시아라는 죄목으로 죽게 했다.
㉥ 회당 제도
중간기에 동네마다 회당이 생겼다. “회당”은 “함께 모인다.”는 의미가 있다. 회당은 지방 행정을 위한 중심지로 사용되었고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학교이기도 했다. 회당의 책임을 맡은 사람들은 공중도덕을 관할하도록 위임된 백성의 지도자와 통치자들이었다. 회당장은 한 사람이 아니라 복수로 있었다.
성전은 예루살렘에 하나이다. 성전이 둘이 될 수는 없다. 성전은 이스라엘의 통일을 이루는 구심체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바벨론에 포로가 되면서 성전을 잃어버렸다. 포로생활에서 성전 대용의 장소가 필요했다. 제사는 드릴 수 없지만 교육은 가능한 장소-그것이 회당이다. 그들은 회당에서 민족혼을 보존하려고 했다.
신약을 이해하려면 회당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회당을 전도와 전파의 장소로 유익하게 활용하셨고 바울은 전도여행을 다닐 때 유대인들의 회당을 1차적인 접촉지로 삼았다.
종교적 배경
말라기 선지자 이후 이스라엘에는 더 이상 선지자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율법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선지자들의 선포를 연구하는 작업들이 활발히 진행되었다. 그리고 많은 책들이 출현한다. 토비트, 유디트, 솔로몬의 지혜서… 등 지금의 로마 가톨릭에서 정경(正經)으로 편입시킨 가경들이다.
선지자들이 사라진 자리에는 종교 당파들이 차지한다. 대략 네 개의 종파가 이스라엘 사회를 구성하고 있었다. 이런 종파들은 신약의 중요한 배경이 되기에 알아둘 필요가 있다.
㉠ 바리새파
유대사회의 중심이 된 바리새파의 기원은 B.C. 2세기(175년) 경에 처음으로 등장했던 하시딤(신실한 자들을 말함) 일파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리새파는 정치적인 문제보다는 종교적인 문제에 더욱 관심을 가졌다. 바리새파의 ‘바리새’라는 말은 ‘분리시킨다’를 뜻한다. 세속에서 분리해서 성스러운 삶을 살려는 좋은 취지에서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견해와 열심에 동조하지 않는 자들을 업신여기고 그들과 분리시키려 하였기에 일반 백성들에게 존경은 받지 못했다.
바리새파의 유일한 관심사는 조상의 구전을 포함한 율법들을 매우 상세한 조목에 이르기까지 준수하려는 데 있었다. 그들은 조상들에게서 내려온 구전(口傳) 율법과 모세의 성문 율법(모세 오경)의 권위를 같은 것으로 보았다. 탈무드를 집대성하는 업적도 남겼지만 율법의 문자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613개의 실천 조항으로 쪼개어 오히려 종교에 스스로를 억압시켜 버리는 우(愚)를 범하기도 했다. 상당히 종교적인 당파로 부활과 천사와 영과 내세의 심판을 문자 그대로 믿었다.
바리새인들은 종교적으로는 율법을, 문자 그대로 엄수하는 보수주의(保守主義)였고 민족으로는 이방인에 배타적이고, 로마 제국에 대해서는 반대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 국수주의자(國粹主義者)들이다.
㉡ 사두개파
사두개파는 예수님 당시에 두 번째로 중요한 그룹을 형성하고 있었다. 기원도 역시 B.C. 2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독 제사장의 계열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지만 확실하지 않다. 그들은 헬라화된 유대인들 중심으로 뭉쳐진 당파이다. 주로 제사장 출신과 지주 출신, 부농계층들이다. 숫자는 바리새파보다도 적었지만 산헤드린 공의회에서 바리새파와 비슷한 의석을 차지하며 이스라엘 사회에 주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많은 제사장들이 사두개에 속했으며 혹은 그들과 손잡고 일하였다.
이 당파는 종교적으로 상당히 진보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 그들은 성전에서의 예배생활이 율법의 가르침의 중심이라고 믿었다. 바리새파와는 달리 부활도, 내세의 심판도, 천사도, 영의 존재도, 인간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도 믿지 않았다. 죽은 자의 거처인 스올에 관한 전통적인 구약의 교훈들을 주장하였다(시88편).
사두개파는 대단히 현실주의자들이고 로마의 정책에 적극 협조 내지는 가담하는 친(親) 로마통이었다. 그들은 거만하고 심지어 난폭한 행동을 자행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그런대로 인정을 받았지만 사두개인들은 동족들에게 거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사두개파는 제사장을 많이 배출했기에 성전을 장악했고 수입도 엄청났다. 그들은 로마관원들의 사형집행권을 동원해서 예수님을 처형했고 이후에도 기독교를 핍박하는 일에 앞장서다가 A.D. 67년 성전 뜰에서 열심당원들에게 집단적으로 살해당했고 성전이 파괴되면서 성전 기득권자들인 저들도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 엣세네 파
성경에 그 이름이 나타나지는 않다. 그들은 스스로를 유대 정통파라고 자처하는 금욕주의자들이다. 사두개파들이 성전 제사제도를 장악하고 있었기에 성전 제사를 거부하고 대신에 광야로 스며들어 집단적으로 엄격한 규칙생활과 기도와 성경필사와 노동으로 은둔생활을 했다. 그들의 기본 사상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이다. 자기들만이 선택받은 집단이고 빛의 아들들이고 메시아 오실 때에 받으실만한 제물이라고 자임할 만큼 엄격한 종교 은둔자들이다.
㉣ 열심당
셀롯인이라고도 한다. 셀롯인은 수리아의 안디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B.C. 175-163)와 계승자들에 대한 반발로 항쟁했던 마카비가의 전통을 따르려고 했다. 갈릴리 사람 유다가 A.D. 6년에 로마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이 당파를 조직하였다.
열심당은 일종의 이스라엘 독립당(獨立黨)으로 비느하스(민 25:7)의 후계자로 자처한다. 그들은 이스라엘 독립을 가장 숭고한 가치로 여기는 당파이다. 이들의 주장은,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참된 왕이시기에 이교도인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은 배신행위라고 하였다. 그들의 목적은 무력을 사용하여 유대 나라를 외세의 통치와 압제 하에서 독립을 쟁취하는 것이었다.
단검을 소지하고 다니면서 독립을 위한 살해는 죄가 아니라고 할 정도로 독립지상주의자들이다. 그들의 마지막 항쟁지인 마사다 요새가 A.D 73년에 함락되면서 그들의 조직은 와해되었지만 운동의 근본정신은 예수님 당시까지 살아 있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포함된 시몬이 바로 열심당원이었다. 아마 처음에는 예수님을 수단으로 독립을 쟁취하려다 오히려 감화가 되어 사도로 일생을 보내게 된 것 같다.
정치적 배경
신약성경의 배경은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B.C. 4년부터 요한계시록이 쓰인 A. D. 1세기말까지 약 100년이다. 구약의 1500년에 비하면 신약의 기록기간은 매우 짧다. 이 시대를 김인철 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구약시대가 팔레스타인 주변 국가들의 산발적인 도전으로부터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지켜온 역사였다면 신구약 중간시대(중간사)는 이미 세계적 추세가 된 헬라문명으로부터 유대주의를 보존하려는 소극적인 투쟁 단계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신약시대는 유대주의의 틀을 과감히 벗어버린 기독교가 헬라화 된 세계를 오히려 적극적으로 복음화 시켜 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신약시대의 100년-어떤 왕들이 신약의 내용과 관계가 있는가 하는 문제는 성경을 이해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줄 수 있다. 왕들을 잠시 살펴보자.
㉠ 헤롯 왕-이두매 출신의 이방인으로 B.C. 40년 로마의 실력자 안토니우스에 의해 유대의 분봉왕으로 임명받았다. 보통 헤롯대왕이라고 불린다. 훗날 안토니우스의 경쟁에서 승리한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 황제를 위해 가이사랴와 가이사랴 빌립보에 신전을 지어 바친 교활한 왕이다. 예수 탄생 당시 베들레헴 2세 이하의 남아(男兒) 학살 명령을 내린 바로 그 왕으로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려고 예루살렘 성전(제3성전)을 건축한 것으로 유명하다.
㉡ 아켈라오-헤롯의 뒤를 이은 왕(B.C.4~A.D. 6년)으로 매우 잔인한 사람이다. 그가 얼마나 포악한 사람인지, 헤롯의 칼을 피해서 애굽으로 피신했다가 돌아온 요셉과 마리아는 아켈라오가 왕이 되었다는 소리에 무서워서 베들레헴으로 가지 못하고 갈릴리로 갔을 정도로 무서운 사람이다(마 2:22).
아켈라오의 인간됨을 알고 있는 로마 황제는 헤롯 사후에 팔레스타인 땅을 3등분으로 분할 통치한다. 유대와 사마리아, 이두매는 아켈라오가, 갈릴리와 베레아는 헤롯 안디바에게(세례요한을 참수함), 이두래와 드라고닛, 바타네아는 헤롯 빌립이 다스리게 되었다.
㉢ 아그립바 1세-아켈라오가 실각한 이후에는 그 땅은 로마 황제의 직속령이 되어 로마 총독이 다스리게 된다. 예수님 당시의 총독은 티베리우스(A.D. 14-37)의 황제가 보낸 본디오 빌라도였으나 티베리우스의 뒤를 이어 권좌에 오른 칼리굴라(A.D. 37-44)는 헤롯의 손자 아그립바 1세에게 팔레스타인 땅 전체를 통치하게 한다(이 왕이 사도 야고보를 참수함).
㉣ 벨릭스-칼리굴라의 뒤를 이은 로마의 글라우디오(A.D. 41-54)는 49년 유대인의 폭동에 분노해 유대인들을 로마 본토에서 떠나라는 명령을 내린다(행 18:2). 그가 파견한 유대 총독 벨릭스(A.D. 52-59)는 노예출신으로 돈을 탐하는 자로 헤롯 아그립바 1세의 딸 드루실라와 결혼한다(행 23:24-24:37).
㉤ 베스도-칼리굴라의 후계자인 네로(A.D. 54-68)는 유대 총독에 베스도를 임명한다. 베스도(A.D. 59-61)는 바울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그의 간증을 듣고 미치광이로 취급해 로마로 압송시킨다. 네로 황제는 로마 대화재사건(A.D. 64년)의 방화범으로 기독교인들을 주목해서 대대적인 학살정책을 썼는데 이 때 베드로, 바울이 순교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상은 신약성경이 기록된 당시, 신약의 주무대인 팔레스타인을 통치했던 왕들이다.
네로 황제 이후 로마제국은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의 손에 들어간다(A.D. 69-79). 장군은 로마가 네로 이후 정치적인 혼미를 보이고 있을 때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었던 장군이다. 그는 급히 로마로 귀환하면서 예루살렘을 양자(養子) 티투스에게 맡겼고 70년 예루살렘이 함락되면서 유대인들은 그 후 2년 년 동안 유랑민족이 되어 세계를 떠돌게 된다.
베스파시아누수는 양자 티투스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으며 티투스에 이어 왕이 된 도미티아누스(A.D. 81-96)는 초대교회에 치명타를 날리게 된다. 자신을 신으로 추앙(推仰)하는 황제숭배를 강요한 것이다. 물론 황제 숭배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칼리굴라나 네로도 신으로 자처했다. 그러다가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 법적으로 확정해 버린 것이다.
이때 사도 요한은 밧모섬으로 유배되었고 그곳에서 신약의 마지막 성경인 요한계시록을 기록하게 된다. 그리고 성경을 기록하는 시대도 막을 내린다. 이 100년 사이에 기록된 신약성경이 27권이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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