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으로 읽는 성서 및 성경 공부

로마서의 기록 목적

열려라 에바다 2023. 7. 26. 09:20

로마서의 기록 목적

신약성경 총 27권 중에서 바울이 쓴 바울서신은 13권이다. 바울서신은 기록시기에 따라 세 부분으로 나뉜다. 비교적 초기에 기록된 바울의 초기서신은 갈라디아서, 데살로니가전후서, 고린도전후서, 로마서다. 그리고 로마옥중에서 바울이 쓴 옥중서신은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빌립보서다. 그리고 목회서신으로 디모데전서, 디도서 디모데후서다. 로마서는 바울이 쓴 초기서신에 속한다.

 

저자, 저작 연대 및 장소

로마서의 저자는 사도 바울이다. 바울이 로마서의 저자라는 사실이 지금까지 교회 역사에서 의심된 적이 없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로마서는 바울이 대필자 더디오를 통해서 쓴 서신이다(16:22).

로마서를 기록한 연대는 아마 바울이 제3차 선교여행을 끝마칠 무렵인 것으로 추정된다. 사도행전 20-21장을 보면 바울이 제3차 선교여행을 끝내고 예루살렘으로 갈 계획을 한다. 그런데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많은 고난을 겪을 것이고 심지어 죽임을 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바울이 굳이 예루살렘을 방문하려는 이유는 이방 선교사역의 열매인 이방인들의 대표들과 함께 그들이 예루살렘교회를 위해 모금한 구제헌금을 가지고 방문하기 위해서다. 로마서 15장 22-33절에서 바울이 자신이 처한 이런 상황을 로마교회에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중보기도를 요청하고 있다. 이로 보건대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하였을 때는 그가 예루살렘 방문을 앞둔 3차 선교 여행을 마무리하는 무렵인, 주후 57년 이른 봄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한 장소도 제3차 선교 여행의 후반기 사역지였던 고린도일 것이다.

 

수신자인 로마교회의 기원 및 바울과의 관계

로마서의 수신자는 로마에 있는 교회다. 그런데 로마에 있는 로마교회의 기원과 성격에 대해 많은 토론이 되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로마에 있는 교회는 바울이나 베드로와 같은 사도들을 통해서 세워진 교회가 아니라는 점이다. 바울의 서신서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교회는 바울이 직접 세운 교회였지만, 로마교회는 바울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교회였다.

그렇다면 로마교회는 어떻게 출현하였는가? 로마교회의 기원에 대해 우리는 사도행전 2장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모세율법에 따르면 유대인 장정들은 매년 3대 절기, 즉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이 되면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해서 합당한 제사를 지내야 했다. 누가는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방문해서 성령강림 사건을 목격한 사람들의 출신을 열거하는데 그 중에 “...로마로부터 온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자들”(행 2:10)이 있었다. 여기 ‘유대교로 들어온 자들’은 이방인으로서 할례를 받고 유대교로 귀화한 자들을 의미한다. 이방인들 중에 유대교로 귀화하지는 않았지만, 유대교에 관심을 갖고 회당예배에 참여하는 경건한 이방인들도 있었다. 로마 백부장 고넬료가 대표적인 경건한 이방인이다(행 10:1-2).

유대인들이 로마에 거주하게 된 계기는 바벨론 포로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분열왕국 이후 바벨론의 포로가 된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대로 70년 후에 본토 유대 땅으로 귀환하게 되었다. 이때 유대인들 중 일부가 바벨론을 떠나기를 거부하고 계속 머물게 되었는데 이들이 헬라파 유대인, 디아스포라 유대인이다. 이들은 앗시리아-바벨로니아-페르시아-헬라-로마제국으로 이어지는 제국의 흥망성쇠를 겪으면서 로마 전역에 흩어져 살게 되었는데, 그중 일부가 로마에 거주하게 된 것이다. 유대인들은 장정 10명 이상만 되면 회당을 세우고 회당 중심으로 유대인 공동체를 유지해 나갔다. 이들이 오순절이 되어 예루살렘에 순례하였고 그들 중 일부가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을 체험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로마로 돌아가 회당과 결별하고 가정교회를 세우고 신앙공동체를 이룬 것이다. 로마교회는 여러 가정교회로 이루어진 신앙공동체였다(롬 16장).

 

로마서의 기록 목적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한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해 많은 토론이 진행되어왔다. 우리가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한 목적을 알기 위해서는 로마서 수신자인 로마교회의 정황과 발신자인 바울 개인의 정황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로마서는 다른 서신서들처럼 수신자와 발신자의 정황에서 태어난 성경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했던 1세기의 상황으로 다시 돌아가서 먼저 수신자인 로마교회의 상황에서 기록 동기를 살펴보아야 하며, 다음으로 발신자인 바울의 개인적인 상황에서 기록 동기를 살펴보아야 한다.

 

첫째, 수신자인 로마교회의 상황

바울 당시 로마의 유대인 사회는 아주 다양하고 복잡한 모습을 띠었다. 팔레스틴에서 최근에 이주를 해서 회당을 이룬 히브리인파 유대인의 회당도 있었고, 헬라말을 쓰는 헬라파 유대인들의 회당도 있었고, 또 고린도나 아시아의 각 지역에서 이주해 와서 지역마다 나름대로 회당을 이루고 있는 등 아주 다양한 공동체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이런 사실은 서로 다른 언어적, 문화적, 사회적, 신학적, 집단적 욕구를 충족하는 과정에서 갈등의 위험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유대인 중에서 예수를 믿은 유대 그리스도인과 불신 유대인 사이에 갈등이 폭발했다. 수에토니우스가 쓴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생애」라는 책에 보면, 로마에 있는 유대인들 사이에서 크레스토스(chrestos) 때문에 분쟁이 끊이지 않았고, 항상 폭동이 발생했기 때문에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칙령을 내려 유대인 모두를 로마에서 추방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행 18:1-2). 여기서 크레스토스는 크리스토스(christos)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까 유대인 사이에서 분쟁과 폭동은 “예수가 곧 그리스도(christos)다”라는 주장에 대해서 유대 그리스도인들과 불신 유대인 사이에서 생긴 견해 차이와 그로 인한 극한 대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극한 갈등과 대립 상황으로 가게 된 배경은 이렇다. 예루살렘에 올라갔다 성령강림사건을 체험하고 기독교로 개종하고 로마로 돌아온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아직 교회가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해서 회당예배에 참석하였다. 회당예배 때 회당장이 그 안식일에 읽을 구약 본문(Lectionary)을 한 구절 읽은 후에, “우리 중에 혹 이 말씀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위로나 권면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나오라”고 청한다. 바로 이런 기회를 이용하여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회중 앞에 서서 바울이 그러했듯이 “지금 여러분들이 들은 그 구약의 말씀이 나사렛 예수를 통하여 성취되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서 약속한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다”, “그런데 우리 유대인들이 그 예수를 거절하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예수를 부활 승천하게 하셨다.” “이제는 더 이상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 이방인 차별이 없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전했다.

하지만 로마에 있는 유대인 대부분은 새롭게 등장한 기독교의 가르침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반면에 이방인들 중 유대교에 관심을 갖는 자들이 많았다. 두 부류의 이방인들이 있었는데, 한 부류는 할례를 받고 완전히 유대인으로 개종한 이방인들(proselytes)이고, 다른 한 부류는 하나님을 믿지만, 할례를 거부하고 귀화하지 않은 채 회당예배에 참여하는 이방인들(God-fearers)이다. 이런 이방인들이 유대 그리스도인들의 전도를 받아들였고 이들이 유대 그리스도인들과 더불어 회당에서 쫓겨나 가정에서 모이는 새로운 교회공동체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처럼 로마교회는 로마에 있는 헬라파 유대인들에 의해서 설립된 것이다. 그래서 로마교회는 당연히 로마에 있는 유대 그리스도인들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로 이루어진 혼합 공동체였다. 이 과정에서 유대인 회당은 많은 신도를 잃게 되어 불신 유대인들과 유대 그리스도인 사이에 큰 갈등의 요인이 되었고 이것이 끊임없는 분란과 폭동의 원인이 되었다. 결국 정치적 불안감을 느낀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모든 유대인을 로마에서 추방하는 칙령을 내리게 된다. 당시 로마에서 쫓겨난 유대인들 중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와 같은 유대 그리스도인들도 포함되었다(행 18:1-2).

주후 49년 클라디우스 황제의 유대인 추방 명령은 로마교회에 아주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유대인들이 추방되어 생긴 로마의 가정교회들에 이방 그리스도인들만이 남게 되었다. 그래서 이방 그리스도인들로 이루어진 로마교회는 당연히 이방적인 색채를 띨 수밖에 없었다(1:5, 13; 11:13, 23-24, 28, 31; 15:7-9). 유대인들에게 일어난 일련의 모습들을 바라보고 이방 그리스도인들 중 높은 마음을 품고 스스로를 자랑하며 유대인을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발생한 것 같다(11:18, 20-21).

주후 54년경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죽자 추방당했던 유대인들이 다시 로마로 돌아왔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로 부부가 로마교회 성도 이름에서 발견된다(롬 16:3-4). 귀환한 유대 그리스도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 추방 이전과 귀환 이후에 로마교회의 지도력과 신학사상에서 있어서 주객이 완전히 전도된 것으로 생각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로마교회 내에서 불신 유대인들에 대한 이방 그리스도인들의 오해가 발생했고, 유대 그리스도인들과 이방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도 갈등이 드러났다. 이런 갈등 양상은 채식주의, 특정한 날을 준수하는 문제를 시작으로 믿음이 강한 자와 믿음이 약한 자의 대립 양상으로 대두되었다.

결국 유대인과 이방 그리스도인 혹은 믿음이 약한 자와 강한 자로 구성된 로마교회는 갈등이 심화되어 교회가 하나 되지 못할 위험에 처해졌고, 바울은 이 문제를 해결하여 다시 하나의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이 두 그룹 사이의 화해를 시도하며 두 그룹 모두에게 권면한다. 먼저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 권면하기를, 그들이 선민의 우월성을 자랑하는 것은 복음의 보편성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논박한다(1:18-4:25). 또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스라엘의 특수성을 언급하면서, 그들이 유대인 그리스도인에 대해서 갖는 자만심과 우월성도 복음의 보편성에 어긋나는 것이라 경고한다(9-11장). 참감람나무와 돌감람나무 비유가 이 사실을 암시할 뿐 아니라 바울이 하나님의 구원역사에서 유대인들의 특권과 역할을 강조하는 이유가 그것이다(9:4-5). 그뿐 아니라 바울은 여전히 유대인을 앞세우고 그 후에 헬라인을 언급한다(1:16; 2:9-10). 이와 같이 바울의 관심은 믿음이 약한 자나 강한 자나 “서로 용납하라”고 권면하면서, “그리스도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이 똑같이 구원하기 위하여 왔다(14-15장)”고 권면한다. 이처럼 로마서는 수신자인 로마교회의 상황과 더불어 파악해야 한다.

 

둘째, 발신자인 바울의 상황

로마서를 기록한 목적을 알기 위해서 발신자인 바울의 상황을 알아야 한다.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한 당시, 복음의 사도로서 아주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전환점에 서 있었다. 바울은 지금 동방(소아시아, 유럽 동북부 지역)에서의 선교사역을 완성한 후, 이제 막 서방 선교에 착수하려는 시기에 서 있었다.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15:19). 다시 말해서 동북부 지중해 지역선교를 마쳤기 때문에 이제는 더이상 복음을 전할 곳이 없어서 바울은 로마를 거쳐서 스페인까지 가려고 하는 시점이었다(15:23).

이미 바울은 그전에도 로마에 가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의 문제를 해결하려느라 약2-3년 동안 에베소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이제 고린도교회 문제가 해결되어서 고린도 지역을 직접 방문해서 마케도니아와 아가야 지방에서 모은 예루살렘교회를 위한 구제헌금을 가지고 이방교회의 대표단들과 더불어 예루살렘 여행을 계획 중이다(15:14-29). 그는 이 구제헌금을 전달한 후에 스페인까지 가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이런 시점에서 바울은 몇 가지 염려가 있었다.

첫째, 아시아, 마케도니아, 아가야의 이방교회가 정성으로 모금한 구제헌금을 예루살렘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기쁘게 받아줄 것인지, 그리고 이방교회 대표자들을 그리스도안에서 한 형제로 받아줄 것인지였다. 구제헌금을 주고받는 일이 성사된다는 것은 단순히 돈을 주고받는 의미를 뛰어넘어 예루살렘교회와 이방인교회, 유대 그리스도인과 이방 그리스도인 사이에 합법적인 연합과 친교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울이 지금까지 수고한 모든 선교사역의 열매가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예루살렘 여행길은 바울에 안전한 길이 아니다. 바울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이 많았다. 바울은 이런 위험에서 보호받고 스페인을 향해 가기를 원하고 있다.

셋째, 스페인 선교를 위해 먼저 로마교회의 재정적인 지원을 보장받고 이해를 얻어야 하는데, 과연 자신이 세우지도 않고 잘 알지도 못하는 로마교회가 새로운 선교후원자가 되어줄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안디옥교회의 도움으로 사역을 감당했는데, 스페인 선교를 위해서는 로마교회의 후원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교회가 선교후원자가 되어주기를 바라는 상황이다(15:24).

 

그런데 로마교회는 바울이 설립한 교회가 아니고,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뿐 아니라 바울에 대해서 로마교회가 여러 경로를 통해서 전해 들었을 것인데, 좋은 소식뿐 아니라 갈라디아교회(갈 1:16 이하; 3:1 이하; 5:7 이하; 6:12-13)와 고린도교회(고후 11:4, 22-23)와 빌립보교회(빌 3:2 이하)에서 유대주의자들(유대 그리스도인 중 일부)에 의해 바울의 사도직이 공격을 받았으며, 바울이 증거하는 복음에 관해 시비가 많은 것도 듣게 되었을 것이다.

로마교회 또한 바울의 대적자들의 선동 위험에 직면해 있었다. 그들은 주후 54년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죽자 다른 유대인들과 함께 로마로 들어와서 바울이 로마교회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전에 로마교회를 유대주의화하려 시도했다. 로마서 3장 8절(‘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그들은 정죄받는 것이 마땅하니라’)과 16장 17절(‘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이 대표적인 유대주의자들의 흔적이다. 또한 로마서에 바울이 인용하는 수사학적 질문이 바로 바울의 대적자들의 질문의 증거들이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3:3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6:1-2).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6:15).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7:7). 로마서에 흐르는 문제 중 하나가 바울과 그의 대적자 사이에 있는 율법의 행위와 믿음의 의에 관한 것이었다.

 

따라서 바울은 로마교회가 처한 여러 상황과 자신의 상황을 고려해서 자신의 이방인을 위한 사도직과 자신이 증거하는 복음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를 통해서 자신의 복음에 대해서 체계적인 설명을 제시하여 유대주의자들의 비난을 격파하고,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체계화시켜 로마교회에 설명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로마서가 다른 서신서에 비해서 보다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셋째, 로마서의 기록목적

앞에서 살핀 수신자인 로마교회의 상황과 발신자인 바울의 상황을 토대로 해서 로마서를 기록한 목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바울은 스페인선교를 위해 서유럽 선교의 전략적 요충지인 로마교회에 자신과 자신의 복음을 바로 소개하여 그들의 도움과 지원을 얻으려 했다. 이런 선교적 목적이 가장 직접적인 로마서의 기록 동기이다. 로마서의 서론(1:7-15)과 결론(15:14-33)에 이 사실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2) 로마교회에 있는 이방 그리스도인들과 유대 그리스도인 사이의 갈등과 반목이 심화되어 교회가 하나 되지 못해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로마서를 기록하였다. 특히 채식주의 문제, 특정한 날과 절기를 지키는 문제 등을 다루는 권면에서 드러난다(14-15장).

3)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 추방과 귀환의 과정에서 유대인들에게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을 보고 이방 그리스도인들이 언약역사에서 유대인들의 역할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영적 교만의 위험성에 처했다. 바울은 그들의 생각을 교정하고 유대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함을 드러낸다. 종말에 유대 그리스도인과 이방 그리스도인으로 이루어진 충만의 나라를 내다보게 한다.

4) 바울이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권면하고 믿음을 굳건히 하려고 하는 목회적인 목적에서 기록했다(1:8-15, 15:15). 특히 12-13장까지의 일반적인 권면을 볼 때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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