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말씀

말로만 하는 신앙생활

열려라 에바다 2023. 11. 25. 11:12

말로만 하는 신앙생활   

 

글쓴이/봉민근

내 영혼에 너무나 더러운 것들이 많이 묻어 있다.
더러운 죄악의 옷을 입고서는 거룩하신 주님을 뵈올 수가 없다.
기도하면 할수록 죄가 보이고 더럽고 추한 모습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소름 끼치도록 죄가 싫다고 하던 내가 
나도 모르게 그를 또 만나 다정한 연인처럼 함께하는 나를 본다.


얼마 전에만 해도 그렇게 눈물 콧물 흘려가며 회개를 했던 나의 정체가 의심스럽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라.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구원해 주랴!


믿음이란 결단으로도 수많은 다짐으로도 되지 않는다.
결코 기도와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주님께 가까이 갈 수가 없다.


기도하면 죄가 보이고 회개하면 비로소 하나님이 보인다는 이 원칙을 순간순간 잊고 사는
내가 늘 문제다.


기도를 쉬지 않으면 성령님은 어느새 내 속에 들어와 내 영혼을 사로잡아 이끌어 주시지만
세상을 보고 살면 그분은 근심 어린 눈으로 나를 안타까이 바라보신다.


그러기에 쉬지 말고 기도 하라 하셨을 것이다.
내 의지로는 세상을 결코 이길 수가 없다.
기도해야 한다.
성령 충만한 상태에서 벗어나면 세상의 때가 묻는다.


그리스도인은 가까이해야 할 것을 가까이해야 한다.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을 가까이하면 내 영혼이 병이 들고 시들어 버린다.


가지가 꺾이면 나뭇가지는 죽은 것이다.
가지가 꺾인 꽃은 아무리 아름다워 보여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주님께 붙어 있어야 살 수가 있다.
주님을 떠난 심령이 살아날 길은 없다.


말로만 오직 예수를 외치는 것은 아무 소용없는 짓이다.
기도해야지 백번 천 번 되 뇌인다고 기도의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한 말씀이라도 붙들고 주님의 생명의 줄에 접붙임으로 내 영혼을 살려내야 한다.
말만 하는 신앙을 버리는 습관이 중요하다.
하나라도 좋으니 주님 손잡고 나가는 내가 되어야 한다.

나에게 문제는 언제나 말로만 하는 신앙이다.자료/ⓒ창골산 봉서방

 

종교인과 신앙인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 두 가지의 부류가 있습니다.

 

종교인과 신앙인...

종교인은 말 그대로 종교인일 뿐입니다.

신앙인은 하나님의 자녀를 말합니다.

 

종교인은 다른 종교인을 인정합니다.

신앙인은 다른 것을 믿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종교인은 좋은 게 좋은 거라 말합니다.

신앙인은 아닌 것에 대해 분명히 아니라고 말합니다.

 

종교인은 선을 말합니다.

신앙인은 복음을 말합니다.

 

종교인은 다른 것에서도 구원이 있다고 말합니다.

신앙인은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의 유일한 길이라고 말합니다.

 

종교인은 부흥을 교인이 많아지는 것을 말합니다.

신앙인은 부흥을 악은 심판되어지고, 하나님의 말씀만이 남는 것을 부흥이라 말합니다.

 

종교인은 전도를 교회로 사람을 데려 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신앙인은 전도를 복음을 전함으로 하나님의 자녀와 만나는 것을 말합니다.

 

종교인은 교회건물이 커가는 것을 기뻐합니다.

신앙인은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을 기뻐합니다.

 

종교인은 자기를 위한 하나님을 믿습니다.

신앙인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 자녀 삼으심의 목적임을 믿습니다.

 

종교인은 목소리로 찬양하려 합니다.

신앙인은 신실한 마음으로 찬양합니다.

 

종교인은 유창한 어휘를 구사하며 기도하기를 좋아합니다.

신앙인은 하나님의 뜻을 구합니다.

 

종교인은 넓은 길을 좋아합니다.

신앙인은 십자가의 길을 걸어 갑니다.

 

종교인은 가난한 자에게 빵을 줍니다.

신앙인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줍니다.

 

종교인은 배고프면 자기가 먼저입니다.

신앙인은 배고플 때 가난한 자를 먼저 생각합니다.

 

종교인은 가룟 유다처럼 한치 앞도 보지 못 합니다.

신앙인은 바울처럼 복음으로 시대에 비전을 제시합니다.

 

종교인은 육신의 병을 고치는 것을 기적이라고 말합니다.

신앙인은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신 것을 기적이라고 말합니다.

 

종교인은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살아 갑니다.

신앙인은 저 땅에 소망을 두고 살아 갑니다.

 

종교인은 날이 갈수록 종교 전문가가 되어 갑니다.

신앙인은 날이 갈수록 열매를 맺어 갑니다.

 

종교인은 종말을 두려워 합니다.

신앙인은 주여! 어서 오소서 날마다 기도하며 살아 갑니다.

 

종교인은 지옥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신앙인은 천국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당신은 종교인입니까? 신앙인입니까?

침묵하는 성도        

 

묵하는 성도는 성도가 아니다.

나쁜 열매를 맺는 나무는 말할 것도 없지만

열매가 없거나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도

불에 던져진다.

-조지 스윈녹-


신앙생활은 불편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말로

기분 좋게 신앙생활을 하고싶어 합니다.

하지만 은혜를 받으면 실제 신앙생활은

실제로 그렇게 마음 편히 할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열매 없어도 교회에 나와 예배만 잘 참석하면

천국을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까?

아닙니다. 심판의 근거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나쁜 열매를 맺는 나무 뿐만 아니라

열매맺지 않는 나무도 불에 던져진다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별로 고민하도록 만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각 개인이 자신의 영혼과 구원에 대해 심각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강단의 설교는 비록 민감하고 불편하더라도

성도들 한명 한명이 자신의 영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도록 설교를 해야 하며

또한 성도들도 이웃의 영혼을 위해

권면하는 말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각자가 자신의 신앙에 있어 진지하게 고민하고

또 다른 성도의 신앙을 도울 수 있도록

세워줄 수 있는 성도가 될 수 있길 바랍니다.

불통의 벽        

 

불통의 벽을 넘기 위하여

 

“불통의 벽, 바보의 벽을 무너뜨리고 제대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결국 ‘나’ 라는 벽을 넘어서야 한다. 나 자신은 모든 소통의 시작이며 마지막이다.” 진희정 저(著) 「노딩코드」(위즈덤하우스, 84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등 뒤에 있는 사람을 껴안는 법은, 내 몸이 돌아서는 것입니다. 자기 돌아섬, 자기 반성은 모든 소통의 시작이며 중간이며 마지막입니다. 그런데 내가 상대방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돌아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우리의 심성 가운데는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 는 생각이 늘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료들 간에도, 부부 간에도, 부모와 자녀 간에도 ‘자기 생각’ 때문에 늘 불통(不通)의 벽에 부딪힙니다.

 

나의 옳음을 내려 놓기란 죄성이 가득한 우리로선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뿐만 아니라 내가 먼저 돌아선다면 내가 그에게 졌다는 수치감에 사로잡히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이런 우리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고린도전서 13절 6절의 말씀입니다. “당신과 나 사이에 하나님이” 계시는 사랑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나와 당신이. 하나님의 마음과 가치관으로 당신과 내가 함께 맞추어 가는 것이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사랑입니다.

 

이것이 바로 끊어지지 않는 ‘삼겹줄 사랑’이고 소통의 사랑입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전4:12)

 

한재욱 목사

 

거룩은 하나님을 향해 한마음을 갖는 것이다        

 

강준민목사 

 

거룩은 하나님을 향해 한마음을 갖는 것이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것이 두 마음을 품는 것이다.

의심하고 염려할 때 우리 마음이 나누인다.

마음이 나누일 때 하나님의 뜻을 성취할 수 없다.

하나님은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시고,

거룩은 바로 전심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 속에서 이룩된다.

한마음이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마음이다.

 

하나님은 혼합하는 것을 싫어하신다.

무엇이든 혼합할 때 거룩은 깨어진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는 것을 금하셨고,

두 재료로 직조한 옷을 입는 것도 금하셨다.

 

또한 육축도 다른 종류와 교합시키는 것을 금하셨다.

하나님은 순수한 것을 원하신다.

하나님이 우상 숭배를 금하신 것도 그래서이다.

하나님이 특별히 모든 죄 가운데서 간음죄를 싫어하신 이유도

바로 두 마음을 품는 것을 싫어하시기 때문이다.

한마음을 추구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뜻을 정해야 한다.

다니엘은 포로로 끌려간 바벨론 땅에서 거룩한 삶을 살기로 뜻을 정했다.

하나님을 위해 자기를 더럽히지 않는 것이 거룩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이 물질, 권력, 섹스, 정보 같아 보이지만

정작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영적인 감화력이요, 거룩이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은 의인 열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명을 위해 생명을 내어 놓는 한 사람을 찾고 계신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인기와 명성이 아닌,

거룩한 영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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