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상식

흑사병

열려라 에바다 2024. 1. 20. 14:43

사라지지 않은 흑사병

1799년 3월, 이스라엘의 항구 도시 자파에서 나폴레옹의 1만 2000명의 군사 사이에 흑사병이 퍼졌다.

중세 유럽의 막을 내리게 한 흑사병의 기세는 18세기에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그로, 〈자파의 페스트하우스를 방문하는 나폴레옹〉, 1804년, 파리 루브르 박물관.

흑사병의 공포는 유럽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는데, 우선 예술의 후퇴를 가져왔다.

운이 좋아 살아남은 예술가들이 그릴 만한 것은 너무나 생생한 기록 즉 페스트가 남긴 공포의 기록뿐이었다.
이 시대에 수많은 흑사병 관련 작품이 전해 오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흑사병(黑死病)plague. 페스트임을 모르는 독자는 안 계실 것이다.

이 병은 쥐벼룩이 옮기는 병이니 주위에 쥐를 없애면 걸릴 염려가 없다.

물론 21세기에 들어서 흑사병이 창궐한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으니 요즘 늘어가는 야생동물의 주요 식량인 쥐를 너무 못살게 굴 일도 아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흑사병이 사람과 사람을 통해 감염되는 바이러스성 역병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니까 흑사병의 창궐에 쥐벼룩은 아무런 책임도 없다는 것이다.

동물학자 크리스토퍼 던컨과 사학자 수잔 스콧이 공동 저작한 《흑사병의 귀환》이란 책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책을 읽지 않았지만 서평만으로도 몸이 오싹해진다.

그러나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책을 읽고 싶으니까 여기서는 중세 유럽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흑사병에 대해서만 알아본다.

흑사병은 14세기 중반, 그러니까 1347년 무렵 킵차크(Kipchak) 군대가 제노바 시를 향해 페스트 환자의 시신을 쏘아 보냄으로써 유럽에 전파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이다.

그러나 이전부터 동방 원정에 나섰던 십자군 병사들이 보석과 동방 문화를 약탈해 오면서 부수입으로 한센씨병(나병)과 흑사병을 얻어 왔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때부터 순식간에 퍼져 나간 흑사병은 불과 수년 동안 시칠리아,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과 프랑스, 유럽 중부의 오스트리아, 스위스, 독일을 거쳐 벨기에, 네덜란드로, 그리고 처음 선보인 지 고작 3년여 만에 스칸디나비아 국가에까지 이르렀다.

앞서 살펴본 대로 흑사병은 쥐벼룩 외에 인간을 통해서도 전염되었기 때문에 도시에서 더욱 위력을 발휘했고, 그 가운데서도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믿으면서 공동체 생활을 하는 수도원에서 가장 큰 희생자를 냈다.

이렇게 되자 겁에 질린 사람들은 사람을 찾기 힘든 시골 한적한 곳을 찾아 도망치듯 떠났다.

한편 흑사병이 유럽 전역을 공포에 떨게 하자 모든 외국 선박에 대해서는 항구에 내리기 전에 40일 동안 검역정선을 명령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40일 동안 환자가 발생하지 않은 배에 한해서 상륙을 허가한 것이다.

이는 꽤 합리적인 방안이었는데 페스트의 잠복기가 길어야 10일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40일 동안 아무 일도 없다면 그 배의 선원들은 안전하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조치가 페스트의 확산을 크게 막은 것은 아니었다.

그 무렵 기록에 따르면, 전 유럽 인구의 1/3 내지 1/4이 사망했다.

숫자로는 2500만에서 6000만 명에 이르는 유럽인이 이 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두 숫자 사이의 간격은 페스트가 지속된 기간과 지역별 사망자 수의 집계 등의 차이에 기인한다. 여하튼 서유럽의 인구는 16세기가 되어서야 페스트 창궐 이전 수준을 회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후에도 페스트의 위력은 심심찮게 계속되었으니 1664~65년에는 런던 인구의 20퍼센트 정도가 이 병으로 목숨을 잃었고, 19세기 말에는 중국에서도 엄청난 인명을 앗아가 버렸다.

흑사병이 가져온 유럽인들의 공포와 사고의 변환을 잘 보여 주는 문학 작품이 있으니 바로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이다.

‘열흘간의 이야기’란 뜻의 이 작품에는 흑사병을 피해 시골의 한적한 별장에 몸을 숨긴 청년 셋과 처녀 일곱 명이 열흘간에 걸쳐 차례로 이야기한 기록 즉 100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한편 흑사병의 공포는 유럽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는데, 우선 예술의 후퇴를 가져왔다.

예술이 기계가 아니라 사람의 창의력에서 비롯되는 것인 만큼 예술가들이 사라지고 난 후 그 자리를 메우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창의력을 높이기 위해 예술가들이 선호하던 여행은 이제 금기가 되었다.

따라서 운이 좋아 살아남은 예술가들이 그릴 만한 것은 너무나 생생한 기록, 즉 페스트가 남긴 공포의 기록뿐이었다.

이 시대에 수많은 흑사병 관련 작품이 전해 오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 다음에 나타난 현상은 사회 계층의 급격한 변동이었다. 수많은 노동자의 희생은 지주의 파산으로 이어졌고,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임금은 급격히 상승했다.

게다가 금은보화는 아무리 쥐벼룩이 공격해도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따라서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 이전에 비해 훨씬 많은 재산이 할당되었다.

이 시대만큼 졸부가 급격히 출현한 시대도 드물 것이다.

그리고 졸부들은 오늘날에도 그렇듯이 머리를 채우기보다는 겉모습에 신경 쓰는 법.

그들로 인해 패션 산업이 급격히 성장했다.

한편 앞서 언급했듯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수도원 때문에 성직자의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이로 인해 성직자의 공급이 선결 과제로 떠올랐다.

결국 이전까지 성직자 희망자에게 요구하던 자격 조건은 완화될 수밖에 없었고, 미신과 이단에 쉽게 흔들릴 만한 인물들도 이 시기에는 성직자로 양성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결과 일반 백성들의 공포에 휩싸인 심리 상태를 이용한 온갖 미신과 이단이 출현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페스트 [ Plague ]​

페스트 퇴치 기념비

페스트균의 감염에 의하여 일어나는 급성 감염병.

14세기 중기 전유럽에 대유행한 이래 흑사병(黑死病: Plague)이라고도 한다.

원래는 야생의 설치류(齧齒類:다람쥐·쥐·비버 등)의 돌림병이며 벼룩에 의하여 동물 간에 유행하는데, 사람에 대한 감염원이 되는 것은 보통 밭다람쥐·스텝마못 등으로부터 벼룩이 감염시킨 시궁쥐(집쥐)·곰쥐 등이다.

 

이러한 보균동물이 있는 지방에는 풍토병(風土病)으로 존재하고 있고, 중국 동북부·중국 대륙의 오지, 몽골·중앙아시아(주로 러시아) 등은 그 전에 유행하여 보균동물이 잔류되어 있으므로 기근 등이 닥치면 유행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또한 남아메리카 중부에서 북부, 아프리카 중부, 미얀마·이란·인도·베트남·캄보디아·인도네시아에서 최근 10년간에 유행한 기록이 있다.

 

증세가 격심하고 사망률도 높으며, 전염력이 강하기 때문에 법정전염병인 동시에 검역전염병으로 분류되어 있다.

환자로부터의 비말감염(飛沫感染:환자가 재채기나 기침을 할 때 튀어나온 병원균에 의하여 감염됨) 또는 환자의 분비·배설물이 부착된 물품으로부터 기도감염(氣道感染)도 있으나, 보통은 보균동물을 흡혈한 벼룩에 물려서 감염되는 경우가 많다.

이환(罹患:병에 걸림)하면 장기간의 면역을 얻는데 드물게 재이환하는 일도 있다.

 

일반적인 증세는 갑자기 오한전율(惡寒戰慄:오한이 심하여 몸을 부들부들 떠는 것임.)과 더불어 40℃ 전후의 고열을 내고 현기증·구토 등이 있으며 의식이 혼탁해진다.

잠복기는 2∼5일이고, 순환기계(循環器系)가 강하게 침해받는다.

몇 가지 병형으로 나누어지는데, 주된 것은 선(腺)페스트와 폐(肺)페스트의 두 병형이다.

 

또 페스트균(Pasteurella pestis)는 그람음성균인 단간균(短桿菌)으로 조건에 따라 변형하기 쉽다. 운동성은 없고 아포(芽胞:민꽃식물에서, 모체를 떠나 번식을 맡은 세포)도 없다.

1894년 프랑스 세균학자 예르생이 홍콩에서 발견하여 분리하였다.

 

1347년 킵차크 부대에 의해 아시아 내륙의 페스트가 유럽에 전파된 이래, 유럽은 수 년에 걸쳐 대규모의 피해를 보게된다.

일명 '흑사병'이라고도 불렸던 이 병으로 인해 당시의 유럽 인구가 1/5로 줄어들었으며,

백년전쟁이 중단되기도 했다.

대규모의 인구 손실은 노동력의 손실로 이어졌으며, 이는 유럽 경제의 기반을 이루고 있던 장원제도와 봉건제도를 뒤흔들었다.

또한 죽음에 대한 공포와 흑사병을 고치기 위한 노력은 사람들로 하여금 미신에 지나치게 의존하도록 하였다.

선페스트

약 90%가 이 병형이며, 피부로부터 침입한 페스트균은 소속 림프절에 이르러 출혈성 화농성염증을 일으킨다.

이것이 원발성 횡현(原發性橫痃)이며 지름 3~8cm에 이르고 통증이 심하다.

이어 균은 림프 또는 혈류(血流)에 의하여 다른 림프절에 이르러 속발성 횡현을 일으키는데, 서혜부림프절·대퇴부림프절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그 후 전신성이 되어 패혈증(敗血症)을 일으켜 사망한다.

폐페스트

가장 위험한 병형이다.

균을 흡입함으로써 급격히 출혈성 기관지폐렴(페스트 폐렴)을 일으키는 것으로 다량의 혈성장액성(血性漿液性)의 객담(喀痰:가래)을 내고 호흡곤란이 심하다.

경과는 고열이 약간 이완하여 계속되는데, 4~5일 내에 사망하는 일이 많고 그 전에 체온이 급격히 떨어진다.

회복될 때는 열이 이완하면서 점차 떨어진다. 치료에는 주로 스트렙토마이신을 사용하는데, 술파디아진·항페스트혈청도 사용된다.

대증요법으로서는 강심제를 사용하고 선종(腺腫)의 절개나 적출도 시행된다.

조기에 약제를 사용하면 예후가 양호하고, 사망률은 5~10% 정도이다.

예방주사도 실시된다.

항페스트혈청에 의한 수동면역은 2~3주일, 가열백신이나 약독생균(弱毒生菌)에 의한 능동면역은 6개월간 유효하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