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자료

바리새파 신학과 사두개파 신학의 차이점

열려라 에바다 2024. 12. 5. 12:06

바리새파 신학과 사두개파 신학의 차이점

로마가 유대를 점령한 후 마카베오(Maccabees)의 혈연이 있는 에돔사람 헤롯을 왕으로 임명하였으며, 헤롯왕이 죽은 후 그의 아들인 알케라우스(Archelaus)가 유대와 이두매와 사마리아를 통치하였습니다 그 후 알케라우스는 가이사 아우그스트 황제에 의해 폐위되었고 그가 다스리는 지역은 로마 총독의 직할 통치구역으로 전환되었습니다 로마는 식민국가 정책의 원활한 수행을 위해 유대인들의 자치기관으로 산헤드린(Sanhedrin) 공회를 조직하였습니다

 

산헤드린(히브리어: סנהדרין, 그리스어: συνέδριον, synedrion, sanhderin)은 "함께 앉는다"는 뜻으로 모든 유대의 도시에 유대교 법에 의해 세워진 23명의 판관들의 회의기구입니다 로마제국에서는 반(反)로마투쟁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 식민지 국가의 종교와 자치활동을 인정했으므로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산헤드린 의회는 영향력이 있는 엘리트 집단이었습니다

 

대 산해드린(Great Sanhedrin)은 유대교 판관들의 기구로 최고 법원 역할을 하는 고대 이스라엘의 재판 기구였습니다 대 산해드린은 지도자인 나쉬, 코헨 가돌(대제사장/대사제), 부 판관인 아브 베잇 딘, 그리고 69명의 평회원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주후 70년 멸망하기 전의 예루살렘 제2성전 시기에, 대 산헤드린은 성전 안에 있는 돌에 낮 동안 열렸으며, 대제사장의 지도아래 주로 사두개파와 바리새파에 속한 유대인들이 권력을 좌우하였습니다

 

 

1) 유대교와 유대교 경전

 

유대교는 기독교와 대비되는 종교로 유대인의 종교로서 구약성경의 10계명을 지키는 사람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1400만여 명의 신도가 있는 것으로 통계되고 있으며 특히 공산주의 국가들과 독일 나치의 탄압을 받아온 종교입니다 유대교는 율법의 문자적 해석을 주장하는 보수파와 자유로운 해석을 주장하는 개혁파로 나뉘며, 예수 그리스도가 활동하는 주후 초기에는 바리새파(Pharisees)), 사두개파(Sadducees), 에세네파(Essenes) 혁명당 등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그 가운데 바리새파와 사두개파의 활동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토라(히브리어:תּוֹרָה,율법)는 "가르침", "법" 이란 뜻으로 구약성경의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등 모세오경 (תּוֹרַת־מֹשֶׁה)을 말하는 것으로 유대교 경전가운데 가장 중요한 경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유대 전통에 따르면, 토라는 하나님이 모세에게 전해준 것이라고 하지만 성서학자들은 모세오경 또는 토라를 P(제사장 집단), D(신명기 집단) 등의 복수의 저자들이 JDPE문서로 전승된 이야기들을 그들의 신학에 맞게 편집한 신학작업의 산물로 보고 있습니다 오늘날 토라, 즉 모세오경을 경전으로 삼고 있는 종교는 유대교를 비롯하여 기독교와 이슬람교 등 3대 종교뿐입니다

 

타나크(Tanakh,히브리어:תנ"ך)는 토라와 함께 널리 알려진 유대교의 경전으로서 이 이름은, 이를 구성하는 세 분류명을 늘여서 쓴 형태이며 (תורה נביאים כתובים), 각 분류명의 맨 앞글자를 따서 약칭으로 '타나크(תנ"ך)'가 된 것입니다

 

유대인의 성경은 주전 1500~400년대, 장구한 세월을 거쳐 바빌로니아, 팔레스티나, 이집트 등의 지역에서 각각 다른 책들로 기록된 경전들을 모아 놓은 것으로서, 장기간의 검토를 거쳐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유대인의 전통에 의하여 타나크는 총 24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를 경전으로 받아들인 기독교에서는 오늘날 종파에 따라 다른 분류를 쓰고 있습니다 기독교에서 공인된 구약성서와 유대교의 성경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내용이 거의 일치하나, 경전을 나누는 분류에서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경전의 목록을 확정할 당시 따랐던 전승의 차이에서 기초하는 것입니다

 

처음에 성경은 각각 다른 지역에서 쓰여진 기록이었기 때문에, 지역 및 시대에 따라 서로 다른 판본과 낱권들이 생겨나, 성서를 하나로 묶는 과정에서 어떤 것을 경전으로 삼을지에 대해서 다양한 견해와 의견들이 집약되었습니다 결국 유대교에서는 히브리어로 쓰인 판본이 남아 있는 문서를 대상으로 경전화 작업을 행하였으며, 주전 4세기에 오늘날의 모습으로 체계화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당시 그리스어로 된 판본만이 있던 일부 문서들은 경전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한편 기독교에서는 이집트에서 만들어진 70인역에 보존된 내용을 근거로 구약성서를 정립하게 되었으며, 70인역에는 제2경전이라 불리는 7개의 서적 및 2개의 정경 추가분이 포함되어 있으나, 히브리 사본이 없는 관계로 유대교에서는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엄격히 말하면 타낙 또한 성서의 판본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의 원문은 소실되어 없으며 원문의 본질에 적합하거나 유사한 여러 판본들이 존재하는 가운데 표준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은 '마소렛'이라 불리는 유대인 성서 본문 비평가들의 작업과 전승에 의해 내려온 판본인 것입니다

 

탈무드(히브리어:תלמוד, 영어:Talmud)는 유대교의 규율과 율법과 관한 랍비의 해석을 담은 유대교의 중요한 경전입니다 탈무드는 미슈나(Mishnah)와 게마라(Gemara) 등 두 가지로 분류되며, 그 가운데 미슈나(Mishnah)는 유대교의 구전된 규율을 200년경에 글로 모은 것이며, 게마라(Gemara)는 미슈나와 그 밖의 타나크 등에 대한 해설과 논의들을 500년경에 정리한 것입니다 탈무드와 게마라는 혼용어로 쓰이기도 하는데 게마라는 랍비 규율의 기반이 되며 다른 랍비 문서에도 가장 많이 인용되고 있습니다 탈무드를 히브리어 시샤 세다림(shisha sedarim)의 약자로, 미슈나의 여섯 order을 의미하는 샤스(Shas,ש"ס)라고도 부르고 있습니다 탈무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인용할 정도로 유대교의 이념과 철학을 가장 많이 담고 있는 경전입니다

 

 

 

2) 바리새파(Pharisees)

 

구약시대 말기 유대의 역사는 파쟁과 분쟁으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파쟁운동은 이미 포로시대 때부터 시작된 것이나 마카베오(Maccabees) 독립전쟁 이후 더욱 극심하여졌습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주장한 율법준수와 성별 생활은 일종의 구약의 청교도 운동으로 변화했고, 이것이 바리새파 (Pharisees)운동의 효시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교적인 불순으로부터 구별을 내세운 바리새파 운동은 마카베오 독립운동과 함께 세력이 크게 확장되면서 유대인들의 종교적 주종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본래 "분리된 자" 들이라는 뜻의 바리새파는 사두개파(Sadducees), 에세네파(Essenes)와 함께 유대 3대 당파 중의 하나로 주전 2~3세기경 헬레니즘의 영향에서 벗어나 율법과 정결에 대한 규례를 철저히 준수하며 부활을 믿었던 종파였습니다 로마시대에는 6,000명 이상의 당원을 가질 만큼 왕성했으며 유대인의 신앙적 지도자로 자처했으나 지나친 율법주의에 빠져 예수 그리스도와 세례 요한으로부터 책망을 받기도 하였습니다(마태복음 3:7)

 

A. 구약 율법의 연구와 준수를 중요시하며 동시에 "조상들의 전통"을 중시하였습니다

B. 영혼의 불멸을 믿으며 죽은 자의 부활과 내세를 신앙하였습니다

C. 예정론을 신앙하였습니다

D. 행위 구원론을 가르치며 율법의 내면적인 뜻보다 외면적인 준수를 더 중시하여 외식화 되었습니다

E. 회당 중심으로 활동하였습니다

 

 

 

3) 사두개파(Sadducees)

 

사두개파(Sadducees)는 거의 모든 면에서 바리새파(Pharisees)와 대조적이었습니다 사두개라는 이름은 안티고누수(Antigonus)의 제자 사도크(Zadok)라는 이름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른 견해로는 다윗 시대의 제사장 사독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사독의 후손들이 솔로몬 시대 이후 계속해서 제사장의 직무를 맡아왔기 때문인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사두개파는 현세적으로 헬라문화에 개방적이었으나 종교적으로는 보수적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종교적이라면 사두개인들은 정치적 색채가 강한 집단들로 당시의 정치 상황을 지지했습니다 때문에 마카베오 전쟁 때에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비록 소수의 무리이기는 했으나 제사장 직무를 독점했고, 바리새파와 함께 산헤드린 공회의 중요한 회원으로서 법관의 역할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바리새파가 백성들과 함께하며 내세적 종교성향을 지녔다고 한다면 사두개파는 백성들을 지배하는 정치적이며 친로마적인 역할을 하였던 것입니다

 

신앙적으로 사두개파는 성문화된 모세의 율법만을 고수하며, 바리새파의 주석과 구전율법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죽은 자의 부활, 천사, 영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현세적 종교형식을 유지하였습니다(마태복음 22:23, 누가복음 20:27, 사도행전 23:8) 유대교의 신학과 전통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겼던 바리새파와는 달리 헬레니즘 문화의 사상을 수용함으로써 분명한 전통적 유대경전을 훼손시켰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인본주의에 영향을 받아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예정론을 부인하고 인간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였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와 세례요한의 비난의 대상이 되었으며(마태복음 3:7, 16:12), 특히 세례요한은 사두개파를 일컬어 "독사의 자식"들이란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그들을 자극하는 상황을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이로서 동일한 종교적 성향과 유대교적 관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바리새파와 함께 사두개인들은 사도들을 박해하고 공격하였습니다(사도행전 5:17)

 

친로마제국의 영향력과 비호 아래 유대교의 정치적, 종교적, 경제적인 기득권을 누린 사두개파였지만 결국 예루살렘이 유대 독립전쟁으로 붕괴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A. 구약성경 이외의 모든 조상들의 전통과 해석을 부인하였습니다

B. 영혼의 불멸을 부인하고 내세의 존재도, 죽은 자의 부활도 믿지 않았습니다

C. 하나님의 섭리를 부인하고 인간의 자유의지를 신뢰하였습니다

D. 구원의 필요성을 부인하고 합리주의와 현실주의에 만족하였습니다

E. 성전 중심으로 활동하며 정치적이고 엘리트 의식이 강하였습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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