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우리를 언제 쓰시는가?
글쓴이/봉민근
하나님은 우리를 언제 쓰시는가?
하나님은 힘 있고 능력 있는 자를 쓰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왕자 모세를 부르지 않으시고 노쇠한 목동 모세를 부르셨다.
많이 배운 사울을 부르지 않으시고 부서진 바울을 불러 일꾼으로 세우셨다.
어부 베드로를 불러 세계선교의 기초를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분이시다.
기드온의 300 용사를 부르시고 구원은 숫자에 있지 않음을 보여 주셨다.
하나님은 약한 목동 다윗을 부르시고
연약한 어린 사무엘을 불러 지도자로 세우셨다.
노예 요셉을 불러 총리로 세우신 이가 하나님이시다.
스스로 능력 있고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자기의 공로로 돌리는 교만한자를 멀리하신다.
나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서 주 앞에 손들고 나오는 자를 긍휼히 여기신다.
절망하고 좌절 가운데 있는 자를 들어 역사를 이루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절망할 때, 세상에 소망이 없다고 믿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때가 하나님이 일하실 때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가 있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인간이 가로채는 것을 결코 허락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깨닫고 돌이켜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 꿇는 자를 높이 들어 쓰신다.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부족을 느낄 때가 하나님께 쓰임 받을 절호의 기회다.
그리스도인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부름 받은 존재들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빠진 그릇은 결코 하나님께서 쓰시지 않는다.
인생의 목적이 오직 하나님의 영광에 있음을 잊으면 타락한 불신자가 될 수 있다.☆자료/ⓒ창골산 봉서방

존 플래처의 자기 반성
존 플래처는 9개조의 좌우명을 만들어
이것을 거울삼아 자기 속사람의 모습을 비추어 보고 스스로를 깊이 훈계했다.
"첫째. 내 영혼의 눈이 깨어 있는가?
오늘 아침 눈을 뜬 이래그 사상이 미혹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고 있는가?
둘째. 나는 기도 할 때마다 더 한층 하나님께 가까워졌는가?
그렇지 않으면 나약한 정신에 붙들린 것이 아닌가?
셋째. 나의 신앙은 방심 때문에 약해졌는가?
분투에 의해서 강해졌는가?
넷째. 나는 일체의 불친절한 말과 사상을 이겨냈는가?
다른 사람이 나를 높일 때 기뻐하지 안았는가?
다섯째. 나는 빛과 함께 기회가 허락하는 한 귀한 시간을 가장 잘 사용하였는가?
여섯째. 나는 하나님을 위해 절약해야 할 경우 절약했는가?
자신을 기쁘게 할 만한 무언가를 절약하지 않았는가?
일곱째. 나는 말이 많으면 죄가 없을수 없음을 기억하고
나의 혀를 잘 지배했는가?
여덟째. 나는 몇 번 나를 이겼는가?
아홉째. 나의 생활과 말은 복음이나 그리스도에게 영광을 돌리고 있는가?"
교회사에서 골라낸 1882 가지 신앙 이야기 에서 ☆자료/ⓒ창골산 봉서방

우리를 아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를 아십니다.
우리를 “아신다”는 이 단 한마디가 우리에게는 무한한 위로가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진토인 것을 아시고,
우리의 패역함과 교만을 아십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그 더럽고 추악한 사망의 구덩이를 벗어나지 못할 것도 아십니다.
하나님 외에는
이 구덩이에서 우리를 건져낼 존재가 없다는 것도 아십니다.
그래서 친히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종의 형체를 가지고 인간의 모양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모든 고통을 직접체험하심으로 우리를 아셨습니다.
단지 이론으로만 아시는 것이 아니라
직접 체험하셨고 진심으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우리에게 그 어떠한 일들이 일어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아시며
그 누구도, 우리 스스로도 해결 할 수 없는 것을
해결하시며 우리를 위로하시고 보호하십니다.
"산들은 떠나며 언덕들은 옮겨질지라도
나의 자비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나의 화평의 언약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시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사54:10 ☆자료/ⓒ창골산 봉서방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
교회의 중요성에 대해 쉽게 간과하거나 하찮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는 구원과 상관없다거나, 교회에 속하는 것이 필수사항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예수만 잘 믿으면 되지 굳이 교회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신 믿음의 공동체이며, 그리스도는 이 공동체의 머리가 되십니다.
비록 이 땅에 있는 교회가 불완전하고 연약함 가운데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 교회를 통해 당신의 백성들을 모으시고, 당신의 말씀을 듣게 하시며, 당신께 예배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리스도인 개인이 갖지 못하는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 ☆자료/ⓒ창골산 봉서방

인생의 진리
젊어서는 재력이 있어야 살기가 편안하나,
늙어서는 건강이 있어야 살기가 편안하다.
젊어서는 재력을 쌓느라고 건강을 해치고,
늙어서는 재력을 허물어 건강을 지키려한다.
재산이 많을수록 죽는 것이 더욱 억울하고,
인물이 좋을수록 늙는 것이 더욱 억울하다.
재산이 많다 해도 죽으며 가져갈 방도는 없고,
인물이 좋다 해도 죽어서 안 썩을 도리는 없다.
노인학 교수도 제 늙음은 깊이 생각해 보지 못하고,
호스피스 간병인도 제 죽음은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옆에 미인이 앉으면 노인이라도 좋아하나,
옆에 노인이 앉으면 미인일수록 싫어한다.
아파 보아야 건강의 가치을 알수 있고,
늙어 보아야 시간의 가치를 알수 있다.
권력이 너무 커서 철창신세가 되기도 하고,
재산이 너무 많아 쪽박신세가 되기도 한다.
육신이 약하면 하찮은 병균마저 달려들고,
입지가 약하면 하찮은 인간마저 덤벼든다.
세도가 등등 할 때는 사돈에 팔촌도 다 모이지만,
쇠락한 날이오면 측근에 모였던 형제마져 떠나간다.
지나가 버린 세월을 정리하는 것도 소중하나,
다가오는 세월을 관리하는 것은 더 소중하다.
늙은이는 남은 시간을 황금 같이 여기지만,
젊은이는 남은 시간을 강변의 돌 같이 여긴다.
개방적이던 사람도 늙으면 폐쇄적이기 쉽고,
진보적이던 사람도 늙으면 보수적이기 쉽다.
거창한 무대일지라도 자기 출연시간은 얼마 안 되고,
훌륭한 무대일수록 관람시간은 짧게 생각되게 마련이다.
자식이 없는 사람은 자식 있는 것을 부러워하나,
자식이 많은 사람은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말한다.
자식 없는 노인은 노후가 쓸쓸하기 쉬우나,
자식 많은 노인은 노후가 심난하기 쉽다.
못 배우고 못난 자식도 효도하는 이가 많고,
잘 배우고 잘난 자식도 불효하는 자가 많다.
있는 부모가 병들면 자식들 관심이 모여들지만,
없는 부모가 병들면 자식들 걱정만 모이게 된다.
세월이 촉박한 매미는 새벽부터 울어대고,
여생이 촉박한 노인은 저녁부터 심난하다.
제 철이 끝나가는 매미의 울음소리는 처량하게 들리고,
앞날이 얼마 안 남은 노인의 웃음소리는 그마져 서글프다.
육신이 피곤하면 쉴 자리부터 찾기 쉽고,
인생살이 고단하면 설 자리도 찾기 어렵다.
출세 영달에 집착하면 상실감에 빠지기 쉽고,
축재 부귀에 골몰하면 허무감에 빠지기 쉽다.
악한 사람은 큰 죄를 짓고도 태연하지만,
선한 사람은 작은 죄라도 지을까 걱정한다. ☆자료/ⓒ창골산 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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