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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에 지지 말고 부지런함에 속지 말고

열려라 에바다 2026. 1. 1. 16:49

 

게으름에 지지말고 부지런함에 속지말고    

봉서방추천 2조회 3126.01.01 03:21댓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부지런히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일마다 예배에 참석하고, 봉사하고, 교회 프로그램에도 참여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참으로 신실해 보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렇게 열심히 움직이고 있으면서도 하나님과의 관계는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하나님을 위한 일’을 하느라 정작 ‘하나님 자신’을 놓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역대하 29장 6절~11절에서 히스기야 왕이 한 고백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선대 왕 아하스가 하나님을 멀리하고 성전을 닫아버렸던 시대를 이어받아, 다시 예배를 회복하는 일을 시작합니다. 그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불러 모아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조상들이 범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그를 버리고 그의 얼굴을 떠나고 여호와의 성소를 등졌으며...” (역대하 29:6)

히스기야는 하나님과의 단절, 즉 ‘게으름’의 뿌리를 정확히 짚었습니다. 게으름은 단순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성소의 문이 닫히고, 등불이 꺼지고, 분향이 멈추었을 때, 그것은 단순한 ‘행동의 부재’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소통이 끊어진 영적 게으름이었습니다.

⚙️삶의 게으름 VS 신앙의 게으름


— 같은 듯 다르다


게으름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삶의 게으름, 둘째는 신앙의 게으름입니다.

삶의 게으름은 일상적인 책임을 미루거나, 해야 할 일을 게을리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일이나 공부, 가정의 책임을 감당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신앙의 게으름은 더 깊고 심각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홀히 하는 것, 즉 예배와 기도, 말씀을 등한시하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나는 신앙적으로 부지런하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신앙의 중심이 아닌 활동에만 집중할 때가 많습니다. 교회 봉사, 프로그램 참여, 혹은 세미나 참석으로 스스로를 위로하지만, 정작 하나님과의 깊은 대화는 멈춰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앙의 게으름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간절함’이 식을 때, ‘비법’을 찾는 신앙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게으름의 본질
— 하나님과의 단절



게으름은 단순한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매일 우리와 대화하기를 원하시는데, 우리가 예배를 소홀히 하고, 기도를 미루고, 말씀을 뒤로 미루면, 그 관계의 끈이 점점 느슨해집니다.

히스기야의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 문이 닫히고, 제사가 중단되고, 하나님께 향하는 마음이 식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일상에서는 ‘열심히’ 살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방향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빠진 열심은 결국 게으름과 같습니다.

게으름은 하나님이 중심에서 밀려난 상태입니다.
내가 주인된 자리에서 신앙을 운영하려고 할 때, 그때 게으름은 싹틉니다.

🧭비법을 찾는 신앙은
게으름의 다른 얼굴

오늘날 신앙생활을 돌아보면, 많은 이들이 ‘비법’을 찾습니다.

“기도가 빨리 응답되는 법이 있을까?”
“영적으로 빨리 성장하는 세미나가 있을까?”
“말씀을 쉽게 이해하는 비결은 없을까?”

물론 배움의 자리는 귀하고, 세미나나 집회는 우리의 신앙을 일깨우는 좋은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을 대신하는 중심이 되어버릴 때, 우리는 이미 게으름의 함정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이스라엘에게 비법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단 한 가지를 명령했습니다.
“성전을 정결하게 하라. 예배를 회복하라.”

예배가 무너진 곳에는 반드시 게으름이 자리를 잡습니다.
게으름은 예배의 부재에서 시작되고, 예배의 회복으로 끝이 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은 예배에서부터

예배는 하나님과의 소통의 통로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찬양하고, 말씀을 듣고, 우리의 마음을 내어드릴 때, 하나님은 그 자리에서 우리와 다시 만나 주십니다.

예배는 단순히 교회에서 드리는 ‘시간’이 아닙니다.
예배는 ‘관계’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을 내 삶의 주인으로 다시 세우는 행위입니다.

히스기야는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내 아들들아, 게으르지 말라. 여호와께서 이미 너희를 택하사 자기 앞에 서서 섬기며 그를 섬기며 그에게 분향하게 하셨느니라.” (역대하 29:11)

즉, 게으름은 사명과 소명을 잊는 것입니다.
우리는 선택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예배자로 살게 하셨습니다. 그 부름을 잊고 세상의 바쁨과 자기중심적인 열심 속에 갇혀 있을 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게으르지 말라. 나와 다시 만나자.”

⏰내 삶의 우선순위는 어디에 있는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하려면, 삶의 우선순위를 살펴보면 됩니다.
나는 내 시간을 어디에 가장 많이 쓰고 있을까?
나는 내 지갑 속의 돈을 어디에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을까?

시간과 돈은 우리의 ‘마음의 방향’을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예배에 시간을 내지 못하면서, 드라마나 유튜브에는 몇 시간을 쓰고 있다면,
하나님께 드릴 예물은 아깝다고 느끼면서 카페와 쇼핑에는 쉽게 지갑을 여는 나 자신을 본다면,
그것이 바로 ‘게으름’이 우리의 신앙을 잠식하고 있는 증거입니다.

히스기야는 백성에게 성전의 문을 열고, 다시 등불을 켜고, 제사를 준비하게 했습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 삶의 성전 문을 다시 열어라. 예배의 불을 다시 켜라.”

🌿기본으로 돌아가라
— 예배로부터 다시 시작하라

게으름의 치료제는 ‘비법’이 아니라 ‘기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복잡한 신앙공식을 배우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이 원하시는 것은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아모스 5:4)는 단순한 명령입니다.

■매일의 말씀 묵상
■진심어린 기도
■정성된 예배 참여
■이웃을 향한 사랑의 실천

이 단순한 순종이 우리의 신앙을 다시 숨 쉬게 합니다.
게으름이 무너뜨린 관계는 화려한 세미나가 아니라,
겸손히 무릎 꿇는 예배에서 다시 회복됩니다.

🌤마음의 게으름을 이기는 하루의 습관

■아침에 가장 먼저 하나님께 인사하기 — “하나님, 오늘도 함께해주세요.”

■성경 한 구절 묵상하기 — 길지 않아도 좋습니다. 하나님과의 연결을 유지하세요.

■감사일기 쓰기 — 게으름은 불평에서 자라고, 감사는 부지런함을 키웁니다.

■주일예배를 생명처럼 지키기 — 다른 약속보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먼저 세우세요.

■지갑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기 — 헌금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마무리
— 하나님께서 다시 성전의 문을 여신다

역대하 29장은 단순히 성전정화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게으름으로 닫혔던 관계의 문을 여는 사건입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영혼을 살렸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도 그와 같은 회복이 필요합니다.
게으름은 하나님이 없는 바쁨이며,
예배는 하나님이 함께하는 쉼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게으르지 말라. 나와 함께하라. 너를 택하여 내 앞에 서게 하였노라.”

우리가 다시 예배의 자리를 세우고,
시간과 마음과 물질의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드릴 때,
그때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꺼졌던 등불을 다시 밝히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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