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말씀

그리스도인의 존재 이유

열려라 에바다 2026. 1. 10. 09:15

그리스도인의 존재 이유

 

글쓴이/봉민근

너희는 온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하라 하시는 말씀을 듣고도 못 들은 체하며  교회만 다니는 성도여!
과연 내가 사명받은 그리스도인이 맞는가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그저 믿습니다 아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이다.

이로 인하여 지난날 기독교는 엄청난 희생과 대가를 치렀다.
지금도 복음 때문에 박해를 받고 고난 속에서 순교하는 일들이 도처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형통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검을 주러 왔노라 말씀하셨다.

엄격히 말해 복음을 전하지 않는 자는 그리스도인이라 말할 수가  없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생명의 복음을 위해 존재한다.
사도 바울은 모든 사람에게 빚진 자라 말하였다.

누군가에 의해서 내게 복음이 전해졌기에 오늘날 내가 믿고 구원받은 자가 된 것이다.
복음은 저절로 내게 다가온 것이 아니다.
헌신자들의 값진 희생과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

우리가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해서다.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서 주를 위하여 일한다고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예수 믿는 자는 복음을 위하여 합당한 대가를 치를 각오를 해야 한다.
씨앗을 뿌리는 수고도 없이 복음의 열매가 있을 수가 없다.

성도는 오직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위하여 달려가는 자다.
썩어질 육신과 자신의 평안함만을 추구하는 자는 주님 앞에 서는 날 아무것도 내놓을 것이 없다.

주님은 믿지 않는 자의 핏값을 전하지 않은 우리에게서 물으실 것이다.
저 죽어가는 영혼에 대한 책임감이 없다면 십자가의 은혜를 헛되이 받은 것이다.
나는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서 교회가 부흥하기를 바라는 것은 자가당착에 빠진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오직 복음을 위하여 존재한다.
복음을 위하여 일하지 않는 자는 결코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 자가 아니다.자료/ⓒ창골산 봉서방

기독교를 빙자한 유사 종교    

 

진정한 기독교가 결코 차지할 수 없는 저 자리…
오늘도 기독교를 빙자한 유사 종교가 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십자가 없는 기독교.
자기부인 없는 기독교.
눈물과 고통이 없는 기독교.

이것은 성경이 증거하는 기독교가 아니다. 
진정한 기독교는 나를 부인할 때 참된 나를 찾게 되고,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힐 때 참된 생명을 누린다고 가르친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딤후 3:12)”

그렇다.

십자가 없는 영광은 없다.
죽음이 없는 부활은 없다.
고통이 없는 면류관은 없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Our Best Life Now가 아니라
Our Best Life Not Yet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크게 성공한 듯한 웃음을 머금고 있는 저자의 얼굴이
성화(聖畫)속에 있는 폴리캅이나 페르페투아의 모습과 사뭇 다른 이유는 뭘까?

조용히 생각해본다.이상환 목사 자료/ⓒ창골산 봉서방

 

기도 하지 않고 행복의 미소를 짓지마라.     

 

기도 하지 않고 행복의 미소를 짓지마라.
교만한 미소니라
기도 하지 않고 살았다 하지 마라.
네 영혼은 병들어 죽어가고 있느니라
기도 하지 않고 시간없다 핑계하지마라
기도 하지 않은 만큼 힘들것이기 때문이니라
기도 하지 않고 형통을 기대 하지 마라
너는 연약한 자 이니라
기도 하지 않고 자랑하지 마라
네 수고가 헛되기 때문이니라
기도한 만큼 승리 하리라
기도한 만큼 얻으리라
기도한 만큼 행복하리라
내일 기도 하지 마라
이것은 마귀의 소리라
지금 기도하라 자료/ⓒ창골산 봉서방

 

의인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복     

성경은 의인이 항상 평탄한 삶을 사는것처럼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편 34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시 34:19)

하나님께서 의인에게 주시는 복은, 고난을 피하게 하시는 복이 아니라, 고난 중에도 함께하시며 건지시는 복입니다.

그 복은 하나님의 동행하심, 응답하심, 속량하심에 있습니다.

의인은 죄가 없는 자가 아니라, 자신의 깨어짐을 알고, 마음이 상한 심령으로 주님께 나아오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를 가까이 하시고, 그의 영혼을 귀하게 여기셔서 결코 버려두 지 않으십니다. 또한 시편 34편은 말씀합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 는도다." (34:18)

하나님이 가까이하시는 복은 세상의 어떤 위로보다 크며, 그의 뼈마저 하나도 꺾이지 않도록 지키시는 섬세한 보호하심이 그에게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의인에게 주어지는복은 눈에 보이는 형통만이 아닙니다. 하나님 자신이 그와 함께하시고, 그의 피난처가 되어주시는 은혜입니다. 이것이 의인에게 주시는 가장 깊고도 확실한 복입니다. 자료/ⓒ창골산 봉서방

 

위대한 사람이 아니라 선한 사람이 되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善)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惡)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마태복음 12:35)

 

제대로 된 목회자라면 누구나 주(主)께 깊이 헌신하는 사람들을 알아본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 외에 달리 내세울 것이 없는 이런 평범한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성령의 열매를 드러내는 삶을 살아간다.

이런 사람들이 없다면 교회의 존립이 위태로워질 것이다.

 

그들은 교회에서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가장 먼저 교회로 달려오고,

기도해야 할 일이 있을 때 가장 늦게까지 남아 기도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교회 밖에서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의 성실성에는 극적 요소도 없고,

그들의 선함에는 특기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가는 곳마다 사람들에게 영적 유익을 준다.

육신적인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한 위대함이 그들에게는 없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성령으로 충만한 선한 사람이라는 데 만족한다.

이 세상을 떠날 때 그들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남긴다.

당대의 유명 인사들이 전부 잊혀진 뒤에도 그들이 남긴 그리스도의 향기는 오랫동안 이 땅에 남게 된다.

 

모든 사람들이 '위대한 존재'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어린양의 보혈과 성령님의 능력을 통해 '선한 존재'가 되라고 부르신다.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과 연합하라.

그러면 무한한 권능이 주어질 것이다.

 

A.W.토저 [이것이 성령이다]PP178~179 자료/ⓒ창골산 봉서방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글쓴이/봉민근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내 영혼의 시선을 오직 주님께만 고정하는 것입니다.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바라봄은(시 25:15)"이라는 고백처럼,

세상의 분주한 풍경 너머에 계신 주님을 응시하는 것입니다.

우상이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향해야 할 내 마음의 시선이 다른 곳에 머무는

그 지점에서 시작됨을 깨닫습니다.

오늘 나의 시선이 머무는 곳이 오직 주님의 얼굴이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내 삶의 가장 귀한 자리를 기꺼이 내어드리는 순종입니다.

내가 세운 계획, 내가 움켜쥔 우선순위라는 이름의 보좌에서 내려와 주님께 그 자리를 봉헌하는 것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잠 3:5)" 하신 말씀처럼,

나의 서툰 일하심을 멈추고 주님이 내 삶의 화폭에 직접 그림을 그리시도록 붓을 건네드리는

거룩한 내어드림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주님의 현존(Presence)이라는 푸른 초장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염려'라는 우상을 섬기며 스스로를 괴롭히곤 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모든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나를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선한 목자를 신뢰하며,

내일의 걱정을 주님의 발등상 앞에 내려놓는 것입니다.

주님의 품 안에서 비로소 숨을 쉬는 것, 그것이 가장 깊은 사랑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세상의 소음을 지우고 그분의 세미한 음성에 귀를 맞추는 것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소리치지만, 주님은 고요함 속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찌어다(시 46:10)."

지금, 여기, 나의 일상 한복판에서 주님과 대면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수많은 소음 속에서도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를 단번에 알아채는 연인처럼,

오늘 하루 주님의 음성만을 따라 걷고 싶습니다.☆자료/ⓒ창골산 봉서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