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나를 모해하려하던 자가 수치와 무안을 당함이니이다(시71:23-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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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모해하려하던 자가 수치와 무안을 당함이니이다(시71:23-72:1)

궁극이추천 1조회 3726.01.18 08:12댓글 0

 

 

71편 23절-72편 1절.

 

71편 23절-24절: 내가 주를 찬양할 때에 내 입술이 기뻐 외치며 주께서 구속하신 내 영혼이 즐거워하리이다 내 혀도 종일토록 주의 의를 말씀하오리니 나를 모해하려하던 자가 수치와 무안을 당함이니이다.

 

72편. 솔로몬의 시.

 

1절: 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

 

71편 23절: ‘내가 주를 찬양할 때에 내 입술이 기뻐 외치며 주께서 구속하신 내 영혼이 즐거워하리이다.’ ‘내가 주를 찬양할 때에 내 입술이 기뻐 외치며.’ 내 입술이 기뻐 외친다는 것은 성령의 영감의 감화로 자기가 만들어진 것이 증거가 되어서 기쁨이 북받쳐 올라온 것을 말한다. 예수를 믿은 후에 말씀을 깨닫고 생각해 보니 진리이치의 깨달음에 의해 자기가 쳐다보여지는데 ‘내가 과거보다 많이 고쳐졌구나. 내가 이 면을 깨달았구나’ 하는 것이 발견이 되니 이것이 기뻐서 마음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찬송이다.

 

‘주께서 구속하신 내 영혼이 즐거워하리이다.’ ‘구속’이라고 할 때, 기본구원에 관한 기본구속이 있고, 이룰구원 성화구원에 관한 중복적 구속이 있다. 영 중생은 기본구속이고, 이 기본구속을 기본구원이라고 한다. 그리고 예수를 믿으면서 알지 못하고 짓는 죄, 알면서도 짓는 죄가 있는데, 이런 것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성품을 덧입는 성장적인 면에서의 구원이 있는데, 이것을 중복적 구속이라고 한다. 본 절은 이 중복적 구속을 말한다.

 

중복적인 구속이란 예수를 믿어가면서 자라나는 면에서 잘못된 것을 고치고 자라가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환난과 핍박과 박해 속에서 육신의 시련과 연단을 받으면서, 또한 정신의 고통을 받으면서 진리생명의 말씀과 성령의 영감의 인도를 따라 하나님의 성품을 입어가는 거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성장이 되고 닮아져가는 게 들어 있다.

 

24절: ‘내 혀도 종일토록 주의 의를 말씀하오리니 나를 모해하려하던 자가 수치와 무안을 당함이니이다.’ 주의 의가 무엇이고, 인간의 의가 무엇이냐? 지식에도 의로운 지식이 있고, 지혜에도 의로운 지혜가 있다. 선도 의로운 선이 있고, 사랑도 의로운 사랑이 있고, 진실도 의로운 진실이 있고, 의도, 즉 옳음도 의로운 의가 있고, 주권에도 의로운 주권이 있다. 인간에게는 하나님과 비슷한 지혜, 지식, 선, 사랑, 거룩, 진실, 의와 주권이 있는데, 하지만 하나님의 것과 비교를 하면 인간의 것은 질적 근본적으로 타락된 이질적인 것이다.

 

주님의 의는 하나님과 단일성적 의이다. 하나님의 의는 영원히 가는 것이고, 영원히 옳은 것이고, 신령천국에 들어가서도 영원히 옳음이다. 시대나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는 창세 때도 옳음이요, 중세 때도 옳음이요, 마지막 때도 옳음이다. 어느 나라 사람이던 ‘아, 그것이 옳다’ 하는 의다. 하나님의 의가 내 것으로 만들어지면 영원히 내 것이고 하나님과 통하는 의다. 예수 믿는 옳음은 하늘나라에 들어가서도 다 통한다. 영원히 옳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의를 가져야 하고 주장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의 것은 방편적으로 임시적인 것이요, 천국에서 인정이 되지 않는 의다. 그래서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는 의다.

 

본 시편의 성도는 구약시대 사람인데, 이 성도가 가진 의를 신약시대의 우리가 봐도 옳다. 영원히 옳은 의다. 그러니 힘이 있다. 가난한 사람에게도 옳고, 부자에게도 옳고, 남자에게도 옳고, 여자에게도 옳고, 어른에게도 옳고, 아이에게도 옳고, 영원히 옳다. 어느 나라에 가도 옳음이다. 그래서 우리가 어느 나라에 가서 예수를 믿고 깨달아 아는 것으로 선교를 해도 다 옳다. 누가 들어도 옳다. 그런데 예수 믿는 것을 잘못 아는 세상 속화된 기독자들이 외국에 선교를 가서 그 나라의 정치가 나쁘다는 말을 하거나 ‘인권 어쩌고’ 한다면 이건 성경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옳다고 하는 의가 아니다. 우리는 누가 어떤 주장을 할 때 어느 지식의 기준에서 옳고 그르다고 하는 것인지 알아야 한다.

 

우리가 전하는 것이 민주주의 나라에 가서도 하나님의 의를 주장하고, 공산주의 나라에 가서도 하나님의 의를 주장하고, 부자나라에 가서도 하나님의 의를 주장하고, 가난한 나라에 가서도 하나님의 의를 주장한다면 이것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을 닮는다. 그런데 공산주의 나라에 가서 ‘민주주의가 옳다’ 하게 되면 핍박을 받게 되는데, 핍박을 받는다고 해도 이건 하나님의 의가 아니다.

 

선지자들이 많은 핍박을 받았는데, 이방나라에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핍박을 받기도 했지만 대부분 동족들에게 핍박을 받았다.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데 유대인들은 사도들을 누구보다 눈의 가시처럼 여기면서 율법을 지켜야 만이 구원을 얻는다고 하면서 악한 사람을 동원해서 사도들을 핍박하고 죽이고 했다.

 

이런 면을 보면 우리나라의 교회가 세계적으로 많은 선교사를 내보낸다고 하는데, 오늘날 한국의 교회의 흐름을 볼 때 세상 속화된 교회가 많은데, 이런 교회들이 해외로 선교를 나가게 되면 세상생각을 가지고 사람을 하나의 기독교 종교인으로 만들 수밖에 없다. 참 복음을 전할 수 없다. 복음이 전해지는 것은 성령님께서 함께 해야 하는데, 성령님께서는 진리성도와 함께 하시는 거지 깡패 같은 사람을 잡고 역사하지 않는다.

 

본 시편의 성도는 주의 의를 주장하는데, 종일토록 주장한다는 것은 기뻐서, 신이 나서 전한다는 거다. 주님의 의가 참 의이기 때문에 이 의가 좋아서 종일토록 주장을 하는 것이고, 세상의 타락적 사망적 의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차원 높은 의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 의를 힘 있게 전하는 거다. 확실하기 때문에 목숨을 내놓고 전하는 거다. 우리교회 교인들도 누구든지 찾아가서 하나님의 의를 전해야 하겠는데, 개인에게만 아니라 사람이 많이 모인 공원 같은 곳에서 ‘만민아, 들어라’ 하고서 주의 의를 외친다면 참 멋있는 거다.

 

우리교회에서 전도지를 만든다면 ‘당신은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아십니까? 짐승이라면 몰라도 되지만 인간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이런 내용으로 만들면 좋겠다. 성경대로 이렇게 만들어진 전도지가 좋은 거다. 여기에는 믿는 사람도 안 믿는 사람도 다 포함이 된다.

 

세상 속화된 교회에서는 ‘예수 믿고 충성봉사를 많이 하면 세상에서도 부자가 되고 천국에 가서는 상급도 많다’ 이렇게 가르치는데, 이런 교훈에는 인간창조의 원인 동기 목적이 희미하다. 그러니까 이런 교회는 예수 믿는 목적을 뚜렷이 모르는 거다. 우리는 이걸 분명하고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이걸 아는 게 성경을 아는 거다.

 

너를 인간으로 만들어 놓은 것은 구원 때문이다. 그러면 구원이 뭐냐? 예수 믿고 천국에 가는 구원을 얻는 것만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신령천국을 누림이 궁극적 목적적 결과적 구원이다. 이 계획은 네가 태어나기 전에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 들어 있었던 거다. 이것 때문에 너를 인간으로 만들어 놓았다. 인간 너를 소나 돼지로 만들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게 힘 있는 거다.

 

교회에서 충성봉사 하는 게 예수 다 믿는 것으로 아느냐? 선악과 따먹은 세상 밑에 가서 수종드는 게 예수 다 믿는 거냐? 우리 궁극교회 교인들은 지혜로워서 인간에 대해 바삭하게 알아야 한다. 아무리 공부를 잘 해도 인간을 모르면 인간구실을 못한다.

 

진리의 성도가 목숨을 내놓고 하나님의 의를 주장할 때 이 주장을 하지 못하게 모해하려는 자들이 언제 어느 때고 항상 있다. 이들은 진리성도를 넘어뜨리려고 갖은 수단 방법을 쓴다. 이 때 육신적인 눈으로 볼 수 있게 충돌과 마찰과 대립적으로 들어오면 이들이 복음의 원수임을 알기 때문에 대부분 잘 안 넘어간다. 그러나 미녀를 보내서 미녀작전, 미소작전, 아양작전, 꼬리작전, 히프작전이 들어오면 거의가 넘어간다.

 

물질로 오는 것은 유혹이고, 가르침, 즉 교훈으로 오는 것은 미혹인데, 인본주의, 육본주의, 종교적인 세상의 너울을 둘러쓰고 들어오면, 즉 진리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육적 세상적인 가르침에 교인들 90% 이상이 넘어간다. 왜냐? 세상살이를 위해 염려 걱정하는 자기의 마음과 비슷하게 맞아 들어가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람들의 이런 가르침을 조심해야 한다.

 

이런 사람은 성경을 들고 강단에 서서 선악과 따먹은 저주받은 정신 사상으로 설교를 해도 이것이 미녀작전인지, 쓰디 쓴 독극물을 먹이는 건지, 종교적인 제도를 타고 들어온 마귀의 수하인 거짓 종들의 장난인지를 전혀 모른다. 오히려 자기처럼 사명감을 가진 참 종으로 안다. 그러니 이런 사람은 신앙정신 사상 면의 질적 성분을 전혀 구별을 못하는 거다.

 

안 믿는 사람들은 아무리 똑똑해도 사람을 전혀 판단을 못한다. 이 면에 대한 지식이 없다. 사람의 정신이 하나님 앞에 어떻게 비뚤어져 나갔는지를 판단하는 지식이 없다. 다시 말하면 성경지식은 하나님의 지식으로서 사람의 속까지 들여다보는 지식인데 이들은 이 성경지식이 없다.

 

안 믿는 사람들은 사람을 껍데기로 본다. 세상적인 먹고 사는 조건을 본다. 사람이 이런 식으로 산다면 이건 개나 돼지나 짐승과 똑같은 거다. 우리 궁극교회 교인들은 사람을 표면, 껍데기, 신장을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 속 중심, 사상을 첫 번째로 보고, 그 다음이 일반적인 정신, 그 다음이 육신이다.

 

사단 마귀와 거짓되고 악한 자들이 진리성도의 어느 면을 해치는 거냐? 궁극교회 교인인 자기의 어느 면을 해치느냐? 육적인 면을 해치는 건지, 영적인 면을 해치는 건지? 영적인 면이다. 영적인 면을 해치기 위해 육적인 면을 해치기도 하는데, 이러면 육을 가지고 있는지라 영적인 면에 서서히 의심이 가고 타격을 받기 시작한다. 주님께서도 성도들에게 시련을 주기도 하는데, 이것은 육을 위해서냐, 영이 잘 되라는 거냐? 영이다.

 

성도는 사단 마귀의 이런 장난을 잘 알고 육, 몸 위주로 사는 게 아니라 영 위주로, 영이 잘 되는 위주로 살아야 한다. 예수님을 잘 믿기 위해 육의 것이 좀 손해가 나더라도, 월급이 조금 적더라도 주일을 잘 지킬 수 있는 직장에 들어가라. 육을 위해 진리신앙을 버리면 안 된다. 주님의 의를 버리면 안 된다.

 

자기가 주님의 의를 버리면 주님의 의의 사람이 안 된다. 진리신앙 정조를 버리면 자기는 수치와 무안을 당하게 된다. 예수를 안 믿는다면 인격의 수치감을 모르겠지만 예수님을 바로 믿는 사람이 진리를 버리게 되면 깨달음이 올 리가 없기 때문에 스스로 이것을 알고 수치와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도 늘 물질적 사고방식의 생각을 가지고 이해타산을 따진다면 이 사람은 늘 속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살아가면서 그 고통을 어찌 다 감당하겠느냐? 짧디 짧은 인생이 그만 짚불이 꺼지듯이 자지러지고 만다. 불쌍하고 처절하다.

 

성도가 진리신앙의 정조를 버리면 수치와 무안을 당하는 자리로 떨어지게 되어 있다.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지 않고 화장실 뒤로 가서 담배나 피우고, 공부시간에 들어오지도 않는다면 졸업을 할 때 우등상을 주고 모범상을 주느냐? 이게 얼마나 수치와 부끄러움이냐?

 

‘나를 모해하려하던 자가 수치와 무안을 당함이니이다.’ 진리성도를 해코자 하는 자들은 하나님 앞에 비진리요, 육적이요, 세상적이요, 옛사람 부패성적이요, 마귀적이요, 세상과 세상 것을 구하는 자들이요, 눈에 보이는 것만 자랑하는 자들이다. 예수를 믿으면서 육의 것, 종교적인 명예와 영광을 자랑하고, 구하고, 불타고 썩고 변동되고 바람에 날려갈 것을 자랑하고, 돋보고, 부러워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를, 성도를 모해하는 자들이다. 모두는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에 들어갈 자들이다.

 

지금도 주님의 옳은 의의 옷, 옳은 지식의 옷, 옳은 지혜의 옷을 입지 못한 자들은 자기가 신적 도덕성적인 면에서 벌거벗고 있으면서도 수치와 무안을 모른 채 세상에 속한 것만 자랑을 한다.

 

72편. 솔로몬의 시.

 

솔로몬 왕은 하나님께 부와 영광을 구한 게 아니라 지혜를 구했고, 지혜의 왕이었다. 그러니 지혜를 구하는 사람은 왕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혜 안에는, 옳은 지혜를 구하면 이 지혜 안에는 자기의 부귀 영광 존귀가 다 들어있다.

 

선악과 먹고 나온 세상인간의 지식은 과거와 현재만 지식할 뿐 미래에 대한 지식은 오식이 많다. 착각을 많이 한다. 지혜 역시 현재와 미래를 바로 보는 옳은 지혜가 있는데, 하나님의 지식과 지혜는 과거나 현재나 미래적으로도 절대 정확하고 완벽하다.

 

성경을 배우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을 배우는 거다. 그러니 예수 믿는 사람은 성경을 통해 완벽한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깨달았으면 교회들의 교훈을 견주어 보고 비교할 줄 알아야 한다. 자기가 어느 교회에 다녀야, 어느 가르침을 받아야 하나님의 지혜지식자로 되는지를 따져야 한다.

 

예수를 믿고 생명과, 즉 진리지식을 먹으면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을 닮는다. 교회의 설교가 이것이 있는 설교가 있고, 없는 설교가 있다. 이미 경험한 사람들은 ‘내가 그동안 어리석었구나. 내가 잘못 믿었구나’ 하고 판단이 되지 않느냐? 병원이 아무리 멀지라도 사람의 병을 잘 고친다고 하면 그 병원으로 가고, 다른 사람에게도 이 병원을 소개해 준다. 나음을 얻으니 그렇다. 그런데 예수 믿는 데는 이런 게 별로 없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