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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안에서 다시 살라

열려라 에바다 2026. 5. 7. 13:06

주 안에서 다시 살라

봉서방추천 0조회 3426.05.07 02:10댓글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신 실례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증거되어 있습니다. 이삭의 경우처럼 죽은 사람을 되살린 것과 마찬가지로 인정되는 사례를 포함하여 숨진 아이를 살려 낸 엘리야와 엘리사의 행적(왕상 17, 왕하 4)이 구약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면, 신약 성경에서는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딸인 죽은 소녀를 살려 내신 일(마 9:18-25; 막 5:21-43; 눅 8:40-56)과 백부장의 하인을 되살리신 사건(마 8:5-13; 눅 7:1-10; 요 4:43-54), 나인 과부의 아들을 살려 내신 경우(눅 7:11-15),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일(요 11:38-44), 그리고 이미 숨진 욥바의 과부 다비다(Tabitha)를 사도 베드로가 되살려 낸 사건(행 9:36-41), 높은 곳에서 떨어져 숨진 청년 유듀고(Eutychus)를 사도 바울이 드로아에서 살려 냈던 사건(행 20:7-12) 등을 목격하게 됩니다.

이처럼 신구약을 불문하고 ‘죽음’과 ‘다시 삶’에 대한 상징적 의미를 우리에게 전달하는 기록들은 “여러분은 범죄와 육신의 무할례로 죽었으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표준새번역(You were spiritually dead because of your sins and because you were not free from the power of your sinful self. But God gave you new life together with Christ; ERV),”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우리말성경 (even when we were dead in trespasses, made us alive together with Christ; NKJV)라고 선포하는, 지난 69편에서 다루어진 구절들(골 2:13; 엡 2:5)과 더불어 예수를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리신 분의 영이 여러분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리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거하시는 자기 영으로 인해 여러분의 죽을 몸도 살리실 것입니다; 우리말성경 (if the Spirit of Him who raised Jesus from the dead dwells in you, He who raised Christ from the dead will also give life to your mortal bodies through His Spirit who dwells in you; NKJV)”라며 희망찬 메시지를 전해 주는 로마서 8장 11절의 말씀도 떠오르게 합니다.


영적인 ‘죽음’과 ‘다시 삶’이라는 주제에 관련한 성경 말씀들 중 특히 자주 인용되는 바울 서신서의 한 부분, 즉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는 율법으로 인한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속에서 작용해 죽음에 이르는 열매를 맺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우리를 옭아매던 것에 대해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습니다; 우리말성경 (while we were living in the flesh, our sinful passions, aroused by the law, were at work in our members to bear fruit for death. But now we are released from the law, having died to that which held us captive, so that we serve in the new way of the Spirit and not in the old way of the written code; ESV)”라는 로마서 7장 5-6절은, 자신의 저서 “스크루테이프의 편지(The Screwtape Letters)”에서 새로운 삶,” “새로운 생명”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이를 뽑을 때 통증이 점점 심해지다가 어느 한순간 고통이 끝나는 것”에, 그리고 “악몽으로 변하는 순간 갑자기 꿈에서 깨어나게 되는 일”에 비유한 C. S. 루이스의 글들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본인이 겪은 세상적, 육신적 고난에 대해 “우리는 이미 죽음을 선고받은 몸이라고 느꼈습니다; 새번역 (we had the sentence of death in ourselves; NKJV)”라고 묘사한 바울이, “그렇게 된 것은, 우리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죽은 사람을 살리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새번역 (that we should not trust in ourselves but in God who raises the dead; NKJV)”라고 선언(고후 1:9)했던 것 또한 육신적, 세상적 고난을 통해 영적 사망의 위기에서 건져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나게 합니다. 하나님을 떠나 사는 동안 모든 것을 잃었기에 더 이상 자신을 “기쁜, 즐거운(pleasant)”이라는 뜻의 이름으로 부르지 말고 “쓴, 고통스러운(bitter)”이라는 의미의 “마라(Mara)”라고 불러 달라던(룻 1:20) 나오미(Naomi)가, 하나님의 영역, 그분의 다스림 안으로 돌아온 후 며느리인 룻이 낳은 아들, 예수님의 계보를 이을 손자를 얻게 되는 과정(룻 4:14-22) 가운데 자기 자신을 의지하던 삶에서 벗어남으로 “죽은 사람을 살리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된 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진정한 ‘죽음’을 통한 ‘다시 삶’의 의미를 우리에게 일깨우는 가장 상징적 사건은 역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죽음은 죄에 대해서 단번에 죽으신 것이요, 그분이 사시는 삶은 하나님을 위하여 사시는 것입니다; 새번역 (the death that He died, He died to sin once for all; but the life that He lives, He lives to God; NKJV)”라고 선포한 로마서 6장 10절과 하나님께서는 그 크신 자비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써, 우리에게 산 소망을 안겨 주셨습니다; 표준새번역 (In his great mercy he has given us new birth into a living hope through the resurrection of Jesus Christ from the dead)”라는 말로 희망을 전하는 베드로전서 1장 3절 등에 이 사실이 분명하게 증언되고 있듯 말이지요.


주님께서 이처럼 ‘죽음’과 ‘다시 삶’의 상징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시려는 메시지는, 우리가 “이미 죽었던” 이유가 바로 우리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다시 살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함이었다는 사실(골 3:3; 갈 2:20)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으니 이는 우리가 깨어 있든 자고 있든 그분과 함께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말성경 (Christ died for us, so we could live with him, whether we are alive or dead when he comes; CEV)”라고 한 데살로니가전서 5장 10절,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신 것은, 살아 있는 사람들이 이제부터는 자기들 스스로를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들을 대신하여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그를 위하여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표준새번역 (He died for all, that those who live should live no longer for themselves, but for Him who died for them and rose again; NKJV)”라는 고린도후서 5장 15절이 선포하고 있는 바가 바로 그것이니까요.

하나님은 우리를 새로운 존재로 되살리시고(refresh) 회복/갱신(renew)시키심을 통해 “우리 존재 안의 죽은 영역 새 생명을 불어 넣어 주시는 분(breathe life into the dead areas of your existence)”이라며 자신의 책 “모든 것을 바꾸는 기도(The Prayer that Changes Everything)”에서 찬양했던 작가 스토미 오마샨(Stormie Omartian)은, 하나님께서 묶여진 우리의 사슬을 풀고 당신의 능력으로 우리 내부를 채우시는 대표적 이유로 주위 사람들이 하나님 안의 진정한 ‘삶’을 발견해 가는 일에 우리가 조력자로서 역할할 수 있도록 만드시기 위함을 들고 있습니다. 그의 이 말은 “이제부터는 육신의 남은 때를 인간의 욕정대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표준새번역 (they do not live the rest of their earthly lives for evil human desires, but rather for the will of God),” 여러분은 성령을 따라 행하십시오. 그러면 결코 육체의 욕망을 채우려고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우리말성경 (Walk in the Spirit, and you shall not fulfill the lust of the flesh; NKJV)라고 한 베드로와 바울의 권면(벧전 4:2; 갈 5:16)을 기억나게 합니다.

위에서 소개했던 베드로전서 1장 3절과 그 다음 구절을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들로부터 살리시어 산 소망을 얻게 하심으로 여러분을 위해 하늘에 쌓아 둔 썩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쇠하지 않는 유업을 얻게 하셨습니다; 우리말성경 (he has caused us to be born again to a living hope through the resurrection of Jesus Christ from the dead, to an inheritance that is imperishable, undefiled, and unfading, kept in heaven for you; ESV)”라는 조금 다른 뉘앙스로 번역한 버전의 내용을 읽다 보면,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생명을 허락하시는 이유가 “이 땅이 아닌 하늘에 보물을 쌓아 두는 삶(마 6:19-20),” “믿음으로 행하며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들에 주목하는 삶(고후 4:18; 5:7),” “땅에 있는 것이 아닌 위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는 삶(골 3:2),” “세상과 세상의 욕망이 사라진 후에도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삶(요일 2:17)을 영위할 믿음과 용기를 갖추도록 하기 위함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오래전 꽤 유명했던, “죽어야 사는 여자(Death Becomes Her)”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었습니다. 호러와 판타지가 가미된 블랙코미디로, 제가 좋아하는 연기의 대가 메릴 스트립(Meryl Streep)이 출연하다는 것 외엔 그다지 특기할 만한 요소가 없음에도 이 글을 쓰면서 그 작품이 문득 생각난 이유는, 그 영화의 대사 가운데 등장하는 – 그리고 나름의 주제라고도 할 수 있는 – “영생(eternal life)”이나 “산 주검(living dead)” 등과 같은 개념들 때문입니다. 위에 소개된 자신의 책에서 C. S. 루이스가 사람도 죽고 죽으면 죽음을 넘어서게 된다(You die and die and then you are beyond death)”라고 말한 바 있듯, 우리가 기꺼이 그리고 ‘올바른’ 죽음을 감내함으로 “영생”을 얻을 것인지, ‘죽음’을 두려워하면서 “산 주검”의 상태로 - “Walking Dead Man”이라는 표현 그대로 - 살아갈 것인지는 우리 각자의 선택에 달린 일일 것입니다.

어둠의 삶을 살다가 빛의 자녀가 된 우리를 향해 “잠자는 사람이여, 깨어나라. 죽은 사람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우리말성경 (Wake up from your sleep and rise from death. Then Christ will shine on you; CEV)”라고 한 사도 바울의 경적(엡 5:14; 사 60:1)은, 너희 마른 뼈들아, 너희는 나 주의 말을 들어라. 나 주 하나님이 이 뼈들에게 말한다. 내가 너희 속에 생기를 불어넣어, 너희가 다시 살아나게 하겠다; 표준새번역, 새번역 (O dry bones, hear the word of the Lord. Thus says the Lord God to these bones: Behold, I will cause breath to enter you, and you shall live; ESV)”라며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 에스겔의 선포(겔 37:4-5)의 공명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지난 69편에서 소개했던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 (All I want is to know Christ and the power that raised him from death. I want to share in his sufferings and be like him even in his death; ERV)”라는 바울의 고백(빌 3:10)은, 그리하여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고 싶습니다; 표준새번역, 새번역 (that by any means possible I may attain the resurrection from the dead; ESV)”라는 그의 절절한 소망(빌 3:11)으로 이어지지요. 맥스 루케이도(Max Lucado)가 자신의 저서 “예수님처럼(Just Like Jesus)”에 적은 “응답되지 않는 기도, 이루어지지 않는 꿈, 믿을 수 없는 배반”으로 구성된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이지만 그런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돌아섬(예수님을 닮기로 결단함) “보이지 않는 세계에 온도조절계 같은 영향(a thermostatic impact on the unseen world)을 미친다”라는 일갈은 우리의 ‘동참,’ 우리의 ‘부활’의 의미와 목적을 새삼 생각해 보도록 만듭니다.

자신의 책 “목적이 이끄는 삶(The Purpose Driven Life)”에서 저자인 릭 워렌(Rick Warren)이 “우리의 정체성은 영생에 있고 우리의 모국은 천국이다(Your identity is in eternity, and your homeland is heaven)”라고 했던 선언 역시 이번 글의 주제와 맥을 같이하는 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매 순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과 눈에 보이는 상황들의 기로에 서게 되는 우리임에도,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지혜는 보이고 들리는 것들 너머에 있는 소망을 보라는 교훈이니까요. 신실하신 주님께서 예비하신 것들을 붙들고 소망함으로써 쉽게 지치거나 포기하지 않을 우리 모두를 위해 하나님께서 전하신 격려의 말씀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집니다; 새번역 (Though our outer self is wasting away, our inner self is being renewed day by day; ESV)” – 고린도후서 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