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당의 기원과 예배

회당의 기원
성전은 하나 뿐이다. 기록에 의하면, 이집트와 바벨론에 성전이 있었다고는 하나, 이들은 인정할 수 없는 성전들이다. 이집트의 성전은 사독 계열의 제사장 오니아스 4세가 프톨레미 6세의 허락으로 레온토폴리스에 성전을 건축한 후 주후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후 폐쇄되기까지 230년간 존속되었다. 사마리아에도 성전이 건축되었으나 요한 힐카누스(134-104B.C.)가 파괴하였다(128B.C). 성전은 이스라엘 민족의 정치적 종교적 구심점이었기 때문에 다윗 때부터 정치적인 이데올로기로 이용되었다.
유대인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후(605-432B.C.)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할 수 없었기 때문에 회당제도가 생기지 않았나 생각된다(시편 74:8). 주로 예배와 교육을 위해서 생겼다. 예배는 우리 시간으로 금요일 저녁과 토요일 오전에 드렸다.1) 회당은 지방법정으로도 사용됐다. 구전에 의하면, 예루살렘(혹은 팔레스타인)에 약 480여개의 회당이 있었다고 한다.
회당(synagogue)이란 말은 syn(함께)과 ago(인도하다. 데려가다)의 합성어이다. 회당은 가장(家長) 10명이 모일 수 있는 곳이면, 어느 곳에나 설립할 수 있었다. 구약성서에서는 회당이란 말이 시편 74편 8절에 한번 나온다. 교회와 유대교와의 완전한 분리는 90년대에 회당의 랍비들이 회당내 '나사렛인들'을 파문한 때부터로 볼 수 있다.
어린아이들은 주간에 회당에서 읽고 쓰기를 배웠는데, 교과서는 주로 구약성서였다. 6살에 모세오경, 쓰기, 수학을 배웠고, 10살에 미쉬나를, 15살에 가마라를 배웠다.
2. 회당의 구조
회당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한 방은 기도, 설교, 공중예배의 사무실, 그리고 다른 방은 배운 사람들의 모임, 종교와 훈련에 관한 질의응답, 교육의 목적 등으로 사용되었다. 유대인들의 예배 장소를 벹하크네셑(Bet-ha-Cneset/회당, 집회소), 강의를 하던 곳은 벹하미드라쉬(Bet-ha-Midrash/서재)라고 부른다. 번창하는 지역에 있던 회당들은 시기와 장소에 따라 훌륭한 건축양식과 장식을 갖추었다. 필수적인 기구는 성경궤, 휘장막, 단, 강단, 등, 촛대, 회중석2) 등이였다.
3. 회당의 직원들
장로들--지방공회원들이었다(눅 7:3). 회당업무를 관리하는 위원들이었다. 파문의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대개가 바리새파에 속하였다.
회당장--회당장은 장로 가운데 선출되었다. 예배의식이나 설교, 성경봉독 등을 책임지고 배정하며, 회당의 질서와 토의를 주재하였다(막 5:22; 행 13:15).
회당시중--회당의 조명이나 청결을 책임졌으며, 회당에서 정한 처벌을 집행하기도 하였다(마 10:17; 23:34; 막 13:9; 행 22:19). 임금을 받았다(눅 4:20). 예배 중에는 성경을 꺼내어 봉독자에게 전달하고, 봉독이 끝나면 궤에 넣는 일도 하였다(눅 4:20).
회중대표--임시직이었다. 회당장에 의해서 매 모임에서 선출된다.
통역관--히브리어 성경을 아람어로 통역해 주는 일을 하였다(고전 14:28). 임시직이었다.
4. 회당 예배
회당 예배는 매 안식일마다 조금씩 다르며,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되었다.
쉐마(Shema)의 암송--하나님의 연합에 대한 일종의 신앙고백이다(신 6:4-9; 11: 13-21; 민 15:37-41). "이스라엘아 들으라"로 시작된다.
기도--가장 중요한 기도는 쉐모네 에스레(shemoneh esreh) 즉 열 여덟 가지 찬양이다. 이를 한 주기라 한다.
율법과 선지서의 낭독--기도후 그 주 안식일을 위해 율법에서 발췌한 성구를 낭독한다. 그러면 통역관이 한 절씩 한 절씩 아람어로 번역한다. 모세오경은 154개의 발췌문으로 나누어져 있고, 3년마다 한번씩 되돌아온다. 이것이 끝나면, 예언서에서 발췌한 성구가 낭독된다. 통역관은 삼개절씩 묶어서 의역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설교--성경 낭독후 설교가 뒤따랐다. 처음에는 강해 또는 주석 설교였던 것이 점차 신앙중심으로 흘렀다. 설교는 회당장이 지명을 하거나 자원자가 하였다.
축도--설교후 축복이 있었다. 장로 중에 한 사람이나 회당장이 하였고, 회중은 아멘으로 화답하였다(민 6:24-26).3)
각주
1)유대인의 하루는 우리 시간보다 6시간이 빠른 저녁 해질 때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유대인의 안식일 예배는 우리 시간으로 금요일 저녁과 그 다음날 오전에 드려진다. 참고로 회교는 금요일에, 기독교는 일요일에 예배드린다.
2)회중석에는 13세 이상의 남성만이 출입할 수 있었다. 13세가 되는 소년은 바르 미츠바(Bar Mitzvah)라 하여 민얀(minyan)이라고 하는 종교적 정회원이 될 수 있었다. 유대교에서는 13세 이상의 소년을 종교적인 성인으로 간주하였다. 데이빗 C. 그로스, {유대인을 알고 싶다} 장병길 옮김(도서출판 살렘, 1997), 35-37쪽.
3)Gareth L. Reese, New Testament History: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Book of Acts(Joplin, Missouri: College Press, 1983), pp. 345, 494-496.
유대인의 회당(시나고그, Synagogue)
1. 회당의 기원: 바벨론 포로기(기원전 6세기) 이후
(1) 성전 파괴 후 새로운 예배 형태의 필요성
- 유대교는 원래 예루살렘 성전 중심의 신앙 체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출 25:8-9).
- 그러나 기원전 586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고 유대인들을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고 갔을 때, 유대인들은 더 이상 성전에서 희생 제사를 드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대하 36:19).
- 성전 제사가 불가능해지자, 유대인들은 율법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예배 및 신앙 교육 형태를 필요로 했고, 이에 따라 회당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2) 회당의 초기 형태: 율법 낭독과 공동체 예배
- 포로로 끌려간 유대인들은 바벨론과 페르시아 지역에서 율법을 중심으로 하는 모임을 가졌고, 점차 공동 예배와 교육을 위한 회당(Synagogue)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 성경에서도 포로기 이후 율법을 공개적으로 낭독하는 예배의 형태가 등장합니다(느 8:1-8).
- 이를 통해 바벨론 포로기 이후부터 율법 낭독과 가르침이 유대 종교의 핵심 요소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즉, 회당은 성전이 없는 상황에서 유대 신앙을 보존하기 위한 대체적인 예배 장소로 발전하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2. 회당의 확산: 페르시아·헬라·로마 시대
회당은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발전하며, 전 세계 유대 공동체에 퍼져 나갔습니다.
(1) 페르시아 시대(기원전 6세기~기원전 4세기)
- 유대인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했지만(스 6:15), 회당은 여전히 유대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 회당은 성전이 없는 지역에서도 유대인들이 율법을 배우고 기도하는 장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2) 헬레니즘 시대(기원전 4세기~기원전 1세기)
-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 이후, 유대인들은 헬라 문화 속에서도 자신들의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 회당을 더욱 발전시켰습니다.
- 이 시기부터 회당은 유대 공동체의 핵심 기관이 되었으며, 지중해 지역의 유대 디아스포라(이방 지역의 유대인 공동체)에서도 회당이 세워졌습니다 (사도행전 13:5).
➡ 즉, 회당은 유대 디아스포라에서 율법과 공동체를 유지하는 중요한 중심지로 기능하게 되었습니다.
(3) 로마 시대(기원전 1세기~예수님 시대)
- 예수님 시대(1세기)에는 회당이 유대 땅뿐만 아니라 로마 제국 전역에 퍼져 있었습니다.
- 신약성경에도 유대 지역(갈릴리, 예루살렘)뿐만 아니라, 소아시아, 그리스, 로마에도 회당이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행 13:14, 17:1, 18:4).
- 예수님도 회당에서 자주 가르치셨으며(눅 4:16-21), 바울도 선교 여행 중 각 지역의 회당을 방문하여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행 17:2).
➡ 1세기에는 회당이 이미 유대교의 공식적인 종교 기관으로 자리 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회당의 기능과 역할
(1) 율법 낭독과 가르침
- 회당은 율법을 배우고 가르치는 장소로 사용되었습니다(눅 4:16-21).
-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이 주로 회당에서 율법을 가르쳤습니다.
(2) 기도와 예배
- 성전이 없는 지역에서도 회당에서 기도와 찬양이 이루어졌습니다(마 6:5).
- 회당에서 공식적인 희생 제사는 드려지지 않았지만, 공동체적 예배가 진행되었습니다.
(3) 유대 공동체의 중심지
- 회당은 단순한 종교 시설이 아니라, 유대 공동체의 법정, 학교, 행정 중심지 역할도 했습니다.
- 특히, 바리새인들은 회당을 통해 율법 교육과 신앙 생활을 지도하였습니다.
➡ 즉, 회당은 유대인의 삶에서 단순한 예배 장소가 아니라, 신앙과 공동체를 유지하는 중요한 중심지였습니다.
4. 결론: 회당의 형성 시기와 발전
- 유대인의 회당은 바벨론 포로기(기원전 6세기) 이후 성전 중심의 신앙을 대체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 페르시아·헬라·로마 시대를 거치면서 유대 디아스포라 지역에서도 회당이 확산되었습니다.
- 예수님 시대(1세기)에는 유대 땅뿐만 아니라 로마 제국 전역에서 회당이 존재했으며, 신앙과 공동체의 중심 역할을 했습니다.
- 예수님과 사도 바울도 회당에서 자주 가르치셨으며(눅 4:16, 행 17:2), 복음 전파의 중요한 장소로 사용되었습니다.
➡ 따라서, 회당은 유대교 신앙을 유지하는 핵심 기관으로서, 유대인의 삶과 신앙 전반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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