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 사용한 도시국가 연맹체… 이스라엘과 빈번하게 관계
이스라엘과 가깝고도 먼 나라
시돈과 두로 사람들은 가나안 사람들 중 이스라엘 백성들과 가장 빈번하게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가깝고도 먼 이웃이었다. 다윗이 하나님의 성전건축을 준비하고자 했을 때(역대상 22:4)와 다윗의 궁궐을 지었을 때(역대하 2:3),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건축(열왕기상 5장, 역대하 2장)과 왕궁(열왕기상 7장)을 지었을 때 시돈과 두로 사람들은 백향목과 기술자 등 수많은 물자들을 보내어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예언자들은 이방인의 도움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심지어 솔로몬은 시돈의 여자와 결혼을 했고(열왕기상 11:1), 북이스라엘의 아합은 시돈 왕의 딸 이세벨과 결혼하여 정치적 동맹을 맺자(열왕기상 16:31) 예언자들은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언하기에 이르렀다. 시돈과 두로 사람들은 구약성서뿐만 아니라 신약성서에도 등장한다. 이방인의 땅이라 불렸던 갈릴리 지방, 데가볼리 지방, 그리고 시돈과 두로 지방은 예수의 사역중심지가 되었다(마가복음 7:24∼37). 신약성서 시대에는 시돈과 두로는 주로 베니게로 알려져 있다(사도행전 11:19, 15:3).
베니게(Phoenicia·일반적으로 성서 외의 다른 문헌에는 페니키아로 번역되어 있다)는 오늘의 이스라엘 북부, 시돈과 두로를 포함한 레바논과 시리아의 해안에 있었고, 단일한 민족이 아닌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와 같이 도시 국가들로 이루어진 연맹체였다. 각 도시 국가는 정치적으로 독립적이었지만 힘의 균형이 깨졌을 때 한 도시 국가가 다른 도시 국가들을 통치하기도 하였다. 가장 대표적인 도시 국가는 두로, 시돈, 비블로스, 시미라, 아르와드 등이 있었다. 사실 베니게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베니게 사람이라 부른 적이 없었고 그들은 도시 국가 연맹체였기 때문에 스스로를 한 민족으로 본 적도 없었다. 단지 생활과 문화 그리고 관습들을 공유했을 뿐이다. 그들은 이미 주전 14세기 이집트의 아마르나 문서에 가나안사람들(Kenaani)이라 불리고 있었으며 베니게라고 부르게 된 것은 주전 6세기 이후 헬라어로 Phoinix라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베니게 지역은 적어도 주전 3200년께부터 거주지가 형성되었고 가장 번성했던 시기는 주전 1550∼300년으로 보인다. 특히 주전 1200∼800년에 지중해변의 해상무역을 장악하여 역사학자들은 당시 강대국들 사이에서 국제 경제를 주도했다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이들이 해상무역에 힘을 갖게 된 것은 바다 사람들 혹은 성서상의 블레셋 사람들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주전 1200년께 바다 사람들과 이집트, 그리고 히타이트(현재 터키 지역에 거주했던 사람들로 당시 가장 먼저 철을 사용했다)는 치열한 패권 다툼으로 지중해 연안지역들은 무주공산과 같았다. 그 틈을 이용하여 베니게의 도시 국가들이 무역로를 개척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무역은 점차 확장되었고 심지어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까지 닿아 이곳에도 베니게의 가나안 신인 바알과 아쉬타르테가 섬겨진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을 정도다.
베니게 글자의 전파
이들이 무역로를 개척하고 경제적 상거래를 용이하게 한 것은 이 시기에 이미 문자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자는 돈을 계산하고 계약서를 쓰고 거래 장부를 완성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가나안 땅에서는 주전 1800년께부터 이미 알파벳이 새겨진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가장 초기의 것은 원시-시나이 문자 기록으로 시나이반도 남쪽 현재 세라빗 엘-카뎀이라 불리는 유적지에서 11개의 문자기록들이 발견되었다. 돌 위에 새겨져 있는 이 글자들은 일직선상에 기록된 알파벳문자로 주변에 있던 터키 광산에서 일하던 가나안 노동자들의 기록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 문자들은 이집트의 상형문자처럼 그림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이며 아직은 그림문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 원시-시나이 그림문자와 주전 14세기께 발전한 우가릿의 문자들은 가나안의 문자 구조에 영향을 미쳤고 결국 가나안에는 모음은 없지만 abjad(aleph, beth, jamal, and daleth의 첫 글자만을 모은 것이다)라 불리는 알파벳 구조가 등장하게 되었다. 이 알파벳은 가나안 지역의 사람들 즉 베니게, 이스라엘/유다, 아람, 모압, 에돔 등이 공유한 언어로 각각 이 알파벳을 수용하여 자신의 언어를 기록하였다. 현재 우리가 한글을 공통적으로 사용하지만 지방마다 사투리가 있어 어휘나 억양이 다른 것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하면 좋다. 베니게에서는 22개의 알파벳을 사용하여 그들의 언어를 표현했다. 베니게의 문자는 주전 1100년께 그 형체가 완전히 드러났고 히브리어(이스라엘/유다)와 아람어는 이 알파벳을 사용하여 문헌을 기록했다.
가장 오래된 베니게 문헌은 비블로스의 왕 아히람의 석관에서 발견된다. 석관은 프랑스 고고학자 Pierre Montet에 의해 1923년에 발견된 것으로 석관은 베니게 문헌뿐만 아니라 주전 11세기께 가나안의 예술적 기조까지 엿볼 수 있는 상당히 중요한 유물이다. 석관에 묘사된 날개 달린 스핑크스가 새겨진 왕좌라든가 연회 장면 등은 이후 베니게의 예술가들이 많은 유물에서 답습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전체 38개의 단어로 이루어진 문헌은 석관의 테두리와 뚜껑에 새겨져 있는데 석관이 비블로스의 왕 아히람의 아들 이토바알(주전 878∼847·아합의 왕비였던 이세벨의 아버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며 관을 여는 자에게 저주가 내리리라는 내용이다. 이러한 돌 표면에 글을 쓰기 위해서는 끌이 사용되었는데 철이나 단단한 물질로 만들어진 끝이 뾰족한 철필이 필요했을 것이다. 욥기 19:24과 예레미야 17:1에서 말하는 돌에 새기기 위한 금강석 끝 철필이 바로 이러한 용도에 사용되었을 것이다.
베니게의 문헌들은 레바논과 시리아의 베니게 도시 국가들에서 수없이 많이 발견되었다. 놀라운 것은 베니게와 무역 거래가 있었던 에게 문명에 이 문자들이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베니게의 해상 무역을 통해 그들의 알파벳은 북아프리카와 유럽까지 퍼졌다. 에게 문명 즉 그리스인들은 베니게의 알파벳을 대거 수용했고 몇몇 문자들을 모음으로 바꾸어 사용하여 그들의 알파벳을 완성하였다. 베니게 문자는 후에 로마의 선조가 되는 에트루스칸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에트루스칸의 도시인 이탈리아의 피르기에서는 주전 500년께의 신전이 발굴되었는데 이곳에서 베니게와 에게 문명의 에트루스칸 알파벳의 혼용 모습이 보이는 금판이 발견되었다. 세 개의 금판으로 이루어진 문헌 중 두 개는 에트루스칸어로 기록되어 있지만 나머지 하나는 베니게어로 기록되었다. 금판을 기록한 주인은 고대 에트루스칸 도시 케레의 왕으로 베니게의 여신인 아쉬타르트에게 헌납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베니게 사람들 계속)
◎ 공동 집필
임미영 박사
<평촌이레교회 협동목사 , 서울신학대학교, 한신대학교, 장신대학교 강사>
김진산 박사
<새사람교회 공동목회, 서울신학대학교 호서대학교 건국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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