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으로 읽는 성서 및 성경 공부

[고고학으로 읽는 성서-(1) 가나안 땅의 사람들] 문헌을 남긴 사람들: 우가릿과 에블라

열려라 에바다 2014. 8. 23. 11:06

[고고학으로 읽는 성서-(1) 가나안 땅의 사람들] 문헌을 남긴 사람들: 우가릿과 에블라

이지현
입력 2012-12-13 17:48
[고고학으로 읽는 성서-(1) 가나안 땅의 사람들] 문헌을 남긴 사람들: 우가릿과 에블라 기사의 사진
성서에 등장 않지만 문자발달로 성서시대 백업자료 남겨

가나안 땅의 몇몇 유적지 중에는 성서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그 시대 역사와 문화 그리고 종교를 이스라엘과 공유하고 있어 우리에게 성서 배경 지식을 알려주는 중요한 도시들이 있다. 특히 오늘날 시리아에 속해 있는 우가릿과 에블라 같은 도시국가들에서 가나안 사람들의 일상과 언어 그리고 신화 등을 담고 있는 문서들이 발견되면서 학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항구도시, 우가릿

우가릿은 이스라엘 북쪽 지중해변에 있는 라스 샴라라 불리는 곳이다. 오늘날 북부 시리아에 위치해 있지만 고대 아람 사람들의 땅은 아니었다. 아람이 번성하기 이전 이미 주전 1200년경 폐허가 되어 버린 장소였다. 우가릿은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연결되는 항구 기능을 가진 중요한 도시로서 그 역사는 주전 6000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지중해 연안 도시국가였던 이유로 여러 문명의 교류가 있었던 항구라는 특징은 다양한 문화들의 영향을 보여주는 유물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우가릿에서는 이집트의 예술적 기조와 함께 그리스 미케네와 지중해변의 키프로스 섬에서 제조된 토기들이 발견되었다. 주전 2000년경에는 이집트 왕들과 교류한 흔적도 있다. 도시국가로 가장 번성했던 시기는 주전 1450년부터 1200년으로 ‘바다 사람들’ 혹은 우리가 흔히 에게 문명을 배경으로 가지고 있는 블레셋이라고 부르는 이들에 의해 멸망한 것으로 보인다.

우가릿 언어와 신화

항구도시였던 우가릿에서 무역이 발전했으리라는 것은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무역의 발전은 자연스럽게 상거래를 기록할 수 있는 문자의 발전을 가져왔다. 우가릿 사람들은 가나안 사람들처럼 북서-셈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들은 주전 1400년경부터 그들의 언어를 기록할 수 있는 문자체계를 완성했다. 그들의 문자는 언뜻 보면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그리고 아카드어라 불리는 쐐기문자 형태로 생겼으나 알파벳이 없는 메소포타미아의 문자와는 확연히 달랐다. 우가릿어는 30개의 알파벳으로 이루어져 있고 문법적인 면에 있어서 그리고 발음적인 면에 있어서 가나안어(베니게어 아람어 히브리어 등)와 유사하다. 성서 히브리어처럼 우가릿어는 남성과 여성의 정확한 성은 물론 단수, 복수, 쌍수 등 수의 구별이 있다. 또한 형용사가 명사의 뒤에 가고 문장은 동사, 주어, 목적어의 어순을 따르고 있는 점도 유사하다.

우가릿에서 발견된 문서들은 점토판에 기록된 것으로 경제적인 내용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많은 문서들 중에는 법적 내용과 서시, 그리고 편지 등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가릿의 문서 가운데 유명한 것은 가나안 신화가 담겨 있는 문서다. 이미 다루어졌던 가나안 사람들의 종교를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그들의 신들이 우가릿에서 발견된 신화에 등장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우가릿의 서-동쪽 구역에서는 바알 신전과 다곤 신전 그리고 궁전 서고가 발견되었다. 신전 구역에서 발견된 유물들 중에는 여러 신상과 제사용 용기들 그리고 23개의 석상이 있다. 석상들 중에는 번개를 들고 있는 9개의 바알 신상이 있었다. 서고에서 발견된 문서 들 중에는 지난 호에 언급했던 바알과 바다의 신 얌 그리고 죽음의 신 못이 어떻게 신들의 전쟁을 치르고 권력을 잡게 되었는가를 기록하고 있다. 1929년 발견된 우가릿 문서들은 처음으로 가나안 사람들의 종교와 신앙을 세상에 드러냈다. 성서학자들은 이 문서를 통해 가나안 신화를 연구하기도 하지만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고 유사한 지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문헌이기에 성서 히브리어와 영향을 미친 문학적 요소들을 살펴보기도 한다.

에블라 문서, 셈어로 기록된 최초의 문서

우가릿보다 북쪽에 위치해 있고 내륙에 더 가까운 곳에 있었던 에블라는 주전 2500∼2000년 그리고 주전 1800∼1650년 단 두 번의 시기 동안만 사람들이 살았던 장소다. 특별히 후자보다 전자의 시대가 훨씬 번성했으며 아카드의 나람-신(Naram-sin) 왕에 의해 멸망한 것으로 보인다. 에블라는 이미 이집트와 수메르 문헌들에서 상업도시로 자주 등장하곤 했지만 1964년부터 시행된 이탈리아 로마 라 사피엔자 대학에서 발굴을 통해 현재 텔 마르디크(Tell Mardikh)라 불리는 유적지였음이 밝혀졌다. 발굴에서는 궁전과 함께 2500여개의 쐐기문자가 기록된 점토판들이 발견되었다. 이 점토판들은 대부분 수메르어로 기록되어 있었지만 그중 일부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쐐기문자로 기록되어 있었다. 처음 학자들은 이 문자를 해독할 수 없었다. 그러나 발굴된 토판들 중에 이 독특한 문자로 구성된 단어와 수메르 단어들과 비교할 수 있는 단어장 형태의 토판들이 있어 이 문자가 에블라에서 기원한 문자임을 알 수 있었다. 에블라어는 셈어 중 동쪽 지역에서 주로 사용한 언어로 아카드어와 유사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별히 학자들의 주의를 끈 것은 이 문서들이 발견된 장소다. 처음 장소가 발견되었을 때는 궁전의 도서관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법률문서와 행정, 무역 등을 기록한 문서를 보관한 서고임이 밝혀졌다. 이 서고에는 마치 현대의 책장처럼 나무로 만들어진 선반들이 있었고 각 주제에 맞추어 토판들이 정렬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상업도시였던 에블라의 특징상 문서의 많은 부분은 경제적인 것을 다루고 있다. 덕분에 우리는 성서시대의 중동 지역의 문화와 정치 그리고 일상을 엿볼 수 있어 성서 배경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당시 에블라에는 20만 마리의 가축떼를 보유하고 있었고 주요 수출품은 목재와 섬유로 상당히 부유한 도시였다. 이 도시의 부는 궁전에서 발견된 여러 유물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궁전에서는 자개를 한 가구와 금으로 만든 장신구, 다양한 보석으로 장식한 조각상들이 발견되었다.

에블라 문서에는 성서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과 유사한 셈어 이름들이 발견되는데 그중에는 아담, 아브라함, 빌하, 에서, 사울, 이스마엘 등이 있다. 또한 예루살렘, 하솔, 라기스, 게셀, 므깃도, 우르 같은 성서 도시들의 이름도 상당히 많이 등장하고 있다. 이 문서에 등장하는 신들은 수메르의 신들과 함께 다간, 이쉬타르, 하다드 등의 가나안 신들로 40종류의 신들에게 제사가 드려졌다. 도시의 4개 성문들에 붙여진 이름 중에는 다간과 바알이 있다. 한때 학자들은 에블라 문서에서 가나안 최고의 신인 엘이 ‘야(Yah)’라 불리면서 ‘여호와(YHWH)’로 발전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현재 이 두 이름 사이에는 어떤 관계도 없으며 에블라 문서에서 ‘야’라는 신을 위한 제사는 전혀 없었음이 밝혀졌다.

공동 집필

임미영 박사


<평촌이레교회 협동목사 , 서울신학대학교, 한신대학교, 장신대학교 강사>

김진산 박사

<새사람교회 공동목회, 서울신학대학교 호서대학교 건국대학교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