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홍현설 학장님 댁에 세배를 갔을 때였다. 나는 전농감리교회 사정과 그간의 열매를 보고하면서 청년 목회에 깊은 관심이 있다고 말씀드렸다. 그때 홍 학장님의 사모님이 이런 제안을 하셨다.
“김 목사님, 군대야말로 선교 어장입니다. 앞날이 창창한 이 나라 청년들에게 복음을 전해주세요. 군목 지원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국방부에 속히 알아보세요.”
그 이야기를 듣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렇다. 풋풋한 젊음의 열정을 가진 이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 어디겠는가. 그들에게 가장 효율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할 수 있는 곳이 어디겠는가. 군대다.’
곧바로 예배당으로 달려가 기도했다. ‘하나님, 제 중심에 불이 일듯 일어나는 청년에 대한 마음이 있습니다. 이 마음을 주님께서 주신 것이면 순종하고 따르겠습니다.’
전농감리교회는 당시 기독교대한감리회 동부연회 성동지방에서 중견 교회로 꼽힐 정도로 성장해 있었다. 이곳에서 목회를 계속하면 지속적인 성장을 지켜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청년을 향한 목회 비전에 모험을 걸고 싶었다.
기도 응답을 받고 원서를 제출했다. 기왕 군목을 할 것이라면 공군 군목을 하고 싶었다. 당시 한국의 공군력은 떨어졌지만 분명 몇 년 안에 공군이 북한을 벌벌 떨게 할 군사력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2명을 뽑는데 14명이 지원했다. 시험은 영어와 상식, 성경과 설교 4과목이었다. 좋은 성적으로 군목 시험에 합격했다. 하지만 전농감리교회에서 군목으로 가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뜻하지 않은 오해를 받게 된 일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눈물을 흘리며 애석해하는 성도들과의 이별이 가슴 아팠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1962년 4월 1일 입대하는 날, 때늦은 눈이 내렸다. 나는 눈물로 배웅해 주는 성도들 앞에서 차마 돌아서지 못했다. 6년간 전농감리교회에서 부르짖었던 간구와 기도들, 발이 닳도록 심방하고 기도해 주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산동네를 찾아갈 때면 구멍가게의 연탄 배달을 도와가며 심방했다. 청계천 구정물이 범람할 때도 천막에 사는 성도들의 집을 찾아갔다. 성도들은 심방 때마다 구연산 소다에 사카린을 쳐서 사이다를 만들어줬다. 그렇게 서너 컵을 들이키다 보면 배 속에서 난리가 났다. 새벽기도 때마다 할머니 권사님이 품속에 있던 계란을 꺼내주곤 했다. 처음엔 내가 위로해주고 사랑을 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내가 더 많이 위로받고 더 많은 사랑을 받았다. 떨리는 목소리로 마지막 기도를 올렸다. 기도를 끝내자 눈물바다가 됐다.
2개월간 군종장교 훈련을 받았다. 내 가슴속에는 복음 전도의 황금어장에 들어간다는 감격이 넘쳤다. 고된 훈련을 받고 파송받은 곳은 대전 공군기술교육단 항공병학교였다.
대전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꼭 12년 만의 일이었다. 북한군 군의관 신분으로 탈출해 5분 만에 국군 군의관이 됐었다. 평안북도 운산까지 진격했다가 중공군을 만나 목숨을 잃을 뻔했다. 그때 나는 ‘살려만 주시면 주의 종이 되겠다’며 목숨을 구걸하던 가엾은 인생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한 생명이 아니라 젊은 청춘들의 영혼을 예수께로 인도하는 군목이 됐다. 거듭 감사의 고백이 쏟아져 나왔다. “아, 어떻게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나님 감사합니다. 귀한 사명 주셨으니 생명을 다해 충성하겠습니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역경의 열매] 김선도 <18> “군대는 선교 어장” 권유 받고 공군 군목 지원
7대 1 경쟁 뚫고 좋은 성적으로 합격, 청년들을 예수께 인도하는 비전 품어
김선도 서울 광림교회 원로목사가 교회 역사관에서 공군 군목 시절 입었던 군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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