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항공병학교에서 신병들과 같이 뛰었다. 야간 구보, 산악 훈련까지 거의 빠지지 않고 완전무장을 하고 쫓아다녔다. 한번은 한밤중에 장교 후보생들과 구보 훈련을 했다. 유성까지 M1 소총을 들고 뛰었다. 그리고 취침 시간에 이런 기도를 해줬다.
“여러분 힘들죠. 자존심 상하죠. 힘내십시오. 제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저들의 마음속에 평안을 주십시오, 저들의 건강을 지켜 주십시오. 두고 온 가족들을 지켜 주십시오. 저들로 하여금 나라를 위한 헌신의 가치를 깨닫게 해 주시고 그 헌신으로 복을 받게 해 주십시오.” “흐흐흑.” 기도를 하고 눈을 떴는데 그 건장한 청년들이 팔뚝으로 눈물을 훔치는 게 아닌가. 한두 명이 아니라 모두 울고 있었다.
영창에 들어간 적도 있었다. 군대에서 범법행위를 저질러 영창에 있는 절망의 순간이야말로 위로와 복음의 메시지가 절실한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밤 12시쯤 작업복을 입고 헌병대를 찾아갔다.
“필승! 군목님, 어떻게 오셨습니까.” 헌병이 물었다. “네, 제가 오늘 하룻밤 영창에 자면서 사병들을 위로하고 격려해 주려 합니다.” “예? 아, 안 됩니다. 영창은 군목님이 들어가실 데가 아닙니다. 그런 일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안 될 것 뭐 있습니까, 그냥 교육 프로그램 중 하나이니까 들어가게 해 주세요.”
당황한 헌병이 헌병대 대장에게 보고하고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으니 어렵게 허가가 떨어졌다. 그렇게 영창에 들어가서 잠을 잤는데 아침에 일어났더니 온몸에 이가 올라 가렵지 않은 데가 없었다.
기상 후 영창 내 사병들과 빙 둘러 앉았다. 사병들 앞에서 내가 온몸을 긁어대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벌써부터 공감대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때 그들에게 성경을 나눠 줬다.
“여러분, 영창에 갇힌 여러분과 밖에 있는 장병 사이엔 철조망이 가로막혀 있지만 사실은 모두가 죄인입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똑같습니다. 진짜 문제는 모든 인간이 죄의 철조망에 갇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 용서함을 받고 자유함을 얻어야 합니다. 이게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음입니다. 제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그렇게 말씀을 전하고 기도하는데 주변에 감동의 파장이 일어나고 있음이 느껴졌다. 사병들은 감동받아서 울고, 어느새 몰려온 헌병과 헌병대 장교는 등 뒤에서 우리를 엄숙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거기서 인간이란 존재가 가질 수 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불완전한 인간, 죄에 매여 있는 인간의 아름다움이란 의로워짐에 있는 게 아니라 부조리한 어둠 속에서 빛을 갈망하는 눈망울에 있지 않을까.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구원을 갈구하는 애타는 눈동자 말이다.
‘그래. 목회엔 파토스, 로고스, 에토스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젊은 군인들이 가슴 열고 공감할 수 있도록 감동으로 다가서야 한다. 일단 마음이 열리면 논리가 빛을 발한다. 그렇게 감동의 파장을 일으키고 설득력 있는 말씀의 로고스를 집어넣으면서 인격 교육을 병행한다면 도덕적인 에토스의 길이 열릴 것이다. 거기에 비전과 역사성 미션을 갖게 한다면 주어진 사명을 적극 감당하는 군인이 될 것이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역경의 열매] 김선도 <19> 고된 훈련 장병들, 기도해주자 감동·눈물…
영창 내 사병들과 공감대도 형성, 구원 갈망하는 인간의 아름다움 발견
1960년대 군목으로 활동했던 김선도 서울 광림교회 원로목사. 그는 신병들과 함께 야간구보와 산악훈련을 하며 복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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