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때면 사병들을 찾아갔다. “군무 중 이상 없음!” 새벽 2시쯤 군용 지프차량에 과자 봉지를 싣고 보초병을 찾아가면 보초병은 주번 사관이 오는 줄 알고 깜짝 놀라 경례했다.
“집 생각나지요? 부모님 보고 싶지요?” “네, 그렇습니다.” “조금만 더 참으세요. 우리 아버지 형님들도 우리와 똑같은 고생을 하면서 나라를 지켰습니다. 지금 우리가 느끼는 그 감정을 그분들도 동일하게 느끼셨을 겁니다. 그 덕에 우리가 그동안 안전하게 지낸 것 아니겠습니까. 이제 우리가 할 차례입니다. 부모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복무 마칠 때까지 힘내세요.” 그렇게 과자와 커피를 건네면서 기도해 주면 장병들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곤 했다. 그렇게 만난 보초병은 어김없이 주일에 교회를 찾았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내 목회활동이 군 상부에 보고 됐다고 한다. 따뜻한 커피를 끓여서 보초병을 방문하는 일은 최전방과 해병대까지 번졌다.
장교 전도에도 힘썼다. 참모회의에 들어가면 5분 정도 브리핑을 하는데 이 시간을 일종의 정신 교육에 활용했다. ‘군대란 일종의 합법화된 무력 단체로 필요악이라 할 수 있다. 어떻게 당위적인 사명 의식으로 받아들일 것인지, 어떻게 무력을 자유와 평화, 민주국가를 세우는 일에 사용할 것인지, 군대라는 시련을 어떻게 자기 계발로 승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답을 줘야 한다.’
이런 고민 끝에 강조한 게 ‘자유민주주의 국가’와 ‘자아실현’이었다. 당시 교육과 설교 때 가장 많이 신경 썼던 부분은 보편성과 설득력이었다. 일방적인 선포와 강요는 전혀 먹히지 않았다. 논리와 설득력 있는, 보편성을 갖춘 정신 훈화만이 군인을 졸지 않게 하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5분 동안 ‘희망이란 무엇인가’ ‘용기란 무엇인가’ ‘신념이란 무엇인가’ ‘왜 군에 희망이 있는가’ 등의 메시지를 차트를 넘겨가며 전했다. 재미난 사실은 이걸 지휘관이 그대로 베껴서 사병들에게 전했다는 것이다. 특히 공군교육기술단장까지 받아 적어 훈시했다.
하루는 예배를 준비하는데 단장이 교회에 온다는 연락이 왔다. 예배 시간에 보니 단장이 아주 진지하게 설교를 듣고 있었다. 속으로 ‘저러다 말겠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매주 교회에 나오는 것이었다.
어느 날 단장이 관사에서 참모들과 회식을 하다가 자기의 술과 담배, 양주들을 모두 꺼내 놓고 폭탄선언을 했다. “이제 예수 믿기로 했다. 그러니까 이거 이제 필요 없게 됐다. 나는 술, 담배를 끊었으니 필요한 사람은 가져 갈 것.” 참모들이 이때부터 제 발로 교회에 나왔다.
단장은 일반 사병들과 똑같이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교회 안내위원으로 봉사하며 예배 30분 전부터 주보를 정리하고 자리를 안내했다. “필승.” “필승.” 교회 입구에서 사병들이 큰 소리로 경례하며 관등성명을 대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그래도 단장은 겸손하게 일일이 악수하면서 “어서 오십시오”라며 인사했다. 장군이 따뜻하게 맞아주니 사병들은 큰 감동을 받는 눈치였다. 그가 바로 김동흘 장군이다.
일반 사병은 물론 참모까지 대거 교회로 몰려들자 정말 앉을 자리가 없게 됐다. 중간 통로는 물론 출입구와 문밖까지 꽉 찼다. 하는 수 없이 예배당 문을 열고 밖에서 예배를 드리는 사병도 있었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역경의 열매] 김선도 <20> 명절 땐 커피·과자 들고 보초병 찾아가 격려
장군부터 사병까지 교회에 몰려… 나의 목회 활동 군 상부에 보고 돼
박정희 전 대통령(둘째 줄 외투 입은 사람)이 1967년 대전 공군교육기술단을 방문해 교육생을 격려하고 있다. 김선도 서울 광림교회 원로목사는 당시 이곳에서 군목으로 활동했다. 국가기록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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