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살 소년은 외할머니가 잘 키워서 몸보신하라고 준 병아리 10마리를 키워 30배에 팔았다. 그 돈으로 병아리를 다시 샀고 돼지도 키웠다. 가축 기르는 재미에 푹 빠져 농업계 고등학교로 진학하려 하자 부모님이 강하게 반대했다. 중학교 3학년 때 가출까지 한 뒤에 농업고교로 진학했다. 가축을 키우고 직접 농사도 지으면서 사업규모를 키워 열여덟 살 고등학생 때 사업자로 등록까지 했다. 수업시간 교실 복도에는 아저씨들이 어슬렁거렸다. 10대 사장님 결재를 받으러 온 직원들이다. 정직원 5~6명에 일용직 10~20명을 거느리고 고교를 졸업할 때쯤에는 4000만원 돈을 모았다. 당시 그가 살던 전북 익산 시내의 단독주택 한 채 값이 300만원쯤이었다.
국내 58개 계열사에 자산 10조원을 넘어 재계 순위 32위에 오른 하림그룹 김홍국(62) 회장 얘기다.
지난해 말 온누리교회 크리스천CEO포럼이 주최한 ‘The 멋진 당신’ 행사에 간증자로 나선 김 회장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더니 흔쾌히 수락했다.
지난 14일 서울 논현동 하림타워 15층 회장 집무실에서 김 회장을 만나 신앙과 사업 얘기를 들어봤다. 1시간 넘게 진행된 인터뷰 내내 김 회장에게선 긍정적 에너지가 넘쳐났다. 대기업 CEO나 공직자 중에는 크리스천임을 드러내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는 성경말씀과 신학자들의 명언을 술술 인용하며 크리스천의 향기를 드러내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주신 첫 번째 소명이 창세기 1장 28절의 땅에 충만하라는 것이다. 그들(아담과 하와)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정복하라. 충만하라, 가득 채우라는 것은 상호작용에 의해서 가치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인간은 상호작용에 의해 길러지도록 하나님이 만들었다. 그게 길이다. 종교적이 아닌 일반적인 얘기를 하더라도 원천을 거슬러 올라가면 성경과 닿는다. 하나님은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까지도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 시골교회 목사 출신으로 네덜란드 총리까지 지낸 아브라함 카이퍼가 말한 일반은총이다. 자랑 삼아 종교를 선전하는 게 아니라 진리를 그대로 얘기할 수밖에 없다.”
사업하면서 어려움을 겪게 되면 좌절하고 신을 원망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하나님의 원리에 어긋나면 어려움이 닥친다. 어려움이 닥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달란트의 비유에서 보듯 가치를 만들지 않고 게으르고 악한 종은 내쫓김을 당한다. 고생하고 느끼고 연단하고 반성하고 돌아오라는 게 하나님 뜻이다. 욕심 때문에 사람의 생각으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가 계획했을 지라도 이루시는 이는 하나님이다. 아담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했고 하이에크 같은 학자는 인지능력의 한계를 얘기한다. 그 위가 보이지 않는 손이고 하나님의 역할이다. 어려운 일을 당하면 더 옳은 길로 가도록 지혜를 구해야 한다.”
그는 하나님이 이미 축복을 주셨는데 사람이 자기 욕심 때문에 보지 못하고 받지 못한다고 했다. “한경직 목사님의 말씀처럼 자연계시, 즉 자연을 보면 하나님이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나님 일하는 방법대로 따라서 하면 된다. 하나님 성품이나 재능이 우리 인간들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그것을 갖고 일해야 한다.”
김 회장은 사업하면서 죽을 만큼 힘든 세 번의 위기를 겪었다. 스물한 살 때 축산물 파동이 나서 망했고, 외환위기 때도 부도 직전까지 갔다. 2003년엔 공장 화재에 조류인플루엔자까지 겹쳐 거래처가 다 끊기고 2년간 적자가 났다.
“2003년엔 인생이 끝나는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하나님을 원망하지는 않았고 회개했다. 그때부터 눈물이 많아졌다. 새벽기도를 가게 되고 회개하고 더 열심히 하나님의 지혜를 구했다. 그런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더 견고해졌다고 생각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시련이나 어려움도 하나님의 일은 모든 게 좋은 일이다.”
모태신앙인 김 회장은 전북 익산 이리신광교회 장로다. 사업으로 바쁜 중에도 매주 고향 교회를 찾아 예배를 드린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크게 깨달았던 적이 있는지 물었다. “항상 느낀다. 자연을 보면서 느끼고 인생에 있어서도 성경 말씀대로 하면 누구든 잘 살 수 있다.”
그에겐 일이 취미고 적성이다. 일하는 것 자체가 노는 것이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 아니냐고 한다. 학교 공부보다 일이 재미있다 보니 대학에 가서도 3~4개월 다니다 그만두었다. 복학하지 않으니 몇 년 뒤 제적당했다. 서른다섯 살 때쯤부터 야간대학을 다녔다. 박사과정까지 야간으로만 9년을 다녔다.
김 회장은 ‘청야(靑夜)’ 멤버다. 주경야독(晝耕夜讀)하면서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이 어려운 학생들을 도와주고 멘토링해주는 모임으로 6년 전쯤 만들어졌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고위공직자 등 뜻을 함께하는 10여명이 실의에 빠진 젊은이들에게 강연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고 장학금을 주거나 해외연수도 보내주고 있지만 언론에 얘기하지 않기로 했다며 손사래를 쳤다.
“이른바 흙수저라면서 좌절하고 분노하는 젊은이들이 있는데 나쁜 게 아니다. 고난의 시간들도 배움의 시간이다. 그래서 나폴레옹 모자도 샀다.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는 과정을 보니 흙수저가 아니었다면 황제가 안 됐을 거다. 흙수저였기 때문에 많은 경험을 쌓게 되고 학교에서보다 더 좋은 교육을 받게 된다.”
김 회장은 2014년 11월 프랑스 오세나 경매소에서 나폴레옹의 이각 모자를 26억원에 사들여 화제가 됐다. “중학교 때 평전을 읽고 나폴레옹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코르시카 섬 출신의 나폴레옹은 본토 중학교에 다녔는데 키가 작고 프랑스 말을 못하다보니 왕따를 당한다. 나폴레옹이 어려운 과정을 거치지만 그의 성품 중 하나가 긍정적 사고다. 부정적인 사람은 99% 가능성이 있어도 1%만 보고 기회를 차낸다. 긍정적인 사람은 1% 가능성만 있어도 잡는다. 나폴레옹은 1% 가능성을 잡아서 100%로 만들었다. 이순신 장군도 나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남아있다고 했다. 모두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위인들이다. 그것이 나폴레옹 모자를 경매한다는 뉴스를 듣고 무조건 사라고 한 이유다.”
그가 사들인 나폴레옹 모자를 비롯한 유물과 애니메이션 등이 판교 나폴레옹 갤러리에 무료로 전시돼 있다. “유치원생들도 단체로 다녀가는데 우리나라 학생들이나 젊은이들이 그것을 보고 1000명 중 한 명, 1만명 중 한 명이라도 도전정신을 갖는다면 사회에 26억원을 나눠주는 것보다 더 큰 기부가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했다.”
김 회장은 대기업에 대한 차별규제가 심한 것을 안타까워했다.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하는데 우리만 규제를 많이 받게 되면 글로벌 기업을 도와주는 격이 된다는 것이다.
그의 꿈은 동종업계에서 글로벌 생산성 1위 업체가 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다. “송곳의 날을 계속 세우듯 경영구조를 날 선 검처럼 갈고 닦아나갈 거다. 하나님 말씀을 갖고 글로벌 생산성 1위로 가는 게 목표다. 2003년부터 윤리경영을 시작했다. 기업하면서 절대 나쁜 짓은 하지 않는다. 법질서를 지키며 생산성을 높이고 나누는 게 목표다.”
mheel@kmib.co.kr
◇김 회장은
△1957년 전북 익산 출생
△1986년 하림식품 설립
△2001년~ 하림그룹 회장
△2005년 전북대 경영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2006년 금탑산업훈장
△2006년~ 하림재단 이사장
△전북 익산 이리신광교회 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