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밥 소르기 지음
1부 위험한 초대를 받아들이라
결정의 준비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운가? 그렇다면 은한 곳으로 달려가라! 당신이 무엇을 결정했든지 하나님은 그 결정을 중요하게 여기신다. 그리고 당신이 그 결정을 어떻게 내렸는지도 똑같이 중요하게 생각하신다. 갈림길 앞에 선 당신은 옳은 길을 선택했으나 마음으로는 하나님과 멀어졌을 수도 있다. 예수님은 우리가 무언가를 결정할 때 그분과 친밀함을 누리는 가운데 선택하기를 바라신다.
예수님도 중요한 결정을 내리실 때마다 은밀한 곳으로 가셨다. 그분의 모습은 우리에게 본이 된다. 예수님은 자신을 배반할 가룟 유다를 선택하실 때도 기도하셨다. 사실 유다를 택하실 때는 특별히 더 기도하셨다. 장차 유다가 자신을 처참한 파멸과 고통으로 몰고 갈 거라는 사실을 이미 아셨기 때문이다. 이런 중대한 결정을 해야 했기에, 그분은 홀로 밤이 새도록 온 힘을 다해 기도하셨다.
아바 아버지는 당신을 정말 많이 사랑하신다. 그분은 당신의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시며, 당신이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 함께하기를 바라신다. 하나님은 직접 이렇게 말하셨다.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같이 되지 말 지어다. 그것들은 재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가지 아니하리로다(시32:8-9).
내가 생각하기에 이 말의 핵심은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가지 아니하리로다라는 구 절이다. 말이나 노새에게는 재갈과 굴레를 씌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발적으로 주인 곁에 오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구절에서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계신다. 나는 너와 멀리 떨어진 상태에서 너를 인도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억지로 관심을 내게 돌려, 너를 제자리에 세우고 입에 재갈을 물려 이리저리 끌고 다니고 싶지 않다. 그저 네가 가까이 오기를 바랄 뿐이란다. 내 마음에 가까이 다가오렴. 친함과 교제의 장소에서 너를 인도하고 싶구나.
이 시편 말을 다시 읽어 보자. 말과 노새를 가리켜 무지하다고 말하는 부분에 주목하라. 말과 노새는 무지하다. 그래서 쉽사리 주인 곁으로 오지 않는다. 주인에게 가까이 가면, 상상할 수도 없는 유익을 얻는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계속 주인에게서 벗어나 자기 길로 가려 한다. 그런 점 때문에 노새는 무익할 뿐 아니라 쓸모도 없다. 꼭 노새 같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도통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 어쭙잖은 독립심으로 생명과 양육의 근원을 멀리한다. 머리의 가죽이 얼마나 두꺼운지 하나님 바로 옆이 온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는 사실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시편은 하나님을 찾는 것이 지각의 증거라고 분명히 기록한다(시 14:2). 하나님께서 가까이 다가가 그분을 전심으로 구하는 일이야말로 이 땅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지혜로운 일이다.
친밀함을 구할 때, 우리는 인생의 가장 위대한 비밀을 발견한다.
하나님은 친밀함 가운데 당신을 그분 눈으로 인도하시며, 그분의 마음으로 당신 마음의 길을 보여 주신다. 우리는 종종 환경과 상황을 따져 보고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가 주위를 둘러보는 대신, 위를 올려다보고 방향을 결정하기를 바라신다. 또한 우리가 그분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분의 광대함과 광을 누리길 바라신다. 그분은 눈빛 하나로도 우리의 인생길을 훤히 인도하신다. 눈빛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표현 할 수 있는지!
주님이 말하실 때까지 그분의 입술을 바라보라. 가야 할 길을 일러 주실 때까지 그분의 눈을 바라보라. 외부 데이터에 근거하여 결정을 내리는 사람은 사회의 온도계이다. 이들은 운명을 결정하는 자연적 요소들을 자신의 삶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 고스란히 보여 준다. 그와 반대로 어떤 결정을 내릴 때마다 하나님 안에서 발견한 것을 근거로 삼는 사람은 사회의 온도 조절기이다. 이들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의제들을 이 땅에서 온전히 실현하기 위해 거침없이 세상 속으로 달려나 가며, 세상에 큰 향을 미친다.
통찰력보다는 친함이 먼저다. 목적보다는 열정이 우선한다.
은밀한 곳에 먼저 들어가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다. 그분은 단순히 우리가 제대로 된 길을 택했는지에만 신경 쓰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를 느끼고 누리고 싶어 하신다. 혹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자마자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가면서도, 정작 말하신 그분을 흙먼지 속에 버려두지 않았는가?
하나님은 그렇게 되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 뜻대로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 가까이에 다가가 그분을 더 알아 가길 가장 바라신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걷고 싶어 하신다. 은한 곳에서 하나님을 알아 가는 일이야말로 가장 지혜로운 행동이다. 이일은 또한 당신의 가장 높은 목적을 찾게 해줄 열쇠다. 그러니 지금은 이 책을 내려놓으라. 아직은 다음 장을 읽을 때가 아니다. 잠시 멈추고, 당신의 친구 되신 그분과 조용히 시간을 보내라. 그리고 그 시간을 즐기라!
2부 행동으로 옮기라
방사선 요법의 비밀
우리는 모두 죄와 이기려고 씨름한다. 성경은 이 씨름을 죄와 싸우되 (히 12:4)라고 표현한다. 다른 사람보다 유난히 더 힘들게 싸우는 사람도 있다. 지금까지 유지해 온 세상적인 삶의 방식 때문에 죄가 깊게 뿌리박혔기 때문이다.
싸움의 강도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언젠가는 죄악 된 삶의 방식을 떨쳐 버리고 승리하기를 소망한다. 습관적인 죄를 이기려면 다각도의 접근이 필요하다. 회개하고 옛 습관을 타파하고, 하나님께 동의하는 기도를 하고, 책임을 인정하고, 용서하고, 자기부인을 하는 등 믿음의 행동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번 장에서는 습관적인 죄를 이기는 비중에서도 간과하기 쉬운 사항을 집 중 조명하려 한다. 나는 이 비밀을 하나님의 임재와 말씀의 방사선에 나를 노출하기라고 부른다.
죄는 암과 같다.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는 그 암을 치유하려고 쬐어주는 방사선과 같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 머물며 그분의 말에 잠기고 그 사랑에 젖어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당신의 세포 하나하나에 더 많은 능력이 생긴다.
그리스도인은 주님 곁으로 가까이 갈 때만 변할 수 있다. 주님이 임재하시는 장소가 곧 변화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멀리 떨어지면 언제나 적으로 퇴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분 가까이에 가면 언제나 적으로 진보한다. 하나님의 임재는 승리의 근원이다. 그러나 정죄의 목소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임재에서 우리를 멀리 떼어 놓으려 한다. 반면 죄를 깨닫게 하는 목소리는 계속해서 그리스 도의 얼굴을 구하게 한다. 주님과 가까워지게 하는지 주님과 멀어지게 하는지를 보면, 그 목소리가 과연 죄를 깨닫게 하는 소리인지 정죄하는 소리인지 분별할 수 있다.
하나님은 언제나 인간에게 가까이 다가오고 싶어 하셨다. 그러나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인간은 죽었다.
창세기에서 신명기에 이르는 율법서를 보면, 거룩 자체이신 하나님 가까이 갈 때마다 자신들의 파렴 치한 반역과 죄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었던 백성의 절망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이 옛 언약의 치명적인 결함이었다. 선을 넘으면 목숨을 잃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거리를 둘 수밖 에 없었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광야에서 목숨을 잃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에게 우리는 죽 게 되었나이다 망하게 되었나이다 다 망하게 되었나이다 (민 17:12-13)라고 말하는 지경에 이른다. 하 나님도 이 문제를 잘 알고 계셨다.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내가 길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출 33:3)
신명기 5장 25-27절을 보라. 하나님 가까이 가면 목숨을 잃으리란 사실을 잘 알았던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가까이 가 달라고 모세에게 부탁한다. 하나님은 그들의 말을 듣고 말하 는 그 말소리를 내가 들은즉 그 말이 다 옳도다 (신 5:28)라고 말하셨다. 하나님은 백성의 말에 동의 하셨고, 그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셨다. 이스라엘 백성 또한 살아남고자 하나님과 거리를 유지했다. 하지만 그 거리 때문에 그들은 죄의 늪에 더 깊이 빠져들었고, 그 결과 하나님과 더 거리를 두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절망적인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하나님이 개입하셔야 했다. 유일한 해법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뿐 이었다. 죄 있는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통해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로 바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를 변화시킬 광 앞에 순종하며 설 수 있게 되었다. 이 광에 순복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광의 형상으로 바뀐다. 정말 놀라운 사실은 우리에게 연약함과 죄가 있음에도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로 바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큰 특권인가! 바보가 아니고서야 이 광스런 변화와 환희의 친함이 기다리는 놀라운 장소를 무시할 리가 없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의 임재 가운데로 들이시려고, 문자 그대로 자신을 죽이셨다.
주의 임재 안에 들어갈 때, 우리는 강력한 외부 세력에 노출된다. 그분의 얼굴에서 뿜어 나오는 빛나는 광선을 만질 때, 우리 안의 모든 것이 변한다. 여호와 하나님은 해와 같다(시 84:11). 태양은 열기와 빛, 에너지, 자외선, 즉 방사선을 뿜어낸다.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태양 속으로 들어가면, 그분이 내뿜으시는 광선의 방사선이 우리의 죄를 파괴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절대 이기지 못할거라고 생각하여 포기하다시피 했던, 암세포 같은 죄 말이다. 주님의 임재 안에서 보내는 시간은 우리를 늘 괴롭히던 만성적인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강력한 요법이다.
방사선에 노출된 사람들은 처음에는 그 사실을 인식조차 하지 못한다. 강렬한 햇빛에 화상을 입는 사람들은 그 지경에 이르기 전에는 자신이 과도한 방사선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방사선의 향은 언제나 나중에 나타난다. 하나님의 광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시간을 보내도, 처음에는 달라지는 게 있기는 한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진리를 믿고 시간을 쏟아 부으며 주님의 임재 안에서 자신을 내어드리면, 주님과 함께한 이 시간의 효과가 언젠가는 반드시 나타난다.
나는 이 진리를 직접 체험했다. 그러니 당신도 이 말을 듣고 믿기를 간절히 바란다. 하나님과 시간을 보낼 때 당신 안에도 분명히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이다. 주님의 임재 안에 오랜 시간 머물 때, 혼의 분자 구성이 달라진다. 즉,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생각의 방식이 달라진다. 이전과는 다른 곳에 열정과 관심을 쏟게 된다. 하나님이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당신의 속사람을 바꾸어 놓으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전에는 죄를 사랑하는 마음이 당신 혼의 발목을 잡았으나, 이제는 전처럼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보낸 많은 시간,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을 받아 마시며 보낸 시간이 바로 은한 곳의 비밀이다.
하나님께 매료됨의 비 하나님 앞에 섰을 때, 그분은 당신을 어떻게 보실까?
이 질문의 답은 은한 곳에서의 성패를 가른다. 이 점을 잘 아는 사탄은,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왜곡한다. 그분을 엄하고 냉정하고 너무 요구하고 당신이 하는 일마다 불만을 품고 당신에게 실망하고, 당신의 느려터진 적 성장 속도를 답답해하는 분으로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혹시 당신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생각은 모두 틀렸다. 이 왜곡된 인식은 결국 부정적인 감정을 품게 한다. 그분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고 노력하다 지쳐, 경 배의 자유를 만끽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오해하는 일만큼 치명적인 것 은 없지만, 당신이 말 안에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의 관점을 이해한다면, 정말 큰 힘을 얻을 것이다. 하나님이 당신을 향해 웃고 계시며, 당신과 함께하고 친해지기를 바라신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고 마음에 품으면, 당신은 정말 하나님께 매료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게 변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향한 하나님의 관점에서부터 시작하자. 성경은 예수님의 모습을, 생의 보좌 앞에서 계신 어린양으로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계5:6)고 표현한다. 즉,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바로 오늘 일어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하신다. 갈보리의 참혹함과 그리스도 보혈의 강력한 속죄의 역사는 하나님의 눈동자에서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아들의 십자가에 대한 하 나님의 끝없는 열정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이 위대한 사랑의 표현을 믿는 사람은 전능하신 하나님 의 큰 은혜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리스도의 희생을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끝없는 열정과 기쁨이 흘러넘친다. 하나님 아버지는 아들 예수님을 사랑하신다. 그리고 당신도 예수님을 사랑한다. 그래서 이제 당신은 자동으로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다. 그분의 자녀가 되었다. 한 가족이 되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매료되셨다. 그 사실을 깨달으면, 그분의 임재 안으로 당당히 들어갈 수 있다. 그분이 바라시는 대로 얼굴을 들고 기대에 찬 눈으로 기쁨의 미소를 짓고 열망의 목소리를 내며, 불타는 마음으로 주님의 임재 안에 들어갈 수 있다. 설령 당신이 고군분투하는 상황이라 해도 하나님은 당신의 동행을 여전히 기뻐하신다. 그분은 당신의 약함을 잘 아신다. 그래도 변함없이 당신을 자녀로 맞으신다. 당신이 실패하여 넘어져도 여전히 기뻐해 주신다. 오히려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 걸음을 재촉하여 주님의 품을 향하는 모습을 사랑스러워하신다. 얼마나 큰 위로인지! 주님은 성숙의 정도와 상관없이 우리 존재 자체를 기뻐하신다. 다음 말을 읽으라. 사랑하는 주님은 우리를 이런 마음으로 보신다.
그리하면 왕이 네 아름다움을 사모하실지라(시 45:11).
신랑 되신 주님은 그분과 연합하려고 모든 것을 버린 신부인 우리를 사랑스런 눈길로 바라보신다. 예수님이 보시기에 당신은 아찔할 만큼 아름답다! 주님은 우리를 원히 그분의 것으로 삼고 품에 안기 바라신다. 은한 곳은 당신을 아름답게 보며 사랑하는 왕이 머무는 침실이다. 은한 곳에 들어가는 것은 곧 왕의 침실로 들어가는 것이다. 당신은 그곳에 왕이 있기를 고대한다. 그뿐만 아니라 왕도 당신이 그곳에 있기를 고대한다! 이 사실을 매력의 비이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주님이 우리에게 매료되셨다는 비밀이다.
이 사실을 알면, 주님의 침실을 계속 사모하게 된다. 그리고 주님의 광스 런 임재에 들어갈 때, 우리는 주님의 형상으로 변한다(고후 3:18) 그리스도의 형상이 되어 갈 때, 우리 는 주님 보시기에 더 매력적인 존재가 된다! 신부가 자신을 거룩한 옷 (시 110:3)으로 치장할 때, 상사 병에 걸린 신랑의 사랑은 더욱 강렬해진다.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이 친함으로 온 전하게 되는 은한 곳에서 속사람은 더 아름답게 변한다(벧전 3:4).
이곳에서 그리스도의 신부는 너는 나를 도장같이 마음에 품고 (아 8:6)라고 부르짖는다. 즉 신부는 사랑하는 자에게 이렇게 외치고 있다. 내 생명을 당신의 생명과 묶어 주세요. 당신의 가장 큰 사랑이 내게 고정되게 해주세요. 저를 당신 우주의 중심으로 삼아 주세요. 당신이 무엇을 느끼든 함께하고 싶습니다. 모든 열정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당신의 생각과 내 생각이 같기를 바랍니다. 당신과 사랑으로 연합하기 바랍니다. 이는 바로 주님과 혼의 단짝이 되고 싶다는 외침이다. 혼의 단짝은 항상 같은 결론에 도달할 뿐 아니라 같은 경로로 그 결론에 도달하는 사람이다. 즉, 사고의 흐름이 같다. 그래서 특정 상황에서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반응한다. 예수님은 신부를 혼의 단짝으로 세우신다. 은한 곳은 그 사랑이 부화하여 타오르는 자리다. 당신은 예수님 보시기에 아주 매력적인 존재일 뿐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가 열정적으로 안아 주시는 존재다! 하나님은 당신을 눈동자 (신 32:10; 슥 2:8)라고 표현하신다. 사람이 눈동자를 소중히 다루듯, 아버지께서 우리를 소중히 여기고 지키신다는 말이다. 아들 베냐민을 향한 야곱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과 많이 닮았다.
아버지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거늘 이제 내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 돌아갈 때에 아이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아버지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이같이 되면 종들이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흰 머리로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니이다(창 44:30-31)
야곱의 아들들은 베냐민과 야곱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다고 이야기한다. 야곱은 하나님 아버지를 상징한다. 하나님 아버지의 생명도 그분이 사랑하는 자녀의 생명과 하나로 묶여 있다. 우리가 사는 모습을 보실 때 그분도 사시고, 우리가 채워지는 모습을 보실 때 환호하신다. 또 우리가 자유로울 때 기뻐하시고, 우리가 안식할 때 만족하신다. 하나님과 우리의 마음이 하나로 묶여 있기에 그분은 구속이라는 놀라운 일을 계획하셨다. 당신은 하나님 우주의 중심이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기 도하면서 이 진리를 입증하셨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심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요 17:23).
생각해 보라! 하나님이 독생자를 사랑하시듯 우리를 사랑하신다니! 거룩하고 흠 없는 하나님이 예수님 을 바라실 때처럼 우리를 보신다니, 놀랍지 않은가!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과 열정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과 열정보다 훨씬 깊고 크다. 우리 마음이 아무리 불타올라도 주님의 열정과는 비할 수 없다. 왜 이것이 진리인지 이야기해 주겠다. 나는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내 사랑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일상생활에서 이런저런 일을 처리할 때면 주님을 까마득히 잊어버린다. 몇 시간이 지나야 다시 생각할 수 있을 뿐, 일에 집중할 때는 아무런 생각도 못 한다. 하지만 주님은 나와 다르시다. 주님은 나에 대한 생각을 절대 멈추지 않으신다. 주님은 내게 시선을 늘 고정하신다. 주님은 지금 내가 어떤 존재인지, 나를 어떤 존재로 빚어갈지에 온 생각을 집중하시다. 모든 일을 다 마친 내가 주님을 다시 생각하면, 이렇게 말하신다. 계속 너를 기다리고 있었단다. 나는 너를 정말 정말 사랑해! 주님은 당신만을 기다리신다! 밤새도록 바라보면서 당신이 일어나기만 기다리신다. 아침에 눈 떴을 때 가장 먼저 그분을 생각해 주길 바라며 기다리신다. 당신은 주님은 내가 은한 곳에 오기를 바라고 계실까?하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분은 당신을 계속 기다리셨고 앞으로도 그러실 것이다. 그분과 당신의 생명이 서로 묶여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내려오는 은혜가 당신에게 임하여 비의 실체, 하나님의 당신을 아주 매력적인 존재로 보고 계신다는 비을 소유하길 바란다! 주님, 다시는 제가 주님의 품을 벗어나지 않게 해주세요!
3부 마라톤 페이스를 정하라
눈물의 비밀
주님께 드릴 수 있는 귀한 선물은 절대적인 진실이다. 당신이 주님, 진정 제 우주의 중심이신 주님께 나아갑니다. 주님이 제 삶의 목적입니다. 제 마음은 전적으로 주님께만 고정되어 있습니다 라고 고백 하는 순전한 마음이야말로 주님께 드릴 가장 큰 선물이다. 그분께 자신을 완전히 드리는 찬양을 올리 는 기쁨은 그 무엇보다 크고 귀하다. 하지만 육신이 양심을 더럽히도록 내버려 두면, 진실은 금세 사라진다. 양심을 더럽혀도 될 만큼 가치 있는 육신의 기쁨은 없다. 하나님 앞에서 위선적으로 행동했다고 느낄 때, 즉 육신의 욕망 때문에 그분의 제안을 거절했을 때 죄책감이 생긴다. 그러나 깨끗한 양심으로 주님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면,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얻는다! 연약함과 씨름하는 일은 끝이 없고 우리는 비록 부족하지만, 열렬한 소망을 품고 주님께 나아간다.
나는 이것을 달콤한 진실이라고 부른다. 마음의 진실은 아무리 심각한 문제라도 단번에 해결한다. 주 님은 진정 우리 마음의 사랑이시다. 하나님 앞에 온전히 진실한 마음으로 나아갈 때 그 사랑의 달콤 한 화답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이 진실은 매우 달콤하다. 이 순간에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롬 12:9)라는 말은 실제가 된다. 나는 주님을 향한 갈망이 가장 클 때가 그분의 임재를 가장 강하게 느 낄 때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혼이 눈물을 쏟을 만큼 주님을 갈망할 때, 그분은 사랑으로 화답하 신다.
진정한 사랑은 조금의 가식이나 정욕 없이 온전한 진실만 추구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을 향한 달콤한 진실을 추구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방법을 한 가지 나누고 싶다. 가식과 위선 없이 사랑 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눈물을 흘린다! 눈물을 다룬 시편은 총 일곱 편인데, 그중 세 편은 다윗이 썼다. 하나님과 순도 백 퍼센트의 은한 삶을 나누었던 다윗은 눈물의 사람이었다. 자신의 눈물이 진실이라는 점을 입증하려는 듯 내가 눈물 흘릴 대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시 39:12)라고 울부짖었다. 눈물은 자매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다른 시편 기자는 자신의 눈물을 가리키며, 부르짖음이 진실이라고 호소한다.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시 42:3).
눈물은 순수하다. 가식이 없다. 물론 배우들처럼 거짓으로 할 수도 있지만, 기도할 때 거짓으로 눈물 흘리는 사람은 없다. 은한 곳에서는 정직한 눈물을 흘리거나 아예 눈물 흘리지 않거나 둘 중 하나 다. 눈물은 떠난 신랑을 향한 깊은 고백이다. 눈물은 물기 있는 언어다. 눈물은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전한다. 때로 말에는 상투적이고 진부한 가식이 담기지만, 눈물은 마음에서 곧바로 흘러나온다. 눈물을 아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복 있는 자다. 애써서 간신히 눈물을 흘렸던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눈물을 구하라. 하나님은 이런 기도에 은혜로 답하신다.
우리가 우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로 소망하기 때문이고, 둘째로 고통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눈물은 바람의 언어다. 우리는 눈물을 흘리기까지 주님을 바란다. 우리의 바람이 부족하면, 자비하신 주님은 잠시 우리를 멀리하심으로 우리 안에 바람이 생기게 하신다. 기근이 닥치면, 우리는 주린다. 가뭄이 오면, 우리는 갈급해한다. 결 국 박탈은 바람을 낳는다. 당신을 울게 하는 고통을 멸시하지 마라. 당신의 마음을 주님 앞에 모두 쏟 아 놓으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다! 언제나 많이 사랑하는 자는 주님의 발을 눈물로 씻겨 드린다 (눅 7:36-48 참고). 흐느낌과 눈물은 항상 주님의 관심을 받는다. 다윗은 이 사실을 잘 알았기에,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시 56:8)라고 간구했다. 주님은 우리의 눈물을 주목하실 뿐 아니라 그 눈 물을 병에 담아 원한 증거로 보관하신다.
성경을 보면, 두 가지 병이 눈물을 자아낸다. 첫 번째 병은 잠언에 기록되어 있는데, 소망이 더디 이루어지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거니와 (13:12)라는 말이다. 구원의 소망이 더디 이루어지면, 마음에 병이 든다. 이 때문에 혼은 깊은 곳에서부터 앓는 소리를 내고, 그 고통을 눈물로 표현한다. 이 눈물은 마음이 상한 자의 눈물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를 무시하지 않으신다. 마음이 병든 자는 오, 하나님! 저를 찾아 주소서! 주님의 능력 가운데 제게 오시고 제 삶에서 주님의 말을 이루소서!라고 부르짖는다. 눈물을 자아내는 두 번째 병은 아가서에 기록되어 있는데, 예루살렘 딸들아 너희에게 내가 부탁한다 너희가 내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 (5:8)라는 말이다. 사랑으로 난 병, 즉 상사병은 주님의 모습을 뚜렷이 볼 수 없을 때 생기는 병이다. 왕의 아름다움을 보고 싶은데 주님은 극히 일부만을 계시하실 때, 우리는 상사병이 난다. 상사병에 걸린 자는 주님, 제게 주님의 광을 보이소서! 저는 주님을 보기 원합니다. 주님을 알기 원합니다! 하고 부르짖는다. 마음이 병은 응답받지 못한 능력의 결과다. 상사병은 응답받지 못한 짝사랑의 결과다. 광야에 숨어 지내던 다윗은 이 두 가지 바람을 고백하며 부르짖었다.
내가 주의 권능과 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시 63:2).
마음의 병이 있는 자는 제게 주님의 손을 보이소서!라고 부르짖으며 흐느낀다. 상사병이 있는 자는 제게 주님의 얼굴을 보이소서!라고 외치며 통곡한다. 기도의 골방은 눈물의 젖은 능력에서 힘을 얻는다. 하나님과 더 친히 동행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울어 보라.
4부 더 깊은 관계를 구하라
참된 부를 추구함의 비밀
지혜의 성령은 잠언에 최고의 권고를 은히 담아 전해 주신다.
지혜를 얻으며 명철을 얻으라…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네가 얻은 모든 것을 가지고 명철을 얻을지니라(잠 4:5, 7).
변하지 않는 흔적 보화를 찾는 눈이 있는 사람은 은한 곳을 추구한다. 다른 곳에 시간을 투자하면 이 땅의 재물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생을 바라보는 눈은 이 땅의 것보다 더 소중한 지혜와 명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등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을 구하는 자가 지혜롭다! 지혜를 구하는 일은 예수 님을 구하는 일이다. 예수님이 지혜이시기 때문이다(고전 1:30). 또한 지혜는 곧 성령이시므로(사 11:2) 성령충만을 구하는 일이다. 성령을 구한 요셉과 다니엘은 이 땅의 위대한 왕들이 모사로 삼을 만큼(창 41:38; 단 5:11) 큰 지혜를 보여 주었다. 이들은 지혜가 금이나 은보다 훨씬 더 귀하다는 사실을 알았 다. 지혜와 명철의 사람이 된다는 게 무엇일까?
다음 말에 답이 있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시 14:2)
이 구절의 하반절은 히브리어 병렬법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니까 두 구절의 의미는 같다. 지각 있는 자와 하나님을 찾는 자는 같은 뜻이다. 즉, 지각이 있는 행동은 하나님을 구하는 것이다. 지능지수가 평균 이하인 사람도 하나님을 온전히 찾는 데 헌신할 수 있다. 반면 하나님을 찾지 않는 자는 아무것 도 이해하지 못한다. 이들은 오히려 둔하고 무딘, 어리석은 자들이기 때문이다(시 14:1 참고). 하나님을 구하는 명철의 사람은 참된 적 보화의 본질을 깨닫는다. 지혜로운 자는 진짜 돈이 어디에 있는지 안다. 이제 참된 보화라는 말의 의미를 살펴보자. 바울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쓴 신약의 한 구절에 정답이 있다.
어두운 데서 빛이 비치라 말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6-7)
바울이 말하는 이 보배는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광을 아는 빛이다. 즉,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보배다. 바울은 골로새서에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골 2:3)고 쓰면서 이를 다시 확증한다. 따라서 누가복음 16장 11절의 참된 것은 곧 그리스 도를 아는 지혜와 지식을 뜻한다. 예수님은 세상의 부를 멸시하신다. 그분은 하나님을 아는 참된 생의 보화를 귀히 여기신다. 우리가 불의한 재물도 충성스럽게 관리할 때, 광스런 하나님 아들의 아름다움을 계시받을 자격을 얻는다.
참된 보화는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 성령 하나님을 아는 지혜와 지식과 명철이다. 손톱만큼의 지각이라도 있다면, 모든 것을 내던지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만 구할 것이다. 바로 여기서 은한 곳이 등장한다! 왜냐하면 그곳은 하나님 말이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또 성령이 우리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는 곳이며, 적인 식욕을 마구 돋우는 곳이 다. 하나님의 길을 알고 그분을 더욱 확실히 보기 위해 거룩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모세처럼 부르짖는다.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출 33:13). 그리고 온유하신 주님은 이렇게 약속하신다.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 네 이름을 부르는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네가 알게 하리라(사 45:3)
원래 이 말은 이집트 피라미드에 숨겨진 보물을 찾으리라는, 고레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이 말을 우리 상황에 맞춰 적용해 보라. 지존자의 은한 곳에 위대한 보화가 숨겨져 있다는 의미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풍성한 말 깊은 곳에 숨은 금을 찾아 나서라! 주님, 주님 안에 숨겨진 보화를 귀히 보게 하시고, 주님을 더 열렬히 구하는 갈망을 품게 해주세요. 지혜와 계시의 을 주셔서 명철의 눈이 밝아져 주님을 알게 해주세요! 이로 말미암아…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우리 주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 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1:15-19).
▶ 본 도서요약본은 원본 도서의 주요 내용을 5% 정도로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원본 도서에는 나 머지 95%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보다 많은 정보와 내용은 원본 도서를 참조하시기 바라며, 본 도서요약본이 좋은 책을 고르는 길잡이가 될 수 있기 바랍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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