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시편 42편 1절-11절

열려라 에바다 2011. 10. 31. 15:51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시편 42편 1절-11절

<배경 설명>
오늘 본문의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한 영혼의 갈급함을 노래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
갈급함을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헤매는 모습에 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유목민
(遊牧民)으로 양을 치며 살았기에 사슴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사슴은 다혈질의 동물로 야수에 쫓기는 사슴은 더욱 목말라 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인 시편 42편은 그 배경이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으로 되어 있습니다(본문6절).
다시 말해서 이 시를 노래하고 있는 시인은 지금 예루살렘 성전에 나아갈 수 없기에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를....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이 시편 42편을 그 표제에서 밝히는 "고라 자손의 시"가 아니라,
"고라 자손들에게 부르게 한 시"라고 봅니다. 실제로 지은 사람은 다윗으로 61세때 압살롬에게 쫓겨
예루살렘을 떠나 요단 강을 건너 헤르몬과 미살 산을 거쳐 피난생활을 할 때에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를 갈망하며 부른 노래라고 보는 것입니다.

다윗이 자기 아들 압살롬에 쫓겨 살 때 그의 마음속에 밀려드는 불안과 두려움을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물리치고 찬양한 노래입니다. 본문을 통해서 볼 때, 다윗이 그 밀려드는 두려움, 불안, 초조, 절망, 좌절, 낙망, 걱정, 근심을 극복하고 다시 승리했던 비결은 세가지였습니다.


<1절 해석>
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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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만나려면 사슴처럼 되어야 합니다.
푸른 초원에서 노는 사슴이 아니라, 시냇물을 찾아 헤매는 사슴처럼 되어야 합
니다. 갈증을 만난 사슴의 모습을 상상해 보기 바랍니다.
그 사슴처럼 우리의 영혼이 갈급 하여야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갈급한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것을 생각해 보면,
왜 내가 하나님을 아직 만나지 못하고 있는가를 쉽게 깨닫게 됩니다.

'사슴이 갈급 하여 물을 찾듯이 내 영혼이 주를 찾아 갈급 하나이다' 라는 이
말씀을 유념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요구를 충족시켜주는 하나님으로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나에게 좋은 것만 채워주시는 하나님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다 그런 하나님이 아니란 점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는 하나님이란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만 믿는 신앙은 아직도 90% 의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내 요구를 들어주는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은 내 자신의 전부이어야 합니다.<매우중요>

이럴 때 이것이 100% 의 신앙입니다.
그것이 아브라함의 신앙이었습니다.
그것이 욥의 신앙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신앙을 가질 수 있었습니까?
이미 죽은 고목 같았던 아내의 몸에서 잉태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 분이 하나
님이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미 자기에게 재물과 자녀를 주신 이가 여호와 하나님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주신 이도 여호와 시오, 도로 찾은 이도 여호와 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실 지로다 라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아브라함과 욥의 하나님은 자신들의 전부였습니다.
자기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들의 생존 자체였다는 말입니
다. 이것이 100%의 신앙입니다.

사람들은 목말라 갈증을 느낍니다.
그럴 때 생수 한 병을 원합니다.
그러나 그 생수는 또 말라 다시 찾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지 않는다'
고 하신 말씀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 주님은 갈증날 때 한 목음의 물이 아니라,
갈증자체를 해소하는 생수의 근원이라는 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소원을 성취케 하는 수단으로 하나님을 찾을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자체가 생수임을 알고 그 하나님을 만나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그 배에서 생수가 되어 나오는 경험을 얻게 됩니다.
이렇게 될 때 전천후 적인 신앙생활에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2절-4절 해석>
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
3. 사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4.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찬송의 소리를 발하며 저희를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왜 예루살렘(교회)에 가고 싶은가? 왜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던 때가 생각이 나는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좋으신 하나님을 만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울면서 2절에 고백합니다. '내 영혼이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가서 하나님 앞에 뵈울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은데 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집에 가서 마음을 터 놓고 기도하고 싶은데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먹을 것을 못 먹고 돈 쓸 것을 못 쓰면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불행은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불행입니다. 하나님께 가지를 못하고 마음이 세상을 떠도는 불행입니다. 마음이 답답하면서도 기도하지 못하면 불행합니다.

또한 다윗은 지금 우울증에 빠져 있습니다. 눈물이 그의 양식이요, 완전히 실의에 빠지고 낙심된 상태입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믿는 사람들이 왜 두려움, 불안, 초조, 실의, 실망, 절망, 낙망, 좌절, 죽을고비에 빠져 있습니까? 그 이유는? 나 자신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시인이 낙심된 원인이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 시인은 '나'라는 말을 너무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나'를 14번, '나를'을 16번, '나의'를 21번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데 너무 바빴기 때문에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보면서 반성하고 회개하는 일은 좋지만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지나치면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므로 큰 실망에 빠집니다.

지금 혹시 자기 자신을 바라보면서 낙심하는 분이 있습니까 직장에서 물러난 나, 사회적으로 소외된 나, 과거의 꿈이 다 깨어져버리고 산산조각이 난 나, 사라져버린 과거를 회상하면서 실망하는 분이 있습니까 주께서 주시는 위로의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라"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으면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나 자신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실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원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크게 요동치 아니하리로다"(시 62:1-2)

우리는 자신을 바라보면서 실망하는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무능함, 무력함에서 오는 실망감입니다. 그러나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5절).

<5절 해석>
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을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왜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명예가 있어도, 없어도, 공부를 잘해도, 못해도, 돈을 많이 벌어도, 적게 벌어도,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없어도, 넉넉해도, 부족해도, 늘 불안해 하는것일까요?

지금 많은 사람들은 불안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요즘 점점 더 불안해하는 것 같습니다.
세계가 모두 미래를 낙관하기 보다는 불안해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것은 우리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나라 안에서도 만족해하는 사람보다는 불안해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① 직업을 잃은 사람들, ② 미래의 대책이 서지 않은 사람들, ③ 경제적 어려움 속에 있는 사람들, ④ 질병 속에서 고통 하는 사람들, ⑤ 아들을 군대에 보낸 사람들, ⑥ 입시를 앞둔 부모들, 모두가 걱정과 불안해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안의 해소방법은 이렇습니다.

오락을 찾아서, 섹스로, 술로, 명예로, 학벌로, 재물(돈)로, 마약로, 무력의 힘(전쟁)으로 해소할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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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그 무엇으로도 인간의 마음의 근심과 불안을 해소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사람의 불안한 마음을 해소하는 데는 돈으로도, 술로도, 무력의 힘으로도 불가능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고 하였습니다.

불안을 해소하는 길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에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만이 인간의 근본적인 불안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바라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여기 바란다는 말은 그에게 <소망>을 두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에는 hope in God 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능력}을 바라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를 {전적으로 의지}하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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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음이 불안해지는 이유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 보다, 사람의 생각들을 앞세우기 때문입니다.
인위적이고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 겉과 속이 다르게 행할 때, 그런 마음에는 불안이 없어지질 않습니다.
하나님 보다 사람을 더 크게 보는 한 불안은 상존합니다.

그러므로 흔들리는 담과 같은 인생들을 의지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 코에서 호흡이 끊어지는 순간 당일에 그 도모가 헛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은 산(山)이 요동치 않음같이 영원토록 그 자리에 서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불안한 마음은 하나님을 바라볼 때 새 힘이 주어집니다.

어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나?
주를 갈망하는 시편 42편 기자(다윗)의 하나님은 어떤분이십니까?
다윗이 그토록 갈망하며 찾는 주는,

① 생존하시는 하나님(2절)
2절-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
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

한 영혼이 그토록 갈망하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이다. 사람의 손으로 깎아 만든 신이 아니
다. 생명 없는 죽은 신이 아니다. 우상은 거짓이요 그 속에 생기가 없다고 했다(렘10:14). 입
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그 입으로 숨
쉬지도 못한다고 했다(시135:16-17)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귀를 기울이사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살아계신 하
나님이시다(시40:1). 모세의 기도를(민11:2), 사무엘의 기도를(삼상7:9), 엘리야의 기도를(왕상
18:36-38)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② 생명의 하나님(8절)
8절-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 인자함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생명의 창조주이시오, 생명의 주인이시다(창2:7)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
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
라」고 하셨다.

③ 반석이신 하나님(9절)
9절-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인하여 슬프게 다니나이까 하리로다

반석은 숨을 곳을 말하며 피난처가 된다(시62:7). 곧 하나님의 보호를 말한다. 그래서, "나의
피할 반석이라"고 했다(시94:22). 뿐만 아니라 "내 힘의 반석"이라(시62:7), "우리의 구원의
반석"이라고 했다(시95:1). 다시 말해서 어떤 처지와 환경 속에서도 지켜 주시고 인도해 주
실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확신에 찬 신앙고백이다.

④ 도우시는 하나님(11절)
11절-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
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의 창조함을 받은 우리 모든 사람들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起動)한다(행17:28). 그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한다(행17:27). 요셉을 도우시고(창
49:25), 모세를 도우시고(출18:4), 사도 바울을 도우셨던 하나님이시다(행26:22).
그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으로....

<6절 해석>
6.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망이 되므로 내가 오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다윗이 그 밀려드는 두려움, 불안, 초조, 절망, 좌절, 낙망, 걱정, 근심을 극복하고 다시 승리했던 비결은 세가지였습니다. 그 첫번째로..

첫째가, 그 낙망의 순간에 주를 기억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6절에“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망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그랬습니다.
다윗은 아들 압살롬이 자기에게 반역을 일으키고 생명을 위협할 때, 그 영혼이 낙망이 되었습니다. 왜 안그렇겠습니까? 만약 여러분에게도 애지중지 키운 아들이 칼을 들고 여러분에게 달려든다면 어떻겠습니까? 다윗은 그 사실 앞에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본문 6절 가운데, 요단 땅, 헤르몬과 미살산이 나오는데,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겨 예루살렘에서 요단 땅으로 해서, 저 북쪽 끝에 있는 헤르몬 산과 미살 산이 있는 곳까지 도망을 쳤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 절망스런 순간에 다른 것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주를 기억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억했습니다.

왜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었을까요? 그는 젊은 시절 사울 왕에게 쫓기던 때, 오로지 하나님만 의지하였고, 하나님께서 다윗을 적들의 그 무서운 칼날로부터 피하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다윗을 사울은 10년 동안이나 쫓아다녔지만, 잡을 수 없었습니다.

다윗은 이제 다시 아들의 군대에 쫓겨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되었을 때, 자신을 항상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셨던 그 하나님을 기억했다 remember 했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어떤 두려움이 있습니까? 어떤 공포가 있습니까? 주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날, 수많은 전쟁과 질병과 위험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들을 지켜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보호하셔서 우리가 오늘날 살아남았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시고,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는 한 참새 한마리도 떨어지지 않는다 했습니다. 그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 우리들의 아버지가 되시는데, 그 누가 우리를 해치겠습니까? 하나님을 기억하시고 두려움을 물리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이사야 41장 10절-“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여러분, 우리는 한때 좌절할 수 있습니다. 낙심할 수 있습니다. 절망할 수 있습니다. 그때는 하나님을 기억하는 사람, 하나님을 생각하는 사람은 용기를 얻고 승리하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7절-9절 해석>
7.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파도와 물결이 나를 엄몰하도소이다
8.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 인자함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9.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으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인하여 슬프게 다니나이까 하리로다

다윗이 그 밀려드는 두려움, 불안, 초조, 절망, 좌절, 낙망, 걱정, 근심을 극복하고 다시 승리했던 비결 두번째는?

두번째로, 다윗은 두려움이 몰려올 때, 기도로 그 두려움을 물리쳤습니다.

오늘 본문 7절로 9절을 봅시다.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파도와 물결이 나를 엄몰하도소이다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 인자함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인하여 슬프게 다니나이까 하리로다”그랬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다윗은 두려움의 파도와 물결이 자신을 삼키려고 할 때,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리며 기도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도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누구를 도와주십니까? 도와주심을 바라는 자를 도우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많이 받아야 합니다. "눈을 들어 산을 보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우리는 눈을 들어 하늘을 보고 땅을 보고 자연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보아야 합니다.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 인자함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8절)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언제나 희망을 주는 것은 기도 외에는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 앞뒤가 막히고 세상 살기가 힘들어 낙심이 되어 기가 죽어 있을 때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이 말씀을 상고하십시오.

성경을 읽어보세요. 기도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어떤 위험에 있던지 건져주셨습니다. 기도할 때, 죽을병에 걸린 수많은 사람들이 고침을 받았고, 기도할 때, 수많은 외세의 침략을 물리쳐주셨으며, 기도하는 다니엘과 친구들은 사자굴과 풀무불 속에도 건짐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도 기도는 할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4장 6-7절 말씀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하였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어떻게든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매우중요>
그런데, 여러분, 기도하는 것도 방법과 순서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 4장 6절에서 기도하라 하면서,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하였습니다. 여러분, 기도에 순서가 있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기도와 간구 - 이 순서를 잘 지켜서 해야 합니다. 기도하고 간구해야지, 간구하고 기도하면 안됩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바울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았습니다만, 기도란 뭐냐? 기도와 간구가 다 하나님께 하는 기도들입니다만,

기도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묵상할 때, 하나님이 크게 보입니다. 믿음이 충만해집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크게 보일 때, 걱정이 사라집니다. 두려움이 사라집니다<매우중요>.

그 다음, 간구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간구란 내가 바라고 구하는 구체적인 기도들입니다. 나에게 있는 문제들, 질병, 고민, 소원을 구하는 기도가 간구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크게 보일 때, 간구로 들어가면, 문제가 작게 보이지요? 내 고민이 별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묵상이 없이 처음부터 냅다 간구부터 하면, 문제가 크게 보이지요? 고민이 크게 보입니다. 그래서, 오래 기도했는데도 확신이 없다. 마음이 답답하다하는 것은 기도의 순서가 잘못되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묵상이 없이, 문제부터 묵상하면 문제가 더 커집니다. 문제에 내가 눌리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기도할 때는 어떻게 하라구요? 기도와 간구 이 순서를 잘 지켜 기도할 때, 두려움이 사라지고 공포가 사라지고, 승리하게 될 줄 믿습니다.

절망 중에 기도하는 사람 하나님께서 모든 염려와 두려움을 물리쳐주시고 반드시 놀라운 평강과 승리를 허락해주시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예화-짱>
거창 고등학교를 세운 정영창 선생님의 이야기입니다 그 분은 한국 역사 속에 하나의 살아있는 순교자와 같은 정신적인 지도자입니다. 그가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미국에 남아서 거기에서 활동할까 하다가 '전쟁 이후에 폐허가 된 한국 땅에 돌아가서 내가 인재를 양성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한국 땅에 옵니다. 때마침 거창에 빚더미에 올라서 폐허가 된 학교가 하나 있다는 것을 알고 1958년 빚으로 넘어가는 학교를 그가 맡게 되었습니다. 막상 학교를 맡기는 했지만 빚을 갚을 길이 없어서 빚쟁이들의 독촉에 학교가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 찬송, 담요 하나를 가지고 거창읍에서 40리 떨어진 웅안현 산 마루턱 언덕에 있는 굴 속에 들어가 일주일 동안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미국 유학을 다녀와서 이 민족을 위해서 새로운 고등학교 교육을 해보려고 하는데 이 학교가 이렇게 되어서 어떻게 교육을 할 수 있겠습니까 무엇 하나 할 수가 없습니다. 빚에 쪼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간절히 사흘동안 금식하면서 매달려도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답답한 마음으로 "하나님, 이 기도를 응답해 주시지 않으니 아무런 확신이 없습니다. 정 그러시다면 저도 생각이 있습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제가 일주일 금식기도 마치고도 응답을 안하시면 서울에 올라가 동아일보에 하나님 안계신다고 광고를 내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을 협박할 수 있는 담대함으로 기도를 하고 나니까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으면서 시원하더랍니다. 그가 찬양을 부르면서 하산해서 학교에 오니까 편지가 왔는데 조은복이라는 크리스챤 미국인 성도가 2050$을 보내주어 당시 부채를 정확하게 청산했습니다.

그리고 1971년 학교를 운영하면서 학교 본당 건물이 낡고 볼품이 없어서 "하나님, 기왕에 교육을 시작했사온데 본관 건물이 이것이 뭡니까 이것이 학교라니 부끄럽습니다. 도와주십시오." 하고 간절히 기도했더니 미국 수정교회 로버트 슐러 목사가 22만불을 보내주어 학교를 제 궤도에 올렸습니다.

무슨 일로 불안해합니까 무슨 일로 낙심이 됩니까 기도하십시다.

<10절-11절 해석>
10. 내 뼈를 찌르는 칼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
1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다윗이 그 밀려드는 두려움, 불안, 초조, 절망, 좌절, 낙망, 걱정, 근심을 극복하고 다시 승리했던 비결 세번째는?

세번째, 다윗은 두려움이 몰려올 때, 하나님을 바라보며 찬송했습니다.

본문 10절로 11절 보세요.“내 뼈를 찌르는 칼 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여러분, 다시 들어보십시오.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다윗은 두려움이 몰려올 때,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 찬송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찬송한다는 것을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확고한 믿음이 없이는 두려움 속에서 찬송할 수 없지요? 하나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진 자만이 찬송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찬송하는 사람에게 두려움은 물러가고, 평강이 찾아옵니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예)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바울과 실라가 점치는 여종이 귀신들린 것을 고쳐줬다가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일이 있었지요? 억울하게 붙들려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한밤중에 일어나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미할 때에 그 감옥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큰 지진이 일어나서 옥문이 열리고 모든 사람들의 매인 것이 풀리고 간수가 찾아와 회개하고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할렐루야!

예)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어느 시골 마을을 대상으로 무료 진료를 실시하면서 조사를 해보니까, 그 마을 사람 총 200명 중에 교회를 다니는 교인과 안믿는 사람이 대략 절반씩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인들은 100명 중 40%가 병이 있는 환자였고, 불신자는 100명 중 80%가 환자였다고 합니다. 교인들이 불신자보다 갑절로 건강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유가 무엇인지 분석해보았는데,

첫째, 교인들은 예배당에 가서 박수치고 찬송을 부르기 때문에 그 마음에 기쁨과 평화가 넘쳐서 스트레스가 풀리고, 전신의 근육과 신경이 운동을 하게 되므로 혈액순환이 잘 는 것 같다.

둘째, 교회 나가서 기도함으로 근심과 걱정, 속상함, 불안 등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에 울화병이 안 생기고 마음에 평강을 누릴 수 있어 건강한 것 같다.

셋째, 하나님의 복을 많이 받아서 사니 생활이 더 형통하고 성공하게 되어 건강하게 사는 것 같다는 조사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이제 여러분도 어떤 염려가 있던지 찬송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찬송을 부르면,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공포가 사라집니다.

예) 구약성경 역대하 20장에 보면, 유대나라에 모압과 암몬, 마온 족속들이 연합으로 쳐들어왔을 때, 여호사밧왕이 군대 앞에 성가대를 앞세우고 찬송을 부르며 나갈 때에 적들이 자중지난을 일으켜 자기들끼리 죽이고 죽는 일이 벌어져 유대가 큰 승리를 거둔 일이 있었습니다.

찬송할 때, 능력이 나타나고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들에게 여러 가지 불안하고 두려운 일들이 많이 들려옵니다만, 저와 여러분들은 그 문제들을 크게 보지 마시고, 하나님을 크게 보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의 역사는 하나님이 주장하십니다. 전쟁의 승패는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으면 참새 한마리도 그냥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한 그 어떤 환난이나 질병, 문제도 두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자녀들을 위해 막아야 할 일은 막아주시고 데려갈 사람 데려가시고 선하신 뜻대로 주장하실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오직 하나, 11절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입니다. 우리 다같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모든 공포 물리치고 담대히 전진하는 신실한 하나님의 군사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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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부분 설교요약>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시편 42편 1절-11절

하나님은 내 요구를 들어주는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은 내 자신의 전부이어야 합니다.<매우중요>

4절의 성일 - 왜 예루살렘(교회)에 가고 싶은가? 왜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던 때가 생각이 나는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좋으신 하나님을 만나고 싶기 때문입니다.

믿는 사람들이 왜 두려움, 불안, 초조, 실의, 실망, 절망, 낙망, 좌절, 죽을고비에 빠져 있습니까? 그 이유는? 나 자신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라!"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으면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여기 바란다는 말은 그에게 <소망>을 두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에는 hope in God 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능력}을 바라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를 {전적으로 의지}하라는 뜻입니다.

어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나?
① 생존하시는 하나님(2절)② 생명의 하나님(8절)
③ 반석이신 하나님(9절) ④ 도우시는 하나님(11절)

다윗이 그 밀려드는 두려움, 불안, 초조, 절망, 좌절, 낙망, 걱정, 근심을 극복하고 다시 승리했던 비결은 세가지였습니다.

첫째가, 그 낙망의 순간에 주를 기억했다는 것입니다(6절).
이사야 41장 10절-“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두번째로, 다윗은 두려움이 몰려올 때, 기도로 그 두려움을 물리쳤습니다(7절-9절).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언제나 희망을 주는 것은 기도 외에는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 앞뒤가 막히고 세상 살기가 힘들어 낙심이 되어 기가 죽어 있을 때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이 말씀을 상고하십시오.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 4장 6절에서 기도하라 하면서,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하였습니다.

기도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묵상할 때, 하나님이 크게 보입니다. 믿음이 충만해집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크게 보일 때, 걱정이 사라집니다. 두려움이 사라집니다<매우중요>.

그 다음, 간구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간구란 내가 바라고 구하는 구체적인 기도들입니다. 나에게 있는 문제들, 질병, 고민, 소원을 구하는 기도가 간구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크게 보일 때, 간구로 들어가면, 문제가 작게 보이지요? 내 고민이 별 것이 아닙니다.

세번째, 다윗은 두려움이 몰려올 때, 하나님을 바라보며 찬송했습니다(10절-11절).
찬송한다는 것을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확고한 믿음이 없이는 두려움 속에서 찬송할 수 없지요? 하나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진 자만이 찬송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찬송하는 사람에게 두려움은 물러가고, 평강이 찾아옵니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제 우리는, 오직 하나, 11절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입니다. 우리 다같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모든 공포 물리치고 담대히 전진하는 신실한 하나님의 군사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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