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자료

김광우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열려라 에바다 2011. 10. 19. 10:41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김광우의 저서 <성경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가이사랴 지방의 한 마을을 지나다 예수는 문득 제자들에게 질문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가복음 8:29)


예수를 스승으로 삼아 그와 더불어 먹고 자면서 이스라엘 전역을 방랑한 지 2년도 훨씬 지났는데 새삼 자기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제자들은 의아했다.


예수는 이제 사역을 마감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은 사천 명이, 어느 날은 오천 명이 말씀을 들으러 몰려왔지만 그들은 예수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예수는 사랑하는 제자들만이라도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주길 바랐다.
지금은 알지 못한다면 자신이 죽은 후에라도 알아주기를 바랐다.


예수가 묻고자 한 것은 자신에게서 신성을 발견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신성에 관하여 말해 보라는 것이다.
신학의 대상이 되는 분이 제자들의 신학을 듣기를 원하신 것이다.


신학(theology)이란 신(theos)과 말(logos)의 합성어로 ‘신에 관한 이야기’라는 뜻이다.
신약성경에 나타난 첫 번째 신학자는 흥미롭게도 예수의 제자가 아니라 물 길러 우물로 나왔다가 우연히 그분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이다.


서기 28년의 이야기이다. 예수는 요한이 투옥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사마리아를 경유해서 갈릴리로 가던 중이었다.
아직 사역을 시작하기 전이었다. 야곱의 우물로 알려진 우물가에 앉아 쉬고 있던 예수가 물 길러 온 여인에게 물 한 그릇을 청했다.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주여 물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삽나이까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먹었으니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요한복음 4:9-26)


유대인이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에게 물을 청하느냐는 말에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이 서로 친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예수는 하나님의 선물인 생수에 관해 말하면서 자신이 새 삶을 주는 능력이 있음을 시위했다.
예수가 말한 생수는 성령이지만 가르침이기도 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자신들이 야곱(Jacob, 별명이 이스라엘이다)의 아들 요셉(Joseph)의 후손이라고 믿었다.
당신이 야곱보다도 위대하냐는 여인의 질문에 예수는 야곱의 우물을 마시면 다시 목마르지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는 말로 자신이 야곱보다 위대함을 드러냈다.
예수는 여인에게 남편이 다섯 명 있었음을 지적하여 그녀의 모든 죄를 알고 있음을 나타내어 여인으로 하여금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깨닫게 했다.
여인이 메시아, 곧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알고 있다고 하자 예수는 자신이 메시아라고 직접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가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전했다.
사마리아 여인이 처음으로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알고, 사람들에게 증거한 것이다.


30년 4월 6일 목요일 저녁 예수는 제자들과 함께 마가의 다락방에서 유월절 만찬 겸 최후의 만찬을 가졌다.
저녁식사를 마친 그는 제자들을 데리고 인근에 있는 겟세마네 동산으로 갔다.
예수는 자주 그 동산에 가서 기도했다.
아직 동이 트지 않았는데 대제사장 가야바의 사주를 받은 무리가 창과 몽둥이와 횃불을 들고 가롯 유다를 앞세워 예수를 잡으려고 왔다.
급작스러운 습격을 당하자 베드로는 허리에 찬 칼을 빼어 종의 귀를 자르는 저항을 시도했지만 결국 예수를 홀로 남겨놓고 제자들과 함께 도망치고 말았다(마태복음 26:56).
베드로가 가이사랴에서 고백한 대로 예수가 그리스도이면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진정으로 믿었다면 그날 줄행랑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베드로의 비겁한 행위는 그 후에도 계속되었다. 사태를 관망하기 위해서 예수가 붙들려 간 대제사장의 관저에 몰래 들어가 뜰에서 불을 쬐고 있을 때 계집종 하나가 그에게 다가와 나사렛 예수와 한패라고 말하자 그는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했다(마태복음 26:72).


4월 7일 금요일 아침 예수는 다른 두 사형수와 함께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처형되었다.
공회 의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총독 빌라도의 허락을 받아 바위를 파서 만든 무덤에 시신을 안치했다(누가복음 23:50-53).
사흘 후 일요일 아침 일찍 예수의 시신에 향료를 바르기 위해 무덤으로 간 막달라 여인 마리아가 시신이 없어진 것을 발견했다.
무덤에 있던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천사가 그녀에게 예수의 부활을 알려 주었다(누가복음 24:1-6).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예수의 부활소식을 알렸지만 그들은 마리아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마가복음 16:10-11).
무덤으로 달려 간 베드로는 예수의 시신을 쌌던 세마포만 발견했다.
이 일에 대해 누가는 베드로가 “그 된 일을 기이히 여기며 집으로” 돌아갔다고 기록했다(누가복음 24:12).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는 질문에 제자들이 신학적으로 응답한 것은 부활한 예수를 보고난 후였다.
제자들의 신학은 각자의 신앙고백으로 나타났다.
그들은 한결같이 부활한 예수에게는 산 자뿐만 아니라 죽은 자도 죽음으로부터 구원할 수 있는 신성한 능력이 있다고 했다.
부활보다 더 큰 하나님의 역사는 과거에 없었다. 영생에 대한 인류의 소망이 예수의 부활로 결실을 맺었다.
죽음이 삶의 끝이 아니라 영원한 삶의 시작이라는 것이 부활로 증명된 것이다.


예수의 부활이 그리스도 신화를 창조했다.
기원전 2500년경 이집트 사람들이 거대한 피라미드를 건립하면서 부활의 꿈을 키웠지만 그들에게 부활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신의 아들이라고 하는 이집트 왕은 미라가 된 채 4,500년 동안 갇혀 있었지만 피라미드 밖으로 걸어 나오지 못했다.


부활에 관한 베드로의 말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란 전제 하에서 가능한 신앙고백이었다.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사도행전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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