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하토르 여신 손잡이가 달린 청동거울(이스라엘 박물관)
그가 놋으로 물두멍을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하였으니
곧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의 거울로 만들었더라
(출 38:8)
성막에서 봉사하는 여인들의 손 거울로 성막 물두멍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잔잔한 감동을 준다. 거울은 여인들이 포기할 수 없는 필수품이었다(사 3:23). 그런데 거울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마르아'는 환상(vision)을 의미하기도 한다. 야곱은 애굽에 내려가기 전 브엘세바에서 환상(마르아) 중에 하나님을 만났다(창 46:2). 에스겔은 바벨론의 자택에서 하나님의 환상(마르아)에 이끌려, 예루살렘 성전에서 벌어지는 우상 숭배의 실상을 보게 되었다(겔 8;3). 다니엘은 티그리스 강가에서 환상(마르아)을 통해 미래에 벌어질 일들을 알게 되었다(단 10:7,8,16). 이처럼 하나님은 환상(마르아)으로 그의 선지자에게 자신을 알리신다(민 12:6).
환상과 거울이 같은 단어인 이유는, 현실을 투영하는 이미지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둘의 또 한가지 공통점은 상이 뚜렷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청동으로 만든 거울은 실제 모습만큼 보여줄 수 없었다. 환상도 실제로 보는 것처럼 명확하고 세밀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때로 환상이 해석을 필요로 했던 이유이다. 바울은 마지막 때가 되기 전에는, 우리가 거울로 보는 것처럼 희미하고 부분적으로 알 수 밖에 없다고 탄식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고전 13:12)
주의 동생이자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이었던 야고보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잊어버리는 자와 올바로 인식하는 자의 비유를 들었다.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사람은 전자요,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은 후자라는 것이다(약 1:23-25). 하나님의 계시가 환상에서 말씀으로 바뀌었음에도, 여전히 거울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또 한 명의 주의 동생이었던 유다도 거울을 비유로 사용했다. 그는 자신을 보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반면교사로 삼기 위한 도구로서의 거울을 이야기했다(유 1:7). 말씀의 거울에 비친 내 모습, 역사의 거울에 비친 타인의 모습 둘 다 교훈을 준다.
고린도 청동 거울(코린트 유적지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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