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과 방언을 통역하는 은사(고전12:10) 고린도교회의 방언(glw'ssa/글롯사/혀)과 사도행전의 방언(diavlekto"/디알렉토스/언어)은 다릅니다. 사도행전의 방언은 ‘외국어’입니다. 하지만 고린도교회의 방언은 원어로는 ‘혀들의 종류’로 기도 중에 하나님께 신비한 언어로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방언은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방언입니다. 물론 방언을 말하는 본인도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방언의 은사는 말하는 사람들이 이전에는 몰랐던 언어들로 말하는 능력입니다. 막16:17은 제자들이 “새 방언”을 말할 것이라고 약속되었습니다. 행2:4에서 “다른 방언"을 말했습니다. 행10:46과 19:6에서 성령이 임한 사람들이 “방언을 말했다”고 말씀했습니다. 방언은 방언으로 말해졌던 것이 행2:11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외국 언어들을 이해했던 사람들에게 알기 쉬웠습니다. 그러므로 방언은 앞뒤가 맞지 않고 알아들을 수 없는 열광적인 말이 아니었습니다. 방언은 기도, 찬양 및 감사의 전달 수단으로 확실히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들이었습니다(고전14:14-17). 또한 방언은 그것을 말하는 사람에게 덕이 되었고, 이해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고전14:4,16). 방언들은 해석될 수 있었는데, 곧 그것들을 이해할 수 있음을 전제합니다. 그러나 방언은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될 수 없을 수도 있었습니다. 즉 사용된 언어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해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방언은 일반적인 그리스도인 회중에게는 적합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요지는 헬라어 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아라비아어를 말하는 것입니다. 방언을 말하는 사람은 그가 말한 것을 이해했을지 몰라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혀 유익되지 않았습니다(고전14:2,19). 방언의 은사의 유일한 목적은 복음을 촉진시키는 것입니다. 즉 성령의 임재를 입증하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사람은 그가 배운 적이 없는 언어로 말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방언의 은사라고 해서 모든 언어들을 말할 수 있는 능력은 아니었습니다. 방언의 은사를 받았던 사람들도 대부분 한두 가지 언어 밖에는 말할 수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방언의 은사가 선교사역에 도움을 주지는 않았습니다, 바울의 언사에서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고전14:14-19). 오날날 까지도 방언은 긍정적으로보다 오히려 부정적인 견해로 많이 인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방언에 대해 확실히 모르는 사람들이 자신의 신앙이 우위에 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많이 쓰이기 때문이고 심지어 방언을 배우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방언은 배운다고 하는 것이 아니며, 방언을 말한다고 신앙이 우위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에 유익되지 못하면 어떤 은사도 쓰레기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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