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격려를 힘입어
마가복음 4:1-20
옥수수는 여름철의 대표적인 간식으로 건강에도 좋고 인기가 있는 식품입니다.
우리 충북에서는 괴산 쪽에서 주로 생산되는 대학 찰옥수수가 대표적인 품종인데요,
옥수수에 얽힌 이야기를 방송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먼저, 옥수수는 아침에 수확해야 제일 맛이 좋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발열 식품이기에 열이 없는 아침에 수확해야 맛이 좋다고 합니다.
또한, 옥수수는 대 꼭대기에 있는 꽃가루가 옥수수수염에 떨어져서 열매를 맺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수염이 암술 역할을 하게 되는데 이렇게 수정이 되어 생기는 알갱이는 옥수수수염의 숫자와 똑같다고 합니다.
세 번째로, 보통 옥수수 알갱이의 숫자는 400개에서 500개 정도가 되는데 알갱이의 세로 열은 10, 12, 14개처럼 꼭 짝수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의 씨 뿌리는 비유에서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은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때 당시 이런 옥수수가 있었더라면 그 숫자가 10배로 훨씬 더 늘어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씨 뿌리는 비유는 예수님의 대표적인 비유의 말씀으로서 이미 잘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씨 뿌리는 자가 나가서 씨를 뿌릴 때 어떤 씨는 길가에, 어떤 씨는 돌밭에, 어떤 씨는 가시덤불에, 어떤 씨는 좋은 밭에 떨어졌습니다.
길가에 떨어진 씨는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돌밭에 떨어진 씨는 잠간 자라다가 물이 없어 말랐고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는 자라기는 하지만 햇빛을 보지 못하여 열매를 맺지 못하고
오직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만이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비유는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데요,
하나는 씨를 받아들이는 마음 밭의 측면입니다.
우리가 말씀의 씨를 받아들일 때 옥토와 같은 마음 밭이 되어야 좋은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바꿔 말해서 길가와 같은 밭이나 돌밭이나 가시덤불과 같은 마음 밭이 되어서는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씨를 뿌리는 자의 측면입니다.
씨를 뿌리는 자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많은 열매를 바라고 씨를 뿌릴 것입니다.
그런데 뿌린다고 다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도 열매 맺는 씨앗은 뿌린 것의 4분의 1에 지나지 않습니다.
열매 맺는 씨앗보다 맺지 못하는 씨앗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럴 때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를 주님은 이 비유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은 두 번째, 씨 뿌리는 자의 입장에서 이 말씀을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춘원 임종국님을 그리며’ 라는 시가 있습니다.
사람은 내다보는 안목이 있다는데/ 인생이 백년이면 일 년도 족하건만
백 년의 앞날을 위해/ 편백나무 심었네.
임종국 수풀임에 씨앗종 나라국자/
춘원의 이름 석자 홀연히 실행하여/ 축령산 편백나무 숲 삼나무 숲 조성해
최고의 삼림지요 휴양지 피톤치드/ 식수한 수백만주 가뭄에 죽어가는
퍼나른 물지게 정성/ 백년대개 이뤘네.
이 시는 춘원 임종국씨를 기리는 시입니다만 이 시에서 보여주는 대로
임종국씨는 전남 장성군 축령산 자락에 평생 편백나무와 삼나무를 심었습니다.
그가 심은 나무는 170만평에 279만 그루였고 그 묘목들을 가꾸는데 온 힘과 정성을 다 기울였습니다.
특히 1968년과 69년에 심한 가뭄이 들어 묘목이 죽어갈 때는 온 가족이 물지게를 지고 비탈길을 오르내리며 밤낮 없이 물을 주어 살렸다고 합니다.
현재 이 숲은 산림청에서 ‘22세기 후손에게 물려줄 숲’으로 지정하였고 2020년에 열린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았습니다.
매년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까지 10만 여명이 찾아와 숲 체험과 삼림욕을 즐긴다고 합니다.
임 종국씨는 편백나무와 삼나무를 심는 일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임종국씨와 같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사람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무엇인가를 심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모들은 자식들이 잘 되기를 바라면서 자식농사를 짓는 농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사들은 가르치는 학생들이 훌륭하게 성장하기를 바라면서 농사를 짓는 농부입니다.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농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분야에 종사하여 업적을 남기는 것도 이 땅의 유익을 위하여 좋은 씨앗을 뿌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게 된다고 말씀하면서,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고 했습니다.(갈6:8)
사람은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든지 아니면 성령을 위하여 심든지 무엇인가를 심으면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심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악한 것을 심든지 선한 것을 심든지,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든지 성령을 위하여 심든지 무엇이든지 심으면서 살아갑니다.
그렇게 뿌린 것에 따라 평가를 받으며 뿌린 것을 거두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여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씨를 뿌리는 자들입니다.
구원의 씨를 뿌리고, 생명의 씨를 뿌리고, 천국의 씨를 뿌리는 자들입니다.
씨 뿌리는 농부의 한결같은 바람이 있다면 그것은 농사를 잘 지어 많은 열매를 거두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애쓰고 수고하는 만큼 기대하는 열매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땀 흘리고 수고하고 노력한 만큼 결실이 없습니다.
말씀의 씨앗을 뿌리며 전도를 하여도 열매 맺기가 쉽지 않습니다.
인가귀도를 위하여 열심히 기도하였는데도 가족들이 주님 앞에 나오는 일이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자식들을 위하여 온갖 정성을 다 쏟았지만 기대한 만큼 성장하지 못하고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이러한 때에 얼마나 많이 실망을 합니까?
절망하여 씨 뿌리는 일을 중단하기가 쉽습니다.
오늘 씨 뿌리는 자의 비유는 그렇게 실망에 젖어있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격려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씨를 뿌리는 자들을 향해 주님은 어떤 격려를 하고 계십니까?
먼저, 씨를 뿌리면 반드시 열매가 있다고 격려하십니다.
예수님 당시 팔레스타인 땅은 그렇게 좋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땅이 석회암지역으로 척박하여 농사를 짓기에 좋지 않았고 농사를 지어도 많은 열매를 거두기가 어려웠습니다.
비유에 나오는 길가와 같은 밭이나 돌밭이나 가시덤불과 같은 밭은 주님이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밭이었습니다.
그런 밭에 씨를 뿌려봐야 열매가 없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농부는 씨를 뿌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씨를 뿌리면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씨를 뿌리는 자로서 우리의 가져야 할 자세도 이와 같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전도환경은 너무 열악하였습니다.
가는 곳마다 죽음과 마주쳐야 할 때가 거의 대부분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복음의 씨를 뿌릴 때도 복음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나 한국에 온 선교사들은 복음의 씨를 뿌리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의 씨를 뿌리면 많은 씨가 새들에게 먹히고 마음속에 심겨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러나 다 그런 것이 아니라 분명히 열매를 맺는 것이 있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1866년 7월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가 평양에 도착하여 조선인들에 의해 불태워질 때 그 배에는 통역과 선교를 위해 토마스 선교사가 타고 있었습니다.
배에 불이 붙어 육지에 내린 토마스 선교사는 자기를 죽이는 군인들을 향하여 성경을 나눠주고 이 책을 받으라고 애걸합니다.
토마스 선교사는 성난 군인들에 의해 칼에 찔려 죽었지만 그가 뿌린 성경책은 조선인들에게 전해졌고 그 성경으로 인하여 예수를 믿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아주 적은 열매이지만 그러나 열매는 분명히 있었습니다.
이 열매를 기대하며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뿌리는 씨앗이 어떻게 자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좋은 열매로 맺을지, 나쁜 열매로 맺을지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옥토에 떨어져 열매를 맺는 씨앗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실망하지 않고 씨를 뿌리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며 그 이상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씨를 뿌리면 반드시 열매가 있다는 것을 믿으시고 길가와 돌밭과 가시덤불과 같은 환경을 두려워하지 말고 씨 뿌리는 사명을 감당해야 할 줄 믿습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은 4분의 1의 수확만 있어도 성공이라고 격려하십니다.
오늘 본문에는 네 가지 밭에 떨어진 씨앗을 말하고 있습니다.
네 종류의 밭에서 열매를 맺는 것은 옥토에 떨어진 씨앗뿐입니다.
말하자면 4분의 1만 열매를 맺고 나머지 4분의 3은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오늘 우리의 농사법으로 보면 4분의 1의 수확은 피농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75%정도를 망쳤다면 오늘의 농부들은 그냥 트랙터로 갈아엎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팔레스타인의 농사법으로 보면 25%의 수확은 결코 적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의 땅은 지금 우리의 땅보다 훨씬 척박했습니다.
씨를 뿌리는 것도 먼저 밭에 뿌리고 나중에 밭을 갈았습니다.
농부들이 직접 뿌리지 않고 동물의 등에다 씨앗 자루를 올려놓고 구멍을 뚫어서 씨가 떨어지게 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4분의 1의 수확은 결코 적다고 할 수 없습니다.
농부들은 4분의 3이 나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을 갖지 않고 그래도 4분의 1은 열매를 거둘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씨를 뿌린 것입니다.
75%의 실패를 보기보다는 25%의 성공을 보고 끈질기게 도전한다는 것이 농부의 정신이었습니다.
김 익두 목사가 예수 믿기 전 그는 유명한 깡패였습니다.
사람들이 시장을 갈 때 오늘은 김 익두를 만나지 않게 해달라고 성황당에서 빌 정도였으니 얼마나 악질적인 깡패였는지 모릅니다.
그런 그가 예수 믿고 목사가 될 확률은 사실 25%가 아니라 5%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깡패를 변화시켜 예수 믿고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유명한 목사로 만드셨습니다.
이보다 더한 사람이 사도 바울입니다.
사도바울이 회심하고 예수 믿을 확률은 김익두 목사보다 훨씬 더 적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거의 제로에 가깝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죄인 중에 괴수와 같은 사람도 변화시켜 주님의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씨를 뿌리는 자로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이런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하나님의 역사를 믿어야 합니다.
아무리 악하고 못되고 거친 심령이라고 할지라도 그 속에 25%의 확률이 있다는 믿음을 갖고 열심히 씨를 뿌려야 합니다.
실망하지 말고 계속해서 말씀의 씨, 기도의 씨, 사랑의 씨를 뿌리면 분명 열매를 맺게 될 줄 믿습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은 인내하며 씨를 뿌리라는 격려를 해 주고 있습니다.
씨를 뿌리면 분명히 열매가 있습니다.
아무리 척박한 땅이라도 25%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그렇다고 하면 씨 뿌리는 자의 자세는 쉽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는 것입니다.
결과가 금방 나타나지 않는다고 실망하는 것은 씨 뿌리는 농부의 자세가 아닙니다.
농부는 씨를 뿌리고 난 후 오래 기다려야 합니다.
열매는 하루아침에 맺혀지는 것이 아니라 오래 기다림 끝에 맺혀지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훌륭한 인물들의 공통점은 실망하지 않고 오래 동안 기다렸다는 점입니다.
노아는 홍수를 대비하면서 무려 120년 동안 방주를 만들며 구원의 날을 기다렸습니다.
아브라함도 25년 동안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려 아들이삭을 얻었습니다.
모세도 40년 동안이나 훈련을 받은 후에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는 일에 귀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믿음이 있으면 끝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인내하지 못하는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 가운데 아직도 해결되지 아니하는 문제가 있습니까?
아직도 속 썩이는 자녀, 아직도 돌아오지 아니하는 남편, 아직도 치료되지 못하고 해결되지 못하는 마음으로 힘들어하는 분들이 있습니까?
이런 때 우리는 씨 뿌리는 자를 격려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씨를 뿌리면 반드시 열매가 있다는 격려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4분의 3, 75%의 손실이 있지만 그 중에 4분의 1, 25%의 결실이 있다는 말씀은 얼마나 희망을 주는 말씀입니까?
그 믿음으로 인내하시면서 계속해서 씨를 뿌리시기 바랍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어머니 모니카는 아들의 회심을 위해 눈물로 씨를 뿌리며 기도로 인내하였습니다.
후에 아우구스티누스는 어머니의 기도를 말하면서 ‘보통 어머니들이 죽은 자식을 위해 운 것보다 더 많은 눈물을 살아있는 날 위해 흘렸다.’고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자식을 위해 흘린 눈물의 기도를 들어주셨고, 그 눈물을 멸시하지 않으셨다.’고 말했습니다.
씨를 뿌리는 자의 삶을 살아갈 때 여러분, 길가나 돌밭이나 가시떨기 같은 밭을 바라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4분의 1, 25%의 열매를 맺게 하신다는 옥토의 확신을 갖고 열심히 인내하며 씨앗을 뿌릴 수 있기 바랍니다.
거기서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2021.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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