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주일설교. 아직도 자리가 있나이다 (누가복음 14장 15-24절)

열려라 에바다 2021. 9. 7. 07:56

주일설교. 아직도 자리가 있나이다 (누가복음 14장 15-24절)


예수님이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 초청을 받아 식사를 하게되었습니다. 거기에는 바리새인들 뿐만 아니라 율법학자들도 함께 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상석인 높은 자리에 앉았고, 손님인 예수님은 하석인 낮은 자리에 앉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기분이 나쁘기도 하셨을 것이고, 너무나도 자연 스럽게 손님을 무례하게 대우하는 그들의 거만한 태도에 무척이나 불쾌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 하시기를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차라리 끝 자리에 앉으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도무지 겸손이라고는 모르는 거만한 자들을 질책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따가운 말씀에도 전혀 반응이 없었습니다.

또 예수님이 식사의 자리에 온 사람들을 주욱 살펴보니 전부 어깨에 힘줄이나 들어갈 법한 사람들만 모여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또 말씀 하시기를,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왜냐하면 그들이 이번에는 자기들을 초청해 달라고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값을 것이 없는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그러면 그러한 의인들은 부활시에 내가 갚아 주겠다”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자비(긍휼, 불쌍)를 베풀라는 말씀 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은 그들만의 지위와, 부유함과, 지적 교만을 누리는 사교의 자리는 아낌 없이 베풀면서, 정작 그들이 잘 알고 있다는 성경에 기록된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대접하는 일에는 도무지 행하려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여기까지의 이야기가 14장 1~14절 까지의 내용으로, 오늘 본문과 연결되는 내용이기에 짧게 설명을 드렸습니다. 우리 예수님의 모습은 겸손하심과 자비하심, 그 자체였습니다. 얼마나 이 땅의 사람들이 거만하고 교만하면, 유일하신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직접 몸으로 겸손과 자비를 보여 주셨을까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서, 이 땅에서는 한 없이 낮은 자세의 겸손함으로 살아가시고, 한 없는 자비로 이웃을 잘 섬기심으로, 부활영광을 받는 그 날에, 우리 주님으로부터 칭찬과 상급을 받으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으로 이어집니다. 앞에서 예수님께서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라는 말씀을 들은 어떤 한 사람이 말 하기를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라고 말했습니다. 언뜻 보면 대답을 참 잘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대답은, 유대인들은 택함을 받은 선민이기 때문에 당연히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이고, 바리새인들과 윱법학자들은 그 누구보다도 율법을 잘 지키며 살아가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되는 것은 당연하고도 마땅하다는 대답입니다.

이 대답을 한 사람은, 자신들이 잔치에서 겸손도 없고, 자비도 없고, 정작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있다는 예수님의 질책에도 불구하고 문제의식이라고는 전혀 없이, 다만 유대인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이미 다 주어진 것처럼 그릇된 사고방식에 갇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 싶은 간절한 열망으로 이런 말을 했으면 당연히 칭찬을 받았을 것인데, 그릇된 가치관을 가지고 이런 말을 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비유 하나를 말씀 하시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해 새로운 기준을 제시 주십니다.

16~24절 까지 전체 내용이 비유의 말씀입니다. 16절에,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라고 비유가 시작 됩니다. 여기에서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의미하고, “큰 잔치”는 부활 영광을 얻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사람들이 모이는 잔치, 즉 예수님으로 인해 구원 받은 자들이 모이는 천국 잔치를 말합니다.

“베풀었다(헬, 에포이 에이)”는 단어는 문법상으로 ‘미완료 과거형’으로, 아직 잔치 준비가 끝난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베풀었다”는 부분을 직역 하면 “그(하나님)가 준비(구원, 부활, 영생, 천국잔치)하고 있었다” 라는 뜻입니다.

학자들의 해석에 의하면 이 상황이 아직 예수님이 오시기 전인 구약시대를 말하는 것이고, 16절에 잔치에 초대된 많은 사람들은 선민이라는 자부심 속에 살아온 유대인들을 일컫는 말이라고 해석 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이미 천국잔치에 초청받아서 참석하게 될 당연한 대상이라는 굳은 신념이 있었습니다.

17절을 읽어 드립니다. “잔치할 시각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이르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아멘.

16절에서는 잔치가 준비되어가는 과정이었고, 17절에서는 드디어 잔치 준비가 끝나서 초청 자들을 부르는 내용입니다. 유대인들의 관습에는 잔치에 올 손님을 두 번 초청하는 것이 정중한 예의 였습니다. 잔치가 벌어지기 전에 먼저 초청장을 한번 보내고, 잔치가 벌어지는 당일에는 종을 보내서 다시 한번 잔치에 오실 것을 초청합니다. 17절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냈다”는 내용이 바로 두 번째 초청을 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종’이 의미하는 인물이 바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구약 시대에 유대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하셔서 한 번 초청을 하셨고, 신약 시대에 예수님을 보내셔서 두 번째 초청을 하신 것입니다. 종이 초청 대상자에게 가서 말하기를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 되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잔치 준비가 끝났기 때문에, 이 초청에 응하기만 하면 먹고 마시고 즐기는 풍성한 잔치의 식탁에 실제로 참여 할 수가 있습니다.

이미 한 번 초청을 받은 사람은 두 번째 초청을 받았을 때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라면, 반드시 초청에 응하는 것이 유대인들의 생활 법도였습니다. 그러나 18절에, “다 일치되게 사양하였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암묵적인 동의에 의해 조직적인 불참을 했다는 것입니다. 일종의 ‘노쇼’(no-show, 식당 등에서 예약 후 취소 통보 없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거나 굉장히 불손한 의도를 가진 ‘보이콧’(boycot, 어떤 목적을 관철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상대방을 배척하거나 거부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렇게 일치되게 사양한 이유는, 종으로 오신 예수님이 구원자이시라는 사실을 대놓고, 집단으로 거부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잔치에 불참하겠다는 사람들의 핑계도 가지 각색입니다.

한 사람은 밭을 새로 사서 경작하러 가야 된다는 핑계를 댔고, 다른 한 사람은 소 다섯 겨리(겨리는 두 마리의 소가 이끄는 쟁기)를 사서 쟁기질 시험 한다는 핑계를 댔고, 또 한 사람은 장가 들어서 아내와 함께 있어야 한다는 핑계를 댔습니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There will always be an excuse)는 속담이 있듯이, 이들은 하나 같이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두 번째 초청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왜 유대인들은 기본적인 예의 범절에서 벗어난 행동으로 무례하게 두 번째 초청을 거절 했을까요? 표면적이면서 근본적인 이유는 예수님이 못 미더웠고, 싫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비유의 내용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반면교사(反面敎師)의 교훈이 있습니다. 이미 앞선 유대인들의 불손한 태도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 실제 삶의 태도가 겸손하느냐, 교만하느냐의 차이입니다.

천국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입니다. 그 나라에 초청을 받는 다는 것은 영광중의 영광입니다. 내가 그 나라에 초청을 받은 것은 영원한 기쁨이요, 영원한 감사의 조건입니다. 초청을 받은 사람은 늘 하나님 앞에서 겸손함으로, 잔치의 날을 기대하며, 소망 가운데 지내야 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초청을 받았음에도 반대로 행동했습니다. 천국 잔치의 주인공이 된 것이 은혜로 된 것이고, 감사의 조건임을 망각하고, 자랑하고, 거드름 피우고, 높은 자리에 앉아서 자신들이 매우 특별한 사람임을 과시했습니다. 자신들은 어떤 상황이 와도, 천국 잔치에 무조건, 당연히, 일 순위로 들어갈 사람들 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정말로 무모한 맹신이자, 극히 위험한 교만의 모습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제일 경계해야할 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신앙생활하면서 내가 천국 잔치에 초청 받았다는 확신을 가지는 신앙생활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그 확신이 잘못 넘쳐서 교만함에 이르는 것은 패망의 지름길로 가는 것입니다.

교만에 이른 사람들은, 무조건 자기가 제일 잘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함부로 남을 무시합니다. 자신의 언행이 얼마나 부끄러 운지도 모르고, 무례하게 말하고, 불손하게 행동합니다. 겸손함은 하나도 없으면서, 나는 여전히 천국잔치에 초대 받았다고 자랑한다면, 그 자랑이 사람 앞에서나, 하나님 앞에서 좋아 보일리 없습니다.

겸손한 마음을 다 잃어버리고 교만함에 이른 사람은 그 교만이 넘쳐서 결국에는 두 번째 초청을 듣지도 않고, 응답하지도 않게 됩니다. 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유대인들의 모습이 우리가 가는 믿음의 길에 반면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 내가 받은 은혜와 자비를 이웃에게 주느냐, 못 주느냐의 차이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만난 사람들은 급하게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힘이 없고 연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소외 되고, 차별 받는 사람들 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시장 어귀에서 사람들을 만났고, 이방인 지역에서 사람들을 만났고, 어린아이와 여인들을 만났고, 배고프고 병든 자들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신 것은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고 먼저 모범을 보이신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이러한 모습을 오히려 못 마땅했습니다. 죄인들과 어울려 다면서 함께 모여 식사한다고 비난을 했습니다. 더럽고 불결한 자들과 접촉한다고 조롱했습니다. 그들에게 자비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어떤 민족 보다도 하나님으로부터 자비와 긍휼과 은혜를 입은 민족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 받았을 당시에 어떤 처지였었는지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정처 없이 떠도는 나그네였고, 노예였고, 머물러 지낼 땅이 없는 소수 족속일 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택하여 주시고, 땅을 주시고, 성전을 주셨습니다. 율법을 주시고 천국 잔치에 초청을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제와서 그들은 자신들이 받았던 그 놀라운 자비와 은혜를 망각하고, 그 옛날 자신들과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던 불쌍한 이웃 사람들을 오히려 무시하고 외면하며 살았습니다. 자신들은 풍성한 잔치를 수시로 열어서 먹고 마시고 즐기기를 하루가 멀다하고 하면서도, 정작 이웃에게는 냉수 한 모금 마시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이러한 완악하고 왜곡된 마음들이 쌓이고 쌓여서, 결국에는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천국 잔치에 초청하시는데도, 전혀 그 소리를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비와 긍휼을 베풀며 이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라는 권면의 말씀은, 젊은 청년의 호기어린 헛소리쯤으로 여겼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받은 자비와 긍휼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서도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성경 말씀음 철저히 무시했습니다. 남을 불쌍히 여기는 자비함이 없으면, 나도 그와 같이 대하리라는 예수님의 무서운 말씀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두 번째 초청에서 탈락했습니다. 유대인의 이러한 모습이 우리 믿음 생활에 있어 반면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유대인들은 겸손과 자비 없음이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전혀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그렇게 사는 것이 오히려 권위를 드러내고 뭇 사람들에게 존경 받는, 폼나는 인생쯤으로 여겼습니다. 예수님은 이 심각한 상황을 깨닫게 해 주시려고 비유의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안타깝게도 유대인들은 2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무반응 상태입니다.

00교회 모든 성도는 날이 갈수록 예수님을 닮아 겸손해져 가고 계시고, 날이 갈수록 자비함으로 이웃에게 나누고 베풀며 살아가는데 최선을 다하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부족하다면 분발 하시고, 잘 하고 계신 분은 더 열심히 순종으로 나아가십시오. 꼭 그렇게 하셔서, 주님 오시는 그날에, 어떤 핑계도 대지 않고, 천국잔치에 참석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비유의 마지막 내용입니다. 자, 종이 두 번째 초청을 했음에도 아무도 오지 않자, 잔치를 여는 집 주인이 화가 많이 났습니다. 집 주인은 곧 우리 하나님 이십니다. 집 주인은 종에게 다시 명을 내립니다.

17, 18절을 읽어 드립니다. “21.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 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22. 종이 이르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아직도 자리가 있나이다” 아멘

시내의 거리와 골목에 거주하는 가난한 자들, 몸 불편한 자들, 맹인과 저는 자들은, 유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부모 때부터 죄를 지어 저주를 받은 사람들을 일컽습니다. 하나님은 좋은 옷 입고, 높은 자리이 앉아서 외형적 교만을 함껏 뽐내며 초청을 거부한 자들을 제외 시키고, 그들에게 멸시 당하고 모욕당하며 살아가는 심적인 빈곤자들을 불러 모으십니다.

하나님은, “나가서 그들을 빨리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 강권적으로라도 잔치에 나오게 하라는 엄하신 명령입니다. 종이신 예수님이 명령대로 그들을 데려 온 후에 돌아와서 주인에게 보고하기를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아직도 자리가 있나이다” 라고 집 주인에게 상황을 보고 합니다.

“아직도 자리가 있나이다” 라는 말씀이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이 자리가 누구의 자리인지 아십니까? 바로 내 자리입니다. 내 자리가 아직 있다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대개 “아직도 자리가 있나이다”, 이 말씀을 전도를 독려 할 때 사용합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어느 누구에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라, 바로 나에게 주어진 시급한 명령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내가 천국 잔치 초청에 응하지 않았으면서, 어찌 다른 사람에게 초청에 응하라는 권유를 담대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천국잔치를 맛보지 못하게 된다면, 시내와 거리와 골목으로 나아가서 초청자들을 모으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미 은혜의 복음을 받았습니다. 그 복음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 1차 초청 대상의 주인공들입니다. 이제는 마지막 날에 예수님이 주관하시는 심판대 앞에 서서 2차 초청 대상인지 아닌지 판정 받는 날이 올 것입니다. 유대인들처럼, 교만하고 불손한 언행을 그치지 않는 다면, 이웃을 향한 사랑과 섬김의 마음을 일절 실천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우리가 무사히 2차 초청 대상으로 통과 할 수 있을지, 참으로 두렵습니다.

비유의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23, 24절을 읽어 드립니다. “23.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2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아멘.

24절에 길과 산울타리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여오라는 말씀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라미라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는 말씀과 동일한 맥락입니다. 점점 경계가 넓어지면서 열방으로 복음이 확장되는 상황이 전개 될 것을 예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24절이 참으로 단호하고도 무서운 말씀입니다.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유대인들이 이렇게 된다는 겁니다. 겸손과 자비가 없는 자들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도 이 핑계 저 핑계 대고 거부하는 자들의 결말입니다.

단 한 명의 예외 없이 천국 잔치에 들어가지도 못하면서, 짧은 인생의 시간속에서 아무리 잘난 척, 아는 척, 가진 척 하며 살아가 봐야 그 인생의 화려함은 곧 끝납니다.

유대인들은 이렇게 초청에 실패했을 지라도, 천국 잔치에 초청하는 일은 계속 되어야 합니다.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말씀 하신 주인의 명령을 받아, 이제 우리 모두가 길과 산 울타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곧 추석 명절인데, 우리가 나아가는 삶의 현장이 곧, 길과 산 울타리입니다. 우리가 만나는 가족들, 지인들, 이웃들이 강권하여 데려올 대상들입니다. 그들에게도 자리가 있다는 것을 알려 주어야 하는 임무가 우리 모두에게 주어졌습니다. 이 사명은 하나님의 집이 채워 질 때까지 계속 되어야 하며, 그 사명을 맡은 이가 먼저 잔치의 자리를 차지한 바로 우리들의 몫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00교회 모든 성도는 유대인들을 반면 교사로 삼아서, 단 한 사람도 유대인들의 전철을 밟는일이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지금은 조금 부족하고, 연약하고, 교만하고, 불손한 언행을 일삼고 있다고 할 지라도, “아직도 자리가 있나이다”라는 우리 주님의 음성에 반응하시면 자리를 차지할 기회를 주실 겁니다. 내 자리 먼저 차지하려는 큰 욕심 내시고, 큰 소망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또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내가 복음을 전할 대상이 누구인지 생각하시고, 그 이름을 부르며 한 주간 동안 품고 기도하시고, 명절 기간에는 꼭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00교회 모든 성도가 겸손과 자비함으로 열심히 인생을 살아가셔서, 한 날 한 시에, 천국 잔치에서 함께 모여 우리 주님과 함께 영생복락을 누리시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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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의 삶이 겸손과 자비함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회개합니다. “아직도 자리가 있나이다” 주님의 음성에 반응하고 순종하여 먼저 내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 가는데 최선을 다하게 하시고, 내가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게 하여 주옵소서. 천국 잔치로 인도하여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김민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