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27편 2절: 나의 대적 나의 원수 된 행악자가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다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나의 대적 나의 원수 된 행악자가.’ 다윗이 이 말을 하고 있다. ‘원수 대적’이라고 할 때 자기가 원수 대적이라고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셨을 때도 ‘그래, 맞다. 그것이 너의 대적이고 너의 원수다’ 이렇게 되어야 진짜 원수 대적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다윗이 원수라고 할 때는 어떤 게 원수냐? 말하자면 다윗은 어떤 자를 자기의 원수로 삼고 있느냐?
우리가 세상에 살다보면 미운 사람, 보기 싫은 사람이 많다. 자기와 아무 상관도 없는데도 괜히 미워하는 사람도 있고, 자기와 아무 상관이 없는데 자기 스스로가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것도 있다. 그러면 진리성도 다윗은 어떤 사람을 자기의 원수로 삼았을까? 1. 다윗 자기를 미워하고 두들겨 패는 사람을 다윗이 자기의 원수로 삼았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가는데 그 말씀을 놓치도록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지 못하도록 여러 가지 방편을 쓰는데, 이를 위해서 미워하기도 하고, 헐뜯기도 하고, 때로는 칭찬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앞에서는 웃었는데 뒤로 가서는 헐뜯기도 하는 이런 사람이 다윗의 원수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을 놓치게 하는 자가 하나님의 원수다? 어느 거냐?
처음의 원수는 어떤 원수이고, 뒤의 원수는 어떤 원수냐? 처음의 원수는 인간 제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원수 시 하는 것, 그러니까 안 믿는 사람들끼리 제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싸우는 그런 식이고, 뒤의 것은 하나님을 붙들고 있는 것을 놓치게 만드는 것. 그러니까 ‘하나님은 끊고 다윗 너랑 나랑 친하게 지내자’ 하는 식이다.
어느 원수가 진짜 원수냐? 두 번째 거다. 왜 그러냐? 하나님의 말씀을 놓치면 하나님을 놓치게 되고, 하나님을 놓치게 되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진노가 온다. 그러니까 진리의 성도를 이용해먹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만드는 것이 성도의 원수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교훈적으로 가르치는 면으로 볼 때 그런 교회들이 많다. 하나님의 말씀을 놓치게 하고 세상 쪽으로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의 원수요, 성도의 원수요, 또 다윗의 원수다.
나의 육신에 아무리 좋게 해준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그 친구가 좋으냐? 그 자는 너의 원수다’ 라고 할 때 ‘그 친구가 나에게 잘 해 주는데요?’ ‘아니다. 너를 하나님으로 닮지 못하게, 하나님의 마음을 품지 못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놓치게 만들고 네 마음을 빼어가는 자다. 그러니 그 자는 나의 원수고 너의 원수다’ 하면 ‘예, 그렇습니다. 정신 차리겠습니다’ 해야 한다. 자기에게 좋게 해준다고 해서 그냥 따라가면 자기는 하나님의 원수가 돼버린다.
세상말세가 되면 거짓 종들이 많다는 것은 거짓교회가 많다는 것인데, 예수이름을 이용해서 성도들의 마음을 빼앗아서 세상 쪽으로 나가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다윗의 원수요, 따라서 우리의 원수가 되는 거다. 이건 이리가 양의 옷을 입고 양들을 잡아먹는 마귀 짓이다.
그래서 이단자들은 나도 넘어지게 하고, 다른 사람도 하나님 앞에서 넘어지게 하고, 바른 길로 못 가게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원수요 성도들의 원수다. 또한 세상을 자랑하는 거짓 종들이나 이들을 따르는 거짓 교인들도 하나님께서는 ‘저들은 너의 원수다. 따라가지 말아라’ 하신다. 네가 넘어지고 네가 망한다. 사람이 망한다 그 말이다.
학생이 열심히 공부를 하려고 하는데 어떤 친구가 이 학생을 꾀어서 공부를 못하게 밖으로 데리고 나가면 선생님이 볼 때 ‘저러다가 저 애의 장래가 망하겠구나’ 하게 된다. 그러니까 선생님이 보실 때 공부를 하려고 하는 학생을 자꾸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학생은 선생님의 원수요 공부를 열심히 하려고 하는 학생의 원수다. 왜 원수냐? 친구의 실력을 닦지 못하게, 알지 못하게 밖으로 끌고 나가니까.
성도의 원수는 교회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목사들 세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집안에도 있다. 그리고 자기 속에도 있다. 악한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악한 사람은 무슨 짓을 하겠느냐? 악한 짓을 한다. 그러면 뭐가 악한 거냐?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게 악한 짓이다. 우리 성도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못 듣게 하고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는 게 자기의 원수다. 더 좁혀서 자기의 생각을 잘 더듬어 보면 자기 속에도 악한 생각이 있구나. 그 자기는 나쁜 자기다.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이나 하나님의 지혜지식을 닮지 못하게 하는 자기의 생각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원수로 보고 악한 자라고 보게 된다.
일반사회에서도 악한 사람을 선하게 대해주는 사람이 있느냐? 악한 사람은 법이 와서 잡아가 버린다. 가만 놔두면 안 된다. 악한 사람은 법이 와서 잡아다가 철두철미하게 회개하고 고치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하신다.
자기의 원수가 교회 안에 많고, 자기 집안에도 있을 수 있고, 영의 눈을 가지고 보면 자기 속에도 있다. 원수가 내 속에도 있고, 우리 집에도 있고, 교회 안에도 있고, 사회에도 있는데, 이 악한 놈이 무슨 짓을 하느냐? 자기의 원수가 무슨 짓을 하느냐? 자기 속의 원수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 하나님을 놓치게 만들고, 말씀을 못 듣게 하고, 하나님과 멀어지게 한다.
인간은 참 신비롭다. 자기가 자기의 마음을 쳐다보면서 ‘아, 이 생각은 안 좋은데, 이 생각은 좋은데’ 라고 한다. 자기는 하나인데 자기 속의 생각이 둘이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게 참 신비롭다. 그래서 쉽게 말해서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자꾸 좋은 쪽으로 나가면 좋은 사람이 되는 거고, 나쁜 생각을 가지고 자꾸 나쁜 쪽으로 나가면 나쁜 사람이 돼버린다. 인간은 그런 자기로구나.
자기 속의 원수를 잘 알아볼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놓치게 만드는 것, 하나님을 닮는 그 마음 그 정신을 자꾸 빼앗아 가는 것, 하나님에게서 도망을 가게 하는 것. 이런 게 다 자기의 원수다.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신앙이 좋다고 할 때 신앙이 좋은 줄을 어떻게 아느냐? ‘아, 그 사람은 돈도 많고 예배당을 열 개나 지었대’ 하는 이게 신앙이 좋은 거냐? 이렇게 보는 눈이 신앙이 좋은 거냐? 그러니까 바로 박힌 눈이냐, 잘못 박힌 눈이냐?
어떤 사람은 기도하면서 예언도 하고, 방언도 하고, 신비로운 천국에 왔다 갔다 한다는 사람을 보고 ‘아, 그 교인이 성령을 많이 받았나봐’ 라고 한다. 그러니까 ‘아, 그 사람 신앙이 참 좋은가보다’ 라고 한다. 이게 신앙이 좋은 거냐? 무엇을 보고 ‘좋다, 나쁘다. 옳다, 그르다’ 라고 하는 것을 판단 평가할 수 있는 눈이 정확하지 못하다면 자기도 잘못돼 있는 거다. ‘무슨 복을 많이 받았대. 차도 사고 아파트도 사고 했대’ 하면 ‘와,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많이 받았네’ 하는 그 눈이 바로 박힌 거냐, 옆으로 박힌 거냐? 바로 박힌 거냐, 잘못 박힌 거냐? 그런 것을 ‘신앙이 좋다’ 라고 한다면 이 자는 완전히 이용물이다. 어리석은 사람이다.
오늘날 말세교회 안에 거짓되고 악하고 하나님 앞에 원수 된 자들이 많다. 세상도둑이 교회 안에 들어와서 자기가 의인인 척 하려면, ‘나는 착한 사람이다’ 라고 나타내려면 교회 밖에 있는 도둑을 보고 손가락질을 하는 거다. 이해가 되느냐? 오늘날 교회 안이 이런 식이다. 남의 잘못을 지적하려면 자기부터 먼저 눈을 뜨고 자기의 잘못을 안 후에 그 다음에 다른 사람의 눈의 티를 뺄 수 있는 거다. 이게 이치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를 보면 자기가 하나님 앞에 신앙정신이 비뚤어져 있으면서도 이것을 모른 채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을 보고 손가락질을 한다. 이건 잘못됐다.
자기를 보고 판단 분석이 바로 된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잘못된 것을 보면 ‘아이고, 나처럼 못난 사람이 저기도 있구나’ 이렇게 된다. 그런데 자기를 볼 줄 모르는 사람은 자기는 잘났다는 거다. 그러면서 남보고 잘못됐다고 하는 거다. 이건 잘못된 거다. 남이 정말로 잘못됐는지 그 이전에 그렇게 생각을 하는 자기 자체가 잘못된 거다.
잘 됐고 잘못 됐고 하는 것을 겉모양을 보고 말하는 게 아니라 겉모양이 예쁘던 어떻게 생겼건, 가난하던 부자건 하나님으로부터 자기를 떼어놓으려고 하는 것, 하나님을 못 붙잡게 만드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못 깨닫게 만드는 것을 보고 말하는 거다.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다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내 살을 먹으려고.’ 다윗의 살이 맛이 있나?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다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왜 원수들이 다윗의 살을 먹으려고 하는 건가? 그 원수들이 사람을 잡아먹는 자들인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깨닫고 진리이치 자연이치 도덕이치를 잘 지키면 인격 면에서 아름다워진다. 이게 성도에게 있어서 예수님으로 살이 찐 거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말씀을 붙잡고 지혜로워지고 부지런해져서 자기의 몸을 바로 쓰게 되면 자기의 인격 면이 마음이 아름다워지고 육신적으로도 튼튼해지고 영적인 면에서 잘 자란다. 사랑받는 사람이 된다. 교회에서 목사님들의 세계에서는 이 면을 잘 알고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잘 먹여야 한다. 예수님을 안 믿는 자들은 육신은 잘 먹여주는데 영적인 면에서는 모른다.
육신의 음식을 잘 먹으면 육신에 살이 찌고 힘이 오르듯이 하나님의 말씀의 이치를 잘 먹게 되면 자기 속에서 하나님의 지혜지식성으로, 하나님의 도덕성으로, 하나님의 능력성으로 영적인 면에서 살이 찐다. 이렇게 영적인 면에서 살이 붙은 진리성도 다윗을 행악자들이 먹으려고 왔다가 그만 그들이 실족하여 넘어졌다고 한다.
실족이 뭐냐? 발을 잘못 디뎌서 넘어진 것인데, 다윗은 계속적으로 좁은 길, 생명 길로만 간다. 이게 바로 가는 거다. 악한 행악자들은 이런 다윗에게 와서 좁은 길, 생명 길로 가는 그 마음을 뺏고, 그 활동을 뺏고, 그렇게 가고자 하는 다윗의 소원과 목적을 빼앗으려고 했지만 다윗은 그 마음을 빼앗기니 않았다. 그래서 행악자들이 그만 나가떨어져 버렸다. 다윗이 자기들 생각대로 안 따라온다 그 말이다. 이렇게 되니까 다윗은 넘어지지 않고 자기네들이 넘어진 거다.
행악자들이 영적인 면에서 아름답게 만들어진 다윗을 넘어뜨리기 위해서 왔다가 다윗이 워낙 안 넘어지니까 자기네들이 힘이 풀려서 나가떨어져 버린 거다. 자기들하고 안 맞으니까 그만 나가떨어져 버린 거다. 다른 각도로 보면 자기들이 옳은 하나님의 말씀과 안 맞으니 그냥 나가떨어져 버린 거다. 악한 자기들이 가진 세상욕심이 다윗이 가진 하나님을 사랑하는 욕심과는 안 맞으니까 자기들이 나가떨어지는 거다. 그래서 예수님을 잘 믿으려고 하면 예수님을 안 믿는 친구는 서서히 떨어져 버리게 되는 거다.
진리성도 다윗이 가진 것이 옳기는 옳은데 다윗처럼 나가면 육신 쪽이 배가 고프고 망할 것 같으니까 나가떨어지는 거다. 또 하나는 옳은 것이 가니, 하나님의 말씀이 가니 자신들이 나쁜 자들임이 들통이 나버리니까 그냥 도망을 가 버리는 거다. 빛이 가면 어두움이 그냥 도망을 가 버리는 거다. 누가 밀어내는 거냐? 그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가 옳은 진리신앙 노선으로 가지 못하고 스스로 잘못된 길로 나가떨어지는 거다.
우리는 주의해야 한다. 스스로 나가떨어지지 않으려면 자기 속에 영웅성이 들어있는 것, 그리고 마음이 사역에만 쏠려있는 것, 자기를 살피지 않는 것,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하고 인간만 자꾸 의식하는 것, 성경을 안 보는 것, 자기는 다 큰 사람인양 배우지 않으려고 하는 것 등을 매우 주의해야 한다. 안 그러면 너는 나가떨어진다.
하나님의 의사단일성, 하나님의 진리본질로만 찾아 나가지 않을 때는 그 정신은 시간과 세월과 함께 자기의 삶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줄 알아야 한다. 젊음이 갉아 먹혀지고, 자기의 정력이 갉아 먹혀지고, 노쇠가 찾아오고, 결국 자기 속에는 아무 것도 없다.
자기 속의 행악자와 남의 속의 행악이 보여지느냐? 먼저 자기 속의 행악자를 잡고 이겨야 한다. 그러면 남의 속에 있는 것도 ‘저거는 악한 정신이구나. 내 속에다 저걸 키워놨다가는 그 악한 정신이 나를 다 갉아먹어 버리겠구나’ 하게 된다. 자기가 악한 정신에 잡아먹히면 그 악한 정신이 자기를 다 갉아먹는다. 이러면 그 정신에 자기는 죽는 거다. 악하고 나쁜 대적에게 자기의 정신이 잡아먹히면 그 정신에 자기는 죽는데, 자기가 그렇게 죽기 전에 그 정신으로 살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도 나쁜 그 정신을 심어주게 된다. 이게 하나님 앞에 행악자다. 하나님의 대적자다.
우리는 자기를 보면서 남을 보고, 남을 보면서 자기를 쳐다볼 줄 알아야 한다. 진리성도 다윗에게 행악자가 내 속에서도 보여지고 다른 사람의 속에서도 보여져야 만이 그 행악자에게 잡아먹히지를 않는다. 내가 행악자들에게 잡아먹히면 둘 다 행악자가 되는 거다. 둘 다 대적자가 되는 거다.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고 있다면 자기는 선한 자냐, 악한 자냐? 악한 자다. 이렇게 되면 그 정신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넘어뜨리게 만드는구나. 이러면 둘 다 행악자다. 이게 하나님의 원수요 성도의 원수다. (계속)
김경형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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