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일곱가지 법칙

성경에는 법칙이 들어 있다.죄와 사망의 법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들어가는 것이 자유며 평안이며 구원이다.
성령의 법,생명의 법은 성부 성자 성령의 법이며하늘나라의 법이다.
(서 론)
바울사도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이외는 알지 않기로 작정하였다는 것은 단순하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었다는 것으로만 볼 수 없다.
십자가의 은혜 안에는 하나님의 법,믿음의 법 ,말씀의 법,성령의 법이 있으며 그 십자가의 법칙이 이 세상에게 가장 귀하기 때문에 다른 것을 알려고 하는 마음을 포기하였던 것이다.
모든 성경말씀은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십자가의 법칙에 맞게 이해를 하여야 할 것이다.
십자가의 법칙은 우리에게 주님의 말씀이 거할 조건이며 성령충만할 유일한 조건인다. 하나님의 나라가 타락한 인간에게 임할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다 이루신 십자가의 법칙을 이루어 완성할 때만 죄인된 우리의 마음에 천국이 존재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법칙만 완성되면 하나님은 더 이상 우리의 마음에 어떤 조건을 말씀하시지 않고 무조건으로 응답하실 것이다. 그 십자가의 법칙이 완성되는 그 곳에 하나님께서 계시고 역사하시고 축복이 되시며 능력이 되시며 기적을 행하실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의 법칙은 오직 성령충만함으로 예수그리스도와 하나가 됨으로 이해되고 완성되는 것이다. 십자가의 법칙을 얻은 자가 복이 있고 더 이상의 보물이 이 세상에 있을 수 없다. 십자가의 법칙이 완성된 마음에 성부 성자 성령이 함께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창세로부터 이루신 십자가의 법칙을 연구하면 7가지가 있다. 다음은 이 7가지의 십자가의 법칙에 대하여 기록하려 한다. 그 법칙을 사랑하고 이루려고 노록하는 것이 우리의 주님을 가까이 가는 비결인 것입니다.
제1.낮아지고 높아지는 법
하나님의 자녀들은 낮아지고 높아져야 한다.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낮아지고
하나님께로부터 높혀주심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절대로 스스로 높아지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낮아지지 않은 자를 절대로 높이시지 않는다.
그러면 낮지고 높아지는 십자가의 법칙은 무엇일까?
제1.낮아지고 높아지는 법
1)낮아지는 법이란 성령의 법,생명의 법은 낮아지는 자에게 임하는 것으로 낮아지는 법에 들어가 사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주는 십자가의 법 중에 하나이다.
성령의 법,생명의 법,성령의 생명의 법 속에 살기 원하는 자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을 마음에 채우고 예수님과 함께 낮아짐을 입어 낮아지는 법 속에 살아야하는 것이다.
2)먼저 낮아지고 후에 높아지는 법이다.그러나 스스로 먼저 낮아지고 스스로 후에 높아지는 법은 아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십자가의 공로로 스스로 먼저 낮아지는 일이 있고 후에 하나님께서 높아지게 하는 법을 이루는 것이다. 후에 하나님께서 높아지게 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고 중시하여 스스로 높아지면 사단의 법,사망의 법,죄의 법에 떨어지게 되는 것으로 주의하여야 한다.
하나님은 먼저 낮아지는 법 속에 사는 것을 보시고 높혀주시는 것인 바 높여 주시는 것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낮아지는 법을 완성하지 못하고 교만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버림을 받게 될 것이다.
낮아지는 법을 이루기 위하여 항상 노력할 때 낮아짐이 이루어짐과 동시에 높혀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도 동시에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단은 먼저 높혀지는 것을 원하고 스스로를 높혀 자신을 망하게 한 타락한 천사가 되었고 지금도 육신에 속한 자들을 먼저 높혀지게 하여 교만하게 하여 망하게 하며 먼저 낮아지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후에 높혀지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에 함으로 사망의 법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오직 낮아지는 법만을 사랑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3) 자신을 스스로 부인하는 법이다.
낮아지는 자는 자신을 부인하는 법속에 살아갈 수 있다. 자신을 부인하지 아니하지 아니하면 예수님을 따를 수 없는 것이다.(막08: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막08: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자기를 부인하지 않는 자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이해할 수 없고 예수님께 가까이 나갈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을 달리 말하면 자신을 가장 철저히 부인하는 자가 예수님 앞에 가장 가까이 있는 자인 것이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자신이 얼마나 무능하며 악하며 천하며 허무한 자이며 무익한 자이며 얼마가 추한 자인지 철저히 부인하는 자는 예수님을 따라 갈 수 없고 천국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을 먼저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사람에게도 인정을 받게 마련이며 십자가의 법은 영원한 진리인 것이다. 부인할 때 인정을 받는다.
그러나 십자가의 법에 들어가 사는 자는 인정받은 것을 즐김으로 부인하는 법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한다.
먼저 스스로를 부인하여 후에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은 자는 겸손으로 시작하여 교만으로 망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사람에게 인정을 받는 것은 좋은 것이며 늘 있어야 할 십자가의 법이지만 그러나 인정받은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아야 스스로를 부인하는 십자가의 법을 떠나지 아니할 수 있는 것이다.
사울왕이 작은 성공으로 하나님과 사람의 칭찬을 받고 교만하여 스스로의 전과를 기념하는 기념비를 세웠으나 하나님의 법을 떠나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다. 왕이 되여 전공을 세운 것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솔로몬왕이 지혜를 구하여 하나님의 칭찬과 스바여왕의 칭찬을 받은 후에 스스로 부인하는 법을 유지 못하고 하나님의 버림을 받은 것은 자신의 부족함과 미련함과 연약함과 허무함과 미물된 것과 추한 것과 죄인인 것은 늘 부인하고 살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일을 많이하고 칭찬을 받는 자리에 들어가 망하고 말게 될 것이다.
주님께 상을 받을 때 면류관을 쓸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자는 면류관을 쓰는 순간에도 면류관을 벗어 주님께 던지고 자신을 부인하되 면류관을 쓰게 된 공로를 자신의 것으로 전혀 돌리지 아니하고 자신을 철저히 부인하고 주께 영광만 돌릴 때만 상급의 면류관은 무효가 되지 아니할 것이다. 주님이 인정할수로 칭찬할 수록 철저히 자신을 부인하는 자가 복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후에 칭찬받은 후에 공로를 세운후에 면류관 쓰는 자리에 들어가서 자신을 인정하는 것 자신이 인정받는 것 자신의 공로를 기억하는 것으로 망할 것이다.
오직 자신이 행한 것은 죄 밖에 없고 허무한 것밖에 없고 무익한 것밖에 없고 추한 것밖에 없고 악한 것밖에 없고 못된 일만 한 것을 알고 주님앞에 얼굴을 들지 못하는 자가 되어야 상급이 유효할 것이다.
이는 주님께 아부하기 위하여 자신을 속이면서 아부하는 마음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일을 보면 내 공로는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공로인 것을 알고 진심으로 주님만을 인정하고 주님공로만을 찬양하게 되는 것이다. 진실이 그런 것이다.
순교를 하였고 재산을 다 주님께 드렸어도 그 공은 내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인 것이다. 주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 나의 나된 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라고 한 바울의 신앙이 옳을 것이다.
(고전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천국은 예수님의 고통으로 우리에게 오는 것으로 우리의 노력과 수고를 통하여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노력과 수고를 통하여 되는 것이다.
단 예수님의 입에서만 우리의 공로를 상주시는 말씀이 나오고 예수님의 생각에서만 칭찬하시는 생각이 나와야 할 것이지 스스로 잘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하고 인정하는 자는 천국에 도달 하지 못할 뿐 아니라 착각속에 사는 자로소 주님의 인정을 받을 자격이 없는 자인 것이다.
성경에는 자신을 부인하기 위한 용어가 많이 나온다. 죄인,바리새인,사기꾼,악한 자,미련한자. 벌래,먼지,배설물,안개,반딧불,들 많은 단어가 천국에 도달하게 하고 철저지 자신을 부인하면 주님과 가까워 질 수 있고 많은 선한 일을 많이 하며 주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많이 하면서 철저히 부인하면 주님의 상급을 받게 될 것이다.
자신을 부인하는 법에 사는 자는 하나님을 무조건 인정하고 찬양하고 다른 사람을 늘 인정하는 법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을 부인하는 자들에게는 쟁투가 있을 수 없고 하나님과 다른 사람과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
성부 성자 성령이 살고 천사들이 살고 있는 천국의 법에서 함께 살 수 있는 것이다. 남을 부인하고 자신을 인정받으려고 하고 하나님을 부인하고 자신을 인정하려는 사단의 법을 멸하고 살아야 한다.
교회는 예수님의 고난과 보혈과 죽으심으로 이루어지는 공동체인 것이다. 서로 자신을 부인하는 자들이 모일 때 교회는 가능하고 예수님의 영은 그 속에서 천국의 법 낮아지는 법을 이루고 성도들의 영혼과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서로 인정을 받기 위하여 남을 욕하고 부인하고 모함하고 시기하는 자들은 천국을 떠난 자들이며 마음 심령에 그리스도의 법이 없으며 그리스도의 영이 계시지 않는다. 자신을 부인하고 주를 따르는 자만이 주를 따를 수 있고 주님과 가까이 교제할 수 있다.
바리새인들이 현대에도 많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원수된 것이 내 마음에 바리새인이 되어 존재하는 것을 알고 회개하여 부인하는 법을 완성하여야 한다. 영원히 부인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주님의 가장가까이에 거하는 자는 가장 철저히 자신을 부인하는 법을 완성하여 낮아지는 법이 완성된 자인데 이는 주님의 은혜로만 되는 것이다.
4)섬기는 자가 되어 남을 높이 보고 자신을 낯추는 법이다.
섬김을 받음이 아니라 섬기려 하는 자들이 십자가의 법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생명의 법 성령의 법을 섬기는 법 속에서 가능한 것이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려 세상에 오신 분이 아니라 섬기려고 오시었고 그의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시려고 세상에 오신 분이다.
(마20:28) 인자가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께서 왕으로 오시었다는 말씀이 마태복음의 주제이라면 마가복음의 주제는 섬기는 종으로 오신 예수님이다. 섬기는 분으로 오신 예수님은 자신을 낮추어 인간이 되시었고 십자가까지 낮아져서 죄인의 형틀을 지시고 죽으시고 음부에 까지 낮아지시었다.
섬기는 자는 낮아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되시며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낮아져 섬기는 노예가 되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다. 우리는 당연히 노예가 되어야 한다. 왕같은 제사장이 되었으면 그 권한으로 남을 무시하고 명령하고 남을 호령하는 자리에 앉지 말고 섬기는 노예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노예인 우리는 모든 인간의 노예가 되어야 할 것이다.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부모도 자식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나님의 백성이다. 아내가 남편을 심기는 것만이 아니라 남편도 아내를 섬기어야 한다.
부하가 상전을 섬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상전도 부하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서로 노예가 되어야 한다.
섬기는 노예가 되는 것이 행복이며 기쁨이며 인생의 목적인 것이다. 서로 섬기는 법 속에 살 때 낮아지는 법은 완성되며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고 인간을 섬기는 목적으로 우리는 태어났다.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하여 우리는 존재하는 것이다. 남을 해하고 하나님을 괴롭히는 자는 저주를 받은 자인 것이다. 나의 존재의 목적은 섬기는 것이 섬기는 것이 축복이다.
섬기는 일보다 섬김을 받으려는 마음을 매일 십자가에 못박아야 한다. 섬김을 받으려는 마음이 들어오면 불평과 원망이 입에서 나오고 은혜가 소멸된다. 섬김을 받으려는 자들과 함께 사는 것은 피곤하고 불편하다.
그러나 서로 섬기고 받드로 높이는 자들과 함께 하면 어느 곳에서도 어떤 환경에서도 천국생활이 되는 것이다. 섬김을 받으려 몸부림 치는 자들은 분명히 천국에서 거절당하고 지옥불에 들어갈 곳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늘 섬김을 받기를 포기하고 섬기기를 좋아하고 섬김을 주는 것을 섬김을 받은 것보다 백배로 더 보화로 알고 섬김을 받을 때도 섬김을 받으려는 마음이 고질적으로 마음에 자리 잡지 않기 위하여 몸부림을 치며 항상 섬김을 주려는 마음을 준비한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큰 능력과 출복과 은혜가 함께 할 것이 분명한 것이다.
남을 섬기는 것으로 이용하여 남의 섬김을 받은 것을 유도하여 내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 못된다. 순수하게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섬기는 것 자체를 행복으로 알고 목적을 삼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섬기는 것만이 인생의 보람이 되어야 한다.
돈도 건강도 시간도 환경도 섬기는 목적으로 존재하는 자가 되어야 십자가의 법을 완성하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5) 자신을 무시하는 법을 성취하여 낮아지는 것이다.
자신을 무시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은혜로 성령으로 자신을 무시하는 법을 완성한 자는 절대로 낙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령이 없는 자가 자신을 부인하고 무시하면 자살을 한다든지 비관하고 살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법안에서서 자신을 철저히 무시하고 살아야 한다.
스스로 자신을 무시하는 자는 타인이 자신을 무시하여도 시험에 들지 아니하며 혈기를 부리지 않는다 그러나 성령으로 십자가의 은혜로 스스로를 무시하지 않는 자는 남이 무시한다든지 하나님께 무시하는 듯하면 화가 나고 혈기를 부리며 그 사실을 자존심을 상하게 하여 상처를 받는다. 옛사람이 상처를 받는 것이다.
옛사람이 상처를 받으면 더욱 안죽으려고 몸부림을 치고 자신을 귀하여기는 마음을 옷입어 하나님께 대들고 다른 사람을 서운하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을 스스로 무시하는 법을 완성한 자를 하나님께서 귀중하게 여기어야한다. 자신을 철저히 무시하는 법에 살게 된 자가 못될 때 하나님께서 귀중히 여기는 말씀으로 위로하면 위로 받는 것은 순간이요 금방 자존심이 살아나서 스스로을 귀중하게 여김으로 천한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자신을 성령으로 철저히 무시한 자를 하나님께서 귀중하게 여길 때 십자가의 법은 완성이 되며 낮아지는 법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자가 좋은 일을 많이 한 귀한 자들이 스스로 자신을 무시하며 예수님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세례요한이 예수님께 칭찬을 받을 때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요한 같은 자가 없다고 하셨는데 세례요한은 스스로 예수님앞에 자신을 낮추어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다고 하였다.
자신의 명성을 다 버리고 스스로 자신을 무시하여 노예정도도 못된다고 여긴 것이다. 세례요한만 자신을 무시할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난 자들은 성령충만함을 받으면 철저히 자신을 무시하는 법 속에서 살아야 한다.
자신을 성령으로 철저히 무시하고 살아가는 자가 천국에서 존귀한 자이며 하나님께와 사람에게 영원히 존귀함을 받을 것이 분명한 것이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스스로 자신을 철저히 무시하는 법을 영원히 완성하고 사는 자는 절대로 자존심을 앞세우지 아니한다. 많은 귀한 종들이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하고 자존심을 못죽이고 망하는 자들이 많다.
낮아지는 법을 떠나 스스로를 낮추지 않고 스스로를 무시하지 않고 스스로 된 줄알고 스스로 귀한 자라고 자처하고 착각 속에서 스스로를 속이고 살기 때문인 것이다. 주님앞에 우리의 모습은 귀할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귀한 것이 있다면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귀한 것이며 주님이 귀하게 여김으로 귀한 것이며 주님의 모습이 들어 있기에 귀한 것이기에 스스로 귀할 것이 없다.
단 주님만이 우리를 귀하게 여기기에 우리는 남을 귀하게 여기여야 할 것이다. 스스로를 무시하고 남을 인정하고 귀하게 여기는 곳에 천국이 있고 십자가의 법이 성취되는 것이다.
6)낮아지는 것이 완성될 때 낮아지는 법에 들아갈 수 있다.
낮아지는 법이 불완전하면 추해 보인다. 엉거주춤하지 말고 십자가 앞에 뛰어 들어 낮아지는 법을 성취할 것이다. 낮아지는 용기가 최고의 용기인 것이다.
낮아지는 것을 이용하지 말고 순수하게 낮아지는 것을 사랑하여야 한다. 낮아지는 것이 나의 인생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낮아지는 것을 이용하여 높아지는 것을 구하는 자는 처음에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다고 결국 죄인의 모습이 들어나고 그 속셈이 드러나 하나님께 버림을 받게 될 것이며 십자가의 도을 성취하지 못할 것이다. 낮아짐이 나의 최고의 영광이며 승리며 완성이며 행복이며 기쁨이 되어야 한다.
7)낮아짐을 목적으로 사는 자만이 성취할 수 있다.
낮아짐을 목적으로 삼는 자는 많지 아니하다. 그러므로 낮아짐을 목적으로 삼고 하는 자는 하나님의 눈에 잘 드러나 사랑을 받게 마련이다.
낮아짐을 이용하여 높아짐을 추구하는 자는 하나님을 속이는 자이며 스스로을 속이는 자인 것이다. 스스로 속이는 것이 교만인 것이다.
8)행복하고 기뻐하는 낮아짐으로 발전하여야 낮아지는법 속에 살 수 있다.
능력이 낮아짐 속에 있고 행복이 낮아짐 속에 있고 천국이 낮아짐 속에 있고 낮아짐 속에 사는 자는 하나님과 가까이 할 것이며 하나님의 친구가 될 수 있으나 잠간이라고 높아지는 법이 드러오면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떠나는 것이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낮아짐이 목적이 된 것이 성령충만함인 것이다. 성령을 받은 자들이라고 자처하면서 높아짐으로 붕 떠 있는 자는 악령을 받은 자들인 것으로 피하여야 한다. 가장 낮아진 곳에 성령충만함이 있다.
9)높아질 가능성이 없어 낮아짐이 완성되어야 하나님의 큰 은사가 온다
낮아짐을 완성하여야 한다. 높아질 가능성이 없어질 것과 더 이상 낮아질 수 없는 최상급으로 낮아져야 한다. 조금낮아지면 비참한 생각도 든다 그러나 가장 최상급으로 낮아지면 큰 권세가 따르는 것이다.
더 이상 낮이잘 수 없는 그 곳이 예수님의보좌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단은 더 이상 높아질 수 없는 곳까지 높아져 하나님께 찍혀 버린 저주를 받았다.
(사14:12)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하고 공을 많이 세우고 순수하게 낮아짐을 목적으로 행하지 않고 높은 자리를 구하는 마음으로 공을 세우다가 하나님께 버림받을 종들이 많은 것이다. 그 길이 사단이 가는 망하는 길인 것이다.
사단도 타락하기 전에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하였다. 가장 소중한 일을 맡았다. 하나님을 수직하고 천사들을 통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는 일을 행한 것이다. 그러나 그공로는 저주가 된 것은 마음을 높아지는 법에 던진 결과 하나님과 원수가 된 것이다.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할 수록 칭찬을 받을 수록 낮아지는 법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
10)무조건 낮아지는 법을 완성하여야 한다.
실수 때문에 낮아진 자는 실수가 없어지면 높아진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낮아지게 하기 위하여 실수고 범하게 한다.
그러나 실수 때문에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낮아져야 하기 때문이며 성부성자 성령이 낮아진 분들이며 천사들이 다 겸손한 영들인데 하늘나라에 살기 원하면 무조건 낮아져야 하는 것이다.
낮아짐에 조건을 걸지 말아야 한다.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이다. 하나님의 명령이 낮이지는 것이라면 무조건 낮아지어야 한다. 어떤 환경이나 어떤 처지에 조건부로 낮아지는 자는 천국을 마음에 소유한 자가 못된다.
무조건 낮아짐을 사랑하고 낮아짐을 이루고 살아야 한다. 부조건 자신을 부인하고 무시하는 법을 성취하고 섬기는 법을 완성하고 살아야 한다.
마음으로 연기할 필요가 없다 천국은 우리의 마음에 있고 항상 천국열쇠는 천국을 열수 있는 것인 바 십자가의 법이 천국열쇠인 것이다.
11)낮아짐이 영원히 이루어져야 한다.
하나님을 속일 수 없다. 정책상 일시적으로 겸손한 마음을 갖고 겸손하게 머리를 숙인다고 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는 없는 것이다. 영원히 낮아진 자는 하나님을 만나며 은총과 귀히 여김을 늘 받을 수 있다.
낮아지는 법을 영원히 유지하여야 한다. 잠시 낮아지고 후에 높아지는 유혹에 넘어가지 말고 스스로에게 속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꾀에 자신이 넘어지는 자가 많다. 영원히 낮아지고 부인하고 스스로를 무시하고 섬기는 자가 영원히 되는 것이 나의 인생의 전부이며 인생의 보람이며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낮아짐이 즐어워야 한데 낮아짐이 괴로움이 되면 성령이 없는 자요 십자가의 은혜를 육신으로 이루기 때문인 것이다. 예수님의 마음을 옷입고 새 사람을 옷입고 낮아진 자는 낮아짐이 행복이 되는 것이다.
낮아지는 것이 싫은 것은 육신에 속한 사람이라 그런 것이다. 성령충만함을 받고 성령의 사람 즉 영에 속한 사람이 되어 새 사람으로 사는 시간이 많아지면 낮아지는 것을 즐기로 살 수 있는 것이다.
가장 낮은 곳에 행복이 있고 만족이 있고 평안이 있고 위로와 기쁨이 있는 것을 사람들은 모르고 있는 것이다. 머리를 땅에 대고 엎드려 하나님을 경배하고 사는 자가 행복한 자고 항상기뻐하고 사는 자인 것이다.
마음이 낮아짐을 즐거워 하지 않고 높아짐에 마음을 두고 살면서도 기뻐하고 살 수 있다. 그러나 높아지고 살며 교만하게 살면서 기뻐하는 것은 성령의 주신 기쁨이 아니며 십자가의 세례를 받지 못한 기쁨인지라 그런 기쁨은 세상기쁨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음란과 정욕의 기쁨보다 더 무서운 것으로 많은 하나님의 종들을 넘어지게 하는데 더 큰 올무가 되는 것이다.
12)새 마음과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거듭남으로만 되어야 한다.
새 사람과 새 마음에 그리스도의 마음이 임함으로 옛사람은 감추어지고 새 마음과 그리스도의 마음이 나타나는 마음이 되어 낮아짐이 완성되어야 한다.
옛마음은 절대로 십자가의 도을 성취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죽으심에 연합하여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나는 주님의 공로로만 낮아짐의 법을 완성하여 한다.
항상 높아지기를 좋아하는 옛마음을 새 마음이 그리스도의 마음이 덮어버리어야 한다. 그러나 언제나 높아지는 법을 좋아하는 마음이 일어날 가능성이 상존함으로 조심하여야 하고 늘 십자가의 은혜를 사모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제2.버리고 얻는 법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에는 버리고 얻는 법칙이 들어 있다.
버리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버리지 않고 얻으면 그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세상의
것들인 것이다.
하나님의 것들은 버리어야 얻는 것이 있다.
세상의 것들을 버리어야 하늘의 것들을 얻는다.
나의 것을 버릴 때 주님의 것을 얻을 수 있다.
하루 하루 버리어야 할 것들이 많은데 그 것을
버리지 않으려 하고 버리지 않고 살아가니 문제가
많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얻을까를 바로 아는 것이
바로 성경 속에서 십자가의 법칙을 아는 길이다.
제2.버리고 얻는 법
1)버리는 법이란 십자가의 은혜로 성령의 법,생명의 법속에 사는 자들이 하나를 이루기 위하여 항상 버리는 마음을 이루고 사는 영적인 법을 말하는 것이다.
낮아지는 법을 완성한 자라고 버리는 법을 멀리하면 낮아지는 법이 위태롭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낮아지는 법을 사랑하는 자는 버리는 법도 사랑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십자가의 일곱법칙이 다 성취되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버리는 법은 성령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며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버리신 예수님의 공로로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가 아니고 성령이 없는 자들이 버리는 법을 이루어도 이는 성령의 법이 아니며 사단의 법이고 생명의 법이 못되고 사망의 법을 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세례 십자가의 세례,성령의 세례,성령의 재충만함만이 버리는 법을 완성할 수 있고 버리는 법이 아름다운 하나님의 능력과 기쁨과 은혜로 충만하게 할 것이다.
2)버리는 법에 있어서도 먼저 버리고 후에 얻는 법을 조심하여야 한다.
먼저 버리면 후에 얻는 법이 십자가의 법임에는 틀림이 없다. 먼저 버린 자는 후에 좋은 것을 얻게 되는 은혜가 임하는 것이 십자가의 은혜인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에 얻기 위하여 버리는 일을 먼저하는 자는 버리는 법을 완성하기 곤란할 때가 온다. 버리는 일을 함으로 취하는 일을 하기 위하여 행하면 버리는 일에 열심을 계속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법을 통하고 그 도를 완성하기 원하는 자는 버리는 법에만 관심을 집중하고 영원히 버리는 일을 계속하여야 한다. 내가 십자가의 은혜를 받아 버리는 일을 계속하면 하나님의 법칙에 따라 좋은 것을 취하는 일은 저절로 임하게 되는 것이다. 십자가로 인하여 죄악을 멀리하고 버리면 선한 일을 취하게 되는 일은 저절로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버리는 일이 계속되지 못할 때 십자가의 은혜는 약하게 될 것이다. 버리면 버릴 수록 버릴 것이 많아지는 자가 복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숨을 쉴 때 탄산가를 버리는 일이 계속되듯 악과 죄와 나쁜 생각을 매일 버리는 일 항상 버리는 일이 계속될 때 선한 것 귀한 것 아름다운 것을 취하게 되는 것이 십자가의 법인 것이다.
3)버리는 법은 무엇을 버리는가가 중요하며 성령의 능력으로 십자가의 은혜로 버려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싫어하는 것을 마음에서 버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법에 사는 자는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싫어하는 생각과 말과 행동을 버리며 물건을 버리는 것이다.
육신의 생각을 버리어야 영의 생각이 임한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영생과 평안이기 때문에 육신의 생각을 매일 버리어야 한다.
죄와 악을 버리는 법 속에서 살아야 한다. 죄를 버리지 아니하면 죄의 노예가 되어 십자가의 법에서 살 수 없다. 사망의 법에 끌려 가게 되는 것이다. 죄를 범한 자는 죄의 노예가 되나 십자가의 공로을 의지하고 회개하여 죄를 버리고 살아야 한다.
죄를 짓는 것이 인간이며 용서하는 것이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의 법에서 버리는 법을 이루고 사는 자는 죄의 노예가 되지 아니한다.
죄를 버리면 의를 선물로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의를 선물로 받은 후에도 다된 줄로 여기지 말고 버리는 법안에서떠나지 말아야 한다. 수시로 임하는 나쁜 생각 악한 생각 죄의 소욕읋 버릴 때만 사람은 바르게 살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악행을 버리어야 한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자들일수록 악한 마음과 생각이 행실이 하나님을 슬프시게 하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아무리 성령충만함을 받고 성화된 자라고 악한 생각에서 자유한 자는 예수님이외는 없는 것이다. 항상 버리지 아니하면 선행을 할 수 없다. 하나님의 좋으신 분이라 악한 것을 버리면 선한 것을 선물도 주시는 분이다.
성령충만한 자,십자가의 세례를 받고 사는 자가 악한 것을 수시로 버리면 선함이 가득한 삶을 살 수있고 하나님은 우리가 선한일에 준비된 자가 되기 바라시며 선한일에 열심을 내는 하나님의 친백성이 되길 원하시는 것이다.
성령충만은 악한 마음,악한 생각,악한 말과 행동을 습관을 버리는 법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악한 생각과 악한 말과 행동을 열심히 버리지 않는 자는 성령충만한 자가 아닌 것이다.
성령충만함을 받고 버리는 법에 들어가는 자는 선한 생각 속에서 선한 마음으로 선함과 진실함의 열매를 맺고 살 수 있는 것이다.
악한 습관은 성령의 열매를 맺음으로 버리어지는 것이며 성령의 법 죽에 버리는 법에 들어가 살아야 악한 습관이 버리어지는 것이다. 악한 습관에는 악한 자인 귀신이 잡고 있는 것으로 영적인 저항을 이길 것인데 버리는 법을 사랑하고 버리는 것을 원하고 소원하는 마음이 불과 같이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취하는 것은 좋아하나 버리는 것을 싫어한다. 거듭난 자만이 버리는 것을 좋아할 수 있는 것이다.
거짓을 버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버리는 자가 버리는 법속에 살면서 거짓을 마음에 말과 행동에 두는 것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며 예수님의 마음은 진실한 마음으로 거짓을 멀리한다.
십자가의 법을 완성하여 거짓을 버리어야 한다. 거짓된 생각을 버리고 거짓말을 버리고 속이는 행동을 버리어야 한다. 그러나 버리는 것이 육신으로 이루어지면 열매가 없다.
성령으로 이루어질 때 진실한 것이 임하게 되는 것이며 십자가의 공로로 옛사람이 죽으면서 보혈충만한 마음으로 이러어질 때 진실함이 넘처나게 될 것이다.
헛된 것을 버리는 법을 완성하여야 한다. 허망한 것을 위하여 살지 말고 보람된 일을 하면서 살도로 헛된 것읋 버리어야 한다. 사람들은 귀한 것을 다 버리고 참된 것을 다 버리고 허망한 것을 헛된 것을 좋아하고 살고 그 것을 목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십자가의 법에 사는 자는 지혜롭게 살기에 헛되고 허무한 인생을 의미있게 살 수 있는 것이다.전도서에 보면 인생의 허무함을 바로 알고 십자가의 은혜로 의미 있는 인생을 살게 하는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우상을 버리고 사는 법에 살아야한다. 십자가의 법을 완성하는 자 성령충만함을 받아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함을 받고 버리는 법에 들어가 살 때 허무한 우상을 헛된 우상을 미워하고 멀리할 것이다. 하나님은 우상숭배자를 죄없다고 하지 아니하실 것이다.
우상과 함께 망하게 될 우상을 버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신약성경에는 구약의 개념이 완성되어 탐심이 우상숭배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정욕을 이기지 못하고 정욕의 노예가 된 자는 탐심을 가지고 살게 되는 바 옛사람의 구성원은 탐심이다.옛사람의 마음의 구성원은 음란과 사욕과 부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며 탐심이 우상숭배인 것이다.
옛사람의 내용이 탐심이다. 탐심을 버리려면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옷입어야 한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기쁨이요 은혜이며 능력이다.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길 수 없고 재물과 하나님을 동일하게 섬길 수 없다. 하나님의 법 성령의 법속에 사는 자는 버리는법을 완성하여 탐심을 버리어야 한다. 탐심은 우상숭배와 같기 때문이다.
탐심이 악한 정욕으로 오는 것일진대 악한 정욕을 버리고 새 사람이 되어 선한 욕심으로 살면 성령의 소욕을 이루기 때문에 탐심이 마음에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탐심을 버리는 법 속에 사는 자는 항상 하나님을 만물보다 모든 인간보다 더 사랑하기에 은혜와 기쁨 이 충만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속에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감정을 버리는 법을 이루고 살아야 한다. 감정은 육신의 사람의 감정 옛사람의 감정을 말한다. 거듭난 새 사람도 감정을 갖고 있는 이를 영감이 영적감정이 살아나고 영적감각이 살아나면 육적인 감정을 버리게 되는 바 버리는 법이 완성되면 살아나는 법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자기를 버리고 사는 법을 완성하여야 한다. 자신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 십자가의 법이며 주님을 따르기 전에 자신의 것을 버리는 법에 들어가야 한다.
버리는 법을 이루지 못하면 주님의 것으로 충만함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주님의 것만이 천국을 이루며 성령충만함은 주님의 것으로 충만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주님의 영으로 생각으로 마음으로 감정으로 뜻으로 주님의 소원으로 충만하기 위하여서는 자신의 것을 자기를 버리는 법을 이루고 살아야 한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하였는데 이는 마음을 비운 자를 말하며 마음에 버리는 법이 임하고 있어 모든 것을 다 버리면 주님으로 가득하게 되어 천국이 되는 것을 말한다. 회개하는 것은 나를 버리고 주님으로 채우는 것이다. 천국은 회개하는 자의 것이며 버리는 법을 완성하는 자의 것이다.
내 유익을 버리고 살아야 한다. 내 유익에 밝은 자는 절대로 남을 위하여 주님을 위하여 살 수 없다. 보통으로 위대한 사람일수록 세상으로부터 훌륭하다는 자들은 다 자신의 이익 유익에 밝은 자들이다.
자신의 유익에 밝고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자들은 절대로 십자가의 법을 성취할 수 없고 십자가의 도를 이루고 살 수 없는 것이다.
내 유익 때문에 인생을 헛되게 살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아니하는 인생을 살기 때문에 예수님은 다른 보혜사 도우는 자 성령님을 보내 q주시었고 자신을 위하여 사는 자가 자신의 유익을 버리고 하나님의 유익을 구하면 만민들을 위하여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사는 자로 거듭나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버리는 법이 없으면 얻는 법이 없는 것이며 버리는 법을 완성하여 자신의 유익을 매일 버릴 때 남을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살 수 있고 희생하면서 살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을 위하여 사는 자는 약은 자요 지혜로운 자면서 처세술이 능숙한 자 같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가장 미련한 자인 것이다. 세상 끝날에 주님 앞에 상급이 없을 것이며 공력이 나타날 때 복음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한 자는 성령을 금은 보화로 집을 짓는 자 같아서 공력이 살아 있을 것이나 자신만을 위하여 사는 자는 짚이나 나무나 풀로 집을 지은 자 같아서 공력이 불로 나타날 때 다 타버리고 말면 허무한 인생으로 끝이 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남을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라고 교육을 받아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고통과 아픔과 피흘림과 죽으심이 마음에 임하지 아니하는 자는 절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없고 버리는 법 즉 자신의 유익을 버리는 법에 들어가 살 수 없는 것이다.
십자가의 길은 정말 협착하여 찾는 이가 많지 못한 것이다. 자신의 유익을 버리는 것을 목적으로 살고 순수한 마음으로 타인의 유익을 구하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고 살아가야 하는 바 십자가를 사랑하고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희생을 본받는 자가 아니면 불가능한 것이다.
이기주의자들은 성령을 받았다고 하여도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성령을 이용하고져 하나 성령께서 좋아하지 아니하기에 항상 마귀의 시험과 악령의 번민 속에 살아가는 것이다. 성령을 모시고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내 이익을 희생하는 자가 복이 있고 인간의 이익을 버리고 하나님의 유익을 구하는 법 속에 사는 것이 귀한 것이다.
하나님을 위하는 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자 하나님의 이익을 구하는 자는 온 인류의 이익을 구하는 자요 결국에서는 영원한 의미에서는 자신에게 영생의 유익이 가장 많은 것이다. 하나님의 유익을 위하여 타인의 유익을 위하여 자신의 이익을 버리는 법속에 사는 자가 십자가의 지혜로 사는 자인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속한 자들은 십자가의지혜를 받을 수도 없고 좋아도 아니하며 그 법을 성취할 수 없기에 세상을 멀리하고 거듭나야 하는 것이다.
어둠의 일을 버리는 법 속에 살아야 한다. 성도는 빛의 백성이며 빛의 자녀들이며 빛의 아들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어둠을 멀리하고 어둠을 버리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어둠의 일을 버릴 때 빛가운데 들어가 살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은 어둠인 것은 빛되신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 그러나 성도들의 마음에도 어둠이 들어올 수 있는 가능성이 항상 있다.
그러므로 매일 죽는 일만 일어날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은혜로 말미암아 버리는 법도 매일 완성되어야 할 것인데 어둠을 버리는 일이 매일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어둠은 물질적인 어둠이 아니라 물질적인 어둠은 우리에게 그림자로서 어둠의 모습을 알게 할 뿐이며 영적으로 어둠은 마귀와 악령들이 어둠이며 사망이 어둠이며 저주가 어둠이며 미움과 시기가 어둠이며 모든 하나님을 떠난 말과 행동이 어둠인 것이다.
어둠을 버리는 자가 십자가의 법을 완성하여 빛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어두움을 사랑하며 어두움을 버리지 못하는 자는 절대로 주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을 자격을 얻을 수 없는 것은 예수님은 어둠을 멀리하고 미워하고 타협하지 아니하고 물리치고 멸하시는 빛이시기 때문이다.
빛가운데 거하길 원하면 어둠을 버리는 법을 즐기고 완성하고 조금이라고 어둠이 없는 마음으로 영혼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어둠을 멀리하는 것을 즐기고 살아야 하며 새 사람으로 어두움을 미워하여야 할 것이다.
예수그리스도 이외에 모든 것을 버리고 사는 바울읋 본받아야 한다. 바울은 예수그리스도 이외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다 버리고 살기를 원하였다. 그리스도만을 충만하게 하고 그리스도 안에서만 자신을 발견하기위한 철저한 노력인 것이다. 그리스도 이외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는 마음이 중요한 것인 바 거듭난 마음 성령충만함을 받은 마음만 그리스도의 고통을 보배로 여기는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마음을옷입을 때만 가능한 것이다.
그리스도 이외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어 무의미하고 더러운 것을 알면 마음에서 버리게 되는 것이며 마음에서 그리스도 이외의 모든 것을 버리는 자는 예수그리스도로 충만함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하나님의 모든 지혜와 지식의 충만함이 그 속에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다 버리지 아니하면 예수그리스도를 소유할 수 없는 것이다. 마음에 모든 것을 버린 자가 복이 있고 주를 얻기 위하여 주를 취하고 소유하기 위하여 주님의 마음을 얻기 위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는 자가 복이 있다.
순간 순간 모든 것을 버리는 법을 완성하고 그리스도 만을 즐거워하고 좋아하고 기뻐하고 사는 자가 성령충만함을 받은 자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자며 그리스도의 향기와 형상을 이루고 살 것이다.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고 보람으로 여기고 소망으로 여길 것이다. 참으로 귀한 것을 얻기 위하여 쓰레기 만도 못한 배설물을 버리는 것이 좋은 것이다.
자기 영광을 버리는 법 속에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신의 영광을 버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먼저 자신의 영광을 버리면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고 자신도 하나님의 영광안에서 영광을 받게 마련이다.
여기에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날 때 자신도 함께 영광받는 것이 불법인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영광도 주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 않고 자신의 영광을 조금이라고 바라는 자는 정죄를 당하는 것이 마땅한 것은 그 모습이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는 마귀의 모습이며 또한 피조물은 자기의 영광을 구하지 말아야 할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실 분이고 피조물인 인간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 만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누워 가질려는 마음이 있는 것은 마귀의 영향이요 인간의 마음의 타락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자신의 영광을 매일 완전하게 철저하게 버리는 법에 들어가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는 자신의 영광이 오는 바 이를 멀리 하지 못함으로 망한다. 많는 종들이 자신의 영광을 조금이라도 구하고 조금이라고 나타내다가 지옥불에 들어갈 것이다. 자신의 영광을 구하는 자들은 지옥불이 떨어져야 마땅한 것은 마귀의 가장 나쁜 점이 자신의 영광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구하는 자들에게 만국백성이 되어 새예루살렘의 주님권을 얻지 못하고 신천신지에 변두리에서 살게 하는 자들도 허락하신 것을 보면 거듭난 성도들 중에 자신의 영광을 구하면서 살다가 신천신지에 들어가서도 자신의 편을 만들 성도들이 존재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세마포와 면류관은 없을 것이다. 자신의 영광을 버리고 자신의 이름을 높이는 것을 버리는 법을 완성하지 못한 자들은 새 예루살렘의 시민권도 세마포도 면류관도 바라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행함으로 자신이 영광을 다 받은 결과 더 이상 영광받을 것이 없을 것이다.
세상에 속한 것을 다 버리는 법 속에서 살아야 한다. 세상에 속한 것을 버리고 살아야 하나님의 법에 들어가 살 수 있고 성령충만함을 받아 성령의 법속에서 살 수 있는 것이다. 세상에 속한 것은 다 악한 것이며 마귀적인 것이며 하나님과 원수가 된 것이기에 세상에 속한 것을 미워하고 더럽게 여기고 무시하고 멀리하고 늘 버리는 법 속에서 살아야 한다.
세상의 것들이 세상 사람들에게만 몰려 오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마음에도 물밀 듯이 밀려 오는 것이다. 잠시만 기도하지 아니하면 성도의 마음은 세상이 되는 것이다.
영으로 거듭난 자들이 마음과 생각과 말과 행동이 세상이 되면 하나님은 심판을 하시었다. 구약에 선지자들은 성민들에 밀려온 세상과 싸우다가 죽은 것이다.
예수님은 세상을 이시시었고 세상을 이긴 이김을 힘입어 담대하게 세상을 이기길 원한다. 세상을 이기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로만 가능하고 그의 고난에 동참하고 그의 죽으심에 동참할 때 가능한 것이다. 주의 십자가의 능력으로 세상을 미워하고 버리는 법이 완성될 때 세상을 마음에서 버리게 될 것이다.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다 버리는 법 속에서 살아야 한다. 인간방법을 버릴 때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은 역사를 하시는 것이다.
십자가의 법을 완성하는 자는 인간의 방법이 없고 수단이 없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인간방법으로 행하면서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하는 것은 모순이다.
십자가의 공로로 승리하기 원하는 자는 인간방법과 수단을 철저히 버리어야 한다. 내 방법대로 행하면서 하나님의 행하심이었다고 거짓을 말하는 자가 많다.
버리는 법을 즐거워 하지 않고 버리는 법을 완성하는 십자가를 무능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철저히 버리는 법을 완성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뒤 따르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한다.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매일 취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틈이 없는 것이다.
베드로가 자신의 방법을 버리고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할 때 고기를 많이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바울이 아덴에 가서 인간방법으로 철학적으로 설교를 하였으나 실패한 것이다.
십자가만 전하는 일을 바꾸어 철학을 전하는 것은 인간방법인 것이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는 자가 능력의 사람이 구속받은 하나님의 종의 사명을 담당하는 자인 것이다.
다윗은 인간방법을 사용할 때는 하나님께 징계를 받았으나 하나님의 방법을 택하기 위하여 인간의 방법을 버렸을 때는 백전백승하였던 것이다.
4)완성을 위하여 철저히 버리어야 한다.
완성을 위하여 철저히 버리지 못하면 영에 속한 사람이 될 수 없고 영에 속한 자가 되어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되면 철저히 버리게 되는 것이다.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버리지 못하면 새 사람이 못되는 것입이다.육신의 생각을 철저히 버리는 것은 십자가의 은혜로만 가능하며 성령충만함으로만 가능합니다. 철저히 죽은 자는 철저히 버리게 되는 것은 거듭남으로만 버려지는 것을 말한다.
내뜻을 내 꿈을 철저히 버리고 내 수단과 방법을 철저히 버리고 내 영광을 철저히 버리는 것은 더 좋은 것을 얻게 되는 비결이된다. 그리스도 안에 모든 보화를 받기 원하는 자는 모든 것을 버리어야 한다.
모든 것을 버릴 때 모든 것을 잃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고 주를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을 마음에서 버릴 때 심령이 가나한 자가 되며 영에 속한 사람으로 새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의 마음을 옷입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지혜와 지식의 충만함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미련이 없이 완전히 버린 자가 되어야 한다. 미련을 가진다는 것은 아직 혼에 속한 사람이 되어 있다는 것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연합하지 못한 것이며 그리스도의 마음을 옷입지 못한 것이다.
예수님은 아낌없이 그 영광을 버리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모든 것을 버리신 사랑을 완성하시었다. 그리스도의 버리심을 옷입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의 이외에 모든 것을 버릴 사람이 없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옷입어 그리스도 이외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그리스도 안에서만 발견되려 하였고 모든 것을 다 잃고 그리스도를 얻게 되어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나게 한 것이다.
5)영원히 버리어야 한다.
일시적으로 얻기 위한 방법으로 수단으로 버리는 척하는 것은 십자가의 법칙을 농락하는 것이다. 베드로가 자신의 부적한 것을 알고 수단을 더리다가 다시 자신의 방법대로 노를 저어가면 풍랑을 만났고 자신의 인격과 결심이 대단한지 알고 버리지 않다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는 결과를 나타나게 된 것은 당연한 것이다.
완전히 영원히 버릴 때 그리스도 충만한 분량에까지 도달하고 그리스도의 나타남에 때라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것이 나타날 가능성이 없도록 나의 것을 모두 완전히 버려진 자가 성령충만한 자이며 능력충만함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세례는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나는 세례이기도 하지만 다 버리고 모든 것을 얻게 되는 세례도 되는 것이다.
6)버리는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 하는 은혜가 십자가의 법인 것이다.
버리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 인간의 육신의 사람의 모습이지만 영에 속한 자가 되면 그리스도의 영광과 나라를 위하여 버리는 것이 많을수록 기뻐하게 되며 버리는 생활을 즐거워 하게 되는 것이다.
기분이 나쁘지만 억지고 버리는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은 십자가의 법에 들어가지 못한 자의 마음이며 십자가의도를 성취못하여 그런 것이다.
하나님을 위하여 희생하고 버리는 기쁨으로 살 때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이다. 버리기는 버리었으나 마음이 온전하지 못하여 억지로 불쾌한 마음으로 버리고 인색한 마음으로 버리고 주를 따르는 것은 주님앞에 충성심이 못되며 기적이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버리면 모든 것을 얻는 다는 것을 생각하면 버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러나 우리 마음에 그런 마음으로만으로는 절대로 버리는 것을 즐거워 할 수 없다.
버리는 것 그 자체를 즐거워 하는 마음을 주는 것은 은헤로 되는 것이다. 주님의 마음이 버리는 것을 즐거워 하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신 예수님의 마음이 머무는 곳에는 버리는 것을 즐기는 마음 기쁨으로 아낌 없이 주를 버리는 마음으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고 그 버리는 마음의 즐거움 속에서 주님 안에 있는 하늘의 모든 보화가 임하게 되는 것이다.
옛마음을 버릴 대 새 마음이 임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내 뜻을 버릴 때 하나님의 뜻이 마음이 임하게 되는 것이다. 내 기쁨과 내 꿈을 기쁨으로 버릴 때 예수님의 기쁨과 꿈이 나의 생활에 충만하게 되는 것이다.
내 계획을 기쁨으로 버릴 때 예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세상의 것을 더러운 것을 버리지 못하고 허무한 인생을 살다 죽은 것이 인간들이나 십자가의 보혈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에 당한 고통으로 우리 마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세례를 받게 되면 그리스도와 함께 버리는 은혜 속에 들어갈 수 있다.
6)무조건 버리는 법속에 들어가야 한다.
버리면 얻는 것이 십자가의 법칙이다. 나쁜 것을 버리면 좋은 것을 얻는 것은 십자가로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먼저 버리면 후에 얻는 것도 십자가에 맞는 것이다. 그러나 좋은 것을 얻기 위하여 버리는 것이 조건이 되거나 먼저 버리면 후에 얻게 될 것을 조건으로 삼으면 거기에는 인간의 생각이 앞어 있어 육신에 속한 사람의 계교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버리는 것을 사랑하는 자는 무저건으로 버리어야 한다. 주께서 버리심과 같이 우리도 십자가에 연합하여 함께 버리는데는 이의가 없고 조건이 없어야 한다.
버리면 얻는 것을 꿈을 꾸거 믿는 마음도 있으나 버리는 법을 성취하기 위하여는 위험성이 많아진다. 조건이나 어떤 기대를 많이 하고 버릴 때 그 조건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더디 이루어지면 버리는 마음이 혼란이 올 수 있고 무조건이 되기 전까지는 십자가안에서 살아갈 수 없다.
십자가를 사랑하는 자는 예수님과 함께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위하여 살아가는 희생 자체를 행복으로 여길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설혹 얻는 것이 없어도 주를 위하여 버리는 자는 성공한 사람인 것이다.
다니엘의 친구들이 설혹하나님의 자신의 목숨을 건져 주지 아니할 지라고 아낌 없어 목숨을 버린 마음에는 조건이 없는 것이다.
다니엘이 사자 굴에 들어갈 때에도 아낌 없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아여 목숨을 버린 것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물로 드릴 때 아낌 없이 버리는 은혜에 들어간 것이다.
육의 마음은 아프나 자식까지 버리는 것을 기쁨으로 무조건 받아들인 것 기쁨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인 것이다. 하나님이 산양을 준비하여 이삭을 대신 번제물되게 할 조건으로 버린 것이 아니다.내 삶을 주를 위하여 무조건 버리는 법속에 사는 자가 복이 있다.
7)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즉 새사람으로 거듭난 마음으로 버리는 법에 들어가야 한다.
옛사람은 언제나 인간적이며 세상적인 마음이라 거듭나 새 사람이 아니면 버리는 법은 거짓된 것이다.
그러나 거듭나 새 사람이 될 경우에는 자신의 모든 것을 싫어하고 세상의 모든 것을 더럽게 여기고 버리지 아니할 수 없고 버리는 것을 미련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거듭남의 은혜는 기본중생만이 아니라 매일 중생 순간 순간 중생 항상 중생이 귀한 것이다.
성령충만함과 그리스도의 세례만이 새 사람을 계속되게 할 수 있는바 하나님께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는 것은 거듭난 마음만이 죄를 짓지 아니하며 거듭난 마음을 유지하는 자만이 늘 버리고 살수 있고 늘 하나님의 것으로 충만함을 받고 살 수 있는 것이다.
제3.미워하고 사랑하는 법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라고 하시었다.그러나 미워할 것을 미워하지 않는 자는 진정한 의미의 사랑을 할 수 없는 것이다.성경에서 미워할 것을 미워하지 않는 자는그 사랑이 가짜이다.미워할 것을 강하게 진하게 미워하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도강하게 진하게 사랑할 수 있다.십자가의 법칙인 미워하고 사랑하는 법칙을 완성하지 않으렵니까?
1)미워하는 법이란 십자가의 법칙 중에 미워하여야 사랑하는 법에 들어갈 수 있가 때문에 미워하는 마음을 계속가능하게 하는 마음의 법을 말한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지 아니하였으면 십자가의 구원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타락한 아담과 그 후손들은 미워하는 법에 들어가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사랑에 도달 할 수 없고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2)미워하는 법을 이루지 않고 사랑하는 법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미원하는 법을 먼저 완성하여야 할 것이다.
성경을 보는 자들이 사랑을 좋아한다. 그러하기에 미워함의 법을 완성하려고 하지 않고 사랑을 하려고 한다. 미워함을 완성하지 않고 사랑으로 들어가는 자는 사랑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할 수 밖에 없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은 거짓이 되며 위선이 될 것이 뻔한 것이다. 십자가의 법칙이 아니면 사랑의 법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3)미워할 대상을 잘 알고 미워하는 법 속에서 살아야 한다.
사랑하기 전에 미워할 대상을 먼저 찾아야 한다. 거듭난 자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그리스도의 고통을 마음에 가지고 있는 영에 속한 사람은 미워할 것을 잘 찾아야 한다.
죄를 이워하고 살아야 한다. 십자가를 사랑한다고 하며 성령충만함을 받았다고 하는 자가 죄를 미워하지 않고 미워하는 마음이 약하면 성령의 능력이 따르지 않는 것이다.
죄를 미워하면 미워할 수록 철저히 미워할 수록 성령의 능력이 충만한 것이다. 죄가 무엇인지 모르고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 것은 십자가를 떠난 사람들의 마음인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십자가의 법을 성취하고 사는 자는 죄를 미워하는 마음이 강하고 결력하며 충만하고 완전한 것이다.
사무엘이 사울왕이 살려 놓은 아말렉의 왕이 아각을 칼로 쪼갠 것은 살인을 좋아하는 것이다. 아니라 사울의 죄를 즉 인본주의에 빠져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불순종한 죄를 쪼갠 것이며 사무엘이 기도의 사람으로 성령의 사람으로 죄를 얼마나 미워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게하시와 엘리사는 죄를 철저히 미워하고 살았으나 게하시는 죄를 미워하지 못하고 물질을 사랑하여 문둥이가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것이 죄며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이 죄며 율법을 범한 것이 죄며 선한 일을 행할 줄 알고 행치 않는 것이 죄인 것이다. 죄를 미워하는 마음만이 십자가안에서 지혜와 능력 속에 살아갈 수 있다.
나는 의인이라고 스스로 여기는 자는 죄를 미워하지 많은다 그러나 지구에서 나같이 큰 죄인이 없다. 나 같이 많은 죄를 가지고 사는 자가 없다고 깨닫고 늘 죄를 미워할 때 죄인을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은혜 속에서 살 수 있는 것다.
바울은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인 것을 알고 자신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죄의 사람을 철저히 미워하여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살 수 있었다.
악을 미워하는 마음의 법이 십자가의 법인 것이다. 악을 악인지 모르는 자가 십자가의 법에 들어갈 수 없고 악이 얼마나 나쁜 것인 것을 알고 악에 대한 적개심이 있을 때 십자가에 들어갈 수 있고 십자가의 법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이다.
십자가는 예수님의 공로로 우리의 마음에 있는 모든 악을 제거하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에 있는 모든 악을 제거하는 과정에 미워함을 마음에 충만하게 품어야 한다.
악이 없다면 미워할 것이 없으나 인간의 마음 속에는 악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말할 수 없다. 악한 말과 악한 생각과 악한 사상과 악한 습관과 악한 영들 속에 살아가는 나에게 악이 얼마나 많이 나타나고 있는 아는 자 깨닫는 자가 복이 있다.
나는 선하고 타인을 악하다고 보는 바리새인들은 십자가와 관계가 없는 것이다. 자신보다 더악한 자가 없다고 느끼고 속에 있는 악을 미워하는 것이 십자가의 은혜인 것이다.
성경에 많은 악한 사건과 악한 사람들의 행동이 나온다 .
그 악한 사건을 보고 남의 악을 발견하고 남을 정죄하는 자는 십자가의 도를 절대로 완성할 수 없는 것이다. 성령에 나오는 모든 이스라엘백성들의 모든 악함은 다 나의 악을 알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닐 수 없다.
거짓을 미워하는 법에서 살아야 한다.
사람은 거짓을 사랑하고 살아가며 거짓된 것을 모르고 거짓된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진실로 진실로 아멘이란 단어는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이요 모습인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거짓된 것을 미워하고 거짓 자체를 미워하는 과정으로 십자가의 도가 성취 되어야 진신한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이 나에게 들어올 수 있는 것이다.
삭개오의 인생이이 얼마나 거짓된 것을 알아야 하고 베드로가 고기 잡이만을 한 것이 무슨 죄가 많을 것인가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인생이 거짓됨을 알고 죄인이라고 시인하면서 주님앞에 엎드렸던 것이다.
자신을 진실하다고 여기는 자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지혜가 임할 수 없고 예수님의 진실함이 그 영혼에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나의 모든 삶이 거짓인 것을 아는 것이 주님을 닮아가는 비결이며 자신의 부인하고 자신을 버리고 자신을 미워할 수 있을 때 그리스도의 마음을 옷입을 수 있는 것이다.
세상에서 진실은 없다 진리이신 예수님만이 진실인 것이다. 예수님이외의 모든 것을 거짓으로 버릴 때 주님의 진실함과 진리가 충만한 삶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시기를 미워하는 법을 완성할 것이다.
시기하는 마음이 없는 자가 없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나보다 더 우수한 자가 잘 되는 것을 경계하는 마음이 있고 다투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 것이 인간의 죄의 모습인데 시기하는 마음이 없다고 남을 속이고 살고 감추고 사는 것이다. 시기하는 마음을 드러내서 미워하고 살아야 할 것이다.
다윗을 시기하는 마음이 바로 내마음인 것을 알고 시기를 미워하고 아벨을 시기한 카인의 마음이 내 마음 속에 있는 것을 알고 시기하는 마음을 미워할 때 남을 위하여 희생하는 예수님의 마음을 사랑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일 수 있는 십자가의 법이 임하는 것이며 생명의 법 성령의 법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매일 시기를 미워하지 않는 자는 남을 위하여 살 수 없고 남의 성공과 행복을 내 인생의 기쁨으로 여기고 살아갈 수 없는 것이다.
남의 성공과 행복을 남의 축복을 나의 축복보다 더 귀하게 여기며 내 인생의 목적으로 삼을 때 주님의 마음이 그 안에 있는 존재하는 것이다.
옛사람을 미워할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법죄하기 전에는 혼의 마음이 범죄함으로 옛사람의 마음이 되었다. 혼의 마음이 죄를 짓기 전에는 하나님께 순종하였으나 범죄함으로 옛사람이 된 후에는 옛사람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 것으로 육체의 일을 도모하고 육신의 소욕대로 살고 악한 정욕대로 사는 하나님과 원수된 인격이 된 것이다.
지정의가 인격인데 하나님와 원수된 인격이 존재하는 한 하나님의 마음 예수님의 마음으로 마음에 들어올 수 없는 것이다. 십자가는 옛사람을 미워하고 멀리하고 물리치고 십자가에 못박고 죽게 하는 것이며 예수님께서 우리를 가장 사랑한 사랑은 옛사람을 죽게 하는 것이다.
옛사람을 죽게 하기 이전에 우리는 미워하여야 한다. 옛사람은 내 것 네 것을 가지지 않고 모든 옛사람을 다 미워하여야 한다. 자신의 옛사람만 미워할 것이 아니라 남의 속에 있은 옛사람도 미워하여야 한다.
그 이유는 옛사람은 하나님의 원수된 인격이며 마귀의 사람이며 하나님의 형상을 닮을 수 없는 가능성이 없은 인격이며 사단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옛사람을 미워하는 자는 새 사람이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영에 속한 사람이 될 수 없고 믿음으로 살 수 없는 것이다. 옛사람을 미워할 때 영의 사람이 되며 믿음의 사람이 되며 사랑의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자기를 미워하지 않고는 예수님을 따라 올 수 없고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하였던 것이다.
가나안 땅에 살고있던 불레셋 족속은 나의 옛사람의 모습인 것이다. 불레셋을 미워하고 쫓아내고 죽일 때 가나안 땅은 다윗이 지배하는 신정국가 즉 예수님의 통치하는 하늘나라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옛사람은 음란을 좋아하고 옛사람을 교만하며 옛사람은 거짓되고 옛사람은 정욕적이며 옛사람은 세속을 좋아하는 인격이며 옛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격인 것이다.
더욱 나쁜 것은 옛사람은 새 사람으로 가장한다는 것이다. 속지 말아야 한다. 우리를 속이는 것은 옛사람과 마귀와 세속적인 것들인에 이를 철저히 미워하여야 할 것이다.
세상을 미워하는 법을 이루고 살아야 한다.
세상이란 두자기 의미가 있다. 범죄하기 이전에 세상은 하나님의 천지창조로 지은 모든 세계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세상을 세상이라고 할 때는 타락한 인간들이 살고 있는 공간과 영적인 활동무대를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며 하나님을 믿고 거듭난 성도일지라고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고 살지 않고 있는 자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서 사는 자들은 하나님과 원수된 것을 좋아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대치되어 살기 때문에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시는 것이며 거룩한 하나님은 세상과 동행하지 아니하신다.
그러므로 세상을 미워하여야 한다. 성경에서 애굽과 갈대아는 세상을 상징한다. 애굽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기 이전에 즉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살고 있는 세상을 말하면 갈대아는 하나님을 믿은 후에 이스라엘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온 후에도 계속 마음을 빼앗기고 우상을 숭배하고 불순종하게 살게 되는 원인으로서 세상을 상징하는 것이다.
세상을 의지하지 말고 가까이 하지 말고 세상을 짝하지 말고 좋아하지 말고 미워하여야 할 것이다.
성령충만함을 받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옷입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고통을 마음에 채우고 세상을 미워하고 사는 자만이 하나님을 가까이 갈 수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천국을 사랑하고 살 수 있고 영생을 위하여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을 먼저 철저히 미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말에 불과하다.
마귀를 미워하고 살아야 한다.
마귀란 대적하는 자다 하나님을 대적한 자요 하나님의 원수된 자다 그러므로 마귀를 미워하여야 천국에 도달 할 수 있다.
십자가의 법을 완성한 자에게는 마귀와 구별되는 일이 일어난다. 사단이 떠나는 것이다. 마귀를 입으로만 물리쳐도 마귀의 인격과 성품을 미워하지 아니하면 마귀가 다시 들어올 것이다.
사단의 공격은 인간을 자신의 모습으로 타락하게 하는것이기 때문에 마귀가 하는 일과 마귀가 좋아하는 것을 미워하여야 한다. 악령과 귀신들을 이용하여 행하는 마귀의 일을 멸하려고 오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자는 자신이 마귀를 닮아가고 마귀가 하는 일을 대신하여 마귀에게 쓰임을 받아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마귀가 하는 일은 무조건 반대하고 미워하고 아무리 선을 가장하여도 속지말고 마귀가 하는 일 자체를 무조건 미워하고 마귀의 모습을 무조건 미워하여야 한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사랑하는 자는 절대 마귀를 가까이 할 수 없는 것은 십자가의 법 전체가 마귀가 가장 싫어하는 법이며 가장 마귀를 멀리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마귀가 워하는 일을 십자가의 길을 정반대로 행하게 하는 것이다.
이기심을 미워하고 살아야 한다.
성령을 받고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자신의 영달을 위하여 성공을 구하는 자들이 많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도와는 관계가 없는 생활인인 것이다.
사명자는 예수님을 성공하게 하고 자신은 주안에서 먼저 망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세례요한이 나는 쇠하여야 하겠고 그는 흥하여야하겠다는 것이 맞는 말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이용하여 자신의 출세와 영달을 구하는 자는 미련한 자인 것이다. 공력이 나타날 때 금으로 은으로 보화로 지은 집을 지을 수 없는 것이다. 이기주의는 이기주의가 아니라 허무한 인생이 되는 비결인 것이다.
하나님을 위하여 남을 위하여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는 것을 즐기고 살아야 십자가의 도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이기주의를 미워하는 마음이 없는 자에게는 언제나 믿음을 통하여 성령을 받고도 십자가를 전하면서도 남을 이용하여 남의 것을 노략하는 이리에 불과한 것이다.
겉으로는 양같은 옷을 입었으나 이기주의사상을 미워하지 아니하는 자는 즉 미워하는 법을 완성하지 않고 사는 자는 다른사람을 희생하여 자신의 것을 채우는 이기주의자인 것이며 남의 것을 강탈하고 노략하는 이리와 같은 마음으로 사는 자로서 예수님의 도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참으로 나의 이익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이익을 구하여 남의이익을 구하는 자가 십자가의 도를 완성할 것이며 영원한 영광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지혜로서는 자신을 희생하여 남의 유익을 주는 이타주의를 완성할 수 없는 것이다. 오직 십자가 상에 달리신 예수님의 마음을 옷입을 때 나를 희생하여 남의 이익을 구하는 선한 마음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이다.
인본주의를 미워하고 살아야 한다.
사람을 기쁘게 하는 마음이 교회에서 얼마가 해롭게 하는지 말할 수 없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고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는 하나님의 종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살전02:04) 오직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 전할 부탁을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인본주의자들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 버림을 받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며 결국 인본주의는 하나님을 괴롭게 하고 사람도 불행하게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철저히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자는 사람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인간을 기쁘게 하고 사는 것이 얼마나 나쁜 일인지 알고 미워하여야 할 것이다.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지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며 가차 없이 행하는 자가 되어야 십자가의 법을 완성할 수 있고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이 인간들에게 가장 유익한 것이며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것이 네가 살고 내가 사는 비결인 것을 믿는 신념이 있어야 할 것인데 십자가의 법을 성취한 자가 아니면 마음 속에 하나님 중심의 사상이 완성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세례를 받아 예수님의 마음을 옷입고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생명의 법속에 거하여야 할 것이다.
저주를 미워하는 법을 완성할 것이다.
가난의 저주 질병의 저주 형벌의 저주를 미워하고 살아야 한다. 하나님을 잘 믿는 백성들도 가난도 있을 수 있고 채찍도 연단도 있도 질병도 있을 수 있다.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십자가 안에서 저주는 멀리하고 미워하고 살아야 한다.
질병의 저주 가난의 저주 고통의 저주 죽음의 저주 방황하는 저주를 미워하고 물리치어야 할 것이다. 입에서 남을 저주하는 저주의 말을 미워하고 남을 저주하는 마음과 생각을 미워하여 저주를 멀리하고 축복을 가까이 하는 자가 되어 십자가의 미워하는 법으로 축복의 근원이 되어야 할 것이다.
사망을 미워하는 법을 완성할 것이다.
예수님을 버리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는 자인에 십자가의 법에 거하는 자는 사망을 미워하여야 한다. 모든 사망을 미워하되 옛사람의 죽음만은 사랑하여야 한다.
영의 죽음,영혼의 죽음,영혼육의 죽음,육체의 죽음은 미워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혼의 육음인 옛사람의 죽음은 복음의 핵심이며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의 결과이기에 사랑하여야 한다.
우리의 마지막 원수는 사망인 것이데 사망을 사랑하는 자는 예수님을 미워하고 예수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지키는 자는 사망을 미워하는 것이다.맨 나중에 멸망받을 원수는 사망인 것이다.
(고전15:26)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하나님을 잃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게 마련이다.십자가 안에서 사망을 미워하는 마음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늘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이다.
(잠08:36) 그러나 나를 잃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라
무릇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
(고전15:26)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불신앙,불순종을 미워하여야 한다.
우리마음에 늘 불신앙이 존재한다. 미워하지 아니하면 불신앙이 물러갈 수 없는 것이다. 한 마음으로 믿으려 하여도 두마음이 되는 것이다.
(약1: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약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약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약1: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약1: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한마음으로 믿게 되는 것은 십자가의 지혜로만 되는 것인데 불신앙을 미워하여야 할 것이다.
마음에 불신앙을 미워하는 마음이 약하면 불신앙이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어 두 마음이 된다. 성령으로 미워하고 말씀으로 미워하고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미워할 때 마음에서 불신앙이 물러갈 것인데 금식과 기도외에는 불신앙을 물리칠 자가 없는 것이다.
십자가는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하나님의 법이다. 불신앙니 아무리 우리마음에 뿌리 깊기 박혀 있을지라고 성령의 능력으로 십자가의 법인 성령의 생명의 법에 거하면 불신앙은 없어지고 한마음으로 믿게 됨으로 하나님께 구한 모든 것을 응답을 받게 될 것이다.
자기를 미워하는 법을 완성하여야 십자가의 도를 성취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구원을 받기 원하는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도를 성취하기 위하여 미워하는 마음을 완성하는 말씀을 많이 주셨는데 자기부모와 허자와 형제와 자매와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하셨다.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먼저 미워하는 법을 완성하여야 하는 것이여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철저히 미워하지 아니하면 예수님의 사랑이 그 마음에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눅14: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눅14: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4)멀리하는 법을 완성하여야 한다.
미워하는 것과 멀리하는 것은 비슷한 말이 되나 구별된다. 미워하고 멀리하는 것은 더욱 좋은 것이나 멀리하는 것이 미워하는 것보다 더 확실한 것이다. 미워할 뿐만 아니라 멀리하여야 한다.
위에서 미워하는 것들을 다 멀리하여야 한다. 죄를 멀리하고 악을 멀리하고 마귀를 멀리하고 세상을 멀리하고 사망을 멀리하고 저주를 멀리하여야 한다.
멀리할 것을 멀리할려고 하여도 인간은 멀리할 수 없는 것이 인간들이다. 세상을 멀리할려고 하여도 사람의 결심으로는 력부족이다.
죄를 멀리하고 악을 멀리하려고 하며 악한 습관가 악한 영들을 멀리하려고 하여도 쉽게 되는 일이 없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공로만으로 가능하기에 십자가의 은혜 속에서 살아야 한다.
주께서 우리를 위하신 고난과죽음과 부활의 능력을 힘입고 그 은혜 안에서만 세상을 멀리할 수 있고 악을 멀리할 수 있는 것이다. 성령충만은 세상과 마귀와 죄를 멀리하는 것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세상을 가까이하고 죄를 짓는 자가 성령충만할 수는 없는 것이다.
세상을 멀리하면 하늘나라가 가까워지는 것이기에 십자가의 능력은 귀한 것이다. 죄를 멀리하면 하나님의 의를입고 사는 생활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멀리하는 법이 귀한 것이다.
마귀와 세상을 가까이 하면서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는 주님의 공로를 힙입지 않고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갈 자가 없는 것이다.
제4.주고 받는 법
주고 받는 법은 십자가의 법칙 중에 가장 혼미할 수 있는 법칙이다. 어려워서 혼란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너무나 받기를 좋아하는 악한 마음이라 그런 것이다.그러므로 주고 받는 법을 잘 연구하여 완성하여야만 사단역사와 내 옛마음의 노예가 되지 않고 항상 은혜 충만한생활을 할 수 있다.주고 받는 법을 잘 이해하여 성령의 역사함을 떠나지 않고 소금이 맛을 잃지 않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1)주는 법이란 십자가의 법칙 중에서 중요한 법칙으로서 주는 법속에 십자가는 존재하는 것이다.
받는 것을 좋아하는 마음에서는 십자가는 역사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는 법은 받은 것을 야기하나 받는 것을 위하여 주는 것은 아닌 것이다.주는 것은 십자가의 법의 진수요 주는 법 속에 천국은 존재하는 것이다.
2)먼저 주면 나중에 얻는다는 법이 성경에 많이 기록되어 있으나 사람의 마음이 악하여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지 천국은 주는 법속에서 가능한 것이다.
(눅06:31)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마0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눅0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주는 법을 이루면 받는 법이 따라와서 주는 행위 뒤에 받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며 영원한 시점에서는 반드시 좋은 것을 받는 일이 생기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말씀을 받아들이는 옛사람은 조심하여야 할 일이 있는 것은 주는 것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것이다. 받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주는 것을 이루는 자는 무엇인가 완전하지 못한 것이다.
받기 위한 방법으로 주는 마음은 십자가에 합당하지 못할 수가 많은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주실 때 받기 위하여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 영혼을 멸망치 않게 하시는 사랑으로 무조건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주는 법을 완성하는 자는 받는 것을 포기하고 주는 것이 중요하다. 비록 나는 줄지라도 상대방에 받을 수 없는 자에게도 줄 수 있어야 하며 그런 사람에게 주는 것을 더욱 귀한 축복으로 여시는 마음이 십자가의 법을 완성한 마음인 것이다.
주는 것이 먼저며 받는 것이 나중이면 다 선한 것같이 보이지만 이는 미흡한 생각이다. 주는 것만으로 완성할 것이다. 주는 것이 받게 되는 일을 불러 야기할 수 있고 주는 순간 받게 될 수도 있고 작게 주었는데 많은 것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이 미련을 가지면 십자가의 도를 완성할 수 없다.오직 주는 법에 전념하고 완성하여야 주님의 아름다운 마음을 본받을 수 있는 것이다.
성령충만함과 십자가의 은혜가 넘쳐날 때는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을 복으로 알 수밖에 없는 것이다.
(행20:35)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3)주는 법과 받는 법은 혼돈을 거듭하는 혼란이 심한 법으로 완성에 조심할 것이다.
주는 법을 완성하지 아니하면 십자가의 법은 성취될 수 없고 마음은 혼란이 올 것이다.
주는 것이 먼저냐 받는 것이 먼저냐 동시에 일어나는 일이냐 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주는 것이 먼저일 때 받은 것이 후에 있을 것으로 성경은 기록되어 있고 심은대로 거두기에 주는 자는 반드시 받게 되며 주님께 드리면 백배로 받게 되는 법을 주님께서 말씀하시었기에 백배의 결실을 기다리는 것도 믿음의 내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옛사람은 이러한 말씀을 다 좋게 사용하지 않고 받기를 좋아하며 받은 조건을 조건으로 내세우며 조금심고 많이 거두려는 공자근성을 가지게 될 가능성이 있어 십자가를 믿으면서 더욱 나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시간이나 분량이나 조건을 무시하고 주는 일에 정념하여야 할 것이며 주고져 하는 마음만이 불과 같이 일어나는 자가 복이 있는 것이다.
시간에 구애받지 말고 항상주는 자가 되어야 한다.먼저 나중을 따지지 말고 주는 것이 십자가인 것이다.
예수님은 주시려고 오신 분이며 천국에 사는 자는 서로 자신을 주는 자들만이 천국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3)무조건으로 주는 법을 완성하여야 한다.
나를 사랑하여 댓가를 줄수 있는 자에게만 사랑을 베풀 것이 아니라 무조건 남에서 사랑을 베풀 수 있는 마음을 완성하여야 한다. 오히려나를 사랑할 수 없고 보답할 수 없는 자에게 많이 주는 것 구제하는자는 하늘의 상을 많이 받을 것은 이세상에서 댓가를 상대방에게 다 받으면 천국에서 내세에 보답할 일이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악한 사람에게도 사랑을 주어야 할 것이며 믿지 아니할 자에게도 무조건 복음을 주는 것이 십자가의 법인 것이다. 핍박하고 복음을 싫어하는 자들에게도 복음을 주는 것은 우리의 사명인 것이다.
내가 사랑을 줄 때 사랑을 받을 자의 마음의 상태나 반응은 볼 것이 없다. 십자가의 법을 완성하여 사랑을 주면 그만인 것인에 이 무조건적인 사랑은 십자가의 법을 성취함으로서만 가능한 것이다.
4)나쁜 환경에서 주는 법을 완성하여야 한다.
좋은 조건에서 주는 것은 상이 크지 못하다. 하나님앞에 귀한 것은 나쁜 환경에서 남에게 줄 수 없는 환경에서 주는 것 즉 사랑할 수 없는 환경에서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귀한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사랑을 주신 것은 가장 어려운 조건에서 사랑을 완성하시고 살과 피를 다 주신 것이다. 예수님의 엎구를 창으로 찌르는 로마군병을 사랑하여 용서의 기도를 주신 것은 주님의 사랑의 완성인 것이다.
자신의 몸에 가장 큰 고통이 오는 십자가의 나무에 못박히시는 순간에 마리아와 요한을 생각하신 것은 가장 어려운 조건에서도 사랑을 주신 주님의 십자가상의 마음인 것이다. 가장 구하고 아름다운 마음이 십자가상에서 자신을 주어 남을 행복하게 하는 예수님의 사랑이 아닐 수 없다.
4)주는 법을 완성하여 많은 것을 주는 자가 되어야 한다.
적게 심고 많이 거둔다는 말을 참으로 좋은 말이며 성경말씀이지만 일부분에서만 진리이기에 해석이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에 심는 자는 씨앗을 심으면 백배로 거두는 것을 믿을 때는 적게 심고 많이 거두는 것이 좋은 것으로 믿을 것이다.
그러나 농부가 씨를 뿌리는 생활인 성도의 생활에 미덕은 많이 심는 것에 열중하는 일인 것이다. 많이 심는 것 많은 사람에게 많은 것을 주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있을 수 없다. 많이 뿌리는 자가 많이 거두고 많이 심는 자가 많이 거두는 것이 진리이지 작은 것을 심고 많이 나는 것만을 바라는 마음은 문제가 있다.
오히려 결과는 나쁠지라고 하나님의 기적적인 축복이 없을지라고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 순종하여 많은 것으로 심고 많은 것으로 선행을 많이 하는 마음으로 십자가의 법으로 완성하여야 할 것이다.
나의 모든 것으로 나의 모든 물질과 생명과 건강으로 시간으로 많이 심는 자가 될 것이며 십자가의 능력으로 많이 심는 열심이 살아나야 할 것이다. 충성된 자는 많은 것으로 주를 유익하게 할 것이다.
5)주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고 주는 법을 순수하게 완성하여야 할 것이다.
주는 것이 무조건이라면 주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할 것이다. 받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것은 육신에 속한 성도들의 태도이며 영에 속한 자의 태도가 아닌 것이다.
주는 것 자체가 행복이며 축복이며 능력이며 응답이 되어야 할 것이다. 주는 것을 인생의 목적이 된 자가 복이 있다.
십자가를 이용하여 받는 것을 목적으로 삼으면 십자가의 예수님의 정신을 추하게 만들어 버리고 만다,받은 것을 즐기고 받는 것을 믿음으로 알고 간능하고 장하고 다니는 자가 많으나 이는 잘 못된 자들이며 십자가를 떠난 자들인 것이다.
십자가 앞에는 남에게 받은 것을 자랑하지 않는다 언제나 남에게 무엇인가 못주어서 몸살이 나야 한다. 남에게 받고 싶어 몸살이 난 자들이 많고 그런 자들은 자신의 주위에 있는 사람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십자가를 떠나 살고 있는 것이다.
남에게 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이 인생의 보람이며 주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의 응답인 것을 알아야 한다. 다른 사람이 내옆에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섬길 대상으로 살고 있는 것이며 내가 줄 수 있는 대상이 있는 축복을 받을 기회가 존재하고 있는 증거인 것이다.
세상에 아무도 없으면 사랑이 있고 복음이 있어도 누구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가 생각하고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옆에 늘 있는 것을 감사할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정신적인 사랑이나 물질적인 사랑을 못받아 안달이다. 그러므로 사단이 역사가 나타날 뿐 아니라 평생동안 그리스도의도를 성취 못하고 죄 중에 살다가 죄중에 인생을 마치게 되는 것이며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고 이용하지도 못하고 억울하다고 생각며 신덕이 없고 인덕이 없다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인생을 미친다. 주님의 십자가만이 주는 법을 완성할 것이다.
6)주는 것을 즐거워하며 주는 법을 성취할 것이다.
받는 것을 즐거워 하는 마음이 죽어 주는 것을 즐거워 하는 마음이 살아나야 십자가의 법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주는 것을 아깝게 생각하고 손해라고 생각하는 마음에는 그리스도의 마음이 거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행복으로 축복으로 알게 될 때 주는 법이 완성되어 성령의 생명의 법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즐거히 드리는 자를 기뻐하시는 것이라고 억지로 교육을 받아서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십자가가 임하여 드리는 마음이 완성됨으로 드리는 것을 보람으로 행복으로 응답으로 삼고 살아야 십자가의 능력이 나타난다.
다윗과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의 전을 세우기 위하여 힘껏 드리었을 때 온백성에게 기쁨으로 드릴 수 있는 은혜가 임할 때 다윗은 그 것을 최고의 응답으로 여긴 것은 참으로 귀한 마음이다.
하나님으로부터 구하고 찾고 두르리어 응답을 받는 것도 좋다.그러나 받기만을 좋아하는 자들은 얼마나 오래 동안 계속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구하는 것을 응답을 받을지는 의문인 것은 구하여도 믿음이 오지 아니할 수 있는 것은 양심이 스스로 받을 자격이 없음을 말할 것이다.
기쁨으로 드리는 것을 응답으로 여기는 주는 법을 완성하는 자에게는 응답은 저절로 올 것이며 자신의 양심도 하나님께 구하는 것을 즉시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의 마음을 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드리는 기쁨이 완성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주는 기쁨으로 십자가의 법을 완성하는 자가 복이 있다. 천국은 서로 앞을 다투어 주는 것을 기뻐하는 곳이다. 받는 것을 기뻐하고 빼앗는 것을 기뻐하는 것은 지옥불의 모습이며 마귀의 속성이다.
받는 것만 좋아하는 자는 천국을 이룰 수 없고 진정으로 귀한 것을 얻을 수 없는 것은 받는 것만을 좋아하는 자들이 받은 것은 허무한 것인 것이다. 하나님의 은사가 아니기 때문이며 얻어도 아무 의미 없는 것을 얻고 허무한 것으로 낙심하고 절망할 때가 온다.
그러므로 성도는 주는 법을 완성하되 하나님께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주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고 살아야 한다.
남에게 사랑을 주고 물질을 주고 시간과 섬김을 줄 수록 행복한 것이 십자가의 열매이며 주는 법을 완성하여 성령의 생명의 법속에 사는 자들의 모습인 것이다.
많은 사람이 성령의 능력을 받고 권능을 받아 영권과 인권과 물권을 얻었다고 하면서 주는 것을 즐거워 하지 아니하고 남의 것을 강탈하며 인권 물권이 있다고 착각한다. 남의 것을 받으려고 하는 마음으로 불평을 야기하든지 아니면 남의 것을 강탈하든지 속여서 취하는 일을 하게 된다.
십자가를 바라보는 자는 남에게 받고자 하는 마음을 포기하고 주고져 하는 마음이 존재하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고 살고 주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행복과 보람으로 여기고 살 것이다.
사랑의 빚 외에는 어떤 다른 빚을 지지 말라고 하였는데 예수님께 사랑의 빚을 진 자는 모든 만민에게 사랑을 빚 진 자로서 모든 사람을 내가 섬기고 심고 줄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그들에게 시간과 섬김과 물질과 사랑과 복음을 주는 것을 낙으로 삼을 것이며 그들에게 댓가를 받고져 하는 마음을 포기하여야 할 것이다.
댓가를 원하고 즐거워 하고 보상을 원하는 마음이 존재하면 시험에 들어 주는 법을 떠나기 때문이다. 참으로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복이 있다.
7)십자가의 공로로 주는 법이 완성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받기를 좋아하는 자가 주기를 좋아하는 자가 되어야 진실로 십자가의 법이 완성되는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주기를 좋아하는 자가 남에게 주는 것을 헤푸게 하는 것은 주님의 능력과 관계가 없다.
주님의 당하신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인색한 나가 죽고 사랑의 주님의 마음이 살아남으로 받는 자가 주는 법을 사랑하는 자로 주는 것을 좋아하는 자로 변할 때 십자가의 능력은 나타나는 것이다.
새 사람으로 거듭남이 아니면 십자가의 능력이 아니며 거듭남이 아니면 그리스도의 모습이 아닌 것이다. 그리스도의 모습은 십자가의 당하신 고난을 통하여만 나타날 수 있음으로 그리스도와 십자가 에 못박히신 것 이외는 알지 않기로 작정하는 자에게만 임할 수 있는 것이다.
8) 새 마음으로만 가능한 것이다.
옛마음으로 아무리 흉내내고 모방을 하여도 그것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된 것이 아니기에 가짜인 것인다. 새사람이 되어 주는 자가 되어야 한다.
옛사람이 되어 주는 법을 완성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새 마음에 그리스도의 마음을 이중으로 옷입는 자는 주는 것을 완성하고 주는 법을 즐거워 하며 온전한 마음으로 주는 자가 되며 주는 것을 영원히 행하면서 무조건적으로 주는 자가 되어 십자가의 법을 성취하고 살 수 있는 것이다.
9)성령충만함으로만 되어야 한다.
성령의 열매와 은사가 없이 주는 것은 잘 못된 것이다. 주는 법을 완성하면 당연히 성령의 충만함이 완성되어 성령의 열매와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야하는 것이다.
주는 법과 십자가의 법은 같은 것이기에 주는 법이 완성되면서 예수님의 은혜가 충만하지 아니할 수는없는 것이다. 성령충만함은 주는 마음 충만이며 주는 것만을 행복으로 여기는 마음이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공자를 좋아하고 남의 것을 탐하고 남의 것을 못받아서 불평하고 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성령충만 속에는 그리스도의 마음과 새 마음이 넘쳐 날 뿐 아니라 십자가의 법이 완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0)심는 법을 완성하여야 할 것이다.
주는 법을 말할 때 말을 바꾸어 말하면 심는 법이라고 할 수 있으나 그러나 그 의미가 약간 다를 수 있다. 심는 법보다 주는 법이 더일반적인 넓은 의미로 사려된다.
주는 법을 완성하는 자는 심는 법도 완성하여야 한다. 잘 심고 잘 거두는 법으로 심는 법을 말하는 자가 많다. 그러나 심는 법도 주는 법에 대한 말씀이 다 동일하여 거두는 법에 관심을 갖기 이전에 순수하게 심는 법을 완성하여야 한다.
순수한 마음으로 심는 법을 완성하여야 한다. 순수한 마음으로 오직 예수님과 복음만을 위하여 심는 자가 복이 있다. 다른 목적을 삼고 심는 자는 심는 법을 완성할 수 없는 것이며 순수하지 못한 것은 십자가의 법을 떠나 있기 때문인 것이다.
심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 심고 거두는 법을 좋아하는 자들은 거두기 위하여 심는 것으로 강조하기 때문에 거두는 것을 생각함으로 심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 거둘 때 거두는 것은 정한 이치고 저절로 되며 반드시 거둘날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순수하게 심는 것만을 목적으로 살 때 그리스도의 마음에 도달 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댓가나 보상이나 결과를 생각하고 심는 것은 농부가 씨를 뿌릴 때 소망가운데 씨를 뿌리는 것이며 충성하는 자가 상주실 것을 믿고 충성하는 것으로 믿음이지만 그러나 미혹이 많다.
우리 마음에 악한 정욕이 탐심이 되지 않도록 나를 경계하고 바르게 살며면 오직 심는 것만을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심는 것만을 목적으로 삼는 자에게 하나님은 심은대로 거두게 하시고 적게 심어도 많이 거두게 하시고 덜 좋은 것을 심어도 극상품을 거두게 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행하심에 너무 관심을 갖고 거두는 것에 마음이 강하면 심는 것에 큰 타격이 오며 결국 십자가의 법 주는 법 심는 법을 망하게 하고 말 것이다.
심는 것 자체가 내 인생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불쌍한 영혼들을 위하여 심겨진 인생 드려진 인생 심는 인생을 목적으로 삼는 자가 복이 있다.
심을 때 잘 심어야 한다. 곡식을 심을 때 적당히 심어도 싹이 나는 수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잘 심을 때는 조심하여야 한다.
구제를 할 때 오른 손이 한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야 한다. 복음을 전할 때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힌 것 이외는 나타나지 않게 하여야 한다. 심는 행위가 완전하여야 한다. 예수님의 온전함과 같이 성도는 심는 생활이 온전하여야 한다.
심을 때 나지 아니할까 어떤 결과가 있을가 염려하지 말고 무조건 심어야 한다. 나에게 손해가 있어도 욕을 먹어도 불평과 원망을 사는 일이 있어도 반응을 보지 말고 무조건 심어야 한다.내가 바르게 심는 것이라면 환경을 초월하여 모조건적으로 심어야 할 것이다. 반응을 보고 심은 자는 영에 속한 자가 아니라 육에 속한 자인 것이다.
심다가 거두려고 안달하지 말고 영원히 심는 자가 되어야 한다. 처음에는 심는 생활을 하다가 거둘려고 하다가는 십자가를 떠나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남을 위하여 심다가 후에는 남을 이용하는자는 뒷맛이 나쁜 자로서 불신자만도 못하다. 차리리 처음부터 흑심을 드러내는 것이 나을 것이다. 영원히 심는 자로서 인생을 마치어야 한다. 하나님을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심기워진 나무가 복이 있다.
심는 자가 거두는 것을 소망하고 농부가 곡식을 기다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영적인세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서 거두는 것과 곡식을 좋아하는 마음이 강하면 많은 혼란이 야기 되기에 심는 것만을 즐기는 자가 심는 법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이다. 심는 법이 완성될 때 거둠이 없고 수확이 없을 수 없다.
그러나 마음이 어디에 강하게 역사하고 있는가가 중요하기에 심는 것을 즐기는 마음을 잃지 말아야 영윈히 십자가의 법을 떠나지 않고 계속적으로 그리스도의 능력안에 거할 수 있는 것이다.
성경에 보면 보상과 수확과 거둠을 기쁘게 여기는 말씀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 것이 심는 것을 완성하고 심는 것만을 행복으로 여기는 마음 안에서 이루어지지 아니하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심는 것만을 즐거운 낙으로 아는 자가 거둘 때 거둠이 아름다운 것이며 진정한 의미에 심고 거두는 법을 성취하였다고 할 수 있다. 심는 것을 싫어하고 거두는 것을 더 좋아하는 자가 섬고 거둠으로 거두는 것은 남을 속여서 빼앗은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십자가의 법을 이용하여 남에게 해를 준 것으로 선한 열매라고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심는 것만을 즐거워 하고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심는 생활을 행복으로 여기고 사는 자가 예수님의 기쁨을 아는 자인 것이다,
성령으로 심고 복음으로 심고 그리스도를 심어야 할 것이다. 나를 심지 말고 그리스도의 것으로 심어야 할 것이다. 종자가 중요하다.
나를 심고 세상의 것을 심지 말고 그리스도를 심고 말씀을 심고 복음을 심을 때 하늘나라의 열매를 거둘 것이나 자신을 심고 세상의 것을 심고 속된 것을 심는 자는 썩어질 것을 거둘 것이다. 성령으로 심어야 한다. 성령의 나타남에 따라 성령의 능력으로 말하고 행하여 심어야 할 것이다.
많이 심고 많이 거두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것이다. 적게 심고 많이 거두는 것도 좋은 것이어서 예수님은 복음과 예수그리스도를 위하여 심는 자는 30배 60배 100배로 거둘 것을 말씀하시었다.
그러나 적게 심고 많이 거두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기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옛사람에게 말씀을 사랑하게 만드는 방법이며 예수님의 기적과 능력을 알게 하기 위한 말씀이지 많이 심는 것이 나쁘다는 말씀이 아니다.
많이 심는 자는 많이 심는 것을 최선의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적게 심고 많이 거두는 목표를 두지 말고 많이 심고 많이 거두는 목표를 갖고 많이 심는 일에 최선을 다하여야 하는 것이다.
좋은 종자를 많이 심는 것이 십자가의 법을 사랑하는 자의 생활이 되어야 한다.
11)손해보는 법을 완성하여야 한다.
손해보기를 좋아하는 자는 세상에 아무도 없다. 그러나 십자가를 사랑하고 주를 사랑하는 자는 자는 손해 보는 법을 완성하여야한다.
손해보는 법을 십자가의 법으로 여기는 이유는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많은 희생을 하였는데 이는 우리에게는 많은유익이 되었으나 예수님께는 큰 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손해 보는 것이 헛되이 손해를 보는 것은 십자가의 법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을 위하여 영혼구원을 위하여 손해를 볼 때 그 손해 보는 마음에는 십자가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다. 아무 목적도 없이 손해를 보는 자는 바보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손해를 많이 보는 자는 복이 있는 자다.
손해를 보는 것은 영적으로 이익을 보는 것과 통한다. 그러므로 엄격히는 손해보는 것은 이익보는 것이지 손해보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익을 보기 위하여 손해를 보는 것을 강조하면 십자가의 법이 아름답지 못하며 손해 보는 것을 완성할 수 없는 것이다.
손해보는 것은 주를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영혼구원을 위하여 손해를 보는 목적이 있어야 할 것이며 그 손해 자체가 아름다운 것을 알고 손해본 것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여야 할 것이며 보람으로 여길 것이다. 손해에대한 보상이 반드시 있는 것이며 상급으로 갚아 주실 것을 믿지만 진정하나님을 사랑하고 영혼을 사랑하는 자는 손해를 보상받기 위하여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에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마음 때문에 손해를 즐거움으로 여기는 것이다.
손해를 볼 때 온전한 마음과 말과 행실로 손해를 보는 것이 십자가의 완성이다. 손해를 피할 수 있는대도 불구하고 피하지 않고 손해를 줄일 수 있는대도 줄이지 않고 손해를 보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며 즐거히 기쁨으로 십자가를 지는 손해가 아름다운 것이다.
모세가 바로왕의 아들로 자처하기를 싫어하고 유대인이 되어 노예인 자신의 민족에게 돌아온 것은 손해이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랑한 십자가의 법을 성취하여 구원의 길을 열게 된 것이다.
바울을 목숨까지 해함을 받는 것을 조금도 아까워 생각하였기에 하나님의 십자가의 능력이 바울에게 머물 수 있었던 것이다.
손해를 볼까 벌벌 떨고 손해를 적게 보려고 하는 마음에는 십자의 법은 성취될 수 없고 주는 법 희생하는 법 손해보는 법을 완성하지 않고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알 수 없는 것이다.
손해보는 것을 즐거워 하는 마음에 그리스도의 마음이 있다. 우리를 위하여 많이 희생하고 손해보시면서 기뻐하는 마음을 사람들은 모른다. 그러나 그 안에 희생의 사랑이 있고 진정한 행복이 들어 있는 것이다.
손해 보는 인생이 의미 있고 보람이 있고 영원한 상을 받는 인생인 것인데 복음으로 이용하여 이익을 보려는 자들이 많이 예수님을 이중적으로 십자갈에 못박게 마련이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는 백성들을 예수님은 해산한 것은 이들은 예수님을 이용하여 유익을 구하나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넘져주고 예수님을 배신할 살인자들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이용하여 이익을 챙기고져 하는 자는 미련한 자가 사단에게 속은 자이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을 이용하여 많은 유익을 챙기는 것이 믿음같아도 그 것은 십자가를 겉을 보고 속을 보지 못한 것이다. 십자가는 손해를 받는 것 해를 당하는 것이다.
자신하여 주를 위하여 해를 받고져 하는 자는 복이 있다. 주께서 나와 복음을 위하여 죽고져 하는 자는 살겠고 살고져 하는 자는 죽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을 잘 알아야 한다.
주를 위하여 안전하고 주를 이용하여 평화를 구하는 자에게 은혜가 오는 것이 아니라 주를 위하여 해를 받고져 하는 자 손해를 당하고져하는 자에게 평화와 행복이 오는 것이 십자가의 비결이다.
십자가를 이용하여 평화만을 구하는 자는 불안이 있지만 십자가를전하면서 죽고자 하는 자는 어느 곳에서나 평강이 임할 것이다.
십자가 안에 있는 손해 ,고낭이 우리에게 보물이 되는 것을 잘 알아야 한다. 바울사도는 자신의 남은 여생을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신의 육체에 채우는 마음으로 인생을 살았던 것이다.
주를 위한 손해는 영원한 손해로 마칠 것이다. 조금 손해 보고 많은 것을 취함으로 손해를 보충받고 만족하는 자들이 많다. 특히 하나님을 잘 믿는자라고 자처하는 자는 조그만 손해를 받고 많은 보상을 받고 잘 믿은 자로 자처 한다.
그러나 주님 편에서 보면 누구에게 많은 보상을 내세에 줄 수 있겠는가? 주를 위한 손해를 영원히 받고 십자가의 흔적을 갖고 십자가에 달려 큰 해를 보신 예수님을 본받는 자에게 참된 영광과 존귀가 있을 것이다. 주를 위하여 조금 희생하고 많은 유익을 보고 이를 자랑할 것이 못된다.
주를 위하여 영원히 손해보고 영원히 희생하고져 하는 마음에 손해보는 법이 완성될 여지가 있는 것이다.
주님의 성령의 능력으로 손해를 보는 자가 되어야 성령의 열매로 손해를 보는 것은 괴롭지 않고 행복한 것이다. 성령의 능력이 없는 자가 주님을 위하여 손해를 보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며 기쁘지 않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자는 주를 위하여 손해를 자원하며 손해를 볼수록 더욱 행복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마음이 나타남에 따라 희생과 손해를 보는 자가 되어야 한다. 내가 나타나는 것은 잘 못된 것이다. 아무 효력이 없는 것이다.
주님의 마음이 임함으로 손해를 보는 자가 될 때 십자가의 도는 완성되며 하늘 문은 열릴 것이다. 예수님의 것만이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새 마음으로 사는 자는 주님을 이용하여 내가 잘 되는 것보다 내가 주님께 이용되어 주님이 잘되고 교회가 잘 되는 것을 좋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법은 손해보는 법은 주님의 마음이 임한 새 마음으로만 성취할 수 있는 신령한 마음의 법인 것이다.
제5.어두워지고 밝아지는 법
어두워지고 밝아지는 법은 자신을 부인하면 인정을 받는 법 즉 낮아지고 높아지는 법과 비슷한 것이나 이를 더욱 확실하게
하여야 할 이유가 있어서 십자가의 법칙 일곱가지 중에 한가지로 인정한 것은 은혜를 받은 자 즉 성령충만함을 받고 영계가
열리었다고 하는 자들에게 흔하게 범하기 쉽기 때문에 넣은 것이다. 하나님 앞에는 밝다고 생각하는 자는 스스로 어두운 자요 스스로 소경으로 어두워졌다고 생각하는 자에게만 하나님의 계시가 온다.가장 어두운 자로 자처하며 혹시 영안이 열리고 은혜가 와도 변함이 없어야 한다.
1)어두워지는 법이란 세상에 대하여 어두워 지는 자가 천국에대하여 밝아지는 법 속에 들어 갈 수 있다는 진리 속에서 십자가를 바라보고 어두워지는 법을 완성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빛이시나 인간에 범죄함으로 어둠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인간 스스로는 자신이 어두움의 자식이요 어둠에 거하는 자이며 얼마나 어두움을 좋아하고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지 모르고 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에서 빛되신 예수그리스도를 주시었으나 십자가의 법을 통하여 빛이 임하는 바 빛가운데 들어가 살기 원하는 자는 어두워지는 법을 완성하여야 한다.
2)어두워지는 법을 완성하는 것은 어두움이 좋아서 어두움의 법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빛을 찾기 위하여 빛 가운데 들어가기 위하여 빛의 자녀가 되어 빛의 열매를 맺기 위한 목적이 있어 어두워지는 법을 성취하는 것이다.
몸은 가진 인간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려면 예수님과 함께 어두워지고 함께 밝아지는 십자가의 세례를 받아야 한다.
2)먼저 어두워지면 후에 밝아지는 법이 십자가의 법인 것은 분명하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날이라고 하시는 하나님은 순서를 존종한다. 먼저 밝다고 하는 자는 어둠에서 헤어나지 못하나 스스로 어둡다고 하는 자는 빛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어두운 일이 먼저 온후에 밝은일이 생기는 것이 십자가인 것이다. 잘되던 일이 아니되는 것보다 아니되던 일이 잘되게 하는 것이 십자가의 능력인 것이다.
3)가장 어두워진자가 가장 밝아진 자가 되는 것이 십자가의 법이다.
세상에대하겨 죄에 대하여 악에 대하여 가장어두워 진 자가 하나님에 대하여 가장 밝아진 자가 되는 것이다.
4)밝어짐을 위하여 어둠을 인정하고 시인하는 것이지만 밝음을 주장하지 말고 항상 자신의 어두움을 시인하고 살 때 십자가의 능력인 어두워지는 능력은 언제나 우리에게 밝음이신 빛이신 그리스도를 선물로 주실 것이다.
5)스스로 어둠에 있다고 깨닫는 마음만이 어두워지는 법을 완성할 수 있고 빛가운데 살 수 있는 것이다.
스스로 빛가운데 살고 있다고 자처하는 자는 어둠에 거사고 성령의 은혜로 십자가 안에서 스스로 얼마나 어두움에 거하는 것을 알고 어두워지는 것을 미워하며 빛을 사랑할 때 어두어지는 법을 완성하여 빛가운데 들어갈 수 있다.
6)스스로 본다고 하는 자는 소경이며 스스로 얼마나 소경인 것을 알고 눈을 뜨기 위하여 주님의 빛 앞으로 나가는 자는 눈을 뜰 수 있는 것이다.
라오디게아교회는 착각속에 사는 성도들이 많다. 스스로 부자라 흰옷을 입었다 영안이 열렸다고 착각하고 살지만 얼마나 가난한 것과 가련한 것과 벌거벗은 것과 눈먼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은 십자가의 법을 멀리하기 때문이다.
십자가 앞에서 나같이 소경된 자가 없다는 것을 알고 주와 함께 죽고 함께 어두워지는 법을 완성할 것이다.
7)죄와 악과 세상에 대하여 어두워져야 한다.
심자가는 죄에 대하여 어두워지는 것이며 어두워질 때 의에 대하여 밝아질 수 있는 것이다. 악에 대하여 어두워질 때 선에 대하여 눈을 뜨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 대하여 어두워질 때 천국에 대하여 밝아질 수 있는 것이다.
8)어두워지는 법을 완성하여야 한다.
조금이라고 빛이 있다고 밝다고 눈을 떳다고 생각하면 완성될 수 없다. 철저히 어둠을 자처하여야 한다. 완전히 모르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십자가 앞에서 세상을 잘 알고 아는 척하는 자는 주님의 빛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소경이 소경인 것을 모르는 것이 세상이다. 그러나 십자가의 법은 소경이 소경인 것을 알게 하고 소경이 소경인 것을 알고 주께 매달릴 때 눈을 뜨고 영안이 열려 주님의 얼굴을 보며 천국의 빛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9)몸이 살아 있는 동안 영원히 주 앞에서 나는 어둠이라고 자신을 부인하여야 할 것이다.
스스로 빛이 된 자는 어둠의 영이 임할 것이며 오직 예수님의 빛만이 빛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영원히 나는 어둠이고 예수님을 영원히 빛으로 여기는 자에게 주님의 빛은 함께 할 것이다.
10)십자가 앞에서 스스로 어둠을 인정하고 빛을 구하면 빛으로 인도를 받고 빛의 백성이 되어 빛의 열매를 맺지만 그러나 스스로를 빛으로 자처하지 말고 빛은 오직 예수그리스만 빛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빛이 십자가의 은혜로 내게 임하여도 그 것은 그리스도가 나타나는 것 뿐이지 내가 빛이 아닌 것이다. 사도요한은 스스로가빛이 될 수 없고 참된 빛은 예수님밖에 없다고 하였으며 세상사람들은 참빛을 좋아하지 않고 가짜 빛을 좋아한다고 하였다. 그 행위가 악한 이유에서 사람들은 예수님의 빛을 싫어하는 것이다.
11)흑마 뒤에 백마가 따를 때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것이다.
어둠 후에 밝음이 좋은 것이다. 환난 후에 믿음이 좋은 믿은 인 것이다. 죽음 후에 부활이 좋은 것이다.주와 함께 어두워질 수록 빛은 확실하며 그 빛이 아름다운 것이다.
12)성령으로 자신의 어둠을 시인할 때 하나님의 빛이 임할 것이다.
스스로가 얼마나 어둠인 것을 아는 것은 바로 빛에 들어가는 지름길인 것이다. 얼마나 무지하고 얼마나 어두운 것을 아는 자는 주님을 의지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13)어두움의 법을 완성한 자는 빛가운데 살지만 그러나 늘 어둠에서 주님의 빛을 발견하기 위하여 몸부림을 치는 것이다.
철저히 자신의 어둠을 시인하고 주께 부르짖는 자만이 영안이 열M려 하늘의 빛을 보면서 살 수 있다.
14)예수그리스도에 눈을 뜨고 선한 것에 눈을 뜨고 의에 눈을 뜨고 하나님의 나라에 눈을 뜨는 자는 주와 함께 철저히 어두워지는 십자가를 사랑하여야 할 것이다.
주님이 임종할 때 하나님은 세시간 동안 세상을 어둡게 하시었다. 어둠의 십자가의 법의 완성이 빛의 승리를 약속한다.
15)세상의 지혜에 대하여 어두워지는 법에 들어가야 한다.
세상에서 지혜로운 자는 십자가의 지혜를 함께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의 지혜에 대하여 어두워질 때만 십자가의 지혜가 밝아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미련한 자들을 들어 사용하여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분이신 것이다.
16)어린아이와 같이 무지한 자가 되어야 한다.
세상적으로 수단과 방법을 다 배워 약싹 빠르게 처신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지혜가 임할 수 없고 회개하고 성령이 충만한 자는 어리석은 자가 되는 것처럼보일 것이나 어두워지는 법에 들어가면 하나님의 지혜의 빛으로 밝아질 것이다.
17)미련하고 어두워진 것을 기쁨으로 여기고 즐기고 살아야 한다.
옛사람으로 생각하고 세상 사람들의 마음으로 판단하면 바보와 같고 미련한 것 같으나 그 곳속에서 참된 행복이 있는 것이며 참된 빛이 존재하는 것이다.
18)가장 미련하게 되며 가장 어두워진 자로서 바보같고 깜깜한 밤을 거니는 자들에게 주께서 밝은 빛이 되시며 천국가는 지혜가 될 것이기에 그 빛을 즐거워 하고 천국을 감사하고 살아간다.
19)그리스도의 빛가운데 살고 있으나 성령충만함을 받는 자는 세상에 대하여서는 어두워지고 오직 천국에 대하여서만 밝은 것이다.
양쪽이 다 밝을 수는 없다. 세상에대하여서는 눈이 멀고 천국에 대하여 눈을 뜨게 하는 것이 어두워지는 법의 완성이 십자가의 법인 것이다.
제6.없고 있는 법
이 법칙도 낮아지고 높아지는 법과 같은 것이며 자신을 부인하고 인정하는 법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성도생활을 잘
하는 자는 교만할 가능성이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 채는 결과를 범하고도 깨닫지 못하는 일이 많아서 중요한 법
으로 이해하고 완성하고 실천할 것이다.나는 없고 예수님만 계신 곳에 나는 있다.내 영광은 없고 주님 영광만 있는 곳이 내가 누릴
주님 주신 영광이다.
1)성경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고 있는 바 나의 영광은 없고 하나님의 영광만 있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일 때 십자가의 법은 없는 법을 완성하여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영광만이 나타나게 하는 법을 완성하여야 한다는 점에서 없는 법이 중요하다.
2)나는 없는 법에 들어가야만 예수님만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앞서 있는 자 내가 강한 자는 예수님께서 나타날 수 없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리스도 아닌 것을 다 없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인 것이다.
그리스도는 나타나지 않고 자신이 나타나는 것은 아무리 좋은 것이 나타나도 이는 복음이 아니며 십자가의 열매가 아닌 것이다. 내가 없어져야 그리스도가 나타나는 것이다.
3)완전히 없어져야 한다.
나의 모습은 조금도 나타나지 않도록 매일 죽어야 하고 부인하여야 하며 매일 못박아야 하는 것이다. 철저히 죽고 철저히 버리고 철저히 못박아 완전하여야 한다.
조금도 나의 것이 나타나지 않고 그리스도만 나타나는 것을 이루기 위하여 예수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힌 것만 알기로 하여야 한다.
4)내가 없고 그리스도만 있게 하는 것을 수단으로 삼지 말고 목적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과정으로만 삼고 목적으로 삼지 아니하고 십자가의 법칙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내가 보이지 않고 그리스도만이 보이며 내가 앞서지 않고 그리스도만 앞서가는 것을 위하여 마음에 십자가를 새겨야 한다. 주님만이 사랑이며 기쁨이며 소망이며 은혜요 능력이기 때문이다.
5)내 뜻을 없어지는 법에 들어가 살아야 하고 그리스도의 뜻만이 이루어지도록 없어지는 법을 완성하여야 한다.
내 계획은 없어지고 그리스도의 계획만이 성취 되는 것이 우리의 성공이며 보람이 되어야 한다.
6)내 모습은 없어지고 그리스도의 모습이 살아나도록 십자가의 법을 완성하여야 한다.
내 모습은 더러운 모습이며 모순이 많아 천국을 이룰 수 없다. 십자가로내 모습은 가리워 보이지 않고 그리스도의 모습만 보일 때 천국이 완성되며 사랑도 믿음도 선함도 가능한 것이다. 십자가만이 그리스도의모습을 완성할 것이다.
7)내 영광은 없고 그리스도의 영광만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영광받으실 분이며 피조물은 영광을 돌리어야할 존재이다. 그러므로 천사들이나 어떤 피조물이 하나님의 영광을 대신 받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타락한 사단과 타락한 인간들의 마음에는 영광받기를 좋아하는 마음이 있다. 이 마음을 죽이는 것이 십자가의 법이며 내 영광은 없고 하나님의 영광만이 있는 십자가의 법이 완성되어야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살 수 있는 것이다.
8)신천신지에는 없는 것과 있는 것이 분명하여진다.
없어야 할 것이 없어지고 있어야 할 것이 있게 되는 것이 십자가의 법의 완성인 것이다. 미움이 있고 사랑만 있어야 한다. 슬픔이 없고 기쁨만 있어야 한다.죄는 없어 의만 있게 하는 법이다. 악은 없어지고 선함만 있게 하는 법이다.
사망이 없고 생명만 있어야 한다. 이별이 없고 영원히 만남만 있어야 한다. 어둠이 없어 영원한 빛만 있어야 한다. 십자가의 법은 없어야 할 것을 영원히 완전히 없게 하고 있어야 할 것을 영원히 있게 하는 하나님의 법인 것이다.
제7.죽고 사는 법
성경말씀 중에서 가장 종요하고 많이 나타나는 십자가의 법칙이다. 내 옛사람이 죽어야 새 사람이 살아나고 그리
스도의 마음이 살아나기 때문에 죽고 사는 법보다 귀한것이 없다.죽고 사는 법 속에 살지 않는 자는 성도라고 할 수 없다.
죽고 사는 법을 완성할 때 특히 죽는 법을 완성할 때 그리스도는 역사하실 수 있는 것이다.무엇이 죽고 무엇이 살아야 할 것인가 ?
1)죽는 것이 없이는 사는 것이 없다.
죽어야 산다,주와 함께 죽으면 함께 부활하는 법이 십자가의 법이다.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부활하여 십자가의 법으로 온 인류를 구원하시길 원하시었다.
(막08:3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막08:35) 누구든지 제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2)먼저 죽으면 후에 산다는 것이 십자가의 법이지만 먼저 죽으면 후에 산다는 것으로 선후를 가릴 수 없을 때가 있는 것은 죽었다는 것 자체가 살았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죽는 것과 사는 것은 동시에 공존할 수도 있는 것이다. 죽은 자는 산자요 산자는 죽은 자인 것이다.
3)옛사람은 죽어여 새 사람은 살아나는 법이다.
새 사람이 죽고 옛사람이 살아나는 것으로 순서를 바꾸면 사단의 법이 되는 것이며 마귀의 법이 되는 것이다. 성령충만한 자에게 십자가의 세례를 받은 자에게 그리스도의 세례 즉 마음의 세례게 이루어진 자에게는 옛마음은 죽고 새 마음이 살아나는 것이다.
옛마음이 죽고 새 마음이 살아나는 것은 새 마음을 옷입고 사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마음을 옷입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4)철저히 죽어야 완전히 죽어야 하는 것으로 주는 법을 완성하여야 할 것이다.
조금이라고 덜 죽은 자는 부활의 능력을 체험할 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에 돌아가신 것은 가사 상태가 아니라 완전히 죽어 무덤에 묻히신 것이다.
완전히 죽지 아니하면 부활은 없는 것이다. 이스라엘백성에게 명령한 5대 제사가 다 완전히 죽는 것을 말한다. 번제 ,소제,화목제,속죄제,속건제는 다 죽음을 말하는 제사이다.
옛사람이 완전히 죽지 아니하고는 신령한 예배 영적인 예배가 될 수 없는 것이다.
5)살고져 하는 목적을 갖지 말고 죽고져 하는 목적으로 십자가를 완성하여야 한다.
죽으면 살기 때문에 살기 위하여 죽는 것으로 생각이 들지만 옛사람에게 살고져 하는 목적으로 죽고져 하는 것은 문제가 많고 살고져 하는 목적으로 죽고져 하는 자는 십자가의 도를 완성할 수 없을 것이다.
죽고져 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 잘 죽는 것이 성화이며 축복이며 능력이며 사랑이며 능력이다.
잘 죽고 철저히 죽는 것을 목적으로 살게 된 자만 그리스도의 모습을 옷입고 살 수 있는 것이다.
옛사람에게 틈을 주지 말고 잘 죽고 완전히 죽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는 자가 되어야 그 자신의 옛사람을 완전히 죽이고 새 사람으로 살아 승리하는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6)무조건적으로 죽어야 하면 조건을 걸지 말고 무조건적으로 죽어 십자가의 법을 성취하여야 할 것이다.
죽지 아니할 이유를 달면 끝이 없다. 상활에 따라 죽지 아니한 자는 참는것도 한계가 있어 어떤 상활에 가서는 남을 미워하고 저주하고 해하는 일을 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죄인되었을 때 죄인들을 위하여 무조건 죽으신 것처럼 무조건 죽은 자는 십자가의 도를 완성하여 온선한 사랑과 용서를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물이 되어서 죽으신 것처럼 우리도 함께 제물이 되어 죽어야 한다. 제물은 말이 없다 죽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제물이기 때문이다.
옛사람과 그 인격인 고집과 감정과 지식은 무조건 죽어야 하며 죽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7)영원히 죽어야 하는 것이다.
영원히 죽는 법을 완성하여야 한다. 일시적으로 죽었다가 살아나 옛사람으로 살고 혈기로 살면 일시적으로 죽은 의미가 없어진다.
영원히 죽은 자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은 단번에 죽으신 것이요 영원히 죽으신 것으로 우리의 옛사람을 영원히 십자가에 못박으신 것이다.
혈기가 살아나고 미움이 다시 살아나고 자신의 고집이 살아나는 것은 십자가를 사랑하지 않고 십자가의 법을 떠남으로 그렇게 된 것이지 정상적으로 십자가 안에서 사는 자는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내 아집과 내 지식과 내 고집은 영원히 죽은 것이다. 아직도 살아역사하고 있는 것은 옛 마음으로 그 옛마음은 믿음이 아니라 허상에 불과한 것이다.
8)죽은 것을 즐기는 행복이 있어야 한다.
십자가의 고난은 고난이 아니라 영광이며 십자가의 죽음은 죽음이 아니라 영생이기에 즐거워하고 살아야 할 것이다. 옛사람이 죽고 새 사람이 살아난 자가 행복하지 아니하면 이는 잘 못된 것이다.
옛사람이 죽은 자는 죽은 것을 즐기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십자가에 못박힌 것이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지 모르는 자들은 십자가를 몰라 그런 것이다.
미워하는 마음이 완전히 죽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는 자는 이세상에서 더 이상 만족함과 행복이 없을 것이다. 죽어야 세상을 살 때 영으로 살아 만족함이 있다.
내 고집대로 살다가 십자가에 완전히 죽어 항복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다 주님께 맡긴 자가 되어 참된 평안 속에서 하루 하루를 즐겁게 살게 될 것이다.
참 평안은 내 옛사람이 죽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진정한 평화는 인간의 옛마음이 다 죽어야 가능한 것이다.
9)성령충만함으로 죽는 법을 완성하여야 한다.
성령이 없는 십자가의 법은 없다.생명의 법이며 성령의 법이 십자가의 법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십자가의 법을 잘 알아도 성령충만함이 없이는 십자가의법은 완성될 수 없다. 성령충만함만이 십자가의 법인 죽는 법을 완성할 것이다.
성령충만하다고 하면서 십자가의 법을 사랑하지 않고 죽는 법을 성취못한 자는 성령충만이 아니다. 혈기가 살아 있고 미움이 살아 있는 자를 성령충만하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10)대하여 죽고 대하여 사는 일이 바르게 되어야 한다.
죄에 대하여 악에 대하여 세상에 대하여 사단에 대하여 어둠에 대하여 사망에 대하여 자신에 대하여 죽은 자가 되어야 한다. 의에 대하여 선함에 대하여 천국에 대하여 하나님에 대하여 영생에 대하여 살아난 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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