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말씀

왜, 적극적 사고인가?

열려라 에바다 2022. 6. 16. 08:14

왜, 적극적 사고인가?

 

시카고 심리학 교수들은 100명의 학생들에게 <길거리에 떨어진 바나나 껍질을 밟으면 미끄러진다>는 주제를 가지고 3일 동안 왜 넘어지는지? 그 때 심리 상태가 어떤지? 등등 집중적으로 말해 주었습니다. 일 주일이 지난 어느 날, 학교 여기저기에 오렌지 껍질을 펴놓았습니다. 그리고 일 주일 후, 실험 대상 학생들을 불러모아 설문 조사를 하였더니, 바나나 껍질이 아닌 오렌지 껍질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미끄러져 넘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심하게 되었다고 보고한 학생이 65%였다고 합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그 사람이 경험한 모든 일들이 고스란히 저장되는 신비한 기억 장치가 있습니다. 냄새, 맛, 경치, 느낌, 슬픔, 기쁨, 분노, 감사, 사랑, 고통, 등등 사람이 겪은 모든 것이 저장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 가운데 극히 일부만을 의식하고 삽니다. 그러나 마음의 기억 장치 속에는 하나도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것을 무의식, 잠재 의식이라고도 합니다.

 

사람의 판단은 언제나 자신의 경험에 기반을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때 판단 기준으로 어떤 기억을 살려내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 사람 자신에게 달렸습니다.

(1) 부정적이고 우울한 과거를 기억해 내느냐?

(2) 긍정적이고 성공한 과거를 기억해 내느냐?

 

부정적인 기억을 되살리기 시작하면 기억의 창고에서는 끊임없이 부정적 기억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실패한 경험, 성공할 수 없는 이유, 낙심과 좌절, 남들의 비웃음, 비난받은 나쁜 기억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납니다. 그러다 보면 의기 소침해지고, 두려움에 움츠러들게 됩니다.

 

긍정적인 기억을 되살리기 시작하면 기억의 창고에서는 끊임없이 긍정적인 기억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칭찬 받았던 일, 성공해서 큰 파티를 열었던 일, 큰 행복에 전율했던 기억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납니다. 그러다 보면 자신감이 충만해지고, 할 수 있다는 비전이 생깁니다.

 

"안녕하셔요?" 라는 단순한 인사말도, 부정적 마음을 품고 "안녕하셔요?" 하는 인사와 긍정적 마음을 품고 "안녕하셔요?" 하는 인사는 하늘과 땅 만큼 그 차이가 큽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경력이나, 학력이나, 집안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삶에 대한 태도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참고 : 데이비드 슈워츠, 강성호 역, 크게 생각할수록 크게 성공한다, 148쪽>

 

 

가장 아름다웠던 여자 '테레사 수녀'

 

20세기는 97년 9월 5일 '가장 아름다운 여성'을 잃었다.

'가난한 사람의 어머니' 테레사 수녀가 이날 87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서로 사랑하라"란 말을 마지막 유언으로 남긴

이 성녀의 사랑은 그가 남긴 24개국 5천 6백 4개의 자선센터를 통해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인도 국장으로 치러진 장례식에는 1백 50만명이 운집했다.

거지, 부랑아, 장애인, 나환자 등 모든 버림받은 사람들이 뒤섞여 울음을 삼켰다.

여기에 힌두교, 불교, 이슬람교, 기독교 등 종교의 구별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가 '가난의 도시' 캘커타 빈민가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지난 46년이었다.

"문둥병 환자를 씻어줄 때 나는 하나님을 간호하고 있다고 느낀다.

너무나 아름다운 경험이 아닌가?"

"가난한 사람들은 우리가 그들에게 주는 것 이상을 돌려준다.

그들은 토론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랑이 필요하다."고 말하였다.

 

그녀는 79년 노벨 평화상 수상 소감에서도 모든 공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렸다.

교황 바오로 2세는 그를 '평화의 천사'라고 불렀다.

그녀는 떠났다.

그러나 그녀가 뿌린 사랑의 씨앗은 우리들 가슴속에 살아 싹을 키우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싶어한다.

그 아름다움이 향기를 발하는 것은 그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데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평생을 가난한 이웃을 사랑하며 살았던 테레사 수녀가

그의 모든 봉사의 원천을 하나님께 두고 있는 것은

우리의 아름다움의 원천이 하나님께 있음을 잘 두러내고 있는 것이다. <한겨레21, 1998. 1. 1.>

 

 

 

내면의 거울

 

자기밖에 모르던 인색한 부자가 유대인 교수인 랍비를 만났다.

부자는 랍비에게 인생의 교훈이 될만한 가르침을 부탁하였다.

그러자 랍비는 그를 창가로 데리고 가서 다음과 같이 물었다.

"무엇이 보입니까?"

부자는 눈에 보이는 대로 대답하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이번에는 그 부자를 커다란 거울 앞으로 데리고 가서 똑같은 질문을 하였다.

"무엇이 보입니까?"

"제 얼굴이 보입니다."

부자의 대답이었다.

 

랍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부자에게 말하였다.

"창문과 거울은 모두 유리로 되어 있으나

거울 뒤에는 수은이 칠해져 있어 밖이 안보이고 자신만 보이게 되는 거지요.

마찬가지로 내면이 탐욕으로 칠해진 사람은 자기밖에 모르는 불행한 존재지요."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 뜻을 분명히 알기 위해서는 맑고 깨끗한 영안이 필요하다.

그러나 내 개인적인 욕심을 버리지 않고 내 삶의 주도권을 내가 쥐고 살아 갈 때에는

주를 바라볼 수 있는 영안을 소유할 수 없다.

내 눈을 가리고 있는 욕심, 자만, 이기심 등을 버릴 때,

내 눈에 내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일보, 1998. 3. 12.>

 

 

 

너무 쉽게 포기하지 말라 -베토벤 *

 

어느 의과대학에서 교수가 학생에게 질문을 했다.

 

"한 부부가 있는데, 남편은 매독에 걸려있고, 아내는 심한 폐결핵에 걸려있다.

이 가정에는 아이들이 넷 있는데, 하나는 며칠 전에 병으로 죽었고, 남은 아이들도 결핵으로 누워 살아날 것 같지 않았다.

이 부인은 현재 임신중인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그러자 한 학생이 대뜸 소리쳤다.

"낙태수술을 해야 합니다."

교수가 말했다.

"자네는 방금 베토벤을 죽였네."

 

이 불행한 상황에서 다섯 번째 아이로 태어난 사람이 바로 베토벤이었다. 아버지는 매독에 걸려있고, 4남매 가운데 하나는 이미 죽었고, 셋은 결핵에 걸려 살 희망이 없는데, 폐결핵의 중증인 어머니는 임신을 했다.

오늘의 의료적 판단으로는 낙태해야 한다고 결정 내릴지도 모를 그 아이가 악성(음악의 성자) 베토벤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한 영혼 한 영혼을 소중하게 여기신다.

우리 인간은 눈에 보이는 대로 함부로 판단하고, 인간 지식을 너무 과신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너무 쉽게 포기하기도 하고, 너무 쉽게 사람들을 정죄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인간의 이성의 법정에서 하나님의 섭리와 뜻까지도 함부로 비판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생명은 그렇게 함으로 판단할 만큼 간단하지 않다.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인생사는 우리가 보는 것보다 더욱 오묘하며, 온갖 지적으로 가득 차 있다.

모든 영혼은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영혼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모든 크리스챤은 이 일에 부름 받았다.

 

<목회와 신학, 1998. 3.>

 

 

어머니의 한쪽 눈 -- 솔로몬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청년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청년은 외출에서 돌아오다가 뜻하지 않게 교통사고를 당했다. 소식을 듣고 몹시 놀란 어머니가 가슴 졸이며 병원에 달려갔지만, 불행히도 청년은 이미 두 눈을 실명하고 말았다. 멀쩡하던 두 눈을 순식간에 잃어버린 청년은 깊은 절망에 빠져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는 어느 누구와도 말 한마디하지 않고 마음의 문을 철저하게 닫은 채 우울하게 지냈다.

바로 곁에서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는 어머니의 가슴은 말할수 없이 아팠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청년에게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누군가가 그에게 한쪽 눈을 기증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깊은 절망감에 빠져 있던 그는 그 사실조차 기쁘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결국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으로 한쪽 눈 이식 수술을 마친 청년은 한동안 붕대로 눈을 가리고 있어야 했다.

그때도 청년은 자신을 간호하는 어머니에게 앞으로 어떻게 애꾸눈으로 살아가냐며 투정을 부렸다.

하지만 어머니는 청년의 말을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꽤 시간이 지나 드디어 청년은 붕대를 풀게 되었다.

그런데 붕대를 모두 풀고 앞을 본 순간 청년의 눈에는 굵은 눈물 방울이 떨어지고 말았다.

그의 앞에는 한쪽 눈만을 가진 어머니가 애틋한 표정으로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두 눈을 다 주고 싶었지만, 그러면 네게 나의 장님 몸뚱이가 짐이 될 것 같아서..." 어머니는 끝내 말을 다 잇지 못했다.

 

 

어머니

 

눈이 수북히 쌓이도록 내린 어느 겨울날, 강원도 깊은 골짜기를 두 사람이 찾았습니다.

나이가 지긋한 한 사람은 미국 사람이었고, 젊은 청년은 한국 사람이었습니다.

눈속을 빠져나가며 한참 골짜기를 더듬어 들어간 두사람이 마침내 한 무덤앞에 섰습니다.

"이곳이 네 어머니가 묻힌 곳이란다"

나이 많은 미국인이 청년에게 말했습니다.

한 미국 병사가 강원도 깊은 골짜기로 후퇴를 하고 있었는데, 무슨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가만 들어보니 아이 울음소리였습니다. 울음소리를 따라가 봤더니 소리는 눈구덩이 속에서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아이를 눈에서 꺼내기 위해 눈을 치우던 미국병사는 소스라쳐 놀라고 말았습니다.

또 한번 놀란 것은 흰눈 속에 파묻혀 있는 어머니가 옷을 하나도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피난을 가던 어머니가 깊은 골짜기에 갇히게 되자 아이를 살리기 위해 자기가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어 아이를 감싸곤 허리를 꾸부려 아이를 끌어 않은 채 얼어 죽고만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에 감동한 미군병사는 언땅을 파 어머니를 묻고, 어머니 품에서 울어대던 갓난아이를 데리고가 자기의 아들로 키웠습니다. 아이가 자라 청년이 되자 지난달 있었던 일들을 다 이야기하고, 그때 언땅에 묻었던 청년의 어머니 산소를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청년이 눈이 수북히 쌓인 무덤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려 무릎아래 눈을 녹이기 시작했습니다.

한참만에 청년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러더니 입고 있던 옷을 하나씩 벗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알몸이 되었습니다. 청년은 무덤 위에 쌓인 눈을 두손으로 정성스레 모두 치워냈습니다.

그런뒤 청년은 자기가 벗은 옷으로 무덤을 덮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어머니께 옷을 입혀 드리듯 청년은 어머니의 무덤을 모두 자기 옷으로 덮었습니다.

그리고는 무덤위에 쓰러져 통곡을 합니다.

"어머니, 그 날 얼마나 추우셨어요.!"

 

 

세 친구가 있었습니다. -- 솔로몬

 

세 친구는 정말 친한 친구들이었습니다.

그 중 한 명은 말이 없는대신 다른 두 친구들이 정말 힘들때면 어김없이 와서 도와주는 친구였습니다.

다른 한 명은 말도 많고 외성적이고 하지만 마음은 두 친구들을 사랑했습니다.

마지막 한 명은 평범했지만세 명중에서 가장 마음이 따뜻했고 나머지 두 친구들을 자기보다 사랑했습니다.

어느 날 평범한 친구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두 친구는 다 제쳐놓고 영안실로 달려갔습니다.

말많은 친구는 평범한 친구의 관을 보자 어느 누구보다 서럽게 울었습니다.

마치 자기 부모가 돌아가신 것처럼, 아니 그보다 더 슬프게 울었습니다.

말없는 친구는 그냥 덤덤히 서 있었습니다.

주위에서 소곤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친하다면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냐고...정말 저 슬피 우는 친구가 친구답다고.

거의 1시간동안 말많은 친구는 실신할 정도로 울었고 말없는 친구는 계속 서있기만 했습니다.

둘이서 밖으로 나왔습니다.

말없는 친구가 "요기라도 하려 가자."

둘이서 식당으로 향할 때 말없는 친구가 약국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말많은 친구는 어디가 아픈가 하고 같이 들어갔습니다.

놀랍게도 말없는 친구의 두 손바닥은 피범벅이 되어 있었습니다.

얼마나 손을 꽉 쥐었는지 손톱이 손바닥을 뚫은 것이었습니다.

피는 손바닥뿐만 아니라 팔에 흘려 온통 피투성이었습니다.

그가 흘린 것은 눈물이 아니라 핏물이었습니다.

너무 슬프면 눈물이 아니라 핏물이 흐른답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보고 싶구나. -- 솔로몬

 

저는 9살때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별하시고 저는 어머니와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형편은 어려울 수밖에 없었고 어머니는 직장을 나가게 되었지요.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저는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었고, 어머니는 점차 병이 들어가시기 시작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께 호되게 혼이 난 다음 집을 나오고 말았어요. 물론 학교도 가지 않았구요.

집을 나와 친구네서 신세를 졌지만 신세지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더는 못 있겠더라구요.

배도 고프고 집생각도 났지만 집에 들어가긴 싫었어요. 그러다가 주유소에서 일하게 되었지요.

일은 너무나 힘들었고,냉정한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호기심에 술도 마시게 되었고, 담배도 피우게 되었어요.

그러기를 한두 달, 벌써 5개월이란 시간이 지나게 되었지요.

저는 문득 어머니 생각이 나서 집에 전화를 했지요. 아무도 받지 않더라구요. 몇번 더 전화를 더 걸었지만 마찬가지였어요.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들더군요. 이모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이모에게 전화를 받는 순간 전 너무 당황했고 나의 몸에 싸늘히 식어가는 느낌이 들었어요.

북받쳐 올라오는 눈물로 전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답니다.

일주일전 어머니가 악성암으로 돌아가셨다는 거예요. 장례도 이미 치러졌구요.

어머니가 남기신 것은 사진과 일기장, 그리고 제가 가장 갖고 싶어하던 손목시계를 선물로 주시고 가셨어요.

어머니의 일기장을 보며 장마비같은 눈물이 마구 쏟아져 나왔어요.

"사랑하는 내 아들아, 보고싶구나..."

저는 속으로 말했죠. 어머니 이 불효자식을 용서해 달라고, 시간이 뒤로 흘러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매해마다 어머니의 산소를 돌보며 지난 날의 잘못을 후회하고 있답니다.

한순간의 방황으로 부모님의 사랑을 저버리시 않으시길 바랍니다.

 

 

어느 훈련병의 일기 - 낮은울타리

 

올 2월, 나는 해군에 자원 입대했다. 그때는 늦겨울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때라 전투복에 야전상의를 걸치고도 이빨 부딪치는 소리가 날 만큼 추웠다. 게다가 점호 시간만 되면 당직 소대장은 청소 상태가 불량하다는 이유로 우리들을 바닷바람이 쌩쌩 부는 연병장에 집합시켜 팬티 차림으로 체력단련을 시키곤 했다. 그때 고된 훈련으로 내 손은 온통 상처 투성이에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턱턱 갈라져 꼭 원시인의 손 같았다.

 

그러던 어느날 밤이었다. 그날도 야간 체력단련을 마치고 막사로 돌아와 흙 묻은 손을 씻는데 상처 때문에 몹시 쓰렸다. 고왔던 손은 온데간데없고 벌겋게 얼어 퉁퉁 부어오른 손을 보자 나는 괜히 서글퍼졌다. 그때 문득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어머니의 손이었다.

 

입대 하기 전, 어머니는 포장마차를 하셨다. 옆에 연탁 화덕을 두고 두꺼운 옷을 입으셨지만 항상 "날이 너무 춥구나!" 하며 손을 입에 대고 호호 불곤 하셨다. 그러다 우연히 찬물에 그릇을 닦는 어머니의 손을 보았는데 지금의 내손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거칠었다. 그런데도 철이 없던 나는 "엄마, 약 좀 사서 발라.물도 데워 쓰고..."하고 퉁명스럽게 말해 버렸다. 그때 어머니는 무관심한 내 말에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생각하니 갑자기 목이 메어 왔다. 우리 가족을 위해 그 추위에 상처 난 손으로 밤새워 일하던 어머니는 손이 얼마나 쓰리고 아프셨을까.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모포를 뒤집어 쓰고 한참동안 흐느꼈다. 그리고 그때까지도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말이 자꾸만 입가를 맴돌았다.

 

"어머니, 사랑해요."

 

 

목회 회고록

지난 10년 동안 나의 목회지는 '주님의 교회'였다. 나는 주님의 교회를 떠나본 적이 없다. 부흥사처럼 다른 교회에 집회를 하러 다닌 적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난 10년 동안, 나의 목회가 주님의 교회에만 국한된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나의 목회 대상은 한국 교회라는 마음으로 10년을 지내 왔다. 내가 주님의 교회에서만 목회한다 할지라도 나의 목회는 반드시 자국을 남기게 마련이고, 그 자국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필히 한국 교회에 영향을 미친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나 본 적도 없는, 그리고 그 당시에는 결코 유명인사도 아니었던 주기철 목사님이나 손양원 목사님 같은 분을 존경하며 본받으려 하는 것은, 그분들이 남긴 바른 자국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목회자로서 자기관리에 충실키 위하여 애쓰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남긴 목회 자국이, 어떤 의미에서건 한국 교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해서는 안 되겠기에 말이다.

 

이재철, 회복의 목회, 홍성사,

 

 

 

 

 

 

 

 

진실된 충성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한다고 큰소리치는 농부가 있었다. 주님을 위해서라면 그 어떠한 것이라도, 심지어는 자신의 목숨까지도 다 바치겠다고 큰소리를 치곤 했다. 하루는 이웃마을의 친구가 찾아와서 그에게 넌지시 물어 봤다. "만일 자네에게 소 열 마리가 있다면 그 가운데 한 마리는 하나님께 바칠 수 있겠는가?" 농부는 자신있게 답변했다. "그럼! 바치고 말고. 그렇지만 내게는 소가 없다네." 친구가 또 물었다. "그럼 이번에는 말 열 필이 있다면 그 가운데 한 필을 십일조로 바칠 수 있는가?" 농부는 이번에도 큰소리를 쳤다. "아무렴 바치고 말고! 한 필뿐인가, 열 필이라도 다 바쳐야지. 그러나 내게는 말이 없다네" 친구가 세 번째로 또 물었다. "자네에게 돼지 열 마리가 있다면 그 가운데 한 마리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가?" 그 소리를 들은 농부가 갑자기 역정을 내었다. "아니, 나한테 돼지 열 마리가 있다는 걸 도대체 어떻게 알았어?"

앞으로 있으면 바치겠다고 큰소리를 치기 전에 현재 있는 작은 것을 먼저 하나님께 드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집사 때 충성하지 못한 사람이 어찌 권사가 된다고, 또 장로가 된다고 충성할 수 있겠는가? 내가 지금 여기서 맡은 그 일에 충성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 오늘은 쉬세요」, 박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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