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쿠르드인은 성서에 메디아(개역한글판 성서에는 '메대'로 되어 있습니다) 족속으로 기록된 민족의 후손으로 봅니다. 이스라엘인이나 모압인, 암몬인, 페니키아인 등이 셈족 계통인 데에 반해, 메디아와 페르시아(개역한글판 성서의 '바사')인은 인도-유럽계 민족입니다.
한편 이들이 칼데아(개역한글판 성서의 '갈대아')이라는 것은 타당성 있는 설명이 아닙니다.
칼데아인은 BC 12세기경 아라비아에서 올라온 민족으로, 히브리인이나 가나안의 선주민들과 마찬가지로
셈족 계통입니다.
BC 7세기에 칼데아인과 메디아인들이 손을 잡고 아시리아(개역한글판의 '앗수르')를 멸망시켰기 때문에
그 두 민족을 혼동하는 사람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메디아인이 성서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창세기 10:2의 야벳의 아들들을 나열하는 부분입니다. 이 장에서 야벳의 아들로 제시된 이름들, 즉 '고멜'과 '야완' 등은 대체로 히브리인들이 알고 있던 주변의 인도-유럽계 민족들의 이름시조(eponym)입니다.
그 뒤 열왕기상과 에스더서에 메디아에 대한 언급이 간략하게 나타나지만, 큰 의미는 없습니다. 메디아인에 대한 주목할 만한 언급은 이사야 13장에서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이 구절은 메디아인들의 공격으로 바빌로니아가 파괴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보라 은을 돌아보지 아니하며 금을 기뻐하지 아니하는 메대 사람을 내가 격동시켜 그들을 치게 하리니 메대
사람이 활로 청년을 쏘아 죽이며 태의 열매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며 아이를 가석히 보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13:17~18)
비슷한 취지의 언급이 예레미야 51장에도 등장합니다.
화살을 갈며 방패를 굳게 잡으라 여호와께서 메대 왕들의 마음을 격발하사 바벨론을 멸하기로 뜻하시나니 이는 여호와의 보수하시는 것 곧 그 성전의 보수하시는 것이라 (예레미야 51:11)
열국 곧 메대인의 왕들과 그 방백들과 그 모든 두령과 그 관할하는 모든 땅을 (예레미야 51:28)
이러한 언급이 나온 시대적 배경은 BC 6세기입니다. 성서에서 이들이 하나님의 쓰임을 받는 것으로 표현된 구절은 그 외에는 없습니다.
메디아인에 대한 언급은 이후에는 다니엘서에 '메대 사람 다리오', '메대와 바사의 규례'등의 문구가 등장한 뒤 구약성서에서는 자취를 감춥니다. 이는 서남아시아의 패권이 페르시아 제국으로 넘어간 이후 이들의 세력이
미미해졌음을 반영합니다. 신약에서는 이 종족의 이름은 사도행전 2장 9절에만 등장합니다. 주변의 여러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사도들이 자기 지역의 방언을 구사하는 것을 보고 놀라는 장면입니다.
한편 BC 6세기의 상황을 이해하려면, 먼저 이들의 역사에 대한 개괄적인 고찰이 필요합니다. 메디아인은 BC 10세기경에 카스피해 남부지역에 정착한 것으로 보입니다. 수메르 문헌에 이 지역을 잠깐 정복한 것으로 기록된 '쿠티(Kuti)'인이 이 메디아인의 일파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들은 BC 8세기에 아시리아가 전성기를 구가할 때 이들의 지배를 받는 국가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BC 7세기에 세력을 규합하여 바빌로니아의 칼데아인과 동맹을 맺고 아시리아를 멸망시켰고, 이후 한동안 바빌로니아과 서남아시아의 패권을 양분했습니다. 그러나 BC 6세기에 접어들어 메디아의 영토 중 현재의 페르시아만 북쪽 해안에 근거지를 둔 '페르시아' 민족이 메디아 제국의 패권을 장악했고, 이들은 곧 바빌로니아를 흡수하게 됩니다. 위에 제시해 드린 성서 구절들은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바빌로니아를 멸망시킨 것은 메디아인이라기보다 페르시아인이지만, 이 두 민족은 매우 비슷한 민족이었으므로 유대인들은 페르시아인을 '메디아인'으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이사야
13장이나 예레미야 51장의 예언은 실현된 셈이라고 할 수 있죠.
한편 페르시아 제국에 흡수된 이후, 이들은 서남아시아 지역의 정치적 변동에 따라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BC 4세기에 마케도니아의 정복군주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페르시아를 멸망시켜 자신의 제국에 편입시킴에 따라, 메디아인들도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가 죽은 뒤 제국은 4개로 분할되었고, 서남아시아 지역 대부분은 그 4개의 나라 중 하나인 셀레우코스 왕국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셀레우코스 왕국의 세력이 약해진 틈을 타 페르시아 민족의 일파인 ‘파르티아’인이 나라를 세워 페르시아인과 메디아인의 거주지역 대부분을 차지했고, 이들은 로마 제국 시대에도 독립을 유지했습니다. 그 후 AD 3세기에 사산조 페르시아가 파르티아를 멸망시키고 이 지역의 패권을 차지했는데, 이 시기에 조로아스터교가 전파되었죠. 그리고 7세기경 사산조 페르시아가 멸망하면서 이 지역은 아랍 세력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되었는데, 이 시기에 이슬람이 전파되었습니다.
고대 메디아인이 현대 쿠르드인의 직계조상이라는 주장은 어느 정도는 추정에 의거하고 있으며, 이론(異論)의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최소한 AD 7세기에 최초로 이슬람을 받아들인 이 지역의 인도-유럽 거주민은 현대 쿠르드인과 동일한 민족임이 명백합니다.
쿠르드인은 한동안 아랍인들의 지배를 받다가 11세기경 드디어 독립국가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16세기 초 오스만 투르크가 이 지역을 포함한 서남아시아 전역을 정복하였고, 17세기 초에는 오스만 투르크와 페르시아 사파비 왕조 간의 조약에 따라 이들의 거주지역이 양국으로 분할되었습니다.
그리고 1차 대전 이후 현재의 이라크에 해당하는 지역을 영국이 오스만 투르크로부터 빼앗아 차지하게 됨으로써, 오스만 투르크의 영토 내에 있던 쿠르드인 거주지역이 투르크령과 영국령으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이어 1932년에 영국이 이라크를 독립시켜, 쿠르드인 거주지역의 분단은 고착화되었습니다. 영국이 쿠르드인 거주지역 전체를 빼앗은 뒤 나중에 이라크와는 별개의 나라로 독립시켰다면 이들이 지금처럼 고통받는 일은 없었겠지만, 제국주의 시대 강대국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문제는 알 바가 아니었죠.
이라크 지역은 매우 다양한 민족이 거주하는 지역일뿐더러 시아파와 수니파 무슬림의 거주지역이 모두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어 내부분쟁의 소지를 처음부터 안고 있었지만, 영국은 이 지역 전체를 하나로 묶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족을 데려와 왕으로 앉혀 독립시켜 버렸습니다. 말하자면 현대 국가로서의 이라크는 건국 자체가 졸속으로 이루어진 셈입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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