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칙령은 기독교 공인으로 로마제국은 기독교를 향한 물리적인 박해를 멈추었습니다. 밀라노칙령이 기독교에 미친 영향에 대해 살펴보기 전에 이번 포스팅에서는 밀라노칙령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기독교가 로마의 박해를 받는 한편, 로마제국 또한 정치적인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특히 3세기에 들어 반세기동안 26명의 황제들이 제위에 오르는 등 황제의 자리를 놓고 벌이는 전쟁으로 로마는 혼란속에 빠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황제찬탈전을 종식시킨 사람이 바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입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즉위 후에 로마제국은 기존의 황제제도를 바꾸었고 후에 로마가 동서로 분열이 되게 됩니다.
4세기에 들어와 분열된 서로마제국에서는 또 다시 황제의 자리를 놓고 전쟁을 벌입니다. '밀비안전투'는 밀라노칙령의 주인공인 콘스탄티누스가 승리를 얻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로마제국의 혼란과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개혁
3세기의 로마제국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235년에서 284년까지 49년 동안 무려 26명의 황제들이 제위에 올랐다. 당시의 로마 군대는 제국 자체보다 자신이 속한 군단(軍團)의 군단장이나 지역의 총독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바치는 풍조가 만연해서 한 군단장이 몇몇 군단과 힘을 합치면 로마로 진군하여 황제 자리를 찬탈하는 것이 가능했다. 어떤 경우는 새로 등극한 황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황제 근위대가 황제를 암살하고 다른 황제를 세우기도 할 만큼 혼란스러웠다.
284년 일리리아(발칸반도) 출신의 장군 디오클레티아누스가 황제가 되면서 혼란은 끝이 난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로마제국을 부흥시켰지만, 기독교는 위험 세력으로 간주해 탄압을 계속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거대한 제국을 한 사람이 다스리는 것은 무리라고 여겨 사인정(四人政)을 도입하였다. 로마제국을 네 개의 지역으로 나눈 후, 2명의 대황제(아우구스투스)가 각각 소황제(카이사르)를 한 명씩 거느리고 다스리는 것이다. 대황제가 죽거나 은퇴하면 소황제가 대황제가 되고, 신임 대황제가 소황제를 새로 임명하는 시스템이었다. 이는 군대가 황제를 만드는 폐단을 없애고 효과적인 황제 계승 체계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로마제국을 보스니아 지역을 기준으로 크게 둘로 나누었는데, 이는 나중에 로마가 동과 서로 나뉘는 계기가 되었다.
밀비안 전투와 콘스탄티누스의 개종 선언
4세기에 들어서서 로마의 권력투쟁은 다시 시작되었고, 여러 과정을 거친 후 서로마 지역에서 콘스탄티누스와 막센티우스가 전투를 벌였다. 312년, 콘스탄티누스는 자신의 휘하에 있는 병력 10만 명 가운데 5만 명을 이끌고 갈리아에서 이탈리아로 진군하였다. 콘스탄티누스는 막센티우스가 보낸 장군들을 차례로 무찌르고 이탈리아 본토로 진입하였다. 답답해진 막센티우스는 점술서를 참고하였는데, 얼마 안 가서 로마의 적이 죽는다는 점괘가 나왔다. 로마의 적을 콘스탄티누스라고 여긴 막센티우스는 병사들을 모두 모아 티베르 강을 건너 강가에 포진하였고, 두 군대는 밀비안 다리 앞에서 전투를 벌였다.
기록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전투가 있기 전 콘스탄티누스는 정오가 막 지났을 무렵 하늘에서 이상한 물체를 보았다고 한다. 그것은 빛나는 십자가로, 거기에는 “엔 투토이 니카( )”라는 그리스어 문구가 아로새겨져 있었다.
이 문구는 “In Hoc Signo Vinces(이 증표 안에서 승리하리라)”는 라틴어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콘스탄티누스는 매우 놀랐고, 그 환상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는 동안 밤이 되어 잠이 들었다. 콘스탄티누스는 다시 꿈에서 구세주가 낮에 본 것과 동일한 형상이 그려진 깃발을 손에 들고 나타나서 ‘이 깃발을 만들어 전쟁에 나가면 승리할 것이다’고 하는 소리를 듣는다.
그는 잠에서 깨자마자 꿈에서 본 것을 그렸고, 기독교 지도자들을 불러서 하나님과 자신이 본 십자가 모양에 대해 물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얻은 그는 기독교로 개종했다고 선언했으며, 꿈에서 본 십자가를 제국의 깃발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이 상징은 그리스 알파벳 중 ‘카이(X)’와 ‘로(P)’를 합친 것이며, 그리스 알파벳으로 ‘그리스도’란 단어를 쓸 때 앞의 두 글자이다. 이 심벌은 후에 카톨릭교회의 상징으로 그대로 사용되었다. 밀비안 전투의 승리로 서로마의 주인이 된 콘스탄티누스는 313년 밀라노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유를 주는 밀라노 칙령을 발표했다. 이후 콘스탄티누스는 324년에 로마제국 전체를 다스리는 단독 황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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