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자료

사도

열려라 에바다 2022. 8. 12. 09:34

사도         

'사도'라는 말은 요사이 기독교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사실 '사도'라는 말은 성경에서 사용되고 있는 거룩한 단어입니다. 교회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단어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사도'라는 말을 사용할 때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단으로 몰리기 쉽상입니다. 
최근에 신사도운동을 하는 교회나 목회자가 많아지면서 사도라는 단어는 거의 외면을 당하는 단어가 되고 말았습니다. 교회 역사적으로 볼 때 '사도'란 단어는 천주교에서 역사를 따라 사용되어왔습니다. 천주교의 교황이 예수님의 사도적인 직분을 받아 계승되어져 온다고 저들은 말합니다. 천주교의 1대 교황이 베드로이기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으로부터 교회의 반석이 될 것이란 말씀을 들었기때문에 천주교는 베드로를 1대 교황으로 채택한 것입니다. "[마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베드로가 죽은 것은 네로황제 때의 일이니까 기원후 60년 정도 되었을 때입니다. 그런데 로마에서 기독교를 국교로 삼게 된 것은 콘스탄틴 황제 때의 일이었으니 기원후 313년 정도때의 일입니다. 베드로가 죽은지 250년도 넘었는데 굳이 베드로를 천주교의 교황으로 삼았던 것은 베드로가 예수님으로부터 교회를 세울 권세를 부여받았기 때문입니다. 
천주교만 '사도'직의 계승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아닙니다. 수많은 이단들이 '사도'직분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몰몬교도 그들의 지도자를 가리켜 '사도'라고 칭하고 사도직분이 계승되고 있음을 말합니다. 지방교회는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를 사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렇듯 이단교단에서 '사도'직분을 잘못 사용하고 있기때문에 성경에서 언급된 '사도'라는 단어를 제대로 사용할 수 없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도


"사도"라는 단어(아포스톨로스)는 일반적으로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이지만 사도는 제사장처럼 계승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사도직분을 가졌다고 해서 아들이 사도가 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사도의 계승을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사도'에 대해 가장 정확하게 언급되고 있는 구절은 에베소서 4장입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엡 4:11)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언급하고 있는 사도는 교회의 여러 직분들의 질서를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교회는 사도와 선지자, 복음전하는 자와 목사, 그리고 교사와 같은 직분자들이 질서있게 운영되어져야 함을 말합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서신을 보내면서 사도에 대해 다시한번 언급하였는데 이 또한 교회의 질서를 설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고전 12: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고전 12: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에베소서에서 언급하고 있는 '사도'에 비해 고린도전서에서 언급되고 있는 '사도'는 직분보다는 사도의 직분을 행하는 사람에 대해 더 비중을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의 본문말씀은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직분을 담당하는 사람, 둘째는 선지자의 직분을 담당하는 사람, 셋째는 교사직을 담당하는 사람,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사람, 그 다음은 병 고치는 능력을 행하는 사람, 그 다음은 은사가 있는 사람, 그 다음은 서로 돕는 구제일을 담당하는 사람, 그 다음은 교회운영을 잘 다스리는 사람, 그 다음은 각종 방언을 하는 사람"(고전 12:28)으로 구분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오늘날 교회도 사도적인 직분을 감당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교사직분을 담당하는 사람이 필요한 것처럼 사도적인 직분을 감당하는 사람이 있어야 함을 뜻합니다. 어떤 사람은 능력을 행하는 사람이라면 또 다른 사람은 구제를 잘 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교회는 이러한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한 지체로 모여있는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만일 교회가 사도직분을 담당하는 사람만 있으면 문제가 될 것입니다. 교회에 모든 사람이 친교만 담당하면 그것도 문제가 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목사가 될 수 없으며 모든 사람이 평신도만 되어도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 12:29]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느냐 [고전 12:30]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겠느냐 [고전 12:3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성경에서 언급되고 있는 사도들


성경에는 여러 사도들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을 따르는 열 두 제자들이 '사도'라는 지칭을 받았습니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습니다. 


"[눅 6:13]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갸롯유다가 죽은 후에 공석인 제자 한 자리를 채우기 위해 맛디아가 선택되었을 때 성경은 맛디아를 사도라 칭했습니다. 


"[행 1:26]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저가 열한 사도의 수에 가입하니라." 


바울은 그의 기록에서 스스로 사도로 부름을 받았다고 말하였습니다. 


"[롬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사도'라는 직분이 거의 예수님의 제자와 바울에게 사용되었지만 다른 제자들에게 사용되었습니다. 바울과 함께 선교여행을 떠났던 '바나바'에게도 사도란 명칭이 불려졌습니다. 


"[행 14:14]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 가서 소리질러." 예수님의 동생은 '야고보'에게도 사도란 명칭이 불려졌습니다. "[갈 1:19]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그 외에도 '에바브로디도'에게도 '사도'라는 명칭이 불려졌습니다. "[빌 2:25]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 이곳에 언급된 '사자'라는 단어가 헬라어로 <아포스톨로스>라는 '사도'라는 단어가 사용된 것입니다. 
성경은 디도 역시 사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후 8:23] 디도로 말하면 나의 동무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요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니라." 여기서도 '사도'의 헬라어 단어인 <아포스톨로스>가 '사자'로 표기되었습니다. 




사도가 되기 위한 조건


첫째,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사도로 세움을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따라다녔던 수많은 제자들 중에 오직 12명의 제자를 세우시고 사도로 부름을 주셨습니다. 


"[막 3:13-14]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바울은 자신이 사도된 것은 사람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 받게 된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갈 1: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은." 


사도행전 9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직접 바울을 사도로 세우셨다는 말씀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행 9:15] 주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바울)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둘째, 사도는 예수님과 함께 생활을 하며 그의 부활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가룟유다가 죽고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해 그 조건이 되었던 것은 예수님과 함께 생활을 하였고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행 1:21]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리워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행 1:22]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바울은 예수님과 생활을 하지도 않았고 예수님의 부활도 목격하지 않았지만 예수님께서 직접 그에게 나타나셨기때문에 이 모든 조건이 충족되었던 것입니다. 


"[고전 15: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고전 15: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고전 15:9]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셋째, 사도는 반드시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행하는 자여야만 합니다. 예수님은 12명의 제자를 사도로 세우신 후에 저들에게 권세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사도의 직분을 받고 권세를 부여받은 12명의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내었으며 병자를 치유하였습니다. 


"[마 10:1]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사도 바울은 스스로 겸손함을 보이면서 사도는 마땅히 기적을 행하는 자여야 함을 말하였습니다. 


"[고후 12:11]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에게 억지로 시킨 것이니 내가 너희에게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도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니나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 [고후 12:12] 사도의 표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사도직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성경은 거짓사도가 있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에 거짓 사도가 있었음을 말합니다. 성경이 기원후 100년 이내에 씌여진 것임으로 그 이후에도 여전히 거짓 사도가 존재하였음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주변에서는 지금도 거짓 사도가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고후 11:13]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계 2: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계 2: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고 거짓 사도가 아닌 자들이 에베소 교회를 위협하고 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언급했듯이 사도라는 직분은 특정한 사도가 존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적인 성격을 띄는 지도자가 있어야 함을 뜻합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사도적인 지도자는 누구입니까? 담임목사입니다. 담임목사가 교회의 지도자입니다. 하나님께서 담임목사를 교회의 지도자로 기름을 붓고 세우신 것입니다. 그렇기때문에 교회는 마땅히 담임목사의 말에 순종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담임목사를 교회의 지도자로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도 담임목사의 말에 불순종해서는 안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담임목사의 말에 불순종하면 그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우신 자는 곧 예수님을 대신하는 사람이기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눅 10:16]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도'라는 말을 너무 거부감스럽게 느끼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제자를 사도로 세우셨으니 지금도 주님께서 우리 교회에 사도를 세우시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는 마땅히 주의 복음을 증거하는 자입니다. 사도는 주님의 행하신 일들을 행하는 자입니다. 사도는 주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치는 자입니다. 사도는 성도를 온전한 믿음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시키도록 예비된 섬기는 종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도가 필요합니다. 삯군 사도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거짓 사도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께서 세우신 사도입니다. 그런 사도가 우리와 함께 할 때 우리는 비로소 주님의 모습을 닮아가는 것이며 주님을 믿고 따르는 장성한 믿음의 소유자로 자라가게 될 것입니다. 


"[엡 4: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엡 4: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만일 어떤 사람이 스스로를 가리켜 사도라 칭하면서 성도들 위에 왕처럼 군림하려 한다면 그는 거짓된 사도가 틀림없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사도라면서 당신의 아픔을 함께 나누지도 않고 위장된 사랑으로 당신에게 접근한다면 그를 멀리하십시오. 그는 거짓 사도요 삯군 목자인 것입니다. 
만일 당신의 교회에 '사도'가 있습니까? 그 사람을 보십시오. 그 사람이 당신을 알고 있습니까? 그 사람이 주님의 성품을 닮았습니까? 주님께서 당신을 위해 목숨을 버리신 것처럼 그 사람도 그런 사랑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 사람이 당신보다 위에 서있습니까? 당신은 그 사람의 하인입니까? 당신이 그 사람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까? 당신은 그 사람을 종처럼 섬기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사람은 진정한 사도가 아닙니다. 적어도 주님께서 세우신 사도는 아닙니다. 어쩌면 그 사람은 어떤 이단적인 교단에서 세워진 사도일 것입니다. 어쩌면 그 사람은 당신을 이용하기 위해 사도라고 칭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 사람의 열매를 확인하십시오. 주님께서 거짓 사도를 시험한 것을 잘하였다 칭찬하셨듯이 당신 또한 거짓 사도된 자들을 조심하십시오. 진정한 사도는 주님의 열매가 있지만 거짓 사도는 마귀의 열매만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서 세우신 질서를 존중하십시오. 당신이 사도입니까? 그렇다면 사도의 일을 하십시오. 하지만 만일 당신이 가르치는 자입니까? 그렇다면 최선을 다해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십시오. 하나님의 나라는 질서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몸되신 교회 역시 질서가 있는 곳입니다. 그 질서에는 사도도 있으며 목사도 있고 교사도 있는 것입니다. 무엇하나 성경에 언급된 것들을 더하거나 빼지 마십시오. 스스로 더해서 유익될 것이 없고 스스로 빼서 정죄받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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