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여행] 속초항 양미리부두 주변풍경
속초항은 항내수면적 160만 km2. 항만법상 1종항에 속한다. 1905년 연안항로가 처음으로 개설되어 연안선박의 기항지로서 선박 출입이 잦았다. 1945년 8 ·15광복과 더불어 38선으로 국토가 남북으로 분단되어 북한 치하에 들어가기도 했으며, 1962년 지정항, 1964년 개항장(開港場)이 되었다.
속초항은 근해에 풍부한 수산자원이 부존되어 있어 어항으로 발전했으나, 인근에 양양철광이 개발되면서 철광석 적출항으로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한국 유수의 관광지인 설악산(雪嶽山)과 절경을 이루는 해안선을 끼고 있어 관광항만으로 개발되었다.
주요시설로는 접안시설인 물량장 1,187 m가 있으며, 외곽시설로 방파제 1,651 m, 호안(護岸) 1,842 m가 있다. 연간 하역능력은 69만 7000 t으로, 주요취급화물은 연간 37만 t이다. 이 중 연안화물로 무연탄 ·철광석 등이 35만 t 가량 취급된다. 또한 명태 ·꽁치 ·오징어 등을 주요어종으로 하는 어항이다.
수복탑공원
철책 너머 고향을 두고온 실향민의 아픈 마음을 달래며, 통일의 그날에 대한 희망을 품은 「수복기념탑」도 이제 인간의 나이로 치면 마흔살이 넘어 오십줄을 바라본다.「첩첩 높이 솟은 산봉우리 앞을 가리고 구비구비 험한 길 아득히 멀어도 어머니와 어린 아들은 오손도손 망향의 이야기 나누며 북녘고향 땅으로 향하는 그 길 위에 비바람 눈보라 휘몰아치고 어느 짖궂은 길손이 그 앞길 가로막는다 한들 두 생명 다하도록 낮도 밤도 없이가야만 하느니...」(수복기념탑의 모자상부 첫귀절) 수복기념탑은 전쟁기념비 이라기보다는 실향민의 한을 표현한 분단의 상징물이다. 동족상잔의 비극 6.25가 종전되고 속초지역이 수복된지 3년만인 54년 5월 10일 당시 1군단과 속초읍, 그리고 주민들이 성금을 모아 수복기념탑을 세웠다. 보따리를 끼고 있는 어머니와 북녘하늘을 가르키는 어린 아들이 함께 손을 잡고 고향땅을 바라보는 애절한 동상은 더이상 고향땅으로 올라 갈 수 없는 실향민의 한과 통일의 염원을 대변했다. 이 모자상조각은 당시 1군단소속 군인인 박칠성씨가 제작했으며, 애절한 사연을 담은 모자상부(母子像賦)는 당시 1군단 소속인 장호강시인(한국참전시인협회장)이 지었다.
3년 강풍으로 파손된 수복기념탑은 다시 시민의 힘으로 복원되어 속초시민의 마음속에 수복기념탑이 통일염원의 상징으로 자리잡았음으로 보여주었다. 83년 4월 27일 새벽, 동해안에 불어닥친 강풍으로 모자상은 철저히 파손됐다. 그러자 고향에 가지 못하는 한을 안고 수복탑 모자상이 자살했다, 실향민들의 슬픔이 더욱 커졌다, 어부들도 귀항길이 불안하다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로 수복기념탑의 파손에 대한 시민들의 안타까움이 쏟아졌다. 수복기념탑은 속초시외버스터미널에서 걸어서 5분 이내 거리, 동명항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수복탑공원은 특별히 여행지로서 볼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곳의 수복기념탑은 통일을 염원하는 실향민의 도시 속초의 상징이다. 특히 탑 비문에 애절하게 묘사된 분단과 실향의 아픔을 노래하는 시귀는 실향민의 아픔을 동감하게 한다
2011 속초 양미리축제
속초수협과 속초시양미리협회가 주관하는 2011 속초 양미리축제가
지난 18일 속초항 양미리부두에서 개막해 11월 27일까지 열렸다.
축제는 끝났지만 동해안 모든 항구에서 제철인 양미리(50마리 만원정도)와
도루묵(20마리 만원정도)을 구입할수 있고 인근식당에서 요리도 맛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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