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헤드린 (Sanhedrine) 공의회

로마 제국은 많은 점령지(占領地)를 쉽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하여 점령지의 상황에 맞게 그곳에 지방 자치권(아우구스투스황제)를 허용하였다. 이러한 로마의 정책에 편승한 유대인들의 자치권 행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기구가 "산헤드린 공회"이다. 물론 로마는 비록 지방 자치 기관을 허용하면서도 그것을 총독의 권한 아래 예속(隸屬)시키기 위하여 자치장(自治長)은 로마가 직접 임명(直接 任命)하였다. 유대의 산헤드린 공회 의장(議長)은 대제사장이 맡았다. 대제사장은 본래 아론의 후손에서 세습직이면서 종신직이었다. 그러나 시리아의 안티오커스 4세 치하에서 대제사장직이 금전으로 매매되고 통치자의 임명으로 본래의 순수성을 상실 했다. 이 같은 상황은 로마의 통치하에서도 발생했고, 헤롯 대왕 역시 대제사장를 임의로 교체하곤 했다.
예수 시대 대제사장의 임명은 로마 당국자의 자의로 단행되었다. 대제사장의 임명요건은 로마제국에 대한 충성심이 관건이었다. 안나스(요18:13)는 주후 6년에 유대 총독으로 있었던 퀴리노(Quirinuis)에 의해 임명받아 15년까지 재직했으며, 그후 35년가지는 막후세력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퀴리노가 안나스를 대제사장으로 임명한 이유는 1, 오랫동안 로마정부를 지원해 온 사두개파와 부유층에 그가 속했기 때문에, 2, 아켈라우스의 실각에 주역을 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그러므로 안나스의 대제사장 임명은 정치적 동기가 강했다.따라서 로마제국은 점령지를 통치함에 있어서 항상 지방 자치 정부가 처리(處理)해야 할 문제와 로마 총독, 혹은 지방장관이 처리해야 할 문제를 구분(區分)해야 했는데 특히 유대 지역의 경우에 유대인들의 종교적인 문제에 대해서 로마 총독은 전혀 개입(介入)하지 않으려 했다. 본디오 빌라가 예수를 재판(裁判)하다가 그를 헤롯 안디바스에게 넘긴 것도 예수가 유대인의 종교 문제(宗敎 問題)와 관련되어 고소된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눅23:7).
또 로마 총독은 유대교에 대한 유대인들의 열정(熱情)을 감안하여 예루살렘에 파견된 로마군의 군기 위에 황제의 초상화도 그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로마 제국은 유대인들에게 로마의 종교 양식을 강요하지 않았으며 유대인들의 성전 제의(祭儀)를 존중하여 이방인들의 성전 출입을 금지(禁止)시켰다. 또한 로마 제국은 모든 식민지(植民地) 국가에 대해서 실시하는 징용(徵用)을 유대에서 만큼은 예외로 하여 청년(靑年)들을 강제 징용(强制 徵用)에서 제외시켰는데 이는 그들이 군대(軍隊)에 갈 경우(境遇) 반드시 황제 숭배 의식에 동참하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에 그들의 신앙을 존중(尊重)하여 그렇게 한 것이다. 한편 로마는 예루살렘 뿐만 아니라 전 지역을 효과적으로 통치(統治)하기 위해 상업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에 로마의 행정 관리(行政 管理)들을 파견했는데 그곳에는 로마의 세금 정책을 시행하는 세관과 아울러 그 지역을 관리하는 로마군의 병력 기지가 함께 있었다. 팔레스틴 지역의 대표적인 로마 행정 도시로는 가버나움, 가이샤라, 여리고 등이다(눅9:1, 9).
더욱이 가이샤라는 당시 로마 총독의 관저가 있던 곳인데, 유대 지역의 최고 통치자(最高 統治者)로 파견된 로마 총독은 평상시에 이곳에 있다가 중요(重要)한 유대인의 명절 때에만 예루살렘에 일시적으로 장소를 옮겨 총독의 업무를 수행했다. 그러면 이런 로마 식민 체제(體制) 아래에서의 유대 자치 정부 역할을 맡았던 산헤드린에 대해 보다 상술(詳述)하면 다음과 같다.
1) 산헤드린 공회의 기원(起源) 물론 산헤드린 공회의 역사가 로마 제국이 예루살렘에 총독 관저(官邸)를 설치할 때에 처음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역사적으로 산헤드린은 바벨론 포로 시기 이후 예루살렘에 귀환(歸還)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再建)을 감독하고 이를 계획(計劃)하던 "귀족회의"(貴族會議)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귀족회의"가 셀류쿠스 왕조 통치 아래에서는 셀류쿠스 왕조(王朝)에게 유대 민족의 민의(民意)를 전달하는 대표기관으로서의 "원로회의"(元老會議)로 그 성격(性格)이 바뀌었다. 이 원로회의가 하스몬 왕조 통치하에서 비로소 "산헤드린"이라 불리어 지는데, 이때부터 산헤드린은 유대 전 지역의 율법(律法)을 관장하는 유대 최고 자치 통치 기관역할을 해 왔다. 하지만 헤롯이 유대의 왕으로 임명(任命)되어 유대 지역을 통치하면서부터 산헤드린과 헤롯은 자주 충돌(衝突)하게 되었다. 결국 헤롯은 산헤드린에서 자기의 통치에 반대하는 유대의 세습 귀족(世襲 貴族)들을 축출(逐出)하고 산헤드린을 자기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정치 도구로 전락(轉落)시켜 버렸다. 그러나 헤롯이 죽고 그리고 그의 아들 아켈라오가 유대 지역(地域)에서 추방(追放) 당한 후(A.D 6년) 유대의 자치를 허용(許容)하는 로마 제국에 의해 산헤드린은 다시 그 역할이 회복(回復)되었으며 날이 갈수록 그 위상이 점차 높아지게 되었다.
2) 산헤드린 공회의 구성(構成) 산헤드린 공회는 그 의장인 대제사장을 제외하고 70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숫자는 최초 모세가 자신의 통치를 보좌(補座)하고 백성들의 소송 문제를 효과적으로 신속하게 처리토록 하기위해 70인 장로들을 세운 사실을 기록한 민11:16에 기인(起因)했다. 그리고 산헤드린 공회를 구성하고 있는 제사장24명, 장로 24명, 학자24명 의장 1명 총 71명은 다음과 같이 크게 3 집단(集團)으로 구별된다.
첫째는 대제사장과 그를 보좌하는 제사장들이다. (신앙의 귀족)
이들 제사장들은 성전경비 대장, 성전창고 관리장 그리고 대제사장을 도와 성전예배를 돕는 제사장들로 구성되었다.
둘째는 원로(元老)들이다. (부의 귀족)
이들은 유대 사회에서 세습되어 온 귀족들로서 각 지파(支波)의 두령이나 장로(長老)를 가리키는데 신약 시대에는 이들의 사회적 역할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도 산헤드린 공회의 주요 구성원들이었다.
셋째는 율법 학자들이다. (서기관 지식의 귀족)
이들은 당시 "랍비", 또는 "선생"이라고 불려지던 사람들의 우두머리들로서 유대 사회에서 신학자와 법률가의 위치(位置)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율법학자들은 유대 사회에서 백성들로부터 가장 존경(尊敬)받는 신분이었기 때문에 산헤드린 공회에서 이들의 역할(役割)은 매우 중요(重要)한 것이었다.
3) 산헤드린 공회의 역할(役割)
첫째 산헤드린은 유대교로 통일된 유대인의 의회인 만큼 그들의 주요 임무(任務) 중의 하나는 유대인의 율법 준수 문제에 대한 종교 재판권(宗敎 裁判權) 행사였다.
둘째 산헤드린은 로마 제국으로부터 인정받은 유대의 유일(唯一)한 자치 기관(自治 器官)이었으며 유대에 파견(派遣)된 로마 총독(總督)에게 유대인의 민의(民意)를 전달하는 기구였다. 아울러 로마 제국이 유대 지역에 어떤 정책이나 의사(意思)를 전달하는 공문서(公文書)를 보낼 때도 항상 그 수신자(受信者)는 산헤드린 공회였다.
셋째 명실공(名實共히)히 산헤드린은 유대의 최고 통치(最高 統治) 기관이었기 때문에 유대 지역의 일반 행정과 사법(私法)을 관장하였다. 그러나 산헤드린 공회는 로마가 인정하는 허용 범위 내에서만 행정(行政)을 주관하고 법을 집행(執行)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로마 제국의 세금 징수 문제는 그들이 관할(管轄)할 수 없었으며 사형 집행도 반드시 로마 총독의 허락(許諾)을 받아야 했다. 산헤드린 의원(議院)들이 예수를 율법의 범죄자로 규정하고 처형하지 못하고 그를 빌라도 총독(總督)에게 데리고 갔던 것도 그러한 이유(理由) 때문이다(눅22:66 ~ 23:2). 한편 산헤드린 공회는 매년 일정한 회의기간을 정해두고 그 기간(期間) 동안 주요한 안건(案件)을 처리하곤 했는데 그 회의(會議)는 주로 유월절과 장막절 그리고 초막절 같은 유대인의 절기에 진행(進行)되었다. 그 이유는 회의결정 사항들을 빠른 시간에 많은 사람들에게 홍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산헤드린 공회는 전체 총회가 열릴 때까지 기다릴 수 없는 다급한 사건이나 사소한 사건들을 수시(隨時)로 처리할 수 있는 각 분과 회의를 조직했는데 이 분과 회의의 규모(規模)는 10~20명 내외로 구성되었다. 이 분과 회의는 거의 대제사장의 뜻에 따라 운영(運營)되었으며, 예수의 처형(處刑)을 계획한 것도 바로 이 분과(分科) 회의였다 (눅22:2, 요12:47-53).
‘산헤드린 공회’의 유래와 역할
로마제국은 많은 점령지를 쉽고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점령지의 상황에 맞게 그곳에 지방자치정부를 허용하였다. 이러한 로마의 정책에 편승해 만들어진 것이 바로 ‘산헤드린 공회’이다.
유대인들의 산헤드린은 BC 3세기경에 시작되었고 유대인들의 최고기관이었다. 이 산헤드린은 총 71명으로 구성되었는데 제사장, 사두개인, 바리새인, 서기관, 장로(족장) 3계파로 구성되었고 대제사장이 사회(의장)를 맡았다. 로마는 산헤드린을 총독의 권한 아래 예속시키기 위해 산헤드린 의장을 로마가 직접 임명했는데, 예수님 당시의 산헤드린 의장은 A.D 6-10년경 유대 총독으로 있었던 코포니우스에 의해 임명된 대제사장 안나스가 맡고 있었다. 그런데 산헤드린 공회에서는 사두개인들의 영향력이 컸는데 이는 사두개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의 기득권이 있었기 때문이다.
산헤드린의 가능은 종교적, 도덕적 또는 정치적 일까지 하였는데, 종교기능으로는 유대인 전체를 관리했고(행9:2), 정치적으로는 사법권으로 사형을 선고할 수 있었지만(마26:3, 행4:5, 6:12, 22:30) 로마 정부의 비준을 얻어야만 집행할 수 있었다.
로마는 유대교에 대한 유대인들의 열정을 감안하여 종교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로마 총독은 개입하지 않았는데, 본디오 빌라도 총독이 예수를 재판하다가 예수를 헤롯 안디바에게 넘긴 것도 예수가 종교적인 문제와 관련되어 고소된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으로 보인다(눅23:7).
산헤드린의 행정기능으로는 세금 받는 얼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로마제국은 각 식민지 국가들 위에 총독을 임명하고, 그 총독은 지방관이나 성읍의 원로들에게 세금징수를 위임했다. 이렇게 되자 총독의 위임을 받은 산헤드린은 세금 걷는 일을 위해 세리에게 그 일을 맡겼는데, 따라서 세리는 로마 정부의 세금을 직접 걷어내는 임무를 수행해야 했기 때문에 유대인들로부터 많은 원성을 듣게 되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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