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대

1. 종족과 거주지
1) 종족상으로 이들은 인도-이란 기원의 한 종족이다. 노아의 아들들을 열거하는 성경 기사에서 다른 종족들과 같이 메대 족의 선조인 '마대'가 야벳의 아들들 가운데 포함된다(창10:2).
2) 이들의 거주 지역은 메소보다미아 북동 지역, 카스피 해 남쪽, 아르메니아 동쪽에 있는 이란 산악 지역이었다.

<출처-keepbible.com>
2. 문헌들에서의 언급과 건국 과정
1) 메대의 초기 역사는 분명하지 않다. 고고학적 증거는 주전 10세기 초에 유목민 내지는 저지(低地)와 산지 사이에서 계절마다 목축하는 사람들이 이란에 들어갔을 것으로 암시한다.
2) 주전 9세기 중엽 이후 앗시리아 쐐기 문자 문헌에 빈번히 그들을 자율성을 지닌 부족이라 언급하고 있다. 특히, 메대 족들은 주전 9세기 말에 앗시리아 왕인 살만에셀 III세와 그의 아들인 샴쉬-아닷(Shamshi-Adad) V세의 역사적 비명들에서 언급된다.
3) 메대가 우르미아 호수(Lake Urmiah)의 남동쪽으로 확장하자 앗수르 왕들은 군대를 일으켜서 메대 인들에게 상당히 많은 손실을 가하였다. 비록 메대 인들이 중앙집권적인 왕국이 아니었을지라도, 그들은 주기적인 접전과 기습 공격을 통하여 앗수르 왕들을 몰아내는데 성공하였다.
4) 주전 8세기에 디글랏빌레셀 III세는 아라랏(Ararat)에서 카스피 해 남쪽의 산악 지역까지 확장한 군사 원정을 하였는데 이 군사 원정에서 그는 메대를 진압하였다. 메대를 앗시리아에 병합한 그는 메대 사람들 중에 65,000명을 다른 나라로 이주시켰다.
5) 앗시리아가 주전 722년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후에, 이스라엘 사람들 중의 일부를 '메대 사람의 여러 고을'(왕하17:6왕하18:11)에 두었다.
6) 메대 제국의 역사
① 8세기 말의 사르곤 II세의 통치 기간 중 메대는 다야우쿠(Dayaukku)라 불리는 인물에게 수많은 부족들이 통합되었다.
② 그의 통치하에서 앗시리아에 저항하였다. 이 저항의 중심부들을 진압하기 위해 주전 716년에 수행된 사르곤의 군사 작전에서, 다야우쿠는 사로잡혀 시리아의 하맛(Hamat)으로 유배당했다.
③ 그것으로 인해서, 앗시리아의 종주권에 복종하는 22명의 메대 통치자들이 사르곤 왕에게 선물을 제공하였다. 물론, 다야우쿠는 데이오세스(Deioces)로 여겨지는데 그는 헤로도투스에 의해 메대 부족들을 통합하고 최초의 왕이 되어 53년동안 엑바타나에서 통치한 것으로 언급된다.
④ 그러나 당대의 앗시리아 문헌에 따르면, 그는 단순히 앗시리아와 아라랏 사이에 놓여있는 지역의 영향력 있는 지역 추장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분명 후대의 전승이 그에게 왕의 칭호와 메대 제국의 설립자 칭호를 붙인 것이다.
⑤ 데이오세스의 아들 카스타리타(Kastarita-페르시아 발음;앗시리아어로는 카스타리투[Kastaritu]이다)의 영도하에서 메대는 통일 왕국이 되었다. 그는 주전 7세기에 자그로스(Zagros) 산맥 지역에서 앗시리아에 맞서는 군사 조약을 체결하고 메대 왕으로 등장하였다. 지금은 카스타리타를 메대 왕 프라오르데스(Phraortes)로 본다. 헤로도투스에 의하면, 그는 22년을 통치하였다. 아나톨리아 대부분과 페르시아를 정복하였으며 니느웨로 진군할 때 살해당하였다.

3. 역사적 변천
1) 앗시리아 왕 앗수바니팔의 통치 말에 지위를 강화한 메대 인들은 마지막 앗시리아 왕들의 바벨론과 앗시리아 사이의 전쟁에서 바벨론 세력에 합류하여 니느웨를 공격하여 정복한 후에 하란의 함락을 지원하였다.
2) 메대 인들은(당시의 바벨론 문서에서 움만 만다[Umman manda]로 불렸는데 '야만인들'이라는 뜻이다) 그 당시 키악사레스(Cyaxares;바벨론어로는 우마키스타르[Umakistar])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었다.
3) 바벨론을 병합한 후에, 키악사레스(Cyaxares) II세 치하에서 메대는 612년에 앗시리아의 수도 니느웨를 파괴하였다. 앗시리아를 정복한 이후에 키악사레스는 그의 영향력을 앗시리아 제국 북부지역, 파르디아(Parthia)와 아나톨리아(Anatolia)로 확대하였다.
4) 키악사레스 치하에서 메대는 더욱 공고화되고 바벨론을 파괴하기 위해 메대 군대가 등장한다(사13:4-6,17-19,21:1-10).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갈대아 왕국을 정복하려고 다른 북방 민족들과 연합하는(렘51:11-14,25-36) 무자비한 원수를 본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의 표현에서 언급된 것을 볼 수 있다.
5) 키악사레스의 아들이자 마지막 메대 왕인 아스티아게스(Astyages;앗시리아어로는 이스투메구[Istumegu])는 하란 지역에서 바벨론을 몰아내려하였다. 그는 캄비세스(Cambyses) I세와 아스티아게스의 딸인 만다네(Mandane)의 아들 대왕 키루스(CyrusII the Great) II세인 페르시아의 봉신 왕에 의해 전복되었다.
6) 메대는 페르시아 왕 키루스(Cyrus)가 아스티아게스에게 승리한 후에 페르시안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주전 550년). 키루스는 메대를 페르시안 제국의 최초 태수의 지배 구역(satrapy)으로 만들어 엑바타나에서 다스렸다.
7) 다리우스(Darius) I세 통치 초에 페르시아 통치에 대하여 일어난 항거는 성공하지 못했고, 메대는 페르시아의 두 태수로 병합되었다.
8) 전페르시아 제국과 함께, 그 영토는 331년 알렉산더 대왕에게 함락되었고(단8:1-8,20-21), 곧이어 셀루시드(마카비1서6:56)와 파르티안(14: 1-3) 통치하에 들어갔다.
9) 키루스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왔던 유대인들의 귀환과 예루살렘의 재건을 허락했을지라도, 메대는 주후 1세기에 일부의 디아스포라 유대 인들에게 고향으로 남아 있었다.

4. 메대에 대한 성경의 시각
1) 메대가 페르시아에 병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메대는 '바사와 메대' 혹은 '메대와 바사'라는 성경 기사의 결합된 언급에서 페르시아 제국에서 명예와 특별한 지위를 점하였다['바사와 메대의 일곱 방백'(에1:14), '메대와 바사 열왕'(에10:2), '바사와 메대의 법률 중에'(에1:19)].
2) 성경은 분명히 바벨론 멸망에 앞서서 역사적인 사건들에서 두 제국의 부분적인 역할에 대한 시각을 표명하였다.
3) 이 견해에 의하면, 전자는 후자의 일들을 보충할 뿐만 아니라 페르시아 제국은 자연스런 메대의 상속자였다.
4) 이런 견해의 여운은 메대와 페르시아에 의한 바벨론의 멸망을 바라보는 다니엘의 환상에서 뿐만 아니라 메대에 의한 바벨론의 전복에 관하여 이사야와 예레미야의 예언에서도 나타난다(단5:26-28).
<성서지명강해대전>
'기독교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이스라엘의 절기와 성일 (聖日) (0) | 2023.05.18 |
|---|---|
| 지성소 (0) | 2023.05.18 |
| 함무라비 법전의 내용 (0) | 2023.05.16 |
| 바벨론과 바사(페르시아) 영토 (0) | 2023.05.15 |
| 스크랩 구약성서의 경전들 (0) | 2023.05.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