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데가르트] 저는 지금 어디에 있나요?
빙엔의 힐데가르트의 기도
1.
저는 지금 어디에 있나요?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나요? 누구에게 위로를 부탁할 수 있을까요? 저를 옥죄고 있는 이 죄의 사슬을 어떻게 끊을 건가요? 저를 이토록 볼썽사납게 만든 더러운 상처들을 누가 지켜볼 수 있겠습니까? 이 몸 치유할 기름 누가 발라줄까요? 오, 하느님, 당신 아니시면 그 누가 저를 도와주겠습니까?
당신께서 약속하신 놀라운 자유를 생각할 때마다 저의 죄는 더욱 더 저를 압박하는 듯합니다. 당신 아드님의 아름다움을 생각할 때마다 제 영혼은 더욱 추악해 보입니다. 당신 사랑의 즐거운 음악을 생각할 때마다 제 영혼은 오히려 더욱 절망에 빠집니다.
사랑하올 하나님, 저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요?
2.
오, 하나님, 제발 당신 사랑의 신비를 저에게 보여주십시오. 당신 사랑으로 하여금 저에게 길고 우울한 밤의 끝자락을 밝히는 꼭두새벽이 되게 해주십시오. 당신 사랑으로 하여금 저에게, 당신의 종 되는 길을 보여줄 새로운 계획이 되게 해주십시오.
당신의 사랑은 날개깃 사이로 오렌지색 불꽃을 떨치는 하얀 비둘기 같습니다. 비둘기는 번민하는 제 영혼에 평화의 약속을 가져다주고, 불꽃은 슬퍼하는 제 영혼에 기쁨의 약속을 가져다줍니다.
3.
오, 지극히 강하신 하나님. 누가 감히 당신을 거슬러 싸울 수 있겠습니까? 제 안에 있으면서 제 영혼을 먹어치우는 죄의 화룡(火龍)에 거슬러 싸우도록, 하나님, 저를 도와주세요.
용의 두터운 비늘을 잘라버릴 당신의 날선 칼, 당신이 몸소 장식하신 그 칼을 제 손에 들려주세요. 그 칼로 제 속에 있는 용을 무찌르고 나서, 저처럼 연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사람들을 위해 안전한 도피처를 마련해주고 싶습니다. 자기 안에 있는 용을 없애버릴 칼을 그들에게 주고, 그래서 그들과 함께 기쁘고 평화로이 살고 싶습니다.
4.
저야말로 딱딱하고 완고한 인간입니다! 죽도록 애를 써야 겨우 자신의 고집을 꺾을 수 있지요. 그래서 당신께 도움을 청합니다만, 당신은 아무 도움도 주시지 않는 것 같군요. 무슨 목적이 있으셔서, 그래서 제 청을 모른 척 하시는 건가요? 저를 도와주시기 전에, 저 스스로 육신에서 죄의 가시를 뽑아내기까지 기다리시는 겁니까? 좋습니다. 이 독(毒)가시들이 저를 파멸시키기 전에 그것들을 모두 뽑아버려야 한다는 사실은 저도 알아요. 하지만, 당신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걸 어쩌란 말입니까?
5.
사랑하올 하나님, 저 들판에 온갖 색깔로 장미와 백합을 심어놓으셨듯이 제 가슴에 온갖 덕목의 꽃들을 심어 주십시오, 그리고 그 꽃들에 당신의 거룩하신 영으로 물을 주십시오. 어쩌다가 가시덤불이나 독초들이 그 틈에 돋아나거든 그것들의 뿌리를 뽑아주세요. 제 가슴에 심으신 온갖 덕목의 꽃들을 좀 더 강하게 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가지를 치거나 잘라버려도 좋습니다. 마침내 그 꽃들로부터 맺어진 씨앗들이 다른 영혼들에게로 날아가서, 당신 홀로 주실 수 있는 아름다움을 그들과 나눌 수 있게만 해주십시오.
6.
아름다우신 하나님, 이 더럽고 추한 죄악의 외투를 저에게서 벗기시고 그 대신 순결하고 밝은 성령님의 겉옷을 입혀 주십시오.
용감하신 하나님, 제 목숨을 위협하는 퇴폐의 성난 늑대들을 저에게서 쫓아버리시고 그 대신 언제 어디서나 저를 지켜줄 당신의 온유한 어린 양을 제 곁에 두십시오.
7.
오, 영원하신 하나님.
저희로 하여금
당신의 사랑하는 아드님
예수의 손과 팔, 다리와 발로
돌아가게 하소서.
땅을 지으시기 전에 당신은
그를 하늘에 낳으셨고
그의 지체로 삼고자 당신은
우리를 땅에 낳으셨습니다.
그의 살아있는 몸이 되어
영원한 지복(至福)을
함께 누릴 만한 존재로
우리를 만들어 주소서.
8.
사랑을 주시는 사랑이신 예수 그리스도님
당신은 가장 높은 별보다 높으시고
당신은 가장 깊은 바다보다 깊으시고
당신은 우리를 당신의 가족으로 부양하시고
당신은 우리를 당신의 배필로 안아 주시고
당신은 우리를 당신의 백성으로 다스리시고
당신은 우리를 당신의 친구로 환영하십니다.
온 세상이 당신을 예배하게 하소서.
9.
생명을 주시는 생명이신 성령님
당신은 모든 움직임의 동인(動人)이시요
당신은 모든 생물의 호흡이시요.
당신은 우리 영혼을 정결케 하는 물이시요
당신은 우리 가슴을 덥히는 불이시요
당신은 우리 발길을 안내하는 등불이십니다.
온 세상이 당신을 예배하게 하소서.
<힐데가르트(Hildegard of Bingen 1078-1179)
귀족가문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린 아이였을 때 신비스런 환상들을 보았다. 18세에 수녀가 되어, 라인 강변 빙엔 지방 루페르츠베르크 대수도원장이 되었다. 타락한 세상에 대한 경고와 재앙에 대한 예언이 포함된 여러 가지 환상들을 수록한 책에서 그녀는 자신의 추악한 모습에 절망하여 하나님께 덕과 기쁨을 달라고 간청한다. 그런가 하면, 훨씬 더 행복하고 가벼운 어조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들도 많이 남겼는데, 자신이 거기에 곡을 붙였고 당시 대중들이 즐겨 불렀다고 한다.>
-월간 <풍경소리 제95권>에서
'기도문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콜롬바누스] 지극한 사랑의 주님 (0) | 2012.01.13 |
---|---|
[유진 피터슨] 제 인생에는 (0) | 2012.01.13 |
[바클레이] 중요한 일과 중요하지 않은 일 (0) | 2012.01.13 |
[성 프란치스코] 당신을 사랑하는 그 사랑 때문에 (0) | 2012.01.13 |
[존 쿠셍] 저를 도우소서 (0) | 2012.0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