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문 시

나 여기에 있나이다, 주여

열려라 에바다 2012. 1. 13. 14:40

나 여기에 있나이다, 주여

 

나 여기에 있나이다, 주여

바람에 불리우는 밤의 이 작은 촛불

혼자서는 이 한밤 서서 타기 어려운

너무 짙은 어둠을 물러가게 하소서.

 

나 여기에 있나이다, 주여

파도에 덮치우는 밤의 이 작은 쪽배

혼자서는 이 풍랑 헤쳐 가기 어려운

너무 미친 이 파도를 잔잔하게 하소서.

 

불길이게 하소서, 차라리

지직지직 타는 불길, 밤을 불질러

저 덧쌓이는 악의 섶을 불사르게 하소서.

어둠이란 어둠을 다 불사르게 하소서.

 

파도이게 하소서. 차라리

가라앉아 햇볕에 일렁이다가도

일어서서 허옇게 밀고 가는 노도

일체 악을 말살하는 노도이게 하소서.

 

박두진 1916-1998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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