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으로 읽는 성서 및 성경 공부

스크랩계시록 강해 (강종수목사 편)

열려라 에바다 2023. 7. 20. 09:47

제 1장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계 1:1)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지시하신 것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啓示)라',이렇게 시작하는 말에는 두어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하신 것 혹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라는 뜻이며 재림하실 예수님은 구원자 그리스도 가 되심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계시(啓示)'란 헬라어로 아포칼뤂시스( )인데,감추어진 것을 드러내어 보여준다는 뜻입니다. 인간 스스로 알 수 없고 하나님이 보여주셔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그 때 보여 주시는 것을 계시(啓示)한다 라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본 계시의 출처와 전달 과정이 설명되고 있습니다. 3위 1체란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 성령님의 인격과 권능 등이 동등(同等)하심을 뜻합니다.
구약의 성부 하나님 시대,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 시대,성령님의 교회시대로 구분할 때 성부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실 계획으로 구약의 역사를 이루셨고, 신약에 예수께서 오셔서 아버지의 계획을 수행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이와 같은 성부 성자의 역사를 적응시켜 오고 있는 것입니다.따라서 본 계시록도 모든 역사의 입법자 되신 성부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그 아들 예수께 말세 계시가 주어진 것입니다.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모든 권세를 일임하셨으나 섭리의 역사가 계획되고 주도적으로 이끄시는 분은 성부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마 28:18 '예수께서나아 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예수께서는 특히 요한복음 6장에서 자신의 입장,즉 성부 하나님의 의지(목적)를 따라 그리스도의 직분을 수행하고 있음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때를 따라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초림시키셨습니다(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날짜는 성부 하나님의 소관이시므로 아버지께서 정하신 날짜에 보내시게 될 것입니다(마 24:36 '그러나 그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행 1:7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본 계시의 전달 과정은 하나님이 그(예수그리스도)에게 주시고 그 천사를 통해 요한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반드시 속히 될 일',반드시 된다는 것은 틀림없이 계시록의 예언이 이루어진다 함이요,'속히'라는 말은 하나님의 시간적 의미로 우리에겐 꼭 이루어 질 일이며 진실하고도 신속하게 진행될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말세에 영적으로 느슨하고 타락한 자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도적같이 오신다 함과 같은 표현입니다.

'그 종들', 여기 '그'라는 말은 본 절의 문맥상으로 볼 때 하나님께서 계시를 내리신 것이므로 성부 하나님으로 읽는 것이 옳습니다. 여기 '천사'는 계시 전달 임무를 맡으니 가브리엘인 듯 합니다(눅1:19'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하나님 앞에 섰는 가브리엘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입었노라')


(계 1:2-3)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이 예언의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하나님의 말씀', 구약의 말씀이 오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적 기록이고 신약은 예수께서 오심으로 성취한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신구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말씀입니다(요5:39).

하나님의 말씀은 신구약의 말씀 전체를 말하나 여기서 사도 요한이 이책을 저술할 때는 구약 성경 뿐이었으므로 구약을 증거했다는 말은 옳지 못하니 신약에 사도 요한이 증거한 말씀인 요한복음과 요한 1,2,3서를 뜻하기도 합니다. 또한 본 계시록의 내용마저 영생의 말씀이라는 의미가 포함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를 증거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증거했다는 과거형은 읽는 자에게 그 시제를 둔 것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은 본 계시록을 말합니다.
'읽는 자, 듣는 자, 지키는 자' 모두가 복되다고 하셨습니다.요한이 본서를 기록하여 당시 각 교회(아시아 7 교회)에 보내어 읽게 된 자들도 복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당시에는 지금처럼 인쇄술도 없었고 기록할 종이도 없었기에 성경을 많이 보급할 수 없었던 때이므로 읽는 자와 듣는 자 모두 복된 일이었습니다. 계시록 내용에서는 지상의 문화적 축복의 메시지는 거의 없습니다.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할 준비에 대해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예언의 성질을 복되게 읽을 성도는 참으로 성경적인 신앙 사상을 지녔다고 볼 것입니다.

기복 신앙사상을 가지고는 이 예언의 내용을 읽고 듣고 지킨다고 즐거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계시록의 예언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자로서 복되다고 깨달아 질 수 있다면 참으로 행복한 성도입니다.계시록 내용은 기독교 신앙 사상이 내세주의적이고 말세에 나타날 세속주의의 적 그리스도 사상과 싸워야 처참한 환난이 기록되어 있으니 이 내용을 읽고 듣고 지킬 수 있는 각오가 선다면 참으로 복된 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福音)을 듣는 것이 복(福)이요 또한 복음 사상대로 행할 수 있다함이 복입니다(롬 10:14-15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눅11:28 '예수께서 가라사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때가 가까움'에서 여기 '때'는 인간의 시간 관념이 아닌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헬라어에 일반적 시간으로 크로노스(historical)가 있고, 하나님의 작정의 때로서 카이로스(historic)가 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 위에 오신 후로부터는 천국과 지옥이 선포됨으로써 우리 개인적으로는 말세를 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믿는 자는 구원을 얻고 불신자는 지옥이라는 미래를 안고 살아가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종말을 앞에 두고 살아가는 것입니다.그래서 영적으로 소위 종말론적 사고 방식으로 표현할 때 우리는 각자가 개인적으로 종말을 살아가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 '때'는 종교 철학 용어로 종말론적 시간(終末論的 時間)이라 합니다.
적절한 때 곧 하나님이 합당하게 역사하실 기회의 때를 말합니다. 그리스도가 이 땅에 탄생하심으로 영적 심판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천국과 지옥은 소개되었고 인생은 갈림길에 섰습니다.그런 뜻으로 종말의 때는 우리의 삶 속에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실존은 이미 예수께서 탄생하신 이후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에 서게 된 것이며 개인적으로는 출생부터 곧장 심판에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구원의 축복 가운데서 만나게 되는 때가 있다면 온 천하와도 바꿀 수 없는 놀라운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의 시간 관념에 충실할 때 신앙 생활이 잘 되는 것입니다.살아 있는 시간 의식 이것이 생존하신 하나님과의 동행을 가능케 합니다.


(계 1:4)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아시아'는 성경 지리상 당시의 소아시아 지방을 말합니다.
'일곱 교회' 외에도 몇 교회가 있었으나(밀레도, 드로아, 골로새 등)일곱 교회만 선택하신 것은 성경상 7이란 숫자가 완전 성수(成數)를 의미 하기 때문에 일곱 교회만 택한 것 같습니다. 일곱 교회가 선택되었지만 그 중심에 있어서는 모든 지상 교회를 대표하는 것입니다.

물론 꼭 그렇게 적중할 수 있는 것은 보통 인간적 역사에서는 반영이 안되겠지만 성경에서 지명된 인물이나 지역과 역사적 기록들은 모두 구속사적 의미를 확실하게 담고 있습니다.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가진 특징일 것입니다. 특히 여기 일곱 교회의 중심은 말세에 있을 여러 종류의 교회 현상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는 8절까지 보면 성 3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문안 인사를 기록하기 때문에 이는 성부 하나님을 뜻합니다. 장차 오실 이는 성부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자존(自存) 하심과 영원히 구원의 하나님으로 오실 것을 뜻합니다.

성부 하나님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하셨고 역사하셨으며 또 한 종말에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뵈올 것입니다(계 4:8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 계1: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그 보좌 앞 일곱 영', 7은 완전을 의미하니 일곱 개의 영이 아니라 완전한 영, 즉 성령을 뜻합니다. 성령님은 천상 천하에 충만하신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성부와 성령님을 먼저 소개하고 있으며 이어 본 계시록의 주인공 되신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계 1:5)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 하시고

'또 충성되고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예수께서는 충성스런 메시아로서 역할을 다하셨기에 충성된 증인이라 표현한 것입니다. 헬라어로 충성이란 단어(,피스티스)는 믿음과 동일하게 쓰이고 증거(mavrtu",말투스)는 순교라는 단어와 같습니다. 생명 걸고 증인되신 예수님의 충성스런 삶을 표현한 것입니다.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이 표현은 영적인 뜻으로 세속의 힘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왕들과는 달리 부활 하사 죽음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정신적 왕이 되심으로 세상 군왕보다 더욱 힘이 있으시고 영광스러우심을 뜻합니다.

역사적으로 예수님은 모든 세상의 군왕보다 더욱 많은 사람들의 무릎을 꿇게 하셨고 영광을 받으신 분으로 진정한 왕이 되신 것입니다(계1:8'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우리를 사랑하사', 기독교의 중심이 하나님의 사랑에서 출발한 것이며 그 사랑은 이어지는 말씀처럼 희생으로 표현된 것입니다(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이 사랑의 동기는 성부 하나님이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한 것에서 출발 했습니다(요3:16, 롬5:8). 참사랑은 이렇게 구원이 목표되는 것입니다. 이 구원의 사랑은 그 아들 예수를 이 땅에 내어주신 것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우리가 속죄됨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댓가가 지불되었음을 말합니다. 해방됨은 먼저 영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받게 되어 사단의 궁극적인 사망 권세에서  놓이게 된 것입니다. 완전한 해방의 존재로 인정받았지만 날마다 죄와 싸워야 합니다. 마치 일제의 압박에서 해방 조국을 찾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조국을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은 우리들의 몫입니다.

해방의 뜻은 육신적 구속에서 벗어난다는 것도 아니며 또한 죄로 인한 인간의 본성과 그 인격이 완전해졌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이 말은 영적으로 죄로 인하여 받은 영원한 지옥 형벌에서 벗어나게 된 성도의 실존을 말하고 있으며 또한 땅에서도 영적으로 마귀의 속박에서 승리할 수 있는 존재로 삼으신 것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구원은 인간의 관념적 혹은 심리적 변화 같은 것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명상, 수도, 극기) 적어도 뚜렷이 역사에 일어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 사건을 치르고 얻은 결과임을 알 것입니다.


(계 1:6)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사람들이 구원을 얻겠다고 교회를 스스로 나온다지만 성경적으로는 구원은 하나님 자신의 계획이자 그 분의 영광을 위해 우리 인간에게 은혜를 입혀주신 것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시 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구원은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말할 때 보통 종교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듭니다. 처음에는 구원을 받은 맘으로 기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점차 구원 얻은 자로서 성숙해지면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만 한다는 종교적 의무감이 생겨나고 그것은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그래서 목숨 버려 피흘려 구속해주신 주님의 사랑에 감격한 심령으로 순교도 가능한 것입니다. 구원이 인간적 만족을 위한 문화라 여기는 사람은 순교가 불가능합니다.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여기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공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관여하시고 인도하시는 정신적 영역을 뜻하며 성경에는 성도들을 곧 나라요 시민이라 했습니다(빌 3:20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하나님의 역사가 임하는 곳은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룩한 뜻과 영감으로 지도하시고 성도들의 예배적 삶의 성질과  종교적 행위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체험하게 하십니다.

특별히 제사장으로 삼으셨다는 것은 세상을 위해 봉사하는 제사장이라기보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하여 감히 성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제사장격의 자격을 얻게 하셨다는 것입니다.또한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같은 존재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제사장으로 삼으신 것은 직무의 수행자를 뜻하기보다 그 자격과 영광스런 하나님과의 교제를 먼저 의도하는 것입니다.


(계 1:7)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여기 구름은 만인이 다 볼 수 있는 구름이긴 하지만 신적 영광을 나타내는 구름입니다. 공중에 떠도는 일반적인 구름과는 비교가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실 때에도 구름을 타고 올라가셨습니다(행 1:11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다시오실 때에는 영광스런 구름을 타고 오실 것입니다. 영광스런 빛을 동반한 구름일 것입니다.해질 무렵 석양에 비쳐진 구름은 또 다른 느낌을 줍니다. 그러므로 재림하실 예수께서 타고 오실 구름은 시각적으로 더욱 영광스럽게 비쳐질 것입니다.

'각 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공개적이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것입니다. 각 인은 모든 족속과 지구촌의 모든 사람을 말합니다.예수님은 온 세상을 위한 메시아이시며 또한 세상 모든 자들, 곧 어떤 종교인이든 무종교인이든 심판  하실 것이라는 말입니다(마 25:32'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
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 같이 하여').

'그를 찌른 자',직접으로는 그 때 십자가에 못박고 창으로 옆구리를 찌른 자를 뜻하지만 여기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한 자들, 즉 역사에서 성도를 핍박한 자들입니다(요 15:20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터이라').

이로 보건대 불신자들이 성도에게 행한 것이 곧 주님께 행한 것입니다.
왜냐면 성도의 사상적 환난은 예수 그리스도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핍박을 받는 것은 예수님의 사상 때문입니다(마 10:40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눅 10:16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

모든 이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본다는 것은 원수들도 육안(肉眼)으로 보게 됨으로써 모든 이가 함께 공개적으로 보게 된다는 것을 거듭증거 해주고 있습니다.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는 것은 모든 지상의 불신자들이 초상난 것처럼 슬피 울며 통곡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날은 구원을 얻기에 이미 늦은 때이며 회개할 기회가 지나버렸기 때문에 더욱 애통할 것입니다. 회개의 기회에 회개해야 합니다.지상의 삶속에서도 우리에게는 기회들이 주어지는데 회개의 기회는 영생과 관련 하기 때문에 참으로 중요합니다(계 2:21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

'그러하리라 아멘', 그러하리라는 헬라어로 나이( )이고 아멘( )은 히브리어( ) 음역으로 나이와 같은 뜻입니다. 같은 뜻의 두 나라 언어의 이중적 표현은 주의 재림이 확실함을 의도하며,특히 헬라어와 히브리어 두 나라말로 기록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신불신간(信不信間) 모든 자에게 우주적(宇宙的)으로 임할 것을 뜻합니다.뜻으로 직역하면 아멘,아멘인데 그렇다고 건전치 못한 설교자들이 아멘을 청중에게 억지로 요구하거나 난발하는 것과 차원이 다릅니다.주의 재림이 아주 확실하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증거하려고 중복 표현을 한 것입니다.



(계 1:8)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알파와 오메가( , )'는 헬라어의 첫 글자와 끝 글자로 하나님은 처음과 끝이 되시고 만물의 시작과 끝의 주인 되심을 뜻합니다.역사의 주관자가 되신 것을 뜻합니다.

'장차 올 자', 물론 예수께서 다시 오실 것이지만 역사의 시작과 그 끝을 주관하시는 분은 성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이 심판하시러 오실 것이라는 말입니다.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영으로 함께 하시지만 심판하시는 날에 예수 안에서 오실 이란 말씀입니다.

'전능한' 것은 세상을 만드심이 전능한 것이지만 말세에 세상을 의로 심판(審判)하시기에 그 능력(지혜, 심판 대책)이 전능(全能)하시다는 것입니다. 심판하심이 인간이 생각하는 신의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 그 마지막 판단의 완전한 능력을 가지고 오셔서 심판과 판단을 하시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른 판단과 정확한 심판은 심판자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일처리를 잘 하는 것을 능력 있다고 표현합니다.


(계 1:9)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나 요한', 사도 요한은 자신의 신분, 즉 나 '사도' 요한이라 하지 않고 '나 요한'이라 했습니다. 환난 중에 처한 자로서 형제들을 사랑하므로 겸손한 맘의 표현입니다. 사도의 직분을 가지고 사도의 직함을 거론치 않고 겸허한 표현을 사용한 요한의 중심을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은혜 받았다고 직분을 자랑하는 교만은 금물입니다. 또한 재림하실 예수그리스도의 형상을 본 직후 가진 맘의 자세는 이처럼 겸손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의 환난과 참음에 동참', 하나님의 말씀은 인내함으로 따라 갈 수 있습니다. 말씀을 지키는 일에 동참했다는 것은 사도 요한 혼자만 고생한 것이 아니라 여러 형제처럼 자신도 함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동참했다는 것입니다. 사상적인 환난은 대단한 정신적 인내의 노력이 요구됩니다. 육체적 핍박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사도 요한은 주안에서'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인으로 서 핍박을 받아 밧모섬으로 귀양갔던 것입니다. '밧모섬'은 한국의 울릉도 만한 크기로 당시에 죄인들을 정배보내던 곳입니다. 요한이 이곳에서 계시를 받았습니다.


(계 1:10)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주의 날'은 지금의 주일, 즉 안식(安息;토요일)후 첫 날인 일요일에 주님이 부활하셨고 사도 때부터 이 날이 주의 날로 점차 명명되었습니다. 주의 날은 주님이 부활하신 날을 뜻합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은 것은 본래 요한이 성령을 받았겠지만 이 특별한 계시를 받을 만한 성령 감동의 황홀경에 취해 있었다는 것입니다.여기서 주의 할 점은 이어지는 말씀을 볼 때 성령의 감동은 무아지경 (無我地境)이 아니라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또한 계시나 말씀보다 성령의 감동이 먼저라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사람들이 성령의 충만 없이 환상이나 예언을 받겠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제나 은혜가 충만한 가운데서 이러한 특별 계시적 은혜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 요한은 환난을 받아 밧모섬에 와서 주님께 주의 날에 아마 묵상하며 성령 감동 중에 있다가 이 계시를 얻게 되었을 것입니다.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었는데 이 나팔 소리는 구약시대에도 천사를 통하여 들려진 경우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나팔소리가 아니고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입니다(출 19:19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

결국 그 나팔소리 같은 음성은 하나님의 장엄한 말씀입니다. 곧 이어지는 절에서 영광스럽게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도 보고 기록하여 아시아 7교회에 전할 것을 명하는 것은 예수님의 음성이라 해석하기엔 부자연스럽습니다. 그러므로 여기 음성은 성부 하나님의 음성으로 보는 것이 옳습니다.

계시록의 전달 자체가 성부로부터 시작하여 성자, 이어지는 내용이 성자 예수님의 지시 사항이며 또한 천사가 여러 차례 전달하는 내용이 나 옵니다. 그러므로 여기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은 성부 하나님의 계시 전달의 서언적 음성으로 보는 것이 옳습니다.요한은 성령의 감동 속에 빠졌으나 말씀이 들렸으니 이성(理性)을 잃은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성 있는 믿음이야말로 바른 신앙 인격입니다.

이성 없는 믿음은 미신일 가능성이 많으며 믿음 없는 이성은 곧 철학입니다.기독교는 진리의 말씀이 있고 말씀의 기초로 하는 믿음의 정신 동행하는 신앙입니다.

(계 1:11-12)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너 보는 것'은 요한이 본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모습입니다(13-16).

'몸을 돌이키는 것'은 뒤에서 소리가 나므로 자세를 바꾸는 태도입니다.
특별한 성령의 감동을 받을 때 가끔 기도하는 자세에 변화가 옵니다.
편한 자세로 성경을 읽을 때가 있는가 하면 무릎을 꿇고 주의말씀을 보고 싶은 때가 있습니다. 요한이 움직이는 것은 흔이 일어날 수 있는 영적 감화에 대한 적당한 육체적 반응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일곱 금 촛대'는 본 장 20절에 해석되었듯이 일곱 교회를 상징합니다.
구약 시대 성소에서는 성소 안이 두꺼운 천으로 덮여 있었기 때문에 어둠을 밝히기 위해 한 덩이로 된 금 등잔을 항상 피워 성소를 밝혔습니다(출25:).

신약에 와서는 성도를 세상의 빛이라 말씀하셨으며 이는 영적으로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교회의 도덕적 기능을 뜻합니다(마 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본 절의 촛대라는 국역은 당시로 보아서 초가 없었으므로 등잔이라 함이 옳습니다.금으로 된 등잔, 즉 세상에 정신적 빛을 발하는 교회의 도덕성과 문화적 기능을 뜻합니다. 또한 금은 변치 않으니 영생의 빛이기도 합니다.


(계 1: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촛대 사이에 인자'는 교회의 주인으로서 항상 교회를 통하여 영광 중에 계신 예수님이십니다.
'인자 같은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뜻합니다.인자(人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별칭입니다(요 13:31 '저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인자가 영광을 얻었고 하나님도 인자를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도다').

'발에 끌리는 옷'을 입으신 것은 대제사장의 예복같이 위엄과 존귀를 가지신 모습이며,'가슴에 금띠'를 하신 것 또한 제사장과 군왕의 모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상에서 왕적 권위와 영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즉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모습입니다.


(계 1:14-15)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같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머리와 털',여기 머리는 성경상 영광의 좌소를 뜻하니 이마 자리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보통 이마가 훤하다는 말을 사용할 때에 그것은 풍요와 영광을 뜻합니다.

흰머리는 노숙함, 영광스러움, 영생, 성결 등을 상징합니다(잠 16:31'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 단 7:9 '내가 보았는데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같고 그 보좌는 불꽃이요 그 바퀴는 붙는 불이며').

'그의 눈은 불꽃' 같은 것은 재림하실 주님의 위엄하시고 예리하신 심판적 모습입니다. 기도할 때 혹 '불꽃같은 눈으로 하감하시옵고... '라고 하는 말은 성도에게는 합당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심판하실 분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는 심판하실 권세자라는 것을 강하게 표현해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은 발로 보이신 것은 감히 지상에서는 그누구라도 심판 주께 대항 할 수 없을 만한 의지와 세력을 가지신 분임을 뜻합니다.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 같은 것은 신성하신 말씀의 권위를 뜻합니다.
요한이 밧모섬에서 들을 수 있는 파도 소리와 비교할 수 없는 신령한 소리를 뜻합니다.


(계 1:16)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그 오른손', 오른 편은 성경상 권위 권세를 상징합니다(출 15:6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시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원수를 부수시니이다', 시 17:7 '주께 피하는 자를 그 일어나 치는 자에게서 오른손으로 구원하시는 주여 주의 기이한 인자를 나타내소서', 시 118:16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는도다').

'일곱 별',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음은 교회의 주인은 예수그리스도임을 뜻하며 교회는 주님의 권능의 장중에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힘은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 안에서 나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께 인정받아야 합니다.

'그 입에서 좌우에 날 선 검'이 나오는 것은 신령하다기 보다 그림대로는 섬뜩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이 모습은 신구약의 말씀처럼 완벽하고 날 선 검같이 예리한 말씀을 가지신 분으로 해석됩니다.

성경에서 칼은 말씀을 상징합니다(엡 6: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같다함은 영광이 부시는 것을 말합니다. 모든 세상의 빛(영광)을 압도하는 태양처럼 어떠한 신(神;gods)들과 세속의 권세, 영광일지라도 만 왕의 왕으로서 심판 주이신 예수그리스도의 영광 앞에서는 그 모든 것이 무색할 것을 뜻합니다.


(계 1:17)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사도 요한은 주님의 영광 앞에서 죽은 자같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엄위 와 그 영광을 본 자가 어찌 놀라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이상을 본 자는 다 그 자리에서 엎드러졌습니다(단 8:17 '그가 나의 선 곳으로 나아 왔는데 그 나아 올 때에 내가 두려워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매 그가 내게 이르되 인자야 깨달아 알라 이 이상은 정한 때 끝에 관한 것이니라', 마 17:6 '제자들이 듣고 엎드리어 심히 두려워하니', 행 9: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그러므로 하나님을 면전에 가까이 하면 겸허해지고 낮아지는 것입니다.
신앙이 깊고 소위 신령할수록 겸손해지는 것입니다.
주께서 '두려워 말라' 하시며 그 권능의 오른손으로 엎드려진 요한을 일으키셨습니다. 아무리 신앙이 좋은 사도일지라도 영광의 주를 뵈옵고 두려워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즉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 그 뉘라서 신격화(神格化)되거나 높임 받을 수가 있을까요? 사람이면 누구나 그리스도 앞에서는 죄인이며 나약하고 부족하며 무릎을 꿇는 것이 지당할 것입니다(빌 2:10 '하늘에 있는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예수님이 '처음이요 나중'이라 하심으로 성부 하나님과 동등 됨을 자증(自證)하셨습니다. 성부 하나님께 표현한 말씀과 동일합니다(계 1: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계 1:18-19)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예수께서 십자가로 죽으신 후 부활하신 자신을 스스로 변호하시므로 요한에게 영광의 주님을 확인시키신 것입니다. 당시 로마 황제의 그 영광 보다 더욱 엄위하고 영광스러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고 또한 세속의 왕 사단의 사망 권세와 그 열쇠를 주님이 가지셨다는 자증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셨다 함은 죽음을 이기신 주께서 가지신 권능과 그 위치, 사망의 세력을 통괄하시는 분임을 말합니다.사단의 세력을 이기신 승리자 예수를 뜻합니다.

'네 본 것'은 20절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보이신 모습으로 10-16까지의 내용이며,
'이제 있는 일'은 당시 아시아 일곱 교회의 상황입니다. 또한 그 교회들 모습은 세상 끝날 까지 특히 종말에 있을 세상 교회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장차 될 일'은 시기적으로 세상 마지막 때에 있을 예언을 뜻합니다(6:-18:).


(계 1:20)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내 오른 손에 일곱 별'은 교회의 주인되신 예수님이 교회를 당신의 권능의 장중에 붙들고 계시다는 것을 뜻합니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일곱 교회는 여기 지칭된 교회만이 아니라 모든 지상 교회(지상교회,유형교회;有形敎會)도 포함합니다(1:11).여기 사자(使者)란 교회의 책임자(감독, 목사)로 보는 예가 많습니다.
그러나 여기 일곱 교회의 사자들은 교회를 수호하는 천사의 의미가 짙 습니다. 2장부터 나오는 지명된 교회의 사자들은 구체화 된 당시 지상 교회의 책임자인 지도자들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특주 1. 주일에 대하여

오늘날의 달력은 B.C. 45년경 율리우스 씨이저 때부터라고 합니다. 바벨
론 사람들은 별들을 숭배하여 요일마다 행성의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그것이 일요일(日曜日,Sunday, 태양), 월요일(月曜日,Mon- day, 달)등
입니다.
교회법적 공고는 서기 364년 라오디게아 공회에서 토요일(안식일)의 예
배일을 일요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그 전에 콘스탄틴 황제가 제정한 일
과(서기 321년) 또한 약 2세기경부터 공예배일이 일요일로 변경하였다는
추정도 있습니다.

우선 일요일이라는 말은 이교적(異敎的) 명칭입니다(순교자 저스틴이 제
일 처음으로 이 말을 부득이 사용했다고 함).그러나 주님의 부활하신 날
은 안식 후 첫 날, 즉 토요일 다음 날인 일요일 새벽입니다.그래서 사도
시대부터 일요일에 예배를 드린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주일 ; 주의
날, 주의 부활하신 날).


(1) 구약의 안식일은 지금의 토요일입니다. 안식교도들은 토요일에 예배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그 안식일 계명을 신약에도 지켜야 구원을 얻은
것으로 주장합니다.그것은 잘못된 주장이며 이단적 견해입니다.주일성수
뿐 아니라 십일조나 모든 율법적 행위로 구원 얻을 수는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힘입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신약의 구
원 방도입니다.

(2) 예수께서는 (구약)안식일의 주인 되시며 모든 율법을 이루신 분이십
니다.이루신 것은 폐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는 재해석만 남았을 뿐입
니다.
(롬 10:4)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
이 되시니라
(마 5:17)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3)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안식일 다음날인 지금의 주일
에 부활하시고 신약 성도에게는 이 날이 더욱 중요하게 된 것입니다. 율
법을 다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구약의 모든 요구를 듣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 당신의 영광스런 부활을 기념하며 이 날에 예
배하고 안식하는 것이 신약적 성도의 바른 안식일 준수가 되는 것입니다
(마 12:8,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마 28:1)안식일이 다하여 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마
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계 1:10)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
은 큰 음성을 들으니

하나님이 엿새 동안 세상을 지으시고 일곱 째 되는 날에 쉬심으로 이 날
이 안식일이었는데 곧 지금의 토요일입니다. 안식일 다음날이 되는 지금
의 주일에 예수께서 부활하셨습니다.그러므로 이 날이 더욱 귀하여 사도
때부터 주의 날(부활하신 날)에 예배하며 헌금한 사실을 보여줍니다.

(고전 16:2)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
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4) 주일(主日)은 주의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는 낱말이고 일요일(日曜日)
은 빛을 창조하신 하나님과 의로운 태양으로 표현되는 하나님을 뜻하기
위한 낱말입니다.
(말 4:2)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5) 이 날을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기억하여...). 잊어버리고 있다가
주일을 당하면 당황을 한다든가 하는 것은 바른 안식일을 대하는 태도가
아닙니다.

(6) 이 날을 기억하며 6일 간은 힘써 일을 해야 합니다.6일간 세상에 빛
과 소금되는 성도의 충실한 삶을 통하여 영광을 돌리고 주일을 맞이하는
것이 옳습니다. 6일은 세속주의로 살고 주일에만 거룩하게 지킨다는 것
은 정서상 그렇게 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 자체가 거룩함으
로 영광을 돌리며 주일은 특별히 성도들이 모여 주간 하나님의 은총을
감사하며 영생을 찬미하고 또한 영혼과 사회를 위해 기도하며 온전하게
하루를 살아드리는 것입니다. 이 날의 언행은 우리 자신을 위하기 보다
하나님을 위한 날이어야 하고 그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는
날입니다.

(출 20:9)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살후 3:10)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
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요 5:17)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7) 육축(짐승)도 일하지 않아야 하고 집에 온 손님도 일하지 않아야 합
니다.
(8) 주일은 예배 때만 거룩한 것이 아니라 온 종일 거룩한 날입니다.
(9) 구약의 안식일 준수는 그야말로 율법적으로 매우 세밀하고 엄격했습
니다.
(사 58:13-14)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
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
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
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

(10) 특별 사항은 생명과 위급한 일에 관련합니다.
병원, 약국을 영업하라는 것이 아니며 위급히 찾는 자가 있을 시나 본인
이 필요할 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국가 안보 문제나(군복무) 일정으로
잡혀 있는 직장 당직 관계인데 가능한 예배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하루 동안의 영감이 주일같이(?) 지낼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기독교국이 아닌 사회에서 주일 성수하기 힘든 직장들입니다. 그러나
신앙 양심이 허락하는 한 주일 성수 할 수 있는 직업과 직장이 돼야합
니다.경비를 서는 일 등도 예배적 생활의 날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조경사업,건설업 등은 월요일 아침부터 작업을 위해서 일요일에 작업 준
비(나무, 시설물 등)를 하게 되는 어려움이 따릅니다. 하지만 가능한 토
요일쯤에 월요일에 착수할 준비를 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주일에는 일하
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주일은 주님의 일로 충실해야 합니다. 이웃에 선한 일을 하는 날이며 믿
음의 일을 하는 날입니다.구약의 안식일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들이 신약
에 와서도 그렇게 율법대로 행할 의무가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구약처럼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내리는 것도 아닙니다.그
러나 그 정신에 있어서 구약의 안식일과 다름없이 지켜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로 인하여 구약의 모든 율법의 존재와 그 목표가
완성되었다는 신약적 구약의 재해석에 따른 안식일의 개념은 행위 언약
은 폐하고 은혜 언약적 내용은 그대로 전수되어야 할 것입니다.

최근에 많은 지도자들이 주일성수를 현실 문화에 비추어 해석하는 경우
가 많습니다. 정통신학에서 그리고 기독교 역사에 주일성수로 통한 하나
님의 축복의 역사가 많았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현대 생활에 적용 문제로 주일에 상거래를 하는 것이나인간 중심으로 주
일을 지내는 일들이 많습니다. 과연 신앙 양심이나 신학의 문제일까요?
아니면 현실주의에 따른 합리적 해석일까요?

우리는 주일성수가 구원을 얻는데 결정적인 율법적 요구가 된다는 이론
은 내세울 수 없습니다. 신약에 예수님의 속죄 사건 중심으로 소위 하나
님의 구속사적 입장에서 구약이 해석되어져야 합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으로 오셔서 부활하시게 됨으로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되었기 때문에 안식일보다 날 자체로도 주일이 더욱 중요한 날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주일에는 온전한 예배와 이웃에 아픈자 약
한 자를 돌보며 위로하고 복음을 전파하고 말씀을 많이 얻고 기도로 영
성 훈련을 하며,성령의 충만함으로 영생을 충분히 찬미하고 하나님께 영
광을 돌리는 날이어야 할 것입니다.

주일에 생업에 종사하는 것은 내세의 소망이 없는 불신자들의 불신적 삶
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에는 생업이나 어떤 상거래 같은 것을
하지 않는 것이 영적으로 잘되고 세상일을 염려하지 말라하신 주님의 축
복을 얻기 위한 믿음의 순종이 되는 것입니다.

먼저 주일에는 시장 보는 일은 금지되어야 합니다. 왜냐면 그 영업을 하
게되는 불신자는 결국 이 날에 주님께 찾아올 기회를 잃게 만드는 결과
입니다.
힘든 세탁은 전날에 해두는 것이 유익합니다. 이날 너무 힘겨운 청소나
세탁하는 일로 고달픈 것은 주의 부활을 즐거워하는 날에 조화롭지 않습
니다. 간단한 목욕은 가정에서 가능하며 오락을 즐기는 것은 부당합니다
다. 이 날은 인간의 안식이 되기 전에 어디까지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을 토대로 하는 신령하고도 영광스러운 기념의 날이기 때문에 일반인들
처럼 오락으로 육체적인 즐거움에 취하는 것은 거룩한 행위가 아닐 것입
니다.

직장 시험 치르는 것과 국가 고시 자격증 시험 등에 대해 본인은 거절합
니다. 아무리 개인적인 현실이 그러하더라도 결코 축복받을 행위는 아니
라 봅니다. 주일을 온전히 성수하는 것은 무척 힘든 상황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고통과 함께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현실과
고통이 따르기 때문에 우리는 합리화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점은 상당히 중요합니다.주일
에 대한 신약적 이해 그리고 신학적 해석이 어떻게 정리되어야 하는 것
은 많은 논란을 가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일은 전통적으로 상업적
거래나 인간중심의 오락적인 행위를 금하는 것으로 전해져 왔습니다.
주일 뿐아니라 오늘날 많은 부분에서 신자들의 삶의 규칙이 흔들리고 있
습니다.십일조의 개념이나 주일성수나 신약적 재해석에서 별다른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제 2장 아시아 7교회 중 4교회


(계 2:1-2)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 손에 일곱 별을 붙
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와 수고
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
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에베소'(인내)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였습니다. 이는 에베소 교회를
맡은 책임자에게 보낸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지상 교회이니 여기 사
자(使者)는 영적으로 교회의 천사를 의미할 수 없습니다.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는 1:16,20절의 해석대로 교회의 주권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교회마다 각양 다른 이름으로 나타나시
는데 에베소 교회에는 교회의 주권자로 나타나셨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거룩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 것을 칭찬하시되 사랑을 잃었으므로 하
셨습니다.그러므로 세상을 향한 교회의 빛된 내용은 구원적 사랑을 가져
야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네 행위와 수고와 인내', 에베소 교회가 잘한 내용입니다. 주님은 교회
마다 세밀하게 평가하시며 장단점을 말씀하셨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교
회로서의 자세와 충성과 성도의 고난에 인내를 잘하여 본 받을 상을 지
닌 교회였습니다.

'악한 자들'은 교회의 적이 되는 전체적 의미가 있는데, 자칭 사도라고
하거나 교회를 훼방하는 이단적 대상들을 일컫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
는 그들을 지혜롭게 판단(시험)해서 물리친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영광스런 이름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교회의 거룩성을 성실함으로 유지
하였습니다.


(계 2:3-4)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에베소 교회는 개혁주의적 교회의 인상을 갖고 있습니다. 교회의 신성
한 면을 보존 유지하기 위해 힘쓰되 하나님의 처음 사랑을 버렸음에 주
님이 책망하셨습니다.
'처음 사랑'이란 하나님의 아가페(ajgavph) 사랑입니다. 교회는 거룩하
기 위해 이단을 척결하고 권징이 있어야 마땅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이 없
는 가운데 시행되면 하나님의 교회로서 근본적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는데 유의할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사랑은 진리 가운데서 행해져야지 진리를 도외시하면서
행하는 사랑은 자칫 인정적(人情的) 사랑으로 우를 범할 수 있습니다.
현대 교회는 하나님 중심적 사랑보다 인간적 사랑의 발상이 많은 것 같
습니다. 어쨌든 에베소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을 굳세게 기초하여 개혁
을 못한 관계로 '책망'을 받게 된 것입니다.

(고전 13:13)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전 13:2)...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엡 5: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
나님께 드리셨느니라


(계 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처음 사랑'이 어디서 없어졌는지 깊이 생각해 내어 회개하여 처음 때같
이 행하라는 경고입니다. 우리는 사실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의 그 순수
함이 많이 식어졌고 대개의 경우 성도들은 그 첫 사랑이 식어졌으므로
아쉬워하는 것을 봅니다. 성도들은 회개하여 그 처음 행위(사랑)를 가져
야 할 것입니다.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촛대를 옮기리라고 하심은 주님이 버리신다는
뜻입니다. 교회가 유형으로 지상에 있을지라도 주님이 무관하시면 그리
스도의 능력 안에서 버려진바 되는 것입니다.


(계 2:6-7)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
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
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 나무
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에베소 교회 안에 '니골라당'이 들어와 교회의 신성(神聖)을 해치고 교
인들로 하여금 진리에 혼란을 일으키게 했던 것입니다. 그들을 출교(出
敎)한 것인지는 불확실하나 교회가 그 무리들을 미워했으며 이것이 주님
의 마음에 맞아 칭찬을 들었습니다.

미워한다는 원어 미쎄오( )는 증오하다, 싫어하다, 덜 사랑하다로 풀이
됩니다. 이 낱말의 반대어는 아가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극적으로
반대되는 단어는 미움입니다. 에베소 교회가 하나님을 극진히 사랑할
때 하나님을 훼방하는 자를 미워하는 정도를 의미해 줍니다.

'귀 있는 자'의 귀는 하나님의 말씀(계시)을 본질적으로 알아들을 수 있
는 영적인 귀를 뜻합니다.
'성령이' 교회에 말씀하시는 것은 성경(편지)의 작성이 근본적으로 성령
님께서 하신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도 사도 요한의 개인적
인 권면이나 예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기는' 것은 성도로서의 중심을 유지 발전해 나가는데 있어서 교회 안
팎의 모든 시험과 환난에 승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이길
수 있어야 하는데, 에베소 교회가 성결 유지에 강세를 보이려다 처음 사
랑을 잃게 되는 과오가 있었습니다. 우리들도 조심하고 살펴서 항상 자
아를 이길 수 있도록 기도로 성령의 인도를 잘 받아 합당하게 행동할 것
입니다.

교회의 거룩성을 위해 세속적인 사상에서 이기는 것도 대단히 중요합니
다. 그러나 성도와 교회의 본질적인 요소인 사랑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
을 얻는다 해도 주님의 책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적 그
아가페 사랑을 중심으로 교회의 존재 이유를 굳히며 선교에 임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낙원'은 천국을 뜻하며 '생명 나무의 과실'은 영원히 배고프
지 않는 양식으로 천국의 풍요로움을 뜻합니다('먹게 하리라').


(계 2:8-9)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
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
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서머나'(몰약을 부순다) 교회에 주님께서 이르시기를 '죽었다가 살아나
신 이'(1:5,18)로서 서언이 시작된 것은 죽도록 충성하는 서머나 교회
를 상징적으로 뜻해 주는 말씀입니다(10절). 서머나 교회는 칭찬만 받
은 교회입니다.
서머나 교회는 환난을 많이 받는 교회였고 또한 경제적으로는 빈곤하였
으나 신앙심은 부요한 교회였습니다. 유대인의 핍박은 사상적으로 당연
하였으나 서머나 교회를 핍박한 그들은 실상 신앙의 정통성 있는 유대인
도 아닌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단의 정신을 따르는 단체였습니다.


(계 2:10-11)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찌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
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
을 네게 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
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서머나 교회는 현재도 핍박과 환난 시험을 당하고 있으나 차후에도 큰
환난을 받게 될 것을 암시하셨습니다. 본래 신앙이 깊은 자에게 큰 시험
이 때 따라 찾아오는 법입니다.

'마귀'가 직접 시험을 한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택하여 시험하는데 모
든 핍박과 환난은 사실 마귀의 조종입니다.
교회 중에 '몇 사람', 신앙이 더욱 깊은 성도 몇이 환난을 받을 것이라
는 말씀입니다. 큰 시험도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예정된 신앙 인물에게 주어집니다.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는 것은 숫자를 기록한대로 한계가 있어서
감당할 수 있는 어느 기간의 환난을 말합니다(고전 10:13 '사람이 감당
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
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충성하는 자의 중심입니
다. 주님께서는 죽기까지 아버지의 뜻을 복종하셨습니다(빌 2:8 '사람
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기독교 신앙은 죽어서 사는 원리를 지녔습니다. 순교주의란 없지만 순교
를 각오하는 신앙은 가장 고결한 신앙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로 죽으셨
기에 부활의 영광을 입으신 것처럼 우리들의 신앙이 죽음을 각오하게 될
때 기적과 승리의 삶을 얻게되는 것입니다.

본질적으로 기독교의 신앙은 인간의 원죄성을 예수의 속죄를 믿음으로
사멸시키고 새롭게 태어나면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적 자
아 개혁을 세상의 영광에서 벗어나는 불안 심리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 소위 긍정적 사고방식으로 신앙을 가지려고 합니다.

하지만 기독교 신앙은 본성적인 철학적 이념이 죽고 새로운 계시적 신앙
으로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 죽고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신비적
이고 영적인 개혁은 과거나 미래나 동일하게 실행되고 있습니다.

충성의 단어는 믿음과 같습니다. 결국 기독교 신앙은 육의 욕구를 죽이
고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이런 갈등은 누구에게나 신앙 생
활 속에 언제나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영적 갈등이 없는 자는
오히려 진정한 신앙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자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실 것입니다. 성경에 여러 류의 면류
관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각각은 의미를 지녔고 여기 생명의 면류관은
영원한 영광의 상급을 뜻합니다.

면류관이란 단어도 두 가지로 여기 면류관은 쟁취하여 얻는 월계관입니
다. 승리의 면류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신앙으로 승리하는 자에게
면류관을 주시는 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심으로 완전한 승리자이시기 때문에 더 이상 싸
워 쟁취할 승리의 면류관을 받으실 일이 없습니다. 물론 그분의 영적 선
재(先在)하심과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영광으로도 근본적으로 전능하신
분입니다. 예수께서는 누구로부터 면류관을 받으실 분이 아니라 스스로
가지셨고 오히려 나누어주실 분이십니다('네게 주리라').

'둘째 사망의 해'는 지옥의 고통을 말합니다. 이 둘째 사망의 해를 입
지 않을 것이라 함은 신앙의 승리자는 지옥의 고통을 받지 않고 구원이
확실하다는 뜻입니다. 첫째 사망은 육신적 죽음이고 둘째 사망은 영원
한 고통의 지옥을 뜻합니다(계 20: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물론 둘째 사망의 고통을 받지 않을 것은 순교자만이 받을 복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에게도 적용되는 말씀이지만 순교의 죽음이 헛되지 않음을
더 강조한 표현입니다.

(계 2:12-13)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좌우에 날선 검을 가
진 이가 가라사대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
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
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
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버가모'(결혼하다) 교회에는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주님으로 나타
나셨습니다. 이는 심판적입니다. 물론 날선 검이 문자대로 칼을 의미한
다기 보다 계1:16(2:16)에 표현한 대로 주님의 말씀을 의도하며 날선 검
을 가지신 모습은 심판자로서의 엄위와 분노(의분,義憤) 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버가모가 서 있는 위치는 사단의 위가 있는 곳이라 했습니다. 그 곳은
우상 신이 있던 곳으로 추측됩니다. 그런 곳에서 '안디바'가 순교를 당
했을 때에도 주님을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했던 것을 칭찬하셨습니
다.


(계 2:14-16)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
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그러므로 회개하
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
우리라

과거의 순교적 신앙과 대조적으로 버가모 교회의 지금은 책망 받을 일
이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 발람의 교훈을 따라 이스라엘이 시험을 받아
죄를 지은 것처럼(민22:-25:) 버가모 교회에 하나님의 바른 교훈을 왜곡
시키고 죄를 짓게 하는 당이 있다는 것입니다.


'니골라당'은 에베소 교회에서도 영적 환난을 일으켰던 이단이었습니다
(계 2:6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
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버가모 교회 중에 이 당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이 있었던 것입니다.교회
는 항상 외부적 시험보다 먼저 교회 내부의 영적 시험이 더욱 위험합니
다. 육신적으로 받는 핍박보다 더욱 타락하기 쉬운 것이 영적 시험입니
다.예수님의 제자 중에 가룟.유다가 있었듯이 교회는 항상 배도자가 있
는 법입니다. 교회는 언제나 각성하고 교회 자체의 성화에 주력해야 합
니다.

'회개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하지 않으면 주님께서 말씀의 검으로
그 교훈을 따르는 자들과 '싸우리라'고 심판을 예고하셨습니다. 하나님
은 시대마다 말씀의 증인들을 세우시고 교회는 진리로써 부단히 개혁되
어져 왔습니다.


(계 2:17)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
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
이 없느니라

'감추었던 만나', 만나는 하나님이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의 광야 40년
생활 동안 하늘로부터 주신 신기한 양식입니다. 감추었던 것이란 회개
한 후 은혜를 체험할 때 느낄 수 있기 때문에 표현한 말입니다. 마치
귀한 보물을 감추었다가 나에게 주시는 듯한 감정을 받습니다.

'흰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을 주신다 함에 먼저 돌은 예수님을
상징하고 믿음의 마음을 반석으로 형용합니다(벧전 2:4 '사람에게는 버
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
게 나아와', 롬 9:32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고전 10:4 '다 같은 신
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
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마 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

흰 것은 성결과 승리, 영광 등을 상징합니다. 새 이름의 이 새롭다는 것
은 성경상 하늘의 것을 뜻합니다(새 하늘과 새 땅, 새 노래). 그러므로
흰 돌 위의 새 이름은 신앙으로 승리하는 자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은혜의 체험은 지극
히 개인적입니다. 앙의 깊은 경험은 말로써 그 모든 감정을 객관화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비밀이라고도 했습니다(딤전 3:9 깨
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찌니)


(계 2:18-19)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 내가 네게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


'두아디라'(계속된 희생 제사)에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
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로 나타나셨습니다(1:14,15). 심판 주로 나타나
셨습니다. 두아디라 교회가 책망을 받을 일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불꽃같은 눈이란 어두움을 밝히시는 예수님과 영적으로 선악간에 꿰뚫
어 보신다 함이고 또한 위엄스러우신 것을 뜻합니다.


'빛난 주석과 같은 발'은 힘있게 짓밟듯 심판하실 주님을 뜻합니다. 그
빛난 주석같은 발은 칼의 위협보다 무서운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란 표현이 계시록에서는 여기 밖에 나오지 않는데 예
수의 신적 권위와 심판주가 되심을 더한층 강조하신 것입니다. 본 교회
는 지극히 인본주의 사상에 물든 상태이어서 예수님의 신적 권위를 강조
하신 것입니다.

'사업'은 교회가 선교적 행위로 일구고 보여준 복음의 사역들입니다.
'사랑과 믿음과 인내'등으로 신앙의 원만한 내용을 다 갖춘 교회입니다
그리고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하심으로 두아디라 교회의 발
전상을 칭찬하셨습니다.


(계 2:20-21)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재물을 먹게 하는도다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

그런데 책망할 것이 있었습니다. 구약의 발람의 교훈이나 버가모 교회의
니골라당처럼 약간의 성격은 달리하지만 '이세벨' 같은 자의 교훈을 용
납한 것이었습니다. 이세벨은 이스라엘 아합 왕의 아내로서 우상을 섬기
고 음란하다 저주받은 여자입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이세벨주의의 교훈
을 따라 배도(영적 행음)한 것입니다.

이세벨의 세속주의적인 힘은 교회를 경제적으로 시험하는 것인데 하나님
의 말씀과 신앙의 도덕성보다 경제적 힘으로 교회의 건전성을 시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질주의 시대에 사는 현대 교회는 이러한 이세벨주
의 사상에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우상의 재물을 먹게' 한다는 것은 비진리로 행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신약에 와서 세속주의와 종교 문화주의적 지도는 곧 우상 재물을 먹게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셨으나 그 영적 배도를 회개치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래 참으십니다(롬 2:4 '혹 네가 하나님
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
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먼저 복음을 듣는 자는 누구든지 그 시로부터 회개의 기회가 될 것입니
다. 천국과 지옥의 미래를 계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때마다 설교와
권면을 통하여 회개를 촉구합니다. 따라서 설교란 죄인이 회개에 이르
게 하는 권면의 시간과 같을 것입니다. 또는 생활 속에서 여러 형식으
로 회개를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과 자비로 용서하시지만 회개치 않는 자에게는 심판하신다
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계 2:22-23)볼찌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로 더불어 간
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
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
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주
리라

회개치 아니한 자들은 '침상에 던질' 것이라 함은 병들어 자리에 눕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죄의 징벌로 무조건 질병을 내리신다
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급작스럽게 죽음을 받을 경우도 있는 법이며
혹은 죄로 인해 생활이 실패와 난관에 빠지게도 될 것입니다. 그런데 병
을 얻게 되는 것은 활동도 못하고 경제적 손실과(약값, 병원비) 시간을
허비해야 하니 괴로운 것입니다.

그래도 아파서 침상에 들면 또 다시 회개 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기는 것
니다. 혹시 그렇게라도 된다면 병상에 눕게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바뀔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자녀'는 배교자들의 집안 자녀로 봅니다. 구약 이세벨과 그의 자
녀가 죽임을 당한 것처럼 배교자들의 자녀가 죽임을 당한다는 경고입니
다.
회개치 않다가 이런 죽음의 심판을 받는 것을 보고 주님은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시는 자'로 깨닫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교회에서 특히 교역
자와 의롭지 못하게 다투거나 범죄로 인해 전도 문을 막고 교회 사회를
어지럽게 한 교인의 가족이 대개 상당한 어려움을 받고 환난을 겪는 것
을 보게 됩니다.

주님은 교회들의 각양 모습을 살피시고 장단점을 일러주시듯 교회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복과 화를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계 2:24-25)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단
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
울 것이 없노라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다행히 두아디라 교회에 사단의 교훈에 깊이 빠지지 않은 소수의 무리
가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다른 짐', 즉 특별한 충성을 바라시
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그들에게 남아 있는 참 신앙을 주께서 오실 때까
지 굳게 붙들고 있을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두아디라 교회가 잘 한 것과 그 진보한 것은 칭찬 받았지만 이세벨주의
의 사단적 교훈이 물든 중에 중심을 보시는 주님은 그래도 간직하고 있
는 참 신앙을 잘 유지하기를 간절히 바라셨습니다. 교회가 사상적으로
더러워지면 전체를 개혁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중세기의 루터의 개혁
은 의미가 다릅니다.

우리가 보건대 교회 중에 이단적 사상이 뿌리내리면 그 무리들이 멸망
할 때까지 성장해 가므로 회개가 대단히 어려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단의 단체들은 옛보다 오늘날이 많아졌고, 일부 하나님의 저주를 받든
가 아니면 교회를 계속 핍박하고 유혹하는 중에 종말까지 함께 유지 발
전되고 있습니다.


(계 2:26-29)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
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내가 또 그에
게 새벽 별을 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
을찌어다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신다 함은 이 세상에서 주어진다는 것이 아
니라 주님 재림하실 때 주와 같이 영광된 승리자들이 될 것이라는 뜻입
니다. 신앙은 현실적으로 우리를 영적 승리자로 만드셨고 영으로는 성도
의 실존이 세속의 사상과 그 모든 것들의 힘을 정복할 능력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입니다.

'철장'을 가지고 '질그릇 깨뜨리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입니다. 질그릇
이 세속의 힘과 그 능력인데 반해 주님의 권세는 철장에 비유되었습니다
이긴 자들에게는 그러한 주님의 권세를 영적으로 힘입게 해 주신다는 뜻
입니다. 교회의 힘은 이와 같이 참으로 강한 영적 능력을 가지고 세상을
이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새벽 별'을 주신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신다, 즉 주의 능력을 소
유케 하신다는 것입니다(계 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
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
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그리고 주님이 새벽 별로 비유된 것은 유난히 밝고 아침 직전에 뜬 별로서 영광의 주님을 상징합니다.










제 3장 아시아 7교회 중 3교회



(계 3:1-3)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
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
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
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
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사데’(남은 자취의 물건) 교회에 ‘하나님의 일곱 영’, 즉 성령으로
교회를(일곱별) 주관하시는 주님으로 나타나셨습니다(계 1:20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별은 일곱교회
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사데 교회는 겉으로는 잘 믿
는 교회처럼 형세하나(‘살았다 하는’) 성령이 떠난 교회요 영적으로
는 죽은 교회였습니다.

사데 교회는 전체적으로 온전한 신앙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중에도 영적으로 회복할 수 있는 소수의 교인과 진리가 남아 있었던 것
으로 보입니다.

주님은 에베소 교회에 회개하는 방법을 제시하셨습니다.
(1) 주님께 들은 바 진리를 기억하고 (2) 말씀을 따라 지키어 행하고
(3) 그러므로 해서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철저한 반성을 통하
여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도적 같이’ 임하시는 것은 심판적으로 오심을 의미합니다.믿음이 신
실한 상태의 자녀에게는 주님이 도적같이 오시지 않습니다. 도적이 언
제 올지 모르듯 심판 받을 자에게 갑자기 닥치질 주님의 진노를 일컫습
니다(살전 5: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보통 사람이 큰 화를 입을 때에도 자신의 삶의 역사를 다시 읽게 합니
다. 예수님의 성도에 대한 간섭은 더욱 철저하신데 환난을 통하여 거룩
하지 못하며 충실하지 못한 성도의 삶에 대한 경고하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책망이나 세상으로부터 받는 환난도 거의 부지불식간에
받는 수가 많습니다.예고 없이 도적 같이 주님의 임재가 있으므로 진노
를 받지 않도록 날마다 깨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계 3:4-6)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
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
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
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
인 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그 옷’은 믿음의 옷, 영적인 상태를 뜻합니다. 그 믿음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마음에 ‘합당
한 자’였습니다.흰 옷을 입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닌다 함은 주와 함께
영원히 살 것을 뜻합니다.

신앙의 승리자는 ‘흰 옷’을 입고(믿음으로 의로움을 인정받음) 또한
하나님의 ‘생명책’에 뚜렷이 기록될 것입니다. 죄인을 구속하시고 대
속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심판 날 아버지 앞과‘그 천사들’, 즉 심
판 때의 증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해 주실 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

특별히 이 사데 교회에 소수의 무리는 외식적인 그 교회의 영적 환경에
서도 믿음이 신실하므로 인정해주신다는 약속을 강한 어조로 표현해주
신 것입니다(마 10:32-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
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 막 8:38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
끄러워 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계 3:7-8)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
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빌라델비아’(형제 사랑)는 이 교회의 성질을 반영하는 뜻에서 거룩
하시고 진실하신 주님으로 나타나셨고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게 하시는 섭리의 주인으로 오셨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거룩한 교회요 진실한 교회임이 평가됩니다. 서머나
교회처럼 칭찬만 받는 교회입니다.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성경상 다윗은 이스라엘 국왕을 대표하
고 유대인의 권위적이고도 고결한 왕이요 정신적 조상으로서 내력을 갖
고 있습니다.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리고 나아가서는 천국의 열
쇠를 지니신 분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주님의 이러한 권세와 영광스러
움을 나타내 보이신 것은 교회의 영적 권위와 그 삶의 키를 붙들고 역
사할 선지자적 역할을 본 교회가 잘 감당하고 있다는 간접적인 축복인
것입니다.

‘열린 문’은 우선 들어가기가 쉬우며 환영하는 상태입니다. 그 문은
천국 문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구원의 문이 활짝 열어져 있다는 것
이며 은총의 문이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이 교회는 교인 수와 그들의
권위, 경제력으로 볼 때는 빈곤한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문화적 환경에
위축되지 않고 주의 말씀을 잘 지키는 자들이었습니다. 주를 ‘배반치'
아니하였습니다.



(계 3:9)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사단의 회’,즉 배교자들은 신앙이 투철한 빌라델비아 교회에서 결국
은 패망하고 무릎을 꿇게 될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신앙인의 영적 승리
를 보장하시는 뜻입니다. 그리고 본래 신앙이 참되고 성실한 자일수록
그런 극한 시험을 받게 됩니다.

시험이 없다는 것은 오히려 이상한 줄 알 것입니다. 욥이 하나님을 잘
섬겼으므로 하나님은 선하신 뜻에서 시험을 하신 것입니다.외부적으로
보기에는 욥의 아내가 오해하듯 저주받는 것으로 여길 만큼 마귀의 시
험이 있었으나 그 시험은 잘 믿는 욥을 확인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였
습니다. 진실한 신약 성도에게는 물리적인 시험보다 영적으로 거짓된
사상의 시험을 받기가 쉽습니다.


(계 3: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빌라델비아 교회는 ‘말씀’을 잘 지키는 신앙으로 굳힌 교회였습니다
(8,10).
‘인내의 말씀’, 주님의 말씀을 따르려면 인내가 동반하기 때문입니
다. 본 교회가 말씀을 지키기 위해 고난 중에 인내했다는 것을 강조하
려는 표현입니다. 역시 인내 없이는 주를 따를 수 없는 일입니다.주의
말씀을 환난과 시험 중에 참음으로 지킨 자들에게 끝까지 보호하시고
구원해 주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진리를 따르는 것은 많은 본성적인 욕구와 외부로부터 받는 정신적 갈
등에서 인내하고 적대에서 참고 선하게 잘 싸워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
의 말씀을 인내의 말씀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라’하신 이 ‘때’를 주님의 재림 때로 직
역하면 빌라델비아 교인이 세상 종말까지 계속 존속해야 하는 것입니
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당시 빌라델비아 교회만 받을 크다란 환난을
의미합니다.

‘온 세상’은 두 가지로 유대 전역을 의미할 수도 있고 말세론적으로
세상 전체를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좁게는 유대 전역이며 말세론적으
로는 그런 교회의 종말적 상황입니다.


‘시험의 때’는 빌라델비아 교회 그들의 역사 안에 큰 환난을 받는다
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습니다. 어느 때인지는 분명하지는 않습니
다. 다만 그러한 교회는 말세에 주님이 지켜 주신다는 뜻은 확실합니
다.

또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신다는 것은 휴거론자들의 견해처럼 잘
믿는 신자는 대환난을 피하여 공중으로 휴거함을 뜻한다고 해석한다면
앞서 서머나 교회도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칭찬만 받는 교회로서 휴거
의 약속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신앙이 좋은 교회가 받을 축복이 휴거
라면 서머나 교회도 환난을 면하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그러나 2:10에 서머나 교회는 ‘환난을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따라
서 면하게 됨이 단순히 고통을 면케 되는 것보다 환난 중에 주께서 굳
게 지켜 주셔서 사상으로 승리 할 수 있게 하신다고 볼 것입니다. 비
록 빌라델비아 교회가 어떤 큰 환난 중에 말씀대로 도움을 받았을지라
도 지상의 모든 교회는 성경 전체 맥락에서 볼 때 환난 중에 순교하고
사상으로는 승리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약적 승리의 어의(語意)는 육의 피신과 보호보다 시험에 이기고 승
리하는 것을 뜻합니다(요 17:15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
함이니이다’)(계5:2-4 주해 참조).


(계 3:11-13)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
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속히’ 임하시는 것은 종말론적 시간의 단어로 주께서 항시 성도와
함께 하시고 신앙 안에서는 언제라도 임하신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속
도의 시간이 아니라 약속의 감각으로 들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환
난 받는 성도에게 언제나 주께서 함께 해주실 것이라는 공존의 뜻입니
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가진 것’이란 말씀을 지키는 귀한 신앙 양심입
니다. 신앙은 이론적인 지식이나 그러한 이념적 기억이 아니라 체험적
으로 소유한 감정이 동반되는 것입니다.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누가 이 영광을 빼앗는 다기 보
다 신앙이 약해져서 영광이 없어질까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중요한 위치
를 얻게 될 것이라는 의미와 함께 지상의 교회로서 가장 든든한 성격
의 교회로 역사에 남을 것을 뜻합니다.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고 하신 대로 집 전체가 무너져도 기
둥은 든든히 서듯 그들의 신앙과 그로 인한 구원은 영원히 흔들림이
없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은 신천신지(新天新地), 곧 천국
입니다. 신앙 승리자의 이마 위에 하나님의 이름과 천국 그리고 그리
스도밖에 모르는 주님의 ‘새 이름’을 새긴다 하심은 이 모든 약속,
곧 하나님이 것, 그리스도의 것, 천국백성이 되는 것이 확고 부동하다
는 것입니다(계 19:12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고‘, 사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
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계 3:14)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
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라오디게아’(백성의 정의)에는 '아멘(진실)이시요 충성된 증인’으
로 나타나셨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는 참되신 분이시며 온전히 하
나님 아버지께 충성하신 분으로서 신앙이 미지근한 이 교회에 진실과
창조적 믿음의 신실함을 촉구하신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을 여호와의 증인들처럼 잘못 해석하여 하나
님이 창조하신 예수로 만물보다 앞선 자, 즉 하나님의 창조하신 맨 처
음 작품으로 보게 되면 예수님은 일반 인간처럼 하나님의 피조물이 되
어 그리스도의 신성과 전능성을 잃게 됩니다.

예수님의 신인 양성을 부정하면 성경 전체 맥락과 근본 진리가 와해됩
니다. 아무리 비상한 인간처럼 추게 세워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오직 신양 양성을 가지신 분으로 만물 창조에 성
부 하나님과 함께 역사하신 창조주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로
인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창조의 근본이라는 어의(語意)는 모든 것을 창조하시는 분이라는 뜻이
며 모든 창조의 근원되시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미
지근하여 진실이 부족하고 충성이 없고 창조적이지 못하고 주관이 없
는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불투명한 교회에 대하여 창조자요 절대적 주
권자로서의 예수를 닮도록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계 3:15-16)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 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
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
치리라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한’ 것은 신앙의 불투명성이요 열의
가 없는 신자의 형식적 생활을 말합니다.미지근한 신앙이란 결국 차가
운 쪽에 기울어 있는 것입니다.

신앙의 의지와 충성심은 반드시 뜨거운 열의로 가득 차 있어야 효과가
나타납니다. 사회의 어느 분야에서라도 열정이 있어야 일을 잘 해 낼
수 있는 법입니다(내가 불타야 남도 불탄다).

차가움은 단연코 부정적인 평가입니다. 이 교회는 뜨거운 신앙도 완전
히 신앙을 잃고 식어버린 것도 아닌 상태로서 주께서는 이러한 상태를
아주 싫어하십니다. 차가움의 단어는(ϕυχρός)는 싸늘하다,차갑다, 냉
수, 식어짐 등으로 풀이됩니다.

광적 신앙과 참 기쁨으로 충만한 신앙의 표현은 구별되어야 합니다.
단순히 기쁨의 표현만으로 광기라고 비관할 수 없습니다. 다만 신앙의
생동감은 뜨거운 열정을 동반하여 역동적 생활이 있어야 합니다. 야고
보는 행위가 없는 신앙은 죽은 자에 비유하였습니다.그처럼 교회는 열
정을 가지고 믿음을 나타낼 수 있는 활동성이 필요한 것입니다.

‘미지근한 것’은 차라리 차가운 것보다 더 못하여 입에서 ‘토하여
내치리라’ 하심은 취하시기에 매우 괴로우심을 뜻하며 버리신다는 마
지막 결론입니다. 중도에 서서 확실한 입장을 나타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런 확실한 자기 표현은 성경적으로 볼 때 고백이라는
요청에 응하기 위해 필요한 태도인 것입니다. 주께서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도의 우유부단함을 대단히 싫어하십니다.


(계 3:17)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
지 못하도다

여기 ‘부자’의 뜻은 외부적으로 보이는 것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주
께서 보실 때 영적으로는 매우 핍절한 상황이었습니다(‘곤고, 가련,
가난’). 풍요 속의 빈곤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경제적으로 부요
였으나 영적으로는 가난하고 성스럽지 못하고 사상적으로 추한 성질의
교회였습니다. 중심을 보시는 주께서는 사람들의 세속적 가치로 평가
한 것들을 세밀하게 살피시어 거룩한 잣대로 판단하시고 교회의 주인
되신 예수님의 마음에 맞아야 할 것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은 영적으로 어두운 것이며 수치스런 인격
을 뜻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자만과 자기의 영적 상태가 부끄러움
과 가련함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오늘의 교회 사회가 많은 부분에서 교회의 본질적 가치관에 혼탁한 세
속주의 사고가 개입하여 속화된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교회는 가시
적 교회당 건축물이나 교인 숫자로 영광을 대변하려는 목회의 충성 이
론은 과연 성경적이냐 하는 반성이 요청되는 것입니다.



(계 3:18)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
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주님께 ‘불로 연단한 금을 사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주시
는 변치 않는 신앙을 뜻합니다. 영적인 은혜를 얻어 영혼의 상태가 부
요하라고 하셨습니다. 회개하고 성령의 사람으로 온전한 신앙을 가지
려면 불로 연단한 황금처럼 인내와 환난을 이기며 자아와의 진정한 싸
움을 싸워 영적으로 승리해서 영으로 흰빛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연단한 금은 거래의 소재로서 무슨 은사를 단순히 구하라는 것이 아니
라 스스로 자신이 그렇게 연단하여 새롭게 거듭나는 영혼의 상태를 찾
으라는 것입니다.

‘흰 옷’은 믿음으로 의롭게 해 주시는 마음의 옷으로 회개를 통한
용서의 옷, 성결한 옷입니다. 부끄러운 영적 수치를 회개로 통해 성결
의 옷으로 가리우라는 것입니다. 흰빛은 깨끗하다는 상징으로 검정과
어두운 영적 세계와 대조적입니다.

‘안약’은 영적 치료를 얻게 되는 정신적 능력입니다.성령의 영적 효
험입니다. 영안이 어두워 진정한 자아의 영적 상태를 깨닫지 못하고
있으므로 고난을 겪더라도 회개하고 성찰하여 안약을 발라 눈을 밝게
하듯이 영적으로 마음의 눈을 뜨라는 것입니다.

‘눈에 발라 보게’하는 것은 영적 눈이 뜨이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즉 성령의 충만으로 영안이 열리도록 하라는 것입니다.이단에 빠진 사
람들의 정서는 눈빛에서도 그 정서를 나타냅니다. 전통을 무시하고 차
분하지 못하며 이론적인 대화는 아주 강렬하게 일방적이어서 불가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눈빛은 세상을 정확하게 보시며 또한 영혼을 불쌍히 여기시
는 사랑의 눈을 가지셨을 것입니다. 바로 보신 주님의 영안처럼 우리
교회는 먼저 자아에 대한 바른 깨달음이 중요합니다(마 6: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계 3:19)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사랑하시는 자를 책망’하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책망은 사랑의
동기에서 일어납니다. 잘못에 대한 책망이 없고 무관할 때 이미 관계는
끊어진 상태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책망 받을 때 열심히 회개해서 새롭
게 변화되어야 합니다(히 12:5-8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
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사
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 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
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열심을 내라’, 회개로 가는 길도 역시 뜨거운 열심 그 후에 연결되
는 것입니다. 거저 고요하게 묵상하는 것으로는 회개하기 어렵습니다.
양심의 뜨거운 열정이 필요합니다. 영혼의 새로운 창조는 철학적 관념
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해의 각도를 변하게 하는 지적 형태를
교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온몸으로 느끼고 발휘하는 회개 운동이 삶 전
체에 관여하여 혁명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그것은 열심을 내기까지 하
는 생동감이 넘치는 일입니다.

책장 속의 책을 바꿔 끼워 넣는 방향의 설정이 아닙니다. 책 속의 주인
공을 실제 만나는 현장입니다. 드라마가 아니라 다큐멘터리입니다.그러
므로 자연히 열심을 뿜어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열심이 없는 것은 신자는 신앙의 진정한 진의를 체험할 수 없습니다.열
심만 낸다고 진리를 다 알 수 있다는 공식은 아닙니다.충성에도 마찬가
지로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하시므로 신앙은 열심있는 태도는 시작
과 과정에서 절절하게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신앙은 지적(知的)인 것이
아니라 동적(動的)입니다.


(계 3:20)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
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주님은 영적으로 닫혀진 성도들의 마음 문 앞에서 두드리십니다. 예배
와 교훈과 여러 가지 모양들로 권면하십니다. 마음 문을 열면 주님께서
영적으로 들어오셔서 ‘더불어’ 함께 영적 교제를 나눌 것입니다. 더
불어 함께 하시는 것이 임마누엘의 역사를 이루는 것입니다. 생존하신
하나님의 동행은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우리와 삶 속에 공존하는 것입
니다. 그것은 주님이 약속하신 성령과의 동행입니다.

우리들의 마음 문을 열고 주님을 마음으로 모시게 되어 주께서 살아 움
직이는 삶의 공유가 신앙의 진정한 실체입니다. 더불어 함께 먹는다 하
심은 먹고 사는 것이 삶의 다른 표현이겠지만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즐
거운 식사를 연상케 하십니다. 잔치집으로 비유되는 천국의 체험이 이
루어진다는 뜻에서 더불어 먹는다는 표현을 하신 것 같습니다.


(계 3:21-22)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신앙으로 승리하는 자는 주님의 자리에 함께 앉게 될 것이라 하셨습니
다. 그것은 하늘의 영광에 동참하는 것을 뜻합니다. 자리를 함께 한다
는 것은 의미가 큽니다(신 12:7 ‘거기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을 인
하여 너희와 너희 가족이 즐거워할지니라’).

다윗 왕이 악한 사울로부터 위협을 받을 때 도와 준 사울왕의 아들 요
나단의 용기와 우정 때문에 맺은 정을 생각하여 요나단의 절뚝발이인
아들을 축복하여 왕의 상에서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삼
상 18:1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연락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니라’).

본문의 주의 자리에 앉게 해주시는 은혜는 바로 그와 같은 사랑과 은혜
의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삼하 9:6-8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
셋이 다윗에게 나아와서 엎드려 절하매 다윗이 가로되 므비보셋이여 하
니 대답하되 주의 종이 여기 있나이다 다윗이 가로되 무서워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비 요나단을 인하여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조부
사울의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먹을찌니라
저가 절하여 가로되 이 종이 무엇이관대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
아 보시나이까).




성경 : 계3:1-6
제목 : 사데 교회


사데 교회는 한 마디로 이름만 있는 교회로서 실제로는 죽은 교회입니
다. 2절에 온전함을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교회는 인간의 사업처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께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1. 자기 이름과 명성을 위하는 교회였습니다

영광을 사람이 차지할 때 교회는 그 기능을 상실케 됩니다. 하나님으로
부터 모든 영광이 옵니다. 사데 교회는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실
상은 죽은 자라 하였으므로 사람 같으면 식물 인간으로 존재하듯 가망이
없는 형편을 말합니다. 얼마나 두려운 말씀입니까? 구원의 하나님으로부
터 이러한 지적을 받는다는 것만큼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2. 4, 5절에 흰옷은 성도의 믿음을 뜻합니다

사데 교회는 교회의 성질을 분명하게 간직하지 못한 자들이었습니다. 교
회의 본질은 믿음을 가지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신령함으로 온전히 하나
님을 경외하는 곳입니다.

사데 교회는 신앙적 인격을 무시하고 단지 교인이라는 명분과 함께 사회
적으로 이름을 낼 만한 일들에만 신경을 쓴 교회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시험을 얼마든지 받을 수 있는데 이는 주 앞에서는 감출 수 없이 인정받
을 수 없는 태도입니다.



3. 그리스도를 내세우고 증거하는 태도가 없는 교회였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람 앞에서 시인하면 아버지께 시인하여 주실 것이라 하
셨습니다(마 10:32-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
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
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우리의 신앙 고백은 영생에 이르는데 사데 교회는 이러한 간증과 고백
이 없고 매우 인간적인 발상으로 종교 생활을 하는 자들이었습니다(롬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
르느니라’).

신앙을 지켜 나가는 데는 여러 가지의 언행(言行)에 책임이 따르는데,
중요한 것은 교회가 전도하고 말로 증거하는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인정
을 얻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교회는 전도와 믿음이 없는 교회
로 그 이름만 가진 교회이며 활동하는 일이 있어도 주님과는 무관한 성
질로 소위 사회주의적인 교회였습니다.


사데 교회는 밖으로는 교회라는 간판과 명성을 가졌으나 주께서 보실
때에는 전혀 교회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교회와 선교 단체가 세
상에는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소위 사회주의 복음이라는 현대 선교가 일어났습니다.하나님 중
심보다 사회 요구에 따른 변질된 복음 사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직
주께 인정받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경 : 계3:7-13
제목 : 빌라델비아 교회


주님이 교회를 방문하실 때마다 나타나시는 모습이 여러 모양으로 형용
되고 있는데 본 교회는 거룩하고 진실하신 주님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이
는 빌라델비아 교회의 모습이기도 합니다.서머나 교회와 함께 매우 칭찬
을 받는 교회입니다. 우리는 이 교회의 장점을 잘 깨닫고 본 받아야 할
것입니다.



1. 약한 능력 가운데서도 주님을 잘 믿는 교회였습니다

달란트의 비유에서(마25:) 우리 각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가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처럼 교회의 믿음의 분량도 각양인
줄 압니다(롬 12: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또한 믿음의 진정한 근거는 주께서 주신 것이라 했습니다(엡 2:8 ‘너희
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
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빌라델비아 교회는 적은 능력의 교회라 했으니 교인 수(數)나 경제력 등
에 약한 교회였을 것입니다. 세상은 가치 면에서 물질을 놓고 평하기 쉬
운데 교회도 그와 같은 가치관으로 빠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대단
히 위험한 생각입니다. 그런데 약한 중에도 빌라델비아 교회는 넉넉히
이겨나가는 믿음이 강한 교회였습니다(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수 있느니라’)



2. 10절로 보아 말씀을 중심 하는 교회였습니다

이 교회는 세속적인 연약함에 굴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말씀주의 신앙
으로 가장 귀한 신앙을 가진 교회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귀히 여
기는 신앙은 최고의 신앙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에서 또
한 교회 역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철학은 그 시대의 아버지로서 역할을 감당하지만 성경과 신앙은
시대를 초월하여 영원히 고수되는 진리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시대마다
이성주의(理性主義)로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려 했으나 개혁자들로 인
해 바르게 전수되고 있습니다.



3. 12절에 새 예루살렘에 거할 것을 축복하심에서 이 교회는 내세주의
(來世主義)임 잘 알 수 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내세에 관심을 집중하는 교회입니다. 앞서 사데교회
처럼 세상의 영광에 전전긍긍하는 일은 전혀 없었습니다.오직 말씀을 따
르는 신앙으로 인내하며 이단과 싸우며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의 교회로
서 영생을 가진 교회의 본이 되었습니다.



교회는 세속의 사업처같은 곳이 아니라는 점이 강조되어야 합니다.그래
야 교회의 본질을 가질 수 있으며 주께로부터 인정을 얻을 수가 있습니
다. 어떠한 일을 위해서도 세속적일 수는 없습니다.교회의 일은 세속적
으로 평가될 수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지상 교회는 그 본질적인 기능을
갖추기 위해서 부단히 개혁되고 거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제 4장 보좌의 모습(천상교회)



(계 4:1-2)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 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이 일'은 3장까지의 계시를 말합니다. 사도 요한이 본즉 '열린 하늘의
문'이 있는데 이는 계시가 보여지는 하나님의 영광스런 보좌가 열리는
것이며 계시의 출처가 되는 하나님의 나라가 요한을 초청하는 모습으로
열린 문이 보이는 것입니다.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들렸습니다.이것은 계1:10에 있었던 그 음성
이었습니다. 곧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주어가 빠지고 거저 말씀이 들릴
때는 성부 하나님의 말씀 자체로 보는 것이 안전한 해석입니다. 계시 내
용의 진정한 예언자는 성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계 1:1 '예수 그리
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
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이리로 올라 오라',이것은 천국의 환상을 보여주시기 위해 사도 요한을
영적으로 부르신 것이지 세대주의 휴거론자들이 주장하듯 지상 교회 전
체를 휴거시키는 음성이 아닙니다. 본문은 현재 사도 요한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은 말세에 있을 계시를 뜻합니다.마땅히 될 일이
라고 강조하는 것으로 보아 종말론적 사건을 의미합니다.
사도 요한은 성령에 감동해 있었고 영적으로 하늘의 보좌에 올라갔습니
다.
사도 바울도 경험한 바 있습니다(고후12: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 사년 전에 그가 세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

휴거론자들은 사도 요한이 영적으로 천상에 오른 것을 지상의 모든 교회
가 들림 받은 것으로 확대 해석합니다.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비약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본문은 거저 사도 요한 자신이 밧모섬에서 이 계시를 받는
중에 영적으로 천상에 오른 것뿐입니다. 문장에서 도무지 교회의 휴거로
읽을 수가 없으며 현재 계시가 차분히 주어지는 과정에 있을 뿐인데 갑
자기 여기서 교회가 등장할 것이 아닙니다.

성경 해석에 있어서 비유해석은 비약해석이 아닙니다. 사도 요한을 교회
로 보아야 한다는 것은 도무지 납득할 수 없습니다.세대주의적 전천년설
자, 즉 휴거론자들은 휴거라는 교리 전제를 먼저 염두에 두고 성경을 교
리에 적용시키는 과정에서 그야말로 근거 없고 아전인수격으로 풀이하는
것은 혼돈의 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는 다음 절로 보아 성부 하나님이십니다.


(계 4:3-4)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
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또 보좌에 둘려 이십 사 보좌들
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 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면류
관을 쓰고 앉았더라

보좌에 앉으신 이의 모양에 '벽옥'은 깨끗한 이미지로 성부 하나님의 흠
없으시며 성결하심을 의미하고, '홍보석'은 엄위, 심판, 정의의 뜻이 있
습니다.

'무지개'는 '녹보석'으로 은혜와 생명을 상징합니다. 무지개는 또한 하
나님의 언약을 상징합니다. 은혜와 약속의 하나님을 상징합니다(창9:13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
거니라').

하나님 보좌에 둘려 있는 24장로들에 대한 여러 해석이 있습니다.
(1) 이들의 옷이 흰옷, 승리의 면류관(스테파누스, )등으로 보
아 구원받은 성도를 대표하는 자들입니다.

(2) 5:10을 보아서 이들이 휴거한 지상 교회가 아님을 증명합니다.'저희
로(구원 얻을 백성) 우리(24장로 자신들) 하나님 앞에'라고 찬송하고 있
습니다.

24장로가 아닌 구원 얻는 많은 무리들이 그 뒤 군데 나타나므로 24장로
는 다른 의미로 해석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3) 이 장로들은 구약의 12지파(계21:2)와 신약 12사도(계21:14)로 신구
약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하는 천상교회의 장로로 해석합니다. 구약 시대
의 백성과 신약 시대의 백성을 함께 통괄하시는 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 해석이 무난한 것으로 봅니다.




(계 4:5)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나고 보좌 앞에 일곱 등불 켠
것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났습니다. 번개는 뇌성과 함께 위엄
과 심판 주(主)의 보좌를 의도하며 음성은 살아 계신 분,진리 등을 뜻합
니다.

'일곱 등불 켠 것', 일곱 등불은 완전하신(7) 성령님을 상징합니다. 즉
하나님의 보좌 주변이 이와 같이 영광, 엄위, 성결 그리고 빛으로 둘려
있다는 것입니다. 조금의 의심할 바도 불공평할 것도 없는 완전한 위치
의 보좌를 뜻합니다(요일 1:5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
시니라').


(계 4:6)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 뒤에 눈이 가득하더라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수정은 맑은 투명체이고 유리는 빗방울이란 단
어와 같으니 맑은 물같은 유리 바다입니다.구약 시대 성전에 제사장들이
손을 씨고 들어가기 위한 큰 대야(물두멍)가 성소 입구에 있었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보좌 앞에 이와 같은 유리 바다가 있으므로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서 씻음으로 의로워진 후에 뵐 수 있다 함을 상징합니다(출
30:18-21 '너는 물두멍을 놋으로 만들어 씻게 하되 그것을 회막과 단 사
이에 두고 그 속에 물을 담으라 아론과 그 아들들이 그 두멍에서 수족을
씻되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할 것이요 단에 가
까이 가서 그 직분을 행하여 화제를 여호와 앞에 사를 때에도 그리할지
니라 이와 같이 그들이 그 수족을 씻어 죽기를 면할지니 이는 그와 그
자손이 대대로 영원히 지킬 규례니라').

'네 생물'은 하나님의 보좌 근저에서 봉사하는 특별한 천사들입니다. 넷
은 동서남북 전 방향에 하나님의 영광을 보좌하는 천사들이 진쳤다는 것
입니다.

'앞 뒤 눈이 가득'한 것은 무한한 지혜의 능력입니다. 동시에 깨어 있는
충성스런 천사의 활동하는 정신을 나타내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
을 즉시에 하달시키며 지상에서 올라온 일들을 즉시로 하나님께 알려 드
리는 하나님의 보좌관들입니다.



(계 4:7)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세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네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네 생물들은 비유로 그 충성하는 특징들을 말해 줍니다.
첫째는 '사자'같다 했으니 담대함과 강한 의지를 상징하며,계곡의 왕 사
자처럼 하나님의 전능하신 통치력을 이 생물이 표상합니다.

둘째는 '송아지' 같다 했으니 일하는 충성의 상징이며,구약 시대에는 희
생의 제물이었습니다.제물처럼 충성스럽게 봉사하는 천사로서 예수 그리
스도의 속죄처럼 헌신적인 봉사의 행위가 이 천사의 활동 중심이며 또한
지상에서 예수님의 충성을 통하여 보여주신 하나님의 헌신적 사랑을 나
타내보이는 것입니다.

셋째는 '사람' 같다 했으니 사람은 만물을 다스리는 지혜를 상징합니다.
여기에 나오는 짐승들이 주는 뜻과 함께 사람도 역시 비유된 단어로 해
석되어져야 합니다.

넷째는 날아가는 '독수리' 같다 했으니 신속성과 고결한 영적 차원을 상
징합니다. 성도의 영적 고결함을 뜻하기도 하는데 여기 천사의 신속성과
높은 차원의 신적 활동을 의미합니다.

4복음서를 네가지로 비유할 때도 이와같은 비유로 설명하기도 합니다.마
태복음은 사자복음으로 메시아 되신 왕적 모습의 인간 예수를, 마가복음
은 고난의 종으로 비유된 송아지 복음이라고 하며,누가복음은 기록 자체
가 예수님의 인성에 치중하여 완전하신 인간 예수를 상징하므로 사람복
음 그리고 요한복음은 예수의 신성에 치중하므로 영성을 상징하여 독수
리 복음이라 합니다(겔 1:10'그 얼굴들의 모양은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
이요 넷의 우편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좌편은 소의 얼굴이요 넷의 뒤
는 독수리의 얼굴이니').


(계 4:8-9)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
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 그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돌릴 때에


네 생물들이 각각 '여섯 날개'를 가졌습니다. 이는 충성스런 활동을 위
한 날개요 신속히 움직이겠다는 의미입니다(사 6:2 '스랍들은 모셔 섰는
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눈이 가득함'은 역시 지혜와 통찰력 그리고 깨어 있어 온전히 충성함을
뜻합니다. 그들은 '밤낮 쉬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고 있었습
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배하는 곳입니다.하나님을 찬양하
고 감사하는 일로 종일 경배할 것입니다. 예배에 인색하신 분들은 이와
같은 광경이 감동되지 못할 것입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성부 하나님의 거룩성을 찬미합니다.
3번씩 한 것에 대한 해석을 꼭 성삼위 하나님께 찬송하는 것이라 단정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거룩의 완전을 세 번 반복함으로 충분하게 입증하
려는 의도입니다.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계1:8)는 성부 하
나님의 영생하심을 뜻합니다(계 4:9-10 '그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
사를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돌릴 때에 이십 사 장로들
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
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계 4:10-11) 이십 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4생물들의 찬송이 있을 때 24장로들도 보좌 앞에 앉으신 하나님께 '엎드
려' 경배하였습니다. 이는 겸손이요 경배의 중심을 표합니다. 경배한다
는 말은 히브리어로 바라크(&r'B)인데 엎드리다, 꾸부리다, 축복등으로
번역됩니다.

그러므로 경배는 하나님께 굴복하는 겸손의 태도가 있어야 합니다. 예배
를 즐거운 종교적 문화로 취급할 것이 아니라 영광과 존귀의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바라크는 축복으로도 번역되니
꾸부려 겸손히 하나님을 경외(경배)하는 자들이 은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는 것은 신앙의 승리자들이 그 영광을 주님의
것으로 알고 돌려 드린다는 감사의 태도입니다(계 4:4 '또 보좌에 둘려
이십 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 사 장로들이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이것이 중요합니다. 교회당에 바쳐지는 성물(聖物)에 대해 자기 자랑을
빼놓기 싫어서 성함을 써 붙이는 것 등은 참된 충성심이 될 수 없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영광을 돌리드리기 보다 예수님
의 이름으로 자신의 영광을 입으려 애쓰는지 모릅니다.여기 장로들의 경
배 모습을 보고 반성해야 할 줄 믿습니다.

24장로(천상교회, 하나님 백성의 대표)들의 찬송과 4생물들의 찬송은 유
사한데 영광과 존귀 그리고 감사 대신 '능력'을 찬송했습니다. 4생물들
은 거저 감사하심을 찬송했으나 24장로 이들이 능력을 찬송함에는 교회
에 주신 신앙의 능력, 구원의 능력 등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만물을 지
으신 창조주에 대한 능력과 그 섭리 등을 함께 중심으로 찬송한 것입니다











제 5장 7인봉한 책



(계 5:1)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4장에 이어 5장도 하늘의 광경을 연속적으로 보고 있는 사도 요한이었으
므로 원서에는 2절처럼 '또'(카이, )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내가'는
역시 사도 요한 자신입니다. 천상에서 계속 이어지는 요한의 환상입니다.

성부 하나님의 '오른 손에 책', 오른 쪽은 권세, 권능,주권 등을 뜻하며
여기 책은 장차 되어질 말세 계시의 내용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 책은 '안팎으로' 쓰여졌습니다.이는 종말에 대한 예언이 충분하게 쓰
여져 있다는 것과 확실하게 이루어질 종말의 계시임을 뜻합니다.즉 가감
할 수 없는 완벽한 말세 예언임을 의미합니다.

'일곱 인으로 봉한 것'은 일곱 번의 도장, 즉 계시록에서 일곱이란 숫자
적 의미는 완전함을 뜻하므로 확실하게 봉하여 아무라도 임의대로 열어
볼 수가 없도록 되어 있다 함이요,일곱 번씩이나 도장을 찍고 봉해진 것
은 내용이 중대하여 잘 지켜져야 할 중요한 문서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계 5:2-3)또 보매 힘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니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이가 없더라

'힘있는 천사'(10:1, 힘센 천사), 힘있다는 원어는 이스큐로스( )
로 강력히 뭐든 해 낼 수 있는 뜻입니다.즉 이 천사의 능력과 권위를 말
하며 육체적 힘이 아닌 하늘의 권능을 힘입은 특별한 천사로 보입니다.
감히 이 예언서를 아무라도 볼 수 없음을 설명하기 위해 선택된 힘있는
천사의 선언을 서두에 말하게 한 것입니다.


그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누가 책을 펴며 그 인을 떼시기에 합당
하냐?'고 했습니다.누구냐? 란 질문이라기 보다 감히 누가 할 수 있느냐
는 부정 의문 형식입니다.

'합당하냐'란 말은 말세 계시를 스스로 펴 볼 자로 적합한 자가 누구이
겠느냐는 말입니다. 말세 계시를 펴 보일 권세와 그 인격 그리고 계시를
취급할 위치를 가진 자가 어디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뒤에 이
어지는 내용으로 보아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볼 수 없으며 그러한 만
큼 이 책의 내용이 얼마나 귀중한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천상천하에 합당한 자가 없다라고 했습니다. 천상에는 천사들일 것입니
다. 신령한 영들이지만 그들도 감히 이 계시의 책을 펴 보일 수 없다는
것이며 천하는 물론 모든 인생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즉 우주 만물과 이
세상과 저 세상 모든 이를 통틀어 이른 말입니다. 그 누구라도 이 책을
스스로 펴 보일 수 없는 것입니다.


(계 5:4)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사도 요한은 이 책을 펴 보일 자가 없어 보여 크게'울었다'고 했습니다.
요한 자신을 비롯하여 그 어떠한 인생이라도 이 책을 보기에 합당한 의
로운 자가 없으므로 통곡함이요,이 상황에서 알고 싶고 보고 싶은 열정
적 소망에 북받쳐 크게 운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들의 신앙에는 눈물이 필요한데, 쉽게 흘리는 감성적 눈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신앙의 승리를 위해 울 것입니다. 회개함으로 울
고 무지하며 무능함을 고백하면서 울 때 하나님의 위로가 있을 것입니다
. 하나님을 향하여 환난 중에 통곡을 많이 한 자가 신령해 진다는 것을
우리는 간증과 경험으로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의 눈물은 나약한 자의 감성에서 터져 나오는 약한 눈물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간절함에서 나오는 갈망의 눈물이며 인간의 연약함에 대한
재확인의 경지에서 우러나오는 솔직한 죄인의 눈물입니다.


(계 5:5)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
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24장로 중에 하나가 통곡하는 요한에게 이르기를'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
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라고 했습니다. 구약 성경에 예언된 대로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뜻합니다(사 11: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이기었다'는 것은 예수께서 먼저 지상 생활 중에 죽음의 권세에서 부활
하심으로 승리하신 것을 말하고 그로 인하여 사망의 신 사단의 영역에서
승리하여 근본적으로 전능하심을 공표하신 완전 승리자를 뜻합니다. 따
라서 본 계시의 책을 보여주실 수 있는 분으로 합당하신 전능하신 능력
의 주님을 뜻하는 말입니다.

죽었다 살아나지 않고서는 사후의 세계를 말 할 수 없을 것이며 또한 객
관적인 증거를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동시에 말세의 예언을 아무라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간혹 죽었다가 재생(再生)하는 사람이 있으나 그
는 다시 죽습니다.주께서는 돌아가시고 완전한 부활로 사망의 권세를 이
기신 분이십니다.그러므로 사후의 세계에 대한 교훈과 세상 종말에 대한
예언을 하실 때 수락할 수 있는 객관적 입장이 서게 되는 것입니다.


(계 5: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
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보좌(하나님)와 네 생물(천사)과 장로(교회 대표)들 '사이에 어린양'(예
수 그리스도, 구약의 속죄물)이 섰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과 죄인들의 사이에 중보자 되심을 표합니다(딤전 2:5 '하나님은 한 분
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
스도 예수라', 요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 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어린 양이 '일찍 죽임을 당한 것'은 예수께서 십자가로 죽으신 것을 뜻
합니다(계 1:18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
토록 살아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일곱 뿔과 일곱 영'을 가졌는데, 일곱 뿔은 완전한(7) 능력(뿔)을 뜻하
며 일곱 눈은 완전한 지혜인데 성령을 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
의 완전한 지혜를 가지신 분이라는 말입니다.

휴거론자들은 이 성령이 천상에 와 있으므로 지상에는 이제 성령이 계시
지 않다고 하며 따라서 4:1에 요한이 성령에 이끌리어 영적으로 하늘로
간 것이 아니라 교회 전체의 들림으로 해석해 버립니다. 이런 해석은 성
령의 무소부재하심을 거부하는 이단적 신학입니다.성령님은 땅위에나 천
상에나 어디든 계십니다.

성령님은 땅에도 계시고 하늘에도 계시는 완전한 영으로서 국지적인 영
향을 받지 않습니다. 성령님이 교회와 함께 휴거했다면 뒷부분에 예수의
증인들이 나오는데 성령이 없이 신앙을 갖고 그 증인이 될 수 있겠습니
까?

그리고 성령이 4장에서 휴거하며 교회가 들림을 받아버렸다면 사실은 그
후에 일어날 예언에 대해 꼭 알 필요까지 없는 일입니다.왜냐면 이미 주
님을 맞아 공중에서 잔치를 할 것이라 한다면 부활한 몸이니 또 더 이상
무슨 어려움이 있어서 말세 교훈에 착념 할 일이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
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 고전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
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
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계 5:7-8) 어린 양이 나아 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 손에서 책을
취하시니라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 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
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
도들이라


어린 양(예수님)이 하나님의 '오른 손'에서 책을 취하셨습니다. 권세 있
는 예수님의 능력을 표시하는 오른 손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책을
취하시니 4생물과(천사들) 24장로들이 '찬양'했습니다. 어린 양의 영광
스런 권세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거문고는 찬송할 때 쓰던 악기이고 성
도의 찬송을 대표하여 드리는 것입니다.또한 향이 가득한 금대접을 가졌
는데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24장로들은 천상교회(무형교회, 無形敎會)의 장로들이며 지상
성도들의 기도를 금대접에 가득히 담았다고 했습니다. 금대접은 귀한 것
을 담는 그릇으로 그 가치를 지녔고, 성도의 기도가 향이 된 것은 구약
시대에 제물을 태워서 향을 하나님께 올린 것처럼 성도의 희생과 정성어
린 기도 그리고 헌신적 신앙의 모든 생활이 영적으로 태워져서 향이 되
었다는 것입니다(시 141:2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드는 것이 저녁 제사 같이 되게 하소서').



(계 5:9-10)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
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새 노래'(14:3), 이는 구원의 노래요 천국의 노래입니다. 천국은 모든
것이 새롭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유행스런 모습의 변화가 아니라 그래서
권태로울 것이 아닌 질적 변화요 영구적으로 만족할 새로운 것들로만 되
어 있습니다(새 하늘과 새 땅, 새 사람).

기독교의 노래는 진정한 새 노래입니다. 모든 문화가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중생함으로 새로운 것이 됩니다.세상의 곡조와 언어로는 인을 떼
시고 말세 예언을 보여주실 어린 양에게 찬미할 내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은밀한 표현으로 새 노래라는 구별된 노래를 뜻하는 말로 대신 하는 말
입니다.

24장로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시기에 합
당하심을 노래했습니다. 그리고 각 나라(세계적으로)중에서 사람들을(성
도들) '피로 사서'하나님께 드렸다고 했는데,피로 산다는 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땅의 성도들을 구속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여기 '산다'는 말은 장을 본다는 뜻인데 피값을 지불하고 우리를 샀다는
의미입니다. 즉 대속(代贖)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 그
리스도의 피로 값 주어 사신 교회입니다.마치 노예된 우리를 값 주어 산
것과 같은 격입니다.

얼마나 감사하신 주인이십니까? (행 20:28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
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라고 한 말을 볼 때 24장로와 성도(저희들)는
분리해야 할 문장으로 보입니다. 만약에 24장로가 4장에서 이미 휴거한
이 세상의 성도들이면 이렇게 표현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지상 성도들을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는 표현은 1:6과 같습니다.장
로들은 천상의 무형교회 장로들로서 지상의 교회를 대표하는 성도입니다.
저들이 지상 교회를 고하며 감사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땅에서 왕노릇'하는 것이 현재적 의미로는 그리스도인의 영적 왕권을
뜻하고 미래적 의미로는 천년 왕국이나 천국에서의 영생을 뜻합니다.


(계 5:11-12)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
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큰 음성으로 가로
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
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 주변으로 둘러선 천사가 수없이 많았습니다. 이
천사들은 교회를 위해 여러 가지로 수고하는 천사들입니다.
찬송을 전체적으로 부르니 큰 소리가 나겠지만 각각 힘찬 목소리로 찬송
했을 것입니다. 사실 찬송은 감사하며 힘있게 부르는 것입니다.십자가로
죽으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 드리는 찬송인데, 4:8에 성부 하나님
께 4생물들이 드리는 찬송과 24장로들이 하나님께 드린 찬송 4:12과 천
사들이 7:12에서 하나님께 드린 찬송이 비슷합니다.즉 성부와 성자의 동
등성을 뜻합니다.



찬송 내용에서,
(1) '능력'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약한 자의 표상 같았지만 사실은 능력에 완전하신 분임을 찬송함
이요
(2) '부'는 가난한 삶으로 지상에 사셨으나 이제 부요하심을 말하고
(3) '지혜'는 성령님의 완전한 지혜를 가지신 분임을 뜻합니다(계5:6 '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지상에서 무지한 것처럼 악한 자들에게 대처하시지 않고 하나님의 뜻으
로 죽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성부 하나님의 뜻을 위해 죽으신
것입니다(고전 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
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후 6: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4) '힘'은 육적 힘을 말합니다. 주님이 육신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던
그들에게 천사가 도와주는 힘으로 대항해도 이기셨을 것입니다. 육적으
로 힘이 완전하신 분입니다( 마 26:53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 두 영 더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5) '존귀'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의 자리를 비우시고 비하하셔서
비천한 가운데 계셨던 예수님이 이제 존귀하신 영광의 주(主)가 되셨으
니 그 본래의 존귀하심을 찬양하는 것입니다(빌 2:6-8 '그는 근본 하나
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
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
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
에 죽으심이라').

사실은 존귀하심이 하나님과 같으심을 노래합니다(계 4:11 '우리 주 하
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
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계 7:12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찌로다 아멘 하더라').

(6) '영광'은 예수께서 지상에 계실 때에 저주스러운 취급을 받으셨습니
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부활하시어 사실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성
부 하나님과 동등하신 영광스런 분임을 찬송합니다.

(7)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다 함에서 찬송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으
로 되어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께 드림은 역시 성부 하나님의 능력과 동
등 되심을 뜻합니다. 찬송은 축복이라는 말과 같이 쓰입니다. 축복이란
'좋은 말'입니다.

주님께 감사와 좋은 말로써 노래해 드린다는 것입니다(롬 1:25 '이는 저
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
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롬 9:5 '조상들
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
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막 14:61 '잠
잠하고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거늘 대제사장이 다시 물어 가로되 네가 찬
송 받을 자의 아들 그리스도냐').



(계 5:13-14)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
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
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찌어다 하니 네 생물이
가로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천상천하에 모든 만물들이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께 찬송하는데 앞서 들
러리 천사들의 찬송을 이어받아 찬송했습니다.

그러니까 맨 처음 4생물들의 찬송에 영광과 존귀를 이어 24장로들이 4:
11에 영광과 존귀로 시작해서 능력으로 마쳤습니다(계 4:8-9'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
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 그 생물들
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돌릴
때에').

이어서 5:12에 천사들은 능력을 이어 찬송의 이름으로 마칠 때 만물은
찬송으로 시작하여 능력을 마쳤습니다(시 98:4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
거이 소리할지어다 소리를 발하여 즐거이 노래하며 찬송할지어다).

하나님 보좌 주변에 있는 4생물(천사)들이 '아멘'으로 화답했습니다.
그것은 과연 그러하며, 그 찬송 내용이 합당하고 진실합니다라는 뜻입니
다. 24장로들은 천상교회의 대표들로 엎드려 경배했습니다(계 4:10'이십
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
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여기 장로들은 4생물들과 함께 교회를 대표하므로 항시 예배하는 생활입
니다(계 19:4 '또 이십 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
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천국 예배의 모습에서도 찬송과 감사와 경배가 있음을 봅니다.따라서 예
배의 중심은 신령함이 충만해야 하고(4:2)하나님의 영광이 있어야 할 것
이며(강단의 정도, 예배자의 중심(4:2-5) 거룩해야 하고(4:8) 겸손이 있
어야 하며(4:10) 진리를 사모하는 간절함이 있어야 하고(5:3,4) 예수 그
리스도가 부각돼야 하고(5:5-7) 구속에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5:10).













제 6장 적그리스도의 출현과 6가지 인



(계 6:1-2)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에 하나를 떼시는 그 때에 내
가 들으니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우뢰 소리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이에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
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사도 요한은 앞 장에서 일곱 인봉한 계시의 책을 열어 보여 주실 예수님
에 대한 천상 교회의 찬양을 들었습니다. 이제 본장 서두에서부터 어린
양이 예언대로 인봉한 책을 펴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어린 양'은 줄곧 예수 그리스도를 비유합니다.일곱인 중에 인(印) 하나
를 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요한은 인을 떼시는 예수님을 보게 된 것입
니다. 그 때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요한더러 '오라'하고 우뢰같은 소리로
불렀습니다. 우뢰소리 같은 것은 역시 하늘의 위엄을 표시합니다.

사도 요한이 보니 '흰 말 탄 자'가 보였습니다. 여기 흰 말 탄 자가 누
구냐 하는 여러 견해가 있습니다.문맥상 첫째 인을 떼시는 분은 예수 그
리스도 자신입니다(계 5:5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
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
라 하더라').

흰 말은 승리를 상징합니다. 그러나 승리를 상징한다고 문맥을 무시하고
흰 말 탄 자를 예수 그리스도로 읽으면 계시록 전체 해석에 문제를 야기
합니다.

흰 말 탄 자가 예수라 하여 그리스도의 재림 때가 6장이라든가 혹은 복
음이 세상에 전파되는 영적 승리 등으로 영해(靈解)하는 것은 문맥상 자
연스럽지 못한데다가 계시록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혼돈을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물론 흰말을 타시고 강림하시는 장면이 19장에 비로
소 나타납니다. 아직 여기서 보인 그림은 예수님이 아닙니다.

'흰 말을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
고 하더라'고 했습니다. 계시록상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검(劍)을 가지셨
고(1:6, 19:15) 면류관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라 주시는 분으로 나타납니
다(2:10, 3:11, 4:10). 그리고 계속 승리해 나가시는 분이 아니고 이미
이긴 자라고 말한 대로 승리의 완성자로서 심판주로 오실 분입니다.따라
서 여기 흰 말 탄 자의 활동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적그리스도입니
다.

또한 말세에 대한 예언을 공관복음서 내용으로 보아도 대환난 초기에
는 적그리스도가 먼저 출현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마 24:6'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마 24: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
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
으리라', 눅 21:8-12 '가라사대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
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로라 하며 때가 가까왔다 하겠으나
저희를 좇지 말라...)



(계 6:3-4)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둘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더니 이에 붉은 다른 말이 나오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

둘째 인에는 '붉은 말 탄 자'가 나왔습니다. 이 말을 탄 자는 큰 전쟁으
로 땅에 화평을 제하는데 그는 이 악한 일을 '허락' 받았다고 했습니다.
사단의 역사도 근본적으로 만사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권세 안에서 제
약받으며 움직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허락을 받은 것입니다(욥 1:12 '여호와께서 사
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몸
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단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 마
10: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러면 어찌 하나님이 땅에 화평을 없애도록 허락하셨을까 하는 의문을
가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민(選民)들을 이끄시는 그 깊으신 뜻을 우리
들의 이성으로는 이해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은데, 바로의 마음을 악하게
하신 일이나 사단의 요구를 들어주신 일들입니다(롬 9:18 '그런즉 하나
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욥 1:12).

이것을 보고 하나님은 허물하시다 할 수 있느냐고 바울은 반문합니다(롬
9:19-20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
뇨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뇨 하리니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
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
었느냐 말하겠느뇨').

'붉은 말'은 전쟁을 상징하는데 본문은 말세에 있을 대 전쟁('큰 칼')을
상징합니다. 적그리스도가 출현함으로 세상에는 대 전쟁이 일어날 것입
니다. 사망의 세력이 등장하므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평화의 왕 예수의 등장으로 생명과 화목 운동이 일어나고(눅2:14) 적그
리스도가 일어나매 악한일, 전쟁과 사망이 도래합니다.영적으로 자연 현
상이라 봅니다. 전쟁 역사 저변에는 항시 종교적 사상이 깔려 있는데 이
는 근본적으로 사단의 작동이 실행되고 있습니다.



(계 6:5-6)세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세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내가 네 생물 사이로서 나는 듯하는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한 데나리온
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
치 말라 하더라


역시 어린 양 예수께서 셋째 인을 떼시니 검은 말 탄 자가 나왔습니다.
이러한 그림의 연출은 연속적인 것입니다.중복도 아니며 지난 역사를 떠
올리는 것도 아니고 미래사를 환상으로 계시한 것입니다.

그는 '손에 저울'을 가졌습니다. 여기 저울을 가진 것은 이어지는 내용
으로 재확인 되듯이 매우 기근이 심하다는 것을 상징합니다.전쟁이 주는
자연스런 재난입니다.

'한 데나리온'은 병사의 하루 품삯이었습니다. 그 돈으로 밀 한 되 혹은
보리 석 되 밖에 살 수 없는 경제 공항이 올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물가
가 비싸다는 말입니다.

네 생물이 말하되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고 했습니다 어떤 이는
물질적 재난 중에 성도(포도)들을 보호하는 것으로 해석 하지만, 심판이
이미 시작되었고 물질적 재난이 시도된 상황으로 읽을 때 여기서 갑자기
감람유와 포도주를 성도로 상징하는 것이라고 본문을 따로 떼어서 영해
(靈解) 할 수 없을 것같습니다.

이 두 가지는 당시의 일상 생활 필수품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근
의 심판 중에도 기본적 생활을 유지하게 하시는 것을 뜻합니다. 또한 한
편으로는 포도주는 술이고 감람유는 미용 재료니 전쟁 중에도 이런 것들
로 타락한 인생들이 죄와 정욕에 취하게 하신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습
니다.

전쟁 중에는 기근이 심하면서도 사치스런 사람들과 술은 끊이지를 않는
법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실 때 영적으로 타락하는데 필요한 도
구로 사용하시기 때문에 보존하게 하시는 일입니다.



(계 6:7-8)네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네째 생물의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
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저희가 땅 사분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
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써 죽이더라


이번에는 '청색 말 탄 자'가 등장합니다. 이 말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
라 했으니 곧 많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전쟁과 그에 따른 재난과 기근으
로 오는 기아 현상들입니다.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는 것은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될 것
을 뜻합니다. 여기 사망은 온역으로도 번역되며 에스겔서에도 넷째 인의
재앙같은 예언이 있습니다(겔 14:21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나의
네 가지 중한 벌 곧 칼과 기근과 사나운 짐승과 온역을 예루살렘에 함께
내려 사람과 짐승을 그 중에서 끊으리니 그 해가 더욱 심하지 않겠느냐'
눅 21:11 '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
로서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청황색'은 시체 색에 가까우며 그 말 탄 자가 검(살육, 전쟁)과 흉년과
사망(온역) 그리고 땅의 짐승으로써 사람을 죽이더라고 했는데 말세에
짐승들이 사람을 죽이는 무서운 일이 있을 것입니다(레 26:22 '내가 들
짐승을 너희 중에 보내리니 그것들이 너희 자녀를 움키고 너희 육축을
멸하며 너희 수효를 감소케 할지라 너희 도로가 황폐하리라',

신 32:24 '그들이 주리므로 파리하며 불같은 더위와 독한 파멸에게 삼키
울 것이라 내가 들짐승의 이와 티끌에 기는 것의 독을 그들에게 보내리
로다').

어떤 이는 이 '짐승'을 적그리스도에 비유하나 원문상 데리온( )으
로 목적격 복수형입니다. 성경상 적그리스도는 단수로 표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짐승이라는 단어가 모두 적그리스도는 아닙니다(살후 2:3 '누
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이
와 같은 일들로써 땅 ¼의 인명을 제한다는 말입니다.


(계 6:9-10)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큰 소리로 불
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다섯째 인에는 순교자들의 영혼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는 예수를 믿고 믿음을 증거한 순교
한 영혼들이 하늘의 제단 아래에 있었습니다. 제단은 제물을 바치는 곳,
즉 하나님의 것이 되어진 귀한 영혼들이라는 말입니다. 그 영혼들이 큰
소리로 하나님께 탄원합니다.

성도로서 자연사하는 사람도 복된 죽음이겠지만 증거자로 나섰다가 순교
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상급을 얻게 되니 더욱 큰 복이 되는 것입니
다. 이들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땅에 거하는 자들'은 심판의 대상이 되는 세속의 사람들이며,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달라는 것은 심판을 재촉하는 말이지만
이것은 반기독교적 도덕 심리가 아니라 아벨의 핏소리 같은 탄원입니다.
결단코 원수에 대한 미움이 아닌 신앙적 승리를 기다리는 소리입니다.


(계 6:11)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
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
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흰 두루마기'는 승리와 성결을 상징합니다. 순교자들에게 의로움과 승
리를 다짐해 주시는 뜻으로 흰 두루마기를 입혀 주신 것입니다.
'잠시 동안' 쉬어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그 날에는 말세의 심판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이긴 해도 여기의 잠시 동안이란 어떤 한정된 시간이 아
니라 소망 중에 인내하라는 말씀입니다. 신앙 안에서의 세월은 과학적
판단을 뛰어넘습니다.

'동무 종들과 형제들'이란 특히 하나님의 종된 신분자들 및 일반 성도들
을 말하며 말세에 또한 많이 순교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순
교자들이 정한 '수(數)'가 있음을 말씀하고 있는데 유의할 것입니다. 그
순교자들의 수가 차게 되면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종말이 된다고 했습니
다. 물론 그 수는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구원의 수도 있고 순교도 정한 자들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충성
심의 정도에서 순교가 훈련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비하신
성도 중에 정해 두신 순교자의 수효에 든 사람만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순교는 강요할 부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롬11:25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
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마 20:23 '가라사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
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계 6:12)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택하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총담
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같이 되며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섯째 인을 떼시니 '큰 지진'이 났습니다.
말세에는 대 지진이 있을 것입니다. 그 동안 지진으로 많은 인명 피해
가 있었으나 대환난기에는 지역을 초월하여 큰 지진이 있을 것으로 봅
니다. 땅 위에 죄악이 많음으로 땅을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해가 총담같이 검어진다'고 함은 전쟁과 공해로 인해 혹은 태양열 자체
가 식어서 빛을 잃는 상태입니다. 총담은 검은 베로 짠 유대인의 상복입
니다.

달빛도 흐려질 수밖에 없어 '피같이' 색이 어두워질 것입니다(마24:19'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계 6:13)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 과실이 떨어지
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무화과의 선 과실이 작은 바람에도 잘 떨어지는 것처럼 '하늘의 별들이'
땅에 우수수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무서운 천체의 변화입니다.어
떤 이는 이것 또한 영적으로 해석하여 하나님의 종들(별들)이 타락하는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본 내용의 말세 징조에서 전쟁과 자연의 이변은 문자대로 읽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왜냐면 비유해석으로 일관하면 전혀 역사상에 일어
날 미래의 환난은 일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말세 심판 내용상 전쟁 이후에 일어난 천체 변화의 당위성을 고려할 때
이런 일은 주께서 복음서에 이른 바 문자대로 실현될 일로 믿어야 합니
다(마 24:29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
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계 6:14-15)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기우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
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 틈에 숨어


현재도 오존층 파괴로 인해 지구에 큰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
늘이 불 탈 것이라고도 합니다.
'종이 축 말아가듯' 없어진다 함은 두루마리 책처럼 지금의 하늘은 불타
종이 말려가듯 날아 가버린다는 것입니다(벧후 3:12 '하나님의 날이 임
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각 산과 섬'들이 자리를 옮긴다는 것은 대지진 등으로 지형이 변한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천지가 변동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산과 섬은 문자
그대로 자연의 대변동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상이 천국으로 변할
것이라는 후천년주의자들의 예감은 옳지 못합니다.세상은 하나님의 심판
으로 모두 불타 없어질 것입니다.

'굴과 산 바위 틈에 숨어' 피신하였습니다. 세상에 부와 명예를 가진 자
들은 전쟁과 공포를 면하기 위해 산 굴 등으로 숨을 것입니다.세상이 이
쯤 됐을 때 세상의 군왕과 장군 및 부자들 그리고 종과 자주자들이 모든
세상이 공포에 휩싸이게 될 것입니다. 천재지변의 공포로부터 벗어나려
고 굴과 산 속으로 피신하려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는 없습니
다.


(계 6:16)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얼마나 다급했으면 산과 바위에게 빌었겠습니까? 아담과 하와도 범죄 후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창 3:8 '그들이 날
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숨는 것은 죄인의 도피 행위입니다. 모든 것은 숨길 데가 없이 다 드러
나게 마련입니다(마 10:26 '그런즉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혹 위성을 타고 별나라에 숨을지라도 하나님은 그를 끌어내리리라고 하
셨으니 어디에 숨겠습니까?(옵 1:4 '네가 독수리처럼 높이 오르며 별 사
이에 깃들일지라도 내가 거기서 너를 끌어내리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
느니라', 시 139: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불안과 공포를 현대인은 돈으로 해결하려 하나 이것도 무모한 짓입니다
(겔7:19 '그들이 그 은을 거리에 던지며 그 금을 오예물 같이 여기리니
이는 여호와 내가 진노를 베푸는 날에 그 은과 금이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하며 능히 그 심령을 족하게 하거나 그 창자를 채우지 못하고 오직 죄
악에 빠치는 것이 됨이로다').

우리 죄인들의 피난처는 하나님, 우리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있
습니다(시 46:1-3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
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
지든지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셀라)',

시 121:1-8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
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
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
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
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
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 너를 지
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
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



(계 6:17)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진노의 큰 날'로 표현한 것에서 그들은 마지막 때가 됐음을 아는 것같
습니다.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 앞에서 감히 누가 서리요 함은 누가 태연
히 맞설 수 있겠으며 당당한 존재로 나서겠느냐 하는 패배자의 고백과도
같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서에 이르신 말세의 교훈과 계시록에 일곱
인의 예언을 비교할 때 문맥을 같이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살후 2:1-4)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
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혹 영으로나 혹 말로
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
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
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
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위의 말씀을 보아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먼저 적그리스도가 출현하
여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고 성도들을 핍박하는 일들이 있은 후의 일입
니다.

이와 같이 요한 계시록은 기록되고 있으며 13장에 가면 성전을 더럽히고
만국의 성도가 핍박을 받게 되는 일이 나타납니다.

19장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분명하게 재림하심을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본 계시록을 해석 할 때 어떤 선입견과 교리 등을 앞세우지 마시고 본문
의 문맥을 따라서 해석하시기를 바라고 계시록 전체의 맥락을 성경 다른
곳에 예언된 말세훈과 일치되는 것을 확인하면서 복음적으로 풀이하되
좀더 계시록 자체에 충실하므로써 얻는 은혜가 더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특주 3. 수(數)의 상징과 뜻

1 : 절대수(계1:8)
2 : 증인수(계11:3,4, 13:11, 신19:15, 마18:16, 고후13:1)
3 : 삼위일체, 하늘의 수(계7:4, 8:7-12, 9:15)
4 : 동서남북, 땅의 수(계4:6, 5:8, 7:1)
5 : 세상의 힘, 괴로움의 수(계9:5)
6 : 마귀수(계13:18), 마귀:666
7 : 3+4, 완전수(계1:11,20, 4:5, 마18:22)
8 : 시작수, 새출발(눅1:59, 창17:12), 예수:888
9 : 열매수(고전12:4-11, 갈5:22,23)
10 : 세속적 완전수(계12:3, 13:1, 17:3, 12:16)
12 : 3x4 완전수, 천국 군진수, 성도의 수(계21:12,14, 22:2)
24 : 구약 12지파, 신약 12사도, 신구약 성도의 대표수(계4:4)
40 : 고난수의 상징이며 또한 숫자대로 40(눅4:1, 출16:35)
70 : 전도 단체의 수(눅10:1)
120 : 천국 군진수(행1:15)
12,000 : 천국 군진수(계7:)
144,000 : 구원 얻은 자의 수(7: 14:)
7,000 : 7x1,000 많은수,하나님의 직접 관심수(계11:13, 왕상19:18)
천천만만 : 많고 많은(삼상29:5)
1,000 : 자구적으로 천년(계20:5) 혹은 많은 세월(벧후3:8)
년,월,일,시 : 확실히 정한 때(계9:15)
한 때 두 때 반 때 : 42개월(계13:5), 1260일(계11:3), (단7:25)
이레의 절반(7년의 절반, 단9:27, 12:7)



7장 환난중 유대인 구원의 약속...

성경 : 계7:
제목 : 환난중 유대인 구원의 약속과
뭇 이방 성도의 구원의 예언 환상
- 두 부류의 하나님의 백성 -

(계 7:1-3)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
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
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
마에 인(印) 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6가지 인을 떼실 때 보여 주신 말세 계시의 환상이 있은 후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사도 요한이 보았습니다. 넷(4)은 동서남북 세
상을 뜻합니다. 네 천사는 바람으로 재앙을 일으키는 천사입니다.바람이
영적으로 환난에 비유되긴 하나 여기에는 자연의 폭풍같은 것입니다(마
7: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바람의 재앙을 일으킬 4천사가 아직은 재앙을 일으키지 않고 있으며 '다
른 천사'가 그들의 활동을 강력히 막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 왔다는 이 다른 천사는 미가엘인듯 합니다(계12:
7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쌔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계 19:17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해에
서서 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와서 하나
님의 큰 잔치에 모여').

이스라엘 12지파의 이마에 인을 치기 위해 하나님의 인을 가져왔는데 이
는 하나님의 소유를 확인하기 위함이며,

'해 돋는 데'는 광명을 비유로 하는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크다란 영광을 입은 천사요 구원의 소망을 비추는 영광스런 천
사로 온 것입니다(합 3:4 '그 광명이 햇빛 같고 광선이 그 손에서 나오
니 그 권능이 그 속에 감취었도다').

'우리 하나님의 종들'이란 넓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든 자들입니다.
우리 이방인들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그러나 하
나님의 종들이라기보다 그리스도의 종이 신약적 성도에게 적합한 표현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자는 유대적 표현이자 구약 시대에 쓰여진 고귀한 하나님의
일꾼 내지는 백성을 뜻합니다. 따라서 5-8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종들은
정통 유대인들을 대표하는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인입니다.왜냐면 이어지
는 또 다른 이방인 성도들로 구성된 구원받은 자들의 환상이(9-) 나타나
고 있기 때문입니다.

'종들의 이마에 인' 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구원 얻을 정통 유대인들에
게 그 말세에 가면 유대인은 외형적이니까 표시 나게 이마 쪽에 어떠한
형식으로 선민임을 알도록 물론 사람들(유대인)의 손을 빌어 표시할 것
으로 봅니다.


(계 7:4)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
서 인 맞은 자들이 십 사만 사천이니



7장의 144,000명에 대한 여러 해석입니다.

첫째, 이 사람들은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약의 성도들이라면
곧 이어 출현하는 흰 옷 입은 많은 무리들이 나타나기 때문에 먼저 나오
는 이들은 기독교인이 아닙니다(9). 비록 예수 그리스도를 불신한 유대
인이라도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선민;選民)이므로 종말에도 그들을 구원
해 주실 것입니다. 여기 이들은 바로 정통 유대인들입니다.

둘째, 기독 성도를 영적으로 이스라엘이라고도 볼 수는 있으나 성도들을
12지파로 세분하고 그 족속들의 이름들까지 면밀히 기록 할 이유는 없습
니다. 그리고 어울리지도 않습니다. 기독교 성도를 고상하게 이해시키기
위해 그렇게 12지파로 분리 할 수도 없습니다.이 사람들은 사는 곳이 다
르고 언어가 각양인 세상 각처에서 예수님을 믿고 무리를 이루었기에 각
족속과 방언이라는 표현이 알맞습니다.

셋째, 이스라엘 12지파는 하나님의 인을 맞는다고 했고, 성경상 기독교
성도들은 성령의 인을 맞는다고 했습니다. 성부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구
약 역사요 성령 하나님은 역시 신약 성도와의 역사에 충분히 관여하십니
다(엡 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
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 치심을 받았으니').

넷째,성경에는 이스라엘이 환난 중에 구원 얻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
니다(롬 11:25-26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그리
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슥 12:9-13 '예루살렘을
치러 오는 열국을 그 날에 내가 멸하기를 힘쓰리라 내가 다윗의 집과 예
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
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

다섯째, 대환난 중간쯤에서 정통 유대인들이 지상의 어느 보호처로 피신
되는 것과 유대인이지만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은 이방 성도들과 함께
고난에 동참하는 장면에 나타나 있습니다(12:13-17 해설 참조). 따라서
본문의 144,000인은 정통 유대인들이며 말세에 구원 얻을 예언적 환상으
로 보는 것이 드라마상 자연스런 해석입니다.



(계 7:5-8)유다 지파 중에 인 맞은 자가 일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
에 일만 이천이요 갓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아셀 지파 중에 일만 이
천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므낫세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
요 시므온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레위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잇사
갈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스블론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요셉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베냐민 지파 중에 인 맞은 자가 일만 이천이라


본문에는 이스라엘 12지파 족속 명이 나오는데 다소 이름과 그 순서에
차이가 있습니다. 6절의 단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 대신 므낫세와 요셉이
든 것은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로 우상 숭배를
한 것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셉의 장자인 므낫세가 명기되었습니다.

유대 지파가 먼저 기록된 것은 구속사적 의미로 유다 지파에서 메시아가
탄생할 것이 예언되었기 때문입니다(삿 18:30 '단 자손이 자기를 위하여
그 새긴 신상을 세웠고 모세의 손자 게르손의 아들 요나단과 그 자손은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어 이 백성이 사로잡히는 날까지 이르렀더라' 왕
상 12:28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
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 신이라 하고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
에 둔지라').

각 지파마다 '12,000명'이라 함은 영적 의미로 12라는 천국 백성 조직
수에다 많음을 뜻하는 1,000의 수가 곱한 것이므로 하나님의 구원 얻을
백성들이 많다는 뜻입니다.

결론적으로 여기 이스라엘 12지파를 신약의 기독 성도로 보기에는 너무
나 구체화된 표현들이고 이어지는 다른 구원의 무리들과 중복될 수 없으
므로 이들은 기독 성도가 될 수 없습니다.

뒤에 기록된 큰 무리들은 각 나라 족속이라는 표현으로 앞선 144,000인
과의 대조적 백성임을 구체화 해 주고 있습니다. 앞의 이스라엘 12지파
가 곧 천하 만국 성도로 보기에는 뒤에 이어지는 다른 무리의 내용을 볼
때 문맥상 구분이 뚜렷할 뿐아니라 앞에 소개된 유대인들을 연결하는 그
어떤 표현도 찾을 수 없습니다.

계시록은 세상 종말에 대한 계시이므로 가시적 백성으로서 지금껏 인도
하신 유대인을 이제 정리하실 때입니다.즉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역
사적 마무리는 있어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인으로서 모든 역사를 이해하
려고 하기 때문에 마지막 때 이스라엘의 육신적 피신을(계12:) 기독교인
의 공중 휴거로 곡해하는 억지 해석이 생기는 것입니다.



(계 7:9-10)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
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이 일'은 앞서 이스라엘 12지파에게 하나님의 인(印)을 친 일입니다.
이 광경이 끝나고 새로운 환상이 연이어 보인 것입니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이란 세계 각 처의 민족을 뜻합니다. 언
어가 다르고 지역이 다른 곳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모인 무리를
뜻합니다.

'아무라도 셀 수 없는' 수많은 무리들이 구원을 얻을 것인데, '흰 옷'을
입은 것은 의로움, 성결하게 된 것을 말하며 신앙의 정결성을 뜻합니다.

'종려 가지'를 든 것은 승리자의 모습입니다. 신앙의 승리입니다. 세상
에서 그리스도의 사상으로 승리한 자들의 모습입니다. 믿음으로 살아 온
자들입니다.

'보좌 앞'은 하나님의 자리란 말이고 '어린 양'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
다.
이들은 성부, 성자 앞에 서서 찬송합니다. 구원의 찬송입니다. 4생물들
이 찬송할 때 성부 하나님께(4:8), 24장로들이 찬송할 때도 성부 하나님
께(4:10,11), 같이 할 때는 어린 양에게 했습니다(5:8-10).

천하 만국 성도(기독교)들이 찬송할 때는 성부, 성자께 했는데 성부, 성
자의 동질성을 노래하는 신학적 측면보다 여기 기독 성도는 개종한 유대
인도 있기 때문에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께 같이 드리는 것으로 보
입니다.

12장에서 정통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피난처로 도망가고 그 남
은 자손 중에 유대인으로서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이 있었습니다.이 유
대인 기독교인들과 이방 기독교 성도가 함께 찬송하게 되었으므로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찬송한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들은 함께 신구약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하는 천상교회 24장로들처럼(5:10) 구원을 찬송합
니다. 성부, 성자께 드렸습니다.


(계 7:11-13)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
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
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찌
로다 아멘 하더라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 옷 입
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모든 천사'는 성도들을 보호하고 지켰던 많은 천사들로 보입니다. 그들
은 성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엎드려 얼굴을 대고' 경배하는 것은 겸손과 성실을 의미합니다. 지극히
섬기고 감사함을 표현하는 태도입니다.

'아멘'으로 시작하여 아멘으로 마치는 것은 앞서 구원 얻은 큰 무리들의
찬송에 대한 화답으로 아멘하여 마칩니다. 찬송의 내용은 5:12과 비슷합
니다(계 5:12 ' ..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
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24'장로 중에 하나가' 사도 요한에게 '종려 가지를 들고 선 흰 옷 입은
큰 무리들은 어디서 왔느냐'고 질문합니다.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는가를 구체적으로 물었습니다. 본 절 이하를 자
세히 살필 때 144,000인의 유대교들과 이 흰 옷 입은 큰 무리들은 각기
다른 무리임을 확인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계 7:14)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
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
게 하였느니라

사도 요한은 그 장로에게 답하지 않고 오히려 '당신이 알리이다'고 했습
니다.
'내 주여'라고 부른 것은 천상의 존귀한 분께 대한 호칭이지 그리스도께
부르는 말과는 의미가 다릅니다. 하나님과 천사나 혹은 사람에게 부를
수 있는 호칭이기도 합니다(창 19:2 가로되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찍이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 그들이 가로
되 아니라 우리가 거리에서 경야하리라').

그 장로가 답하기를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이라 했습니다. 큰 환난
은 말세의 대환난입니다. 원문에는 '그 큰 환난'으로 관사가 있어 특별
한 말세의 대환난을 뜻합니다(th'" qlivyew" th'" megavlh").

그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나온다는 말은 피한다는 것이 아니
라 그곳을 '지난다'는 뜻과 '닥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앞서 이스라
엘 12지파는 이런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큰 환난에서 그리스도
의 증인으로 십자가를 지고 핍박과 환난을 받았던 자들입니다.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상으로 맘의 옷을 정결케 하며 신앙 승리를 위해 싸웠던 것을 말합니
다. 이로 보아 앞서 144,000인에 대한 기록과는 판이하게 다른 무리, 즉
기독 성도들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했습니다.



(계 7:15)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 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그러므로'는 대환난기에 '그리스도의 사상(피)으로 승리했기 때문에
'라는 뜻이며 주야로 하나님 앞에서 경배합니다.

여기 '성전'은 하나님의 보좌 앞을 뜻합니다. 하나님을 밤낮 섬긴다는
말 역시 천국엔 밤이 없기 때문에 쉼 없이 계속적이다는 의미입니다(계
21:25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장막'을 치시는 것은 함께 거하신다는 뜻으로 의역됩니다.



(계 7:16)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
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찌니

'주리지 아니'하는 것은 영적으로 갈급한 세상이 아니며 또한 더 이상
사상적 어려움 혹은 복음으로 인한 영적 고난이 없는 영원한 만족과 천
국의 풍성함을 뜻합니다. 말세에 영육간 성도가 옳게 살려면 얼마나 어
렵습니까?

마지막 때에는 세상이 모두 전쟁과 기근으로 어려움을 받을 것인데 성도
의 현실은 적그리스도의 제한된 경제 생활로 인하여 더욱 힘들게 살게
될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그 주린 배를 채우실 것이며 풍성한 천국에
서 '목 마르지'않게 살 수 있도록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은 종말에 태양열에 의해 사람이 태움을 입을
것을 말합니다. 지금 오존층이 상하여 태양 빛이 지구에 곧장 비치어 불
이 난 곳도 있고 날로 그 구멍이 넓어지고 있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말세에 태양열에 의해 지구촌 여기 저기서 불타는 천재(天災)가 있을 것
입니다.마지막 때에 태양 빛을 통한 환난이 있을 것인데 세상은 이런 심
판을 받을 것이나 성도는 영원한 나라에서 그 같은 저주가 없이 하나님
의 보호 속에 살게 될 것이라 하는 것입니다(계 16:8 '네째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시 121:6-9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
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사람이 내게 말하기
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계 7:17)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
이러라

어린 양 예수께서 '저희의 목자가' 되신다는 것은 구원을 책임지신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생명의 주가 되시고 우리들의 목자가
되십니다. 천국에서도 영원히 우리의 목자로서 인도하실 것입니다.

'생명수 샘'은 갈급하지 아니할 것을 더 강조하는 뜻으로 다함이 없는
영생수를 주사 목마르지 않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의 '눈물을 씻어 주실 것'은 영원한 위로를 뜻합니다.
성도가 얼마나 괴로운 세속 중에서 신앙을 지키기 위해 웁니까? 천국에
서 그 모든 슬픔을 위로 받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마 5:4 '애통하는 자
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8장 없음








제 9장 두 나팔 재앙




(계 9:1-2)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보니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있는데 저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더라 저가 무저갱을 여니
그 구멍에서 큰 풀무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오매 해와 공기가 그 구멍
의 연기로 인하여 어두워지며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는 뒤에 이어진 설명으로 보아 인격체입
니다.사단이라 보기가 쉬운데 12장에 공중에서 땅으로 떨어져 내려온 사
단(용)이 나옵니다(눅 10:18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무저갱'의 열쇠를 받으니 계20:1의 그 천사로 보입니다. 다만 20:1에는
무저갱 열쇠를 받는 입장입니다. 땅에서 떨어졌다는 표현이 악천사를 의
미하듯 하나 예언 성취의 드라마적 시기상으로 아직 이르기 때문에 사단
은 아닙니다. 무저갱이란 사단의 처소이며 지옥 자체는 아닙니다. 모든
악한 일들이 꾸며지고 실행되는 처소입니다.말세에 이 어두운 세력에 의
한 전쟁 등으로 공해가 심하여 천지가 어두워집니다.


(계 9:3-4) 또 황충이 연기 가운데로부터 땅위에 나오매 저희가 땅에 있
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았더라 저희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지 아
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

'황충'은 암흑의 세계 지옥같은 곳을 뜻하는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온 것
이니 사단의 영적 힘을 얻은 심판의 매개물입니다.

'전갈'은 광야에서 살며 독이 아주 강하므로 물리면 즉사합니다.전갈 같
은 독을 가진 황충이가 구약 시대 애굽에 메뚜기 떼가 재앙을 가져오듯
사람들을 괴롭힐 것이라 했습니다(출 10: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
시되 네 손을 애굽 땅 위에 들어 메뚜기로 애굽 땅에 올라와서 우박에
상하지 아니한 밭의 모든 채소를 먹게 하라').

앞서(8장) 자연계의 큰 심판이 있었으므로 황충들은 이제 하나님의 인
맞지 아니한 자들, 즉 모든 불신자들을 해하게 됩니다.


(계 9:5-6) 그러나 그들을 죽이지는 못하게 하시고 다섯 달 동안 괴롭게
만 하게 하시는데 그 괴롭게 함은 전갈이 사람을 쏠 때에 괴롭게 함과
같더라 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저희를 피하리로다

불신자들을 죽이지는 않으며 '5개월 간' 괴롭힙니다. 불신자들은 황충이
에게 전갈같이 쏘여 5개월 간 통증으로 괴로울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사
람들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자살하려 해도 죽음이 저들을 피하여 죽지도
못한다 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현상입니다. 자살하려는 것도 할 수 없
고 고통이 계속된다는 것, 이것이 곧 영원한 지옥의 고통을 대변하는 말
입니다.


(계 9:7-10)황충들의 모양은 전쟁을 위하여 예비한 말들 같고 그 머리에
금같은 면류관 비슷한 것을 썼으며 그 얼굴은 사람의 얼굴 같고 또 여자
의 머리털 같은 머리털이 있고 그 이는 사자의 이 같으며 또 철흉갑 같
은 흉갑이 있고 그 날개들의 소리는 병거와 많은 말들이 전장으로 달려
들어가는 소리 같으며 또 전갈과 같은 꼬리와 쏘는 살이 있어 그 꼬리에
는 다섯 달 동안 사람들을 해하는 권세가 있더라


황충의 모양이 설명되고 있습니다. 외관상의 모습들은 모두 고통을 주는
내용과 일치합니다.

(1) '전쟁을 위한 말들' 같은 것은 공격,돌진의 기세가 당당함을 뜻하니
사람을 얼마나 괴롭힐 것인가가 짐작되며
(2) '금 같은 면류관'을 쓴 것은 황충의 능력과 사단의 교만한 태도와
인간 위에 악의 왕노릇을 하는 존재 위치를 과시하는 것입니다. 고통을
주기에 너무나도 완벽한 충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3) '얼굴은 사람' 같음은 지혜로움을 상징하며 인간의 과학적 방법으로
이겨 낼 수 없는 황충이의 고통이 될 것을 말합니다.
(4) '여자의 머리털' 같은 것은 매혹적인 모습으로 죄와 악의 겉모습을
상징합니다. 사람에게 고통 줄 수 있는 매혹적 모습이며 인간이 당할 수
밖에 없는 황충이의 자태입니다(살후 2:9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
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5) '그 이는 사자' 같으니 잔인성과 사나움을 뜻하며
(6) '철흉갑 같은 흉갑'은 견고성과 방어력이 강함을 뜻합니다. 즉 고통
받는 이로 하여금 전혀 상대할 수 없는 사단의 세력을 갖고 나타난 황충
이라는 것입니다. 어떠한 방법으로도 이 고통을 이길 수가 없다는 것입
니다. 과학의 한계를 느끼는 병마가 지금도 여러 가지로 인간의 생명을
앗아가고 있습니다.
(7) '그 날개들의 소리'는 황충들의 집단적 움직임으로 나는 요란한 소
리입니다.병거 가는 소리나 전장으로 달려가는 말들처럼 나는 소리는 강
하고 무서운 소리를 형용한 것입니다. 황충이의 공격이 신속하고 빠르게
진전되어 고충을 면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8) 전갈의 '꼬리와 쏘는 살' 같은 것으로 다섯달 동안 사람을 괴롭힌다
는 것입니다.쏘는 살은 사단의 독이요 악의 행위를 표현할 때 쓰는 말입
니다. 황충이가 주는 고통을 이기기 위해 여러 과학적 연구를 해도 따라
잡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고전15:
55-56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
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계 9:11) 저희에게 임금이 있으니 무저갱의 사자라 히브리 음으로 이름
은 아바돈이요 헬라 음으로 이름은 아볼루온이더라

이러한 황충의 임금(주동자)은 사단이라 했습니다. 황충이 주는 고통은
사단의 조종에 의하여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임금이라 표현하는 것은 사
단이 세상을 악으로 지배하기 때문입니다(요 12:31 '이제 이 세상의 심
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 엡 2: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
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무저갱의 사자'는 히브리어로 아바돈, 헬라음으로 아볼루온( )
으로 파멸, 멸망자(사단)를 뜻합니다.


(계 9:12-13)첫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아직도 이 후에 화 둘이 이르리
로다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들으니 하나님 앞 금단 네 뿔에서
한 음성이 나서

계시록에 일곱 나팔 재앙 중 가장 무서운 재앙이 셋인데, 그 중 앞서 각
종 무서운 재앙과 고통의 심판이 첫째 화였고, 둘째 화인 6째 나팔 재앙
이 따릅니다.

6번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하나님 앞 금단 네 뿔에서' 음성이 나니 이
는 성도들이 올린 기도가 응답되어 악을 심판하는 소리입니다. 8장에서
금향로가 곧 성도의 기도를 받는 것으로 나옵니다. 제단도 네 뿔이 있었
습니다. 네 뿔은 사방을 상징하고 뿔은 구원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금단
네 뿔의 음성은 성도의 기도의 음성입니다.


(계 9:14-15) 나팔 가진 여섯째 천사에게 말하기를 큰 강 유브라데에 결
박한 네 천사를 놓아 주라 하매 네 천사가 놓였으니 그들은 그 년, 월,
일, 시에 이르러 사람 삼분 의 일을 죽이기로 예비한 자들이더라

'큰 강 유브라데'는 이스라엘과 아랍 국경에 처한 곳으로 계시록 상 말
세에 치를 큰 전쟁의 장소입니다(창 15:18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
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애굽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계 16:12 '또 여섯째가 그 대접
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더라').

이 '네 천사', 4는 온 세상을 상징하는 땅의 수이며 사망의 천사들을 말
합니다. 네 천사는 사람을 죽이니 악한 천사들입니다.

'그 년 월 일 시', 이렇게 전쟁이 일정한 날짜에 경고된다는 것은 선전
포고가 있을 확실한 마지막 세계 대전으로 보아집니다. 인구 ⅓이 죽는
큰 전쟁입니다. 이로 보건대 전쟁은 악령(악한 천사)들의 놀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계 9:16)마병대의 수는 이만만이니 내가 그들의 수를 들었노라

말 탄 병사가 '2만만', 즉 2억을 말합니다. 2억의 군대가 유브라데 강가
에서 전쟁을 치릅니다. 세계 역사는 이스라엘 역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역사에 당신의 뜻을 조명해 오셨고
세상 끝에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종교와 전쟁등의 사건들을 예언하셨고
그렇게 이루실 것입니다.

마지막 세계대전이 유대 땅 근저에서 일어날 성경 근거가 있습니다.아랍
과 이스라엘의 종교적 분쟁을 계기로 세계 각 국들이 합세할 여건들입니
다. 그 전쟁의 때가 세계 통치자, 적그리스도가 유대 땅 성전을 중심으
로 세계 정치 통일을 하니 각 국의 불만이 터지게 되는 이유입니다.


(계 9:17)이같이 이상한 가운데 그 말들과 그 탄 자들을 보니 불빛과 자
주빛과 유황빛 흉갑이 있고 또 말들의 머리는 사자 머리 같고 그 입에서
는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오더라

전장에 나가는 그 말들과 탄 자들의 모습이 나오는데 자주빛, 유황빛들
은 전쟁과 죽음의 색깔입니다. 유황빛은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합니다(창
19:24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에게로서 유황과 불을 비 같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사').

'말들의 머리가 사자 머리' 같은 것은 용맹한 모습으로 지금의 탱크를
상징하는 것같습니다.
'그 입에서는 불, 연기, 유황'이 나오니 여러 폭격들일 것입니다.당시에
는 없었던 현대 전쟁 물자들을 상상한 예언입니다. 이러므로 이런 비유
들을 볼 때 계시록의 예언은 세상 종말에 있을 예언입니다.


(계 9:18-19) 이 세 재앙 곧 저희 입에서 나오는 불과 연기와 유황을 인
하여 사람 삼분의 일이 죽임을 당하니라 이 말들의 힘은 그 입과 그 꼬
리에 있으니 그 꼬리는 뱀 같고 또 꼬리에 머리가 있어 이것으로 해하더


이 재앙으로 세계 인구 ⅓이 죽는다고 했습니다. 원자탄, 수소탄, 불의
전쟁으로 멸망할 것은 세상도 시인하고 있는 바입니다. 말들의 힘이 입
과 꼬리에 있으니 무서운 세력을 뜻합니다. 탱크부대의 무서운 파괴력입
니다.

'꼬리에 머리'가 있으니 이는 비상한 궤교와 작전으로 사람을 괴롭히는
사단의 기만적인 술책을 상징합니다(사9:15).


(계 9:20-21)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그 손으로 행하는 일을
회개치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또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
과 도적질을 회개치 아니하더라

이런 큰 전쟁을 겪으며 사람 ⅓이 죽는 형편에 와도 자기들의 행위(손으
로 행한)를 회개치 않고 오히려 귀신들을 좇고 우상에게 절합니다. 물론
종교성이란 비과학적이므로 어쩔 수 없지만 이런 과학도 불안과 공포를
면하기 위해 혹은 의문의 미래에 행복을 위해 우상을 찾는 이성적 인간
을 우리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 때 사람들은 더욱 우상을 섬기며 살인을 계속 자행하고 마술과
음행, 도적질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죄는 사회에서 영원히 떠나
지 않습니다. 세상 끝 날이 가까울수록 더욱 죄악이 만연할 것입니다.
지구촌은 지금도 결코 민간 생활의 치안이 제대로 효력있게 발휘되고 있
지 않습니다.

사건은 날마다 강해져 가고 사고가 난 뒤에 겨우 조사나 하는 현실을 볼
수 있습니다.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보안 장치가 아쉽습니다.이런 죄악
의 사회는 언제나 스스로 회개치 않습니다.말세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
고 있는데 새로운 사회 구현이라는 슬로건은 있어도 진전으로 개혁하지
않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심판에 빠져 가는 자들입니다.











제 10장 작은 책




(계 10:1-2) 내가 또 보니 힘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
오는데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 그 얼굴은 해 같고 그 발은 불기둥
같으며 그 손에 펴 놓인 작은 책을 들고 그 오른 발은 바다를 밟고 왼
발은 땅을 밟고


요한이 볼 때 '힘센 다른 천사'(나팔 부는 천사가 아닌 다른 천사)가 마
치 예수님처럼 한 모양으로 나타났습니다.일부 해석자들은 이 천사를 예
수로 해석합니다(대환난 전 휴거론;세대주의 전천년설).

그러나 계시록에 나타나신 예수님은 그 나타나신 모습도 다르고(1; 19:)
예수님은 어린 양으로 표현하나 여기는 천사라고 했습니다. 계시록에서
나 다른 성경에도 예수님을 천사로 표현하지 않습니다.

여기 천사는 구름을 입었으나 예수님은 구름을 타고 백마를 타고 오십니
다(마 24:30'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
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특별한 천사를 환상적으로 표현하기만 해도 예수님으로 보기 쉬운 것은
감성적인 관찰일 뿐입니다. 성경에 비록 비유적인 표현이 많지만 일방적
으로 비유해석을 따르면 혼란이 오게 마련입니다.성경은 여러 가지 해석
법을 동원해서 본문의 맥을 흔들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표현은 분명하게 19장에 나타납니다.그 전
에는 재림하시는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데도 휴거론자들은 몇 번이고
예수의 재림을 간간이 설명하려고 합니다.

'무지개'는 관사가 있으니 창9:13의 언약의 무지개를 연상케 하고 언약
을 의미합니다. 얼굴이 해같이 빛나니 하늘의 영광을 입은 중요한 그의
직분을 뜻하고 발은 불기둥 같으니 그리스도와 비슷합니다.따라서 이 천
사는 가장 중대한 발표를 안고 천적(天的) 위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 손에 펴 놓인 '작은 책'은 11장 이하의 환난 기사를 쓴 책입니다.
'펴 놓인'것은 이미 작성된 것이니 하나님의 작정된 예정의 기사라는 뜻
입니다.

'오른 발은 바다를 밟고 왼 발은 땅을 밟고' 있는 것은 온 세상을 향하
여 외친다는 것을 뜻하고 구태여 바다와 땅을 해석하려면 세속과 종교계
를 뜻합니다(계시록상 바다는 세상, 땅은 종교계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계 10:3-4) 사자의 부르짖는 것같이 큰 소리로 외치니 외칠 때에 일곱
우뢰가 그 소리를 발하더라 일곱 우뢰가 발할 때에 내가 기록하려고 하
다가 곧 들으니 하늘에서 소리나서 말하기를 일곱 우뢰가 발한 것을 인
봉하고 기록하지 말라 하더라

'사자의 부르짖는, 소리'는 엄청난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하늘의 위엄을
의도합니다.

큰 소리로 외치니 '일곱 우뢰'가 소리를 발함은 신의 초자연적 소리요
심판적 소리며 절대적 예언의 소리입니다. 일곱은 줄곧 계시록에는 완전
함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주 확실하고도 환전한 하나님의
절대적 예언의 말씀을 뜻합니다.

일곱 우뢰가 들릴 때 그 소리를 기록하려 하나 하나님은 인봉하고 기록
치 말라 하셨습니다.계시의 주체자도 성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여기'하
늘의 소리'는 성부 하나님의 음성으로 봄이 타당합니다. 뒤에 이어지는
천사의 고백을 보아 하늘의 하나님, 즉 성부 하나님이십니다.



(계 10:5-6)내가 본 바 바다와 땅을 밟고 섰는 천사가 하늘을 향하여 오
른손을 들고 세세토록 살아계신 자 곧 하늘과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이며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지체하지 아니하리니

요한이 본 이 천사가 하늘을 향해 손을 들어 맹세코 만물을 창조하신 하
나님을 향하여 하나님이 이 말세 비밀을 곧장 이루실 것을 말합니다. 만
물 창조주이시기에 만물을 공의로 완전한 심판을 하실 수 있는 것입니
다.이렇게 강조하는 천사의 예언은 심판주의 당위성을 고하는 것입니다.

지체하지 아니하리라는 것은 마지막이 치달아 대환난이 급속도로 진행될
것을 말해줍니다.하나님의 언약과 예언은 사람의 보기에 지체하는 것 같
아도 결코 하나님의 섭리는 사람의 시간관념보다 더욱 빠르고 충실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도 사람의 생각으로 늦은 듯하나 결코 그 세월은 중단되지
않고 흐르고 있습니다.하나님의 축복과 심판의 역사는 창세 후로 계속되
고 있습니다. 역사의 주인공 되신 하나님은 그래서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요 5:17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
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계 10:7-8) 일곱째 천사가 소리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
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 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섰는 천사의 손에 펴 놓인 책을 가지라 하기로

'일곱째 천사'는 일곱 천사 중 일곱 번째 마지막 나팔을 불 천사이니
9:13의 6째 천사 다음입니다.일곱째 천사가 나팔 부는 날은 하나님의 말
세 예언이 선지자들에게 예언하신 대로 이루게 된다 하였습니다. 즉 후
3년 반의 말세 예언은 구약과 신약에 역력히 예언된 말씀이 완성되는 내
용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의 성취는 예수의 재림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속사가
예수의 재림으로 완성되기에 종말론에 대한 관심은 복음 역사의 완성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성탄은 복음의 시작을 선교는 복음의 활동을 보여주
는 것이며 종말에 관한 성경 연구는 복음의 궁극적 목표를 깨닫게 합니
다.복음이 삶 속에 생생하게 그 실존적 감각을 일으키게 도와 주는 교훈
이므로 반드시 말세 예언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옳습니다.

'하늘에서, 들리던 음성',즉 하나님이 요한더러 바다와 땅을 밟고 선 천
사의 손에 있는 그 책을 가지라 명하셨습니다.



(계 10:9-11)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책을 달라 한즉 천사가 가로되
갖다 먹어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같이 달리라 하거늘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책을 갖다 먹어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저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
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요한이 천사에게 나아가 책을 달라 하니 '갖다 먹어버리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먹는다는 것은 말씀을 마음으로 소유하는 것입니다.특별히 이 작
은 책은 일반적인 복음의 사상과는 달리 종말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영적 양식으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먹는다 했고 먹을
때 '입에는 꿀같이' 달다 함은 듣기에는 오묘하고 즐겁다는 것입니다.하
나님의 말씀이 꿀같이 달다는 것은 현실성이 적극적으로 나타나서 생활
에 유익한 근거가 되기 때문이 아니라 바른 삶의 가치를 깨닫게 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승리할 수 있는 여러 약속을 믿고 의지할
수 있다는 기쁘고도 놀라운 발견 때문에 받는 감정입니다.

동시에 말씀은 마치 깨끗이 흐르는 냇물에 빨래하듯 내 영혼을 정결케
하시는 영적 작용을 느낄 수 있는 묘한 체험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시119
:103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
다').

천사가 일러 준 말대로 입에는 꿀같이 다나 먹은 후에 '배에서는 쓰더
라'고 했습니다. 쓰다는 말은 그 내용이 참혹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복
음을 간직한 성도의 삶은 언제나 사회 정신 문화와 충돌할 가능성을 지
니고 있습니다( 행 14: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
이라 하고').

기독교의 진리는 계시적이고 절대적이어서 합리화 할 수 없는 가치 이론
때문에 비난의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오직 한 길 밖에 없는 유일무
이한 한 분이신 하나님의 사상으로 역사에 늘 혁명적이었고 그러므로 환
난 속에 맥을 이어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진리가 잘못된 것이 아니
고 인간의 오래된 무지와 세속 문화와 풍습에 뿌리내린 가치관의 충돌로
생기는 것입니다.

모든 백성과 나라에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는 것은 이어 후 3년 반에
있을 엄청난 사건들을 예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 장은 계시록 예언
에 삽입된 것으로 7년 전후 환난 기사를 예언 받는 요한으로서 전 3년
반이 지나고 후 3년 반 동안 있을 마지막 대환난 기사를 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먹고 힘을 얻으며 하늘의 음성을 특별히 체험하는 큰 은혜
를 입습니다(바울처럼, 고후 12: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복음의 대상은 '많은 백성', 서민부터 임금에게까지 모든 이들이 말세에
다같이 들어야 할 것입니다. 요나가 니느웨에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했을
때 니느웨 왕이 회개한 사실이 있습니다. 복음은 만왕의 왕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선언이며 부탁이며 경고입니다. 특히 긴급한 마지막 때 일어
날 예언은 왕에게도 단호히 증거되어야 할 것입니다( 욘 3:6 '그 소문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조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
고 재에 앉으니라').

 

제 11장 두 증인




(계 11:1-2)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
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
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지팡이와 같은 갈대'는 곧은 자로서 사용되는데 이로써 하나님의 성전
및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라'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당신의 백성들
을 보호 할 것이라 함이요,

'성전 밖 마당'은 이방인의 곳으로 이방 세계를 뜻합니다. 그들은 하나
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므로 말세에 거룩한 성, 즉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
힐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마흔 두 달 동안(42개월, 3년 6개월, 1260일)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합니다(계 13:5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 두 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이제 여기서부터 성도들이 받을 핍박의 시기가 왔음을 예고합니다. 적그
리스도의 환난으로 성도들이 짓밟히게 되는 대환난이 올 것이라는 말입
니다. 이것은 구약에도 예언한 종말에 있을 사건입니다. 역사에 전무후
무한 대환난인 것입니다(단 7:25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
와 반 때를 지내리라').

(계 11:3)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
고 일천 이백 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3절부터 13절까지 예언된 바는 앞서 작은 책의 내용이 담긴 10장에 이어
지는 연속적 사건이 아니라 시기를 소급하여 전 3년 반기간 동안 일어날
일로 보아야 합니다. 왜냐면 14절에 이는 둘 째 화라고 하므로 셋째 화,
즉 마지막 나팔 재앙으로 13장에 또 마흔 두 달간의 핍박 기간이 나오므
로 본 장의 내용은 전 3년 반의 기간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볼 때
두 증인이 활동하는 시기는 소위 7년 대환난의 시작인 6장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계시록의 대환난 기사가 6장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초기에는 주의 재림 직
전보다 다소 약하게 나타납니다. 그러나 징조가 뚜렷하여 성도들은 신앙
으로 무장하게 될 것입니다. 때를 따라 도우시고 계신 하나님의 역사로
말세의 비밀을 알게 하실 것이며 대비하게 하실 것입니다.

'두 증인'이 누구인가에 대한 해석이 분분합니다. 이 사람들이 1260일,
즉 유대인의 한 달은 30일이므로 앞서 42개월과 같은 날로 3년 6개월 간
날마다 증거 할 것인데, 두 증인의 굵은 베옷은 회개를 상징하니 천하에
회개를 외치는 증인입니다. 이 둘의 모습을 보면 보통 증인이 아닙니다.


(계 11:4-6)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만일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
할찌니 누구든지 해하려 하면 반드시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저희가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 오지 못하게 하
고 또 권세를 가지고 물을 변하여 피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1) 이 '두 증인'은 '두 감람나무'라 했습니다. 기름을 내어 등잔불을
밝히는데 사용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빛-복음을 증거하는 존재로 형용한
것입니다.

(2) '두 촛대'라 했는데 유대인의 성전에 있던 등잔은 일곱 가지를 지녔
으므로 여기 두 촛대는 다릅니다. 즉 신약적 해석이 요구되니 둘은 증인
수로 하나님을 증거하는 자들로 해석됩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초가 없었
으므로 촛대의 번역은 등잔으로 고쳐야 합니다. 위대한 두 증인을 뜻합
니다.

의미상으로는 지상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교회라 하지만 여기 특별한 권
능을 가지고 그의 사활을 소상하게 기록한 것으로 보다 만국 성도들이라
해석하기엔 너무 개인적으로 집착한 형용을 볼 수 있으며 그 전후로 많
은 성도들의 활동도 달리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이는 두 사람의 능력과
증거로 보는 것이 옳습니다.

(3)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려 하면 '입에서 불이 나서' 원수를 소멸하는
데 무슨 불인가? 말씀의 권능이며 그들의 말에는 사람을 즉사시킬 만한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본 절에서 사람은 촛대에 비유하듯 불 역시 말
씀의 위력으로 풀이해야 옳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땅에 불을 던지러 왔
다고 하셨습니다. 전도와 성령을 말씀하신 것입니다(눅 12:49 '내가 불
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4) 예언을 한즉 '예언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않게 하는 권세가 있고
(약 5:1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
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5) '물이 변하여 피되게' 하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모세가 애굽에서 행
한 이적과 같을 것입니다(출 7:20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의 명하신대로
행하여 바로와 그 신하의 목전에서 지팡이를 들어 하수를 치니 그 물이
다 피로 변하고').

(6) '아무 때든지' 여러 능력과 재앙으로 세상을 놀라게 할 것입니다.결
코 신약 시대라고 구약적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성경의 교시는 없습
니다.


위에서 본 바 두 증인의 행위에서 문득 모세와 엘리야를 떠올립니다(출7
:20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행하여 바로와 그 신하의 목
전에서 지팡이를 들어 하수를 치니 그 물이 다 피로 변하고', 왕상17:1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고하되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
으면 수년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그런데 모세와 엘리야는 역사적으로 여기 말세론과 전혀 무관합니다. 모
세는 분명히 죽었습니다. 다만 시체를 찾지 못할 곳에 천사가 옮겼던 것
뿐입니다. 그렇다고 마지막 때 다시 그 시체가 살아나서 우리에게 찾아
와 복음을 증거 할 것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모세의 시신이 미이라로 간수된 것도 아니며 소위 주께서 재림하시기 전
에는 부활같은 역사는 없을 것입니다. 다시 살아나는 것도 성경에 죽은
나사로가 부패했으나 육신이 있을 때 재생의 역사를 하셨습니다. 부활은
반드시 예수님의 재림 때 일어날 것입니다.

또한 엘리야는 불말 병거를 타고 하늘로 갔고(왕하 2:11 '두 사람이 행
하며 말하더니 홀연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격하고 엘리야가 회
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더라')

에녹도 하나님이 데리고 가셨습니다(창 5: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
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히 11:5'믿
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
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여러 해석자들이 이 두 증인을 에녹, 모세, 엘리야 등을 선택하지만 그
들이 말세에 증인으로 나타날 것에 대한 암시가 성경에 전혀 없어서 내
증(內證)의 자료가 불충분함으로 수긍 할 수 없습니다.

또는 교회나 복음 자체라고도 해석하나 이 두 증인의 행위로 보아서 온
교회가 그런 능력을 발휘한다고 할 수 없으니 은사는 지극히 개인적이지
모든 교회가 그런 은사를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이 교회가 될 수 없는 것은 이들은 대환난기 중간에
죽습니다. 13장에는 후 3년 반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으므로 이들의 활동
과 사활의 사건은 그 전에 일어날 현상들입니다. 따라서 이 두 증인의
내용은 그 대환난이 시작될 즈음부터 후반기로 진입할 직전까지 있을 내
용입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두 증인으로 능력을 행하다가 대환난 중간
기, 즉 전 3년 반이 지날 무렵에 순교할 것입니다.

특히 '두 증인'에는 정관사 '그'(토이스, )가 있기 때문에 평범한
성도를 지칭한다고 볼 수 없습니다. 원문에는 어떤 지명된 인물일 때나
나 장소에 정관사를 사용합니다.


(계 11:7-8)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
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 터인즉 저
희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
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

전 3년 반이 다할 때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으로부터 죽임을
당합니다. 이 짐승은 적그리스도를 말합니다(계 13:1 '내가 보니 바다에
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
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한 이름들이 있더라').

짐승인 적그리스도도 대단한 존재며 두 증인도 보통 사람을 초월한 전도
자입니다. 따라서 이 양자 간의 싸움은 전쟁이란 용어로 표현하기에 적
합할 것입니다. 싸우는 그 방법은 모르지만 좌우간 전쟁을 방불케 하는
사건으로 치를 것입니다.

짐승에게 죽임을 당한 두 증인의 시체는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
즉 예루살렘에 버려질 것입니다. 큰 성은 계시록상 대개 타락한 바벨론
성을 말하고 여기 두 증인의 시체가 버려질 무렵 예루살렘은 적그리스도
의 영역으로 종교와 도덕이 타락할 본거지입니다. 그래서 영적으로는 소
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는 곳이라 했습니다.



(계 11:9-10)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목도하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이 두 선지
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
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모든 세인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 보게 되고 예루살렘 거리에 버
려진 채 장사하지 않았습니다. 두 선지자는 종교적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땅의 사람들에게는 심판을 선언하고 놀라운 권세와 능력으로 그들
을 제압하던 관계로 세상으로는 '괴롭게 한' 자들로 표현합니다.

두 증인이 죽자 무서우리 만치 능력을 보이던 그 증인의 두 시체를 보고
모두들 즐거워했습니다. 그리고 짐승을 따르는 무리들은 기뻐서 서로 예
물을 보냅니다. 생명의 역사를 위해 귀중한 두 증인의 활동은 안타깝게
도 끝나게 되었습니다. 크다란 손실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활동과 순교
그리고 재생의 역사를 통하여 지상의 성도들은 큰 위로를 얻게 되었습니
다. 짐승을 따르는 세속인들은 오히려 기뻐했습니다.



(계 11:11-12) 삼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저희가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
라가니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3일 반이 지나자 두 시체 속에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가므로 일어서게 되
었습니다. 시체 구경하러 온 자들은 크게 두려워했습니다.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나서 두 증인을 부르시매 둘이 하늘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공개적으로 예수님처럼 구름을 타고 승천을 했습니다. 물론 신자들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말세의 큰 환난을 이기게 하는 본보기
로서의 증거였습니다.

이처럼 환난이 다 지나면 주께서 강림하시어 올라오라 명하실 때 우리
남은 성도들도 그들처럼 휴거되어 주를 영접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환상을 통하여 요한이 받은 예언의 깊은 의도는 말세를 살아가는 성
도들이 환난 받아 죽임을 당한다 하여도 다시 살게 하실 하나님의 능력
과 약속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죽어도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마지막 시대를 신앙으로 승
리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환상에서 주는 가치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들에게도 꼭 같이 공유하면서 진리의 마지막 승리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계 11:13) 그 시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
은 사람이 칠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두 증인이 승천할 시에 큰 지진이 나서 성 1/10이 무너졌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7천이라 했습니다. 이는 세속의 성이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1/10
은 하나님의 것을 뜻하고 하나님의 직접적인 관여로 나타난 형벌이라는
것을 뜻합니다(십일조, 창 28: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
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두 증인이 주로 활동한 곳은 적그리스도의 성이 되어버린 예루살렘성인
데, 그 성이 지진으로 인해 수많은 인명 피해가 생길 것입니다. 또한 전
세계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의 성들, 청와대 및 세속을 지향하는 대
형 빌딩들도 수없이 갈라져 인명 피해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
라는 분명한 고백이 그들의 입으로 나올 만큼 무서운 결과를 볼 것입니
다.

7천은(7x1,000) 많다는 숫자적 의미로 지진으로 죽게 된 사람들이 많아
서 이 일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내려진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말
입니다. 이것을 본 세속인들이 하나님께 두려움으로 영광을 일순간이나
마 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믿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이
아니라 두려움에서 일어나는 패배자의 고백입니다.



(계 11:14-15)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세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 일
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위의 상황까지는 둘째 화였습니다(6째 나팔 재앙 9:13-). 일곱째 천사
의 나팔, 즉 마지막 나팔 재앙이 예고됩니다. 첫째와 둘째 화가 지나고
이제 셋째 화로서 세상은 끝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나팔을 불게 되면
세상은 주 예수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나팔을 불 때 '하늘에서 큰 음성들이' 납니다. 이는 천사들의 소리가 아
니라 찬송 내용으로 보아 그리스도의 영광을 기다리는 성도들의 음성으
로 봅니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된다' 함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세상 나라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됨은 주
께서 재림하셔서 이루실 나라입니다(마 19:28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
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
를 심판하리라').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하심은 주께서 재림하시게 되면 그때로부터 영원
한 왕으로 군림하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치세는 환경적 요소까지 새
롭게 하시어 성도들을 행복 충만으로 살게 하실 것입니다. 주님이 재림
하시면 세상의 모든 이데올로기적 편견에서 벗어나 완전한 정치,세상 자
체를 새롭게 하신 환경으로 살게하실 것입니다.



(계 11:16-18) 하나님 앞에 자기 보좌에 앉은 이십 사 장로들이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노
릇하시도다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임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시
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무론 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
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

24장로들은 신구약 하나님 백성을 대표하는 천상교회 장로들입니다(12지
파+12사도). 하나님의 크신 권능을 찬양하고 감사하며,마지막이 되어 먼
저 죽은 자들로 다시 일으켜 대심판-지옥을 보내기 위해 심판하시게 될
과 성도들에게는 상을 받게 하실 소위 백보좌 심판을(20:11-) 예고 했습
니다.


주님이 오시는 날 성도들에게 상을 주시리라는 것은 최후의 승리를 안겨
주실 주님의 약속을 말합니다. 우리가 답답함을 당하고 때로는 순교를
당해도 주께서 오시는 날에는 이 모든 잃어버린 것들을 다 찾아주시고
몇배로 상급을 채워주실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의 신앙을 무조건 긍정적인 환경으로 이끄시는 하
나님의 능력만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일컫는 진정한 승리는 고난
과 순교까지도 하나님의 힘으로 공급되는 위대한 신앙이라는 사실입니
다. 이것을 알고 인내하며 참고 기다리면서 주를 증거하는 자들에게 상
급을 주실 것이라는 위로입니다.



(계 11:19)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
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이는 하나님 나라가 성도에게 완연히 보이는
시기며 불신자에게 마지막 심판이 내려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됨을 의미합니
다. 하나님을 믿되 언약을 믿는 것이 구약이요 또한 신약입니다. 하나님
의 미래는 언제나 언약 가운데서 역사되는 것입니다.우리 성도들은 하나
님이 우리에게 주신 신구약 언약을 토대로 인내하고 승리해야 될 것입니
다.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고 언약궤가 보이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완연하
게 노출되는 것을 뜻합니다. 이는 뚜렷한 하나님의 세상 심판과 성도들
에 대한 약속의 성취를 보장하는 그림입니다.


제 12장 여인과 용의 실패


(계 12:1)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


'해를 입은 여자'는 이어지는 내용 전문(全文)으로 보아 이스라엘 민족이자 유대교회입니다. 해를 입은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입었다는 뜻입니다(시 19:1-6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해는 그 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 온기에서 피하여 숨은 자 없도다')
여자는 하나님의 백성 곧 이스라엘이나 교회를 뜻하는데 여기서는 뒤에 나오는(남자:예수 그리스도, 교회) 내용으로 보아(12:5) 교회일 수는 없고 시대 순으로 이스라엘 민족이며 유대교회이고 또한 직접으로 여자는 마리아입니다.
발 아래 달은 영광스런 모습이자 아내를 상징합니다(창 37:8-9 '그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 꿈과 그 말을 인하여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 형들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열두 별은 12지파 곧 구약의 백성, 그 조직수를 뜻합니다. 면류관은 승리, 영광을 상징합니다.
다음 13장에서 세계 교회의 핍박이 시작 되는데, 본 장에서는 이렇게 영광스런 이스라엘처럼 기독교회도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하여 영광스럽게 될 것을 암시해 줍니다. 그 전에 이스라엘의 영광스런 구원을 보여 주시고자 합니다.




(계 12:2)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


'아이'를 직역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뜻합니다(5). 즉 유대교, 이스라엘이 메시야를 갈망하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해산 직전이니 메시야 탄생 직전을 말합니다.



(계 12:3-4)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한 큰 붉은 용'은 사단입니다(9). 붉은 색은 파괴, 살기의 표상입니다. 머리가 일곱이니 지도자의 수이며 10뿔, 10은 세속의 완전수, 즉 세속의 완전한 힘을 모은 단체 국가를 상징합니다. 10개국일지 아니면 그 이상도 될지 모르나 뿔은 힘을 상징하므로 힘 있는 나라들의 모임을 의미합니다.
면류관의 어의(語意)는 주관한다는 뜻이고 7면류관은 7개 나라가 주관한다는 것이니 그간 애굽, 앗수르, 바렐론, 메데.파사, 헬라, 로마 그리고 마지막 7번째의 나라는 대환난 때 일어날 적기독국의 통합국일 것입니다.
'꼬리'는 거짓을 상징합니다(사 9:15 '머리는 곧 장로와 존귀한 자요 꼬리는 곧 거짓말을 가르치는 선지자라').
'하늘 별 ⅓'을 땅에 던지더라고 했는데, 여기의 별은 내용상 천사들을 상징하며(단 8:10 '그것이 하늘 군대에 미칠만큼 커져서 그 군대와 별 중에 몇을 땅에 떨어뜨리고 그것을 짓밟고', 욥 38:7 '그 때에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소리하였었느니라'). 별 ⅓은 가장 아름다웠다가 타락한 큰 별 사단의 휘하에 같이 타락한 별들, 즉 귀신들입니다.
이들은 교회가 세계화되면서부터 사단의 명령 하에 교회를 핍박하고 인생들을 타락시켜 오고 있습니다. 그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의 아이를 삼키고자 했다함은 예수 그리스도 출생 시 헤롯 왕으로부터 죽임을 당할 위험을 역사를 소급하여 말해 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의 마지막 때 역사를 예언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그 후 역사의 맥을 대략 기술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계 12:5-6)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일천 이백 육십 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여자(마리아)가 아이를 낳았는데 이는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자'라 하였으니 예수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때문에 여자가 교회라는 직역은 옳지 않습니다. 교회가 예수를 낳았다라고 읽어야 하므로 문맥 상 여자가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계 2:27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계 19:15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여자가 만 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낳았다는 뜻이요, 그 아이는 하나님 앞과 보좌 앞으로 올려 갔다 했으니 승천하셨다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대환난기 후반부 1260일(3년 반)간 유대교는 적그리스도국의 핍박을 받아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으로 피신 받게 될 것을 예언했습니다(사 26:20-21 '내 백성아 갈지어다 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깐 숨을지어다 보라 여호와께서 그 처소에서 나오사 땅의 거민의 죄악을 벌하실 것이라 땅이 그 위에 잦았던 피를 드러내고 그 살해당한 자를 다시는 가리우지 아니하리라'). 그 내용은 13절부터 좀더 소상히 기록됩니다.




(계 12:7-8)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 쌔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여기 '하늘'은 영적 하늘입니다(heaven). 그러니 전쟁도 영적입니다. 미가엘은 가브리엘과 더불어 천사장인데 하나님의 전쟁을 맡아 수고하는 천사입니다. 그리고 그를 돕는 용사들로서의 천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용'은 사단이며 사단과 그 부하들 그리고 가브리엘과 그 천사들이 대결전을 치르게 됐습니다. 그 결과 큰 용은 세속을 지배하던 자기 위치에서 있을 수 없었습니다. 즉 그의 그의 공중 세력은 무너졌다는 것입니다(공중 권세 자리, 엡 2: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계 12:9)큰 용이 내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쫓기니라


'큰 용', 사단은 하늘에서 내어 쫓겨났습니다. 사단은 영적으로 공중 권세 받은 자로서(엡2:2) 지금까지 성도의 기도가 하나님께 오르지 못하게 막거나 성도들의 영적 세계를 유혹하고 혼란케 했던 놈입니다(단 10:13 '그런데 바사국 군이 이십 일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내가 거기 바사국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더니 군장 중 하나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주므로').
큰 용은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 한즉 창세기 3장에 뱀 속에서 하와를 유혹하여 범죄케 하던 그 뱀, 곧 사단이라는 것입니다. 그 놈은 온 천하를 꾀는 자라 했습니다. 이제 땅으로 내어쫓기니 하늘은 청소되었으나 직접으로 지상교회 교인들의 핍박이 가혹 할 것이 예상됩니다.

(계 12:10-11)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이제 하늘이 청소되니 하늘에서 찬양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고 구원을 가로막는 일 그리고 그리스도의 증인들을 죽이기까지 한(11) 이 사단이 땅에 떨어져 내려갔으므로 찬양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놈이 땅에 내려갔으므로 땅에 있는 성도들은 더한층 괴로울 것입니다.




(계 12:12)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있을찐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 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


하늘에 속해 있는 천상 성도에게는 즐거운 일이나 땅과 바다, 즉 교회(종교계)와 세상(바다)에는 화가 있을 것이라, 이는 마귀가 자기의 활동할 때가 얼마 못되므로 땅에 직접 내려왔으며 또한 크게 분을 내며 왔기 때문입니다. 사단이 성도를 괴롭히고 세속을 죄악으로 유도할 영역의 시기 그런 능력 한계는 다되어 가는 줄 알았습니다. 마8:29에 예수를 만난 귀신들이 자기들의 마지막 때가 되기 전에 예수께서 그들을 괴롭힐까봐 외칩니다('...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그들은 멸망의 때를 알고 기다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계 12:13-14)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용이 여자를 핍박함은 유대교를 말세에 핍박한다는 것입니다. 남자(예수), 즉 기독교를 낳은 유대교(마리아, 유대인)를 핍박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 유대인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어느 곳으로 피신 받아 갑니다. 큰 독수리의 두 날개, 이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재빠르고 안전하게 피신 받을 것을 상징하는데 아마도 지금의 비행기로 이동함을 뜻하지 않나 봅니다. 그런데 이는 기적같이 옮겨지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피신한 광야 어느 곳은 평범한 곳이 아니라 6절에 이른 바대로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입니다. 원서에는 정관사가 있어 '그 광야'로 지정된 장소로 간주됩니다. 그 곳에서 1260일, 즉 대환난의 3년 반 동안 하나님의 은혜로 피신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계 12:15-16)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 가게 하려 하되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뱀, 사단이 그 여자에게 물을 강같이 토하였다 함은 피신 받는 유대인을 향해 적그리스도의 군대가 광야 그 곳을 진격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홍해의 기적같이 땅이 그 환난을 삼켜 버리므로 하나님의 구원은 사단이 막을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계 12:17)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용은 유대인을 놓치고 결국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유대인으로서 개종한 기독교인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유대교)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기독교적)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했는데, 이제 유대교인은 그 광야로 피신 갔고 남은 유대인으로서의 기독교인과 천하 만국 성도를 괴롭히려고 세속의 정치 권력 위에 섰더라는 것입니다. 바다는 세상, 모래는 모든 세상 사람들입니다.
이리하여 계시록 13장에서부터는 유대교인의 환난 기사는 없어지고 세계 만국 기독 성도의 핍박 받는 마지막 대환난 기사가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 전에 유대인을 어떻게 하나님이 도우시고 구원하셨는가 하는 장면을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천사로 또한 기적의 힘으로 결국 승리케 하신다는 하나님의 구원을 12장에서 보여주셨으므로 낙심치 말고 승리하라는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제 13장 두 짐승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


(계 13:1)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한 이름들이 있더라

본 장에는 두 ‘짐승’이 나옵니다. 하나는 바다에서 올라오니 세속의 왕이요 또 하나는 땅에서 올라오니 종교계의 거짓 선지자로서 세속의 왕 적그리스도를 위한 종교계의 유명 인사입니다.
적그리스도인 사람을 짐승이라고 한 것은 용의 영역(靈力)을 입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바다에서 나온 짐승은 뿔이 열이고 머리가 일곱이니 앞서 12:3에 나타난 그 용의 세력입니다.
용에 대한 형용은 같으나 12장에서는 미가엘과 싸워 패배하기 직전에 하늘에서 보였고 이제는 그 용이 땅에 떨어져 내려왔는데 다시 세속을 상징하는 바다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세속주의 적그리스도국의 탄생을 예고합니다.
열 뿔의 ‘면류관’은 승리와 주관의 영광 표시이며 10은 세속의 완전수로 세상의 큰 힘이 모두 뭉쳐진 7개 정상을 둔 연합국이라는 말입니다. 즉 세상으로 완전한 힘을 지닌 적그리스도국의 능력을 말합니다. 그 간에 세상을 주름 잡았던 나라들이 애굽, 앗수르, 바벨론, 메데.파사, 헬라, 로마였으며 말세에 나타날 힘 있는 연합국으로 소위 재흥 로마국 같은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 머리들에는 ‘참람한’, 교만하고 분수에 넘치는 형용의 이름들이 있더라고 했습니다.


(계 13:2)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그 ‘짐승’은 표범 같으니 헬라처럼 재빨리 정복하는 나라요, 그 발이 곰같으니 메데.파사처럼 막대한 군대로 세계를 짓밟을 것이며, 그 입은 사자의 입같으니 바벨론처럼 천하를 삼킬 만한 권세를 사단이 그 짐승에게 주었다고 했습니다. 지구촌 역사에 가장 능력이 많았던 나라들이 동시에 결집하게 된 것처럼 강한 나라로 일어날 것입니다.


(계 13:3-4)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그의 일곱 ‘머리’ 중 하나가 죽게 되었다가 다시 회복하는 일은 아마 그 중 대표되는 왕이 암살을 당하든지 했다가 구사일생으로 살게 됐을 때, 그 일로 인해 인기가 세계적으로 치솟게 되고 분명 죽을 사람인데 살게 되므로 꼭 메시아 같은 의미를 던지게 될 것입니다.
사단인 용이 그 짐승에게 능력을 입혀 주었기에 살아났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신봉하고 경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의 부활을 흉내내기라도 하듯 지도자급의 한 왕이 죽을 뻔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다시 살아나자 과연 강하다는 이미지가 굳어지고 그가 장차 세상을 주도할 권세자로 떠오를 것입니다.


(계 13:5)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 두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짐승은 용으로부터 ‘큰 말과 참람된 말’을 받으니 이는 교만과 하나님께 하지 못할 망령된 말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공개적으로 모독하는 말로 T.V나 어디서든 시사화 될 것입니다. 또한 용으로부터 42개월 간 일할 권세도 받는데 이는 천하 만국 성도를 핍박하려는 것입니다.


(계 13:6-7)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적그리스도인 짐승이 하나님과 하늘의 백성을 훼방하고 지상의 성도들을 핍박하며 ‘각 족속과 백성과 나라를’ 다스리게 됩니다. 이 때는 세상이 약 3년 반정도 남았을 무렵이며 마귀의 활동이 얼마 남지 않은 때입니다. 특별히 세속주의는 본래 기독교 신앙을 도전합니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을 향하여 교만한 말을 하며 세상에 자신이 가장 큰 자처럼 세인들에게 하나님을 훼방하는 교만으로 자기의 이미지를 강하게 표시할 것입니다.
여기서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됨은 육신의 승리입니다. 여러 가지로 생활을 구속하고 핍박이 가중될 것입니다. 물론 이긴다는 것은 그의 육적 승리일 뿐이지 영적 승리는 아닙니다. 성도는 죽음을 받을지라도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은 저버리지 않고 반드시 이기게 됩니다(단 7:21 ‘내가 본즉 이 뿔이 성도들로 더불어 싸워 이기었더니’,요 17:15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계 13:8-10)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찌어다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에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그 짐승의 세력이 얼마나 무서웠든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 아니라면 천하 모든 사람들은 그 짐승, 적그리스도를 경배하게 됩니다.
이렇게 중대한 시험의 때이니 정신을 차리고 잘 들을 것을 명하여 귀 있는 자는 ‘들을 찌어다’라고 경고했습니다.
‘사로잡는 자’에게 ‘사로잡힐 자’는 잡혀 갈 것이고 칼(총?)로 죽게 될 자는 그렇게 순교하라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이 무서운 때에도 신앙을 지키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무서운 핍박이 와도 주께서 신앙을 주시면 죽음도 불사하고 끝까지 인내하는 신앙이 있습니다. 말세의 핍박이 크면 주께서 주시는 신앙심도 더욱 커지게 되니 염려를 버리도록 합시다.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 성도가 되는 것도 성도의 신앙을 지키는 것도 위로부터 오는 은혜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믿으려고 하나 믿음은 선물이며 상황따라 하나님이 믿음을 주실 것입니다(마 10:19,20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고전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계 13:11-12)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두 번째 나타난 짐승은 땅에서 올라오니 곧 종교계의 거물(巨物)입니다. 두 뿔 달린 새끼 양같은 짐승으로 용처럼, 사단처럼 말했다고 했습니다. 이 짐승은 먼저 나온 짐승, 곧 사단의 능력을 한 몸에 받은 적그리스도로부터 능력을 입었습니다.
현재도 이단들은 혼자 이단형세를 하지 않습니다. 항시 자기의 악한 영을 공급하는데 안수하거나 강압적으로 복종케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이목을 끌도록 집회 때나 사람들에게 선전하게 합니다. 지금까지 한국에 일어난 이단들의 계보가 그러합니다. 신비주의로 성도를 유혹하던 이단이 단체로 커지면 또 거기서 배반자가 나와 비슷한 내용으로 성도들을 유혹합니다.
권세를 받아 세인들로 하여금 적그리스도를 경배케 했습니다. 따라서 사단과 적그리스도 그리고 종교적 지도자인 이 이단자와 합세하여 마부, 마자, 마영의 3단체로 세상을 정치 단일과, 종교 단일화로 이끌게 되는 것입니다. 이 종교적 지도자는 아마 교계에서 나올지 모릅니다. 종교를 잘 알고 통합의 지도력을 갖춘 자로서 적그리스도의 통치를 협력하게 될 것입니다.


(계 13:13-14)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큰(많은) 이적’을 행하는 종교 지도자인데 그는 심지어 하늘로부터 불을 땅에 내려지게 하는 이적을 보일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는 이미 용의 권세, 능력으로 채워져 있으므로 적그리스도는 이 종교적 지도자에게 능력을 줄 수 있었고, 이 자는 여러 가지로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있는 많은 종교인과 세인들을 미혹하여 결국 적그리스도를 경배케 하고 그를 위해 우상을 만들게 하였습니다.
능력과 이적은 본래 하나님의 것인데 간혹 마귀도 그런 것을 보여줍니다. 애굽의 박사들이 그랬습니다(출 7:12 ‘각 사람이 지팡이를 던지매 뱀이 되었으나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키니라’).
가장 심각한 것은 주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면서 이적이나 특별한 능력을 발휘할 때 우리가 대개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기가 쉬우나 성경에는 꼭 그렇지는 않다고 가르칩니다.
여러 능력과 귀신을 쫓아내기까지 한 선지자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난 행동에 대해서는 구원을 줄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마 7:22-27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
특히 말세가 되면 거짓 선지자가 많아지고 그들의 특성은 이적주의라는 점을 예고하셨으며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게 된다 하셨습니다(마 24: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마 16:4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시다’).
그러므로 이적은 있으되 말세론적으로 볼 때 우리가 너무 외적으로 표시되는 이적주의를 지향하거나 이적 나타내는 것을 무조건 큰 신앙으로 가르친다면 성경적으로 무례하지 않을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계 13:15)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이 종교 지도자인 거짓 선지자는 적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은 우상을 만들어 생기를 주어 우상이 말까지 하게 하는 놀라운 일을 벌릴 것입니다. 그리고 우상에게 모두 경배케 하며 그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는 모두 죽이는 상황까지 이릅니다.
그 종교 지도자인 거짓 선지자가 짐승으로부터 받은 바 우상에게 넣어 줄 생명력은 아주 특별한 것입니다. 우상이 말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까지 침범하는 일이며 생명공학적으로 위대한 업적이 되어 세상인들을 놀라게 할 것입니다.

(계 13:16-17)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오른 손이나 이마에’라고 신분증이나 어떤 매개물이 아님을 강조하며 분명히 몸에 그 표를 받게 됨을 시사합니다. 지금의 바코드(줄무늬 모양의 막대 부호, 만국 상품부호;UPC)는 얼마든지 몸에 문신하기가 과학적으로 쉬울 것입니다.
지금의 경제 활동 매체인 카드의 분실로 인한 개인의 경제적 위험을 해결하는 것은 몸에 통장 번호를 새겨 넣는 것이 가장 유리할 것이나 이것이 적그리스도의 통제 역할이 될 것입니다.
종말에 가면 적그리스도가 종교 통일을 이룩한 즉시 경제 통일을 이루게 됩니다. 경제 활동 방법은 적그리스도의 이름이나 그 이름을 숫자화한 그 수(數)를 오른 손이나 이마에 받도록 할 것입니다. 결국 각 국의 화폐 단위는 통일되는데, 짐승의 이름으로 획일화하며 동서 남녀 노소 빈부를 막론하고 다 받게 합니다.
이 표를 받지 않으면 매매를 못하니 어쩔 수 없이 세인들은 받게 될 것이나 이 표는 지옥행 티켓입니다. 결코 상징적인 의미로 해석될 수 없는 종말의 현실 생활입니다. 이마와 손의 신분적 의미 사상적 교육 등으로 비유 해석은 여기서 옳지 않은 것같습니다. 문자대로 적그리스도의 경제 활동이라 봅니다(계 14:11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계 13:18)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 육십 육이니라

이 짐승의 이름을 숫자화 하면 ‘666’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 짐승인 적그리스도는 이름자를 숫자화 할 수 있는 나라의 사람이어야 할 것입니다.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 등은 숫자화 할 수 있습니다.
13장은 적그리스도가 세상을 정치적으로 통일하고 종교 및 경제적으로 모두 통일하여 자신의 세상으로 군림하며 성도를 대대적으로 핍박하는 시대, 즉 후 3년 반의 시기로 대 환난기가 될 것입니다.
적그리스도의 표냐 아니면 예수냐 그래서 순교할 것이냐 라고 하는 끔직한 상황에서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 존재하고 주께서 오실 때까지 어떻게 살 수 있을까가 궁금할 뿐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이쯤에서 공중으로 휴거되어 남은 최악의 핍박 시기는 피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 일명 중간 휴거설을 발표, 따라서 앞서 12장에 피신간 그 여인을 교회라 해석합니다. 그러나 그 여자를 교회라면 교회가 아이(예수 그리스도)를 낳았다라고 읽어야 하므로 역사를 거꾸로 읽게 되는 것이니 부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본 장의 내용이 하루에 일어날 일이 아니라 3년 반 기간에 일어날 사건들의 압축입니다. 그리고 다음 14, 15장에서 구원받을 자들의 천상 모습과 16-18장에서 세속의 권세와 영광이 무너지는 심판을 보며 우선 위로를 받기를 원합니다.
어린 양의 피로써 구원 얻은 이스라엘도 보호하시거든 하물며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기독 성도들을 버리시겠습니까? 죽어도 다시 살게 되는 하나님의 구원이 있을 것입니다(요 10:29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히 9:13-14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겠느뇨’).

제4장 천사의 전도와 두 가지 추수

(계 14:1)또 내가 보니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어린 양’은 예수님, ‘시온산’은 예루살렘의 서남쪽에 있는 산으로 이곳은 다윗 성이 있던 곳인데 여기 시온산은 3절을 보아 천국을 뜻합니다. 특별히 시온이란 봉우리라는 뜻으로 짐승이 올라온 13:1의 바다에 비해 시온산은 영광의 자리,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그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144,000인’은 소위 이단들이 말하는 한정된 구원 얻을 자의 수효가 아니라 구원 얻을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을 상징하는 숫자입니다(144,000= 12x12x 1,000). 혹 어떤 해석자는 7장의 144,000인들의 휴거한 모습으로 보나 7장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인’을 맞았고 여기는 어린양과 그 아버지의 이름이 쓰여져 있으므로 다릅니다.
여기 144,000인은 예수 믿은 유대인(그 아버지의 이름)과 뭇 이방 기독 신자(어린양) 모두를 가리키며 특히 먼저 환난 가운데서 죽은 성도들의 부활 승리를 뜻합니다(4). 왜냐면 13절 이후에 살아 있는 성도들을 모두 추수하는 내용이 이어져 나오기 때문입니다(4절, 처음 익은 열매).


(계 14:2-3)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 사만 사천 인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하늘의 소리는 신령하여 많은 물소리 같았습니다(1:15). 그들의 노래 소리는 거문고 타는 소리 같았는데 이는 아름다운 소리요 구원받은 자의 소리입니다. 구원의 영광을 감사 찬양하니 큰 뇌성처럼 웅장하고 위엄까지 했습니다.
그들(144,000)은 하나님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이는 하늘의 노래요 구원의 노래입니다. 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7:10-12에 있는 기독 성도들의 노래입니다. 7장에 보면 유대인 144,000인도 나오는데, 이는 구원 얻은 유대교 신자이므로 그들은 24장로 앞에서 찬송하거나 땅에서 구속받았다는 표현은 없습니다. 그 뒤에 나오는 기독 성도들은 본 장에 나온 144,000인과 같이 노래합니다.


(계 14:4-5)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여기 144,000인들은 더럽히지 않은 ‘정절이 있는 자’라, 즉 신앙으로 거룩하여 처녀같이 깨끗한 심령으로 그리스도를 따른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어린 양, 예수님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어떤 상황에서든지 주께서 하신 말씀대로 따라 갔다는 것입니다. 그 666의 핍박과 유혹에 물들지 않고 말씀주의로 오직 그리스도만을 따랐다는 것입니다.
구속받은 사람이며 특히 ‘처음 익은 열매’라 한즉 먼저 주를 믿고 순교한 자와 믿음으로 살다가 배반하지 않고 죽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유대인으로서 개종한 기독교인과 이방 기독 신자들로 보입니다. 그들의 입에는 거짓말이 없으니 평범한 사생활에 실수 같은 거짓말이라기 보다 신앙적 진실성에 거짓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거짓’은 마귀의 본성입니다(요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마귀의 시대인 그 말세에 이들은 거짓의 아비인 마귀, 짐승의 유혹을 받지 않고 시대에 동류 되지 않고 진리에 충실했다는 것입니다. 흠이 없다 함도 절대적으로 죄가 없다는 식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회개와 성실한 신앙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아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상태입니다. 어느 때든지 어찌 행위에 완전한 자가 있겠습니까? 단지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신앙과 진리에 완전했다는 것입니다.


(계 14:6-7)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다른 천사가 공중에’ 라고 했는데 앞서 공중에 보인 천사는 12장에 미가엘이었고, 여기는 다른 천사로 복음을 맡은 천사인데 가브리엘인 듯 합니다(눅 1:19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하나님 앞에 섰는 가브리엘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입었노라’).
이 천사가 공중을 날아가며 마지막 전도를 합니다. ‘영원한 복음’은 변치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미하고 특히 복음이 변질되고 신앙이 식어진 말세에 주의 약속대로 심판하게 된다는 것을 예고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신앙이 없는 자 혹은 불신자들은 모두 짐승인 적그리스도를 두려워했습니다. 이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함이요, 또한 사람에게 영광을 돌리고 있는 그 시대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종말에는 믿음의 복음에 엄중함이 서려 있습니다. 같은 기회라도 끝 부분은 그 전보다 초조한 감성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곧 불로써 심판할 그 시간이 다 됐으니 창조주께 속히 경배할 것을 선포했습니다.


(계 14:8)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그 천사를 뒤 이어 이르시기를 ‘큰 성 바벨론’, 즉 적그리스도의 성이며 그를 경배하는 뭇 세속의 도시가 파괴됨을 예고합니다. 특히 바벨론성 곧 적그리스도의 보좌인 예루살렘성이 무너짐을 예고합니다.
예루살렘 성에 적그리스도가 군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살후 2:4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계 14:9-12)또 다른 천사 곧 세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그 뒤를 이은 천사가 이르기를 짐승인 적그리스도와 그의 우상을 경배하고 666의 표를 받은 자는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 즉 심판을 받으리라 했으며,
‘거룩한 천사들’은 심판 날 하나님 앞 심판석으로 앉아 함께 지켜 볼 4생물로 보입니다(막 8:38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어린 양’은 예수 그리스도, 그의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음은 곧 불심판에 들게 됨을 뜻합니다. 물론 지옥의 고난일 수도 있으나 이는 순서상 불심판 받는다 함이 옳습니다.
또한 그 고난은 세세토록 갈 것이니 우상을 경배하고 그 표를 받은 자는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니’ 죽기 전에도 적그리스도의 감시 속에 불안과 괴로움으로 사후에도 영원토록 고난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이런 말세에 짐승을 경배치도 그 표를 받지도 않는 믿음이 있을 것이며 하나님의 계명 중 가장 중요한 다른 신과 우상을 경배치 않을 것이며 주를 믿음으로 승리할 것입니다.


(계 14:13)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본 절에서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은 특히 말세에 믿음을 지키고 죽은 자들은 순교자들일 것입니다. 그들은 복되며 상급이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물론 대환난기가 아니라도 봉사하다가 죽은 모든 성도에게 상급이 있지만 말세에 고난과 핍박 중에 순교될 자들을 위로하여 구원과 상급을 약속하신 내용으로 봅니다.
말세에 적그리스도의 환난이 극심하고 순교가 많을 것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이 대환난기에 대한 불안 심리를 이러한 위로의 말씀으로 소망을 가질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이 복되는 것은 그의 영원한 영생 뿐아니라 대환난 때 더욱 복된 것은 그 인내와 순교는 전무후무한 충성이 되기 때문입니다.


(계 14:14-16)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가 앉았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이한 낫을 가졌더라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네 낫을 휘둘러 거두라 거둘 때가 이르러 땅에 곡식이 다 익었음이로다 하니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곡식이 거두어지니라

본 내용은 곡식 추수로 산 성도들을 한꺼번에 부활 변화시키사 구원해 주시는 내용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흰 구름 위에 앉은 ‘사람의 아들 같은 천사’를 예수님으로 오인하나 내용을 자세히 살피면 그는 예수님이 아니라 추수하는 천사입니다. 예수님께서 심판을 추수에 비유한 내용을 살펴 볼 때 이 천사는 문자대로 천사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 (마 3:12)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 (마 13:38-39)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아들들이요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숫군은 천사들이니
* (마 13:41)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 (마 24:31)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위 구절들을 보면서 우리는 본 계시록 14장의 내용, 특히 공중을 날으며 외치는 천사와 여기 곡식 추수를 하는 천사는 예수님이 아니라 추숫군인 천사임을 알게 됩니다.

(1) 금 면류관을 쓴 천사인데, 예수님이 쓰신 면류관은 헬라어 원어로 디아데마타(διαδήματα), 즉 영광, 존귀, 주권자의 표, 왕관의 뜻이며 여기 천사의 면류관은 스테파누스(στεφάνους)로 승리의 월계관입니다. 따라서 12장에 하늘의 전투에서 싸워 이긴 자 미가엘이 아닌가 합니다.
(2) 분명히 추숫군은 천사라고 하셨으며(마13:39,40)
(3) 이 천사는 낫을 가졌으나 계시록에 예수님은 말씀의 칼을 가지신 분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계1:16)
(4) 본문의 천사가 예수님이라면 어떤 천사가 예수님께 곡식을 거두라! 고 명령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15, ‘낫을 휘둘러 거두라!’).
(5) 10:1에서도 혹 자가 예수님의 공중 재림으로 보듯 본 절도 비슷한 모양이므로 오인하면 예수님의 재림이 몇 번씩 있게 됩니다. 예수님의 모습은 분명하게 19장에서 보이십니다. ‘이(利)한 낫’은 곡식 거두는 예리한 낫인데 구원을 확실하게 해 주신다는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계 14:17-20)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또한 이한 낫을 가졌더라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이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가로되 네 이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까지 닿았고 일천 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

또 다른 천사가 등장, 성전에서 나오는데 역시 심판적인 예리한 날을 가진 낫을 들고 있었습니다. 또 불을 가진 다른 천사가 이 낫을 든 자로 명령하는데 불은 심판을 상징합니다.
‘포도송이를 거두라’고 명령하는데 본래 포도가 성도를 상징하나 여기는 심판 받을 죄인들을 상징합니다(아 2:15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니라’, 요15:).
뱀이 사단으로 혹은 지혜로 상징되듯이 내용따라 상징하는 바가 다를 수 있습니다(창3:, 계 12:9 ‘큰 용이 내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쫓기니라’, 마 10: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천사가 익은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 틀에 던짐은 하나님의 심판대로 보내졌다는 것입니다. 포도주를 내는 틀에서 짜여진 포도즙은 피로 변하니 형벌의 모습입니다. 그 피가 말굴레까지 닿음은 엄청나게 많은 량의 피가 흐르는 것인데 가혹한 형벌의 결과이며,
‘성 밖’은 예루살렘 밖, 즉 구원받은 백성의 영역 밖에서 1600스타디온으로 퍼져 나갔다 했는데, 스타디온은 로마자로 606척이고, 1600은 아마 숫자적 의미인데 4x10x4x10으로 4는 동서남북이고, 4x10으로 10은 세속의 만수이니 세상에 하나님의 진노가 가득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두 가지의 추수로 먼저는 성도의 구원 추수와 나중은 불신자의 심판 추수입니다. 성도는 하늘로서 유황불 심판이 있기 바로 직전에 성도를 휴거시키는 소망의 장면입니다. 그리고 15장은 부활 승천한 상태의 환상입니다. 불심판은 성도가 받을 리가 없습니다. 15장은 부활 승천장이며 다음 16-18장은 세상 불심판으로 일순간에 있을 일입니다. 이러므로 그 마지막 나팔 재앙, 즉 7대접 재앙은 성도들이 받을 환난이 아니기 때문에 직전에 성도를 휴거시키시는 것입니다. 이 휴거는 예수님의 재림과 동시에 일어날 일입니다.


제 15장 모든 성도의 구원


(계 15:1)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

추수 환상에 이어 이번에도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이 보이는데 천사 7명이 일곱 재앙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것은 마지막 재앙이었습니다. 16-18장에 나오는 대접 재앙으로 대접에 무엇(진노)을 담아 쏟으면 금방 쏟아지는 것을 상기하여 대접 재앙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 일곱 번째 대접 재앙은 ‘마지막 재앙’으로 종말의 심판이 이것으로 마치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대접 재앙은 예수의 재림 직전에 있을 마지막 재앙입니다.


(계 15:2-4)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닷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불러 가로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불이 섞인 유리 바다’, 불은 심판이요 바다는 세상, 그러니 말세에 성도들이 대환난의 지나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구원받은 자들이 두 무리로 나타납니다.
적그리스도의 핍박을 ‘이긴 자’(환난을 통과, 순교)와 그 환난을 ‘벗어난 자’들입니다. 벗어난 자는 환난과 무관하며 환난 밖으로 갔던 자입니다. 벗어난다는 헬라어 에크(έκ)의 뜻은 ‘밖으로’입니다. 따라서 전자는 환난 중에 핍박받은 성도이고 후자는 광야에 하나님이 정하신 그 곳에서 보호받은 하나님의 백성 유대인입니다.
유대인은 육신의 구원을 기대하다가 메시아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는 우를 범하여 지금까지 엄청난 형벌을 받아 왔습니다. 세상 끝에 가면 계시록 12장을 통해 유대인으로서 개종한 기독교인이 있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지금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들이 많다고 합니다(지금 이스라엘 땅에는 교회가 130-140여 개로 늘어났으며 성도 수는 7000여 명에 이르고 있을 정도로 놀랍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정통 유대인은 하나님의 영원한 백성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물론 마지막엔 모두 부활시켜 한 백성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말세에 보호받았던(계12:) 유대인은 환난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의 사상과 믿음이 없어서 육신 구원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약적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개종한 유대인 기독교인과 뭇 이방 기독 성도들은 육신은 괴로움을 받으나 영으로는 싸워 승리하게 됩니다. 구원의 약속이 틀리고 구원받을 자로서 또한 상급이 다른데 후자(핍박받는 기독교인)에게 더 많은 상이 있을 것입니다.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함께 구원을 받아 노래하는데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모세의 노래라면 다분히 구약적인데, 출15:에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넌 후 부른노래를 모세의 노래라고 합니다. 유리 바다(환난)를 건넌 후 모세의 노래, 홍해를 건넌 후 모세의 노래는 그 의미를 같이 하며, 특히 고린도전서 15장을 부활장이라고도 합니다.
어린 양의 노래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한 노래이니 신약적이고 기독교적입니다. 이것은 적그리스도의 환난을 통과한 이긴 성도들의 노래입니다.
찬송의 내용은 전능하심, 만국의 왕되심, 주의 의로우심, 주의 이름 두렵고 영화로우심, 주께서만 거룩하심, 만국(백성)이 주를 경배 할 것임을 찬양했습니다. 출15:과는 내용이 다르나 하나님의 구원의 영광을 찬양함에는 뜻을 같이 합니다.


(계 15:5-8)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세세에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대접 일곱을 그 일곱 천사에게 주니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인하여 성전에 연기가 차게 되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니 하나님의 좌소인 지성소가 열린다 함이요 마지막 심판이 이른다는 것입니다.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은 성결을 의미합니다. 일곱 천사들의 옷은 하나님의 깨끗하고 의로운 심판을 상징적으로 증명해주는 것입니다.
‘가슴에 금띠’는 제사장의 옷인데 이는 존귀함을 상징합니다.
네 생물 중 하나가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대접을 그 일곱 천사에게 주었습니다. 그 일곱 대접 재앙, 즉 말세의 불심판이 끝이 나야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게 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소가 요한의 눈에 보여도 모든 세상의 죄악을 다 심판한 후에야 깨끗한즉 이제 그 곳으로 발걸음을 재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거룩한 것입니다. 거룩한 자들만이 들어갈 터이니 회개하고 깨끗하여 거룩해져서 하나님의 그 위엄하고 영광스런 곳에 입성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 16장 7대접 재앙

(계 16:1-2)또 내가 들으니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일곱 천사에게 말하되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 하더라 첫째가 가서 그 대접을 땅에 쏟으며 악하고 독한 헌데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나더라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난다 하는 표현은 하나님이 마지막 심판을 좀더 확실히 행하시고자 하는 의도로 천사의 지시가 아니라 성전에서 하나님이 직접적인 큰 음성으로 명령하십니다. 물론 천사를 시켜(대행) 세상을 심판하시지만 마지막 재앙은 가장 무서운 재앙이며 합당한 재앙이라는 의미가 강조된 것으로 보입니다.
‘악하고 독한 헌데’는 짐승의 표를 받고 적그리스도를 따른 자들의 몸에 발생하여 그야말로 의술로는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이 저주하신 병고로 시달리며 죽게 될 것입니다.


(계 16:3)둘째가 그 대접을 바다에 쏟으매 바다가 곧 죽은 자의 피같이 되니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더라

두 번째 대접 재앙은 바다가 피가 되는 일이고 바다 모든 생물이 죽게 되는 것입니다. 초기에는 ⅓만이 피가 되고 바다의 생물도 ⅓이 죽었지만 이제는 완전히 죽음의 바다가 되는 것입니다(계 8:8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지우매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계 16:4-7)세째가 그 대접을 강과 물 근원에 쏟으매 피가 되더라 내가 들으니 물을 차지한 천사가 가로되 전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저희가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저희로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니이다 하더라 또 내가 들으니 제단이 말하기를 그러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도다 하더라

세 번째 대접 재앙은 ‘강과 물 근원’이 피가 됩니다. 지금도 물이 오염되어 식수난이 있지만 말세의 식수는 전혀 마실 수 없도록 저주받는데, 애굽에 있었던 저주와 같을 것입니다(출7:19-).
이렇게 되었을 때 세상은 하나님을 더욱 원망하는데 이를 것이나 천사와 제단, 천상의 성도는 하나님의 심판이 의로우시다고 말합니다. 순교의 피를 흘리게 하고 갖은 핍박을 한 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벌하심은 당연지사입니다. 진정으로 십자가의 도를 따라 살던 성도는 주님의 판단을 미루어 모든 것을 인내하고 소망 중에 살다가 주께서 오시는 날 심판해 주심에 찬송 할 뿐입니다.


(계 16:8-9)네째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며 또 회개하여 영광을 주께 돌리지 아니하더라

네 번째 대접 재앙은 태양이 ‘사람들을 태우니, 이것은 하나님의 저주이나 이미 지금 오존층이 날로 찢어져 크게 되어 지구에 쪼이는 햇볕으로 수목이 타고 땅도 타는 예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때의 태양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오존층 관계없이 사람들을 태워 죽게 하는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회개치 않는 세인들입니다.


(계 16:10-11)또 다섯째가 그 대접을 짐승의 보좌에 쏟으니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아픈 것과 종기로 인하여 하늘의 하나님을 훼방하고 저희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더라

다섯 번째의 대접 재앙은 특별히 짐승의 보좌(예루살렘;바벨론성)가 있는 성이 ‘어두워지며’ 사람들은 아프고 종기가 나지만 그로 인해 도리어 하나님을 훼방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애굽에 이 흑암의 재앙을 내리셨습니다(출 10:21-2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하늘을 향하여 네 손을 들어서 애굽 땅위에 흑암이 있게 하라 곧 더듬을 만한 흑암이리라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손을 들매 캄캄한 흑암이 삼일 동안 애굽 온 땅에 있어서 그 동안은 사람 사람이 서로 볼 수 없으며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으되 이스라엘 자손의 거하는 곳에는 광명이 있었더라’).
앞서 여러 가지 재앙들로 인해 온 몸이 쑤시고 아픈 중에 몸에 종기도 나고 고통은 심화되었습니다. 그러면 회개해야 하는데 도리어 하나님을 원망하고 훼방합니다. 이것이 형벌 받을 죄인들의 정서인가 봅니다.
(계 16:12)또 여섯째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더라

여섯 번째 재앙은 ‘유브라데강’이 마르게 되니 9장에서 대환난기 전반에 세계 대전이 있었던 이 곳이며 이 곳에서 역사상 큰 전쟁이 많았습니다. 유브라데강은 인류 최초 문명의 발상지이기도 합니다. 세상 끝날이 되는 그 마지막에 하나님의 군대와 세속의 모든 군대가 모여 이 곳에서 대 결전을 한다는 것입니다.


(계 16:13-14)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개구리’는 소란하고 무질서한 소리로 시끄러울 뿐입니다. 용과 적그리스도인 짐승 그리고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귀신의 영들이 나와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에게 가서 전쟁을 도모하게 됩니다.
물론 이미 정치 통일로 적그리스도는 세계적 왕이지만 분봉 왕 제도로 각 나라 지도자(임금, 대통령)는 있는 것입니다(두뿔 가진 새끼양, 거짓 선지자, 계 13:11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계 16:15-16)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세 영이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

‘도적같이’ 오신다 함은 불신자로 잠자는 영혼에게 오신다 함이요, 빛의 자녀인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도적같이 오신다는 형용은 성경적이지 못합니다. 도적같이 오심은 죄 중에 있는 자가 받을 재림의 상황입니다(살전 5: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는 것은 자기의 죄를 회개하여 믿음으로 죄를 다 가리운 의(義)의 옷을 입은 상태입니다. 마부(魔父,사단), 마자(魔子,적그리스도), 마영(魔靈,거짓 선지자)의 이 세 영이 아마겟돈(메깃도 산;팔레스틴)으로 세상 군왕들을 모이게 합니다. 결국 하나님을 마지막으로 대적하려는 최후 통첩입니다.


(계 16:17-21)일곱째가 그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가로되 되었다 하니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이 있고 또 지진이 있어 어찌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옴으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데 없더라 또 중수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사람들이 그 박재로 인하여 하나님을 훼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러라

일곱 번째 대접 재앙은 공기에다 부으니 이는 하늘이 떠나가는 마지막 불심판인데 성전의 보좌에서 큰 음성으로 ‘되었다’ 했습니다(벧후 3:10 ‘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되었다’는 원문으로 게고넨(γέγονεν), 즉 다 되었다는 완료 상태입니다. 이는 모든 역사는 끝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번개와 음성과 뇌성은 하나님의 능력 표시이며, 지진이 역사에 전무후무한 큰 지진으로 큰 성이 3 갈래로, 이는 바벨론 곧 예루살렘이 무너집니다. 하나님의 맹렬하신 심판으로 각 섬들이 없어지고 산악도 온데 간데 없어집니다. 그리고 무게가 한 달란트, 약 41kg나 되는 큰 우박도 사람들에게 떨어져 사람들이 그 박재로 죽습니다. 그 때에도 사람들은 역시 하나님을 훼방합니다.

 

제 17장 음녀의 불 탐


(계 17:1-2)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많은 물 위에 앉은 음녀’, 먼저 15절로 보아 많은 물은 세계 각국의 백성입니다. ‘큰 음녀’는 그녀가 적그리스도의 능력을 입고 활동한 내용으로 보아 세계 종교 통일 체제로 보입니다(WCC ?).
모든 종교인과 그 지도자 그리고 세속의 군왕들이 그 음녀와 교통하여 사상의 더럽힘을 받아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세계는 화목이라는 사회적 이념으로 기독교와 모든 종교들은 특색없이 하나가 될 것입니다.
‘음행의 포도주’에 취한 것은 역시 심판 받을 음녀의 사상에 빠졌다는 말입니다.


(계 17:3-5)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그 여자는 자주빛과 붉은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사도 요한은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 곳에서 그 음녀를 보게 되는데 이 광야는 세속의 도시를 상징합니다.
그 여자는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이 짐승의 모습은 12:3, 13:1의 그 용의 모습이요 짐승, 적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짐승(용)을 탔다 함은 적그리스도의 권력과 세력을 힘입었다는 것입니다. 그녀의 옷은 화려한 색깔이고 금 보석으로 호화로우며 손에는 금잔으로 온갖 유혹의 수단을 가졌다는 의미입니다.
‘이마에 이름’이 있으니 비밀, 즉 속임이요 음흉함이요, ‘큰 바벨론’, 세속의 성이며 더럽고 하나님을 배도하는 모든 이의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카톨릭의 교황 모습을 보면서 흡사한 느낌을 받습니다. 교황이 쓴 모자의 어두상 이마에는 ‘그리스도의 대리자’ 하고 쓰여져 있으며 이 말을 숫자화 하면 666이 됩니다. 성당의 우람함과 그리고 천주교에서 쓰는 금잔 등은 퍽이나 이 음녀의 모습과 잘 어울립니다.


(계 17:6-8)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내가 그 여자를 보고 기이히 여기고 크게 기이히 여기니 천사가 가로되 왜 기이히 여기느냐 내가 여자와 그의 탄 바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비밀을 네게 이르리라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기이히 여기리라
‘이 여자’는 특히 기독교인을 핍박하고 순교케 했습니다. 말세에 모든 종교가 통일되고 바른 기독 신자를 핍박하게 되는데 이 여자의 본거지는 9절 이하로 보아 로마인 듯 합니다.
사도 요한이 기이하게 여기는 이 여자가 탔던 짐승에 대하여 다시 설명해 주는데 이는 일곱개의 머리와 열 뿔을 가진 짐승이라 했습니다. 이 짐승은 장차 세상을 지배할 적그리스도입니다. 세상은 이 적그리스도의 놀라운 능력 앞에서 기이히 여기게 될 것이며 용, 즉 짐승의 영을 받은 그 적그리스도를 따르게 될 것입니다(계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계 17:9-10)지혜 있는 뜻이 여기 있으니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이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간동안 계속하리라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라 했는데 일곱 산은 당시 로마에 있는 일곱 산입니다. 이는 역사적으로 하나님과 그 백성들을 대적한 일곱 나라를 상징합니다.
일곱 왕 중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라 했는데, 다섯을 요한이 살던 그 이전의 역사에 있었던 나라들로서 애굽, 앗수르, 바벨론, 메데.파사, 헬라로 다섯 나라로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혔던 나라들입니다. 요한 당시의 ‘하나는 있고’에 해당하는 나라는 로마입니다. 그러므로 지난 과거의 다섯 나라와 이제 있는 요한 당시의 로마로서 여섯 번째 나라가 됩니다. 일곱 번째 왕은 소위 적그리스도로 아직 이르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계 17:11-13)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어진 짐승은 여덟째 왕이니 일곱 중에 속한 자라 저가 멸망으로 들어가리라 네가 보던 열 뿔은 열 왕이니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으로 더불어 임금처럼 권세를 일시 동안 받으리라 저희가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더라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어진 짐승’은 네로같은 그 이상의 폭군으로 하나님을 훼방할 자인데 그가 일곱 머리에 속하여 그 일곱 중에 다시 대표가 된 8번째 왕이라는 것입니다.
10개 나라 7왕 중 대표로 새로운 제 8번째 왕으로 선출되는 적그리스도를 뜻합니다. 세속의 만 수인 10이란 숫자대로 열 개국이 될련지 아니면 세상의 권세 있는 나라들의 연합국 자체를 상징하든지 어떻든 연합국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 연합국이 형성되면 적그리스도가 세계 속의 임금으로 군림하게 되고 모든 권세를 연합국의 대표인 적그리스도에게 주므로 적그리스도의 세력은 세계 전체를 주도하게 될 것입니다.


(계 17:14)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적그리스도의 군대가 예수 그리스도를 상대로 싸우지만 패배하게 될 것입니다. 성도들 특히 진실한 자들이 이길 것이라 했는데 이는 거짓된 마귀적 세속 권세에 두려워 하지 않고 신앙 사상으로 승리한다는 뜻입니다. 주께서 강림하실 적에 주의 곁에서 적그리그도의 도전을 능히 이기게 될 것입니다.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한 자들은 곧 믿음을 지킨 자들입니다. 이들에게 또한 사상적으로 이길 수 있는 영적 힘을 주실 것입니다.


(계 17:15-16)또 천사가 내게 말하되 네가 본 바 음녀의 앉은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 네가 본 바 이 열 뿔과 짐승이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

이 ‘음녀’는 많은 백성 위에 군림하여 있었는데 적기독국과 적그리스도는 자기를 위한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합니다. 그래서 세상은 속이고 속는다 했던가요?(딤후 3:13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계 17:17-18)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할 마음을 저희에게 주사 한 뜻을 이루게 하시고 저희 나라를 그 짐승에게 주게 하시되 하나님 말씀이 응하기까지 하심이니라 또 내가 본 바 여자는 땅의 임금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 하더라

적그리스도의 사단적 능력과 세력을 하나님은 허용하시고 결국 심판 받게 하십니다. 죄를 작용케 하시는 것이 아니라 타락과 그로 인해 버림받을 대상에 대해 허용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게 하나 사단은 결국 패배하게 하십니다.
바로의 마음을 악하게 하신 후 이스라엘의 믿음의 승리를 보이시고 하나님 권능의 역사를 보게 하심과 같은 맥락입니다(롬 9:15-18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로라 하셨으니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모든 권세는 위로부터 왔으며 악한 자도 선의 상대역으로 감당할 예정된 자입니다. 악한 자는 악한 사단의 영역을 힘입고 대리역으로 행사하는 것입니다. 사단의 사상을 가지고 나타나는 권세자라도 하나님의 관리 안에서 섭리대로 주어진 권세입니다(롬 13: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그리고 이 여자는 땅의 임금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 했는데 여기 땅의 임금을 다스리는 적그리스도처럼 정치적(바다;13:1) 세력이 아니라 종교적(땅) 세력을 의미합니다.


제 18장 바벨론의 멸망

(계 18:1-3)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 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또 일곱 천사 중 다른 한 천사가 큰 권세를 가지고 하늘로서 오니 땅이 환하였습니다. 힘있는 소리로 적그리스도의 보좌인(예루살렘) 바벨론이 무너짐을 예고합니다(시 137:8 ‘여자 같은 멸망할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대로 네게 갚는 자가 유복하리로다’).
결국 그 귀신의 영을 발산하던 곳이요 온갖 ‘더러운 영’들이 모이던 그 곳이 무너집니다. 가증한 새는 사단의 영으로 악령을 말합니다(막 4:3 ‘들어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막 4:15 ‘말씀이 길 가에 뿌리웠다는 것은 이들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단이 즉시 와서 저희에게 뿌리운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가증한 새’는 광야에 있는 것이며 들까마귀 정도로 보면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백성을 상징하는 독수리가 아니라 이방인의 상징인 까마귀같은 세속주의자들을 상징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한 적그리스도와 더불어 온갖 비진리와 비리와 죄악을 도모했던 살았던 그 바벨론같은 예루살렘이 심판 받아 무너졌습니다. 모든 세속의 왕들이 그 적그리스도 성(예루살렘)과 결탁하여 사상적으로 하나님 앞에 온갖 것으로 더럽혔으며 모든 상인들도 바벨론의 독재적 사치로 인해 넘치는 부를 함께 누렸던 것입니다.


(계 18:4-5)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내 백성’은 대환난 중에 있는 살아 있는 백성을 말하며 13장에서 대환난 후반부에서 성도들이 모두 순교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말해줍니다. 물론 유황불 심판 중에 있다 함이 아니라 이와 같이 무너지는 바벨론의 종말을 예고하시면서 말세 성도들에게 그 죄악에 물들지 말고 그 부패한 사상에서 분리되어 ‘나오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죄악에서 나오라는 명령의 말씀은 죄에 참예하지 않을 뿐아니라 속히 빠져 나오라는 것입니다. 반드시 죄악에는 형벌이 따르며 말세에 받을 심한 뿐아니라 현재 삶 속에서도 죄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저주가 언제나 주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노아 때는 죄악이 땅에만 관영했으나 말세에는 ‘하늘에 사무쳤으며’라고 한 것은 그 죄악의 정도를 말합니다(창 6: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계 18:5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천상천하가 죄악으로 가득 차니 불로써 하늘과 땅을 태울 만도 할 것입니다. 하늘에 죄악은 여러 공해와 언제 어디에 떨어질지 모르는 수많은 공중의 위성들도 문제입니다. 죄가 하늘에까지 사무쳤다 함은 죄라고 규정할 수 있는 그 죄악의 최대를 말합니다. 우주적인 죄악입니다. 이제는 형벌 밖에 남은 것이 없을 가득한 죄악으로 충만함을 말합니다.


(계 18:6-7)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주고 그의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 그가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바벨론의 적그리스도가 성도에게 괴롭힌 모든 죄악에 갑절의 형벌을 가하신다 했습니다. 적그리스도의 영화로운 생활과 사치에 대한 형벌로 ‘고난과 애통’으로 갚으십니다. 가혹한 형벌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성도를 괴롭히고 세상에 죄악을 뿜어낸 형벌은 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는 스스로 여황이라, 과부같이 외롭지 않다는 고백은 이사야 47장의 바벨론에 대한 이사야의 책망대로 그의 거짓되고 교만한 정신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는 애통을 당하게 되고 외로운 상태의 극치에 달할 것입니다. 죄악으로 낙을 누린다는 말은 아이러니합니다.
그 실질적인 양심으로는 거짓말로 고하는 적그리스도의 말처럼 과부가 아니라 하나 죄악 속에서는 언제나 외롭고 하나님이 멀리하시는 곳은 언제나 고독합니다. 애통이 없는 세상같아도 세상은 언제나 고통과 번뇌가 끊이질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세인들은 삶이 외롭지 않은 듯 꾸며대는 소리들을 지릅니다.

(계 18:8)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신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니라

적그리스도국의 영광이 영원할 것처럼 지내 왔으나 하나님의 심판이 이르니 ‘하루 동안’에 사망과 애통과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의 풍요에 상대되는 흉년이라는 저주의 형벌로써 죄악에 응하시는 것입니다.
하루 동안에 들이닥친 이 재앙을 다른 말로는 번개같이, 덫과 같이, 해산날같이, 그물같이, 도끼같이, 일시간에 재앙으로 망케 된다는 것입니다(마 24:27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눅 21: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살전 5:3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마 13:47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마 3: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계 18:17 ‘그러한 부가 일시간에 망하였도다 각 선장과 각처를 다니는 선객들과 선인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이 멀리 서서’).


(계18:9-10)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 불붙는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가슴을 치며 그 고난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일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
그 동안 바벨론과 연합하고 사치하며 교류하고 따르던 모든 나라 왕들과 종교계 지도자들까지 하나님의 심판에 불타는 바벨론을 보며 울고 가슴을 칩니다.
얼마나 무서운 고난이기에 그들은 가까이서 볼 수 없었고 멀리 서서 화 있도다 화 있도다하며 그 큰 바벨론성이 무너짐에 망연자실합니다.
‘화 있도다’란 말은 일찍 예수님께서 교만한 고라신과 베세다 지역 및 가버나움을 책망하실 때 이르신 말씀인데 말세에 심판 받는 세상이 이 말을 뱉습니다. 이 말의 뜻은 상여를 메고 가면서 목놓아 울며 슬퍼하는 완전한 절망의 상태를 뜻합니다.


(계 18:11-13) 땅의 상고들이 그를 위하여 울고 애통하는 것은 다시 그 상품을 사는 자가 없음이라 그 상품은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와 세마포와 자주 옷감과 비단과 붉은 옷감이요 각종 향목과 각종 상아 기명이요 값진 나무와 진유와 철과 옥석으로 만든 각종 기명이요 계피와 향료와 향과 향유와 유향과 포도주와 감람유와 고운 밀가루와 밀과 소와 양과 말과 수레와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이라

상인들의 애통인데 그들은 적그리스도국에 갖은 상품 무역으로 부를 누리던 자들로 이제 망하게 되어 애통합니다.
그 동안 거래한 상품들은 7가지로 대별됩니다.
첫째는 금, 은, 보석, 진주며,
둘째는 의류로 비싼 세마포와 자주옷감(왕실의 색깔)과 비단과 붉은 옷감(연회용)이며,
셋째는 가구와 장식품으로 향목(물 들일 수 있는 나무로 비싼 가격)과 상아 기명(살림 그릇), 값진 나무, 진유(놋쇠), 철, 옥석(대리석)이며,
넷째는 향류로 계피, 향료, 향(분향에 쓰임), 향유(몰약, 방부제), 유향(나무 진, 술, 몸에도 사용)이며,
다섯째는 식료품으로 포도주, 감람유(등잔에 사용), 밀가루이며,
여섯째는 가축류로 소, 양, 말과 수레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상품은 노예류인데 종들과 사람의 영혼이라 했습니다. 노예는 단순히 육체 노동을 위해 사고 팔렸지만 사람의 영혼이라 표현할 때 이는 정신적으로 상품화 할 만큼 인간을 매도했다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권력과 부로 자존심과 인간의 그 존귀성 마저 매도하는 일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오늘날 소위 서비스 업종에 많은 여성들이 실재 매도되고 있습니다. 그들의 몸과 인격은 상품으로 전락되어버렸습니다. 실제 사람을 사고 파는 행위가 환락가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계 18:14-20)바벨론아 네 영혼의 탐하던 과실이 네게서 떠났으며 맛 있는 것들과 빛난 것들이 다 없어졌으니 사람들이 결코 이것들을 다시 보지 못하리로다 바벨론을 인하여 치부한 이 상품의 상고들이 그 고난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울고 애통하여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이여 세마포와 자주와 붉은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민 것인데 그러한 부가 일시간에 망하였도다 각 선장과 각처를 다니는 선객들과 선인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이 멀리 서서 그 불붙는 연기를 보고 외쳐 가로되 이 큰 성과 같은 성이 어디 있느뇨 하며 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고 울고 애통하여 외쳐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이 큰 성이여 바다에서 배 부리는 모든 자들이 너의 보배로운 상품을 인하여 치부하였더니 일시간에 망하였도다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를 인하여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신원하시는 심판을 그에게 하셨음이라 하더라

바벨론에 맛있는 음식과 빛나는 물건들이 다 없어지고 이젠 영원히 볼 수도 없게 됐습니다. 바벨론에 무역하던 상인들은 멀리 서서 애통할 뿐, 더 이상 희망이 없습니다. 금, 은, 보석으로 꾸몄던 바벨론의 무너짐을 애통하며 일시간에(17) 망하게 된 바벨론을 보며 좌절하고 말았습니다.
그 날도 상품 교역을 위해 오던 중이었든지 16절, 바다에서 일하는 사람들, 즉 선장과 선객들이 멀리 바벨론 성을 바라보며 머리에 티끌을 날리며 통곡하니 후회가 막심하다는 것입니다.
결국엔 세상 세력이 이처럼 처참히 불타고 무너지니 하늘과 성도들은 기뻐하라 했습니다. 아니 언제라도 그럴 줄 알고 고난을 도리어 기뻐 할 줄 알며 세속의 부와 권세로 치부하는 이들을 부러워 할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 할 것입니다.


(계 18:21-22)이에 한 힘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가로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몹시 떨어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 또 거문고 타는 자와 풍류하는 자와 퉁소 부는 자와 나팔 부는 자들의 소리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고 물론 어떠한 세공업자든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보이지 아니하고 또 맷돌 소리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고

힘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로 바다에 던지니 이는 다시는 떠오르지 못한다는 의미로 세속적 바벨론의 종국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 소자라도 그 영혼을 실족시키지 말라는 뜻으로 차라리 연자멧돌을 그의 목에 달리우고 차리 육신을 바다에 빠뜨려 죽이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할 때 그 연자멧돌은 물 속에 빠져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을 연상케 하십니다. ‘큰 멧돌’은 바벨론성을 완전히 박멸하여 패배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거문고 타는 자와 풍류하는 자(음악가), 퉁소 부는 자, 나팔 부는 자들 모두 이제 더 이상은 없을 것이라 함은 세상 희락이 끝이 난다는 것입니다. 세공업자는 모든 기계 공업들이 끝나고, 뒤에 나온 맷돌은 곡식을 빻아 음식을 만드는 것이니 그 소리가 들리지 않음은 바벨론의 풍요한 식사 문화 생활들이 끝났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그 식사 문화가 과식이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여전히 가난한 자들은 지구촌에 수없이 많습니다. 약 3억의 절대 빈곤의 백성들이 굶어 죽어가는 지금 과식 호식하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계 18:23-24)등불 빛이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비취지 아니하고 신랑과 신부의 음성이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너의 상고들은 땅의 왕족들이라 네 복술을 인하여 만국이 미혹되었도다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이 성중에서 보였느니라 하더라

여기 등불 빛은 밤을 밝히는 불 뿐 아니라 요즘의 향락 문화에 사용되는 현란한 조명도 뜻할 것입니다. 신랑과 신부의 음성이 없어짐은 결혼이 더 이상 없다는 것이며 또한 음란한 남녀 교제들의 환락도 끝난다는 것입니다.
돈 있는 상고들은 왕족같이 세속을 살았고 세속적으로 타락하도록 모든 나라와 국민을 속였던 것입니다.
물질만능주의, 쾌락주의로 부유층에서 평범하고 건전하게 사는 민중을 현혹하는 현대는 바로 ‘복술’에 걸린 상태입니다. 그들은 참 신앙과 진실함을 거슬려 성도를 핍박하고 피를 흘리게 하여 그 대가의 형벌을 받았던 것입니다.
대개의 경우 물질의 풍요와 정치 권세는 진리와 정직을 파괴하기 쉽고 인간 본성의 교만과 부패를 유혹하는 복술의 기질을 발휘합니다. 바벨론과 로마가 그랬고 건전한 왕들도 때로는 부와 권세 때문에 타락한 예를 성경에서 그리고 역사에서 얼마든지 보게 됩니다.


제 19장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계 19:1-2)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가로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

첫 번째 찬양(할렐루야)이 나오는데, 하늘에서의 찬송으로 특히 순교자들을 위로하면서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을 찬양하는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같은 소리로 나타나는 찬송은 앞서 하늘에서 흘러나오는 음성과 그 성질상 다르며 하늘의 합창곡으로 울려 퍼지는 찬양입니다. ‘자기 종들의 피를 그의 손에 갚으셨도다’라는 표현에서 순교자들을 더욱 위로해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단순히 예수 믿고 죽은 자들이 아니라 순교의 피를 흘린 자를 말합니다. 그리고 적그리스도의 영으로 성도들을 괴롭힌 음녀의 사상적 죄를 심판하신다는 뜻입니다.


(계 19:3-5)두 번째 가로되 할렐루야 하더니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 또 이십 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무론대소하고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두 번째 할렐루야 하니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 했습니다. 이는 바벨론의 영원한 멸망이자 의로운 하나님의 심판을 뜻합니다. 24장로와 4생물들이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하고(경배가 주 업무, 5:14) 앞선 찬양에 아멘 할렐루야로 응답하니 보좌에서 음성이 나왔습니다. 여기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든 신구약 성도들입니다.
우리 ‘하나님께 찬양하라’고 했는데 이는 24장로나 4생물도 경배하고 있으니 그들의 음성도 아닙니다. 여기 하나님께 찬송하라 말하는 보좌의 음성은 확정하기 어려우나 찬양을 주도하는 거룩한 천사가 있을 것입니다. 계시록에는 각기 맡은 바대로 봉사하는 여러 천사들이 등장합니다.


(계 19:6-8)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아서 가로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순교자들의 영혼의 소리에 응답하여 모든 만국 성도들의 노래입니다. 얼마나 많은 성도들의 소리인지 큰 뇌성과도 같았습니다.
그 내용은 ‘주 우리 하나님’, 즉 적그리스도의 주권적 세계가 무너지고 이제 바야흐로 우리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시대를 일컫고, 즐겁고 기뻐하며 또한 영광을 돌리라고 노래합니다.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가 만나는 때가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계시록상에서 더디어 재림하시는 예수님에 대한 환상이 확실하게 기록되었습니다. 혼인 기약이 이르렀다함은 곧 재림하시는 예스 그리스도와 지상 성도의 만남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 아내’는 신부된 교회를 뜻하며, 신랑을 맞이할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은 믿음으로 입은 의(義)의 옷입니다. 이는 성도들이 믿음의 정절로 인정받는 마음의 옷입니다. 주를 맞이하려면 이 옷을 입어야 하는데, 마22:11-14에 잔칫집(천국)에 초청 받아 많은 자가 왔으되 예복 입지 않은 자는 바깥 어두운데, 즉 지옥으로 보낸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 예복이 곧 믿음의 옷을 뜻합니다.


(계 19:9-10)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더러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거를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 하더라

천사가 이 모든 심판관으로 성도들의 승리에 대해 기록할 것을 명합니다. 이 천사는 처음부터 계시를 전달한 그 천사로(1:1) 가브리엘일 것입니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는 부활하여 주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이 내용들 앞에서 사도 요한은 감동이 격한 나머지 천사에게 경배하려 했습니다(계 22:8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이 때 천사는 자신의 신분이 우리와 같이 주를 섬기는 종이라 하며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할 것을 다짐합니다. 말세에 하나님 대신 여러 우상을 섬기며 그 끝 날에는 사람을 두려워하고 그 권세와 능력 앞에 짐승을 섬기게 될 것을 볼 때 성령에 충만한 요한의 실수마저도 따라 하지 않도록, 오직 주 하나님께만 경배하고 그 만을 섬길 것을 경고합니다.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 예수님이 주신 말씀이 천사들로 대언 되었으며 따라서 천사가 그 말씀의 권세와 영광이 있음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계 19:11)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지금까지는 하늘 문이 열리고 성전도 열리었으나 이제는 하늘 자체가 열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광경이 실제화 됩니다. 이렇게 확실하게 재림하시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으므로 19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의 재림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계시록에서 여러 번의 예수 재림을 짐작하는 모든 해석은 일관성 없는 환상주의에 치우친 것이라 봅니다.
‘백마 탄 자’인데 6장에도 나왔으나 그는 적그리스도였습니다.
이 백마 탄 자는 ‘충신과 진실’이란 이름을 가졌으니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지고 참된 메시아이며 진리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요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도와 함께 지상에 강림하시며 세속 모든 적그리스도 군대와 싸우게 됩니다. 공의의 심판 주로 오십니다.
(계 19:12-13)그 눈이 불꽃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고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심판 주로 오시므로 ‘그 눈이 불꽃’ 같다고 하는 심판자의 눈빛으로 형용합니다. 즉 무서운 모습니다. 그리고 분명하게 판단하실 주의 지혜이자 마음의 표시입니다.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으니 6:1,2의 백마 탄 자 적그리스도의 면류관과 다릅니다. 주님은 많은 면류관을 쓰시므로 만 왕의 왕되심과 만유의 주로 그 영광을 뜻합니다. 이 면류관의 원문은 6:2의 적그리스도가 쓴 월계관인 스테파누스(στεφάνους)가 아니라 왕관을 뜻하는 디아데마타(διαδήματα)입니다.
그리고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아무도 그 새 이름을 알 수 없고 오직 주께서만 아시는 이름이라 했습니다. 마치 신인(神人) 양성을 가지시되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또한 하나님과 같으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적당한 그 분 실존에 알맞은 이름을 형용하기가 어려운 것을 뜻합니다.
주께서 ‘피 뿌린 옷’을 입으셨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했으니, 의로우신 하나님 말씀대로 심판하시는 주라는 뜻이며 충신과 진실로 하나님을 순종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사 희생하신 그 보혈의 옷이 보이는데 이는 하나님께 드려진 그리스도의 영광이요 능력을 말합니다.
혹 어떤 이는 사63:3을 연관하여 원수들의 피에 젖은 승리자의 옷을 뜻한다고 하나, 말씀의 칼로 심판하실 자는 선혈이 낭자한 옷가지로서 진정한 승리의 모습으로 나타내려 하시지는 않을 것으로 봅니다(사 63:3 ‘만민 중에 나와 함께한 자가 없이 내가 홀로 포도즙 틀을 밟았는데 내가 노함을 인하여 무리를 밟았고 분함을 인하여 짓밟았으므로 그들의 선혈이 내 옷에 뛰어 내 의복을 다 더럽혔음이니’).
만 왕의 왕으로 재림하시는 만주의 주(主)라는 정도에서 그러합니다. 주의 양손과 양발의 못자국은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영원한 상징이자 영광이 되듯이
그리스도의 보혈은 모든 승리의 근거입니다.


(계 19:14-16)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 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하늘의 군대는 성도들입니다. 왜냐하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었으니 성도의 것이지 천사의 것이 아니요 또한 백마를 타니 승리, 이긴 자가 타는 말입니다. 천사가 환난에 이길 일은 없습니다.
주의 입에서 계1:16대로(말씀의) 검이 나오고 세상을 ‘철장’으로 다스리니 절대적 권세라, 하나님의 심판을 대신 행하니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는다 했습니다(계 14:19-20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까지 닿았고 일천 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
주의 옷과 다리에 쓰인 이름도 ‘만 왕의 왕’ 만주의 주라 함은 앞서 적그리스도가 세상에서 받았던 영광을 대조하여 이제 주께서 세상 만국의 왕 중 왕이라는 것입니다. 그 다리는 지배적인 힘을 상징하며 세상을 지배하시는 주님을 표현한 것입니다.

(계 19:17-18)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해에 서서 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왕들의 고기와 장군들의 고기와 장사들의 고기와 말들과 그 탄 자들의 고기와 자유한 자들이나 종들이나 무론 대소하고 모든 자의 고기를 먹으라 하더라

해에 선 것은 영광스러움을 뜻하고 높은 곳에서 어떤 천사가 공중에 날고 있는 새들을 향해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죽은 모든 시체들을 먹으라고 외칩니다. 팔레스틴에는 악종 검은 독수리가 많이 번식해 있습니다. 앞서 바다의 생물이 다 죽고 물도 마시지 못하며 나무도 불탔으나 이 새들은 살아 있었습니다. 무척 배고픈 중에 생존한 새들일 것입니다. 아마 그것들이 그 시체들을 먹게 될 것으로 봅니다.


(계 19:19-21)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더라

최종적으로 적그리스도의 군대가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는 그리스도의 군대를 향해 전쟁을 일으켰으나 패합니다. 결국 짐승인 적그리스도는 잡히게 되고 그의 오른 팔이던 거짓 선지자(두 뿔 가진 짐승)도 함께 잡힙니다. 이 둘을 ‘산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집니다. 산채로 던진다 함은 무서운 형벌이며 유황불 붙는 곳은 지옥의 그곳입니다.
따라서 육신을 갖고 어떤 느낌으로 지옥이 불못에 던져 지는가가 의문입니다. 먼저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는 육신이 있는 사람이기에 영적 지옥에 가려면 일단 영으로 먼저 가야하고 마지막 심판 때(백보좌 심판)는 모든 불신자들과 같이 육신이 다시 살아 부활하되 저주받기 위함이요, 그러나 영원히 죽지 못하는 몸으로 지옥 형벌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요한이 본 이 환상, 산채로 유황 불못에 던짐은 맹렬한 심판을 강조한 것같습니다. 그리고 그 외 모든 적그리스도의 군대와 미혹된 자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의 검으로 죽임을 받습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