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이름의 변천사
중국 문헌에서 최초로 기재된 백두산의 이름은 불함산(不咸山)이지만, 그 후 이름이 많이 바뀌었다. 즉 불함산(不咸山), 단단대령(單單大嶺), 백산(白山), 개마대산(蓋馬大山), 도태산(徒太山), 태백산(太白山), 영응산(靈應山), 대백산(大白山), 장백산(長白山), 백두산(白頭山)이다.
불함산(不咸山)
중국 전국 시기(기원전 475~221년), 서한 시기 초(기원전 206~23년), 동진 16국 시기 (317~439년)까지 불함산이라 불렸다.
≪진서통전(晋書通典)≫에서는 백두산을 ‘불함산’이라 기록하였다. 전국과 서한 초년의 지리서 ≪산해경(山海經)≫은 “숙신은 불함산 북쪽에서 살고 있다.”고 했고 또한 “대황 가운데 산이 있는데 산 이름은 불함산이고 숙신국에 있다.”고 하였다. [大荒之中有山(대황지중유산), 名曰不咸(명왈불함), 有肅愼氏之國(유숙신씨지국)]
육당의 불함문화론(不咸文化論)도 여기서 비롯되었다. 불함문화론이란 일제 강점기 때 강요된 식민사관(植民史觀)에 대항해,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한민족의 역사가 동방문화(東方文化)의 원류가 되었다는 육당 최남선의 학설이다.
단단대령(單單大嶺)
서한 시기에는 백두산을 ‘단단대령’이라고 하였고, 중국 고금지명사전에서도 단단대령이라고 하고 있다. ‘단단’은 ‘희다’는 뜻이고, 대령은 큰 산이라는 뜻이다.
백산(白山)
동한 시기(202~220년) ≪한서≫에는 ‘압록강이 백산에서 발원한다’, ‘수현성이 마갈 백산부를 관할한다’고 기재되어 있다. 금나라 시기 ≪고려전≫에는 ‘고 숙신 땅에 산이 있는데, 이름은 백산이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백산은 산이 희다는 뜻이다.
개마대산(蓋馬大山)
고구려 시기에 고구려 경내에 백두산이 있었고 이를 개마대산이라고 하였다. 한위(漢魏) 220~265년 고구려 초기에는 개마대산 아래에 개마국이 있었다. ≪후한서(后漢書)≫ ‘동옥저전’에서는 ‘동옥저는 고구려 개마대산 동쪽에 있다’고 하였다. 개마대산은 여진족 언어로 흰 큰 산이라는 뜻이다. 당시 개마대산은 백두산과 그 일대의 총칭이었다.
도태산(徒太山)
≪후한서≫에서는 ‘나라 안에 도태산이 있다’고 하였다. 위(魏)나라 말로 태백산은 방언이다. 도태산(徒太山)은 태백산 전기의 이름이다. 문헌들에서 사태산(徙太山), 종태산(從太山)이라고 하는 이름들은 백두산을 가리키는 것이다. 북위(北魏)에서는 도태산이라고 하였다. 또한 남북조 420~581년에도 백두산을 도태산이라고 하였다.
태백산(太白山)
후위(后魏), 당조(618~923년), 발해 ≪신당서(新唐書)≫ 흑수말갈전에서는 백두산을 태백산이라고 하였다. 즉 粟末部居最南低 太白山 赤曰徒太山与高麗接(속말부거최남저 태백산 적일도태산여고려접)이라 하였는데, 이는 속말부는 태백산 남쪽 아래에 있는데, 태백산은 또한 도태산이라고 하며 고려에 접하여 있다라는 말이다. 신라, 발해, 고려 때는 태백산이라고 하였다. ‘태(太)’는 ‘매우’란 뜻으로, 따라서 태백산은 매우 큰 흰 산이란 의미이다.
영응산(靈應山)
금나라 여진족들은 백두산을 영응산(靈應山)이라고 칭하였다(1172년). 이 이름은 잠시만 사용되었다.
대백산(大白山)
청나라, 조선, 1880년대에는 대백산이라고 하였다. 이 이름 역시 잠깐 동안만 사용되었다.
장백산(長白山)
요나라 926~1115년 거란의 ≪국지(國志)≫에서는 ‘장백산’이라고 하였고, ≪백관지(百官志)≫에서는 1012년에 ‘장백산 30부여직(長白山三十部女直)’이라고 하였다.
금나라(1115~1234년) ≪금사 고려사(金史高麗史)≫에서는 “고 숙신 땅에 산이 있는데, 산 이름은 백산이고, 백산은 장백산으로 금나라에 있다.”고 하였다. 원나라 ≪원일통지(元一統志)≫에도 백두산을 장백산으로 기재하였다. 이러한 기재들은 장백산이라는 이름을 산맥과 주봉의 이름으로 통용한 일지양명(一地兩名)론의 개념이다.
청나라(1644~1911년) 초기에는 장백산이라는 불명확한 이름을 산맥과 주봉 이름으로 함께 사용하여 일명양지(一名兩地)의 개념으로 사용하였다. ≪대청통일지(大清統一志)≫에서 장백산은 산맥 이름으로 되어 있다. 함풍제 시기 중국제일지도에 장백산맥 이름으로 “일명일지로 명확한 산맥 개념으로 되었다.” 중화민국, 만주국, 중화인민공화국 지도에는 명확하게 장백산맥이라고 명명되었다. 북한도 장백산을 산맥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 중국 지리, 지질, 세계지리에서도 장백산을 산맥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 중국 지도는 1998년부터 백두산을 ‘장백산’으로, 백두산 천지를 ‘장백산 천지’로 했고, 장백산맥과 주봉도 장백산이라는 일명양지의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청나라 함풍제 이후에는 장백산맥의 주봉 이름이 백두산이었다. 현재 중국 지리학, 지질학에서 장백산이라는 이름은 산맥의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백두산(白頭山)
백두산은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이름이다. 백두산은 산 이름으로 사용되었고 장백산의 주봉 개념의 이름으로도 사용되었다. 신라 신문왕(681~691년) 시기에 백두산이라는 이름이 지어졌고, 이후 고려 시대(917~1391년), 조선왕조 세종 시기(1419~1455년)에도 백두산에 관한 기록이 있다.
기록에 의하면 청나라 목극등(穆克登)이 1712년 5월에 백두산에 올라갔다고 하였다. 청나라 중기부터 중국도 백두산이라고 불렀고, 청나라 함풍 시기부터는 청나라의 국가 지도를 제작할 때에도 장백산맥의 주봉을 백두산이라고 하였다. 지금 어떤 사람들은 백두산을 장백산이라고 틀리게 부르고 있다.
중화민국, 만주국, 중화인민공화국, 북한, 한국, 일본 등은 모두 장백산맥의 주봉을 ‘백두산’이라고 한다. 중국과 북한의 지리, 지질과학계에서는 장백산맥의 주봉을 ‘백두산’이라고 부르고 있다. 북-중 백두산 국경조약을 통해 공식적으로 백두산이라는 이름이 확정되었다. 백두산은 장백산맥 주봉의 이름으로서 1,320년간 이어져 온, 역사적으로 가장 오랜 지명이다.
그 밖에 백두산의 다른 이름으로는 노백산, 태말산, 웅심산, 대백산, 조산, 천신산, 천성산, 성산, 백산백자, 거얼민상경(만주어), 대백태산, 태산, 수백산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름들은 대개 사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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