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왜 그토록 분노하셨을까?
다음 구절은 서로 모순 상황처럼 보인다
A :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마 24:43)
B :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 24:44)
무엇이 진실인가?
안다는 것인가? 모른다는 것인가?
A는 어느 시각을 알 수 있다기보다 재림의 확실성을 의미한다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것이 확실하기만 하다면 기다려야 한다
B는 주님께서 오시는 정확한 시간의 불확실성을 암시한다
교회는 A의 상황에서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들을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이라 칭하는 반면에 악한 종은 "더디 오리라" 생각하였다
이 말은 주님의 재림을 믿지 않는다는 말과 동격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순종과 불순종의 더 큰 문제가 된다
내키지 않는 사람들은 준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주님을 기다리지 않은 악한 종을 외식하는 자로 보셨다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마 24:50~51)
주님께서 초림으로 오셨을 때 바리새인(목회자들)과 서기관(신학교수)들은 주님을 영접하지 않았다
성경의 지식에 가장 근접했다고 자부한 그들이 막상 눈앞에 계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눅 19:44)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약속에 대해 가장 거리를 두는 사람들이 현대 신학교수들과 목회자들인데 상황이 재현되고 있다
이것을 심각한 죄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주님께서 가장 분노하셨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2000년 전에 사사건건 주님의 수염을 뽑았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후예들이다
초림과 재림의 세대는 병행구절을 이룬다
외식하는 그들은 같은 세대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 돌아가리라" (마 23:36)
"이 세대는 악한 세대이다.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지만 예언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어떠한 표적도 이 세대에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된 것처럼 인자도 이 세대에게 표적이 될 것이다" (눅 11:29~30)
표적은 인자 자신이 오시는 것이다
종말장(24장)을 앞두고 마태 23장에 그들의 위선이 기록되었다
23장은 복음서에서 가장 보기 싫은 장이라고 한다
또한 어떤 이들은 온유하신 예수님이 이처럼 혹독한 비난을 하실 리 없다고 한다
목회자들이 가장 설교하지 않는 본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예수님은 종교 지도자들에게 가장 분노하셨으며 그 시대에 대한 심판은 비극적으로 성취되었다
이것은 분명하게 현세대에 대한 경고이자 심판이다
주님은 왜 그토록 그들에게 분노하셨을까?
하나님의 백성을 잘못 인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님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상하시고 끝내 눈물을 보이셨다
야고보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되지 말라" 경고했다
문제는 현대 지도자들도 그들이 저지른 잘못과 위선을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외식하는 그들에게 "화 있으라" 일곱 번이나 선언하시고 두 번이나 소경이라 하셨다
그들에게는 어떤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현대 신자들은 자신들이 바리새인과는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그들은 같은 실수를 하고 있다

1. 말만 하고 행하지 않는다
현대 교리와 교회의 가르침에서 가장 큰 병폐가 이것이다
지도자들은 성경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자들로 말씀을 일상에서 어떻게 실천할 것으로 전문적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이지만 실천 없이 가르치는 것으로 끝난다
섬김과 낮아짐으로 이 일을 해야 하지만 그들은 높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면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한다" (마 23:3~5)
이 책망은 현대 교회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세 종류의 목회자와 신학교수들이 있다
① 성경대로 가르치지 않고 성경대로 살지 않는다
② 성경대로 가르치지만 성경대로 살지 않는다
③ 성경대로 가르치고 성경대로 산다
제시카 윤의 잠근 동산에 의하면 ③항대로 사는 목회자는 850명 중에 한 명뿐이라고 한다
올바른 사역자는 0.12%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이라면 99.9%는 잘못되었다는 것이니 두렵고 떨리는 일이다
2. 윗자리와 높은 자리를 좋아한다
현대 지도자들도 감투를 좋아하고 선거에는 봉투가 뿌려졌다
거룩한 헌금을 감투를 매매하는 용도로 유용했다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마 23:6~7)
랍비(목사)와 지도자(감투)라 칭함을 받기를 좋아한다
요즘은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되신 분들이 많은데 목사 안수만 받으면 섬김을 받는 자리로 즉시 이동한다
섬기는 자로 보냈더니 너도나도 대접 받는 자리에 앉으려 한다
3. 천국의 문에 들어가지 못하게 닫는다
이 문은 천국으로 들어가는 좁은 문이다
그들은 지식의 열쇠를 가진 사람들이지만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고 자신도 들어가지 못한다
그들은 신자들을 오히려 넓은 문으로 안내했는데 지도자들의 삶이 넓은 길을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 놀라운 일은 그들이 신자들을 예수님께 인도하기보다 사람에게 충성하도록 잘못 인도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그때처럼 다시 오실 예수님께 집중하지 못하도록 안간힘을 쓴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마 23:13)
그들의 가르침이 말씀과 일치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주님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조롱하는 자들의 심판은 특별히 엄중하다
실천하지 않는 위선과 진리를 변질시켜 잘못 가르치는 것은 둘 다 천국의 문을 닫게 만드는 가증한 일이다
성경을 사람의 교리로 해석하고 가르쳐서 신자들이 타락하게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함께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실천과 거룩함은 없고 종교적 형식과 껍데기만 남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의해 증명해야 한다
4. 개종자들도 지옥으로 안내하는 데 열심을 낸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마 23:15)
이단들도 개종자를 얻으면 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열심을 낸다
현대 신자들도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게 가르치고 다니느라 진리를 왜곡시킨다
율법을 혐오하도록 울타리를 치다가 진리의 말씀까지 변질시켰는데 어리석은 논리를 반영하였다
열심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에 열정을 쏟느냐 하는 것이다
오직 성경의 진리를 제대로 알고 가르쳐서 합당하게 살도록 인도되어야 한다
회개를 촉구하기 위해 말씀을 주셨지만 그들은 귀를 막고 완악한 마음과 삶을 고치려 하지 않았다
5. 오용된 맹세
"화 있을진저 눈먼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마 23:16)
맹세는 현대 신자들에게 보편적인 습관이 아니다
하지만 영적인 눈이 어두워져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한지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여전하다
남을 속이는 일이 유효하게 만드는 방법이 고르반이다
"고르반"하면 그들은 규정을 피해 갈 수 있다
현대 신자들은 "오직 믿음"을 말하면 죄악도 합리화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악한 시대를 인정하지 않는 교회의 지도자들은 마지막 때의 사건을 무시하고 죄를 조장한다
하나님이 죄를 용인한다는 이런 사고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이다
자신들의 악한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그릇된 목적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잔머리를 굴리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편견 없이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
6. 십일조(A)와 정의,긍휼,믿음(B)의 문제
이 문제는 이것이냐? 저것이냐?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우선순위의 문제다
원 뜻은 A도 행하고 B도 행하는 것이지만 우선순위는 B가 먼저다
예수님은 B가 빠진 A를 지적하셨지만 둘 중에 하나를 버리라고 하지는 않으셨다
그들은 규정에 얽매였다기 보다 규정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마 23:23)
십일조는 레위 지파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십일조는 레위 지파가 나타나기 전부터 있었다. 아브라함과 야곱도 십일조를 했고 일부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도 사용되었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온갖 세부적인 항목을 만들어 수입의 17~20%를 드렸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께 많이 드린 것을 비난한 것이 아니라 그 정신을 버렸기 때문이었다
7.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한 지도자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눈먼 바리새인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마 23:25~26)
겉으로는 경건하게 보이지만 내면에서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다는 지적이다
예수님은 겉과 속을 대조하시며 그들의 눈이 멀었다고 하셨다
부자라 자랑했던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서도 눈먼 자들이라 책망하셨다
내면과 행위는 일치해야 한다
몸속에 병이 생긴 사람들은 겉으로도 증세가 보이기 마련이다
8. 외식과 불법이 만연하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마 23:27~28)
이 말씀도 겉과 속을 대조한다
겉과 속은 둘다 깨끗해야 할 것인데 우선순위는 속이 먼저 깨끗해져야 한다
속이 더러운데 겉이 깨끗하게 보이는 것은 위선이다
겉이 더러운면 속도 더러운 것이다
9. 바리새인들과 우리는 관계가 없다는 듯 행세한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마 23:29~30)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그들의 조상이 선지자들을 죽였다는 사실을 시인한다
만약 그들이 그 시대에 살았더라면 그들을 죽이고 돌을 던지지 않았을 것이라 장담한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게 했다
조상들보다 더 악한 짓을 하였고 조상들의 만행과 죄의 분량을 완성시켰다
현대 신자들도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바리새인들과 다릅니다"
그러나 그들도 예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다시 오실 주님을 거절하는 것으로 그들의 죄를 되풀이하고 있다
10. 이것이 다 이 세대에 돌아가리라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이것이 다 이 세대에 돌아가리라" (마 23:33)
이것은 결론에 해당한다
이 세대에 심판이 올 것이다
바리새인들의 시대에도 현세대에도 임할 것이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주님은 아주 극단적인 용어를 사용하셨다
이 용어는 세례요한도 사용하였는데 사탄의 자녀들로 보셨다
현대의 신자들이 왜 예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는지, 인기가 없는지 이 구절에서도 확인된다
신자들은 부드럽고 귀에 즐거운 메시지를 원한다
뱀은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여 사망이 들어오게 만들었다
사망을 퍼트리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독사의 새끼들이요 그들의 가르침은 사망으로 이끄는 독이 된다
그들의 죄는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이 계시록에 예고된 대로 올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을 지옥의 문으로 인도했기 때문이다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미래의 종말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24장과 25장에 선포하셨다
"암탉이 제 병아리를 날개 아래에 모으는 것처럼 내가 몇 번이나 네 자녀들을 모으려고 했더냐?"
과연 주님은 세상의 문을 닫기 전에 많은 나팔소리로 회개를 촉구하셨다
주님의 오심이 지연되므로 경고의 목소리도 조롱을 받는다
그러나 반드시 경고의 시간이 끝나면 심판을 시작하실 것인데 성경의 예언이 성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마지막으로 누군가에게 말해본 적이 있습니까?
마지막으로 잃어버린 영혼들을 중재하는 데 좋은 시간을 보냈던 때는 언제였습니까?
현대 지도자들과 신자들이 다시 오실 그리스도에게서 등을 돌려 허영심을 추구했다
주님은 안다고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은 단지 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사는 위선자들로 드러날 것이다
많은 신자들이 세상을 너무 사랑해서 불신자들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세상처럼 옷을 입고 세상처럼 먹고 마시며 거룩하지 않은 것을 즐기며 세상에 예속되어 산다
그들은 세상을 섬기느라 너무 바빠서 기도할 틈도 없어 주님을 잊어 버리고 산다
극상품을 기대했는데 들포도가 맺었다
하나님이 행하시려는 일에는 관심도 없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겠다는 그토록 크고 귀한 약속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세적인 축복과 허영심과 그림자를 추구하기 위해 진정한 추구를 버렸다
자녀들 대부분이 비디오 게임에 빠져 있고 어른들은 TV과 유튜브에서 시간을 보내고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며 몇 시간을 보낼 수 있지만, 주님과 함께 기도로 한 시간을 보내기가 어렵다
30분을 기도하는 것은 많은 신자들에게 아주 큰일이 되었다
주님은 어쩌면 우리에게 주신 24시간을 우리가 얼마만큼 주님을 위해 사용하는지를 보시고 우리가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는지 지표로 삼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주님을 더 사랑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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