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제자들이 낙담하고 있을 때
신약의 사역자추천 0조회 1523.10.02 08:57댓글 0
예수 제자들이 낙담하고 있을 때
전의를 상실하였다. 예수 제자들이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다. 한때는 “주여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하였다.
또 어떤 때에는 “주를 위하여 함께 죽으러 가자”하던 제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지도자이신 예수께서 고난을 받으러 가실 때 모두 도망가 버렸다. 모두 다 배신자가 되고야 말았다.
모두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래 우리 같은 인간들이 뭘 예수 제자가 되겠다고? 우린 본래부터 갈릴리 바닷가에 평범한 어부가 아닌가? 논평가도 아니고, 변증가도 아니다. 그건 학술적으로 단련된 사람들이나 할 일이다. 가자. 우리 본연의 직업으로 돌아가자” 하고선 모두들 본래하던 생업으로 돌아가고야 말았다.
이 상황이 요한복음 21장이다.
요한복음 21장 3절 “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를 잡으러 가련다 하고 저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그렇다. 밤새도록 고기잡이를 하였으나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다. 본래 평생토록 고기잡이를 하던 숙련된 어부들이었다.
그런데 이마저도 잘 안된다.
생업을 버리고 예수 따라 나선지 어언 삼년 반이 지났다.
예수 추종자의 삶도 실패하였다. 십자가를 지고 고난받으시던 날 밤 모두 배신하고야 말았다.
그래서 이제 예수 제자가 되는 길, 십자가의 길, 예수 증인이 되는 길을 모두 포기하고야 말았다. “이일은 우리 적성에 안맞어!” 하면서 제자들은 모두 낙담하고야 말았다. 실의에 빠지고 말았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 본래 잘하던 고기잡이를 하러 간 것이다. 이런데 이마저도 잘 안된다.
본래 잘하던 고기잡이도 안되고, 예수 제자되기도 실패하였다.
온갖 잡다한 생각에 사로잡힌다. “우린 왜 이제 하는 일마다 안돼? 왜 하는 일마다 잘 안 풀리는 거지?”
이렇게 낙담하고 있을 때 선생 예수께서 찾아오셨다.
요한복음 21장 5절 “얘들아 거기에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6절, 말씀하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7절, 이때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닷가로 뛰어내리더라.
그 얼마나 감격스런 순간인가!
선생님이 찾아오시었다. 3년 동안 불철주야 목양하시던 주님이 제자들을 찾아오셨다. 난 이 시간만 생각하면 콧시울이 붉어지고 가슴이 뭉클해진다.
제자들은 실의에 빠져 있었다. 모두 낙담하고 있었다. 그 중 누구도 자신할 수 없었다. “ 이젠 우리는 예수 제자 될 자격이 없어” 하고 자책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스승이 십자가에 고난을 당할 때 모두 버리고 고망쳤기 때문이다.
한때는 그들도 “내가 주와 함께 죽을찌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막14:31) 하였다.
특히 베드로는 “다 버릴지라도 그렇지 않겠나이다”하던 제자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모두 다 그들의 지도자 예수를 버리고 달아나 버렸다.
이제 우리는 예수 제자될 자격이 없다고 자책하며 모두 본연의 위치로 돌아가 있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예수님이 찾아오셨다.
체면이 구겨져 도저히 얼굴을 들 수 없는 처지에 있었는데 예수께서 찾아오셨다.
우린 이럴 때가 있다. 이런 상념에 빠져 있을 때가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반드시 한번은 찾아온다.
내게도 그럴 때가 있었다. 그 때 제자들을 찾아오셨던 주님이 내게도 찾아오셨다. 만나 주시었다. 세상 일에 몰두하고 있는 나를 찾아오셨다.
제자들은 할 말이 없다. 한때는 “주를 위해 죽는 곳에도 함께 하겠나이다.”하던 제자들이었지만 이제 그런 자신감을 잃어버렸다. 용기를 잃어버렸다.
어찌해야 할까?
그래 우린 갈리리 어부야. 뱃놈이 천직이야. 잠시 과대 망상에 빠져 있었던 거야. 우리 같은 인간들이 뭘 성경을 진리를 논증하는 직에 종사하겠다고 생각했지? 자 본연의 직업으로 돌아가자..내가 잘하는 것에 충실히 하자..하곤 본래 하던 일을 하려고 돌아가고 말았다.
자, 여기에서 내 입장에서 생각히지 말고 예수님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나는 늘 성경을 읽을 때는 하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고 하였다.
제자양성을 삼 년 동안 하셨다. 그런데 모두가 실패로 돌아갈 지경이 되었다. 3년이나 동고동락하며 밤낮으로 말씀을 가르쳤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 예수 제자 되기 전의 상황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당신이 예수님의 입장이라면 어떡하겠는가?
다시 다른 사람을 택하여 말씀으로 제자 훈련을 하시겠는가? 아니다.
그렇게 한다손 치더라도 결과는 매양 마찬가지이다.
다시 3년 동안 줄기차게 말씀을 가르쳐 놓아도 결과는 같을 것이다.
세상으로 돌아가 버릴 것이다.
무엇이 필요할까? 보충 작업이 필요하다. 이미 말씀 교육을 마친 제자들에게 약간의 보완만 하면 끝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한번 제자 삼은 예수쟁이들을 포기하지 아니하신다. 끝까지 간여하신다. 내 인생에 개입하신다.
요한복음 21장 후반과 누가복음 마지막 장을 대조하면서 읽어보라.
요한의 아들 시몬아 나를 사랑하느냐? 온 세상 그 누구보다도 날 더 사랑하느냐? 그러자 주여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그러합니다. 주여 제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니나이다. 하니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 또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십니다.
하자 또다시 예수께서 “내 양을 목양하라”하신다.
베드로는 왜 근심하게 되었을까? 자책감을 들게 하는 시기를 회상시키신 것이다. 한때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겟나이다. 하던 베드로,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주와 함께 하겠나이다. 하던 베드로..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다른 제자들과 같이 도망치고 말았던 베드로..그는 상심하게 되었다.
베드로 자신은 자각하고 있다. 그 사실을 주님께서는 알고 있다.
베드로는 자각하길 나같은 인간이 무슨 목회자가 되겠다고? 아니야 난 틀렸어. 하고 마지막 만찬석에 앉아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 마지막 만찬석이었다. 그 누구도 전처럼 충성 경쟁을 벌이지 않았다. 그 누구도 “내가 더 주님을 위해 충성된 일꾼이 되겠습니다”하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다 예수를 배반한 자들인 것이다. 모두 다 배신자들이다. 다 예수를 실망시키 제자들이다. 다 패잔병이다.
그들에게 “너희가 날 사랑하거든 내 양을 먹이라.” 하셨다.
무슨 뜻인가? 그나마 가장 낫다는 것이다. 그분이 육신을 입고 사역하실 적에 수천 수만명이 예수를 믿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어디에 있는가?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실 때 그 기적적인 경험을 한 예수 추종자들은 지금 다 어디에 있는가? 이것이 현실이다.
예수를 예수께서 일으키시는 기적을 보고 믿는 신앙인들은 나의 제자로 여기지 아니하신다.
요한복음 2장 23절, 많은 사람이 예수께서 행하시는 기적적인 일을 보고 믿었으나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일을 맡기지 아니하셨다. 이는 인간의 본질이 어떠한지 아시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8장 31절 “자기를 믿는 유대인들”에게 34절 “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하셨다.
자기를 믿는 사람들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의로운 행동을 실천하지 못하는 자는 아직 죄의 종이다. 마귀에게 이롭게 하고 이다. 마귀 사역을 돕고 있다고 선언하신 것이다.
현대 기독교인들이여..생각해보라. 당신들을 예수께서 죄의 종이라고 여기실 것인가? 악의 종이라고 여기실 것인가?
무엇이든지 예수님의 판단이 중요하다. 주변 교인들이...기독교 신앙계에 성직자들이 나의 신앙을 칭찬한다고 해서 예수께서도 그러한 것이 아니다.
착각에 빠진 현대 기독교인들이여..예수 앞에서 날 재평가해보라..
베드로는 예수님 앞에 섰을 때 근심에 빠졌다. 자책감이 생겨났다.
“주여 못난 놈입니다. 감히 예수 제자라고 칭하기에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3년동안 예수 제자로 ..예수께 미친 사람처럼 살았지만 이 모양 이 꼴입니다. 주여 절 제자라고 부르지 말아주십시오. 전 자격이 없습니다”
이런 심정에 젖어 있을 때 예수께서는 “ 시몬 날 사랑하느냐? 세상 그 무엇보다도 날 사랑하느냐?” 하신 것이다.
물론 주님이 아니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지금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가장 예수 잘 믿으려고 했던 열한 명을 그 자리에 초빙한 것이었다.
열성분자들이었다. 적극 추종자들이었다.
그런데 그 자리서 예수께서 “그래 그동안 수고 많았다.” 하시며 하늘로 올라가 버리시면 성육신 사역은 망친 것이다. 실패한 셈이 되어버린다.
다행히 예수께서는 묘안을 알려주셨다. 보완대책을 주셨다.
누가복음 마지막 장 48절 너희는 이 모든 나의 사역에 증거자로 살게 될 것이라.
49절, 그러니 기다리라. 떠나지 말고, 움짝달싹도 말고, 여기서 앉자 기다리라. 내가 위로부터 아버지께 받아서 능력을 부어줄테니 그 때까지 여기서 옴짝달싹도 말고 기다리고 있으라“하신다.
이 능력은 무엇일까? 할 수 없던 자가 하게 되는 능력이다.
힘써도 안되고. 애써도 안되던 것이 이제 된다.
로마서 8장 3절 ” 육신의 연약함으로 할 수 없었던 그것이 이제 내 속에 오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게 하신다“ 할렐루야!
”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이다 내 속에 오신 하나님이 하신다..이다.
4절, ”육신의 의지를 좇지 않고 그 성령을 좇아 행하는 우리“이다.
내 속에 하나님의 성령이 오셨다. 완성된 그리스도인은 자기 속에 오신 하나님의 영을 따라 산다.
제자들이 실패한 요인은 무엇인가? 마리 속에는 말씀이 가득하지만 자기 의지로 하나님을 섬기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8절은 말하길 ”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하신다.
인간의 자기 의지로,,자기 힘으로 예수를 잘 섬겨보려고 하지만 매번 실패한다. 제자들이 그랬다. 항상 마음으로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며 탄식하였다.
힘써도 안되고..애써도 안되고..안간애를 써도 주님께 실망만 안겨드릴 뿐이다.
그래서 스갸랴 선지자는 ”이는 힘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능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고 외친다.
신약의 사역은 이러하다.
예수께서는 먼저 우릴 세상에서 부르사 충분히 말씀으로 양육시킨다.
마음과 생각과 지성 속에 예수 말씀으로 가득채워질 때 그 다음 마지막으로 성령의 능력을 주입시켜 나의 협력자로 남은 인생을 살게 하신다.
이것이 예수 구원 사역의 총괄이다.
제자들처럼 아직도 날마다 예수 내 주님을 실망시키고 있는가?
좌절하지 말라. 낙심하지 말라. 낙담에 빠져 있지 말라.
하나님의 메시지를 충분히 숙지하였다 싶으시면 그 때 성령의 능력을 부어주실 것이다. 그리곤 이제 됐다. 내 증인이 되라,,하신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어느 지점에 있는가? 중단 말고 예수를 따라 가라..그리하면 마침내 예수께서 귀히 여기는 그릇이 될 것이다.
전의를 상실하였다. 예수 제자들이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다. 한때는 “주여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하였다.
또 어떤 때에는 “주를 위하여 함께 죽으러 가자”하던 제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지도자이신 예수께서 고난을 받으러 가실 때 모두 도망가 버렸다. 모두 다 배신자가 되고야 말았다.
모두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래 우리 같은 인간들이 뭘 예수 제자가 되겠다고? 우린 본래부터 갈릴리 바닷가에 평범한 어부가 아닌가? 논평가도 아니고, 변증가도 아니다. 그건 학술적으로 단련된 사람들이나 할 일이다. 가자. 우리 본연의 직업으로 돌아가자” 하고선 모두들 본래하던 생업으로 돌아가고야 말았다.
이 상황이 요한복음 21장이다.
요한복음 21장 3절 “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를 잡으러 가련다 하고 저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그렇다. 밤새도록 고기잡이를 하였으나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다. 본래 평생토록 고기잡이를 하던 숙련된 어부들이었다.
그런데 이마저도 잘 안된다.
생업을 버리고 예수 따라 나선지 어언 삼년 반이 지났다.
예수 추종자의 삶도 실패하였다. 십자가를 지고 고난받으시던 날 밤 모두 배신하고야 말았다.
그래서 이제 예수 제자가 되는 길, 십자가의 길, 예수 증인이 되는 길을 모두 포기하고야 말았다. “이일은 우리 적성에 안맞어!” 하면서 제자들은 모두 낙담하고야 말았다. 실의에 빠지고 말았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 본래 잘하던 고기잡이를 하러 간 것이다. 이런데 이마저도 잘 안된다.
본래 잘하던 고기잡이도 안되고, 예수 제자되기도 실패하였다.
온갖 잡다한 생각에 사로잡힌다. “우린 왜 이제 하는 일마다 안돼? 왜 하는 일마다 잘 안 풀리는 거지?”
이렇게 낙담하고 있을 때 선생 예수께서 찾아오셨다.
요한복음 21장 5절 “얘들아 거기에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6절, 말씀하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7절, 이때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닷가로 뛰어내리더라.
그 얼마나 감격스런 순간인가!
선생님이 찾아오시었다. 3년 동안 불철주야 목양하시던 주님이 제자들을 찾아오셨다. 난 이 시간만 생각하면 콧시울이 붉어지고 가슴이 뭉클해진다.
제자들은 실의에 빠져 있었다. 모두 낙담하고 있었다. 그 중 누구도 자신할 수 없었다. “ 이젠 우리는 예수 제자 될 자격이 없어” 하고 자책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스승이 십자가에 고난을 당할 때 모두 버리고 고망쳤기 때문이다.
한때는 그들도 “내가 주와 함께 죽을찌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막14:31) 하였다.
특히 베드로는 “다 버릴지라도 그렇지 않겠나이다”하던 제자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모두 다 그들의 지도자 예수를 버리고 달아나 버렸다.
이제 우리는 예수 제자될 자격이 없다고 자책하며 모두 본연의 위치로 돌아가 있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예수님이 찾아오셨다.
체면이 구겨져 도저히 얼굴을 들 수 없는 처지에 있었는데 예수께서 찾아오셨다.
우린 이럴 때가 있다. 이런 상념에 빠져 있을 때가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반드시 한번은 찾아온다.
내게도 그럴 때가 있었다. 그 때 제자들을 찾아오셨던 주님이 내게도 찾아오셨다. 만나 주시었다. 세상 일에 몰두하고 있는 나를 찾아오셨다.
제자들은 할 말이 없다. 한때는 “주를 위해 죽는 곳에도 함께 하겠나이다.”하던 제자들이었지만 이제 그런 자신감을 잃어버렸다. 용기를 잃어버렸다.
어찌해야 할까?
그래 우린 갈리리 어부야. 뱃놈이 천직이야. 잠시 과대 망상에 빠져 있었던 거야. 우리 같은 인간들이 뭘 성경을 진리를 논증하는 직에 종사하겠다고 생각했지? 자 본연의 직업으로 돌아가자..내가 잘하는 것에 충실히 하자..하곤 본래 하던 일을 하려고 돌아가고 말았다.
자, 여기에서 내 입장에서 생각히지 말고 예수님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나는 늘 성경을 읽을 때는 하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고 하였다.
제자양성을 삼 년 동안 하셨다. 그런데 모두가 실패로 돌아갈 지경이 되었다. 3년이나 동고동락하며 밤낮으로 말씀을 가르쳤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 예수 제자 되기 전의 상황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당신이 예수님의 입장이라면 어떡하겠는가?
다시 다른 사람을 택하여 말씀으로 제자 훈련을 하시겠는가? 아니다.
그렇게 한다손 치더라도 결과는 매양 마찬가지이다.
다시 3년 동안 줄기차게 말씀을 가르쳐 놓아도 결과는 같을 것이다.
세상으로 돌아가 버릴 것이다.
무엇이 필요할까? 보충 작업이 필요하다. 이미 말씀 교육을 마친 제자들에게 약간의 보완만 하면 끝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한번 제자 삼은 예수쟁이들을 포기하지 아니하신다. 끝까지 간여하신다. 내 인생에 개입하신다.
요한복음 21장 후반과 누가복음 마지막 장을 대조하면서 읽어보라.
요한의 아들 시몬아 나를 사랑하느냐? 온 세상 그 누구보다도 날 더 사랑하느냐? 그러자 주여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그러합니다. 주여 제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니나이다. 하니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 또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십니다.
하자 또다시 예수께서 “내 양을 목양하라”하신다.
베드로는 왜 근심하게 되었을까? 자책감을 들게 하는 시기를 회상시키신 것이다. 한때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겟나이다. 하던 베드로,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주와 함께 하겠나이다. 하던 베드로..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다른 제자들과 같이 도망치고 말았던 베드로..그는 상심하게 되었다.
베드로 자신은 자각하고 있다. 그 사실을 주님께서는 알고 있다.
베드로는 자각하길 나같은 인간이 무슨 목회자가 되겠다고? 아니야 난 틀렸어. 하고 마지막 만찬석에 앉아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 마지막 만찬석이었다. 그 누구도 전처럼 충성 경쟁을 벌이지 않았다. 그 누구도 “내가 더 주님을 위해 충성된 일꾼이 되겠습니다”하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다 예수를 배반한 자들인 것이다. 모두 다 배신자들이다. 다 예수를 실망시키 제자들이다. 다 패잔병이다.
그들에게 “너희가 날 사랑하거든 내 양을 먹이라.” 하셨다.
무슨 뜻인가? 그나마 가장 낫다는 것이다. 그분이 육신을 입고 사역하실 적에 수천 수만명이 예수를 믿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어디에 있는가?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실 때 그 기적적인 경험을 한 예수 추종자들은 지금 다 어디에 있는가? 이것이 현실이다.
예수를 예수께서 일으키시는 기적을 보고 믿는 신앙인들은 나의 제자로 여기지 아니하신다.
요한복음 2장 23절, 많은 사람이 예수께서 행하시는 기적적인 일을 보고 믿었으나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일을 맡기지 아니하셨다. 이는 인간의 본질이 어떠한지 아시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8장 31절 “자기를 믿는 유대인들”에게 34절 “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하셨다.
자기를 믿는 사람들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의로운 행동을 실천하지 못하는 자는 아직 죄의 종이다. 마귀에게 이롭게 하고 이다. 마귀 사역을 돕고 있다고 선언하신 것이다.
현대 기독교인들이여..생각해보라. 당신들을 예수께서 죄의 종이라고 여기실 것인가? 악의 종이라고 여기실 것인가?
무엇이든지 예수님의 판단이 중요하다. 주변 교인들이...기독교 신앙계에 성직자들이 나의 신앙을 칭찬한다고 해서 예수께서도 그러한 것이 아니다.
착각에 빠진 현대 기독교인들이여..예수 앞에서 날 재평가해보라..
베드로는 예수님 앞에 섰을 때 근심에 빠졌다. 자책감이 생겨났다.
“주여 못난 놈입니다. 감히 예수 제자라고 칭하기에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3년동안 예수 제자로 ..예수께 미친 사람처럼 살았지만 이 모양 이 꼴입니다. 주여 절 제자라고 부르지 말아주십시오. 전 자격이 없습니다”
이런 심정에 젖어 있을 때 예수께서는 “ 시몬 날 사랑하느냐? 세상 그 무엇보다도 날 사랑하느냐?” 하신 것이다.
물론 주님이 아니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지금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가장 예수 잘 믿으려고 했던 열한 명을 그 자리에 초빙한 것이었다.
열성분자들이었다. 적극 추종자들이었다.
그런데 그 자리서 예수께서 “그래 그동안 수고 많았다.” 하시며 하늘로 올라가 버리시면 성육신 사역은 망친 것이다. 실패한 셈이 되어버린다.
다행히 예수께서는 묘안을 알려주셨다. 보완대책을 주셨다.
누가복음 마지막 장 48절 너희는 이 모든 나의 사역에 증거자로 살게 될 것이라.
49절, 그러니 기다리라. 떠나지 말고, 움짝달싹도 말고, 여기서 앉자 기다리라. 내가 위로부터 아버지께 받아서 능력을 부어줄테니 그 때까지 여기서 옴짝달싹도 말고 기다리고 있으라“하신다.
이 능력은 무엇일까? 할 수 없던 자가 하게 되는 능력이다.
힘써도 안되고. 애써도 안되던 것이 이제 된다.
로마서 8장 3절 ” 육신의 연약함으로 할 수 없었던 그것이 이제 내 속에 오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게 하신다“ 할렐루야!
”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이다 내 속에 오신 하나님이 하신다..이다.
4절, ”육신의 의지를 좇지 않고 그 성령을 좇아 행하는 우리“이다.
내 속에 하나님의 성령이 오셨다. 완성된 그리스도인은 자기 속에 오신 하나님의 영을 따라 산다.
제자들이 실패한 요인은 무엇인가? 마리 속에는 말씀이 가득하지만 자기 의지로 하나님을 섬기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8절은 말하길 ”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하신다.
인간의 자기 의지로,,자기 힘으로 예수를 잘 섬겨보려고 하지만 매번 실패한다. 제자들이 그랬다. 항상 마음으로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며 탄식하였다.
힘써도 안되고..애써도 안되고..안간애를 써도 주님께 실망만 안겨드릴 뿐이다.
그래서 스갸랴 선지자는 ”이는 힘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능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고 외친다.
신약의 사역은 이러하다.
예수께서는 먼저 우릴 세상에서 부르사 충분히 말씀으로 양육시킨다.
마음과 생각과 지성 속에 예수 말씀으로 가득채워질 때 그 다음 마지막으로 성령의 능력을 주입시켜 나의 협력자로 남은 인생을 살게 하신다.
이것이 예수 구원 사역의 총괄이다.
제자들처럼 아직도 날마다 예수 내 주님을 실망시키고 있는가?
좌절하지 말라. 낙심하지 말라. 낙담에 빠져 있지 말라.
하나님의 메시지를 충분히 숙지하였다 싶으시면 그 때 성령의 능력을 부어주실 것이다. 그리곤 이제 됐다. 내 증인이 되라,,하신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어느 지점에 있는가? 중단 말고 예수를 따라 가라..그리하면 마침내 예수께서 귀히 여기는 그릇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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