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 아버지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롬 8:15)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갈 4:6)
• 아바
“아바(아빠)”는 아람어이다. 이는 아이들이 자기 아버지를 집에서 부를 때 사용하는 용어였다(영어의 “대디” 혹은 “파파). 예수님과 사도들은 아람어를 말했다.
탈무드(Talmud)에 언급된 "어린이가 젖을 떼면서 밀맛을 볼 때에 '아바'와 '임마' 곧 '아빠'와 '엄마'란 말을 배우게 된다"란 구절이 있다. 그리고 탈굼역(The Targum)도 사 8:4을 "어린이가 '아바'와 '임마'라고 부르기를 배우기 전에"로 번역하고 있다. 이와 같이 '아바'는 매우 친밀한 언어로 하나님을 경외할 분으로만 알았던 유대인들은 기도 가운데서 하나님을 '아바'로 부를 수 없었으며 기도 형식의 문헌에조차 결코 사용된 적이 없다(J. Jeremias).
예레미아스(J. Jeremias)는 '아멘 아멘...'의 형식과 함께 '아바 아버지'란 용어가 '예수의 고유한 언어 구사 방법'(ipsissima vox Jesu)이라고 주장한다. 오직 예수만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아바 아버지'란 용어를 즐겨 사용했는데, 이는 (1)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철저한 복종과 긴밀한 관계, (2) 아들로서의 권위를 나타낸다. 예수는 이와 같은 용어를 제자들에게도 가르치셨는데(마 6:9), 이 용어는 신약 시대의 성도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장 잘 대변해 준다.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또한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인한 굳센 믿음과 가족적인 친밀함을 가지고 이제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게되었다(참조, 막 14:36; 갈 4:6). 타락한 인류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고 또한 거룩하신 영원한 하나님께서 이러한 것을 소원하셨음은 정말 놀랍다.
• 양자의 영
신약의 성도는 양자의 영에 의해서 하나님과 부자(父子)관계 속에 들어가게 됨으로써 '아바'란 말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성령이 친히...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본절은 성도가 '양자의 영'을 받은 사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신분을 증명해 주고 있다. 즉 성도는 양자의 영을 받았을 뿐 아니라 양자의 영이신 성령으로부터 친히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하나님 앞에서 증거받는다. 이에 대해 칼빈(Calvin)은 말하기를 , "우리의 마음이 믿음으로 차 있을 때에만 우리의 입이 열려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데, 이것은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에 역사하시고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해 주시기 때문에 가능하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하지 못하면 하나님께 바로 기도할 수 없으며 그와 같은 믿음은 헛것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로마법은 양자 삼는 것을 매우 어렵게 하였지만 한 번 양자가 된 후에는 이것은 영속적인 것이 되었다(참조, 갈 4:4-6). 이 은유는 신자의 안전에 대한 신학적 진리를 지지한다. 육체를 따라 난 아들은 유업을 얻지 못할 수 있었지만 양자는 그렇지 않았다. 이것은 구원을 설명하기 위해 바울이 즐겨 사용한 가족과 관련이 있는 은유이다(참조, 15, 23 절). 요한과 바울은 이와 관련이 있는 가족의 은유로서 “거듭난”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참조, 요 3:3; 벧전 1:3, 23).
• 자녀됨의 축복
"자녀이면...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혹자는 '자녀'와 '후사'(後嗣)는 의미상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진술한다. 그러나 '자녀'는 가족 관계를 강조하는 용어이며 '후사'는 상속(相續)과 관계되는 용어이다. 바울은 '자녀'로서 하나님의 후사가 되는 성도의 권세를 본절에서 강조하고 있다. 성도는 하나님과 가족 관계에 들어가 그 가족의 구성원이 될 뿐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취하신 하나님의 후사로서의 권세도 동시에 가진 신분이다.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 이 고난은 마음의 법과 죄의 법이 서로 투쟁함으로써 비롯되는 내적인 고난(7:23, 24)일 수도 있으며 의를 인하여 필연적으로 받게 되는 것일 수도 있다(마 5:10;벧전 3:14). 그리고 보다 포괄적인 의미로는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받는 고난일 수 있다(딤후 2:3). 어떤 의미의 고난이든 그것은 잠시 동안 받게 되는 것이며(고후 4:17), 궁극적으로 성도에게는 승리가 보장되어 있다(37절)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외칠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우리의 영과 더불어 증거하시는 분은 바로 성령님 자신이시다”(참조, 갈 4:6). 이것은 신자가 성령님에 의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을 때 확신이 옴을 뜻한다.
성령께서 안에서 증거하시는 것은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나타나는 증거이다.
1. 죄에 대한 죄의식
2. 그리스도를 닮고 싶은 소원
3. 하나님의 가족과 있으려는 소원
4.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배고픔
5. 복음을 전하려는 마음을 가짐
6. 그리스도인으로서 희생적인 구제를 하려는 마음을 가짐 회심할 때 믿음의 확신을 주는 내적인 마음의 갈망이 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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